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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4명의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책을 덮고 비닐 봉다리라는 애를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나오는 눈물을 억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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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계속 살아가면서 느끼는 거지만 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이 없이 나 홀로 살아가야만 됐다면 나는 지금처럼 안정적인 또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가장 마음이 와닿았던 구절이 있다. '무엇보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더욱 힘겹다. ' 사람은 환경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런 환경이 아니었다면 그의 말대로 그런 대접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은 나도 그 누구도 그런 상황에 그렇게 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딴 세상 사람들 보듯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더욱이 아직은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이고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청소년들에게는 말이다.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읽고 한번 더 깊게 생각해 봤음 하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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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꼭 봐야하는 책이다...
전에 뉴스에서 수원에서 노숙소녀가 구타당해 사망한 사건을 봤을때도, 철없이 집나와서 저런일을 당하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링크가 길거리에서 홈리스생활을 하는 모습과 마음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실제 내가 경험하는 느낌을 갖게 만들면서......슬픔과 외로움등이 전해져왔다... ㅠ ㅠ 연쇄살인범 얘기까지 가미되어, 책을 읽는 내내 긴장감에 눈을 떼지 못했다. 홈리스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책으로 그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보게 됨으로써, 무척 흥미로웠고......전과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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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근처나 공원 등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노숙자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쾌함과 '나와 전혀 상관없다는' 이질감 때문에,,, 게다가 '무책임하게도 일찌감치 삶을 포기한 한심하기 그지없는' 그들에 대한 편견 때문에,,, 나는 선뜻 맘을 열지 못한 채로 이 책과 마주하게 되었다. (설상가상도 유분수지 거기다가또 연쇄살인범이라니,,,-.-;;) 다행히(?) 이 책은 <사라지는 아이들>이란 제목을 달고 있었고, 그건 노숙을 하는 이가 아이(청소년)라는 전제를 내포한 것이기에,, 가정폭력, 가출, 홈리스, 연쇄살인범,,, 어느것 하나 썩 내키지않는 명제들을 뒤로하고,, 나역시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써의 일말의 호기심을 밑천으로 책장을 넘겨 볼 수 있었다.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난 마치 단거리 달리기시합을 하듯,, 숨이 가빴고,,가슴이 아팠고,, 마음속에 휑하니 부는 찬바람을 끝으로,, 어느새 결승테이프를 끊어버렸다.
하루하루 부랑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처절한 경험들,, 그들만의 힘으로는 절대 멈출수 없는 쳇바퀴 속에서의 안타까운 몸부림,, 절망,, 그에 반해 그들을 시멘트 바닥에 눌러붙은 더런운 껌딱지 정도로 여기는(내가 그랬듯이),, 그래서 언제든 깨끗하게 싹싹 긁어내버리면 그만이라는 듯, 무관심하다 못해 냉혹한 사회,,,를 나는 링크와 쉘터의 눈을 통해서 적나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맘이 많이 언짢았고,, 화가났고,, 또 미안했다..
무관심했든 애써 외면했든,, 그건 우리의 문제이기 때문일까... 우리들 모두가 한두 가지씩 가지고 있는 상처들,,, 그것들이 하나로 응집된 실체와 맞딱뜨렸기 때문일까...
아이들은(어른 노숙자도 마찬가지겠지) 스스로 나간게 아니라,, 밀려난 것이고,, 내몰린 것이다.. 우린 그걸 이해하고 인정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론 밖은 한없이 어둡고 차갑다.. 빛도 끝도 없는 굴속과도 같다.. 그 굴 속에 작은 출구하나 아니 작은 전등하나라도 마련하여,, 그들이 더디게라도 그 빛을 향하여 한걸음씩 내딛게 하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닌지...
