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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없이 찾아온 투명한 만남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순간만큼 앎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설레면서도 기쁘게 느껴지는 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 사랑하는 그 또는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순간을 제외하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일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읽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의 사랑얘기며 중요한 일을 까맣게 잊고 멍하니 있거나 알 수 없는 사건에 열을 올리는 이야기 또는 기묘하다 싶을 정도의 집착에 관한 내용 등 요코의 소설은 그녀를 단정 지을 수 있는 무언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이야기에 거침없이 빠져든다. 처음에는 변주에 능한 그녀의 기교에 매료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보여준 사랑과 <호텔 아이리스>에서 그린 사랑은 '사랑이야기'라는 껍데기를 빼면 전혀 다른 내용물이다. 그래서 그 두 소설이 요코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주제 넘는 노파심과 당혹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글이 전혀 싫지 않았다. 퇴폐와 순수라는 극과 극을 오가는 그녀의 글쓰기에 경악하면서도 표현의 한계나 방향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가 글쓰기가 퍽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이런 나의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긴 건 <임신 캘린더>, <미나의 행진>, <슈거 타임> 등 요코의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된 후부터다. 특히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임신캘린더>는 '기교파'라는 그녀에 대한 나의 단순한 생각을 완전히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기교라는 꽃다발을 만들기 전에 이미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꽃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흐름과 몽환적이고 야릇한 느낌의 사건들 게다가 감정의 기복을 넘어 혼란스러울 지경에 이르게 만드는 특유의 필력.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있는 아주 새로운 느낌의 요코를 만났다. 기교 없이도 빛나는 싱싱한 한 송이 꽃을 본 것이다. <우연한 축복>은 이렇게 이미 그녀의 작품세계 깊이 와있는 내게 그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 소설이다. 아니 진솔한 면모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하려나?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들은 연작이라는 형식적인 다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의 취향답게 연작이지만 시간의 순서는 가볍게 무시하고 있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수록된 단편의 대다수는 '누군가 사라진다'라는 것과 글쓰기의 계기 또는 배경이 공통된 제재로 쓰였다. '사라짐으로 해서 생겨난 공백을 글쓰기로 메운다'라는 아주 단순한 공식과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책에 담긴 모든 단편을 아우르는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제목이 힌트가 될 것 같다. <우연한 축복>이라는 제목처럼 각각의 단편에는 우연히 어떤 만남이 생겨 그로인해 축복처럼 좋은 일은 벌어진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의 이면에는 작가 오가와 요코의 진솔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가 포착된다. 우선 [실종자들의 왕국][도작][기리코의 실수][시계 공장]은 과거 또는 현실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그것이 창작의 계기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델바이스] 역시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그 만남의 흔적이 희미해질 무렵 기뻤던 과거의 추억과 조우하게 된다. 특이한 병명이 제목인 [누선수정결석증]도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며 [소생]은 수많은 우연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우연의 향연'으로 의미심장했던 건 주인공 그녀가 우연히 말을 잃게 되고 그것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녀는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게 됐고 '무언' 속에서 과거에 썼던 말들이 벽이 돼버린 막막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 하지만 역시 이 경우도 '우연한 무엇'으로 극복하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우연함이 넘쳐나는 이야기, 바로 이 소설이 그렇다. 