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차, 예전에는 ‘모순’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역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다. 이해되는 게 아니다. 받아들여진다.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은 쉽고 힘들게 고생해서 답을 얻어 올리는 것은 어려운 것처럼, 이성으로 생각하기는 쉽고 삶을 통해 몸으로 얻어내기란 어렵다. 그리하여, 이제는 함부로 세상에 대해, 사랑에 대해,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살아보니까 아니던 걸 어쩌겠는가, 라는 나지막한 자조와 입가의 주름인 듯 보이는 희미한 미소의 의미를 나도 이제는 조금씩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내 위악의 포즈가 내 삶으로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러한 경지가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그림자의 존재는 분명히 자각할 수 있게 된 정도가 되었다고나 할까. 바라볼 수밖에 없는 타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늘 내 삶과는 어긋나는 어떤, 물과 기름 사이의 경계에서 흔들릴 때마다 뒤섞이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밀접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누군가 내 삶을 훔쳐보고 적나라하게 까발리지는 않았는가 하는 무섬증 - 한편으로는 노출을 희망하는 욕망 - 을 느끼게 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가책을 받았다. 이제는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을, 나는 아직도 사랑한다. 그러한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른 여자에게 갈 수 없고, 오로지 내 보호와 관심과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내게는 얼마나 행복하면서도 감사한 일인가. 청소부 일을 하는 나는, 이 거룩한 일을 수행하면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절감한다. 그러나, 내가 이 일을 훌륭하게 수행할수록 남편의 상태는 점점 더 호전된다. 남편이 낫는다면, 아마도 나와 내 사랑하는 아들로 이루어진 이 가정을 버리고 다시, 다른 여자에게 가버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감은 거의 사실처럼 이루어진 것이나 진배없다. 누구나 오늘 잠들면서 내일 내가 눈 뜨게 될 거라는 걸 상투적으로 받아들이듯. 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극진히 간호할수록 남편이 나를 떠나갈 가능성은 높아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헌신과 사랑뿐인데, 오로지 그대를 위해 바칠 뿐인데 왜 내게 돌아오는 건 반복되는 배신과 핍박과 모욕과 이별뿐인가. 나는 청소를 하면서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여자로서, 그리고 여자로써도, 매력을 잃어버린 것이 분명하다고, 스스로를 자책하고 자학해서 기어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마는 무기력한 청소부인 나는, 그러나 남편을 사랑한다. 이 가정을 도무지 포기할 수가 없다. 내가 바라는 건 하나뿐, 그냥 그대가 내 곁에서 내 사랑을 받으면서 이 가정을 유지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이 간단하고 단순한 일을, 왜 그대는 해주지 못하는지, 내가 온힘과 마음을 다해 지켜내고 가꿔온 이 가정과 안락한 일상과 행복을 그대는 어찌해서 싸늘하고도 단순하게 완전히 붕괴시켜버리는 건지, 나는 정말이지 그대에게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다만 내 사랑만을 받아주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이게, 왜 안 되는 것인가! 쉽고 단순한 어휘만으로 만들어내는 거대하고 처절한 여인의 부르짖음. 고요한 일상의 풍경에 서서히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점차 색깔이 진해지고 마침내 모든 게 박살나고 송두리째 뿌리뽑히는 과정이 소설에 드러나고 있다. 로랑 모비니에가 말해주는, 스산하고 초췌하고 아릿한 여인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애잔하고도 원통하다. 사랑이란 이토록 일방적이고도 잔인한 관계를 만들어버린다. 끊임없이 이별에 대해 다짐하고 연습하고 마음먹고 익숙해지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연습은 연습이고, 마침내 닥칠 현실은, 언제나 연습을 무기력하고 초라하게 전락시켜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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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광활한 대륙에서 밀어닥친 차갑고 건조한 바람들이 검은 아스팔트 위를 낮게 깔려 지나가는 순간, 지친 표정들로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를 보았다. 순간 나도 모르게, ‘난 당신을 알아요’라고 큰 소리로 부를 뻔했다. 다행히도 난 황급하게 손으로 입을 막았고 그녀는 날 보지 않고 오던 길처럼 나머지 길도 그렇게 걸어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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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이름을 우습게 여기고 그저 '우리'라 부르면 족했고 그 우리가 모든 기적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우리'라고 부를 일도 없을 것이다.
- 이별연습 中
로랑 모비니에 지음 현대문학 펴냄
웃지 않는다고 해서 슬픈 것은 아니야. 사랑한다고 해서 너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야. 이별했다고 해서 너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야. 눈물 흘린다고 해서 너를 위한 눈물은 아니야. 나를 주고 싶다고 해서 너를 위한 것은 아니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으니까. 그래야만 나일 수 있으니까.
- 주현 -
포인트 1. 가난한 아내의 넋두리. 가난하기에 무지하다. 배운 것이 적기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그가 나를 외면하고 거부해도 내 몸과 마음이 자리잡은 곳이라 어쩔 수 없다... 쫓아내고 쫓아내도 문 밖에 서 있을지라도 하염없이 기다릴 수 밖에 없다...이 것이 가난한 아내의 사랑법이다.
포인트 2. 자식의 시선. 아무 것도 몰랐으리라 여겼던 아들에게 듣는 불륜의 현장을 들켰다면 어떤 기분일까. 물론 아내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남편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기분이란... 슬플까?? 화가 날까?? 어찌할 바를 모를까?? 사형선고마냥 들려오는 무덤덤한 아들의 말투가 비수를 꽃는다...
포인트 3. 남편의 외도. 청소부라는 비천한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해주는 아내를 버려야만 했을까?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는데, 아내만을 사랑할 수는 없었나?? 남편의 심리가 전혀 없기에 상상으로만 이해해야했다. 오직 아내의 넋두리이기 때문에... 병원 입원 소식에 찾아간 남편의 싸늘한 시선은 아내를 못 박아버렸다...그럼에도 못을 하나둘...박히는 고통에도 끊임없이 간호를 하며,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출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며...가난하기에 무지하고, 사랑하기에 무지한 한 여자를 보았다.
포인트 4. 작가의 뛰어난 글 실력. 구성을 가난한 아내의 넋두리로 정해서인지 그 아내가 쓰는 단어는 한정적이다. 뚝뚝 끊어지는 감정 표현들.
<이별연습> 中... 그리고 좋아 미칠 지경이었다. 그가 저기 있고, 내가 모든 것을 주고, 베풀 수 있으며, 영원히 웅크리고만 있으라고 요구받았던 내 품을 그를 위해 활짝 펼 수 있다는 것은, 그에 의해서 매일 취해 있는 것과 같았다.
다 읽고나서야 알았다...그녀의 사랑법이 나와 너무도 흡사하기에...우는 내내 눈물이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평가 - 할 수가 없습니다...다만 너무 가난한 반쪽사랑 이야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