<사라지는 아이들>은 그러한 묵직한 숙제를 우리에게 던져 놓음으로써,, 우리가 미리 공책을 펴고 연필을 깎을 시간을 마련해 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사라지는 아이들>은 마치 살벌한 영화 한편 속에서 어서 눈치를 채라고 굳이 집어넣어주는,, 복선과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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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 애의 부모 역시 한없는 사랑을 베풀었을 테고, 예쁜 이름을 지어주며 우리 아기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겠지. 그런데 그 예쁜 아기가 자라 비닐봉다리라고 불리며 먹다 남긴 음식으로 연명하다가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만, 신경 쓰는 이 하나 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1993년 "카네기 수상작"이라는 것과 더불어 가정폭력, 가출, 홈리스, 연쇄 살인범이라는 소재 자체가 책을 읽기 전부터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냉혹한 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 소년의 차가운 독백"이라는 문구처럼, 그 자체가 얼마나 냉혹한 현실인지 먼저 다가와서 였을까.. 우리 주변에서도 가출한 청소년들을 많이 볼 수 있고 그들이 사회적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명 문제아라고 하는 청소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출을 한 청소년, 술, 담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아이들, 폭력과 약물에 중독된 아이들도. 청소년의 시기를 누구나 한 번쯤 반항할 수 있는 시기라고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난 이런 청소년들의 문제를 그들 자체로서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했던 과목이 사회 영역이었는데, 항상 담당과목 선생님께서 이런 주제를 사회를 통해 바라보고 토론하는 시각을 참 좋아했었다. 대부분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은 화목하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많다. 물론 부유하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지만 어긋나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아이들은 술을 많이 마셔 알콜 중독에 걸려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랐거나, 폭력과 학대를 당했거나, 너무 가난한 집안 형편에 견디지 못해 어긋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의 "링크" 역시 그런 경우에 속한다. 링크가 열네 살, 중학생이 되던 해에 아빠는 안내원과 도망을 가고 엄마에게는 새로운 남자친구인 빈센트가 생겼다. 엄마에게 애인이 생기고 나서는 아이들에게 착실하던 엄마의 태도도 달라지기 시작한다. 빈센트는 술꾼이었으며, 난폭하게 행동하며 링크를 쫓아내기까지 한다. 이로써 링크는 자발적 노숙자가 되었다. 링크보다 네살이 많은 누나 캐롤 역시 빈센트와의 좋지 않은 관계로 집을 나와 남자친구와 함께 지낸다. 캐롤이 남자친구와 함께 지내기라도 한 반면, 링크는 갈 곳이 없었다. 집을 나와 갈 곳 없던 링크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구걸을 했지만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비참한 것이었기에 쉽지 않았다. 그런 링크에게 엄마는 집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아니라 누나와 돈을 모아 침낭을 선물한다. 링크는 완전한 노숙자가 된 것이다.
원래 생활하던 곳에서는 아는 사람이 많아 구걸이 어렵자 침낭을 들고 런던으로 향한다. 2주 정도는 가지고 간 돈으로 숙소를 정할 수 있었지만 자발적 노숙자로 규정돼있는 링크는 사회보장국에서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길거리의 아이들로 전락하게 된다. 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링크였지만 같은 옷을 계속 입고 다녀 더러워진 차림새와 악취는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악순환을 만든다. 그렇게 거리에서 생활을 하게 된 그는 진저라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 구걸을 배우고 우정도 나누며 차츰 그 생활에 익숙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진저의 친구의 '비닐봉다리'라는 친구가 사라지고, 이어서 진저까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진저가 자신을 버리고 다른 친구들을 따라갔을 거라 생각하던 링크는 또다시 '토야'라는 소녀가 사라지고 어떤 남자를 따라갔다는 말에 이상한 상황을 알게 된다. 그때쯤 새롭게 사귄 너무나 아름다운 케일이라는 여자친구와 함께 그 의문의 남자를 찾아 나선다. 과연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리고 케일의 숨겨진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의 구성은 조금 독특하다. 목차에 '근무일지'라고 나오는 것은 연쇄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을 살인범의 독백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집에서 쫓겨나 홈리스가 된 링크의 독백으로 거리의 생활을 이야기하는 것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자신의 상황을 슬퍼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덤덤하게 이야기하는 링크의 독백이 읽는 사람에게는 그 아픔을 더욱 증가시킨다. 이 세상을 욕하면서 원망이라도 한다면 덜 슬펐을지 모르겠으나 차분한 그의 감정이 섞이지 않은 차분한 말투가 상황을 더 아프게 만든다.
