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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by 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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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007년 11월 5일 신사임당을 오만 원권의 초상인물로 선정하였다. 이때 발표된 공식 문서에 남성인 김구는 십만원권 화폐 인물로서 국가와 사회의 주체였으나, 여성인 신사임당은 교육과 가정의 주체가 선정 이유였다. 이에 여성단체가 남녀 차별적 인물 선정 구도와 신사임당을 근대적 현모양처로 각색하여 흠집을 내는 일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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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007년 11월 5일 신사임당을 오만 원권의 초상인물로 선정하였다. 이때 발표된 공식 문서에 남성인 김구는 십만원권 화폐 인물로서 국가와 사회의 주체였으나, 여성인 신사임당은 교육과 가정의 주체가 선정 이유였다. 이에 여성단체가 남녀 차별적 인물 선정 구도와 신사임당을 근대적 현모양처로 각색하여 흠집을 내는 일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렇다면 사임당은, 정말 현모양처였을까? 이것이 이 책이 던지는 화두다. 『사임당 평전』은, 시대적 이데올로기의 오류로 탄생한 현모양처의 아이콘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임당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거둬들이려는 초벌 작업으로 보인다.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이나 성품은 얼마 남지 않은 작품과 그녀가 키운 7남매의 성장 기록과 간접적으로 전해진 정황으로만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주된 목적은, 신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 당대에 이미 '화가 신씨'로 이름을 날렸고 재능과 열정으로 찬란하게 빛났던 그녀의 예술 세계를 재조명하려는 시도로 보아야 옳다.

현재에도 과거에도 사임당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율곡의 어머니와 현모양처라는 그릇된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어 정작 그녀의 예술 세계는 역사 속에서 주요 관심사로 자리 잡지 못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사임당의 예술 세계가 재조명되고 있는 추세이기는 하나 그녀의 예술성과그 가치를 다 펼쳐 보이기엔 아직 모든 면에 서 부족함을 체감한다. <4장. 사임당의 예술 세계>에서는 현존하는 사임당의 문헌 자료들을 통해 ​예술가 사임당의 진면목을 살펴 볼 수 있다. 책과 붓을 손에서 놓지 않았을 그녀의 손끝에서 많은 작품이 창작되었겠으나 안타깝게도 시댁으로 향하면서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과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읊은 <사친(思親)>과 <낙구(落句)>가 지금 전하는 전부다. 하지만 이렇게 적은 편수에도 불구하고 사임당의 시는 통찰력과 판단력이 뛰어나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고 평가된다.

慈親鶴髮在臨瀛 자친학발재임영 : 늙으신 어머니를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 신향장안독거정 : 외로이 서울 길로 가는 이 마음

回首北坪時一望 회수북평시일망 : 돌아보니 북촌은 아득도 한데

白雲飛下暮山靑 백운비하모산청 : 흰 구름만 저문 산을 날아 내리네.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p222

효심을 시로 승화시킨 사임당은 효녀로서의 사임당의 모습을 자식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대로 드러낸다. 신사임당은 시와 그림 뿐 아니라 글씨에도 탁월한 필력을 자랑한다. 그녀의 필적 역시 지금 전하는 것은 몇 점의 초서 작품과 해행서 한 점과 전서 몇 글자가 전부이나 당대의 시대상으로 보아 여성이 학자로 칭송되거나 이름 올려지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으며 후대의 평가를 받는다는 것 또한 남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임당의 작품 서체는 초서, 전서, 해행서 등 여러 글씨체가 전해지는데 이것은 모든 글씨체를 자유로이 쓸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사회 여성 중 이같이 여러 서체를 두루 섭렵했던 이는 사임당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16세기에 들어와 깔끔한 필획과 짜임으로 단아한 서풍을 보이는 초서풍이 등장하는데 그 정점에 위치했던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이다. 사임당을 이렇게 평가하는 이유는 <초서병풍>의 서체가 그 이전의 어느 명필의 글씨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서체의 풍격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뒤 이러한 서풍을 따르거나 유사하게 구사하는 명필이 등장하게 되는데 후대의 학자들이 이를 '사임당서파'라고도 명명한 것을 보면 사임당의 붓 솜씨는 그 일파를 이루고도 남을 위상을 점했다고 볼 수 있다.

사임당이 특히 절묘하게 잘 그려 칭송되는 그림 중 하나가 바로 <묵포도도>다. 율곡의 <선비행장>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시늉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고 전하는 것처럼 포도 그림에 있어서는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전칭작이 여러 폭 전할 정도로 사임당의 명성은 이미 높다.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는 <묵포도>가 가장대표적인 작품이다. 사임당의 묵포도도는 조선 시대의 묵포도도 전통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그 가치가 더 부각된다. 모든 옛 기록을 통하여 볼 때 사임당은 시, 서, 화뿐만 아니라 자수에도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현재 전해지는 사임당의 전칭 자수품은 동아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된 8폭의 자수 병풍인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이 유일하다.

16세기 당시 유명한 문장가였던 소세양은 사임당의 산수화 그림 족자에 붙인 시에 신사임당의 덕은 물론이고 붓 솜씨의 신묘함을 칭송하고 있는데 그 자신의 예술적 소양에 견주어 평가한 것으로 그 가치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대에 화가 신씨로 이름을 날리던 사임당이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에 의해 전혀 다른 평가를 받게 된다. 조선 성리학을 보수화로 이끈 송시열이 서인의 정신적 근간이었던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위해 그 어머니인 신사임당을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전통적인 여성상에 사로잡힌 여성 이미지는 조선 시대 남성 지식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져 300여년을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대표적 인물로 굳건해졌으니 우리 후손이 만들어 낸 역사적 오류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화가 사임당은 은폐와 왜곡으로 변주되기 시작했고 율곡을 성인으로 만든 '율곡의 어머니'만 남게 되었으며 이때 형성된 사임당에 대한 전통적이고 수동적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이용된 것이다. 이제 그만 신사임당을 현모양처에서 예술가로 돌려놓는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무엇보다 그녀의 작품 세계가 품고 있는 이상과 진면목을 살필 수 있기를 희망한다.

d******7 2016.09.16. 신고 공감 1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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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9] 사임당, 그 진실한 모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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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여류 문인화가에서 현숙(賢淑)한 부인으로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 유홍준 교수의 설명대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덕행과 재능을 겸비한 현모양처(賢母良妻)로 추앙(받는)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화가1)”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신사임당, 아니 사임당 신씨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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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여류 문인화가에서 현숙(賢淑)한 부인으로 

 

신사임당(申師任堂, 1504~1551)’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 유홍준 교수의 설명대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어머니로 덕행과 재능을 겸비한 현모양처(賢母良妻)로 추앙(받는) 조선시대 최고의 여류 화가1)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런데 이 이미지가 신사임당, 아니 사임당 신씨의 실제 모습이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참모습이 17세기 송시열로 대표되는 노론에 의해, 1940년대 일제에 위해, 1960년대 박정희 정부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당대(當代)에는 사임당 신씨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보자.

