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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를 거울로 삼으면 의관을 바로잡을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흥망을 알 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득실을 알 수 있다. 」 —당태종 이세민
먼저 수와 당의 세계도부터 살펴보자. 수나라(581~618)는 16국˙동진˙남북조 시대의 278년간의 분열을 끝내고 진˙한이후 세번째로 중원 및 남북중국을 통일했지만 37년밖에 존속하지 못했다. 문제 양견→양제 양광→공제 양유의 삼대에 그친다. 그리고 당 전기는 11대 숙종까지 소개한다. 고조 이연→태종 이세민→고종 이치→중종 이현→예종 이단→주 측천제→중종 이현→소제 이중무→예종 이단→현종 이융기→숙종 이형의 순이다.
수나라 양제는 낙양을 수축하고 남북대운하를 건설했고 세 차례 요동정벌에 나섰다. 당 태종은 정관의 치를 열고 당 현종은 개원의 치를 열었다.
당나라의 유명한 재상으로 방현령과 두여회, 요숭과 송경이 있다. 당나라 초기의 문학가 왕발(王勃,649~676), 노조린(盧照隣,636~695), 낙빈왕(駱賓王,640~684), 양형(楊烱,650~693)을 가리켜 「당초4걸」이라 한다. 이백˙하지장˙이진˙이적지˙최종지˙소진˙장욱˙초수는 모두 술을 좋아해 「음주8선」을 맺었다. 당나라 전기에는 시선 이백의 시가 현종 통치의 기상을 반영했고, 후기의 시성 두보는 쇠락으로 접어드는 사회적 현실을 반영했다. 이외에도 왕유˙맹호연˙백거이 등이 있다.
초당의 4대 서예가는 구양순(歐陽詢, 557~641), 우세남(虞世南, 558~638), 저수량(褚遂良, 596~658), 설직(薛稷, 649~713)이다. 이들은 모두 왕희지 전통 서예의 정수를 계승했는데 대표작으로는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우세남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저수량의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설직의 〈신행선사비信行禪師碑〉가 있다. 중당의 대서예가로는 안진경顏真卿(709~785)이 있다. 자가 청신清臣이고 낭아 효제리 사람으로 개원 연간에 진사와 전중시어사를 지냈다. 그의 서예는 초기에는 저수량을 후에는 장욱을 계승했고 만당의 유공권(柳公權,778~865)과 더불어 「안류」라고 불렸다. 대표작으로 〈자서고신自書告身〉과 〈제질문고〉가 있다. 이외에도 광초狂草로 유명한 회소懷素 화상과 장욱張旭이 있고, 이옹(678~747)은 해서와 행서로 쓰는 비문에 뛰어났다.
화성畫聖 오도자吳道子는 오늘날 민간화공들의 시조로 공양되는데 서예 대가 장욱˙하지장을 스승으로 그림을 전공했다. 걸출한 안마화가鞍馬畫家 한간韓幹(709~785)은 진굉陳閎˙조패曹霸를 스승으로 삼아 공부했고 현종이 궁정화가로 뽑아 관직이 태부사승에 이르렀다. 말 그림에 능했으며 각종 말의 정신상태, 동작, 골격, 근육, 털색 등을 깊이 관찰했다. 〈목마도牧馬圖〉와 〈조야백도照夜白圖〉로 유명하다.
책은 심심찮게 여러 고사성어들의 전고를 설명한다. 이 중 세가지만 소개해보겠다.
●포전인옥拋磚引玉 :「벽돌을 던져서 옥을 얻다」란 뜻이다. 다른 사람의 고견이나 훌륭한 작품을 이끌어내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미숙한 의견이나 작품을 발표한다고 겸손을 표하는 성어다. 진나라 사절 부재는 수나라 문제의 비서 설도형薛道衡의 답시를 듣고 나서 자신의 시는 구슬을 이끌어 내는 벽돌에 지나지 않았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괘각공서掛角攻書 :「쇠뿔에 걸고서 공부하다」란 뜻이다. 당나라 이밀李密이 방석을 깔고 소를 타고 가면서 《한서》를 쇠뿔에 걸고 공부했다.
●경현회요敬賢懷鷂:「현인을 존경해 매를 품다」란 뜻이다. 당나라 태종은 강직한 직언을 서슴지않는 위징을 경외시했는데 어느날 매 한마리를 가지고 놀다가 위징을 발견하자 급히 새를 품속에 감추었다. 위징이 공무를 늦게야 마치고 돌아갔을 땐 매는 죽어있었다.
음식과 복식은 많은 궁금증을 일으키는 문화영역이다. 수당시대 사람들은 아침에 죽이나 빵을 먹고, 점심은 밥, 저녁은 국과 떡, 전병 등을 먹었다. 주된 식용가축은 양과 돼지였으며 차를 끓여 마실 때 소금을 넣거나 밀크티처럼 버터를 넣기도 했다. 수나라 문제는 황색을 황제와 문무백관 전용으로 규정했고 민간의 사용을 금했다. 당나라 초기 황색은 황가 전용이었고 문무관원은 9품제에 의해 자색˙붉은색˙녹색 등의 색깔의 옷을 입었으며 백성은 검정색 또는 흰색을 상용했다.
신구《당서》와 《자치통감》은 수당 역사의 학습과 연구의 필독서이다. 수나라 소원방(550~630)은 의서 《제병원후론諸病源候論》를 지었고 각기병을 최초로 기재했다. 유지기劉知己는 중국의 첫 사학이론서인 총 20권의 《사통史通》을 저술했다. 책은 사학 필수의 3장인 사재史才, 사학史學, 사식史識의 관점을 고수하여 후대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 최초의 행정법전 《당육전》이 편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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