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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보 로망'(1950년대부터 프랑스에서 발표되기 시작 한 자유로운 시점에서 세계를 묘사하며, 실험적인 소설의 한 형태) 문체로 글을 쓰는 작가이자 현대프랑스 문학 교수이기도 했던 작가, 레몽 장의 [책 읽어주는 여자]는 영화로써 더 많이 알려진 이야기다.
어떠한 텍스트든, '책' 이라는 낱말은 나에겐 늘 설레임으로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책 읽어주는 여자]는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경험을 내게 주었다.
주인공 마리-콩스탕스는 문학을 공부했고 현재는 특별히 하는 일 없는 가정 주부이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그녀가 근사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니 뭔가 좀 더 가치있는 일을 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고 그 일이 '책 읽어주는 일' 로 구체화 되었다. 처음엔 반신반의 하던 주인공도 신문에 광고를 내게 되고 사람들의 반응에 의아해 한다. 그녀가 처음으로 만나게 될 사람은 반신불수 장애아로 이제 14살 생일을 맞이하게 되는 에릭이라는 남자아이다. 그 아이는 보들레르의 시를 읽을 정도로 문학에 대한 이해력이나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다. 하지만, 그 아이는 책 읽어주는 여자를 통해 자신의 性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기회로 삼고, 마리-콩스탕스도 그런 에릭의 의도를 눈치 채지만 오히려 옷자락을 허벅지 위로 걷어 올린 정도로 호응해준다. 언뜻 비상식적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작가는 여주인공의 그러한 행위에 대해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고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그녀는 책 읽어주는 일을 하면서 마르크스 사상에 빠져 있는 팔순이 넘는 백작 부인을 만나게 되고, 책 읽을 시간이 없이 바쁜 회사 사장을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그녀가 의도 했든, 아니든 그들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소 복잡한 일에도 말리게 되지만, 에릭을 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그러한 일들에 개의치 않는다. 더구나 회사 사장과는 잠자리까지 이어지게 될 거라는 예상도 하지만,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기회가 그 사장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까지 하는 여주인공이 나에겐 다소 기이했다. 회사 사장에겐 그녀의 목소리가 뼈까지 사무치는 목소리로 그녀와 같은 목소리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매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그녀에게 빠져있다. 책을 읽어주는 일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단체에 알려지게 되면서 그녀 스스로도 자신의 일이 어느덧 자리 잡아간다는 기쁨에 젖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받게 되는 편지로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된다.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은 지금은 은퇴한 판사로 자신이 그동안 감추고 품위를 위해 읽을 수 없었던 책을 그녀에게 내밀며 읽기를 부탁한다. 바로, 사드 백작의 '소돔의 120일' 이다. 그녀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뭔가에 홀린 기분으로 그 책을 읽어주고 앞으로도 계속 읽어나갈 거라는 생각까지 가지게 된다. 그녀가 말했 듯이, 자신이 텍스트를 선택한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텍스트들이 자신을 선택하고 있다는 기이한 모험을 한다고 느끼게까지 된다. 그렇지만, 판사집에 다시 가게 되던 날, 그녀가 익히 안면이 있는 남자 셋이 그녀의 탁월한 책 읽기 솜씨를 듣고자 파티를 하듯이 모인 것을 보고는 단호히 문을 닫고 나와 버리며 소설은 끝이난다.
뭐랄까? 다소 기이한 경험이었다. 책 읽어 준다는 발상 자체도 색다르지만, 등장인물에 대한 독자의 생각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작가의 표현법이 독특하다고 해야할까. '누보 로망'의 문체와 무관하지 않는 소설이라서 문체뿐만 아니라 내용도 내겐 다소 색다른 읽기 체험이었다. 특별하게 어렵다거나,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라서라기 보다는 글 전체 분위기에서 독특한 맛이 난다는 느낌이 아마 더 맞을 것 같다. 불쾌하지 않은 기이한 경험을 주는 책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빠지게 만드는 목소리에서는 어떤 소리가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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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주는 여자, 독서행위에 투영된 삶의 에피소드
한 여인(마리 콩스탕스)이 신문에 광고를 내면서 이 소설은 시작된다. “젊은 여성, 가정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단순한 소일거리 겸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마리 콩스탕스는 곧 바빠지기 시작한다. 영상매체과 녹음기의 발달로 인하여 전혀 먹힐 것 같지 않았던 이 광고를 보고 여러 사람들이 자신에게 책을 읽어주는 사람을 고용한 것이다.