당시 영의정을 지낸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이 지은 율곡의신도비명(神道碑銘)>에도 진사 신명화가 딸 하나를 특히 사랑하였는데, 총명이 뛰어나고 고금(古今)의 서적에 통달하며, 글을 잘 짓고 그림을 잘 그렸다.”라고 칭송2)하였고 당대의 유명한 시인으로 송설체(松雪體)의 글씨를 잘 썼던 양곡(陽谷) 소세양(蘇世讓, 1486~1562)도 사임당의 산수화에 신묘한 붓 하늘 조화 뺏었구나3)라는 발문(跋文)을 남겼다.

 

이렇게 뛰어난 예술가로 평가 받았던 사임당 신씨는 17세기 중엽부터는 다른 모습만 부각되기 시작한다. 그 계기는 환국으로 집권 세력이 뒤바뀌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당시 서인의 영수였던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이 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집권 유지를 위해 서인의 정신적 근간이었던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를 위해) 사임당을 신령스런 천지의 기운을 받아 율곡을 잉태한 여성으로, 훌륭한 태교와 교육을 통해 율곡을 기른 어머니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포도와 산수(山水), 초충(草蟲)을 잘 그린 화가이며, 뛰어난 예술성을 가진 사임당의 주체적인 모습은 지워 버리고, 이원수(李元秀, 1501~1561)의 아내로, 율곡의 어머니로서의 삶만을 부각시켜 나가가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서인, 특히 노론계 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임당의 화가로서의 모습은 가능한 한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다. 훌륭한 유교적 여성으로서 태교를 잘 실천했던 현숙한 부인, 훌륭한 아들을 키워 낸 어머니, 내조를 잘한 아내 등 유교 사회가 강조했던 부덕(婦德)을 잘 실천한 사임당의 모습만 살아남게 되었다.4)

 

 

신임당 신씨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인가 

 

흔히 신사임당 하면 현모양처(賢母良妻)를 떠올린다. “그러나 정작 조선 시대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개가 굳은 여자를 일컫는 열녀(烈女)와 시부모에게 지극한 정성으로 효행을 실천하는 효부(孝婦)만이 있었을 뿐이다.

(왜냐하면) 현모양처 18세기경 서구에서 자본주의화에 의한 근대 가족이 형성되면서 생겨난 말(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일본() 1940년대 초 자신들의 침략 전쟁을 위해 식민지 조선에도 지원병을 모집하고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조선 여성들에게 일본의 국가주의적 양처현모(良妻賢母) 이념을 선동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들은) 조선의 자식들까지 황국신민(皇國臣民)이라는 이름으로 충()을 강조하는 황민화(皇民化) 이데올로기를 심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선의 현모양처(賢母良妻)를 내세운 것이다. 그때 역사 속에서 끄집어낸 인물이 바로 신사임당5)이다. 이렇게 일본이 심어 놓은 황민화(皇民化) 이데올로기 속의 신사임당을 우리는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으로 여태까지 그렇게 믿어온 것이다.

 

사임당은 결코 자식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치고 무조건 헌신(獻身)하는 현모(賢母)의 삶을 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성에게 순종(順從)하는 것만이 미덕이라고 믿는 양처(良妻)의 삶을 살지 않았다. 남편의 잘못된 생각이나 올바르지 못한 판단은 바로 간언(諫言)6)하였던 여성이었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추구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현명한 여성이었다.7)

 

 

사임당 신씨의 예술 세계 

 

우리의 생각과 달리 사임당 신씨는 시(), (), () 모두에 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녀의 작품은 전해지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우선 시()로는 시댁(媤宅)을 향하면서 지은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亡親庭)”과 서울에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읊은 사친(思親)”과 이름 모를 시()의 낙구(落句)만 지금 전해지고 있다.

 

사친(思親)

 

첩첩산중 내 고향 천리이건만[千里家山萬疊峰]

자나깨나 꿈속에라도 돌아가고파[歸心長在夢魂中]

한송정(寒松亭) 가에 둥근 달만 외롭고[寒松亭畔孤輪月]

경포대(鏡浦臺) 앞으로는 한 줄기 바람[鏡浦臺前一陣風]

갈매기 모래톱에 헤치락 모이락[沙上白鷗恒聚散]

고깃배 바다 위로 오고 나가니[海門漁艇任西東]

언제 다시 강릉 길 다시 밟아서[何時重踏臨瀛路]

색동옷 입고 앉아 바느질할꼬[更着斑衣膝下縫]8)

 

그녀가 남긴 세 편의 시() 가운데 하나인 사친(思親)”시상(詩想)이 비단결처럼 고와 여성이 아니고서는 그려 낼 수 없는 명작9)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으로 그녀의 시()에 대한 언급을 대신하고자 한다.

 

()의 경우에도 몇 점의 초서(草書), 한 점의 해행서(楷行書), 몇 글자의 전서(篆書)만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초서(草書)로부터 영향 받은, ‘사임당서파(師任堂書派)’라고 할 수 있는 서예가인 고산(孤山) 황기로(黃耆老, 1521~?),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1537~1582), 송호(松湖) 백진남(白振南, 1564~1618), 석봉(石峯) 한호(韓濩, 1543~1605) 등의 존재10)만으로 충분히 그 예술성과 영향력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화()의 경우에는 의외로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유홍준 교수가 현재 사임당의 작품으로는 서너 벌의초충도(草蟲圖)화첩과 산수, 포도, 묵죽(墨竹), 묵매(墨梅) 등 전칭(傳稱) 작품이 몇 전한다. 그러나 작품에 낙관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증할 수 있는 작품이 없고 일찍부터 사임당의 그림으로 둔갑한 것도 많아 보인다11)고 아쉬움을 남길 정도로 그녀의 작품세계를 파악하는데 한계도 존재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예술가로서의 사임당 신씨가 부각되기 어려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컨대 그녀의 산수화로 알려진월하고주도(月下孤舟圖)>한국회화사에서 필묵(筆墨)과 준법(峻法)에 있어서 절파(浙派)의 영향을 가미한 절충 형식으로 16세기 산수화단의 새로운 화풍을 대변해 주는 작품12)이라고 평가 받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그 외의 산수화는 양식상 후대의 것으로 보이는 작품과 현재 상태가 지극히 나빠 거의 알아볼 수 없고 대신 발문으로 사임당의 전칭작(傳稱作)13)으로 알려진 것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 이유로 사임당 신씨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때, 제대로 된 작품이 많은, 초충도(草蟲圖)가 중심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초충도(草蟲圖)동아시아 전통의 자연애호 사상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회화 양식(으로) 소재적인 식물과 곤충을 단순한 물적 대상이 아닌 유기적인 생명체로 인식하고 거기에 상징성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불완전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고 이상 세계를 기원하였다. 이것은 자신의 현재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가 구체화되어 반영된 것14)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저자가 설명하는 초충도(草蟲圖)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들이 상징하는 바를 알고 보니 그녀의 초충도(草蟲圖)들이 다르게 보인다.

 

그 동안 사실적(寫實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초충도(草蟲圖)사의적(寫意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홍준 교수가 사임당의 초충도(草蟲圖)에서 주목되는 것은 섬세한 필치와 미려한 채색으로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품격을 갖추었다는 점이다. 그림의 주제인 풀과 벌레를 보면 모두 사생(寫生)에 기초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토속적이다.

