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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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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 이상권 | 현암주니어      ‘옛날’이라는 기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과거의 어디까지를 거슬러 ‘옛날’이라고 불러야할까? 이와 맞물린 ‘불과’라는 부사를 현재의 위치에서 지나간 시간의 어디쯤에 적용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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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 이상권 | 현암주니어 

 

 

‘옛날’이라는 기준을 어디에 맞춰야 할까? 지금으로부터 과거의 어디까지를 거슬러 ‘옛날’이라고 불러야할까? 이와 맞물린 ‘불과’라는 부사를 현재의 위치에서 지나간 시간의 어디쯤에 적용해야 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어느새 박물관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세월이라는 역사의 한 토막을 뚝 떼어 고스란히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에서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멀다면 멀고 반대로 손을 뻗치면 금세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것만 같은 시간인데 말이다.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상권, 현암주니어)은 그런 아름다운 시간과 세월과 추억과 그리움의 풍경들을 담고 있다. 무려 열두 개의 테마로 나뉜 이야기의 갈래를 다시 소재별 분류를 통해 섬세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림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장르는 서화(書畵)인 셈이다.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집이다.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그것들은 정겹거나 낯설게 다가와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그리운 시간들을 흔들어 깨웠다. 순수한 이미지의 대명사인 아이들의 세계로 초대하였다. 그렇다면 당시 아이들은 어떤 사랑과 관심을 받으며 자랐는지 책 속으로 들어가서 차근차근 살펴보기로 하자.

 

뜻깊은 일 년을 보내고 맞이하는 생일, 돌잔치

첫돌을 넘기지 않은 아기의 몸은 아주 약한 편이어서 죽는 날이 많았다. 감기만 걸려도 죽을 수 있고 동물한테 물려도 죽을 수 있었다. 이를 위한 액매기로 사람들은 아기의 태를 깨끗하게 씻어서 항아리에 보관해 두었다가 좋은 날을 골라서 땅에 묻었다. 그래야 아기가 병에 걸리지 않고 오래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도 아기 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때 왕이나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태항아리 속에 아기가 태어난 날과 그것을 땅에 묻은 날짜가 적힌 태지석을 함께 넣어서 묻었다. 또 평민들도 집에서 쓰던 항아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아기의 태를 넣고 묻었다. 이런 아기의 모습은 김홍도의 <점심>이라는 그림에도 숨어 있고, 돌잔치가 한창인 김홍도의 <평생도> 속에도 숨어 있다. 또 채용신의 <운낭자상>에서도 첫돌을 맞이한 아기가 엄마 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이는 온 식구가 도와 가며 키웠어

옛날에는 유모차가 없었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외출을 할 때는 어른의 등이 유모차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아이의 모습은 신윤복의 <아기를 업은 여인>에 잘 나타난다. 여기서 엄마 등에 업힌 아이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또 김홍도의 <어물장수> 속에 나오는 아이도 엄마 등에 업혀서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런가 하면 김홍도의 <행상>에서도 엄마는 아기를 업은 채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오른손으로는 머리에 인 짐을 잡고, 왼손으로는 지팡이 하나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슬아슬해 보이는데도 엄마와 아기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김홍도의 <나들이>를 보면 엄마는 아이를 안은 채 소를 타고 있고 아빠도 작은 아이를 업은 채 먼 길을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꽤나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런 그림은 조영석의 <당인의 화의를 받은 어선도>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는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아이를 업고 있다. 또 김홍도의 <길쌈>을 보면 할머니가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그보다 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아이들이랑 놀아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옛날 아이들은 온 가족이 힘을 모아서 사랑스럽게 보듬어 키웠다. 요즘처럼 뭐든지 간소화된 핵가족 사회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는 거야

