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천득씨와 그의 수필에 대한 찬사는 오랫동안 들어왔다. 재작년엔가 'TV책을 말한다'프로그램에서 아사코를 찾았다고 피천득씨를 초대해서 특집 비슷하게 방송을 한적이 있다. 그 방송을 본 솔직한 내 심정은 그 프로그램에 대해서 오랫동안 가져왔던 신뢰에 대한 손상이었다. 피천득씨의 인연.. 이 책은 한 때 교과서에서도 수록되었고 (지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 사람들이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서 한 번정도는 읽어봤을 수필이다. 이 수필에 대한 찬사도 많다.. '한국 수필문학의 백미 등..' 심지어 그의 과작에 대한 찬사까지 본 것 같다. 그런데 이 수필이, 아니 넓게 봐서 피천득씨의 수필이 그렇게 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내가 워낙 우매해서 그런지 몰라도 난 그의 책을 아무리 읽어봐도 아무런 감흥이 오지 않고 오히려 문제점만 보였다. 해방이 되고 피천득씨가 아사코를 세번째 만났을 때 즈음.. 그 수필에 등장하는 일본인은 피천득씨에게 한국의 독립을 '치하'한다고 했다. 물론 국어사전적 의미로 치하는 꼭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사용하는 말이라고 단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거의 윗사람이 아랫사람보고 하는 말로 사용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일본인의 입에서 우리의 독립을 '치하'하며 피천득씨는 수필속에 그런 어휘를 썼는가? 아마 그 일본인은 일어로 말했을 터이니 피천득씨 자신이 정말 '치하'라고 생각해서 썼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 문제가 아닌가?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의 수필을 보면 일제시대가 평온한 태평성대로 보인다. 아무리 수필이 개인적인 사변을 늘어놓은 글이라지만 시대와 유리될 수는 없을터인데 그 당시 민족의 아픔에 대해 쓴 글이 하나도 없이 오로지 그의 딸과 어머니에 대한 집착만을 보여주는 글, 일본여자의 아름다움을 늘어놓은 글들만 있는가? 피천득씨는 분명 자신이 받아야 할 평가보다 훨씬 더 찬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앞으로는 그에게 걸맞은 올바르고 객관적인 평가가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다. |
| 과연 문학이란 무엇일까? 몇 십 단어로 문학이라는 명제를 설명해 낼 수 있을까? 문학개론에 등장하는 문학의 정의는 수십개가 넘는다. 마치 교육은 무엇인가, 철학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처럼 그 다루는 문제가 광범위하고 조금은 모호해서 명쾌한 정의는 곤란하다. 간단하게, "언어로 쓰여진-독자에게 감동과 재미를 주는 글"이라고 일단은 생각하자. 그럼 과연 문학은 무엇을 내용(컨텐츠)로 하나? 남녀사이의 흔해 빠진 사랑, 전쟁, 역사, 때로는 동물, 神, 범인과 경찰, 가당치 않은 괴물과 악령도 내용이 될 수 있다. 피천득선생의 "인연"은 젊은 시절, 한 여학생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아주 섬세한 감정으로 그린 수작이다. 그래서 교과서에까지 수록되었고 지금까지도 좋은 글로 평판받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지워지지 않는 의문이 있다. 만약 피천득선생을 직접 만난다면 꼭 물어 보고 싶은 질문. 1. 선생이 태어나고 활동하던 시대는 분명히 일제시대였는데 선생께서는 혹시 독립운동을 하셨는지. 2. 그당시 많은 분들이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했고, 일부는 남의 나라 전쟁터에 끌려가 죽기도 하고 또 적지 않은 여성들이 평생 지워지지 않는 치욕을 당했는데 그 당시 선생께서는 무엇을 하며 소일을 하고 생계를 유지 하셨는지. 선생께서 그 소녀를 통해 미묘한 감정을 느끼는 동안 이 땅의 여성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 난 줄 아십니까? 3. 선생께서는 이 땅을 차지한 점령국의 소녀-물론 우리나라 소녀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예쁘고 이국적인 소녀에게서 식민지배하의 슬픔을 배제한 채 이성적인 매력만을 철저하게 분리해 느끼셨는지. 어떻게 독립의 기쁨과 환희를 쓴 구절은 그 글중에 하나도 없는지. 4. 선생께서는 혹시 과거 서대문 형무소나 독립기념관에 가 보신적 있는지. 앞으로 혹시 갈 의향이 있으신지. 5. 선생께서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고 조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시 혼동이 온다. 과연 문학은 무엇인가. 또 문학은 얼마나 이 세상과 격리될 수 있는가. 