그러나 사임당의 초충도에 사생이 갖는 생동감보다 조용한 정지감이 감돈다. 그림의 구도가 좌우대칭이고 나비, 벌 등의 표현도 마치 곤충채집을 한 것처럼 좌우대칭15)이라고 설명한 것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여류(女流)’ 화가 신사임당이 아닌, ‘선비의 여기(餘技)’를 타고난 재능으로 예술로 승화시킨 한 사람의 문인화가(文人畵家)’ 사임당 신씨가 존재했음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옥의 티

 

사임당 평전을 보면 흔히 ()로 알고 있는 한자가 오()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대중에게 왜곡되지 않은 신사임당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였다면, 원문에 ()’ 라고 표기되어 있어도 그 부분을 주석으로 처리하고 ()’로 표기하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p. 18 삼강오륜(三綱)이라는 ~

p. 19 오륜() ~

p. 288 오언 당시(言 唐詩) ~

 


 

1) 유홍준,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3>, (눌와, 2013), p. 124

2) 유정은, <사임당 평전>, (리베르, 2016), p. 90

3) 유정은, 앞의 책, p. 91

4) 유정은, 앞의 책, pp. 94~95

5) 이재명 교수는 송영(宋影, 1903~1979)이 황민화(皇民化)정책의 수용차원에 쓴 친일작품신사임당에서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로 그려졌지만 잘 살펴보면 조선의 아들딸을 지원병과 정신대로 보내는 군국의 어머니였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 작품을 통해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의 전형적인 인물로 이미지가 굳어졌다고 한다.

6) 윤원형의 심복이었던 5촌 당숙인 이기(, 1476~1552)의 힘을 빌려 벼슬을 얻고자 하는 남편 이원수에게 이기의 집에 출입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자신의 사후에 재혼하지 말 것을 간곡히 청했다고 한다.

7) 유정은, 앞의 책, pp. 4~6

8) 유정은, 앞의 책, pp. 224~225

9) 유정은, 앞의 책, p. 225

10) 유정은, 앞의 책, p. 252

11) 유홍준, 앞의 책, p. 124

12) 유정은, 앞의 책, p. 287

13) 유정은, 앞의 책, p. 286

14) 유정은, 앞의 책, p. 328

15) 유홍준, 앞의 책, pp. 125~126

w******f 2016.08.25. 신고 공감 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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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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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이 책은    철저하게 속은 기분이란 게 이런 것일까  아니면 한 밤중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잔뜩 혼쭐이 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어딘지 모르는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 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이 바로 그랬다. 신사임당, 지금껏 알고 오던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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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이 책은 

 

철저하게 속은 기분이란 게 이런 것일까 

아니면 한 밤중에 누군가에게 끌려가 잔뜩 혼쭐이 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어딘지 모르는 곳에 홀로 버려진 느낌, 대체 여기가 어딘지 알 수가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난 기분이 바로 그랬다.

신사임당, 지금껏 알고 오던 신사임당의 현모양처 이미지가 만들어진 것이었다니 

물론 성웅이라고 까지 칭해지는 이순신 장군의 경우 과도하게 부풀려진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신사임당마저 그랬다니,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순신 장군은 박정희에 의해 한번 불려 나왔지만, 신사임당은 더 심했다. 역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불려나와 새로운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그러한 신사임당의 모습에 주목하고,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신사임당에 대한 평가를 어떻게 하여 왔는지, 역사를 훑어가면서 시대별 평가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역사를 살펴보면서 신사임당에게 제자리와 제 모습을 찾아주자는 시도를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과연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였을까?

 

신사임당을 수식해주는 단어가 하나 있다. 현모양처라는 말이다.

현모양처라는 말은 어진 어머니이면서 착한 아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당연히 신사임당과 걸맞는 단어로 신사임당이 생전에 들은 말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정작 조선시대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다.

절개가 굳은 여자를 일컫는 열녀(烈女)와 시부모에게 지극한 효행을 실천하는 효부(孝婦)만이 있었을 뿐이다.> (4)

 

그러니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저자에 의하면 신사임당은 애당초 현모양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에 대한 불편한 진실

 

신사임당은 그동안 우리가 알아오던 것처럼, 생존할 당시부터 현모양처의 모습으로 역사에 기록된 사람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서, 시대마다 그 당시 정권의 필요에 의해 불려나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그러한 사실(fact) 을 저자의 말로 들어보기로 한다.

 

신사임당이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사후 백여년이 지난 17세기 중엽부터이다. 송시열이 사임당의 난초 그림과 산수 그림에 붙인 발문으로부터 시작된다.> (92)

 

이렇게 시작된 사임당에 대한 평가는 실상 사임당의 본 모습이라기보다는 율곡 이이를 낳은 어머니로 칭송하기 위한 하나의 정치였다.> (93)

 

요동치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송시열은 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권 유지를 위해 서인의 정신적 근간이었던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시작했다. 율곡 이이를 신격화하기 위하여 그 부모 역시 신격화해야 했기에 이 때부터 사임당은 예술가로서의 주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면서 부덕을 실천한 이원수의 아내인 객체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 시작하였다, (94-95)

 

<노론계 유학자들에 의해서 사임당의 화가로서의 모습은 가능한 한 은폐되거나 왜곡되었다. 훌륭한 유교적 여성으로서 태교를 잘 실천했던 현숙한 부인, 훌륭한 아들을 키워낸 어머니, 내조를 잘한 아내등 유교사회가 강조했던 부덕을 잘 실천한 사임당의 모습만이 살아남게 되었다.> (95)

 

결국 신사임당은 당시 역사적 요구에 따라 실제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불려나왔다는 것이다.

 

이 때 만들어진 조선시대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여성상의 이미지가 300여년 동안 남성들에 의해 다져지고 다져져서 지금까지도 신사임당 하면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가 만들어 낸 현모양처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95)

 

그런데 그 후 신사임당은 또 다른 모습으로 역사에 불려 나오게 된다.

 

<190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성을 계몽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개화파 지식인의 주장에 따라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을 기르는 교육자로 그 위치가 상향 조정된다.>

 

이 때 사임당은 율곡을 교육한 어머니로 근대 사회에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1908년 장지연이 쓴 여자 독본이 그것이다. 여기서 신사임당은 문명국가의 국민을 교육하는 어머니로 조명되었다.> (98)

 

또한번 신사임당은 불려 나오는데, 이번에는 이순신 등과 함께 불려 나온다. 역시 저자의 말로 들어보도록 하자.

 

신사임당이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다시 거론되며 주목의 대상이 된 것은 1960년대 부터이다.> (104)

 

시대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국가의 영웅으로 추앙될 인물이 필요했는데 그 때 선택된 인물이 바로 세종대왕, 이순신, 신사임당 등이었다.> (104)

 

박정희 정권은 이 영웅들을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105)

 

다시 이 책은 

 

그래서 그런 신사임당의 모습을 본받자는 운동이 퍼지자. <이제 현모양처는 여성의 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성 스스로 주체적인 삶이 아닌 남성의 타자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아픈 현실이 되어 버>(107)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반론도 적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신사임당은 그저 현모양처로만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7년 신사임당이 새 화폐의 초상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뜨거운 논란이 되기 시작하였다. 그후로도 계속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을 통해 기계적인 주입교육의 방법에 의하여, 또한 시대의 필요에 따라 인물을 다르게 규정한다는 사실, 알게 되어,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눈가리개 떼어낸 기분이다. 이제 그러한 눈으로 밝히 보고 신사임당의 본 모습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도 또한 다른 독자들도, 그리고 우리나라 역사계도.