우선 신윤복의 그림으로 전해지고 있는 <뒤뜰의 정경>에서는 풀냄새 가득 묻은 바람이 불어오는 대문 밖으로 나선 아이들은 마치 신광현의 <개를 부르는 아이>에 나오는 아이처럼 달리기를 시작한다. 당시 아이들은 이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언덕을 오르거나 강에 갈 때도 내달렸다. 이때 쫄랑대며 따라다닌 강아지는 아이들의 좋은 친구였다. 또 김홍도의 <고누 놀이>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고누를 두면서 놀기도 하였고, 윤덕희의 <공기놀이>나오는 아이들처럼 한 무리의 아이들이 커다란 버드나무 아래에서 공기놀이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 공기놀이는 남녀노소가 즐기는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그저 철부지 여자 아이들의 놀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당시 아이들은 자연의 품에서 마음껏 뛰어놀았던 것이다. 아이는 아이답게 온 천지를 들쑤시고 다니면서 스스로 호연지기를 키워나갔던 것이다.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놀이 환경이다. 이렇듯 자연과 더불어 활달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점점 확장되어 간다. 역시 자연 속에서 말이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뭐니 뭐니 해도 낚시질만큼 재미있는 놀이는 없을걸!

김득신의 <강변화음도>에서 어른들은 잡아 온 물고기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조선 시대 민화인 <경직도>에는 텃논에서 물고기를 잡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낚시질은 선비들이 여름에 했던 대표적인 놀이 중 하나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서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력원의 <버드나무 아래 낚시하는 선비>를 보면 수양버들 아래서 근엄하게 낚시질하는 선비가 등장한다. 단정한 옷차림을 한 그림 속 선비는 흐트러짐이 없다. 대어를 낚아도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한 자리에 진득하게 있질 못해서 이리저리 옮기거나 물속에 낚싯밥을 던지거나 물수제비를 뜨면서 자신들만의 놀이를 즐긴다. 그러다가도 유운홍의 <유제조어도>처럼 근처에서 낚시질하고 있던 동무가 “잡았다아!”하고 소리치면 이한철의 <소상조어도?>에 나오는 아이처럼 부러운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한다. 두 작품에 나오는 아이들은 짚신을 신고 있지만 얼굴 가득 쏟아진 행복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력원의 그림 속 선비하고 확연히 비교된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해 질 무렵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이들

김두량의 <목동오수>에 나오는 아이는 나무뿌리에 소를 매어두고 풀밭에 누워 달콤한 잠을 자고 있다. 또 김식의 <누워 있는 소>에서 쪼그려 앉아 잠을 자고 있는 소가 등장한다. 여기서 두 작품을 잠깐 짚어보고 넘어가자. 옛날에는 호랑이나 늑대 같은 사나운 동물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동오수’에서 아이가 풀밭에 누워서 마음 놓고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누워 있는 소’의 보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림의 제목은 ‘누워 있는 소’이지만 실제로 소는 잠을 잘 때 쪼그려서 잔다. 이는 적이 나타났을 때 벌떡 일어나 자신을 보호하고, 누워 잠자는 아이를 깨워서 보호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옛날 아이들은 ‘소’의 보호까지 받으면서 건강하게 자랐던 것이다.

 

소는 큰 덩치와는 다르게 무척 순한 동물이다. 노가의 <목동>처럼 소 등에 타서 편안하게 피리를 불며 즐길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당시 소는 양반, 평민 구별 없이 탔으며 평민들이 더 많이 타고 다녔다고 한다. 이번 챕터에서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주로 무명화가들이 그렸다는 <경작도>이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경작도’에 대한 깨알정보는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을 통해서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또 최북의 <기우귀가>도 눈여겨 볼 작품이다. 이러한 아이들의 모습은 그림 뿐 아니라 연적에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이건의 <청백자 물소를 탄 아동 모양 연적>이나 철원의 <소와 목동>에서도 아이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는 수많은 화가들이 소를 타고 다니는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김홍도의 <목동귀가>에서 보듯 하루 일을 마친 아이가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처럼 평화스러운 모습은 단연 최고이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옛날 아이들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했어

옛날에는 요즘처럼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책이 많이 꽂혀 있는 그림이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 합격해야만 신분 상승이 가능했기 때문에 책을 금덩어리만큼 소중히 여겼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그림이 바로 <문방도> 병풍이다. 마치 큰 책꽂이 몇 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이런 그림은 원래 왕실이나 양반들만이 좋아했는데 조선 시대 말에는 평민들도 그림을 사다가 자식들 방에 놓고 늘 책을 가까이하기를 기원했다고 한다. 이런 부모의 마음은 김홍도의 <서당>이나 <자리짜기>에서 잘 드러난다. 또 유운홍의 <부신독서도>라는 그림을 보면 땔감으로 쓸 나무를 지게에 짊어지고 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책 속에 빠져 있는 아이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풍경은 이인문의 <송하선동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아이는 땅에다 책을 펼쳐 놓고 편안하게 글을 읽고 있다. 이처럼 예나 지금이나 부모들의 큰 관심사는 아이의 공부가 아닐까. 물론 공부를 해야 하는 목적은 각기 다를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현실을 넘어 신선들의 세계에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신선들의 비서는 왜 아이들이었을까?

