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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의 배신 】 라파엘 M. 보넬리 / 와이즈베리
세상은 우리들을 더욱 완벽한 존재로 만나길 원한다. 완벽하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좋은 일이다. 기왕이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과연 그 완벽함이 건강할까? 완벽을 추구하는 마음이 스트레스로 쌓여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지도 모른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마저도 힘들게 하는 상황은 어찌해야할까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성과 지상주의는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 즉 완벽주의를 칭송한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 닐스 슈피처는 완벽주의를 ‘학문과 대중심리학 사이에 놓인 애매모호한 개념’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인이 갖고 있는 여러 정신질환이 완벽주의와 무관하지 않다는 연구결과도 많이 나온다. 완벽주의가 ‘서구 사회의 유행병’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완벽주의자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완벽하다는 것은 신중함, 단정함, 부지런함, 신뢰성 등 좋은 평판과 연관을 짓는다.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라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불안한 마음이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용을 잃기 쉽다.” 삶의 균형감이 상실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일의 결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라파엘 M. 보넬리는 대학의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가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완벽주의라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77명의 환자들을 상담한 사례를 중심으로 완벽주의의 실체와 다양한 증상들을 분석해주고 있다. 책의 표지 사진에도 나타나 있듯이 완벽주의자들을 ‘가면을 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가면의 힘을 통해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보듬어준다. 그리고 그 가면을 벗어던지라고 권유한다.
완벽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사람과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로 인한 소외감을 자신의 노력과 성과로 극복하려한다는 것이다. 반대일 수도 있겠다. 완벽을 추구하는 일상 속에 다른 사람이 개입할 틈을 안 줄 수도 있다. 21세의 여성 코니 F.는 자기중심성과 객관성의 개념에 관심을 가지면서 다름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제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객관적인 일에도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그런데 도무지 관심이 가지 않아요...”
“완벽주의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면서도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다. 완벽주의자들은 균형 감각이 없고, 본인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절대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그것들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완벽주의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텅 빈 내적 공허감을 채워줄 내면적 성숙이다.”
완벽을 추구하는 삶에 긍정적인 요인도 많다. 인간이 자기를 개선해서 발전해나가겠다는 바람은 정상적인 것이다. 이 또한 건강하게 살아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완벽주의자는 완벽주의 습관을 버려야 발전 할 수 있다고 한다. 완벽주의가 자신의 삶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시기심을 갖지 말라는 것이다. 목표를 너무 높이 세우지 말고, 달성 가능한 것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누구나 불완전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완벽주의를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이 더욱 평안해지고 고요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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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완벽주의자가 있다. 본인은 그게 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 사람의 주변 사람들은 참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이 책 <완벽의 배신>을 읽으면서 그 사람이 생각나는 것이 모든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참 힘들겠다 싶었다. 본인만 완벽을 추구한다면 괜찮은데 주변사람들 특히 자식에게 완벽을 요구하는 것은 참 견디기 힘든 일이다. 완벽주의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들은 모두 동일한 틀에 얽매여 있다. 겉으로는 서로 다른 듯 보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결국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고 스스로의 대해 잘못 이해함으로써 실패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마음이 불안정하고 한시도 자유롭지 못하기에 부자유한 내면이 종종 표출되어 주변 사람들을 압박한다. 아마 이분도 결국 이런 것이었다. 과연 이 삶이 행복할 지 물어보고 싶어진다. 어쩌면 요즘의 교육이 더욱 완벽주의자를 양성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뭐든 잘하는 아이들로 만들고 싶어하는 어른들, 한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이 사회가 문제일 수도 있다. 현대에 들어와 완벽주의자가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과지상주의가 원인이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그 영향이 가는 것이 아닐까. 이유야 어찌되었던 결과만 만들어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시, 취업 등 경쟁에서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만연한 문제가 완벽주의를 더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지. 완벽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주의는 엄연히 다른 것인데 말이다. 우리가 완벽이라는 틀을 벗어나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는지, 실제 완벽주의자라는 틀에 갇힌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이 시대에 우리가 겪고 있는 강박의 원인들을 찾을 수 있었다. 저자 라파엘 M 보넬리는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의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라고 한다. 우리가 신경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듯 여러 환자들의 사례들을 구성, 완벽이라는 가면을 벗고 성과주의의 덪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정작 본인들은 모를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
