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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마니아가 보는 위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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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는 서기 220년 조비가 한나라의 헌제에게 황제 자리를 선양할 것을 강요한 뒤부터 589년 수문제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서진시기는 총 52년간으로 265년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조씨의 위나라를 탈취한 뒤 국호를 진나라로 하고 도읍을 낙양으로 정한 시점부터 출발해서, 280년 오를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고 진무제 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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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남북조는 서기 220년 조비가 한나라의 헌제에게 황제 자리를 선양할 것을 강요한 뒤부터 589년 수문제가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다시 중국을 통일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서진시기는 총 52년간으로 265년 사마소의 아들 사마염司馬炎이 조씨의 위나라를 탈취한 뒤 국호를 진나라로 하고 도읍을 낙양으로 정한 시점부터 출발해서, 280년 오를 멸망시켜 중국을 통일하고 진무제 사마염의 황후 가후賈后의 난과 8왕의 난을 거쳐, 유연의 아들 유요가 316년 장안을 점령해 진나라 민제가 투항하기까지를 말한다.

위의 조조 [맹덕孟德, 155~220)˙촉의 유비 [현덕玄德, 161~223)˙오의 손권 [중모仲謀, 182~252]으로 대표되는 60년간의 삼국시대는 영웅호걸의 시대였다. 서진의 사학자 진수陳壽는 《위서》《위략》《오서》를 기초로 《삼국지》 65권을 편찬했다. 위나라를 정통으로 삼고 기전체로 위˙촉˙오 삼국역사를 기술했는데 《위서》30권, 《촉서》15권, 《오서》30권이다. 후에 남조 송나라의 배송지가 주해를 달아 《삼국지》는 《사기》˙《한서》˙《후한서》와 함께 4대 역사서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삼국지 마니아로서 간단히 삼국지인물을 정리해본다. 조조 수하의 3대 군사는 2순1곽으로 순욱筍彧 [문약文若, 163~212]과 순유筍攸 [공달公達, 157~214] 그리고 곽가 郭嘉 [봉효奉孝, 170~207]를 가리킨다. 유비 수하의 3대 군사는 와룡˙봉추˙복호로 제갈량諸葛亮 [공명孔明, 181~234]과 방통龐統 [사원士元, 179~213]그리고 장완蔣琬 [공염公琰, ? ~246]을 가리킨다. 손권 수하의 3대 군사로 장굉張紘 [자강子網], 장소張昭 [자포子布, 156~236], 고옹顧雍 [원탄元嘆, 168~243]을 들 수 있다.

조조 수하의 5대양장良將은 악진樂進 [문겸文謙, ?~218), 장료張遼 [문원文遠, 169~224], 우금于禁 [문칙文則, ?~221], 장합張郃 [준예儁乂, ?~231], 서황徐晃 [공명公明, ?~227]이다. 유비 수하의 5호대장은 관우關羽 [운장雲長, 162~219], 장비張飛 [익덕翼德, 168~221], 마초馬超 [맹기孟起, 176~222], 조운趙雲 [자룡子龍, ?~229], 황충黃忠 [한승漢升, 148~222]이다. 손권 수하는 공식적인 5대명장이 없다. 내 나름 꼽아본다면 이렇다. 주유周瑜 [공근公瑾, 175~210], 노숙魯肅 [자경子敬, 171~217], 여몽呂蒙 [자명子明, 178~219], 황개黃蓋 [공북公覆], 육손陸遜 [백언伯言, 183~245]이다.

삼국지의 내용 몇 가지를 바로잡아본다. 성을 비우는 공성계를 쓴 인물은 제갈공명이 아니라 위나라 문제 조비 수하의 장수 문빙文聘이다. 혈혈단신 칼 한 자루 들고 연회에 나선 것은 관우가 아니라 오나라 노숙이다.

참고로 경극에선 흰 얼굴로 조조의 음험함을 표시하고, 붉은 얼굴로 관우의 충성스러움을, 나비 같은 얼굴로 여몽의 계략을 드러낸다.