첫 고객은 장애소년 에릭. 마리가 읽어주는 모파상의 괴기소설에 몰입하여 경련을 일으키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하지만 에릭은 점차 문학과 마리에 대한 성적인 호기심을 통해서 세상과의 단절을 해소하기 시작한다. 두 번째 고객은 장군의 미망인인 뒤메닐 부인. 헝가리 귀족 출신인 뒤메닐 부인은 마리에게 마르크스와 레닌의 책을 읽어주길 희망한다. 시력과 기력이 쇠한 그녀에게 세상의 변화는 피부로 다가오지 않으므로, 그녀는 파업과 적색혁명의 물결이 휘몰아치던 자신의 젊은 날을 돌이키며 기억 속에 은거한다. 마리의 손을 잡고 쇠약한 몸을 일으켜 노동절 행사에 참여하는 등 자본주의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뒤메닐 부인은 마리의 목소리를 통해 사라진 가치에 대한 믿음과 자신의 젊은 날을 재생시킨다.
미셸 도트랑도 특이한 고객이다. 사업에 바빠 책을 읽을 시간이 없는 그는 교양인들과의 대화에 끼기 위해서 문학책을 읽어달라는 주문을 한다. 그렇지만 평생을 손익계산서와 대차대조표에 익숙한 그는 책을 한 페이지 이상 듣지 못한다. 다만 관심 있는 것은 마리의 육체뿐. 마리는 그와 같이 자기도 하지만, 그들은 활자를 이용한 소통에 실패하고 만다. 꼬마 고객인 클로렝드는 바쁜 어머니를 대신하여 책 읽어줄 사람을 구했지만 정작 관심 있는 것은 자신을 외롭게 방치하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놀아줄 대상이다. 마리는 클로렝드의 외로움을 달래주고자 책을 읽다말고 놀이공원에 같이 놀러갔다가 클로랭드의 어머니에게 납치범으로 몰리는 곤욕을 치루기도 한다. 마리의 책 읽어주는 행위는 납치소동을 계기로 그녀는 감시하기 시작한 형사와 그녀를 범법자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야한 소설을 읽게 만드는 판사, 그리고 그것을 ‘입증’할 교수의 개입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짧은 소설은 ‘책 읽어주는 여자’인 마리 콩스탄스가 책을 읽어주면서 겪는 에피소드의 나열이다. 레몽 장은 특유의 풍자와 은유를 통해서 이 에피소드 속에 독서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되묻는다. 에릭에게 마리와의 랑데부(만남)는 성숙을 위한 관문과도 같은 것이며, 뒤메닐 부인에게는 힘이 되는 슬픔을 통한 삶의 의미 창출이 아닐까. 클로랭드와의 랑데부는 외로움을 이기려는 몸부림으로, 미셀 도트랑과의 섹스는 물화되어가는 현실에 대한 비꼼으로 다가온다. 형사와 판사의 개입은 독서마저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작동되게 하려는 권력에 대한 풍자이다. 읽어주는 행위의 의미를 ‘소통의 한 방법’으로 이해한다면 타인과의 온전한소통을 틀어막는 것들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쉽게 깨달을 수 있으리라.
레몽 장은 경쾌한 터치로 에피소드를 나열하면서 “당신에게 읽는다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에 관하여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제도권에서 권하는 ‘착한 독서’를 통해 시험점수만을 얻은 후에 사회에 나와서는 감수성을 죽여 버리지는 않았는가. 책장을 넘기며 낯선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욕망의 작동으로 생의 이면을 바라본 적이 있는가. 혹은 외롭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싶은 욕망으로 타인에게 눈을 돌린 적이 있는가. 그리고 그 ‘소통의 도구’들, 즉 책은 당신의 주변 어디에 놓여 있는가.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소통의 수단이며, 타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책)들이, 단순한 진열품이나 받침대로 사용되지는 않는가. |
| 목소리가 매력적이라고 평을 받는 한 여자가 일간지에 책을 읽어주겠다는 광고를 내면서 겪게 되는 예기치 못한 일련의 일을 그리고 있다. 전반적인 내용이 잔잔하면서도 뭔지 모를 매력이 가득 들어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건 내가 그동안 느끼지 못한 사실들을 저자는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타인에게 읽어주는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하거나 집중하지 못할 때가 더 많다는 것 등등. 그리고 이 책에서 특이할 만한 점은 인용부호가 전혀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책을 자세히 읽어가야 누가 어떤 말을 하는지를 알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점도 특이하다. 게다가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품들을 보아하니 저자 자신이 얼마나 많은 광범위한 독서를 했는지도 느끼게 된다. 역자는 은사를 한국에 초대하는 일과 관련되면서 은사의 책이 한권도 번역되지 않았음을 알고 번역을 시도 했으며 1988년 번역한 작품을 1990년에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최근에 다시 손을 보아 간행했다고 역자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불문과 교수이면서 현재 명예교수로 있는 역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은 좋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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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직업이 없는 결혼은 했고 아이는 없는 평범한 마리 콩스탕스가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된 책 읽어주기.. 광고를 하기 위해 간 곳에서 -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 - 광고 문구자체도 신기하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마리 자신도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공작부인이나 황후나 애기 상대 귀부인들의 시대라고 집으로 찾아가서 책읽어주는 여자가 필요할까.. 라는 의문으로 시작하게 된 일 하지만 이 광고를 보고 다섯명의 의뢰인을 만나게 됩니다.