출근할 때마다 영어 유치원 차에 오르는 아이들을 본다. 아이들은 원래 이름 대신 제시카니 레이첼이니 하는 영어 이름으로 인사한다. 퇴근 시간 아파트 상가 앞을 지날 때면 교복 차림 그대로 학원에 들어가는 학생들을 마주친다. 학생들은 내가 집에 도착해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다 잠이 들 때도 새하얀 형광등 불 아래서 꼼짝없이 공부를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 좋다. 학생 때 열심히 공부하는 것 좋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그렇게 살아야만 행복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는 걸까. <완벽의 배신>을 쓴 라파엘 M. 보넬리는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다. 저자는 번아웃 증후군을 비롯해 현대인들을 괴롭히는 정신질환 대부분이 '완벽주의'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완벽주의는 문자 그대로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는 방어기제다. 일을 완벽하게 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남한테 책잡히거나 실패할 염려를 없애기 위해 완벽이라는 수단을 내세우는 것이다. 문제는 완벽주의자가 스스로 만든 완벽이라는 철갑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고 불만족, 자기 경멸, 불쾌감 등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기만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고통을 전가한다. 거절을 못하는 사람,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사람은 완벽주의자에 속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실패를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완벽을 가장하고 남한테까지 완벽을 요구한다.
완벽주의자는 과로사할 위험도 높다. 스물한 살 청년 모리츠 에르하르트는 메릴린치에서 인턴사원으로 일하다가 숨졌다. 주변 사람들은 모리츠가 죽기 직전 72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했다고 증언했다. 모리츠는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고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부모에게도 동생에게도 좋은 아들, 형이었다. 일찍부터 금융인이 되고자 했던 모리츠는 대학 시절 내내 금융계에서 '스펙'을 쌓았다. 메릴린치의 인턴사원이 된 걸 성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올랐다고 여겼다. 하루 열다섯 시간씩 일하다가 스물한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뜰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글도 다 떼기 전에 영어 유치원에 다니고 밤늦은 시간까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개중엔 영어를 배우는 게 무엇보다 즐겁고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는 게 행복한 아이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공부만 하느라 다른 재미를 누려본 적 없는 아이가 과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고만 배운 아이가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 원해서 뭔가를 해본 적 없는 아이가, 성공이나 발전, 자기 계발 같은 남들이 주입한 가치만을 신봉해온 아이가 무엇에 만족할 수 있을까. 제2, 제3의 모리츠가 나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국 사회를 보면 패자에게 가혹한 만큼 승자를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누가 성공하면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려고 하고 약점을 잡아 끌어내리려고 한다. 유명인이든 주변 사람이든 얄짤없다. 이런 사회에서 승자가 되는 게 뭐가 좋은가. 차라리 내면을 꽉곽 채우고 하고 싶은 일을 충실히 하면서 자기만이라도 만족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게 낫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못해도 괜찮고 포기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 남한테 가혹하고 나한테 후한 사람 말고, 남한테도 나한테도 후한 사람, 넉넉한 사람이 되자. 일단 나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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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배신]은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과 교수인 라파엘 M. 보넬리의 저서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완벽주의자의 딜레마를 사례를 통해 재미나게
풀어본 책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는 완벽주의자에 대해 장점이 더 부각되어 인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완벽주의자라면 일을 더 잘해낼것만 같고,
더 능력을 추구하는 성격이라는 선입관을 가지는 양상도 보였다. 그러나 완벽주의자들 본인과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랄지 단점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완벽이라는 것과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이 가지는 공통적 성격과 특징을
분석해보고, 그들이 고민하고 맞딱들인 문제들이 주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해준다.
완벽주의자들에게
나타나는 번아웃증후군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던 사람이 신체 및 정신적 힘이 고갈되어 극도의 피로감으로 인한 무기력증, 자기혐오, 직무거부 등에
빠지는 증상)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슈를 뿌렸다. 공인들이 자신의 고민 중 하나로 많이 이야기했던 번아웃증후군은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겪는 증상이라고 생각한다.