삼국시대의 문학조류를 동한 헌제의 연호를 따서 건안문학建安文學이라 하는데 조조˙조비˙조식 삼부자와 건안칠자建安七子가 주도했다. 건안칠자는 공융孔融, 왕찬王粲, 유정劉楨, 완우阮瑀, 서간 徐幹, 진림陳琳, 응양應瑒을 가리킨다. 조조의 〈고한행苦寒行〉을 보면 전쟁의 고달픔과 황폐함을 노래하고 있다. 이런 구절이 있다.

「계속 나아가니 날로 멀어지고行行日已遠, 사람과 말이 모두 굶주리네人馬同時飢/ 보따리를 메고 장작을 구해오고擔囊行取薪, 도끼로 얼음 깨어 죽을 만드네斧冰持作糜.」

삼국시대 유학의 대가로 존숭된 7명의 대학자는 동우, 가홍, 한단순, 설하, 외희, 소림, 악상 등이다. 그리고 죽림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린 위나라 7명의 명사는 완적(阮籍, 210~263)•혜강(嵆康, 223~262)•산도山濤•향수向秀•유령劉伶•완함阮咸•왕융(王戎, 234~305) 이다. 그들은 늘 산양(지금의 하남성 수무현)의 죽림에서 바둑을 두고 거문고를 타며 노래 부르고 시부를 지었다. 이들은 노장사상의 영향으로 청담을 논했지만 왕융은 예외로 해야 한다. 왕융의 개인적 이기주의를 드러내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집에 좋은 오얏나무가 있는데 남이 씨앗을 가져다 심을까봐 자기가 먹은 오얏씨를 모두 송곳으로 뚫어 버릴 정도로 인색했다.

삼국시대 위나라 왕숙王肅이 편찬한 《공자가어孔子家語》는 한대 정현의 경학을 공격하기 위해서 위작한 작품이다.

서진西晉은 끊이지 않는 자연재해도 문제였지만 문벌귀족들의 부패와 사치로 인해 망했다. 서진의 노포魯褒는 《전신론錢神論》을 지어 돈만 아는 물신만능주의의 사회풍조를 풍자했다. 일부를 감상해보자.

「동전의 겉은 둥글고 안은 네모나다. 흐르면 물과 같고 쌓이면 산과 같다. 시장에서 교환할 때면 손상됨을 두려워하지 않고 돌리며 저장도 된다. 닳지도 소실되지도 않아 사람들이 신처럼 보배처럼 두 손 모아 받든다. 사람들은 그를 공방형이라 부르며 형처럼 친하게 지낸다. 그를 잃으면 가난해지고 얻으면 부귀해진다.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일들도 그만 있으면 막을 수 있고, 엄숙했던 얼굴도 웃음으로 가득 찬다. 돈이 적은 사람은 뒤에 머물고 돈이 많은 사람은 앞자리에 오른다. 뒤에 머문 사람은 신복들이고 앞자리에 오른 이는 군주이다. 군주들의 생활은 넉넉하지만 신복들의 생활은 곤란하지 그지 없다. 돈을 물과 같다 함은 그가 어느 곳이든 얼마나 먼 곳이든 모두 갈 수 있기 때문이로다. 졸면서 책 읽던 선비도 돈만 보면 눈을 번쩍 뜨더라! 돈만 있으면 신선이 보호해 주어 흉도 길이 될 수 있고 곤란도 상서로워지는데 왜 힘들게 글 읽고 문장을 쓰랴. 유방이 가짜로 축하금을 여공에게 보내자 여공도 매우 기뻐했는데 하물며 진짜 돈이면 어떠하랴. 탁문군과 사마상여가 거친 베옷을 벗고 비단옷을 입게 된 것은 탁왕손이 돈으로 방조해 주었기 때문이더라. 이렇게 볼 때 돈을 신물이라 함은 꼬물만큼 헛소리도 없도다.」(250-251쪽)

z***a 2009.06.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