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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시간여행]욕망이 빚은 인간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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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위 파문에서 르네 마그리트를 만나다.     기자가 <그림 속 시간여행>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림을 통해 당대의 시간, 정신, 사건과 일상을 들여다보고자 함이었다. 즉 그 그림 속에 녹아있거나 숨겨져 있는 시대상과 역사를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림(또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영감을 깨닫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소망은 버지니아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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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학위 파문에서 르네 마그리트를 만나다.

 


 

기자가 <그림 속 시간여행>을 연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그림을 통해 당대의 시간, 정신, 사건과 일상을 들여다보고자 함이었다. 즉 그 그림 속에 녹아있거나 숨겨져 있는 시대상과 역사를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그림(또는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현재적 영감을 깨닫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이런 나의 소망은 버지니아텍의 참극에서 뭉크의 <절규>를 들은 이후로 깨어지고 말았다. 거꾸로 현재의 충격적인 사건에서 지나간 시대의 불안과 공포를 발견한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신정아의 가짜학위 파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터져 나온 이창하와 김옥랑 교수의 가짜학위 논란은 참담한 심정으로 기자를 르네 마그리트와 마주하게 만든다. 현실은 보이는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폭로한 초현실주의자들의 날카로운 지적이 오히려 무색하게, 이 시대의 초현실은 부끄러운 바로 그 현실이다. 아무리 부조리한 숙명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이라지만 어떤 것이 참이고 진실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초현실주의자들의 광기와 낯설게 하기가 오히려 늘 일어나고 벌어지는 친숙한 현실이 된 시대를 살아야하는 우리들은 참으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일상을 통해 익숙한 모습들을 불합리한 맥락 속에 불안정하게 배치한 마그리트의 화면은 논리를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공해준다. 그런데 그 비이성적으로 왜곡된 마그리트의 화면이 이제는 낯설지 않으니, 이 얼마나 불행한 우리의 현실이고 삶인가.

 

 


 

중절모를 쓴 신사가 빗방울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골콘드>나 달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하늘에 뚫린 구멍인 <빈 페이지>, 인간의 눈 속에 하늘이 있고 홍채는 일식 중인 태양처럼 그려진 <가짜 거울> 등은 바로 이런 부조리한 현실에 신음하는 인간에 대한 은유이다. 그 고통스런 삶이 정신의 영역이 아니라 실제의 일상으로 곁에 있을 때, 우리는 참으로 견디기 어렵다.

 



<위험한 접촉>쯤으로 해석되는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기자는 신정아를 보고 김옥랑을 본다. 여자가 들고 있는 거울은 어찌된 일인지 여자의 뒷모습을 비추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뷰파인더도 아닌 거울이 대상으로부터 돌려져 있음에도 뒤에 있는 사물을 비추고 당연히 비쳐야할 여자의 앞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가짜 인생 가짜의 내면이 마그리트의 붓으로 생생하게 드러난다.

 

신정아는 그 가짜의 이력과 거짓을 구분할 줄 모르는 몰이성의 착각 속에서 거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이 시대의 각광받는 예술계의 총아가 되고 싶었을 것이다. 김옥랑도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한 바탕 봄꿈 속에서 자신들의 가짜 성취에 도취되었음이 분명하다. 거짓과 착각이 개인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이 사회라는 공공의 광장으로 나올 때, 그것은 범죄이며 인륜을 부정하는 파렴치한 행위다. <(여자)거인>은 바로 그들의 모습이다.

 


<검은 마술>이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 붙어 있는 그림에서 여인의 상체는 하늘에 물들어 있다. 아름다운 여인의 누드가 <유혹자> 등에서 보이는 기법으로 하늘과 동화되어 있는 것은 현실을 초월한 꿈이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음심을 버리고 순순한 심미안으로 누드를 보는 것이 바로 블랙 매직인 것은 아닌지. 그러나 심미안을 잃은 누드는 곧 <악의 꽃>이라고 마그리트는 말하는 듯하다.

 



예술을 가르치고 미학을 논하던 그들은 정작 꼭 있어야 할 심미안이 없었다. 순순한 내면과 진정을 그들은 가지지 못했다. 출세에의 욕망은 거짓과 위선, 현실과 비현실의 이성적 판단을 애초부터 불가능하게 만들고 말았다. <인간의 조건>에서처럼 언제나 우리의 삶은 현실과 그것을 초월한 무의식의 경계에 놓여 있다.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현실의 창가와 비현실의 아젤 위를 혼동하고 말았다.