산신령이나 염라대왕 같은 신들은 마음이 맑고 순수한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어린 아이를 비서로 두었다고 한다. 흥미롭다. 그래서 옛 그림에 나오는 신들의 비서는 대개 아이들이다. <산신도>를 보면 나이가 몇 살인지 알 수 없는 산신령이 소나무 밑에 앉아 있는데 그 옆에 어린아이가 서 있다. 산신령은 도술을 부릴 때 쓰는 부채를 들고 있다. 그 앞에는 호랑이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이 호랑이는 함부로 산에 와서 동물들을 죽이거나 나무를 배는 사람들을 혼내준다. 만약 산신령 옆에 아이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칼을 든 장군이 있다면 산신령의 모습이 인자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산신령이 인자해 보이면서 감히 함부로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신비스럽게 보이는 것은 옆에 있는 아이 때문이다. 아이는 작고 여리지만 강한 생명력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래서 신들은 영혼이 맑은 아이들을 옆에다 두려고 했던 것이다. <지옥의 다섯째 염라대왕>을 보면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염라대왕의 양쪽에 아이들이 서 있다. 이승에서 숱한 죄를 지은 어른들을 벌하는 자리에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거짓말이 통하지 않으니 항상 맑고 정의롭게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또 <깨달음을 얻은 존재>를 보면 천 살 쯤 되어 보이는 신선이 앉아서 도를 닦고 있으며 그 옆에서 아이가 부채질을 하면서 차를 끓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차만 끓이는 것이 아니었다. 김득신의 <취선도>에 나오는 것처럼 가끔은 술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신선 밑에서 살다보면 김홍도의 <선인도>에 나오는 아이처럼 어느 정도 자랐을 때 살아 있는 생명들의 마음을 울리는 신비로운 피리도 불 수 있게 된다. 한편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신선들이 서왕모네 집으로 오고 있는 장면을 그린 <요지연도>를 보면 무대 중앙에 앉아 있는 서왕모 양옆에서 큰 부채를 들고 시중을 들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신선들의 왕인 서왕모도 자기 곁에 해맑은 아이들을 두었던 것이다. 이는 아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였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음 그림을 살펴보도록 하자.

 

선비들의 시중을 들면서 청렴한 정신을 배우는 아이들

이불해의 <기려도>를 보면 나이가 든 선비가 당나귀를 타고 가고 있다. 유일하게 아이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 그림이다. 반면 송민교의 <기려도>를 보면 무거운 짐을 든 아이가 뒤따르고 있다. 선비의 시중을 드는 시종이다. 이처럼 어딘가 먼 길을 갈 때는 꼭 시중을 드는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그렇다고 모든 선비들이 자기 비서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것은 아니다. 아주 가난한 선비들은 하인을 거느릴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시중을 들어 줄 아이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선비들은 이불해의 <기려도>에 나오는 것처럼 혼자 다녀야 했다. 선비의 시중을 드는 아이들은 <황정환아도>에 나오는 아이처럼 어느 장소에 가든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일 줄 알아야한다. 김응환의 <강안청적도>에는 선비가 타고 다니는 당나귀 대신 수레가 보인다. 이처럼 당나귀 멀미를 하는 선비들은 수레를 타고 다녔으니 시중드는 아이도 그만큼 힘들었던 것이다. 

