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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홉스봄을 생존하는 최고의 역사가로 꼽는 이유는 당연히 그의 역사인식에 깊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비단 그의 역사관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다. 홉스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학문적 신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공산당을 지지하는 학자로써 다양한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산당원'이라는 이유로 강단에 서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이 홉스봄을 단순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가 아닌 진정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책은 역사적 안목을 통해 바라본 현재의 세계에 대한 홉스봄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중요한 목적중의 하나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그 목적을 충실히 다하고 있다. 홉스봄은 <극단의 시대>등의 저작에서 20세기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대량학살과 물질문명의 비약적인 발달을 꼽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20세기를 잇는 21세기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을까. 전쟁, 국가, 민족 등 다양한 틀로 분석을 시도하고 있지만 종합해보자면 이전까지 유지되던 규범이나 틀의 붕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국민국가 단위로 진행되던 전쟁은 이제 그러한 구분이 모호해졌다. 군인과 민간인의 구분도 사라져서 전투의 규모는 작아졌어도 엄청난 수의 민간인이 고통을 당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뚜렷한 세계화의 영향으로 국민국가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미해져 버렸다. 1, 2, 3세계로 구분되던 세계의 모습도 냉전이 끝남으로써 붕괴해버렸고 미국만이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20세기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였고 지금도 한국에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민족주의도 냉전의 붕괴로 인한 국제정치의 불안정성 증가, 세계화의 놀라운 속도, 노동의 이동에 따른 외국인 혐오증의 증가 등으로 그 힘을 잃고 있다고 진단한다. 심지어 우리가 가장 완벽하고 이상적인 政體로 이해하고 있는 민주주의도 세계화의 물결 속에 국민국가와의 충돌을 제어할 수 있는 효율적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홉스봄이 21세기의 이러한 모습을 그리면서 가장 주목하는 2가지는 세계화와 미국의 역할이다. 먼저 세계화는 전통적 의미의 국가권력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자국경제의 통제력을 상실하게 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조건에서 신자유주의는 세계의 구석구석으로 펴져나갔으며, 세계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주의도 약화되는 것이다. 21세기의 또 다른 주요변수인 US는 세계화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로 볼 수 있다. US는 세계화와 동일시되는 신자유주의를 타국에 강제하기 위해 군사, 정치, 문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냉전의 종식이후에 US가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부상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로 그 힘과 영향력은 엄청나다. 여러 학자들이 US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면서도 US의 영향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하지만 홉스봄은 US의 영향력이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먼저 제국 자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제국의 명분인 질서유지가 사실은 허구이며, 제국은 세계의 질서는 물론 자국 내의 질서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또한 부분적으로 제국주의가 가능했던 시기의 특징인 서구의 우월한 문명에 대한 선망, 피지배국의 근대에 대한 열망 등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영제국과 US제국의 비교를 통해서는 더더욱 US제국이 계속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세계경제의 중심이었으며 바다를 통한 해외팽창에 주력했던 영국과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광대한 영토의 미국은 물론 같을 수 없다. 하지만 홉스봄이 주목하는 부분은 영국이 세계지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찍 간파하고 경제적 지배에만 주력했던 것에 비해 US는 불가능한 세계패권을 유지하려고 억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홉스봄이 이 책은 한국은 한국의 현실에 너무나도 유익한 조언을 던지고 있다. US의 패권주의 약화로 인해 US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조언은 미국과 이해할 수 없는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하는 현 정부에 대한 비판으로 그대로 읽을 수 있다.
US와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조언 말고도 대부분의 책의 내용은 한국의 상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입이 곧 선진화, 세계화로 인식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국수주의자로 매도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화에 대한 비판적 입장은 한국사회에 매우 유익한 논란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는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위해 아직도 싸워야하는 일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는 다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수 있다. 그렇지만 한국도 세계화의 물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가이기에 민주주의가 국제적인 문제에 있어서 효율적인 문제해결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으며,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국민중심주의와 민족국가가 무너져가고 있는 상황에 민주주의가 언제까지나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는 주장은 충분히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홉스봄의 저작들은 사실 읽어내기가 만만치 않다. 이 책은 강연원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그의 다른 저작들보다 읽기가 수월하고 현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흥미롭기도 하다. 물론 홉스봄의 역사를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위대한 역사학자의 현실인식을 들여다보는 매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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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약 60년간 세계사에 대한 진단이다. 이 책은 현재의 진단을 통해 미래를 예언하는 역사책은 아니다. 단지, 현재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 지 진단하고 있다.
썰렁한 농담이지만, 나는 지금까지 에릭 홉스 봄의 책을 한 권도 안 읽었다. 왜냐하면, 토마스 홉스와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냥, 그 사람이 그 사람이겠거니, 그 사람한테는 관심이 없으니 하고, 제껴두었다.