 

그들의 꿈, 아니 그들의 정신병적 혼몽의 삶은 깨어졌다. <들판으로 나가는 키>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 그림에서처럼 이제 그들이 살아온 그 간의 삶은, 시간은 깨진 유리창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기자가 생각하기에 저 깨진 유리조각을 다시 맞추기가 쉽지 않듯, 가짜의 인생을 산 그들의 삶 역시 다시 맞추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불가능한 시도>를 깨닫게 된 이창하의 심정이 지금 저 그림 속의 화가 같지 않을까.

 


화가이자 시인인 최영미의 책을 통해 <빛의 제국>을 처음 기자가 보았을 때, 그녀의 해석처럼 마그리트의 ‘유쾌한 농담’을 눈치 챌 수 있었다. 또한 환한 대낮에 컴컴한 나무 그늘과 저택을 보면서, 다행히도 그 집 앞에 켜진 전등과 조명을 보았을 때, 우리의 암담한 현실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보았었다.

 


그러나 오늘 가짜 인생, 속인 이력, 거짓으로 꿈을 꾼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면서는 다시 빛의 제국을 보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여전히 그림 속의 숲처럼 환한 하늘 빛 아래에서도 음습하고 어두운 그것인 모양이다. 거짓된 인생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만의 인공조명으로 자신들을 밝히고 비추며 우리의 선함을 조롱하고 있다.

 

능력과 실력보다는 학력, 출신, 인맥이 세상의 기준으로 기능하는 가짜의 사회, 사용가치(진짜가치)는 무시되고 단순한 교환가치(가짜가치)에 의해 좌우되는 허울과 허상뿐인 우리의 정신과 제도, 신정아를 욕하고 김옥랑과 이창하를 비난하면서도 명문대도 모자라 명문학원 명강사를 찾아다니고 있는 이율배반의 우리들 그리고 우리의 현실. 르네 마그리트는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그렇다. 그것은 사과의, 파이프의 이미지일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것이 사과이고 파이프인 것을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두 개의 미스터리> 속의 파이프처럼 대상으로서의 파이프가 그것을 그린 파이프보다 뒤에 있는 그 미스터리를 여전히 깨닫지 못한 채, 제 삶이 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욕망의 노예인 것을 모르면서 그저 탐하며 인생을 허비할 것이 틀림이 없다.

 


 

e******1 2008.1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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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족(The Large family)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대가족(The Large family)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내용보기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한 공업도시에서 태어납니다. 재봉사이자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합니다.   미술가에 관해 말하자면,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자유를 아주 간단히 포기하고 자신의 미술로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게 봉사한다. - 중략 - 그리고 내가 이들 화가조합
"대가족(The Large family)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내용보기

 

르네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의 한 공업도시에서 태어납니다. 재봉사이자 상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수입이 변변치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그가 14살이 되던 해에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합니다.

 

미술가에 관해 말하자면,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자유를 아주 간단히 포기하고 자신의 미술로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게 봉사한다. - 중략 - 그리고 내가 이들 화가조합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느꼈다. 내 판단 기준은 내가 어렸을 때 접했던 예술에 깃든 마술이었다.

 

당시 벨기에는 정치 사상적으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가톨릭교도가 중심을 이루는 북쪽 지역과 특정 종교를 갖지 않는 남쪽 지역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세계 제 1차대전이 서막을 올리던 시대였기도 하죠. 이런 배경을 고려해 보면, 그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적 화풍을 따라 가게 된 것이 이해됩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언제 처음 보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주목을 하게 해준 작품은 분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으니 그것은 '대가족' 입니다.

 

 

 

비둘기의 몸이 구름으로 변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괴상한 구름이 새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 시적인 힘을 가진 대가족은 신성한 힘들의 융합, 구름과 새의 융합을 언급한다.