이달의 사락 s***h 2016.08.22.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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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 같은 어머니, 간언하는 아내, 여자 군자, 시서화에 두루 능했던 예술가 사임당
"스승 같은 어머니, 간언하는 아내, 여자 군자, 시서화에 두루 능했던 예술가 사임당" 내용보기
유정은 교수의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사임당 평전'은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을 조명한 책이다. 이 점은 물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가 아닌 여성 군자적 면모에 초점을 두고 사임당(1504 - 1551)을 조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잘 알다시피 현모양처란 개념은 18세기 무렵 서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하의 근대 가족이 생기면서 비롯되었다. 더욱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개념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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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교수의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사임당 평전'은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을 조명한 책이다. 이 점은 물론 특별할 것이 없다. 그러나 현모양처가 아닌 여성 군자적 면모에 초점을 두고 사임당(1504 - 1551)을 조명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잘 알다시피 현모양처란 개념은 18세기 무렵 서 유럽의 자본주의 체제하의 근대 가족이 생기면서 비롯되었다. 더욱 우리나라의 경우 이 개념은 일제에 의해 여성은 참전할 군인을 공급하는 존재로 왜곡, 선전되었다. 조선의 현모양처 어머니들이 일제의 황민화 정책에 수단으로 이용된 것이다.


저자는 시, 서, 화에 두루 능했다는 말로 사임당을 설명하는 세태에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더한다. 사임당이 살았던 16세기는 성리학적 사회질서가 확실히 정착되지 않은 시기였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대등한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대였다. '주자가례'와 '소학'의 보급과 성리학의 지배이념화로 여성들은 열악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사임당이 살아간 시대는 네 번의 사화(士禍)가 일어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역사를 배우는 근본 의미들 중 하나를 생각해보자. 가령 조선 전기와 중기, 후기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여성이 처한 환경의 변화, 성리학적이고 가부장적인 편협한 질서의 고착화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변천은 생각하지 않고 조선 그것도 17 세기 이후에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지배 이념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이다. 인선(仁善)이란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지만 확실하지 않다. 옛 중국의 문왕이라는 훌륭한 임금의 어머니인 태임(太任)이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태임을 본받는다는 의미이다.


율곡이 말한 것처럼 사임당은 포도와 풀벌레를 그리는 데 절묘한 솜씨룰 보였다. 조선이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의 시대는 아니었지만 가부장적인 시대였던 것은 사실이다. 사임당은 남편 이원수에게 자신의 생각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던 여성이었다. 아내의 생각과 재능까지 모두 존중한 이원수도 존경할 만하다. 송시열을 필두로 한 노론계의 학자들은 사임당을 상찬했는데 그것은 율곡을 성현으로 만들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상당히 의도적이고 불순한 동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장지연의 '여자독본'은 달랐다. 사임당을 구한말 여성들이 본받아야 할 어머니상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물론 사임당은 조선의 군국의 어머니상으로 선전되기도 했다. 사임당은 육영수 여사에 투영되어 전 국민의 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사임당을 가장 적확하게 규정하는 말은 스승 같은 어머니, 간언하는 아내, 여자 군자, 시, 서, 화에 두루 능한 예술가란 말이리라.


사임당은 수기치인(修己治人: 자신을 수양한 다음 남을 가르침을 이르는 말)과 법성현(法聖賢: 성현을 본받아 자신을 도덕적으로 완성시키는 것)의 정신을 몸소 실천하며 성장했을 것이며 스스로 솔선해 자녀들을 가르쳤을 것이다. 또한 아들, 딸을 차별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임당에게는 율곡 말고도 작은 사임당으로 불린 매창(梅窓: 1529 - 1592)이란 딸도 있었다.(매창은 16세기 유희경의 정인이었던 매창과 동명 이인이다. 사임당은 7남매를 두었다.)


셋째 아들 율곡은 퇴계와 쌍벽을 이룬 조선 최고의 학자이다. 넷째 아들 우(瑀)는 거문고, 글씨, 시, 그림 등 네 가지에 뛰어나 사절(四節)로 불렸다. 사임당은 시로써 지극한 효성을 드러냈다. 시는 꾸며낼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저자는 공자가 말한 유교 미의식을 설명한다. 회사후소(繪事後素)가 그것이다. 이는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만든 뒤에 한다는 의미이다.


사람도 아름다운 자질을 갖춘 후에야 꾸밈을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미적 형식보다 내면의 인격적 충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유가 사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공자의 강조점 중 하나로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림을 뜻하는 문질빈빈(文質彬彬)과 함께 생각해 볼 부분이다. 사임당은 세심하고 정감 어린 정서, 사랑의 인품을 바탕으로 한 보기 드문 학자이다.

이달의 사락 m******1 2016.08.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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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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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음 세대가 말해줍니다. 역사가에 따라 인물을 바라보는 견해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성장기를 지나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었고, 그때마다 막연하게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아비를 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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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음 세대가 말해줍니다. 역사가에 따라 인물을 바라보는 견해가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성장기를 지나면서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었고, 그때마다 막연하게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되겠다는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아비를 잘 섬길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어질고 올바르게 훈육하는 엄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오만원권 지폐가 등장하면서 신사임당이란 인물이 다시 부각되는 시점을 맞이했고, 역사적으로 명망을 떨쳤던 신사임당에 대한 의견이 전과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현모양처란 말이 18세기경 서구에서 자본주의화에 의한 근대 가족이 형성되면서 생겨난 말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개항과 서구 사상 유입으로 인해 생겨난 말이라고요. 그렇다면 어진 어머니요, 착한 아내라고 알고 있는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인가요? 신사임당은 시를 짓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까지 출중하였고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이는 완벽한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세상 어디에 이런 말이 있을 수 있는 것인지... 역사를 배울 때마다 여성이란 존재를 너무나 없이하던 조선의 이념과 문화가 싫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물론 존경받을만한 남성 인물들이 많이 있죠... 그렇다고 여성이 남성만 못한 존재인가요? 여러 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남성들 못지않게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감당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미 앞서간 예날 그분들이 보면 뭐라 말할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신사임당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했지만, 가부정적인 제도에서는 좀 당찬 여인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여성이 너무 똑똑해도 매력이 없다는 것은 남성들이 잘 못 생각하는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하였고, 혹시 상대적으로 받는 남성들의 열등담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보통 팔방미인하면 전문성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신사임당의 경우에는 적용이 안 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가 바라보는 신사임당은 이전에 알려진 것과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신사임당의 품성은 아무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출가외인이었지만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른 딸이라고 신사임당을 소개합니다. 강직한 아버지와 현명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율곡 역시 성학집요 효경편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효도는 모든 행동의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도는 효도와 공경하는 일을 첫째로 삼습니다라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조선은 여성에게는 매우 취약한 시대였죠. 여성이 학문을 할 수 없는 유교 색이 짙은 세상에서 그것도 네 번의 사화를 경험한 시대의 사람으로서 효를 중시하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했었고, , 그림, 필력, 학문, 인품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신사임당입니다. 그녀의 재능과 인품은 세상 어느 것과도 견줄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교육이 무엇인지를 묻는 현대의 부모들에게 교육은 아이들에게 강권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교훈하는 것 같습니다.

