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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0장부터 독자를 당황하게 한다. 망설였다. 아니, 오히려 한기에 떨었다. 나는 호텔 객실 전용 식당에서 열리고 있는 파티로 불쑥 쳐들어갔다. 첫 문장이다. 그러나 화자는 인간이 아니다. 정령도 아니다. 작가의 눈일 것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소격효과를 노린 것인지. 영 구색이 안 맞는 글이다. 처음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참고 읽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빌렸고 포기하고 만다면 며칠을 두고 후회하고 나 자신에게 낙심하는 것을 어쩌랴. 만만한 책이 아니다. 그냥 맹송 맹송한 맹물로 쓴 글이 아니다. 피로 쓴 글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문득 마그리트 유르스나르의 문체를 연상하게 하는 구절이 띄기도 한다. 솔직히 외국 책을 읽어 100% 완전무결하게 이해한 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어차피 외국인들과 감각체계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니 이해하지 못한다고 억울해 할 것은 없다. 주인공 마리냐(헬레나 모드예스카)의 이력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 시엔키비치가 아메리카에 머물렀다는 사실은 인터넷에서 확인됐다. 그 남녀가 폴란드에서 동시에 아메리카로 간 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수전 손택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소설에 불과할까. 어디까지 소설이고 사실인지 밝혀낼 수 없다. 이런 것을 보면 인터넷이 한갓 어린애 수준이라는 말에 긍정하고 싶다. 폴란드의 애국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공산주의식, 푸리에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다 실패한다. 농업에서 실패한 주인공 마리냐는 용의주도하게 2달간의 영어 발음 교습을 받고 연극으로 진출해 성공한다. 대대적인 성공. 따라서 소설은 소설이기를 거부한다. 연극이 되고 희곡이기를 마다하지 않으며, 연극의 주인공들이 소설 속에서 소설 속으로 횡단한다. 마치 소설 속에서 미국 대륙을 횡단하듯. 주인공은 무지무지한 복을 타고 태어난 여자다. 연극을 아는 전남편을 만나 희랍어를 배우고 섹스피어, 라신, 입센, 세계적 고전희곡을 섭렵한다. 처음부터 세계적 배우가 될 충분한 토양을 가질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그녀의 두 번 째 남편도 마찬가지다. 폴란드 백작이란 부유한 귀족, 배고픔에서 애초부터 해방된 여자다. 마지막 연하의 연인 리사드 - 시엔키비치의 화신. 그녀는 행운의 3명의 남자와 더불어 인생역정을 펼쳐 보인다. 아니 거기다 미국 굴지의 배우 에드윈 부스가 있다. 링컨 대통령을 암살한 동생을 가진 형으로서의 부스. 그의 고독과 공포, 연민과 불행으로 점철된, 그러나 막대한 돈을 벌기도 하는 행운아로서의 일생과 그녀의 연극인으로 겹치는 그녀의 생. 소설은 그녀의 독백과 남편 보그던의 독백, 마지막 에드윈 부스의 독백이 한 없이 늘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희곡, 연극, 일기로 채워진 60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소설이다. 작가의 역량과 집요하게 써내려간 땀을 글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좋은 글은 언제나 쉽게 써지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