보넬리는 사람들은
완벽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도 알지 못하면서 완벽을 추구한다는 것을 지적한다. 완벽주의는
천성을 개발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완벽해야지만 실수가 줄어들고, 실수가 줄어들어야 고용이 안정되고, 자신의 입지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이렇듯 완벽주의자는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로 성과에 병적으로 집착하고, 자신의 이상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하는 양태를 생산한다.
이 책은
임상 경험, 심리학 연구 경향을 보여주는 특징이 있는데, 77건의
실제 환자들 이야기를 통해 완벽주의가 불러오는 쓸데없는 고민과 불신, 자기부정, 현실 부적응과 같은 사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사례들을 보고
있자면 정말 할 필요가 없는 기우와 같은 고민과 문제들을 가지고 끙끙대는 완벽주의자들을 볼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의 이야기는 코믹하기까지
하다. 이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하고, 기준을 세워 거기에 도달하려 하는데, 자신이 그것에 맞지 않아 심각하게 몰입하는 경향을
보인다.
완벽주의자들은
중간이라고 여기는 순간 수치심이 밀려온다. 그래서
본인의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또한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이 알아챌까봐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가장 많이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속 완벽주의의 모습이다. 완벽주의란 내적인 사고의 틀로 자녀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는 경향이 있는
완벽주의 부모가 많기 때문이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자연스럽고 생산적이고 생동감 있는 긴장으로 받아들인다다. 때론 나의 실수가 나를 완벽이라는 결벽증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경험한다. '인간은 높은 이상이 있어야만 발전할 수
있지만 완벽주의자처럼 높은 이상이 의무가 된다면 그건 독약이다'라고 지적한 보넬리처럼 이상을 추구하되 그것에 얽매여 스스로의 덫에 빠지지 말아야
할것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불완전한 것들이 주는 행복은 불완전성의
허용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모든 일을 반드시 다 잘해야하 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그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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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완벽의 배신 [라파엘 M. 보넬리 저 / 남기철 역 / 와이즈베리] 이 책의 저자 라파엘 M. 보넬리는 현재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다. 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듀크 대학교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4년 그라츠 의과대학에서 신경정신과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5년 정신과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정신의학, 정신치료, 치매가 주요 관심 분야다. 저서로는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정신치료와 종교의 단란한 공존에 관한 변론>, <정신치료와 영성> 등이 있다. 성과 지상주의,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든 것에서 완벽해야만 한다는 강박증을 조금씩은 안고 살아간다. 여기서 저자도 완벽주의자는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는데 물론 완벽한 일처리를 하고 완벽한 성과를 내고자 하는 완벽을 추구하는 열망은 나쁜 것이 아니고 불안한 마음이 동기 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중용을 잃기 쉽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데 완벽주의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은 완벽주의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완전무결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완벽주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을 쌓는 것이다. 즉, 완벽하게 일하면 책잡힐 일도 없고 해고당할 리도 없다는 것과 같이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자신이 만든 겉모습이자, 자기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이고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완벽주의자들은 이상적인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로 타인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면 어쩌나, 거절당하면 어쩌지, 완벽하고 특별한 성과를 내지 않으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할 것이라는 끊임없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 두려움은 비이성적인 신념으로 굳어지면서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강박적인 심리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비이성적인 직감이자 개인적인 신조에 불과한 완벽주의라는 가면을 벗고 이성적인 자각과 분석을 통해 성과 지향적인 사고를 버려 자신이 불완전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완전무결한 것에 대한 집착, 불쾌함,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내면의 자유를 얻고 융통성을 발휘하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총 77건의 환자들의 실제 사례를 접할 수 있었는데 완벽을 추구하는 성향이 생각보다 너무 다양해서 놀라웠다. 