하지만 우연이란 말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그 만남에서의 축복과도 같은 즐거운 추억, 우연히 일별한 이벤트의 참가와 당첨 등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우연과 그 우연으로 파생된 축복과 같은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쩌면 이 소설과의 만남도 또 다른 우연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만남과 더불어 또 하나의 우연한 축복을 들자면 이 소설을 통해 작가의 본모습을 조금이나마 추측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므로 이 단편소설들이 모두 오가와 요코가 직접 경험한 일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소설 속 '그녀'가 어느 정도는 요코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특히나 내용 중에 <호텔 아이리스>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이 소설 어딘가에 분명 그녀의 삶 일부가 녹아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어준다. <우연한 축복>을 들고 온 오가와 요코와 만남은 정말 즐거웠다. 은근슬쩍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아 이국의 독자인 나에겐 참으로 행운처럼 느껴지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제목 그대로의 느낌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을 읽고 우연히 이 시간에 서평을 쓰고 또 우연히 누군가 이 서평을 보게 되는 이 모든 일에 부디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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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듯한 일상 이야기가 일곱 편의 단편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누가 주인공인지 헷갈리다가 어느새 ‘아, 이 사람이구나.’라고 알게 되는 이야기다. 콕 집어서 여류 소설가인 ‘나’라고 말하면 좋았겠지만 역시 <우연한 축복>처럼 우연히 자연스럽게 ‘나’를 알아가길 바란 것 같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에 썼다는 일기 혹은 습작을 보는 느낌이다. 대단한 작가가 된 것처럼 한껏 으쓱한 기분으로 글을 써 가는 모습이 점점 세월과 함께 생계를 위해 시계 공장에서 일하는 직공처럼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으로 겹쳐진다. 삶은 우연일까 운명과 우연은 묘하게 비슷하지만 다른 것 같다. 둘 다 우리가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 무게가 다른 것 같다. 묵직한 운명보다는 가벼운 우연이 좋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그저 우연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행복하지 않을까 주인공의 삶은 상식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다지 축복받은 것 같지 않다. 그런데도 그녀의 삶들을 하나의 단편들로 엮어 <우연한 축복>이라고 이름 붙인 것을 보면 굉장히 낙천적인 면이 엿보인다. 아니면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회의적이라고 해야 하나 아차, 원래 남의 삶을 함부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깜박 잊었다. 내가 알고 있는 주인공은 얇은 책 한 권에 적힌 내용뿐이다.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란 뜻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깨달은 것은 보여지는 것이 제일 작은 부분이란 점이다. 사람들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과 전혀 다르네.’라고 놀랄 때가 있다. 완벽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모자라고 부족하다고 불행한 것도 아니다. 그런 줄 알면서도 종종 깜박 잊고 겉모습으로 평가할 때가 있다. 행복은 비교가 아닌 충족인 것을. 주인공이 왜 자신의 삶이 <우연한 축복>인지를 놓고, 물고 늘어지는 나를 한심하게 봐도 어쩔 수 없다. 이른바 속물 근성, 세상 때가 묻은 것을 어쩌겠는가? 아무리 세상 때가 묻어도 한 가지는 알고 있다. 삶 자체가 축복이란 것을 말이다. 매일 감사할 일 보다 투덜댈 일이 많아도 살아 있으니까 좋다. 그러니 이쯤에서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의 삶과 내 삶이 다르지 않다는 점, 우리 삶이 우연한 축복이라는 점을 말이다. 이 이야기가 혹시 작가 자신의 삶이 아닐까 상상해봤는데 다 읽고 나니 결국 콕 집어 누가 아닌 그저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누구든 한 사람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소설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이며 특별하다는 점이다. 정말 희한하다. 주인공의 삶을 요리조리 뜯어보다가 어느새 그 삶에 빠져든 것 같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우연한 축복>처럼 삶은 때로 우연의 모습으로 우리를 행복으로 이끌어준다.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내게는 <삶은 축복>으로 기억될 또 한 권의 책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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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삶의 한가운데 찾아오는 우연한 축복. 무기력한 나날이다. 무료한 일상에 마음이 지쳐가도, 막다른 골목길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이 책을 발견하였다. <우연한 축복>이라는 제목보다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이전에 만났던 즐거운 경험으로, 작가의 책을 선택했다. 아기 침대에서 아들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침대 아래에는 레트리버 종의 개 아폴로가 잠들어 있다. 온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 느끼는 여류 소설가의 절망속에 찾아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글은 시작된다. 