 

이정윤의 <고사탁족도>에 나오는 선비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서 사색에 잠긴다. 이처럼 물에 직접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선비들은 물가에서 구경하는 걸 즐겼다. 그때도 시중드는 아이는 빠지지 않는다. 이정윤의 <관폭도>에 나오는 선비는 떨어지는 폭포를 몇 시간째 보고 있다. 해는 떨어지고 어두워지려고 하지만 걱정도 없다. 그런 선비를 보는 아이의 마음만 급하다. 이웃에 사는 여러 선비들이 날을 잡아서 같이 움직이는 날에는 시중드는 아이들도 조금은 편했다. 윤덕희의 <관폭도>를 보면 이름난 폭포를 보기 위해서 수많은 선비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이고 선비들 뒤에는 많은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이처럼 물 구경을 하고 싶어 하는 선비의 마음은 끝이 없다. 장사홍의 <폭포를 바라보는 선비>를 보면 폭포 아래 마주 보듯이 앉아서 물 구경을 하고 있다. 정선의 <문암관 일출>을 보면 바닷가의 뾰족하게 솟아오른 문일관으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급해서 힘들어 보인다. 선비들은 당나귀를 타고 올라갔으니 힘들 턱이 없겠지만 시중드는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정수영의 <금강전경>을 보면 시중드는 아이는 당나귀를 어딘가에 메어놓고 와서 선비들처럼 금강산을 바라보면서 감탄한다. 이처럼 선비들을 따라 다니면서 시중드는 아이들은 힘든 속에서도 선비들의 청렴정신을 배우게 된다.

 

가족의 사랑 안에서 자라나는 아이들

신한평의 <자모육아>와 김홍도의 <시주>와 윤덕희의 <오누이>라는 그림을 보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지 더욱 크게 느낄 수가 있다. 옛날 아이들이 이렇게 가족의 보호만 받고 사는 것은 아니었다. 옛날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어른들 못지않게 일을 하였고 또한 할아버지나 할머니 시중을 많이 들기도 하였다. 윤두서의 <취옹도>에서는 마실 간 할아버지를 모시고 돌아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막내는 할아버지의 긴 지팡이를 들고, 두 형들이 힘을 합쳐서 할아버지를 부축하면서 가고 있다.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축하면서 길을 걷다보면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이해하고 된다. 또 그런 자신이 할아버지에게 큰 힘이 된다는 뿌듯함을 느끼면서 철이 든다. 그렇게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은 보호받기도 하고, 어른들에게 힘이 되기도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어딜 가나, 어디에서나 꼭 등장한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 다음을 살펴보기로 하자. 

 

재미있는 볼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아이들도 빠지지 않았지

어디선가 요란하게 북소리랑 꽹과리 소리가 들리고 마을이 시끌시끌해지면 집안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은 이 소리를 듣자마자 뛰어나간다. 어떤 아이는 너무 급하게 나가는 바람에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이웃집 친구들도 나와 있고, 아주머니, 아저씨들을 비롯하여 할아버지, 할머니, 동네 개들은 물론 까치 같은 새들도 구경을 하고 있다. 이런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것은 김홍도의 <평생도>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정말 많다. 문을 열고 내다보는 아이, 길가에 나와서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아이, 담 너머로 보고 있는 아이, 엄마 품에 안겨서 보는 아이, 행렬 속으로 뛰어들어서 춤을 추듯이 달려가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흥겨운 놀이판에 아이들이 빠진다면 재미없을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곳곳에 아이들을 그려 놓았던 것이다.

 

신윤복의 <대쾌도>는 씨름과 택견 시합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든 사람들을 그리고 있다. 양반, 평민, 스님, 여자 할 것 없이 근처에 사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왔다. 이런 구경에는 남의 눈치를 본다거나 신분 따윈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엿이나 술을 파는 사람들이 판을 놓아도 나무랄 사람이 없다. 이런 놀이판에도 아이들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때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은 것은 택견 시합이 아니라 엿장수이다. 오직 승부에만 집착하고 있는 어른들 틈에서 아이들의 이런 모습은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이런 비슷한 장면은 모홍갑의 <판소리도>, <신임 관리의 행차>, <대동강에서 벌어지고 있는 환영 잔치>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아이와 어른들이 함께 모여 노는 장면은 아름답다. <경직도>의 한 장면을 보자. 추석을 맞이하여 어른과 아이들이 마을 어귀에 나와서 달구경도 하고 함께 어울려 강강술래 같은 놀이도 하면서 즐긴다. 이제 곧 추석이다. 이날만큼이라도 <옛 그림속의 숨어 있는 아이들>에서처럼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우러져 달구경도 하고, 소원도 빌면서 행복한 시간을 갖고 싶은 충동이 인다.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소원을 빌고 있는 아이들은 누구일까?