결혼을 약속하고 이런저런 다양한 두려움으로 인해 힘들어하는 젊은 여성을 비롯하여 아들이 성인이 되었는데도 아들을 완벽하게 키워야한다는 강박으로 지나친 집착과 억압을 하는 엄마에게 지친 30대 아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밝혀야 완벽한 연인이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남자, 의사들은 완벽하고 오점은 없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지고 사춘기때 후회스러운 자신의 성적 호기심으로 인해 자신은 의사가 되면 안될 것이라고 고민인 의대생 등등 다양한 여러 사례들을 통해 완벽주의자들의 심리와 행동 양상을 보면서 완벽주의의 덫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때때로 가끔씩 완벽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데 확실하게 설명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완벽과 완벽주의의 차이에 대해 알고 진정한 완벽이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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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perfekt'이라는
단어는 '완성, '완료'를
뜻하는 라틴어 '페르펙투스perfectus'에서 파생되었다. 합성어로 '페르per'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완전한'이라는 듯이고, '파세르facere'는 '만들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원래 '완벽한 과정'을 의미했다.(p53)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라파엘 M. 보넬리 교수의 <완벽의 배신>은 위의 사례처럼 완벽하게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고 있지 않다. 자신의 목표를 갖고 직업을 통해 완성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완벽주의자’ 77명의 사례를 통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를 중시하는 ‘성과지상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에서 부각되고 있기도 하고, 이런 과정에서 포부 수준이 지나치게 높고 전력을 다하는 성격의 사람에게서 주로 나타난다는 번아웃증후군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때로는 자신의 이상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하고, 자기중심적인
동기로 인해 생기는 압박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주의는 신을 기만한
죄로 밀어 올리면 다시 떨어지고, 다시 밀어 올리면 또 떨어지는 ‘시지프스의
돌’처럼 작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마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한 발 물러서서, 완벽주의자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나와 유사한 고민을 갖고 상담을 한 분들의 이야기나, '완벽주의자는 다른 사람의 생각과 말이 중요한 존재다'라는 분석을
읽으면서,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과 맞닥뜨린 기분이 들기도 했다.
물론 나는 불완전함도 인정하고 있고,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다만, 내가 갖고 있는 수많은 면 중에 완벽주의자의 모습이 조금씩
겹쳐져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로스차일드처럼 부자가 되거나 괴퇴처럼 유명해지거나, 나폴레옹처럼
권력을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인식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보다 내면을 알차게 채워나가면 완벽주의자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속의 그대’가 듣고 싶어진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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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해야하는 일이라면 완벽하게 잘 해내고 싶다. 하지만 완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내 능력이 부족하기에 벅차다는 것을 잘 안다. 나 자신을 피폐하게 하면서까지 완벽을 향해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것은 지치게 하는 일이다. 이 책《완벽의 배신》에서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완벽주의자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완벽이라는 신화를 깨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마법의 행복 처방전'을 통해 행복에 한 걸음 다가가는 시간을 가져본다.
이 책의 저자는 라파엘 M. 보넬리. 현재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다. 정신의학, 정신치료, 치매가 주요 관심 분야다. 저서로는《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정신치료와 종교의 단란한 공존에 관한 변론》,《정신치료와 영성》등이 있다.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오스트리아에서의 조기 교육도 만만치 않다. 한 살짜리 아이에게 영어로 얘기하는 오스트리아인들을 흔히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성과 지상주의는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 즉 완벽주의를 낳았다. (5쪽)'는 사실에 공감하면서 '완벽주의'에 대해 짚어본다. 사실 완벽주의에 대해 두루뭉술하게만 알고 있었기에 이 책을 통해 세부적으로 알아보게 되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뉜다. 서문에 이어 1부 '가면을 쓴 사람들'에서는 완벽주의자들의 행태, 완벽주의의 이면, 완벽주의의 뿌리 등을 살펴본다. 2부 '가면의 힘'에서는 성과주의 사회의 산물, 환상 속의 나, 외모에 대한 집착, 가족 관계에서의 완벽주의를 살펴보고, 3부 '가면을 벗어던져라'에서는 자기 인식에서 직감의 변화까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완벽주의자의 정신치료를 다룬다. 옮긴이의 말과 참고 문헌으로 마무리된다.