힘겨움에 빠졌던 첫 소설을 집필했을 때의 일화,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만년필과 관련된 일화, 첫 월급으로 레트리버를 만났을 때, 아이의 아버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이별까지... 7편의 단편소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소설은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우연한 축복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소한 축복,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축복을 통해 주인공을 생의 더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 역시 생의 희망을 얻는다. # 소소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다. 심오하고 깊은 갈등을 직면하고 고난을 헤쳐내거나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고난을 극복해 내는 힘을 얻어거나, 현재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소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아이템 하나를 통해 긴장감있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설은 많지 않았다. <실종자들의 왕국>에서는 고모의 <구토봉투>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도작>에서는 재활병원에서 만난 여인과의 에피소드, <기리코의 실수>에서는 글쓰기에 힘을 실어준 만년필, 리코더와 관련된 그녀의 배려, <에델바이스>에서는 그녀의 동생이라고 자처하는 스토커와의 하루와 사랑하는 이가 전해준 축전의 노래가, <누선수정결석증>은 아폴로의 병과 첫 월급이 , <시계 공장>에서는 섬에서 과일일 가득 싫은 노인과의 만남과 자신의 작업공간과 아이의 아버지인 이별과 임신소식이, <소생>에서는 아이와 자신의 주머니 제거수술과 병실에서 아나스타샤와의 만남을 통해 우연히 찾아오는 축복과 그를 통해 생의 희망을 얻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잔잔한 행동들 속에 펼쳐지는 진한 감동이라고 할까. 이런걸 감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인다 생각한다. 저자의 인생의 여러 순간 순간에 찾아온 우연한 축복 처럼, 나의 인생 속에서도 많은 우연한 축복이 있었지만 내가 돌아보고 살펴보지 않아 그냥 지나치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할 수도 있는 인생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주었다고 할까. 깊게 고민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더욱 위안이 된 부분도 있다. # 생의 희망을 전해주는 우연한 축복 이 책을 읽기 전 <임신 캘린더>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호텔 아이리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에델바이스>의 단편에서 작가가 소개한 책의 내용에서 <호텔 아이리스>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 미묘하게 섞여 있어 작가 자전적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좀 더 생생하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묘하게도 역자 역시 종이 시추인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와 딸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다. 번역자와 작품의 주인공의 상황이 묘하게 겹쳤다고 할까. 번역자에게 우연한 축복을 안겨준 책은 일상에 지친 나에게는 삶은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우연한 축복으로 다가왔다. 첫 단편에서 여류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소설의 정의처럼 소설은 숲을 떠올린다는 말에 공감한다. 깊지 않지만 서늘한 동굴이 있는 숲을 헤쳐나온 느낌이다. 어둠과 절망의 순간에 찾아오는 우연같은 축복을 잃지 않는다면, 생을 더욱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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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선 한없이 따뜻하고, 임신캘린더에선 조금 섬찟하더니, 겨우 세 작품 읽고 그녀를 평가하기는 뭐하지만 아주아주 좋은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무척 근사하고 매력적이라는 짧은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단편집을 읽었다. 장편들을 쓰다가 의례적으로 써내는 작가의 단편집은 시시하다. 단편이 몇 개가 실리든 관통하는 주제도 없도 순간순간 떠오른 영감이나 장편으로 쓰기엔 좀 가벼운 주제들을 담아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연한 축복은 제목 그대로인 주제로 여러 작품들을 연주하듯 표현하고 있다. 읽는 내내 왠지 책장이 넘어가는 것이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집중하게 된다. 좋은 화가는 사람들이 캐취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그려내고, 좋은 작가는 이야기의 창의력도 필요하지만 남들이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기어이 말로, 글로 풀어낸다. 살면서 한켠에 치워두거나 혹은 잃어버렸다고 생각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작가에게도 아마도 그러한 것들이 많았나보다. 살아가는 동안, 글을 쓰는 동안에 사라지고 떠나는 그것들을 대신할 어쩌면 그보다 더 좋은 축복들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다고 조용하지만 힘있게 말하고 있다. 잔잔하고 소소한 일상을 말하는 것 같다가도 기묘하고 환상적적인 세계로 빠져들게 만든다. 시간을 알 수 없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7개의 단편들이 실타래처럼 엉켜 그 어떤 직물보다 탄탄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내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느낌을 충만하게 채워주는 직물.