 

존경했던 신사임당을 이렇게 한 권의 책을 통해 조명해 볼 수 있는 기회가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회, 문화 전반의 틀에 입각하여 다시금 하나씩 상고해 보는 일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사임당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가 가고 싶은 바람을 간직하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l*****1 2016.08.26.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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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모양처의 대명사가 아닌, ‘인간 신사임당’의 진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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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동시방영을 계획으로 사전 제작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내년 1월 중, SBS에서 방영한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제작된다는 것은 내게 흥미로운 관심거리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 가 아닌, ‘존엄이 있는 인간으로, 예술가로’ 다시 주목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의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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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동시방영을 계획으로 사전 제작한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내년 1월 중, SBS에서 방영한다고 한다. 이 작품이 제작된다는 것은 내게 흥미로운 관심거리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의 작가는 신사임당을 ‘율곡 이이의 어머니’ 가 아닌, ‘존엄이 있는 인간으로, 예술가로’ 다시 주목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의 역사 속에서,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여성 위인이 나라를 구한다거나 역경을 딛고 자신의 자아를 실현하는 내용이 나오는 일은 꽤 드문 편이다. 혹여 제작되더라도 여성은 <장녹수>, <장희빈>처럼 ‘권력과 사랑을 향한 욕심과 투기를 가진 인물’이거나, <황진이>,<다모>처럼 ‘남자 주인공의 결정적 도움이 없으면 난관을 헤쳐나가기 어려운’ 역할이 대부분이다. 그도 아니면 <선덕여왕>처럼 선민사상이 깔리지 않으면 왕이 될 수도 없는 처지이거나, <명성황후>와 <기황후>처럼 주인공 캐릭터의 과도한 미화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피해갈 수 없는 작품도 있다.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드라마의 일반적인 ‘해피엔딩’이 ‘권력이 있는 남성 주인공과의 결혼을 통한 신분 상승’ 이 되는 현실에서, <대장금>처럼 빈손으로 시작해서 자아실현을 이루는 작품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것일까?

드라마 <사임당> 작가의 말대로,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 여성캐릭터의 한계를 깰 수 있을까.

그러던 차에 인터넷 서점에서 눈에 띄어 구매한 책이 바로 이 <사임당 평전> 이다. 책의 부제가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로, ‘인간 신사임당’의 진면모를 기술하는 책이었다. 과연, 신사임당의 진짜 인생은 무엇이었을까?

신사임당은 ‘남자가 처가에 장가를 드는’ 시대였던 고려의 풍습이 남아있던 조선 중기에 태어났다. 조선에<주자가례> 와 <소학>이 보급되고 성리학이 지배이념으로 확고히 자리잡기 시작하며 여성들 사이에 자유로이 행해졌던 전통 풍습들이 많은 규제를 받았지만, 사임당의 집안은 3대로 친정살이를 했던 여권이 높은 환경이었으므로 배움이나 예술 활동에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혼인을 한 뒤에도 처가에서 일정 기간을 살았기 때문에 시댁 살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일곱 자녀를 키우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시대의 법도에 순응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가풍 덕에 사임당은 당대에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았고, 조선의 여성으로서 이례적으로 다수의 작품을 남긴 예술가가 되었다. 이 책에서는 신사임당이 시, 서, 화 모두에 능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예술성과 성품을 지녀 군자의 경지에 이른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예술가’로 평가되는 것이 마땅하나, 21세기에 이르는 오늘날까지도 ‘현모양처’ 로서의 그릇된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이라고 얘기한다.

또 이 책에서는 신사임당의 잘못된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원인이 반세기에 걸쳐 침략 전쟁을 이어온 일본이 여성을 전쟁에 끌어들이기 위해 ‘아들을 낳아 잘 길러 황국신민으로 바치는 것이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고 선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황민화 이데올로기에서 조선의 어머니상인 ‘현모양처’에 부합하는 역사속 인물인 ‘신사임당’을 끌어왔다는 설명이었다.

어린 시절 위인전기에서 신사임당을 ‘그림 잘 그리던,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만 접했던 내 기억이 일제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니, 일제의 잔재가 우리의 삶 속에 얼마나 오랫동안 뿌리 깊게 자리했던건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다양한 매체에서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해온 ‘여성의 단편적 이미지’ 속에 읽게 된 <사임당 평전>은 지금보다 혹독했던 여성의 지위 환경에서도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당당히 인정받을 수 있었던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성별이 ‘여성’ 이라는 것은 자신의 자아실현에 있어서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 시대적으로 여성으로서 한계가 분명히 있었지만 깨어있는 생각을 가진 ‘부모의 교육’이 있었다는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는 어떤 한 성별을 우월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가족 구성원의 행복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응원하는 것이다. 반대로 현부양부(賢父良夫) 도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미에서, <사임당 평전>의 내용처럼 1월 방영할 드라마에서도 ‘스스로 빛나는’ 예술가 사임당으로 그려졌으면 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드라마를 보고, 신사임당의 삶을 통해 서로 이해하는 남녀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영화, 드라마 등의 매체에서도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의 캐릭터를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미래가 가까워오길 기다려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6.11.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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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2016) - 유정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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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어떤 책을 읽던 간에 저자의 이력을 읽지 않고 책을 펼친다. 선입견 없이 책을 읽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 곳곳에서 드러나는 세밀한 연구의 흔적과 그 결과물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작가의 소개를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정은 교수의 소개를 보면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타난 예술 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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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적으로 어떤 책을 읽던 간에 저자의 이력을 읽지 않고 책을 펼친다. 선입견 없이 책을 읽겠다는 다짐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는 도중. 곳곳에서 드러나는 세밀한 연구의 흔적과 그 결과물을 읽으면서, 이 책만큼은 작가의 소개를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인 유정은 교수의 소개를 보면 「신사임당의 <초충도>에 나타난 예술 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고,「신사임당의 예술 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유정은 교수는 거의 평생을 신사임당과 조선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연구한 학자였다. 유정은 교수는 신사임당의 당차고,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 지금껏 숨어있었던 이야기를 <사임당 평전>을 통해 담아내었다. 유정은 교수는 평전을 통하여 신사임당이 혼자 힘으로 이뤄낸 예술적인 성취를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현대여성의 롤모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  

 

2.

 

<사임당 평전>에는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유정은 교수는 뛰어난 유학자, 문장가, 화가로서의 신사임당보다 '현모양처' 신사임당으로 굳어진 원인은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17세기 송시열과 일제와 박정희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발견한 인물이 바로 사임당이라는 존재였다. 그들은 애써 찾아낸 신사임당을 전통적이고, 수동적이며, 순종적인 아녀자로서의 모습으로 포장한다. 예술가로서 주체적인 삶을 사는 여성이 아니라 남성의 타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여인으로 왜곡시켜버린 것이다.