이 책은 생각보다 쑥 빠져들어 읽기에 좋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정신과 의사가 저자라는 점에서 학술적이고 지루한 나열이 있을 거라 짐작했던 나의 편견이 무너지는 순간이다. 일반인이 읽기에 부담없고 쏙쏙 들어오는 예시와 글솜씨로 이론 상의 완벽주의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이 책에는 실제 환자들과의 상담 사례 77가지가 소개되는데, 어떤 사례에서는 '이런 사람도 있군.'하는 생각이 들지만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사례가 있을 것이다. 주변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거나 자기 자신에게도 찾을 수 있는 부분이어서 그럴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솔깃한 느낌으로 설명을 읽어나가게 된다.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에 더욱 와닿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내 마음속을 냉철하게 들여다보면서 조금은 가볍고 행복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사회 유행병을 짚어보는 시간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특히 그 부분에 집중하며 나 자신의 방향을 잡아보는 것도 책을 잘 이용하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저자가 본문에서 지적하고 옮긴이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완벽주의 사고방식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며 반드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적절한 완벽주의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보장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지나쳤을 때 문제가 된다.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힘겹게 만들고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거나 신체이형장애로 자신감을 잃게 한다면 문제를 직시하고 보다 나은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우리는 생각보다 완벽하지 않다"고 말하며, 강박적 완벽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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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의 배신
한때는 인간관계를 지나치게 강조했지만, 요즘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성과다. 이제 우리 사회의 경기 규칙은 명확해졌다. 우리는 성과를 올려야 하며, 그것이 곧 자아 실현이다. 이것이 정말로 올바른 사고방식일까?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성과 지상주의는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 즉 완벽주의를 낳았다. (5쪽)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현대인들에게 비정상적이고 강방적인 사고방식, 즉 완벽주의를 낳았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완벽이란 단어에 대해서 우리는 조금 더 고찰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과 완벽주의라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의미이다.
'완벽한(perfect)'이라는 단어는 '완성', '완료'를 뜻하는 라틴어 '페르펙투스(perfectus)'에서 파생되었다. 합성어로 '페르(per)'는 '처음부터 끝까지', '속속들이', '완전한'이라는 뜻이고, '파세르(facere)'는 '만들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원래 '완벽한 과정'을 의미했다. 따라서 '완벽하게' 일하고 싶어하는 것이 정신병리학적인 문제는 아니다. (53쪽)
즉, 완벽하게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과 완벽하게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성과 지상주의가 낳은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인 '완벽주의'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완벽주의자'는 도대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라파엘 M. 보넬리의 저서 <완벽의 배신>을 통해서 확인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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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는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과 전혀 다른 의미다. 완벽주의자는 완전무결을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다. 완벽주의자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을 쌓는 것이다. 완벽주의는 자신에게 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피하려는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다. 즉, 완벽하게 일하면 책잡힐 일도 없고 해고당할 리도 없다는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완벽주의는 천성을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완벽을 추구하려는 열망이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불안한 마음이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중용을 잃기 쉽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우 '욕망 없는 인간' 혹은 '최후의 속물'이라는 비판적인 제목으로 평균적인 것과 평범한 것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다. (7쪽) 그렇다. 성과 지상주의가 양산한 비정상적이고 강박적인 사고방식인 완벽주의는 완전무결을 위해 애쓰기 보다는, 타인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모습에서 실수가 드러나지 않도록, 그들에게서 질책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는 행위, 아니 자신을 가학하는 행위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완벽주의자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불만족, 자기 경멸,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 시달린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마련이므로, 이런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완벽주의자는 으레 불평 많은 사람, 지독한 비관론자,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불만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 없다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의 특징은 성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즉, 대단한 업적과 뛰어난 실적을 울리는 일에만 매달린다. 완벽주의자는 특히 거절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위신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완벽주의자는 불안감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불가침 영역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늘 마음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만든 겉모습이자, 자기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인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극도의 피로감만 안고 끝나게 마련인 시시포스의 상황에 처하게 마련이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집착하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실수에 대한 병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완벽주의자의 영혼은 뱀 앞의 생쥐처럼 마비되어 있다. 영혼이 마비된 완벽주의자는 사고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 남의 말을 잘 듣지 안혹, 잘난 척하며, 때로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한다. 주변 사람의 반응을 자주 살피는 완벽주의자는 지나치게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의 생활에 이래라저래라 하며 자신의 '이상'을 타인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7~9쪽)
완벽주의라는 병폐는 심리적 압박감을 양산하여 불만족, 자기 경멸,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 시달리게 만든다. 이러한 감정으로 인해 스스로 괴로워하고, 심지어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그렇기에 완벽주의자는 불평이 많은 사람, 지독한 비관론자,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불만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큰 문제는 완벽주의자는 본인의 문제를 지각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완벽주의라는 심리적 장애를 해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완벽주의자를 완벽주의라는 비이성적 사고방식에 빠지도록 만드는 힘은 두려움이다.