현실을 100% 무시하고 순수한 개인의 감정만으로 글이 묘사될수 있는가. 또한 언론은 얼마나 시류에 영합적인가? 때로는 이성이 없는 자동차 처럼 한번 뜨면 띄우기에 바쁘다. 그것은 tv나 신문이나 마찬가지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도 저자는 이슬람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늘어 놓고, 어떤 신문사에서는 비평은 한마디 없이 그져 좋은 책이라고만 늘어 놓고. 아마 그 책의 저자는 코란을 한번도 읽어 보지 않은 위험한 작가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의 중,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 시간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한손에는 코란, 한손에는 칼" 도대체 그 주장의 출처와 근거는 어디인가? 코란의 어디에 "이슬람을 믿지 않으면 죽여라" 그런 구절이 있단 말인가? 최근 새삼스럽게 어떤 tv에서 떡하니 그 일본 소녀의 사진까지 추적해서 피천득선생을 모시고 독자와의 모임을 마련했다. 안타까운 것은 어느 누구하나 이의를 달지 않고 또 질문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내심 약간은 거북한 이 질문을 누군가 해 주기를 바랬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tv도, 기자도, 독자들도 얼마나 문학자체에 몰두할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놀라운 일이었다. 오히려 나 자신이 쓸데없는 엉뚱한 궤변으로 시비꺼리를 만들어 내는 싸움닭으로나 찍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뿐이다. |
| 수필을 쓰는 사람의 마음은 검소함에 있다고 생각된다. 검소함은 겸손한 마음을 갖게 하며 글에 묻어나는 삶의 철학이 나오는 듯 하다. 피천득님의 글에는 삶의 궁핍이 전혀없다. 편안함과 잔잔함이 책 전체에 흐르고 있다. 그리고 유유상종일까? 피천득님과 만나는 사람들도 검소하고 겸손하며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삶의 여유는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상관없이 마음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 생각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 속에 삶의 철학과 생각이 녹아있고, 어록들이 뭍어있는 수필을 읽을 때면 분석하기 보다는 물 흐르듯 그 속에 젖어들고 싶다. 그러나 분석하면 할 수록 그 깊이와 문장의 흐름에 더욱 놀라게 한다. 단순하게 씌여진 것 같으면서도 사건의 전개나 소재의 변화가 이어지는 피천득님의 글은 천재 글쟁이의 작품이라 할 수있다. 글을 읽고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
|
春
1991년 나 고2때 종합시장에서, 범우사에서 나온 피천득님의 <수필> 이라는 책을 천원 주고 샀었다. 지금도 이책을 가지고 있다. 얼마전 피천득님께서 생을 달리하셨다. 나의 봄 같던 청춘이 떠올랐고, 슬펐다.
그 수필집 중 유달리 좋아했던 '봄' 나는 이 수필을 읽고 지금까지도 계절 중에 봄을 제일 좋아하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인생은 빈 술잔, 주단 깔지 않은 층계, 사월은 천치와 같이 중얼거리고 꽃 뿌리며 온다.' 이러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렇게 읊은 시인도 있다. 이들은 사치스런 사람들이다. 나같이 범속한 사람은 봄을 기다린다. 봄이 오면 무겁고 두꺼운 옷을 벗어 버리는 것만해도 몸과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름살 잡힌 얼굴이 햇볕 속에 미소를 띄우고 하늘을 바라다보면 날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봄이 올 때면 젊음이 다시 오는 것 같다... (중략)...
젊음은 언제나 한결같이 아름답다. 지나간 날의 애인에게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게서는 안타까운 미련을 갖는다. 나이를 먹으면 젊었을 때의 초조와 번뇌를 해탈하고, 마음이 가라앉는다고 한다. 이 '마음의 안정'이라는 것은 무기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사물에 대한 무관심을 말하는 것이다. 무디어진 지성과 둔해진 감수성에 대한 슬픈 위안의 말이다. 늙으면 플라톤도 '허수아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높은 지혜도 젊음만은 못한다. '인생은 40부터'라는 말은 '인생은 40까지'라는 말이다.... (중략)...
"나비 앞장 세우고 봄이 봄이 와요"하고 부르는 아이들의 나비는 작년에 왔던 나비는 아니다. 강남갔던 제비가 다시 돌아온다지만 그 제비는 몇 봄이나 다시 올 수 있을까? ...(중략)...