몽환적이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실제일것만 같은 작가 자신의 상태와 연결시켜 그 축복들을 모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구토봉지를 모으는 고모의 실종 사건이 담긴 '실종자들의 왕국'으로 시작되는 우연한 축복에는 찾고자, 발견하고자 하는 작가의 간절한 기도가 담겨 있다. 아픈 동생과 가정부 기리코의 이야기에선 삶과 사람을 사랑하고, 사라져가는 것들에게서조차 위로받는 타고난 소설가란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에델바이스'에선 작가를 스토킹하는 초라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녀의 작품을 온 몸에 무기 두르듯이 두르고 그녀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따라온다. 그리고 그녀에게 장문의 감상문을 폭탄 투하하듯 보내는 남자, 어쩌면 글을 쓰는 동안 작가의 잠재 의식 속에 담긴 부담감이 현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도 동생도 돌아오지 않는 그녀의 곁에 있는 것은 이름도 태생도 모르는 못생긴 남자....바로 그녀에게 남겨진 글이라는 동반자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애인을 잃은 대신 아이를 얻게 되고 보석대신 애완견 아폴로를 얻게 되는, 각 단편들 속에 녹아있는 잃고 잊혀진 것들을 대신할 무언가는 위로이고 축복이다. 그리고 그녀의 인생의 가장 커다란 부분 '시계공장'이라고 표현한 그녀의 글. 조립해야하고 완성된 소리를 들어야하는, 그녀가 살아있는 이유이자 존재의 가치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그녀의 글. 작가는 소설가로써 한 인간으로써 인생의 전환점으로 이 단편집을 완성해 나갔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너무나 어려웠고, 때론 아팠던 그 순간들을 이제와서 보니 축복된 우연이었다고, 최고의 순간들이었다고, 그 고통들 속에서 행복을 찾았노라고. 그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삶을 관조할 수 있는 자에게 온 필연적인 축복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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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사 새옹지마라 했다. 역자 권남희의 말대로 세상 사는 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누구에게든 우연한 축복이 찾아온다. 오가와 요코의 연작소설집 《우연한 축복》은 <실종자들의 왕국><도작><키리코의 실수><에델바이스><누선수정결석증><시계 공장><소생> 등 7편의 단편을 수록하고 있다.
<실종자들의 왕국>의 주인공은 어린 아들과 반려견 '아폴로'를 키우는 여류소설가다. 보통 갓난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반려견을 키우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주인공은 아폴로의 숨소리를 들으며 원고를 쓴다. 글쟁이는 언제나 원고지의 하얀 늪, 노트의 깊은 숲, 컴퓨터 모니터의 깜빡이는 검에 대한 울렁거림과 긴장감을 품게 된다. 그래서 연필을 깎고, 만년필의 잉크 필터를 갈고, 자판 위의 먼지를 털어내는 분주함으로 그런 긴장함을 대신한다.