완벽주의자는 마음이 자유롭지 못하며 온갖 불길한 두려움에 싸여 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 실수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거라는 두려움, 사회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이다. 완벽주의자는 두려움에 이끌려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인다. 내적 자유란 자기중심적 사고, 자신의 결점 억압, 잘난 척하는 태도, 권력욕 등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만심, 본인은 물론 타인을 컨트롤하려는 생각, 실수하지 않겠다는 욕심, 울분이나 책임 전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내적 자유를 얻으면 시기심과 분노, 태만, 욕망, 소유욕, 폭음 폭식, 자만심을 인지하게 되고, 이런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완벽주의자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완벽주의자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필사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며, 불완전한 자신의 실수로 구멍이 뚫려서는 안 되는 가면이다. 완벽주의자들은 밤낮없이 일하지만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알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은 쉬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지만 희망도, 방항성도 없다. 오스트리아의 영화배우이자 작가인 헬무트 크발팅어가 부른 '자동차 탄 미개인'이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곳에 빨리 도착한다네." 완벽주의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들은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면서도 자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다. 완벽주의자들은 균형 감각이 없고, 본인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절대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그것들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완벽주의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텅 빈 내적 공허함을 채워줄 내면적 성숙이다. (319~320쪽
완벽주의자는 항상 두렵다. 자신의 실수가 드러나는 것이, 실수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로 인해 사회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너무나 두렵다. 그렇기에 그들의 행동은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아니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완벽을 추구한다. 그들의 내면은 불안감과 두려움을 제외하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노력하지만,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영문도 모른 채 그들은 항상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이러한 최선이 '완벽하게' 일하고 싶어하는 것과 동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완벽주의자들이 완벽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선 우리는 어떠한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
불완전함을 인정해라! (284쪽)
이와 같은 강박적인 심리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비이성적인 직감이자 '개인적인 신조'에 불과한 완벽주의라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그다음 이성적인 자각과 분석을 통해 성과 지향적인 사고를 버려야 한다. 어쩌면 이 단계에서 시대의 가치와 충돌할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자신이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불완전성 허용'이란 자신의 불완전함, 평범함, 속된 마음 등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실적인 자기평가를 통해 바람직한 목표를 설정해야만 가식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내면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불완전성 허용'이 이루어져야 이기주의와 통제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완전무결한 것에 대한 집착, 불쾌함,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내면의 자유를 얻으면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위신을 세울 수 있다. 게다가 융통성을 발휘하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 (9쪽)
사실, 이곳에 적은 내용을 통해서 완벽주의에 대한 완벽한 치료방법을 찾는다는 것은 욕심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본인이 완벽주의자라고 생각된다면, 혹은 본인 주변의 완벽주의자 때문에 원활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면, 라파엘 M. 보넬리의 <완벽의 배신>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그는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로서, 그가 내담하였던 완벽주의자들의 사례를 모아 해당 책을 출간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지루한 인문서적이 아니다. 딱딱한 과학서적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자기계발서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글의 중간중간에 담겨있는 작가의 위트로 인해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재치있는 위트를 마지막으로, <완벽의 배신>의 소개를 마치고자 한다.
