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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1]에 이은 [동티모르 2] - 왠지 모르게 애정이 가는 동티모르 이야기 <동티모르의 탄생> "나는 한 편의 휴먼드라마를 보고 왔다. " (손봉숙 저)
<제1부 동티모르에 독립을!> 동티모르의 인도네시아에 의한 인권유린 현장이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국제사회는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폐쇄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었던 참상에 대해 외부세계는 너무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흔히 그렇듯 분쟁이 일어나면 그 나라 국내 문제로 치부하고 관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적인 이해관계인 것 같다. 내정간섭이라고 덤비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를 일이다. ![]() <동티모르 위치. [동티모르 1]에서 게시된 지도의 외연을 확대한 지도이다. 인도네시아 열도의 동쪽 끝지점에 자리하고 있으며, 발리와 호주의 다윈에서 삼각형을 이루는 곳이다.> 동티모르 문제도 그랬다. 인도네시아가 정책적으로 외부세계와 동티모르를 차단했기 때문에 흔히들 동티모르 안에서 벌어진 일들을 인도네시아 국내문제로 보고 인종분쟁이나 종교분쟁 소규모 분리독립운동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동티모르 참상을 끈질기게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 있어 동티모르는 국제사회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동티모르 독립에 대한 찬반투표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UN의 감시 하에, 사실은 UN 투표감시위원들 단 세 사람이지만, 동티모르는 주권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갈림길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된다. 이 주민투표에서 [동티모르 1]에서 기록한 대로 자치를 주장하는 자치파에 위세에 눌려 독립 반대표가 더 많아진다면 동티모르의 독립은 물 건너간다. 바로 동티모르의 장래 운명을 결정하는 그 중요한 주민투표를 감시.감독하기 위해 UN의 감시위원 세 사람이 동티모르에 파견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손봉숙 여사다. 손봉숙 여사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 Hawaii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 그리고 다시 이화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은 우리나라 여성 정치학자로 이름이 알려져 있는 분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21C 신생독립국으로 탄생하는 동티모르의 현장을 보면서 자식을 낳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이 글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책의 부제가 <동티모르의 탄생> 아닌가 모르겠다. 동티모르가 안고 있던 쓰라린 과거와 현재 얻고자 하는 것에 대한 몸부림을 본다면 세상의 어머니들이 다 그렇듯이, 이 새로 태어날 자식이, 아직은 잉태의 과정이지만, 과연 제대로 태어나 자랄 수 있을 것인지 어떨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그런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면 동티모르에게는 하나의 큰 축복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책 제목도 [...휴먼 드라마...]로 지었으리라 생각된다. 사람이 한 명 태어나는 것도 대사이지만 한 국가가 탄생한다는 것은 상상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인내와 노력과 피와 땀과 눈물을 요하는 모양이다. 이 책이 동티모르의 선거에 집중해 기술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간의 사정들을 감안해 보면 한 국가로서의 동티모르를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땀과 눈물과 많은 사람들의 피와 희생이 뒤따랐던 것이다. 이런 독립국가로의 탄생을 예고하는 주민투표일은 1999년 8월 30일. 전 세계에서 인정받는 국제선거관리 전문가 세 사람을 선정하는데 그 중에 유일한 여성위원으로 임명된 것이다. 여성들의 권위 파워가 신장된 것은 틀림없지만 이 신생독립국의 독립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그러면서도 위험하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부족한 그 곳에 선거관리위원으로 임명받고 현지에 가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 자체가 버거운데도 불구하고 새삼 한국 여성들의 파워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어쨌든 UN 사무총장의 임명을 받은 손봉숙 여사는 낯설고 물 설은 이국땅을 향해 날아갔다. 당시만 해도 동티모르에 직접 연결되는 국제선 비행기 편도 없었다. 그래서 싱가폴로 가서 그 곳에서 발리까지 가는 비행기로 바꿔 타고 발리에서 다시 동티모르 딜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렇게 해서 그녀가 동티모르에 도착한 것은 1999년 7월.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에 의해 강제합병 되고 난 후 이미 20년 이상 독립운동을 하는 반군과 일반 주민들이 인도네시아 군경에 의해 무차별 학살되고 있었다. 1975년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점령하자 유럽과 유럽연합은 즉각 인도네시아의 불법성을 지적하고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점령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울러 UN도 지체 없이 동티모르로부터 철수할 것을 결의 하긴 하였지만 무기판매에 맛을 들인 미국과 동티모르의 좌경화를 염려하는 인도네시아의 국익이 맞아떨어지면서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에 대한 학살 통치를 묵인하고 방치함으로써 동티모르에 대한 외교적 지위를 인정해 주는 꼴이 되어 동티모르의 참극을 심화시키는 빌미가 되었다.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은 나라가 이제 독립을 위한 첫 단추를 꿰려고 하는 현장에 그녀가 있었다. 