"한밤중에 침실 겸 작업실에서 소설을 쓰다보면 내가 몹시 교만하고 추하고 웃기는 인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천식 발작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마감이 임박했는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조금만 더 하면 끝날 텐데 막혀서 미칠 것 같을 때라거나 그런 건 상관없다. 나는 어차피 소설을 잘 쓰지는 못하니까."<실종자들의 왕국>(9쪽)
여류소설가는 아홉살 때 '실종'이란 단어의 의미를 심장병을 앓고 있던 융단 집 딸에게서 배웠다. 융단 집 딸에게 최초의 실종자가 자기 삼촌이었다면 주인공에게는 구토봉투를 수집하던 자신의 고모였다. 실종자, 그것은 일인칭일 수도 있고 이인칭일 수도 있고 삼인칭 단수나 복수일 수 있다.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선생님, YMCA 하계 청소년 캠프의 여선생, 이름 모를 죽마고우들, 얼굴 모를 친척어른들, 내 짝궁들, 사진만 남은 대부, 내게서 회수권 뭉치를 강탈해간 불량배 형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했던 여인들…이제는 모두 내 기억 속의 실종자인 셈이다. 언젠가 나도 이들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낼지 모른다. 그때까지 이들은 실종자들의 왕국에서 자기들끼리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오가와 요코의 말대로 실종자들은 신기하게도 우리를 위로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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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가와 요코는 내게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기억되어 있는 작가다. 내가 생각하는 일본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 소소한 일상을 담백하게 그려내면서도 그 안에 자리잡은 개인적 사건들과 판타지를 잘 그려내는 작가다. 보도 자료나 홍보 문구에는 일상의 메르헨을 잘 그려내는 작가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뭐, 메르헨까지는 모르겠고... 그저 평범한 생활에 판타지의 입김을 불어넣는 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한 축복>도 반가운 마음으로 읽었다. 처음 표지를 받아들고서는 왠지 온다 리쿠 식의 성장물의 탈을 쓴 소설이 아닐까 했다. 표지 이미지는 뭐랄까. 너무 앳되보였으니까.
어쨌든, 이 책은 아이를 키우며 개와 함께 살아가는, 싱글맘 여 작가의 시선으로 기술된다. 그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도 잠시 등장하긴 하지만 절대 유년기의 톤을 사용하지 않는다. 철저히 회상이다. 이 소설은 내가 느끼기엔 30대 중반 즈음의 시선이다. 더도 아닌 덜도 아닌 딱 그만큼. 가끔인 이 주인공의 입장이 오가와 요코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심리묘사에 뛰어나다(실제로 오가와 요코가 30대인지, 혼자 아이를 키우는지는 전혀모르겠다. 작가 정보는 가진게 없다. --). 연작 소설이라는 이점을 최대한 살려 한 캐릭터의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오가와 요코는 7편의 연작 소설을 통해 '사라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실종자들의 왕국"부터 "소생까지 모두 그렇다. 융단집 딸아이의 삼촌, 고모의 잉어들과 가구, 구토 봉투를 모으던 고모, 남동생수영을 잃게된 여자의 남동생, 기리코, 자신의 책을 읽는 남자, 아폴로를 고쳐준 의사, 남쪽 섬에서의 노인, 아이와 나의 상처-와 목소리, 한때 사랑했던 사람, 등등 왠지 아련하게 남아있는 그리움과 미련이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 '사라진 것'은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련하고, 내가 갖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아련하다.
'사라진 것'들은 이자리에 없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날아간 원고들과 사라진 양말 한 짝의 향방이 늘 궁금한 것처럼 그 존재를 스스로 감춘 것들은 남은 사람들에게 그리움과 미련을 남기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은 <우연한 축복> 보다는 아련한 느낌을 주는 무언가였다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물론 그녀를 만난 것이나 그의 소설 쓰기는 독자들로 하며금 우연히 그녀를 만난 축복을 받게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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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인 '나'를 화자로한 7편의 단편이 실린 연작단편집. 7편 어느 이야기에도 상실이라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거기에 있던 것, 그렇지만 지금은 없는 것. 죽어 버린 남동생, 잊혀진 이야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공의 기억, 따뜻한 추억등등. 여객기 안에 구비된 구토봉투를 수집하는 취미나, 비단잉어를 모두 들어내고 남겨진 황량한 연못, 어느날 갑자기 위로 들린 채 다시는 내려오지 않는 동생의 왼팔에 이르기까지, 섬찟하면서도 어쩐지 투명한 아름다움이 있는 상실, 혹은 소실. 이 책에 담겨있는 상실은 재생을 부른다. 아무 의미없이 그저 과거를 되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없어진 것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빈자리를 더듬다 보면, 또 그자리에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이 느껴져 온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의 순서가 실종자들의 왕국으로 시작해서 소생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다.
