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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자세히 읽을 필요가 있는듯 하다. 소설처럼 막 읽다 정신을 차려보면 지금 까지 무슨 내용이였는지 이해도 안되지만 모를 뿐더러, 이책은 주인공도 많고 한국인처럼 이름이 000(세글자)가 아니라서 더 헷갈릴수 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책을 읽는 도중 잠시 책을 덮고 진지하게 사람들은 책을 왜 읽을가?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식을 쌓기 위해? 지식은 학교에서도 쌓는다. 12년 동안 쌓은게 지식이 아니면 무엇일까? 마음의 양식을 기른다? 무슨 소리지? 국어능력을 기르기 위해? 그럼 책을 읽는 대신 국어학원을 다니면 될것 아닌가. 하지만 난 이 책을 다읽고서야 그답을 알게 되었다.
감동을 받기 위해 또는 내 안의 가슴을 울리기 위해... 책을 읽는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담담하고도 울림있는 이야기 "그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 처음에 가장 궁금했던것 왜 이책의 제목은 이렇게 지어놓았을까? 그 소년이 열네살인게 어때서. 여기서 나오는 그소년은 제이콥 스톨츠라는 아이이다. 이책은 인물 사이의 관계도가 매우 독특하다. 인물은 딱 3가족뿐이며 구성원이 많을 뿐이다. 일단 주인공네 가족은 엄마,아빠, 캐티 이렇게 셋이지만 동생도 태어난다. 그리고 비숍씨네 가족, 비숍씨의 둘째 아들인 오스틴은 캐티와 친구이며 나중엔 연인사이가 된다. 오스틴의 형 폴, 나는 폴이 가장 싫다. 이글을 읽다보면 알게 될것 이지만 정말 별로이다. 그리고 넬이 큰언니, 페기가 둘째 언니 제이콥 스톨츠가 셋째로 이루어진 가족. 넬은 비숍씨네 가정부 였으며 페기는 주인공네 가정부이다.
캐티는 아버지와 시내를 돌아다니다. 제이콥이란 아이를 만납니다. 제이콥이 14살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안다니는 것이 궁금하지만 곧 이아이가 남과 다르다는 걸 압니다. 상대방의 말이 안들리는지 듣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사물의 울음소리를 따라하는 아이입니다. 동물을 좋아하고 사랑하며 보살필줄 아는 멋진 아이이지요. 사건은 이렇게 터집니다. 오스틴의 형 폴이 가정부 넬과 사랑에 빠져서 아기를 갖게 되었는데 폴은 넬을 외면하였습니다. 넬은 울면서 집으로 떠났고 아기는 정상으로 태어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이콥은 이 아이를 살리기 위해 얼마전에 아기를 낳은 캐티의 엄마의 곁에 놓으면 아기가 살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6km가 넘는 걸이를 뛰어 캐티의 동생 옆에 아기를 놓았습니다. 하지만 아침이 되어서 아기는 말라 죽었으며 어른들은 제이콥이 죽인거라며 법원에 갑니다. 그렇게 제이콥은 정신병원에 갇히게 되는데 내용이 너무나 슬픈것 같습니다. 제가 쓴 글은 감동의 100/1도 안되는 듯 싶습니다 내가 이렇게 글을 써 내용을 다 알게된 후에 책을 읽으면 이해는 빠를것이나 감동은 나보다는 줄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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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되었을 때, 이 책의 작가가 구니버드를 탄생시킨 작가라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구니버드는 구김살없고, 다소 엉뚱하지만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말괄량이 삐삐같은 그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너무나 잔잔하고, 섬세해서 만약에 작가 약력을 보지 않았다면 구니버드를 쓴 작가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낡은 바랜 사진을 마주 하고 할머니 '캐티'의 회상속으로 들어간다. 캐티 할머니의 주위에 앉아 앨범을 들춰가며 마치 할머니의 회고록을 듣는 듯한 분위기. 아니면 먼지 가득한 다락방. 우연히 발견하게 된 캐티할머니의 낡은 일기장을 펼쳐보는 듯한 기분도 든다. 캐티 할머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소년, 열네 살의 표지속의 소년이 나도 궁금하다. 할머니가 써 내려갈 이야기인 제이콥 스톨츠에 관한 이야기는 더더욱 궁금증이 증폭된다. 할머니의 인생을 바꿔 놓은 소년과의 만남은 어떤 것이며, 무슨 사건으로 인한 것일까? 아니면 그 소년과의 만남 자체만으로도 인생의 전환점이 생긴 것인지... 그 소년은 누구인지? 뭉게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할머니의 얘기에 푹 빠진 나를 본다. 아버지는 마을의 유일한 의사선생님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캐티는 어느날, 아버지를 따라 집안 일을 도와 줄 페기 스톨츠를 데리러 간다. 황량하고 가난한 페기는 어느 것 하나 자신의 선택이 없다. 그 옛날 우리의 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학교를 떠나 가정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을 어쩔수 없이 하게 된다. 떠나기 전, 창문 안에 있는 소년을 보게 된다. 