더러워진 차림새로 다가가면 무슨 요구나 할까 봐 피하는 사람들과 자신이 의도하지 않고 집에서 쫓겨났지만 사회에서 그들은 자발적 노숙자로 취급당하며, 사회의 악으로까지 취급받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펐다. 열네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은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들며, 그들이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조차 없는 사회의 모습이 냉혹하기만 했다. 살인자의 이야기는 꼭 추리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얇은 책이었지만 우리 사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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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은 가정의 파괴로 인한 청소년들의 방황과 번민을 그린 소설이다. 부모의 이혼 후 새아빠로부터 받는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여 거리에 내앉게 된 소년 링크의 노숙 생활을 처연하게 그리고 있다.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구걸과 노숙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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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가출로 어머니는 새아버지 빈세트와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고 그렇게 링크의 인생은 새로움을 맞는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남기는 것도 따따뜻한 개인 침대에 자는 것도 늘상의 일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새아버지의 폭력으로 집을 나간다. 누나가 준 몇푼으로 집을 나갔지만 그에게 따뜻한 곳은 어느 곳도 없었다. 그렇게 링크는 홈리스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책 속에서는 두사람의 독백이 존재한다. 링크의 삶과 또 하나의 차가운 시선을 지닌 군인 그렇게 그들의 삶은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서서히 둘은 연관성상에 놓이게 된다. 길거리 생활에서 가장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던 친구의 실종으로 차츰 그는 길거리에서 하나 둘 사라지는 아이들의 이유의 중심에 놓이게 된다. 점점 사라지는 아이들 어느 누구의 관심조차 받을 수 없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친구 게일을 만나고 홈리스 생활에서의 작은 행복함을 느낀다. 정신병자의 엉뚱한 행동에 하나 둘 사라지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두는 이는 링크 자신뿐이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점점 더 많아지는 노숙자와 구걸인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찾아 볼 수 없으며 모두들 왜 일자리를 찾으려 하지 않지??하는 따가운 시선들뿐이다. 자신이 다니는 거리에 언제나 있는 부랑자가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이는 없다. 우리 사회도 가정불화, 폭력등의 이유로 점점 더 청소년 가출이 늘고 있다고 한다. 어느 누가 관심있게 봐주지 않는 거리에 나서는 아이들의 안전은 어느 누가 보장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제보다 더할 수 없이 힘든 날일지라도 너무 추워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거리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주인공 링크와 거리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곁에서 하나 둘 집을 뛰쳐 거리로 나가는 청소년들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가정폭력, 불화등이 없는 가정을 만들고 좀 더 따스함으로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고민하게 된다. 홈리스의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책이다.
사진은 우연히 뉴스 기사를 보는 중에 알게 되었는데, 제품은 디자이너 배리 쉬한과 그레고르 팀린이 함께 만든 것으로 이름은 '쉘터 카트'라고 한다. 책속의 정신 나간 군인이 자신을 쉘터라고 불렀는데 과연 그는 폭풍을 피해 쉴 수 있는 쉼터였을까? 아마 자신만의 오만이고 욕망이었겠지. 사진속의 카트는 노숙자 등 도시 빈민을 위해 만들어진 이동식 카트라고 한다. 바퀴로 땅 위로 조금 떠 있게 만들어 땅의 찬기운으로 부터 보호도 하고, 집이 없는 이들에게는 비록 따뜻하지는 않지만 정말 좋은 쉼터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저것 마저 마케팅의 역할로 가격이 비싸진다면 진정으로 필요한 이는 이용할 수가 없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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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은 정말 더웠다. 입추도 지나고, 말복도 지났건만. 이렇게 더운 날씨는 진짜 간만이었다. 서론이 길었다.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또 다른 하나는 노숙자들만 노리는 연쇄 살인범 쉘터의 이야기.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본 우리나라 노숙에 대한 프로그램이 생각난다. 