뭐랄까, 변함 없이 오가와 요코다운 책이라고나 할까. 메르헨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현실과 가상 세계 사이의 애매한 경계선 위를 주인공이 왔다 갔다하면서, 과거와 미래와 현재가 교묘하게 엇갈리는 그런 느낌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나는 이 작가의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어지곤 한다. 이야기 속에 푹 빠져 들어서 그런것이냐 하면, 그정도까지 몰입하면서 읽게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쩐지 알게 모르게 현실을 잊게 하는 힘이 있다. 그 힘이 이 작가가 아쿠다가와상이라는 큰 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였을 것이라고, 처음 오가와 요코를 알게 된 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다.
7개의 각각의 단편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는 이 책은, 소설가인 여주인공의 눈을 통해서 바라본 몇개의 시대를 잘라내 보여주고,최종적으로 그녀가 있는 현실로 돌아온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독립되어 있는 탓인지, 지루할 틈 없이 단번에 읽어 내려갔다.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따라 흐르는데로 살아가는 듯 보이는 그녀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여기까지 걸어 왔을 것이다. 윤곽이 희미해지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그녀의 마음만이 또렷하고 선명하게 빛나는 순간이 있다. 그것이야말로 오가와 요코가 만들어 내는 세계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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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오가와 요코'는 '박사와 수식'에 이어 두번째 만났다.. 나는 올해 초에 박사와 수식을 아주 재미있게..그리고 감동까지 더불어 읽었기 때문에 오가와 요코에 대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책의 띠지에 보면 아사히 신문의 소개가 나오는데 그것이 나의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주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어느 시기의 작품 속에서도 오가와 요코적인 세계는 고차원적이고 기분 좋은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박사와 수식에서 받은 재미와 감동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이 작품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어린 아들과 아폴로라는 강아지와 함께 사는 여류 작가이다.. 7편의 단편이 모인 연작 소설이지만 화자가 같다는 점에서 이어지고 있는 것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단편들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는 '상실'이다.. 실종과 죽음등.. 인생에서 맞닥치는 사건중 아주 무거운 주제이다.. 우리가 이것을 통해 예상되는 느낌은 '슬픔'과 '절망'일진데, 이 소설의 특별한 점은 그것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세상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그 와중에 우연하게 축복같은 일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렇듯 전체적인 느낌은 어두운 밤이 끝나고 빛이 조금씩 늘어나는 새벽녁같은 희망적인 느낌이 들었다..
<우연한 축복> 이 책은 200여 페이지 되는 가벼운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200여 페이지의 책을 한 세배쯤 나가는 책을 읽는 시간만큼 들여 읽어낸 것 같다.. 그만큼 나름대로는 읽기가 어려웠던거다.. 번역자의 말을 빌어보자면, 작업을 할 많은 작품 중에 이 작품은 그야말로 책의 제목처럼 '우연한 축복'의 의미로 다가왔다고 한다.. 무심히 딴 조개에 진주가 들어 있음을 발견한 심정이라고도 표현하고 있다.. 고로 그야말로 섣불리 내 감상을 표현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사실 이 작품의 문체는 전에 읽었던 '박사와 수식'에서와 같이 소박하고 따뜻하고 고요하리만큼 조근조근했다.. 내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듯 잔잔한 감동을 주던 그때의 문체 그대로였다.. 그런데 달라진게 있다면 나였을까.. 휴가철의 소란한 틈에 조금은 들 뜬 내 마음이 이 소설에 완전히 몰입하기 힘들게 만든 것일까.. 읽다가 멈추고 다시 읽을려고 해보면 분명 아까 읽었던 내용인데 완전 새롭게 다가오는듯한 답답한 느낌이었기에.. 시간이 하염없이 지체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거 원, 나중에는 작가에게 미안해할 지경이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상실'후에 오는 '축복'의 의미를 제대로 느껴보지도 못하고 책을 닫았다..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되어 차분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되면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을 때,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생각지도 않았던 우연들이 찾아와 나를 구워해 주는 축복이 된다. 잃어버리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며 주변을 따스하게 데워 주는 것. 그런 존재들에 대한 몽환적 미르헨!!