반신불수인데다 컴플렉스를 가진 14살 에릭, 자신의 백작부인이라는 장군의 미망인. 일 중독자 사장님. 집지키는 여섯살 소녀 코라리. 마지막 멋지고 이상한 은퇴한 노판사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이상하게도 마리는 책만 읽어주는데 다른 이유로 자꾸 일이 틀어지기 시작합니다.
에릭에게 모파상의 "머리카락"을 읽어주는 일을 시작하는데 그만 에릭이 경련을 일으켜서 입원하게 되고 장군의 미망인에게는 "쟁과 평화" 읽어주는데. 그만.. 미망인이 데모하는 시위대에 합류하면서 경찰서에 불려가기도 하고 사장님에게는 "연인"을 읽어주다가 진짜 연인이 되기도 하고 6살짜리 소녀에게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를 읽어주다가 잠시 나가서 놀다보니.. 아이가 집에있는 엄마 보석을 전부 가지고 나와서 유괴범으로 몰리고 은퇴한 노판사에서는 "소돔의 120일"이라는 아주 에로틱한 책 읽기를 시도하기도 합니다.
오디오북에도 익숙치 않는 저에게는 책읽기를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서 듣는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목소리가 끼어들면 그때부터 책은 독자에게 더 의미심장한 실체가 되고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는 다이엘 페낙처럼 특별한 느낌을 받을수 있을꺼 같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으신 분이나 노인병원이 어르신들 생각해보니깐.. 마리 처럼 책 읽어주는 서비스가 꼭 필요한것도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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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근사했다. 김화영의 글을 읽던 중에 만난 책이었는데, 제목만으로도 다른 책을 능가할 만큼 내게는 인상적이었다. 얼마나 많은 것을 상상해 보게 해 주던지. 내용이 어떤지도 모르면서 그저 책 제목처럼 살아도 좋겠구나 싶었으니.(막상 읽으면서는 그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럴 수 있겠다. 내게는 별 것 아닌 것이 누군가에게는 별 것이 될 수도 있는 것. 언어 표현의 애매성 때문에 이해하는 입장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이런 차이는 당하는 입장에서는 난감해지겠다. 본인의 의도와는 달라진다는 것, 난감하고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젊은 여자가 책을 읽어 줄 테니 연락을 바란다는 광고 문구. 100% 문맥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세상. 프랑스에서든 우리나라에서든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 글자 안팎으로 읽게 되는 의미가 문화이며 인간관계의 본질이라고 하면 어쩔 도리가 없을 테니까.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어 볼까 잠시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버려야겠다.
화자는 담담하다. 참 신기할 정도로. 일반적으로 갖게 마련인 정열 같은 것을 내보이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담담하게 잘 해낸다. 그게 매력으로 느껴진 것일까, 이 책으로 만들어졌다는 영화를 보고 싶어 검색까지 해 보았으니까. 영화에서는 배우가 어떤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며 어떤 말투로 책을 읽어줄지 궁금해졌다. 목소리가 아주 예쁘다고 했는데, 예쁜 목소리로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떤 느낌이 들까.
천천히 읽었다. 화자 외의 인물들에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했는데, 오히려 거부감이 들 정도로 불편한 사람도 있었는데, 책을 읽어준다는 목적으로 기꺼이 응하는 화자를 보고 있으니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겠구나,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려면 그 정도의 각오나 인내심은 갖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상쾌하지는 않고, 약간 끈적함도 남고, 그러면서도 호감은 유지된 소설. 작가의 제자이면서 번역가인 김화영 교수에 대한 나의 신뢰감 덕분이라고 메모해 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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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행위와 연상되는 이미지 : 에로틱 vs 사치 그들은 단순히 '책 읽어주는 행위'가 아닌 그들에게 부족한 무언가를 그녀가 채워주기를 원했다. 그녀는 '또 다른 행위'로 그들의 욕망을 채워주고자 한다. 그러나 '또 다른 행위'는 '책 읽어주는 여자'가 지녀야 할 직업 윤리에 어긋나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직업 윤리는 그녀가 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정해놓은 것이다.) 순조롭게 자신의 역할을 해오던 그녀는 결국 판사의 욕망은 채워주지 못한채 뛰쳐 나간다.
