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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부영 연휴가 다 지나버렸다. 이번 연휴에는 애들이 외가에 가서 한가할 것 같아 호기심에 사두었던 책들을 최대한 많이 읽으려고 했다. 하루에 1권은 씹어 먹을 줄 알았는데 <카산드라>라는 얇은 소설 한 권에 묶여서 이틀을 소비했다. 원래는 안맞다 싶은 책이 있으면 읽다가도 도중에 미련없이 덮어버리는데 이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이유인 즉, 얼마 전 이웃블로거께서 "문학동네 MBTI 테스트"라는 재미난 포스팅을 올리셨기에 나도 재미삼아 해봤는데 웬걸 듣도보도 못한 <카산드라>가 나오는 거다. 테스트에 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출판사가 책 팔아먹으려는 수작일거라며 흥~ 했는데 막상 제목도 모르는 작품이, 그것도 신화에 나온 예언자라니 도저히 책을 안 살래야 안 살 수가 없는거다. 그런데 이 책 너무 어렵다. 시점도 뒤죽박죽인데다 수시로 이뤄지는 장면전환, 대부분 화자인 카산드라의 독백과 회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한 마디로 환각상태에 빠진 사람이 내뱉는 잠꼬대같은 말을 계속 들어주는 기분이랄까. 내 MBTI만 아니었어도 끝까지 읽을 일은 없었을텐데 불행 중 다행히도 중간 중간 집중력이 흩어지면서 눈이 감기려고 할 때 마다 옛다 하며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이 툭 툭 튀어 나왔다. 한 번에 20장 이상을 읽기가 힘들어서 많이 쉬었는데 또 다른 책을 집어 들면 전에 읽었던 게 기억이 안날 것 같아 그러지도 못했다. 반나절에 걸쳐 절반 가량 읽었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펼치니 젠장 뭘 읽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나고 카산드라는 또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잠꼬대를 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아마 오기였던 것 같지만 확실히 카산드라가 처해있는 상황이나 정신사나운 관계도가 제법 정리되면서 완독까지 무사히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싶은 이가 있다면 카산드라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해볼 것을 추천한다. 그 와중에 책에서 건져올린 멋진 문장들을 소개해볼까. p.17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그것이 진정한 불행이며 치명적인 위험임을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깨달았다. p.34 드디어! 그는 어느 날 내가 트로이는 멸망할 거라고 담담하게 예언하면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꿈을 들먹이지는 않았을 때 이렇게 외쳤다. 그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관심이 없었다. 그리스인인 그는 트로이의 운명이 아니라 자신읭 목숨을 염려했을 뿐이다. 그는 어쨌든 충분히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고 목숨을 끊을 수단을 오랫동안 몸에 지니고 다녔다. 하지만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는 단 하루를 더 살기 위해 고통스럽게 죽었다. 판토오스. 우리는 한 번도 그를 완전히 알았던 적이 없었다. p.39 트로이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그 때만큼 내가 가식적인 삶을 산 적은 없었다. 내 삶이 내게서 달아나는 듯했던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트로이 성벽 위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이렇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내 가벼운 존재가 그토록 힘들었는지 나 자신에게 묻지 못했다. p.88 지금 나는 임시로 살고 있다. 진정한 현실이 곧 올 거다. 같은 감정에 빠졌다. 삶이 나를 스쳐지나가게 했다. 그것이 무엇보다 후회스럽다. 언젠가 나도 이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닥치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걱정을 가득 안고 살던 때였던 것 같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저 혼자하는 상상에서 그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쩌면 작가라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남에게 밝히기 꺼리는 속마음을 대신 꺼내 보이는 존재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5페이지밖에 안되는 얇은 책인데 이틀에 걸쳐 야금야금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는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그냥 이야기로만 읽는데 만족해야 했지만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할 수 있을 때 한 번 더 읽어보리라. 처음엔 전개도, 문장도 컬트 영화를 보는 것처럼 낯설고 불편한 것이 영 이상했는데 어쩐지 이 책은 잘 만든 컬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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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타 볼프의 작품 카산드라..트로이 공주이자 예언가인 카산드라의 시선과 독백으로 전개되는 소설..두께가 얇은데 비해 오랜 시간 들고 읽었다. 권력과 폭력의 허상을 꿰뚫어보는 그녀이지만 정작 자신은 고립되어간다. 명문장이 많고 난해하지만 다시 읽고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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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산드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크게 부각되는 인물이 아니지만 어렸을 때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를 봤다면 한번쯤 봤을 것이다. 트로이의 공주인 카산드라는 아폴론을 모시는 사제이자 예언가이다. 카산드라는 예언을 하는 능력이 있는 대신 그의 말을 아무도 믿지 않는 저주가 걸려있다. 그녀가 아무리 전쟁에 대해 조언을 해도 트로이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결국 트로이는 멸망하게 된다. 이 책은 카산드라의 독백으로 이어진 책이다. 처음부터 독백으로 시작해서 내용이 잘 이해가지 않았다. 하지만 읽을 수록 여러번 겹치는 이름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익숙해진다. 이 책은 1인칭 시점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부족했던 카산드라에 대한 정보들을 채우고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을 읽어도 꼭 조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카산드라가 그녀의 문장으로 보여주는 의지는 완고하고 견고하다. 부러지지 않는 카산드라의 생각을 읽으면 감명받는 부분이 많다. (물론 실제는 작가가 대단한 것이지만) 이하진 작가님의 '카산드라'라는 웹툰을 소개하고 싶다. 웹툰으로 먼저 카산드라에 대한 내용을 접했고, 이후 소설까지 읽게 된 것이다. 웹툰 카산드라는 소설 카산드라에 비해 현실적인(?) 부분이 많다. 소설에선 꿈 이야기나 예언의 능력을 실제로 믿는 부분이 있지만 웹툰에서의 카산드라는 (진짜)예언 능력이 부각되기 보단, 카산드라가 공부하면서 얻은 능력들이 사람들에겐 예언으로 설명된다. (신화와 비교해서 보면 재밌고 여러모로 소름끼치게 좋은 부분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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