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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아파트, 그 곳 층계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전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층계참 금붕어」. 아파트의 이름은 메종 엘미타쥬. 스위스 로잔에 있는 엘미타쥬 미술관에서 따온 이름인 것 같다. 로잔 전경이 보이는 언덕 꼭대기 엘미타쥬(Hermitage)라 불리는 땅에 지은 아름다운 19세기의 레지던스 안에 위치한 미술관으로 수목으로 둘러싸인 넓은 공원의 경관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저택이라고 한다. 이 오래된 아파트 건물주의 딸인 요리코는 이름도 촌스럽다고 생각하지만 이곳 층계참의 만남은 마치 행복을 불러오는 유럽의 동화 같은 일들이 이루어지게 한다. 얼어있던 마음의 문을 녹이고, 꼬인 매듭을 풀고, 화해의 장을 만들고, 인연의 끈을 엮는 공간이 된 층계참. 푸른빛을 띤 형광등 불빛 아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바다위에 무지개다리가 걸린다. 풀의 백성 요리코가 층계참에서 만난 여자. 타미 씨는 의상을 만드는 일을 하는데 점점 더 층계참에 제대로 자리를 잡아 버린다. 먹을 것, 마실 것, 무릎 덮개, 파시미나를 준비하고는 책을 읽기도 하고 어떨 땐 일도 층계참에서 한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타미 씨와 가까워진 요리코는 정작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자신이라는 기분이 든다. 타미 씨가 깔아놓은 융단 ‘가베’ 속에 수놓인 풀밭 위 어딘가에서 따스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스트 슈트의 별 아파트의 관리인 오오타 씨가 가장 사랑하는 왕국 쓰레기 집적소에 불청객이 날마다 찾아온다. 1층에 사는 다케노쓰카 씨. 신문에 끼어있는 쿠폰을 모으기 위함인데 어느 날 투입구를 막아버린 더스트 슈트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우연히 영화잡지에서 여장을 한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고 오래전 연을 끊어버린 아들을 생각하는 오오타 씨. 지금이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도 같아 저도 모르게 더스트 슈트를 바라본다.
작은 도깨비의 내일 자하드 씨가 층계참에서 만난 작은 도깨비. 어느 새 그의 집에 눌러 앉아버렸다. 이란에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타국에서 텅 빈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에게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다. 친구도 가족도 없던 자하드 씨에게 작은 도깨비와의 일상은 따스한 기운을 불어넣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하긴 이제는 행복을 원하는 마음이 생긴 자하드 씨에게 작은 도깨비의 요술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개와 호랑나비 타미 씨의 딸 후짱이 기다리는 사람은 예전에 엄마의 남자친구였던 기타자와 군. 그의 신선하고 독특한 기운에 흠뻑 빠져있던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이다. 기적처럼 갑자기 층계참에 나타난 기타자와 군. 언젠가 산에서 캐어와 베란다 화분에 옮겨 심었던 산초나무가 걱정이 되어 왔다고 한다. 비록 가짜인 개산초나무지만 호랑나비가 날아드는 걸 보면 어디에나 존재하는 마음이란 전해지지 않는다 해도 그곳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보다.
타일을 깨다 요리코의 엄마 구사요 씨는 타일 기술자의 딸이었다. 사위로 하여금 대를 잇게 하고 싶었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 부동산 회사의 후계자이자 저돌적인 성격의 고조 씨와 결혼을 했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타일에 애착을 갖고 있던 요리코는 타일을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었지만 결혼 후 일상생활에 젖어든다. 아내 집안의 가업에 무심해 보였던 남편이지만 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층계참에 장식된 타일에서 고조 씨의 깊은 애정을 발견한다.
모래언덕 관리인 아파트에 틀어박혀 할 수 있는 웹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독신남 리쿠지 씨에게 누나가 고양이 ‘미아’를 맡아달라며 데리고 온다. 어린 시절 태어나 자란 곳 일본해에 접한 사구지대를 떠올리는 리쿠지 씨. 그 때 키웠던 고양이는 사구 언덕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그들 남매를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길잡이처럼 집으로 인도해 ‘모래언덕 관리인’이라 불렀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그 고양이처럼 ‘미아’는 어디선가 모래를 묻히고 돌아온다. 따스한 모래의 촉감은 허전한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금붕어 망토 타미 씨가 오랜만에 나선 층계참에서 우연히 마주친 어린 시절 친구 케타로 군. 아니, 이제는 케이티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알고 보니 관리인 오오타 씨의 아들. ‘리틀 라이딩 후드’라는 가게를 경영하고 있다. 늘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던 그를 좋아했던 타미 씨. 어쩌면 층계참에서 기다린 사람은 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씩 찾아와 층계참에 머물다 가는 케이티를 위해 무대 의상을 만들기로 한 타미 씨.
스테이지 위에서 우스꽝스럽게 춤추고 떠드는 그들이 금붕어라면, 이 가게는 수조이다. 왁자하게 웃는 손님들은, 잠시 속세를 잊고 흔들흔들 유리 수조의 바닥에서 흔들거리는 수초 같은 것이겠지. 망토와 복면으로 각각의 마음을 감춘 금붕어들, 타미 씨는 그들이 불빛 아래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몹시 기다려져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 또한 커다란 수조인지도 모르겠다. 덧없이 흔들리는 수초로 만족할 것인지 아름다운 색깔로 반짝이는 금붕어가 될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겠지. 출구는 없을지라도, 때로는 자신의 일부를 복면으로 감춰야할지 모르지만 세상을 향해 힘껏 헤엄을 쳐보자. 나를 응원해주는 또 다른 금붕어들이 분명히 존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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