원래 우리나라 사람 속성이 대외적인 어떤 임무가 주어졌을 때 국가적 명예로 알고 그 일에 신명을 바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듯 그녀도 이런 상황을 맞아 20C 식민속국의 마지막 사슬을 벗겨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것을 개인적으로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발리에서 하루를 묵은 후 비행기로 동티모르 딜리시에 도착한 그녀는 맨 처음 딜리시 국제공항의 조촐한 모습(?)에 놀란다. 마치 시골 읍내의 버스대합실 같다고 했다. 수백 년 동안 포르투갈은 경제적 수탈만 해 갈 줄 알았지 동티모르에 근사한 비행장 하나 남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건 24년이나 통치해온 인도네시아도 마찬가지였다. 비행장의 시설에 한 번 놀랐던 그녀는 그 곳 풍토병 말라리아와 또 한판 싸움을 해야 하는 것에 놀랐다. 거의 일주일마다 말라리아 예방약을 복용해야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더운 지역에서는 특히 말라리아를 조심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말라리아 예방약을 덥석 먹고 나면 며칠동안 어지러움과 그 메시꺼움 때문에 차라리 말라리아를 앓는 게 낫다고 할 정도라는데 약 먹기를 지독히 싫어했던 그녀로서는 말라리아 약 복용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의사와 상의 끝에 안 먹고 버티기로 했다. 먹는다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고 반드시 걸리는 것도 아니라면 안 먹고 버텨볼 심산이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그 이후로도 말라리아 때문에 고생했다는 얘기는 없다. 동티모르에서 선거관리 업무의 감시와 주민들의 투표참여 독려를 위한 여행길은 험했다. 수십 년간 인도네시아의 박해를 피해 주민들이 산속으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 나서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길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다시 한번 국력이 칠칠치 못한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어 지냈던 것을 한탄하게 만든다. 그리고 도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원시적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박하기 그지없다. 비록 가난에 찌들고 궁핍하게 살지만 그들의 꿈은 열려 있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도시 문명에 파묻힌 사람들보다 높다. 동티모르인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이다. 대부분이 이슬람교 신자들인 인도네시아와 대비된다. 여기서 또 하나의 갈등이 상존한다. 신들은 지구상에 종교를 주었지만 그 종교들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들의 여유와 너그러움은 빼 먹고 주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인류 문명이 기록된 이래로 종교는 사방에서 서로 칼을 겨누고 총부리를 들이댔다. 종교간 분쟁에는 여유로움도 끝도 없다. 유일신과 다신들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지구상에서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물론 동티모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단지 종교분쟁의 문제로만 보기 어렵긴 하지만, 그렇더라도 인도네시아 정부는 힌두교와 카톨릭교의 병립불가를 염두에 뒀을 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인구의 98.9%가 천주교 신자인 동티모르인들은 평상시에는 다 찢어지고 해진 옷을 걸치고 살다가도 일요일에는 화사하게 차리고 성당을 간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서 가장 좋고 깨끗한 옷을 차려입고 성모마리아 앞에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일요일에는 거리가 화사해 진단다. 동티모르에서는 숙소도 큰 문제였다. 비록 최고급 호텔이라는 곳에 머물고는 있지만 그 호텔 수준이 우리나라 장급 여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최고급’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방에는 물렁물렁한 스펀지 침대 하나하고 샤워기가 하나 달린 화장실 그리고 거울 하나가 전부였다. 그리고도 하루 숙박료는 35달러나 했다. 더욱이 그녀를 놀라게 한 것은 그 ‘최고급 호텔’ 방에 커다란 쥐가 들락거린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되게 놀라 결국 호텔을 비워주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불과 60여 년 전에 한바탕 전쟁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그녀는 신생독립국으로 탄생하려는 동티모르인들의 모습에 어쩔 수 없는 깊은 연민을 느끼며 마음속으로나마 응원을 보내고 있다. ‘신이여 이 나라에 독립이라는 선물을 꼭 안겨 주소서’라고. 주민투표를 위해 명부를 작성하는 일과 주민들을 투표에 참여 시키는 일 모두가 쉽지 않았다. 조직적인 방해와 위협이 끊임없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티모르는 국제사회에 질서의 유지를 위한 파병을 요청했고 우리나라도 상록수부대를 이 기간 중에 그곳에 파병해 치안유지에 일익을 담당했다. 이 상록수부대는 처음엔 다국적군으로 참여했지만 2000년에는 유엔평화유지군으로 전환된다. 상록수부대의 이야기는 [동티모르 3]에서 설명될 것이다. 1999년 8월 30일. 동티모르의 운명을 결정짓는 주민투표일이다. 끝없이 늘어선 줄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은 이 시간이 오기를 24년간이나, 아니 500 년간이나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에게는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었다. 투표를 방해하는 여러 요소들이 상존했지만 투표 대기 열 속에 서 있는 동티모르인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서려 있었다. 이 착하고 순박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을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사람들로 바꾼 것은 서구 열강들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의 동전 한 닢을 마저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법이다. 