이젠 청소년 가출이나 노숙, 노숙자 범죄(노숙자들이 행하는 범죄까지 포함해서)는 더 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신나게 물놀이하는 내 아이의 환한 웃음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려면 우리 모두가 나서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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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집에서 보살펴주는 부모님이 없거나 가출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그들의 사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기에 한편으로는 불쌍해 보이면서도 왜 저런 생활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책은 거리에서 생활하는 소년 링크와 연쇄 살인범이 주인공이다.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하여 링크는 엄마의 남자친구 빈센트와 많은 갈등이 생기게 되자 결국 추운 겨울날 집을 나오게 되고 길거리에서 생활하게 된다. 어린 소년 링크는 사회복지국에 가서 개인 사정 등을 이야기하거나 일자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고 길에서 구걸하여 숙식을 해결하는 노숙자로 불리는 부랑아가 된다. 거기서 만난 진저는 링크에게 길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며, 친구와 동반자로서 함께 생활한다.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대해서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고, 링크는 진저에게 의지하며 지내게 되지만, 어느 날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헤어진 후로 진저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된다. 길에서 생활하는 것이 진저가 있었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그가 사라지고 나서야 링크는 깨닫는다. 길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하나 둘씩 처단하는 군인 출신의 연쇄살인범의 등장은 꽤 끔찍하다. 자신이 퇴역당한 이유를 알코올 중독자, 범죄자와 노숙자들이 넘쳐나게 하여 추악한 세상으로 만들려는 음모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는 길거리의 부랑아들을 쓰레기라 취급하며 그들을 없애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의 이름은 쉘터(쉼터)라 짓는다. 연쇄살인범에 의해 하나 둘씩 사라지는 아이들. 살인자가 그들을 없애고자 하는 이유는 그 아이들을 사회의 약자로 보기보다는 인간 쓰레기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본문을 살펴보면 링크의 이야기와 쉘터의 이야기(그가 쓴 근무일지)로 나뉠 수 있다. 따로 따로 읽어나가도 괜찮다. 이 책에 주요 등장인물들은 본명이 아닌 각자가 지어 부른 이름들이다. 연쇄살인범 쉘터는 너무나도 위험한 시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는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쉘터의 시각을 가진 사람들, 부랑아에 대한 선입견들을 고치기 위함이 이 책이 지어진 목적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작가 로버트 스윈델스는 영국의 청소년용 소설을 쓰는 유명한 대표적인 청소년 작가로 청소년에게 가장 신뢰할 만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실제로 사흘 동안 노숙을 하며 지냈다고 하니, 이 책이 노숙자들의 상황을 아주 생생하고 자세하게 그렸다는 것에 이의를 달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길거리의 아이들을 비난하는 욕이 아니라 그들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마음 그리고 따뜻한 시선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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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의 노숙자를 보게 되면 두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지저분하고 피곤한 표정을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기를 바라고, 괜히 나한테 해코지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게 된다. 불량 청소년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어릴 때에는 잡혀서 돈을 뜯길까봐 무서웠고 지금은 괜한 시비에 휩쓸리까봐 두렵다. 나이가 들수록 가진 것, 지켜야 하는 것들이 많아져서 걱정거리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 반대로 노숙자, 청소년들은 더이상 손해볼 것도 없어 무슨 행동을 보일지 예측할 수 없다. 청소년 노숙자는 최악의 케이스다. 나름대로 의욕을 가지고 잘 살아보고 싶어하지만 직장 하나도 구하기 어렵다. 말쑥하게 차려입고 실력도 있는 구직자들과는 비교가 안된다.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니 타인에게는 오죽할까? 의도하지 않게 사회에서 배척당한다. 처음부터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청소년은 사회의 경계를 넘나든다. 일용직을 전전하거나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간다. 한 번 휩쓸리면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모래지옥과도 같은 인생이다. 얼마전 수원에서 한 여학생의 사망 사건이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집에서 가출한 여학생은 청각/시각 장애가 있었는데, 같은 가출청소년들이 그 학생을 1시간 동안 떄려 숨지게 했다. 1년이 넘게 진행된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초기에 범인을 잘 못 지목했고,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상당히 오래 걸렸다. 여학생의 신원도 파악하지 못해 어쩔수 없이 사진을 뉴스와 인터넷에 공개해야 하는 등 여러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가족/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할 경우, 그 여학생 같은 신세가 된다는 말이다. 