저자는 최근 현대사를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하고 있다. 세계화 민주주의 그리고 테러리즘이다. 세 가지 키워드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 그리고 작은 키워드인 민족주의도 빠트리면 안 된다. 민족주의를 빠트리지 않는다면, 국가와 국민 개념도 빠트리면 안 된다. 범위가 자꾸 넓어진다. 이러면 핵심 키워드를 제시한 의미가 없어지지 않나? 세계화는 경제적 국경이 사라졌다. 문제는 빈부 격차가 생긴다는 것이다. 결국, 굿도 보고 떡도 먹는 사람은 누구인가 라는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 우리가 지금까지 민주주의를 신봉한 이유는 더 나은 정치체제를 아직 발견하지 못 했기 때문일 뿐이다. 민주주의 한계가 무엇인지는 이제 상식이 되어 버렸다. 더구나 오늘날처럼 세계화에 의해 국제 정치적 문제가 빈번한 상황에서는 그 한계는 더욱 분명하다. 테러리즘. 최근의 테러리즘은 불특정 다수에 의해 반복된다. 더구나, 그 인명 살상의 효과도 크다. 냉정 시기 동안 작지만 강력한 무기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쟁점도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종교나 이념적인 문제로 옮겨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국가라는 정치 단위도 점점 약화되고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저자는 지나치게 흥분하지 말고 차분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문제는 어디까지나 치안 문제일 뿐이다. 미국처럼 그 문제를 자국의 특정 정치집단의 이해 관계에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 그리고, 한가지 더 제국주의. 이 책에서는 끊임없이 미국이 등장한다. 저자는 미국에 대해 충고한다. 그 충고는 영국과의 비교가 선행된다. 충고의 요점은 한 가지다. 너무 오버하지 말아라. 너희에게 그 누구도 전 세계를 관리하라는 권리도 주지 않았고, 너희는 그럴 능력도 없다.
어지럽게 썼다. 현재 세계사를 쉽고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신문을 특히 한겨레나 경향을 꾸준히 본 독자라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아주 유연하고 쉽게 쓴 책이지만, 보수 신문을 보던 독자라면 약간 당황할 수도 있겠다. 내가 지금 은근히 이념적인 편가르기를 하고 있는 건가? 글쎄, 뭐,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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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이라크 전에서 실패한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역사학자인 에릭 홉스봄은『폭력의 시대』에서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현상을 분석하는데 있어 그는 다른 사람들이 잊어버렸거나 잊고 싶어 하는 일은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그 보다는 동시대의 기록에서 가능한 뒤로 물러서서 더 넓고 긴 안목으로 이 시대를 조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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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의 일이다. 악명 높은 이름의 소유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장식했다. 끔찍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의 소행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이의 죽음이 믿기질 않았지만, 미국은 확신하는 듯했다. 그를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던가. 최첨단 무기를 보유하고도 악인 하나를 잡겠다며 온세상을 상대로 벌인 폭력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무기력증에 빠져들고는 했었다. 오사마 빈 라덴. 그만큼 강렬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테러리스트가 더는 없는 것 같지만, 여전히 폭력은 현재진행형이다. 특정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그야말로 ‘폭력의 시대’다. 내 삶은 평온할지 모르나 지구 저편에서는 오늘도 총성이 울려 퍼졌으리라! 어쩌다가 인류은 폭력 없는 삶으로부터 멀어진 것일까.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시간을 머금어 누런 빛을 띠었다. 2008년 인쇄.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전에 에릭 홉스봄은 ‘폭력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냈다. 연이어 벌어진 테러를 ‘세계대전’이라 칭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희생자의 수를 놓고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20세기 들어 가장 특이한 시대, 20세기. 저자는 폭력으로 얼룩진 지난 시대를 되돌아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의 갈등은 국지적인 경우가 잦았다.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는 소위 ‘제국’을 지향하는 국가들의 모양새도 예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주목했다. 제국주의가 한창 날개를 펼치던 시절,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전략은 식민지 건설이었다.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내게는 자본이 필요로 하는 시장 개척 차원에서 이를 해석하는 관점이 가장 익숙했다. 그렇다고 경제적인 종속에만 국한됐던 것은 아니다. 굳이 분석에 나서지 않을지라도 일본의 잔혹했던 지배를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가지 싶다. 오늘날 미국은 제국 중의 제국이라 할 만하다. 소련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이후로 이에 필적하는 나라는 등장하지 않았다. 얼마든지 제멋대로 굴 수도 있을 법한데, 미국은 한 나라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아 미국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있다. 적어도 표면만 놓고 본다면 상대국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 같아 보인다. 실상은 위성국이라 칭할 법하다. 미국의 일부가 아님에도 미국의 이해를 알아서 대변한다. 다소 입맛에 맞지 않는 정권이 등장했을 경우도 있는데, 그 때마다 미국은 해당 정권을 전복시키고자 최선을 다했다. 들이댈 잣대는 무궁무진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위배된 국가 체제를 택했다에서부터 불법으로 마약을 생성/거래했다,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권을 갈취했다 등. 벌써 남미의 여러 나라가 그렇게 스러지고 다시 일어섰다. 위험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던지 ‘악의 축’ 등 수사적 표현을 필요로 할 때도 잦았다. 상대국가는 정녕 악했던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평을 들었지만, 그들 국가에서도 선거는 행해졌다. 국민들의 지지에 힘입어 정권이 창출됐고, 그 지지에 답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과 함께 해당 국가들은 변모했다. 각종 자원을 국가가 보유하는 게 비민주적인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보험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교육이, 병원 진료가 무료라는 사실이 그렇게까지 위험한 일인가! 