길거리에서 10초에 한 번씩 손뼉을 치는 남자가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그 남자에게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남자는 야생 코끼리 떼를 몰아내고 있따고 대답했다. 깜짝 놀란 행인이 여기에는 코끼리가 단 한 마리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손뼉을 치던 남자가 만족스런 표정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거봐요. 손뼉 친 효과가 있잖아요!" (122쪽) * 와이즈베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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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자는 성과 지향 시대가 낳은 산물이다. 완벽주의자는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불만족, 자기 경멸 그리고 불쾌한 기분에 시달린다. 스스로 괴로워하고 주변 사람들까지 그렇게 만든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마련이므로, 이런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완벽주의자는 으레 불평 많은 사람, 지독한 비관론자, 유머 감각이라고는 없는 불만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은 아무 쓸모없다는 흑백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의 특징은 성과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것이다. 즉, 대단한 업적과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일에만 매달린다. 완벽주의자는 특히 거절당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 나머지 남들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까 봐 늘 노심초사한다. 게다가 위신이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완벽주의자는 불안감으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난공불락의 불가침 영역을 구축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늘 마음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처신할지, 남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일 뿐이다. 자신이 만든 겉모습이자, 자기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인 것이다. - '서문' 중에서
완벽주의 덫에서 벗어나라
저자 라파엘 M. 보넬리는 1968년 오스트리아 쉐르딩에서 태어나 현재 오스트리아 빈 소재 지그문트프로이트 대학교 신경과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 및 정신치료 전문의다. 빈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미국 하버드 대학교, 캘리포니아 대학교, 듀크 대학교 등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2004년 그라츠 의과대학에서 신경정신과 박사 학위를 받은 후 2005년 정신과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정신의학, 정신치료, 치매가 주요 관심 분야다. 저서로는 <우리의 관계를 지치게 하는 것들>, <정신치료와 종교의 단란한 공존에 관한 변론>, <정신치료와 영성> 등이 있다.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理想이 완벽주의자들에겐 의무가 된다. 이상은 현실을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지만 의무는 이와 반대로 현실을 아래로 끌어내린다. 완벽주의자를 힘들게 하는 바윗덩이는 완벽에 대한 스스로의 과도한 집착이다. 이들에게 완벽이란 목적을 달서하는 수단일 뿐이며 스스로가 만든 겉모습이자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에 불과하다.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해선 비이성적인 두려움, 잘못된 명예심, 그리고 완벽주의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결점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책의 저자는 '완벽에의 갈망'이 만연된 사회를 정밀 진단하면서 성과주의의 덫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 환자들의 상담 사례를 통해 완벽주의자들이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며,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지 설명한다.
"완벽주의자들에게 자기 인식을 위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완벽주의자의 '정신 기구'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과 달리 완벽주의자는 내면이 자유롭지 못하며, 기계장치처럼 여러 요소들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원인과 결과를 보여주는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이러한 '정신 기구'를 작동하는 이유는 실수에 대한 극단적인 두려움 때문이다. 특히 자신의 실수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챌까 봐 몹시 두려워한다. 완벽주의자에게 완벽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도구다. 자신이 마련한 책략이자, 본래의 얼굴을 숨기는 가면이다.
완벽주의자들의 인간관계
알프레드 아들러는 이미 1백 년 전에 이렇게 설명했다. "권력과 우월성을 추구하는 인간은 시기심을 자주 드러낸다. 쉽게 도달할 수 없는 목표에 직면했을 때 느끼는 거리감은 열등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거리감이 사람을 압박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태도나 생활방식을 보면 목표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있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남들은 무슨 성과를 이루었는지에 늘 촉각을 곤두세우고, 남들보다 못하다고 느끼면 정신적으로 위축된다.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경우에도 이러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으며, 언제나 부족하다는 위장된 허영심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러난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갖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다. 공동체 의식이 그런 생각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은 속마음이 훤히 드러난다"
날씬한 몸매
강박증
엄마의 '과잉보호'에
따른 의존증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얼음판 위에서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미끄럼을 탄다. 완벽주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조부모가 사망해도 아들과 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예스퍼 율의 견해에 따르면,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타인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인간이 된다. 슬픔이나 두려움도 모르고, 동점심이나 연민도 없다.