만약 이 소설처럼, 계획적으로 접근한 살인자라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 난해 5월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노숙소녀’ 살해사건의 범인들로 밝혀졌던 10대 가출 청소년 4명에 대해 실형이 선고됐다.. 최군 등은 지난해 5월14일 새벽 2시께 수원역 대합실에서 김양이 자신들의 돈 2만원을 훔쳤다고 의심해 추궁하다 김양을 S고등학교로 끌고가 1시간 동안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지난 1월 기소됐다. http://www.kukinews.com/news/article/view.asp?page=1&gCode=soc&arcid=0920973496&cp=nv 모 든 노숙자들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가정이 문제일 수도 있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의 희생자일 수도 있다. IMF 이후 늘어난 비정규직, 신용카드대란 이후 신용불량자가 된 20-30대는 누구도 바라보지 않는다. 직장의 취업문은 좁아지고, 사회의 시선은 따가워진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게 없어 공무원 시험을 공부하지만, 젊은 나이에 철밥통만 바라본다고 비난만 받는다. 대학까지 나와서, 부모가 기껏 키워줬는데도 자기 앞가림 하나 못한다고 구박이다. 하지만 그건 그들 책임이라기 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이다. 경쟁만 부추기는, 무한 경쟁사회에서 앞서나가라고 비난하는 구경꾼들의 책임이다. 과거처럼 그냥 시키는 일만 하면 되는 그런 사회가 아닌데, 어른들은 쉽게 살아온 자신들의 경험만 강요하며 청소년을 비난한다. 현 재 늘어나는 젊은 노숙인들은 IMF위기 이후 경제활동을 시작한 세대이다. 정규직·호봉직 일자리는 급격히 줄어들어 안정적인경제력확보는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고, 계속되는 경기불황과 중소기업의 줄도산은 저학력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 근근이경제활동을 해나가던 젊은이들도 2003년 신용카드대란 이후 대거 신용불량자의 낙인이 찍혀 노숙자로 내몰렸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55&aid=0000135727 개 인의 잘못이라 볼 게 아니라, 교육/경제/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자명하다. 정부나 기업들이 이들을 돌봐주어야 한다.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기본적인 숙식을 제공하여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해야 한다. 이타적인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운운하지는 않겠다. 우리나라의 부자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그보다 나는 이기적인 이유를 들고 싶다. 바로 그들의 재산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자하라는 것이다. 왜냐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유지하는 이 사회를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사회 범위 내에서 그들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록 그들의 부와 권력은 더욱 위험해진다. 도둑과 강도가 들끓는 거리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친절한 거리에서 살 것인가? 폭동이나 반발이 일어나면 그들의 부와 권력은 무용지물이 된다. 나는 미국에서 기부와 봉사가 많은 이유가 이 때문이라고 본다. 복지국가가 부유한 이유도, 부유하기 때문에 복지를 많이 한다고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복지가 잘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부를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쉽게도 한국의 부자들은 전혀 반대이다. 하위 10% 소득계층보다 더 적게 기부하는 상위 10%가 존재한다. 우리 사회는 조만간에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부자들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미 생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에는 관심도 없던 시민들이 들고 나온 촛불 하나, 살수차와 곤봉으로 진압하는 경찰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주소다. 베트맨의 고담시가 될 것인지, 노르웨이나 스웨덴같은 복지국가가 될 것인지 궁금하다. 그러나 2008년 현재, 국민 총 GDP 세계 11위의 대한민국은 하위 10%의 소득계층이 상위 10% 소득계층보다 더 많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으로 파악돼 충격을 주고 있다. 14일 본지가 2007년 4/4분기 통계청 가계조사(전가구) 및 국세청 소득별 기부금 신고현황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 계층이연 소득의 6.12%를 기부하는 반면 하위 10% 계층이 연 소득의 9.8%를 기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남을 돕는 것에 더 적극적이라는 것이다. 사회복지단체 관계자는 “GDP 대비 2.1%의 기부문화를 가진 미국이나 1.4%를 가진 이스라엘 등에 비해 국내 기부 현황은 GDP 대비 0.125%에 불과, 기부문화가 유난히 폐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3&aid=0002188151 제작진은 "소위 '강부자' 정부는 이미 서민경제 대책에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줬다"며 "'친 기업적' 정책으로 가진 자들을 옹호하고 서민 경제에 대한 배려는 실종된 지 오래"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제작진은 구조적 해결은 차치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노숙자로 몰리는 것을 막는 최소한의 안전망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POD&mid=etc&oid=055&aid=0000135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