2008/07/28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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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 혹은 책 읽기에 대한, 또는 목소리가 주는 책의 이해 높이기에 대해 전혀 생각해 본 바가 없었다. 이 책을 읽기전엔 무엇보다 이 책을 프랑스 영화로 먼저 알고 있었는데 좀 묘하거나 프랑스 특유의 허망한(?) 마무리, 미국 영화에 너무 익숙해져 의문부호를 달게하는 엔딩 크레딧에 언제나 조금쯤 응?! 하게 되는 프랑스 책 다운 마무리였기도 했다 . 게다가 달콤하거나 정서적인 텍스트를 다뤘다기보다는 호기심, 감각적인 주제들로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구조가 어떻게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였기도했고, 이 < 책 읽어주는 여자 > : 마리 - 콩스탕스'의 목소리와 외면적인 모습이 되바라졌다거나 유혹적인 것과는 다르지만 어쩌면 그 부분이 더 매혹적일 수도 있었지 않았나 싶기도하다. 목소리와 책의 텍스트만으론 감정을 이끄는데 한계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소년 에릭 ( 신체장애자로 휠체어를 타고 있다) , 백작부인이며 장군 미망인인 부유한 노부인 , 성공한 사업가이지만 이혼한 아픔으로 일에 파 묻혀살고 있는 남자 , 일에 바쁜 엄마를 둔 어린 딸, 마지막으로 왠지 변태스러운(?) 전직 법관,..그리고 형사까지.. 그리고 그녀의 남편, 책을 읽는 일을 추천했던 친구 ' 프랑소와즈 , 그리고 대학교 은사인 소라 교수, .. 색다른 소재에 책을 읽어주기를 의뢰하는 사람들의 면면이 평범하면서도 색다르기도 했다. 과연 그럴듯한 핑계(?)로 책 읽기를 부탁하는 그들과 그들의 의뢰로 책 읽기를 시작하는 그녀 마리- 콩스탕스의 일대일의 사연들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의아하기도하고, 어떻게 보면 책은 정말이지 단순한 매개이고 말동무나 친근한 존재가 필요했던게 아닐까 싶기도하다. 물론 책 속의 텍스트 한 대목이 서로에게 대화를 이끌어 내거나 감성을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묘한 반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 에릭의 경우는 책 읽는 여자를 통해 청소년이 느낄법한 묘한 변화'과 성숙, 동화 ,.. 이런것들을 배우는것 같다. 집에만 있어서 부모가 지켜주고 공유해 줄 수 없는 것들을 이 책 읽는 여자'를 통해 대리만족하고 간접 경험하게 되는 - 책을 통해 각성되어지고, 책 읽는 그녀를 통해 접촉되어지는 감각이라고 해얄까 장군 미망인에게는 그녀의 고독과 젊은 날의 미망에 동참해 주는 역활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80세의 노부인의 거침없는 성격과 끊임없는 이야기들을 들어주며 누구도 함께 해줄수 없었던 노년의 뒤안길에 잠깐의 길동무 ' 같은 분위기 였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그 직업 : 그러니깐 책을 읽어주는 여자'라는 타이틀을 순수하게만 받아들이지 않는것도 딴은 이해가 되었고, 만약 누군가 책을 읽어주는 젊은 여자'라는 광고를 신문 광고에서 보았다면 재미있어 호기심어리게 눈여겨 봤을것같기도 하다 . 내 입장에서도 .
특히나 남자의 시선은 여자들과는 또 다르고, 게다가 여기에 등장하는 남편이 아내의 직업에 대해, 별 관심도 걱정(?)도 하지 않는다는게 놀랍기도했다.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 너는 너의 인생, 나는 내가 빠져 있는 인생을 살 뿐이다' 라는 그녀의 남편! 흠 뭐지? 이건! 어쩌면 그렇게 아이도 없는 젊은 부인이 자신의 특기이자 관심사인 책을 매개로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뚜렷이 직업적인 전문성이 없다고 해도 자신이 직업을 창조했다는 점에서는 높이 평가해주고 싶었고, 소문에 소문이 나면서 공공업체나 병원들, 소외된 이웃들에게서 책을 읽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만 보아도 사람들이 정서적인 어떤 것 : 책 읽기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 에 목말라 하는것이 아닌가, 특히나 정서적,감성적 혜택을 받을 수 없는 팍팍한 분위기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더더군다나' 아님 살아가는것이 너무나 바빠서 한 줄의 글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 - 솔직히 시간도 문제이지만 마음의 , 상황의 문제이기도 하다 - 단 몇분을 놓으면 인생이 파산 날 정도다 ' 라고 자신을 스스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기도 하니 말이다 .