앞선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더 많이 챙기기 위해 각축을 벌이는 과정에서 조그만 섬나라 주민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서 싸우고 피 흘려야 겨우 이 정도라도 건질 수가 있었다. ![]() <투표 행렬> 무엇을 갈구하는지 그들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겠는가? ![]() <이른 아침부터 투표에 참가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서 있다. 이제 자신들의 운명은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 결정하게 되는 순간이다.> ![]() <투표를 끝낸 후 주민들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결과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기구를 준비하고 있는 저들의 열성을 보면 동티모르의 앞날은 밝다.> 주민투표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체 투표 대상자 가운데 98.6%나 되는 사람들이 참여했고 78.6%가 독립을 선택했다. 압도적인 동티모르 독립파의 승리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선거에 패배한 민병대 조직의 보복이 시작되었다. 동티모르는 즉시 무정부 상태에 빠졌고 1999년 9월 6일 세 사람의 UN선거관리위원들은 허겁지겁 무정부 상태에 빠진 동티모르를 탈출해야 했다. ![]() ![]() <민병대 조직의 보복으로 폐허가 된 현장에 선 주민들의 망연자실한 표정들. 누가 이들을 이렇게 괴롭히는가? 손에 잡힐 것 같았던 독립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제2부 동티모르의 탄생> 동티모르를 허겁지겁 탈출한지 1년 반 만인 2001년 3월에 그녀는 다시 UN의 이름으로 동티모르를 방문한다. 이번에는 제헌의회의원 선거를 관리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미 한 차례 동티모르에서 홍역을 치른바 있는 그녀는 남편과의 알콩달콩한 일본생활을 접고 다시 딜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군용기를 개조한 UN기를 타고 서울-싱가폴-다윈-달리를 있는 경로였다. 그러나 다시 보는 동티모르의 모습들 중 달라진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천혜의 자연경관만이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제 자연의 풍광과 함께 동티모르의 외관상 모습도 발전을 이뤄야 하는데 발전으로 가는 기틀이 없다. 1999년에 독립의 기초는 닦았지만 정작 독립된 나라를 이끌 법은 없다. 그 법의 기초를 놓는 작업을 다시 해야 했다. 다시 한번 주민투표가 이뤄져야 했다. 선거 준비 기간 중에 부닥치는 문제마다 만만찮았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는 그녀는 선거관리위원장이라는 격상된 위치에서 선거를 치러야 하지만 선거에 대한 기본 틀이 빈약한 것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같았다. 1999년 8월 30일에 치러진 투표가 동티모르의 잉태를 위한 것이었다면 2001년 8월 30일 치러진 동티모르 제헌의회의원 선출을 위한 투표는 동티모르의 명실상부한 탄생을 예고하는 주민투표였다. 수백 년 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으며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들이 결정할 수가 없었던 동티모르는 결국 외부인들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틀을 잡게 되는 아이러니를 맛본다. 이 일에 처음부터 한 사람의 목격자이자 증인된 그녀는 자식을 출산하는 심정으로 동티모르의 탄생을 반기고 있다. 마음속으로 동티모르의 잉태를 간절히 염원하며 죽음을 무릅썼던 지난 번 선거 때와는 달리 차분한 가운데 선거가 치러져 예상했던 대로 동티모르 독립에 앞장서 온 프레틸린이 다수의 의석을 차지하고 선거 운동기간에는 그 동안 동티모르 독립 투쟁의 산 증인이었던 사나나 구스마오의 초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새삼 감탄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며 투쟁에 매달렸지만 조국이 독립한 지금은 자신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라며 뒤로 물러나 조국의 앞날을 책임질 제헌의원들 선출에는 초연했던 것이다. 이런 훌륭한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동티모르를 어찌 약소국이라고 무시할 수 있을까. 그들의 행복지수가 우리보다 높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지만 거기에 덧붙여 국가를 위해서는 자신을 초개처럼 여기는 이런 인물들에게서 동티모르의 희망을 보았다. ![]() <독립운동가이자 동티모르 초대 대통령이었던 사나나 구스마오. 그는 독립투쟁으로 인해 세계적 인물이 되었다.> 비가 개인 후에는 무지개가 뜬다. 그래서 무지개를 희망으로 보지 않는가. 60여 년 전에 이 땅에서 독립과 아울러 정부수립의 개가를 올렸던 우리가 이제 우리보다 한발 늦게 시작하는 조그만 섬나라의 탄생에 일조를 했다는 것은 어쨌든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뿌듯한 심정이다. 두 차례나 선거에 관여하여 무탈하게 마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상록수부대가 UN의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병돼 대민지원 사업 등을 펼치고 또 파병지역의 치안업무를 훌륭히 수행하여 신생독립국가 동티모르가 자신의 발로 일어서도록 하는데 일조를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과정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2002년 5월 세 번째로 동티모르를 방문했다고 한다. 세 번째의 방문은 동티모르의 독립과 정부수립을 축하하기 위한 정부 대표단의 일원으로서였다. 끈질긴 동티모르와의 인연으로 한번도 어려운 동티모르를 세 번씩이나 방문하는 그녀는 과연 한국 여성파워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듯하다. 이처럼 애쓴 보람으로 동티모르가 이제 어엿한 독립국으로 성장해 가고 경제에서도 하루빨리 부강해져 다시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고 기를 바랄 뿐이다. 동티모르 다음 편에서는 우리 상록수부대의 현지 활동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상록수 부대원의 글 [남태평양을 건넌 상록수의 혼]을 소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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