불교의 세력이 강했던 고려 시대에는 여러 가지 불화가 그려졌다. 이때 정해진 틀이 있었는데, <수월관음도>에는 관음보살과 어린 동자만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인도를 비롯하여 티벳,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수월관음도가>가 그려졌는데, 그 형식은 거의 다 비슷비슷하다. 화가들이 이런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관음보살을 예쁜 여자처럼 그리기도 하고 때론 무서운 남자처럼, 때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아볼 수 없게 그리기도 했다.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남자아이였다가 나중에는 예쁜 여자아이처럼 그려지고 어떤 그림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가기도 하고 때론 체구가 작아서 아이 같지만 얼굴을 보면 어른처럼 생긴 경우도 있다. <흥국사 수월관음도> 속에 나오는 동자는 어린아이라고 하기에는 얼굴 표정이 너무 어른스럽다. 머리 모양만 동자처럼 하고 실제 모습은 어른 같다. 이런 식으로 화가들은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다. 결국 형식은 똑같지만 그 안에서 화가의 개성이 묻어나도록 섬세하게 변화를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도 아이들은 모습을 당당하게 등장한다. 더 높은 이상을 향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아이들의 다음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김희겸의 <무릉도원도>를 보면 꽃 속에 파묻혀 있는 평화로운 마을과 아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해도 아이들이 없으면 행복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화가들은 상상의 세계를 그릴 때에도 아이들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들만의 무릉도원인 <백동지도> 병풍을 살펴보자. 이 그림 속으로는 어떤 어른도 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말 그대로 아이들만이 살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상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따돌림을 시키거나 따돌림을 당하거나 그런 편가름 따위의 애당초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런 그림을 ‘백동자도’ 혹은 ‘백자도’라고 하는데, 이는 백 명의 아이들을 그린 그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백’이라는 숫자 속엔 아이들이 백 살이 되도록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결국 <백동자도>는 아이들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면서, 모두 좋은 꿈을 꾸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은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옛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란 책 속에는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태항아리의 의미에서부터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아이들의 모습까지 읽을거리가 알찼다. 나름 미술관이나 박물관 나들이를 참 많이 하면서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내게 책 속의 그림들이 일침을 가했다. 왜 아이들의 모습을 한 번도 꼼꼼하게 눈여겨보지 않았느냐는 이유에서였다. 그랬다. 나는 왜 한 번도 옛 그림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려 하지 않았을까. 우리 생활 곳곳에 아이들의 모습이 단골로 등장하는데 말이다. <옛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아이들>은 내가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이 아닐까 싶다. 두고두고 읽어도 보물 같은 이야기들이 와르르 와르르 쉼 없이 쏟아질 것만 같다. 우리의 문화예술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이제 내 눈과 마음은 파랗게 물들었다.

 

-2016.8.23. 포스트모던

 

m****0 2016.08.23. 신고 공감 6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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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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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이 책은    궁금했었다. 아이들은 어디 있었을까? 지금 말고 옛날 말이다. 알아보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가 가장 좋을텐데. 마침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다. 이 책에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이미 보았던 아이들   그러고 보니, 내가 제목을 보면서 이미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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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이 책은 

 

궁금했었다. 아이들은 어디 있었을까? 지금 말고 옛날 말이다.

알아보는 방법은 책을 통해서가 가장 좋을텐데. 마침 손에 들어온 책이 바로 이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다. 이 책에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내가 이미 보았던 아이들

 

그러고 보니, 내가 제목을 보면서 이미 아이들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던 그림이 몇 점이 있긴 하다.

심우도(尋牛圖)’가 그 하나요, 또 하나는 신윤복의 단오(端午) 놀이라는 작품이다.

 

불교에서는 소가 깨달음을 의미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숲으로 들어가서 소를 발견한 다음, 그 소를 길들여서 타고 오는 이런 그림을 심우도라고 한단다.>(51)

 

저자는 그런 심우도를 아이들이 소를 몰고 나가 꼴을 먹인 후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작품들과 같이 다룬다.