제이콥이다. "제이콥은 정상이 아니거든." 머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하는 말 같았다. 자기만의 세계속에 갇혀있는 아이. 우리는 그런 아이를 비정상이라고 하고...'자폐아'라고 부른다. 그런 제이콥을 캐티는 이해한다. 제이콥같은 아이를 본다면 이상한 말과 행동에 피하게 되게 마련인데...둘의 순수함은 서로 통한다.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하고, 모자를 벗지 않는 이 이상한 소년이 사랑이 넘치는 소년이라는 것을 안다. 캐티는 자신의 집에 와 말들과 함께 있는 제이콥을 보면서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동물들과 특별한 언어로 통하는 소년. 너무나 많은 새끼고양이가 태어나면 제이콥은 고양이를 익사시킨다. 그것이 고통을 주지 않는 가장 친절한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어미가 거부한 새끼양을 다른 어미에게 돌보게 하기도 하고, 갓 태어난 강아지가 어미를 잃고 형제들을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제이콥이 헛간에 숨겨 두고 천에 소젓을 적셔서 녀석이 빨아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동물을 잘 돌보는 소년을 정상인 사람들은 이상하게 보고 오해하게 된다. 아니 잘못된 일에 대해 그 잘못을 떠넘기려고 한다. 제분소에 불이 났을 때도 사람들은 제이콥에게 죄를 뒤집어씌웠고, 자기 누이가 어리고 작은 생명을 나았을 때도, 제이콥은 그 생명을 캐티의 엄마에게 데리고 와서 살리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 양을 살려냈던 것처럼.... 하지만 제이콥은 마을 끝에 있는 어사일럼에 구금되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후, 시간은 흘렀고 50년 가까이 지난 후 어사일럼은 문을 닫았다. 남아 있는 환자들은 약물로 완화되어 가족들에게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제이콥의 이름은 없었고.. 기록도 없었다. 제이콥은 어떻게 된 것일까? 동물을 사랑했지만... 그것은 자기만의 방식이였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했고, 용서받지 못했던 그 소년은 어떻게 된 것일까? 자기 자신을 항변조차 못했던 이 여린 소년의 모습을 책장을 덮으며 다시금 마주 대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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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남기고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자 많은 사람들은 사진을 찍을것이다. 빛바랜 사진과 어우러져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고하고 있는 캐티이야기는 어린시절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한 소년과의 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장을 덮을때까지 실화가 아닐까 착각하게 만든 빛바랜 사진들이 책의 묘미를 한껏 올려주며 읽는중반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던 마을 사람들의 일상은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 밤의 반전속에 다 연관이 되어 마음아픈 결말을 끌어내고 있었다.
80을 훌쩍 넘긴 의사쌤 할머니 그 할머니가 회상하는 어린시절은 아름답고도 슬픈이야기였다. 77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910년 9월 전화선이 개설되고 자동차가 처음등장하는 20c초 농장과 제분소가 마음의 중추역활을 담당했던 시골마을에 살고있는 8살 어린소녀 캐티는 순수하면서도 어린아이답지 않는 깊은 통찰력과 따스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의사 아빠로 인해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케티는 가진자와 못가진자의 사회적 분리를 이미 알고 있는 소녀였다. 그런 캐티에 반해 스톨츠농장의 스톨츠씨네 아이들은 남의집 더부살이를 할만큼 가난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날 시름시름 아파 침대에 누워계시기만 한 엄마가 새생명을 가지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알게되며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돌봐줄 페기를 데리러 농장을 방문한날 제이콤과의 만남도 시작된다
20c초만해도 자폐증이란 병명조차 상식조차 사람들에겐 매우 낮설기만했는데 그병은이상한 아이 모자란 아이 취급을 받아야만 했던 제이콥이 앓고 있던 병이기도 했다 서로간에 한마디 말도 나누지는 못했지만 순수하지만 마음을 읽을줄 알았던 캐티와 동물을 사랑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랑을 할줄 알았던 제이콥과의 특별한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고 조용하리만치 한적한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느긋하게 만나게 된다.