민들레와 바이올레트가 피고 진달래와 개나리가 피고, 복숭아꽃과 살구곷 그리고 라일락과 사향장미가 연달아 피는 봄, 이런 봄을 40번이나 누린다는 것은 적은 축복이 아니다. 더구나 봄이, 40이 넘은 사람에게도 온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것이다. 녹슬은 심장도 피가 용솟음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물건을 못 사는 사람에게도 찬란한 쇼윈도는 기쁨을 주나니, 나는 비록 청춘을 잃어버렸다 하여도, 비잔틴 왕궁에 유폐되어 있는 금으로 만든 새를 부러워하지는 앟겠다. 아아, 봄이 오고 있다. 순감마다 가까와 오는 봄! |
| 학생때 교과서에서 피천득님의 수필을 읽었다. 그 내용이 너무나 기억에 생생해서 피천득님의 수필집 '인연'을 보게 되었다. 역시...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글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사실 나는 수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그렇고 그런 신변잡기에 지나지 않는 글들로 채워져 있는 수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교과서에 나오는 수필외에는 그다지 읽을만한 것이 없구나... 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된 수필집에서 수필의 진수를 발견한 것이다. 나에게 이 책은 단순히 좋은 책이 아니라 수필문학이란 것이 정말 가치가 있는 문학장르라는 것을 깨닿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된 책이다. 뒤늦게 새로운 세게에 눈을 뜨게 된 기쁨이란... |
| 참으로 오랜만에 문학분야의 책을 접한 듯 하다. "수필은 청자(靑瓷)연적이다"로 시작하는 <수필>을 비롯해 <인연>과 같은 작품은 고등학교 문학책이나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많이 접하였지만, 피천득님의 작품을 교과서 외의 책으로 읽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필은 읽기쉽고 쓰기쉬운 글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피천득님의 책을 다 읽고보니 진정한 수필은 청춘의 글이 아니요, 서른여섯 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라는 선생의 말이 이해가 된다. 읽는 동안 참 마음이 맑아졌다. 딱딱한 책들만 접하다가 오랜만에 순수 문학작품을 접했던 탓도 있겠지만, 피천득님의 섬세하고 유려한 표현들에는 어찌 그런 따뜻함이 숨쉬고 있는지... 세상을 너그럽고 여유있고 소박하고 아름답고 겸손하게 바라보는 그 글들이 아름다워 읽는 내내 여러번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또 딸 서영이에 대한 사랑은 어찌 그리 지극한지. 이 책은 내 마음이 너무 버석버석하고 건조해졌다고 생각이 들때 다시 한번 펼쳐볼까 한다. 오늘 읽었던 부분 중 <토요일>이라는 수필에 이런 표현이 있다. "시간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에 인색하지 않다." 암.. 그렇고 말고...토요일>인연>수필> |
| 인연 .. 누군가와 인연이라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날 선물하기에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신과 인연이라서 행복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걸 알아준다면 더더욱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에게 정말 좋은 선물이 되는 책입니다. 책 상태는 정말 별로이네요 ..ㅜㅜ.... 선물하기에 좀 민망할 정도로 많이 너덜너덜 .......했습니다 ㅠㅠ... 인터넷 서점의 한계인가요 !?!? 선물용은 직접 서점에서 제품의 품질을 눈으로 보고 주문하시는게 좋을 듯 합니다 .. 여기서 사시려면 직접 읽으실 때에만 .. 민망합니다 ... |
|
모든 사람들이 격찬을 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명저라고 손꼽히는, 피천득의 <인연>. 이걸 왜 이제서야 읽었나 싶은 생각도 있지만 내가 이걸 왜 봤을까 하는 후회 내지는 실망감 또한 없지 않다. 조개 속에 진주 알을 품고 있는 하이얀 표지. 티비 드라마나 영화, 책 소개 프로그램에서도 많이 봤다. 너무 흔하게 등장하고, 흔하게 소개되는 책이라 마치 읽지 않고도 읽은 것처럼 느껴지는 책이기도 하지만, 난 안읽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구입해봤다. 사실 개인적인 관심이라기보다 선물용으로 어떨까 싶어서 먼저 내가 읽어보고 괜찮으면 선물하려고 했던 건데 별로였다. 그런데 왜들 그렇게 칭찬을 해대는건지. 우리나라 수필의 교과서네 어쩌네 하는데 글쎄 문장력 때문인가.
소설보다 난 이런 수필류를 더 좋아하는데 <인연>은 그렇게 마음에 와닿는 수필은 아니다. 옛날분께서 일기처럼 쓰신 글이라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지극히 '개인용'이다. 물론 글이 나쁘지는 않다. 글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깊이있게 쓰여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나 하나의 상품으로 되어 독자들의 손에 들어온 텍스트가 독자에게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나에게는 별다른 의미를 전달해주지 못한 책. |
| 좋은 글을 읽는다는 건 가슴 벅찬 커다란 행복이다.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을 읽으며 그와 같은 행복을 느낀다. 또한, 욕심이 생긴다. 나 역시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단 욕심이... 아울러 글을 맛깔 나게 써내려 가는 그 재능에 부러움이 인다. 하지만, 그의 글이 글쟁이의 재능 탓 만일까? 아니리라! 그의 소탈하면서도 간결한 언어들이 저자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하여 우러나왔기에 그만한 힘을 가진 것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짧은 글들이지만, 책장을 덮은 후에도 한참 동안을 글을 읽어 가는 행복에 빠져있게 하는 글들이다. “작은 놀라움, 작은 웃음, 작은 기쁨을 위하여 글을 읽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그의 글들은 삶의 기쁨을 누리게 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다. 나의 삶 역시 그의 글처럼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삶이라면... 또한 가난과 부유함을 초월하여, 궁색함을 잃지 않는 여유가 있다면... 언제나 그처럼 아름다운 글들과 함께 하는 삶일 수 있다면... 삶이 메말라지고 생기를 잃어갈 때마다 이 책을 들고 아무 곳이나 펼쳐지는 곳을 읽어 내려감으로 삶의 향기를 되찾는 시간들이 되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