메르헨 : 어린이를 위하여 만든, 공상적이고 신비로운 옛이야기나 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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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신문에서는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이렇게 평했다. "어느 시기의 작품 속에서도 '오가와 요코적인 세계'는 고차원적인고 기분 좋은 안정감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그녀의 작품을 읽는 내내 느꼈던 감정도 바로 이것이었다. 많은 일본 소설들 안에서 맛 볼 수 있는 정착하지 못하고 어딘가 붕 뜬 것 같은 느낌은 그녀의 작품 안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읽는 내내 푹신한 쇼파에 앉아 정말 평화로운 마음으로 책을 읽고 있다는 기분이 들게 하는 이야기들. 아기자기하면서도 덤덤한, 그럼에도 희미하게 따뜻함을 품고 있는 작품들이 좋다.
이 작품은 오가와 요코의 연작단편집이다. 모두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주인공은 '나' 한 명이며, 모든 이야기가 '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시간의 순서는 여기에서는 무의미하다. 때로는 어린 시절을 때로는 방황하는 젊은 날을, 때로는 애인과 헤어진 어느 날을 그리는 이야기들은 마치 우리 주위의 가까운 누군가의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어린 시절 구토봉토를 모으던 고모의 실종과 주위 사람들의 실종을 연관지어 생각하는 <실종자들의 왕국>과 착한 동생이 죽고나서 만난 어떤 여인의 이야기가 첫 작품의 계기가 되는 <도작>이 있다. <기리코의 실수>에서는 믿음직하고 성실한 가정부 기리코와의 일화를, <에델바이스>에서는 작가가 된 '나'를 따라다니는 정체불명의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첫 원고료를 받고 산 개 아폴로의 눈병을 다룬 <누선수정결석증>과 '나'의 작품 쓰기와 애인과의 추억담이 얽힌 <시계 공장>, 마지막으로 아들과 '나'의 몸에 생긴 물주머니에 관련된 <소생>까지, 어찌보면 숨막히게 읽어내려야 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얄밉도록 느긋하고 몽환적으로 쓰여 있다.
나는 그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분명 우리 주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고, 누구에게나 일어날만한 현실 세계를 그리고 있음에도 그녀의 이야기들은 투명한 막으로 한꺼풀씩 덮여 있는 듯 하다. 그런 인상을 가장 강하게 받은 작품은[슈거타임]이었는데, 평범한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음에도 다른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우연한 축복]은 [슈거타임]보다도 약간은 더 모호하고, 몽환적이며 때로는 이야기들에 담긴 의미를 좀 더 생각해야 한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하나를 잃고 하나를 얻는 것에 관한 에피소드이다. 고모는 실종되었지만 '나'는 글을 쓰게 되었고, 착한 동생은 죽었지만 동생 이야기를 즐겨 하는 여자를 만난 후 첫 작품을 쓰게 되었다. 잃어버렸던 만년필은 돌아왔으나 친절하고 따뜻했던 가정부 기리코는 떠났고, 불륜관계였던 애인과는 헤어지지만 아들을 얻는다. 오가와 요코는 그것을 '우연한 축복'이라 부른다.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벼랑 끝에 다다랐다고 느낄 때에 얻게 되는 구원의 손길. 그렇기 때문에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고통과 외로움을 견디고 살아나가나보다.
마치 동화를 읽는 것 같았던 이번 작품,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순간이지만 마치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 같은 느낌의 문장들, 비록 번역본이지만 작가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