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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상고 정치사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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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상고사연구>는 신라 상고 왕실의 기년 재조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상고는 박혁거세부터 지증왕까지를 말한다.   왕위계승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회여서 신분 확인을 위해서는 그 계보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계보는 정확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재위 연대에는 의문점이 많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따라 계산하면 석탈해는 태어나기 14년 전에 바닷가에 표착하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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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상고사연구>는 신라 상고 왕실의 기년 재조정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이다. 상고는 박혁거세부터 지증왕까지를 말한다.

 

왕위계승전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회여서 신분 확인을 위해서는 그 계보가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계보는 정확하다고 판단하였으나 재위 연대에는 의문점이 많다고 본다. 삼국사기에 따라 계산하면 석탈해는 태어나기 14년 전에 바닷가에 표착하였으며 내물왕이나 흘해왕은 백 년 이상 생존한 셈이 된다. 대개 일본인 학자들은 삼국사기를 믿을 수 없는 역사서라고 치부하였으나 저자는 수정론을 제시하고 있다. 석탈해가 1세기 경에 이사금이었던 것이 아니라 250년 무렵에 해당되고 탈해기에 백제와 신라의 교전 기사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조정을 해 놓고 보면 1세기에 백제와 신라의 교전 기사도 3세기 중반으로 수정이 되며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김씨 족단이 원래 소백산맥 부근에 있었는데 마한 지역을 통합한 백제와 충돌이 벌어져 근거지를 경주로 옮기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가장 먼저 정착해 있던 박씨 족단이 김수로와의 세력 다툼에 밀린 석씨 집단을 받아들여 힘을 키웠고 마지막으로 김씨 족단까지 가세하면서 진한 지역의 패자가 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 족단의 발생지도 소백산맥 부근이라고 추정하며 신궁은 김씨의 시조를 모신 곳이고 아마도 발생지에 설치하였을 거라고 한다.

 

이사금 시기에 삼성족단체제가 운영되는 동안 진한소국들을 복속시켰으며 외세의 힘을 이용하여 석씨 세력을 몰락시키고 정치적인 힘을 장악한 눌지 마립간 대 6부체제가 완성되었으며, 이후 중앙통치는 부간 격차가 심화되면서 각부는 단위정치체로서의 기능을 잃어갔고 각 지방은 간접통치체제에서 지방관을 파견하는 방식으로 변하여 갔다고 한다. 이렇게 힘을 키워 가던 왕권은 이차돈 순교를 계기로 일원적인 지배체제를 수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기존에 해결하지 못하였던 수수께끼 같았던 초기 신라사 영역에, 치밀한 사료 고증과 해석으로 참신한 설을 내놓았다는 평을 듣는다. 작은 사료 하나도 놓치지 않는 저자의 안목에 한번 놀라보시길!

c*****8 2006.0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