절도와 완벽주의
절도는 완벽주의라는 주제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절도라는 미덕에서 비롯된 건강한 자기 절제는 완벽주의와 외형적으로는 유사하다. 하지만 완벽주의자에게는 지나쳐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되는 중용이 없다. 그래서 절도라는 미덕은 완벽주의와 다른 것이다. 이 두 가지를 비교하고 그 차이점을 밝히면 완벽주의가 어떻게 치유되고 극복되는지 상세히 알 수 있다.
셀리그먼이 제시한 절도는 그 옛날의 기본 도덕이었던 '템페란티아 temperantia'와 관련이 있다. 절도와 완벽주의는 신뢰, 규율, 자기 수양, 실수 줄이기 등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러한 미덕은 완벽주의자들의 생각이다. 절도는 완벽주의자가 간절히 원하는 마음의 안정을 주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는 '템페란티아'를 무의식적으로 흉내 내지만, 내면적으로 실현하지 못한다. 완벽주의자는 이상을 성취하지 못하며, 따라서 그의 내면은 텅 비어 있다.
당신은 완벽주의 성향을 지니지 않았는가?
모든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은 마음이 자유롭지 목하며 온갖 불길한 두려움에 고통받고 있다. 즉 실수에 대한 두려움, 실수하면 타인들이 자신을 싫어할 거라는 두려움, 그리고 사회에서 낙오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등으로 늘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자는 자유롭지 못하다. 두려움에 이끌려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인다.
내적으로 자유로우려면 자기중심적 사고, 자신의 결점 억압, 잘난 척하는 태도, 권력욕 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또한 자만심, 타인을 컨트롤하려는 생각, 실수않겠다는 욕심, 책임 전가 등에서 탈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에 내적 자유를 얻게 되면 시기심과 분노, 태만, 욕망, 소유욕, 폭음, 폭식, 자만심 등을 인지함으로써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한편, 완벽주의자들은 최고의 성과를 내려고 하지만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안간힘을 쓰면서도 자신들의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른다. 또 마음의 안정을 찾고자 하지만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그들은 규형 감각이 없고, 본인과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이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그게 뭔지도 모른다. 혹시 완벽주의 성향을 가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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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완벽을 꿈꾼다. 완벽해지기 위해서 수 많은 시간을 투입한다. 하지만 완벽 그 자체를 추구하다 보면 스스로 지친다. 흔히 이야기하는 번아웃 현상이 나타난다. 물론, 완벽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비행기 기장 등은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완벽이 누군가를 위한 것이 아닌 자신의 결점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면 어떨까? <완벽의 배신>은 완벽주의가 완벽하기를 바라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완벽주의자는 자신만의 철옹성을 쌓아 나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완벽주의자는 성과중심 시대가 낳은 산물이라고 이야기하면서 저자는 이런 사람들을 가면을 쓴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디테일, 완벽 등 이런 단어들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는 병적이고 신경증적이다. 성실과는 거리가 있다.
“완벽주의자는 완벽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는 오직 불가침의 요새를 구축하는 데만 몰두한다.”
가끔 회사에 보면 완벽을 추구하는 분들이 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어찌되었든 생존경쟁 시대에 자신의 결점을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업무에만 몰두하는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번아웃 직전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신경질적 반응을 보인다. 심하면 이 책에서 말한 것처럼 비인간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완벽주의자는 스스로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늘 위협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완벽주의자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다.”
성과주의가 낳은 산물인 완벽주의자는 단순히 업무에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외모에 대한 집착 또한 잘못된 완벽의 추구다.
“근육이 부실할수록 겁이 많고 여자들에게 거절당하고 멸시당한다고 생각한다. 적지 않은 남들이 단기간에 근육을 늘리기 위해 장기간 사용하면 인체에 치명적인 부작용을 일으키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제를 남용하고 있다.”
잘못된 완벽의 추구를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나 무조건 되야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모두에게 인정받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실패를 인정하고 세상은 언제나 불완전함을 인지해야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불완전함을 인정해라! 완벽주의 치료에서 마법의 주문 같은 말이다. 완벽주의 환자는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당장 가면을 벗어던지고 자신을 돌보는 일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