 

3.

 

사임당이라는 당호는 옛날 중국의 문왕이라는 뛰어난 임금의 어머니 '태임'의 이름자에서 따온 것이다. 태임이라는 여인은 현, 엄, 의, 자의 네 가지 모의를 고루 겸비한 여성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고 한다. '태임을 본받는다' 는 뜻으로 자신의 호를 사임으로 지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녀를 평산 신씨가 아닌 사임당으로 부르게 된 것이었다.  

 

사임당은 태임을 본받으려는 마음가짐으로 그녀는 자녀들에게 효와 입지를 우선시하고, 수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자신 또한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런 가르침을 읽을 수 있는 자료로서 유정은 교수는 율곡이 남긴 선비행장을 비롯한 많은 저서의 문장과 동시대의 문장가인 소세양의 발문 을 소개한다.  

 

156. 격몽요결

 

격몽요결(擊蒙要訣)은 율곡 이이가 초학자들에게 학문하는 방향을 일러주기 위해 저술한 책으로, 격몽은 주역 몽괘 상구의 효사에 있는 말로, '몽매하여 따르지 않는 자를 깨우치거나 징벌한다' 는 뜻이다.

 

율곡은 이 책이 자신이 해주 석담에 있을 때 한두 학도가 추종하여 학문을 청해 왔을 때, '초학(初學)이 향방을 모를 뿐 아니라, 굳은 뜻이 없이 그저 아무렇게나 이것저것 배우면 피차에 도움이 없 도리어 남의 조롱만 사게 될까 염려하여, 간략하게 한 책을 써서 대략 마음을 세우는 것, 몸가짐을 단속하는 일, 부모를 봉양하는 법, 남을 접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마음을 씻고 뜻을 세워 즉시 공부에 착수하게 하기 위하여 지었다'고 서문에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가 42세 때 만들어졌고, 나중 정조 12년에 정조는 이 책이 '소학의 첫걸음'이라는 소개를 적은 서문을 썼다. - 위키 참조

 

처음으로 배우는 사람은 먼저 모름지기 뜻을 세우고, 꼭 성인이 되기를 자기의 목표로 하여, 한 터럭만큼도 스스로 적게 여겨 물러서고 미루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또 무릇 사람이 스스로 뜻을 세웠다고 하면서도 곧 노력하지 않고 머뭇거리며 기다리는 것은 명목상으로는 뜻을 세웠다고 하나 실은 배움으로 향하는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157. 학교모범

학교모범(學校模範)은 이이조선 선조 15년(서기 1582년)에 왕명을 받아 저술한 학생수양의 지침서로 16개 조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모범은 그 시대의 청소년 교육을 쇄신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사료되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국민교육헌장과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교육헌장으로서 가정과 학교 뿐 아니라 사회생활에서의 준칙도 제시하고 있다. - 위키 참조

 

온갖 선한 것이 다 나에게 갖추어 있으니, 달리 구할 필요는 없다. (...) 곧바로 천지로써 마음을 세우고, 민생으로부터 표준을 삼으며, 옛 성인을 표준 삼아 끊어진 학문을 잇고.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어 주는 것으로 표적을 삼아야 한다. 물러서서 스스로 앞길에 한계선을 긋는 생각이나 우선 편안한 것을 바라서 스스로 용서하는 버릇은 털끝만큼도 가슴속에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 훼방과 명예, 영화로움과 욕됨, 이득과 손해, 화와 복, 이런 것들이 마음을 설레게 말아야 하며 분발하고 힘써서 기어코 성인이 되고 말아야 한다.

 

이런 문장들을 읽으면서 조선의 16세기는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폈쳤음에도 불구하고 잔재했던 고려의 문화와 조선의 문화가 적절히 어우려져서 유학이 절정에 이른 시기였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임당의 아버지인 신명화는 사위였던 이원수에게 처가살이를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덕분에 사임당은 20년간 시집살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사임당에게 주어졌고, 그녀는 자신의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로 유정은 교수는 자녀균분상속이 이루어지고 윤회봉사가 행해지던 고려시대의 풍습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임당은 그렇게 유학의 정신을 자신의 예술 작품에 담아내었다.

 

258. 사임당의 글씨로 초서작품이 가장 많아 주로 초서를 즐겨 썼을 거라 추측하는데 사임당이 중국 주나라 고대 한자서체인 선 굵은 전서 작품을 남긴 것을 보면 서예에도 상당한 수준의 경지에 올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서는 상당히 복잡해서 문자학의 지식 없이는 쓰기 힘든 서체이기 때문이다.

 

유학이 혼탁해진 시대는 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생존했던 시기의 다음 시대인 17세기 부터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17세기. 숙종이 즉위하면서 왕권 강화를 위해 총 번의 환국정치가 시작되었고, 그로 인하여 자기 수양의 본연의 길을 잃고, 유학자들끼리 권력 다툼이 극에 달했다고 전한다. 그렇게 유학은 '인'을 통하여 자신을 갈고 닦아 군자가 되어 나라와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학문이 아니라 권력을 지탱하는 하나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율곡 이이는 송시열에 의해 서인의 결속력을 높이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존재로서 신격화되고, 그에 따라서 사임당도 율곡을 낳아 기른 어머니의 상으로 극진히 모셔지게 된 것이었다.

 

4.

 

372. 공자의 중심 사상은 인 (仁)으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주체적 각성을 통하여 인간으로서 생명의 존엄성을 천명하고, 행할 바의 도리를 밝힌다는 것이다. 인은 완성된 인격의 명칭이면서 바람직한 인륜 도덕으로 공자의 사상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공자의 교육 원리이다. 인의 사전적 의미는 '어질 인, 착할 인, 동정할 인'등의 풀이로 해석되는데, 우리말로 '어질다'와 '착하다'는 모두 지성이 탁월함을 뜻하기보다는 인정이 많고 가슴이 따뜻하다는 뜻이 강하다. 인정이 많고 가슴이 따뜻해야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373. 인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배려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공자의 도(道)가 충서로 일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충(忠)은 자기의 마음을 끝까지 열심히 다하는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서(恕)는 자기의 마음에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것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 정신이다. (...) 인이라는 한자가 본래 '사람 인(人)'과 '두 이(二)' 자를 결합한 것으로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글자다.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사랑'이라고 보는 견지에 입각하여 인을 '사랑을 사랑함(愛人)'이라고 말한 공자의 뜻을 짐작할 수 있다.

 

375. 율곡 이이는 극기복례설(克己復禮說)」을 지어 말하기를 '인이란 본심의 전덕(全德)으로서 모든 사람이 이 본심을 갖추고 있지만 사욕이 그것의 실현을 가로막음으로써, 몸과 마음을 검속하는 도구인 예에 따름으로써 마음의 덕이 온전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개인의 인격에 인을 심음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내재적인 즐거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즐거이 인을 향하게 하여 도에 이르는 것이 진정한 인의 실천임을 알아야겠다.