여기까진 백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무고한 이들에게 폭력을 가해야 할 정당한 이유라고까진 할 수 없다. 이들 국가에도 나름의 법과 제도가 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은 충분히 민주적이며 개개인의 자유를 존중한다고 답한다. 어찌 보면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같은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단죄하는 이상한 모양새다. 민주주의의 탈은 여느 시기보다도 격렬하게 자행되는 폭력들을 정당화시켜주기 위한 가면과도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과거처럼 세계를 휘어잡을 정도의 힘을 지닌 제국은 존재치 않는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 대적할 수준의 대국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여 미국이 과거 제국들이 누린 부와 권력을 누리고, 마치 독수리 오형제마냥 지구 수호에 나서야 한다는 걸 의미하진 않는다. 알아서 기는 듯한 분위기에의 변화도 필요하다. 모두가 “예”라 답할 때 용감하게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폭력의 연쇄고리를 끊고자 한다면 필히 그래야만 한다. 조금 더 시야를 좁혀도 이야기는 동일하다. 무언가에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개개인 혹은 소규모 집단에게 정부가 취해야 하는 건 폭력이 아닌 경청이다. 저자는 정부의 역할이 과거처럼 확고하지 않으며, 정부가 지닌 힘이 절대적이지도 않다고 보았다. 모든 권력은 주권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사람들은 전적하게 신뢰하기 시작했다. 결단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폭력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깨달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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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쓴 폭력의 시대. 단순한 제국의 폭력뿐 아니라, 식민지 내부에서도 벌어진 수많은 폭력에 대해 이 책은 서술하고 있다. 제일 인상깊은 장면은 바로 식민지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역사 조작일 것이다. 식민지 인들은 제국을 통해 근대를 경험하고 수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기간 그들은 제국의 지배를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독립하고 난 이후엔 자유로의 전진만을 가르칠 뿐이지, 식민지 시절에 있었던 긍정적인 기억들은 삭제해 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정확히 적용되는 언어로 한국인들은 일제 식민지 시절 수탈당했다고만 기억하지, 긍정적인 내용은 삭제해간다. 이런 모습을 보면 대역사학자는 달라도 다르구나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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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시대라는 제목은 홉스봄의 '시대 시리즈'에 편승한 제목일 뿐 이다. 그대로 직역하면 '세계화, 민주주의와 테러리즘'이다. 그리고 10장으로 구성된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영어 제목도 조금은 현대 사회의 흐름에 편승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홉스봄이 이야기하고 싶어한 내용의 골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학문적인 근거는 별로 없다. 강연을 모은 책이기에 학술적 논리를 따지기에는 문제가 있다. 단지, 역사학자인 홉스봄의 역사를 통한 혜안을 조금이라도 맛 본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저자는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불평이라는 요소를 끄집어 냈다. 평등과 관련된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홉스봄이 지적한 불평등 문제는 유의하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세계화의 가장 적극적인 주체인 미국에 대한 비판을 진행한다. 물론, 서구사회에 대한 전체적인 비판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두번째로 민주주의에 대한 논의는 일반적인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비판을 가한다. 민주주의의 불안정성과 그것의 폐해를 지적한다. 상식적으로 충분히 받아 들일 수 있는 비판이긴 한데, 늘 그렇듯이 민주주의의 대안 마련이 힘들기에 민주주의는 반진리처럼 여겨진 것이다. 여기에 홉스봄의 비판은 미국이 심고자 한 민주주의가 비판의 골자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홉스봄의 눈에 미국식 민주주의는 바람직할리가 없을 것이다. 세번째로 테러리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분명 테러의 위험성에 동의한다고 하지만, 위험한 치안이라고 명확하게 단언한다. 즉, 군대가 나서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경찰력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미국식 오버를 비판하고 실제적인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비판한 것이다. 제국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유럽, 특히 영국식 제국과 미국의 제국을 구분하고 있다. 역사에 정통한 학자의 견해이기는 하지만, 영국의 입장에서 미국식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상대적으로 영국의 제국주의 시대를 옹호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결론적으로 제국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고 있지만. 홉스봄의 '폭력의 시대'는 여러가지 변수들이 얽히고 섥힌 복잡한 국면에서 전개되는 '폭력'에 대한 내용으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제시 되었다기 보다는 해결 주체로 나서고 있는 미국의 행동에 비판을 가하고 앞으로도 그런식의 해결방법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전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폭력'의 주체가 테러리스트가 아닌 '미국이다.'라는 반어적인 표현으로 이해해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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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말을 각종 언론을 통해 너무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대가 역사학자 홉스봅은 냉전의 종결로 세계최강의 유일제국이 된 미국이 소규모 테러집단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가상의 적을 통한 내부의 공포심을 유발시켜 되려 두려움과 폭력의 시대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민주주의의 심각한 문제들 예컨대 중우정치, 정치에 대한 무관심 등을 제기하면서 제국과 통치제도에 대한 모색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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