옆집에 살고 있는 친구 오스틴 그의 형 폴 그리고 가정부이자 페기의 언니였던 넬 과 함께하는 페기와 캐티의 일상에서 캐티만의 또하나의 소중한 인연은 제이콥으로 순수하고 여린 감정을 지닌 둘의 만남이 지속되며 케티는 제이콥에 대해 많은것들을 알아가게된다. 생명을 존중받지못하고 어미로부터 버려진 어린고양이의 고통을 덜어주기위해 익사시키고 어린양을 살리기 위해 다른 엄마를 만들어주고 죽어가는 강아지를 살리기위해 감동어린 정성을 보이는 그 모든것들에 진심어린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느끼게된것이다.
하지만 그 진심이 인간세계에서는 통할수가 없었나보다. 그 운명의 사건이 일어났던밤 축복받지못한 새생명을 살리고 싶었던 제이콥의 진심은 침묵속에 묻혀버리고 그렇게 어사일럼으로 떠난 그의 흔적은 그후 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당시 맑고 순수한 제이콤의 심성을 이해하지 못했던 사람들은 100년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들이 온몸으로 전하는 언어에 침묵으로 답하고 있는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제이콤 그를 제외한 모든사람들의 삶은 여전히 진행중인데 그만이 14살에 머물러 있는것은 아닐까 상상하게되는 안타까운 마음은 지금이라도 소외된 인생을 돌아보고 살펴보자 마음을 가다듬어 보게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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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란 히 지나가버린 사진 속 인물로만 상상해서 이야기를 구상하여 만들었다니 작가의 무궁무진한 상상력에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꼭 실제 이야기에 꼭 맞는 인물들이 정말로 존재했을 것만 같은 사진들과 그와 연관된 사실적일 것만 같은 이야기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통상 요즘 말로 자폐아라 불릴 수 있는 제이콥에게 마음을 열고 따스하게 그 아이의 장점만을 바라보는 주인공 소녀 메리와 그의 아빠는 정말 멋진 사람들이다. 동물을 사랑하고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제이콥이 누나의 잘못된 사랑의 결과물로 인해 정신지체아들의 수용소인 어사일럼에 갇히게 되는 그의 불행은 믿고 싶어지지 않는다. 한창때의 아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사랑의 불꽃이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은 폴 비솝의 가정 형편과 어울리지 않는 넬의 가정부 경력이 아니었을지.. 끝내 두 선남선녀 서로가 불행의 결과로 들려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 지도 모를 복선들에 의해 이미 짐작되어졌을 것만 같지만 또 다른 아픔으로 남는다.
책을 덮고 나서도 제이콥만 눈에 아른거린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점점 감성적으로 변해가고 있는 내 마음의 문을 자극하기 때문일지, 마음을 진정하기 어렵다. 동물을 사랑하는 나의 본성과 직결된 감정의 전이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제이콥이 기르던 개가 열일곱 살을 살 동안 문이 열릴 때마다 잃어버린 누군가가 돌아 올 것처럼 머리를 들고 기다렸다는 그 대목이 어느새 내 눈가를 젖게 만든다. 열네 살 제이콥이 어사일럼에 구금 된 이후 50년이 지나 문을 닫았을 때 그의 이름은 볼 수 없었다고 하는데 메리는 왜 좀 더 빨리 제이콥의 기록을 찾아보지 않았을지 메리에게 하소연 하고만 싶어진다. 픽션 이야기라지만 꼭 누군가의 실제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소설 같지 않은 소설 이야기책이다. 다른 이들은 메리와 같은 마음으로 제이콥을 바라 볼 수는 없었는지, 그의 착하고 여린 심정을 왜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 있는 또 다른 제이콥에게도 마음 문을 열고 바라보고 싶다. 꼭 다른 제이콥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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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쓴 작가가 <최고의 이야기꾼 구니 버드>와<우화 작가가 된 구니 버드>를 쓴 로이스 로리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먼저 구니버드를 통해 작가와 만났던 나는, 로이스 로리에 대해 경쾌하고 즐거운 인상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는 작가에 대해 내가 가졌던 그러한 생각을 완전히 깨트렸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로이스 로리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 작품은 현재는 할머니인 캐티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여섯 살 때인 1908년 9월에서 1911년 10월, 여덟 살 생일날 일어난 일까지이다. 어린 캐티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아주 단순하다. 그렇지만 캐티는 일상을 깨는 사건의 정곡을 놓치지 않는다. 캐티는 정적이면서도 아주 적극적이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의사의 꿈을 키우는, 그 시대를 고려해볼 때 진보적인 여자아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흔히 우리가 ‘정신지체아’라고 부르는 사람에 대한, 캐티의 태도이다. 캐티는 정신지체아인 제이콥을 대하는 아버지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아버지는 일반사람들이 흔히 가지는 편견 없이 제이콥을 대한다. 아버지는 캐티에게 제이콥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다가가는 방법도, 그 옆에서 안전하게 있는 방법도 다 알’고 있다고 했다. 