 

<사임당 평전>을 통하여, 유정은 교수가 정리해놓은 유학의 정수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정수를 사임당은 시와 서예 뿐만 아니라 한폭의 그림, 대표적으로 초충도를 통해 그려내었다고 한다. <사임당 평전>은 사임당이 남긴 작품(시,서,화,자수)을 소개한다. 초충도의 연구로 학위를 받은 유정은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사임당이 표현한 각각의 생명과 색깔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320페이지서부터 330페이지에 아주 상세하게 기록해 두고 있다.

 

가지 소개하자면 수박이 수복(壽福)과 발음이 비슷하다고 하여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맨드라미를 장닭이 벼슬같이 생겨서 계관화라고 부르고, 정수리에 돋은 벼슬의 모양 때문에 '관을 쓴 것 같다.', '벼슬하다'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또한 나비와 고양이가 함께 등장하는 그림의 경우 '고양이 묘(猫)'자가 70세 노인을 나타내는 늙은이 모(耄)와 발음이 같고 또 '나비 접(蝶)'자가 80세를 뜻하는 늙은이 질(耋)과 한자음이 같아서 일흔을 넘어 여든 살까지 장수하라는 의미를 담아낸다고도 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부분은 너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생각나는 몇 부분만을 덜어내어 이야기해보면서 갈무리 해보았다.

k*******7 2016.08.2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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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 유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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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사임당신씨.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분명한건 우리가 알고 있는 율곡이이의 어머니란 것과, 현모양처의 상징이 전부가 아니란 것.<사임당 평전>을 만난건 행운이다.잘 알거라 생각했던 사임당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는 사실과 예술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500여년 전의 인물을 이 시대에 다시 살려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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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사임당신씨.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분명한건 우리가 알고 있는 율곡이이의 어머니란 것과, 현모양처의 상징이 전부가 아니란 것.
<사임당 평전>을 만난건 행운이다.
잘 알거라 생각했던 사임당에 대해서 전혀 몰랐었다는 사실과 예술가의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500여년 전의 인물을 이 시대에 다시 살려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사람은 홀로는 살아 갈 수 없는 존재. 개성이란 환경에도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지금에서 짐작해 보는 사임당의 모습은 어떨까?

 

 

                     사임당 초상 (5만원권 화폐 도안) -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5만원 지폐속의 모습조차 친일화가의 작품속 얼굴을 본떴다고 하니 본 모습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16세기 인물이지만 초상화속 모습은 현대적이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현모양처"라는 말과 현대로 넘어오면서 단아함이란 틀속에 비춰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16세기 조선 사임당이 살던 시대는 '혼란'이였다.
생활에 있어서는 조선이 들어서기전 약 500여년동안 굳어져버린 고려의 생활 모습과 풍습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거기다 조정은 '사화'로 인해 시끄러웠고 그로 인한 양반가?들역시 조심스러 웠을 것이다.


아직 자리잡지 못한 조선초, 그 시대에 사임당의 위치는 어디쯤 이였을까?
평전에선 고려의 풍습과 가풍이 남아 있어 여성이 친정에서 지내는게 자연스러 웠을 거라 짐작한다.
그 덕분에 시집살이를 늦게 시작했고, 자유롭게 예술활동을 할 수 있던 환경이였을 거라한다.

<사임당 평전>에선 많은 부분을 시대적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모양처"라는 말의 쓰임이 사임당을 어떻게 가둬 뒀는지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고, 가족은 어땠는지, 그녀의 살아온 환경부터 이해해야
그녀의 모습에 한 발짝 다가 갈 수 있다.

후반부는 사임당의 예술에 대해서 집중 조명 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어 우리가 볼 수 있는 그녀의 작품.
그 작품을 읽어 냄으로 작품에 담긴 그녀를 그려 본다.

사임당이 남긴 작품 대부분은 그림이다. 조선의 3대 예술이라고 해야 할까?
시, 서, 화 중에서 '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고 서와, 시는 찾아 보기 힘들다.

그녀의 그림은 초충도가 많고, 그 그림들에 담긴건 대부분이 효다.
글씨도 잘써 초서체와 전서체가 남아 있다고 한다.

평전에선 그녀의 작품들을 하나 하나 설명하며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사임당을 살려 낸다.

그래서 예술가로 끝일까?
책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이다.

조선은 유교가 지배한 나라다. 유교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닌 객체로 남아 있던 경우가 더 많다.
거기에 계급 사회이기도 했다. 계급이라는 위계 속에서도 여성은 언제나 하위에 머물렀었다.

그런 조선시대에서 여성의 이름이 남아 500여년이란 시간을 뛰어 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생각해 보면 조선의 예술가란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김홍도의 작품과 신윤복의 작품이 있다.
이 둘은 조선의 공식 화가였다. 도화서라는 관청의 화원. 국가공무원으로써 예술가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랬기에 단원과 혜원은 예술가로 남았지만 사임당은 상황이 다르다.

유교에서 최고의 가치는 '군자'다.
조선 선비들은 군자가 되기 위한 수행의 수단으로 시,서,화를 삼았다고 한다면,
사임당은 예술가가 아니라 '군자'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조선의 예술은 예술이 아니라 선비의 수행이였다는 것.
말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또하나의 틀인
"예술가"라는 말로 가둬 두는 것은 아닐까?

사임당 사후 그녀가 남긴 시, 서, 화에 선비들의 발문이 많이 있다고 한다.
지금으로 따지만 추천사나 품평이 되는 발문. 조선의 예술엔 생각이 담기고,
오롯이 담긴 생각은 품격을 드러낸다면. 사임당 이전에도 없던, 이후에도 없던 그녀의 작품속에 남아있는 것은 섬세한 여성 예술가뿐 아닌, 그 시대 상황 속에서도 이름을 남긴 '군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해본 사임당의 모습이다.

한없이 부드러우면서, 사실적이고, 올곧은. 사임당은 그런 '군자' 아니였을까?

b********3 2016.09.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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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은 단순한 현모양처가 아니라 탁월한 화가, 시인, 서예가셨다... 사임당 평전...★
"★신사임당은 단순한 현모양처가 아니라 탁월한 화가, 시인, 서예가셨다... 사임당 평전...★" 내용보기
"그녀를 조선의 희생적인 현모로 만든 이는 그녀자신이 아니라 율곡의 제자 송시열임을 이제는 알아야한다. 아무리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조선사회라하여도 그당시 없었던 현모양처란 말을 만들고 이용해 사임당을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만든 것은 우리 후손이 만들어낸 역사적 오류가 아닐까 그리 생각해본다..."   아 나는 유정은님께서 저술하시고 <리베르출
"★신사임당은 단순한 현모양처가 아니라 탁월한 화가, 시인, 서예가셨다... 사임당 평전...★" 내용보기

"그녀를 조선의 희생적인 현모로 만든 이는 그녀자신이

아니라 율곡의 제자 송시열임을 이제는 알아야한다.

아무리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는 조선사회라하여도

그당시 없었던 현모양처란 말을 만들고 이용해 사임당을

전통적인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만든 것은 우리 후손이

만들어낸 역사적 오류가 아닐까 그리 생각해본다..."