개인의 생각이 각자 다르듯이 책을 읽어주는 여자가 만나는 의뢰인들은 모두 다른 환경과 생각들을 가진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해도 만나는 사람들에 따라 입장과 생각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도 있고 말이다. 생각치도 못했던 관계에 빠지기도 하고, 끝이 뻔한 관계에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여기에 나온 마리 -콩스탕스라는 여자의 어쩐지 치우치지 않은 시선들이 흥미롭다 . 다만 지금 현실에 만족과 행복이 따른다면 앞으로 어떻더라도 나는 괜챦아, 호오~ 과연 이렇게 살수 있는 사람이 몇명일까? 그렇치만 왠지 이런 매여있지 않는 사고가 자유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전혀 질척거리지 않는 주관이 맘에 들기도 했다. 단순히 지금의 외로운 감정에 치우쳐 사랑을 나누다가 그것이 지루한 일상이 되면 사랑은 온데간데 없이 현실로 돌아와 그 관계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훨씬 쿨해보였다.
나는 내가 텍스트를 선택한다고 여기지만 오히려 텍스트들이 나를 선택한다고. 그건 기이한 모험이다. 아니 그건 내가 너무나 여러 번 그 증거를 겪어보았듯이 어떤 불상사다 . <중략>....다른 것보다 독자에게 더 잘 먹혀 들어가는 어떠어떠한 책을 골라 읽는다는 그의 생각은 성립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책이나 그게 내 입을 통해서 나가는 순간부터는 다 좋은 것이다. 그 책 하나하나에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다.
- 이야기와 단어들로 감각과 정서를 일깨우는 직업이라니 어쩌면 대단한 건지도 모른다. 자기 만족과 타인을 대리 만족 시킨다?! 과연 이 소설처럼 그런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시 낭송회나 문학의 밤' 뭐 이런 류의 행사에 참가해본 적이 없어서 목소리가 주는 반향을 경험해 본적은 없지만, 어쩐지 좋은 책과 구절이 있는 바탕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가 결합한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나올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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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적인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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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떤 단막극 중에 환자에게 책을 읽어주는 장면이 있었다. 거의 불치에 가까운 병에 걸린 환자는 무의식중에도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들려주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그로 인해 병이 차차 회복되었다. 문학의 힘이 절로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그러한 사례는 분명 흔한 일은 아니다. 불치병을 치유할 정도의 힘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문학이 독자로 하여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정도의 힘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문학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다. 단순히 상대에게 책을 골라주고 읽도록 하는 것을 넘어 책을 읽어주는 행위까지를 포함하는 적극적인 부분까지 상상해보곤 했다. 책을 고르고 읽어주며 상대의 마음을 보다 유쾌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책 읽어주는 여자』(세계사, 2008)를 읽으며 마리 콩스타스의 책을 읽어주는 행위 자체에 보다 관심이 갔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마리 콩스타스 또한 처음 신문에 광고를 내고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라는 직업을 선택했을 때만해도 자신의 목소리가 좋다는 것, 무언가 자신만의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한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단순히 활자를 고객에게 읽어준다는 의미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물론 이 책의 초점은 이와는 다르다.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에 신문광고를 내고, 전화를 건 고객을 찾아다니며 겪게 되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호기심 많은 소년, 그녀를 책 읽어주는 여자가 아닌 애정 결핍을 채워줄 사랑의 대상물로 바라보는 사업가, 맞벌이 부부의 자녀, 노년의 장군부인, 입에 담기에 민망한 구절을 읽게 하는 노인 등 그녀의 다양한 고객들은 책을 매개로 하여 그녀로부터 그들만의 욕구를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러한 행위들이 바로 그들의 상처이자 외로움이고, 그녀가 한 역할이 그들의 상처와 외로움을 달래주는 역할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녀를 보며 ‘책 읽어주는 여자’가 아닌 ‘책 읽어주는 남자’를 떠올려보았다. 나는 ‘책 읽어주는 아빠’로부터 시작해도 될 듯하다. 아직은 아이에게 간단한 문장 정도만 읽어주는 상태이지만, 차차 완성된 한 편의 동화를 읽어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읽어준다는 행위에서 좀 더 나아가 아이에게 유쾌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상상력을 확장할 수 있도록 책의 선정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by 꽃다지, 2008년 8월 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