캐티는 아버지의 말을 쉽게 이해했고, 제이콥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알게 된다. 제이콥이 말을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지만, 캐티는 제이콥이 내는 소리의 의미를 이해했고, 제이콥을 대등한 인간으로 대했다. 캐티가 제이콥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문득 장애인에 대한 우리사회의 엄청난 편견이 떠올랐다. 그러자 인간이 인간에게 어떻게 대해야하는가를, 어린 여자아이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수한 마음은 모든 사람의 가슴을 열게 하듯이, 제이콥도 캐티를 서서히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이콥은 캐티에게 아기 고양이를 선물했던 것이다. 그런데 한없이 평화롭게만 흘러가던 일상이 한순간 뒤틀리고 파국으로 치닫는 사건이 생긴다. 그것도 캐티의 여덟 살 생일날 밤에……. 이 소설은 한 여자아이의 성장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을 통해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캐티의 모습과, 그 당시의 시대상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작가는 소설 속의 배경인 1900년대 초기의 모습을 아주 사실적으로 재현해놓아 그 당시 삶을 맛볼 수 있는 재미도 더해주고 있다. 그 시절에도 물론 빈부의 격차는 존재했다. 그렇지만 작품 속에 나타난 모습은 지금만큼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이 아닌 것 같다. 같은 인간으로서 따스한 교류를 하고, 서로에 대해 최소한의 배려를 하는 사이로 보였다. 물론 넬과 폴의 문제는 비극을 초래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옛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영감만으로 썼다고 했다. 정말 대단한 영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작품 속의 사건과 인물이 실제처럼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백여 년 전에도 사람은 살았고, 서로 싸우고, 사랑했다는 평범한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괜히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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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년은 열네 살이었다. 제목에서 마음이 아파왔다. 열네 살이라는 나이와 과거형의 마무리. 소년이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암시. 아마 그는 열네 살에서 멈추었나 보다, 했다. 표지에 보이는 저 키 크고 마른 소년의 흑백사진이 그 소년이었던 걸까? 이 책은 할머니가 된 어느 의사가 자신의 여덟아홉 살 적, 1910년에서 1911년 사이를 회상하며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전개해 가는 회고담이다. 그야말로 흑백 사진이 어울리는 시절이다. 여전히 무지와 몽매가 의도하지 않게 인간에 대한 편견을 낳던 시절. 그러나 사람들은 다정했고, 따뜻했던 시절.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지녔던 소녀 캐티는 일상의 사소한 그 무엇도 스쳐 지나가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의사 아버지를 두어 유복하게 자라는 동안 스톨츠네 가족은 딸들을 다른 집에 보내 가정부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캐티는 잘 알고 있었다. 삶이 늘 공평하지만은 않다는 걸 어린 캐티는 알았다. 캐티는 자기 집에 살러 온 페기 스톨츠를 좋아했고, 페기의 남동생인 제이콥도 좋아했다. 캐티는 정신지체를 지닌 제이콥을 친구로 삼았다. 한 번도 제이콥이 캐티를 바라보거나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가 얼마나 다정다감한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캐티 자신이 그런 아이였기 때문이다.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 제이콥은 지나치게 많이 태어난 새끼 고양이를 괴롭지 않게 물에 빠뜨려 죽이는 일을 했다. 고양이를 사랑해서다.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고양이를 죽이는 일을 자기 손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제이콥은 그 일을 했다. 제이콥은 어미에게 외면당하는 어린 양을 다른 어미 양에게 갖다 주어 기어이 살려냈다. 다 죽게 된 강아지도 살려냈다. 그러나 자기가 누굴 살려냈노라, 어쩌고 말을 하지 않는다. 나는 제이콥이 말을 못한 것이 아니라 안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그는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는 정신지체아를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제 값대로 남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열네 살이었던 제이콥, 그는 여전히 열네 살이다. 참으로 잔잔히 흐르는 이야기. 하도 잔잔해서 마음을 느긋이 풀어놓으려 하면 지긋이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 <앵무새 죽이기>가 떠오른다. 그건 내게 최고의 찬사이다. 나도 가끔씩은 제이콥이 딸각거렸던, 고양이 눈을 닮은 구슬을 찾아보게 될 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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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소녀 캐티의 어린시절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