 

아 나는 유정은님께서 저술하시고 <리베르출판사>서 펴낸

이책 <사임당평전>을 꼼꼼히 읽어나가다가 윗글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하여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갖게되었다.

 

우리는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 하나의 전형화된 고정적 이미지를

갖고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미국에 빌붙어서 안두희를 사주해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케하고 1950년 한국전쟁을 촉발시켰으며

인물이 이승만이었다는건 이제 온국민이 아는 역사적 사실이

되었다. 특히, 적색분자들을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그 전쟁중에

국민보도연맹사건을 일으켜 죄없는 숱한 양민을 20만명이나

사살한 만행은 천인공노할 죄악이고 학살이었다.

 

또한, 이완용, 박제순, 이근택, 이지용, 권중현이 을사5적이라는

사실은 역사적 팩트이다.

 

그러나, 1963년 쿠바미사일위기때 무력시위를 벌였던 미국의

존 F 케네디대통령을 그당시엔 소련의 흐루시초프를 굴복시킨

지도자, 강단있고 배짱두둑했던 지도자라고 칭송했지만,

지금은 넘 즉흥적인 무모한 행동이었고 이러한 둔감한 행동으로

그당시에 진짜 핵전쟁이 일어나 제3차세계대전이 일어날

뻔했다는게 중론이다.

 

즉, 일촉즉발의 위기가 13일간 진행된 그당시에 이미 양측 전투기는

핵탄두를 탑재하고 날아올라 발사명령만을 기다리고있었다.

심지어 미국 전투기는 소련영공까지 넘어가고있었다.  

 

하지만, 양측 수뇌부들은 이런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한다.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가 만나 얼마든지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할

수도 있었고 유엔 안보리에 이 문제를 안건으로 채택해 국제적인

여론의 중지를 모아 소련과 쿠바에 압박하는 방법도 있었을텐데

케네디대통령의 만용과 고집으로 전세계가 13일간이나 핵전쟁의

공포에 사로잡게하다니 이런 얼치기가 또 어디 있을까 그런

생각까지 들게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어떤 인물에 대한 평가는 물론 역사적

사건들도 현재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사임당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신사임당하면 다음과같은 인물이라 생각해왔다.

 

현모양처의대명사...

퇴계 이황선생의 제자로서 <십만양병설>을 주창하여 외침을

막고자했으며 <성학집요>, <동호문답>, <격몽요결>을 지었던

조선시대 대유학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5만원권 지폐의 주인공...
율곡 이이와 함께 모자가 화폐등장인물로 나선 최초의 사례! ...


그분이 바로 신사임당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책 <사임당평전>을 읽어보니 단순히 그런 피상적인

이야기들로만 신사임당을 평가한다는건 수박겉핥기식 평가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이렇게 신사임당의 이미지가 하나의 이미로만으로 정형화된 것은

윗글에도 나와있다시피 노론의 영수였던 송시열이 신사임당을

적극 이용했기때문이라니 정말 역사적 평가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있다.

 

이는 친일사학자 이병도가 역시 박근혜의 아버지인 일본육사

출신의 박정희에 의해 <독립유공자 심사평가위원장>

선출됐었다니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스럽지않을 수 없다.

친일파가 독립유공자를 심사하고 평가했다니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고 세계가 알았다면 웃음거리로 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사적 평가의 중요성,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한다는 것은

우리모두가 깊이 인식해야한다고 생각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사임당이 단순한 현모양처가 아니라

그림을 잘그리신 탁월한 화가, 시로써 부모를 섬긴 시인,

글씨에 자신의 단아한 마음을 녹인 서예가셨다는걸

이모두를 아우르는 예술가셨다는걸 잊지말아야겠다.

 

이번에 유정은님께서 최초로 <사임당 평전>을 집필하셨다하여

우리가 잘알지못했던 예술가로서의 <신사임당의 생애와 작품세계>

에 대해 잘알 수 있게되었고 이에 이책 아주 흥미롭게 잘읽었다.

 

따라서, 이책은 신사임당의 진면목에 대해 알고싶어하시는

분들이시라면 꼭 읽어보실 것을 권유드리고싶다...  

 

신사임당...

 

그분이 어떤 분이셨는지 그분께서 걸어오신 길이 어떠한

길이셨는지 423쪽에 달하는 <사임당평전> 이한권의 책으로

확실히 알 수 있게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신사임당의 탄생지인 오죽헌, 그분께서 사셨던

강원도 봉평의 판관대, 파주의 율곡리 글고 짐 편히 잠들고 계신

자운서원에 꼭가보고싶어졌다....

 

그것은 이책 <사임당평전>을 읽고나니 그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k****3 2016.09.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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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사임당 평전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리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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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오만원 지폐에 어떤 위인을 넣을 것인가 한창 이야기가 나왔을 무렵 신사임당은 그저 조선시대의 유명한 현모양처라는 타이틀을 걸었던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뛰어난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사임당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 ​     신사임당의
"#유정은 #사임당 평전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리베르" 내용보기

사임당 평전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오만원 지폐에 어떤 위인을 넣을 것인가 한창 이야기가 나왔을 무렵 신사임당은 그저 조선시대의 유명한 현모양처라는

타이틀을 걸었던 인물이 아니었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누구보다 뛰어난 예술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사임당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신사임당의 모든 이야기를 담은 <사임당 평전>은 사임당의 예술적 감각에 많은 이야기를 싣고있다.

현모양처뿐만 아니라 스승같은 어머니였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꿋꿋하게 여성으로서 의지를 다졌던 분이다.

여성으로서 사회참여가 어려웠던 그 시절에 많은 작품을 남긴 여성 예술가로서의 사임당에 대해 알 수 있는 책이다.

 

 

 

작년 오죽헌에 있는 사임당 박물관에서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을 보면서 작게나마 간직하고 싶었던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렇게 반갑게 책에 컬러로 실려있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

사임당은 흔히 볼 수 있는 자연 중에서도 새나 꽃을 아름답게 그려서 여성 예술가로서의 감수성을 물씬 느낄 수 있다.

 

 

 

 

이제 사임당을 바라보는 시선을 현모양처가 아닌 예술가로 돌려서 그녀의 작품 세계가 품고 있는 이상까지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 안에는 작가의 재능만 담기지 않는다. 작가 자신의 몸과 마음, 그리고 인격까지 모두 담겨 있다. 그래서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사람과 같은 것이다.

 

 

 

사임당의 조충도 뿐만 아니라 서예까지 출중한 솜씨였기 때문에 다방면에 능한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임당이 어릴 적 그린 매화 습작 6폭 작품도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들이 아직까지 전해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그녀의 작품을 아끼고 아껴서 현재까지 내려올 수 있게 한 사람들의 그 기분을 왠지 알 것 같다.

그림, 서예 뿐만 아니라 사임당은 자수에도 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작품이 전해지지 않아서 아쉬울 뿐이다.

<사임당 평전>을 통해서 조선 시대 여성 예술가의 사임당을 알 수 있게 되었고 그녀의 작품들을 마음에 새겨보았다.

 

m*********s 2016.09.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