 

검은 구름의 배경과 맑은 하늘과 흰구름의 비둘기가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그림을 처음 대면 했을 때 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무언가 암울한 세상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고 날아가는 비둘기에게서는 그 어떤 신성한 힘이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예전, 강원도 산골에 있었을 때, 엄청난 폭우가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이며, 곤충들, 모두 비바람에 어디론가 몸을 숨기고 있는 듯했습니다. 처마 밑에서 산 저편을 바라보던 저는 빗줄기를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하얀 새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마치 바다 위의 수평선을 장대비 속에서 그려 나가는 듯 보였습니다. 실제로는 짧았을 그 순간이 슬로우 비디오 처럼 기억에 남았고, 그 기억이 르네의 그림과 만나 다시 되살아 났습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만큼 '대가족(The Large Family)에 대해 더 정보를 찾아보고 싶었지만, 관련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몇몇 학술지에 정보가 있는듯했으나 모두 유료..)

그러던 중 다음과 같은 문구를 찾았습니다.

 

Other times, Magritte confused the foreground (the things at the front of the painting) with the background, like in Blank Signature, The Large Family, and The Seducer.

(출처:www.artsmart4kids.com)

다른 한편, 마그리트는 전경을 배경과 혼동하여 사용하기도 했다....

 

사전적 설명에 따르면, 경계선을 접하는 두 영역이 있는 한 장면에서 지각의 대상이 되는 부분이 전경(Foreground)이고 그 외의 나머지 부분이 배경(Background)라고 합니다. 이는 전체는 단순한 부분의 합이 아니라, 부분의 합을 초월하는 것이 있다는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나온 용어라고 합니다.

(※게슈탈트 심리학 혹은 형태심리학 :심리학의 전통에서 주류파였던 연합주의(聯合主義)의 요소관(要素觀)에 대립하여 심리학의 전체관(全體觀) ·형태성(形態性)을 중시하는 입장의 심리학설)

전경과 배경의 좋은 예는 얼굴로도 보이기도 하고, 찻잔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림입니다. 누구나 이 재미있는 그림을 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하얀 색과 검은 색 중 어느 것을 전경으로 보고 어느 것을 배경으로 보느냐에 따라, 실제로 뇌가 느끼는 것에 차이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것은 심리 현상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느낄 때, 흔히 그 사람만 보여 라고 말하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한 심리가 앞에 떠오르고, 그 순간 다른 모든 심리는 배경 처럼 가라 앉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가족'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렇습니다.

 

하늘에 새가 있으나 그 새가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새가 아니라 역시 하늘이니까. 부재하는 것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하나의 사물이 두 개의 사물로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과연 그것 뿐일까요? 다음과 같은 르네 마그리트의 말을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실제로 테이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의 제목이 왜 대가족일까 의문을 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르네 마그리트는 사유를 그리는 작가라고 이야기 하면서도, 정작 그림에서는 르네 마그리트의 사유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실제하는 이미지 자체를 찾으려 하는 듯보였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아마도 마그리트가 그린 것은 대가족에 대한 그의 사유라고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배경으로 그려진 암울한 하늘은 그가 겪은 가난한 어린시절, 어머니의 죽음과 같은 가족에 대한 좋지 못한 추억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족에 대한 염원과 욕구는 자연스럽게 전경이 되어 비둘기의 모습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림 속의 비둘기는 다시 배경이 되어 버립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 따르면 건강한 개체는 전경이 다시 배경이 됨으로써 그 욕망이 해결된다고 합니다. 1967년에 생을 마감한 르네 마그리트는 1963년 '대가족'을 완성합니다. 어린 시절의 암울한 기억, 청년기의 정치적 혼란, 그리고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혼란기를 지나 말년에 그는 따뜻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해소되었던 것일까요? 그의 말년이 정말 행복했을 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림 속에는 가족에 대한 르네 마그리트의 비밀스런 소망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외에도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매력적인 그림들이 많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유를 그리려고 했다거나, 다른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에서 보이는 현실 부정 또는 왜곡, 파괴적인 이미지가 나타나지 않아서 좋기도 합니다. 그의 그림중에는 위에서 보는 것 처럼 최근에도 광고의 모티브가 된 것이 있는 가 하면, 아래에서 보는 것 처럼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착안될 만큼 창조적이고 매력적입니다.

 

몇 년 전 르네 마그리트의 전시회가 열렸었던 기사를 보았습니다. 언젠가 될까요?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들을 보게 될 날이 곧 다가오길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해봅니다.

(※ 피레네의 성, 천공의 성 라퓨타,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아바타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함)



t********n 2012.10.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