 

저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두 가지 그림을 동등하게 취급한 것은 분명 어떤 의미가 있었으리라. 아이들이 소를 몰고 나가 꼴을 먹이는 것과 도를 닦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아이들은 저자에게 그런 의미다.

 

또 하나의 그림은 신윤복의 단오(端午) 놀이인데, 분명 거기에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대보 불구하고,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이유는 간단하다. 그 그림이 19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동용으로 제작된 이 책에서 빠지게 된 것이리라. 그러니까,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은 단오를 맞이하여 빨래하는 아낙네, 모처럼 바깥에 나와 목욕하는 아낙네를 훔쳐보고 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바위 사이에 숨어 있었다.

 

 

아이들은 어디에 

 

그렇게 두 점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이 책에서 처음 접하는 그림들이었다.

그림 속에서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돌잔치 자리에서, 엄마의 품에서, 엄마 등에 업힌 모습으로, 고누 놀이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소를 몰고 오는 모습에 대하여는 이미 말한 바가 있다.

 

저자는 옛 그림에서 그렇게 아이들을 샅샅이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어떤 그림에서 아이들은 있을만한 곳에서 보이지만, 어떤 곳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이다.

 

예를 들어, 공부하는 아이들은 어디 있을까 

먼저 의례히 있을 곳이라 생각하는 서당에 보인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서당에 아이들이 보인다. 또한 김홍도의 자리짜기에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가 있다.

부모가 자리를 짜고 있는 방 한쪽에 아이가 등을 돌리고 책을 읽고 있다.

그런 모습을 저자는 이렇게 해설하고 있다.

 

<“너는 하지 않아도 되니까 신경 쓰지 말고, 어여 책이나 봐라! 서당에 가서 훈장님에게 혼나지 말고, 어서 열심히 공부해!” 라고 말하는 것 같지 

책을 펼쳐 든 아이는 막상 부모님이 일을 시키지 않자 처음에는 좋았지만 점차 미안해지기도 하였어.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었지. 아이가 큰 소리로 책을 읽자 부모님은 마음이 흐뭇해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을 하고 있어.>(58)

 

저자의 말을 들으면 설령 그 그림을 보지 않더라도 아이와 부모님 간에 말없는 대화로 방안을 훈훈하게 만들었음직한 정경이 그려지지 않는가 

 

또 글을 읽고 있는 아이가 등장하는 곳이 있다. 이번은 의외의 곳이다. 60쪽에 있는 이인문이 그린 송하선동도이다.

화제(그림 제목)만으로도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소나무 밑에 신선을 시종들고 있는 아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나무 밑에서 아이가 하얀 사슴에 등을 기대고 책을 읽고 있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하얀 사슴은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사슴이다. 그런 사슴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아이는 그래서 출세를 위한 글공부를 하는 게 아니다. 신선처럼 욕심 없이 살기 위하여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공부란 출세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거든. 이렇게 공부하는 목적은 달랐단다. (61)

 

다시 이 책은 

 

공부란 출세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거든. 이렇게 공부하는 목적은 달랐단다.”

 

이런 말을 어릴 적에 한번이라도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뭔가 다를 것이다. 행복할 것이다,

적어도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어릴 때 듣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는데, 그렇게 듣고 시험 아닌 것을 위한 공부가 있다는 것을 어릴 때 알게 된다면, 인생이 어쨌든 달라지지 않겠는가? 이런 그림 책, 그래서 읽어야 한다.

 

 

 

 

 

s***h 2016.08.27.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그림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해봐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그림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해봐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내용보기
이상권 작가님의 옛 그림 시리즈 상상의 동물, 열두 동물 편에 이어 세 번째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이번엔 아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소개합니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질법한 미술 작품 세계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입담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그림 속에서 옛날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땐 그저 옛날 사람들은 학교 안 다녀서 좋
"그림 속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해봐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내용보기

 

이상권 작가님의 옛 그림 시리즈 상상의 동물, 열두 동물 편에 이어 세 번째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이번엔 아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소개합니다. 딱딱하고 지루하게 여겨질법한 미술 작품 세계를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입담으로 알려주고 있어요.

 

 

 

그림 속에서 옛날 생활 모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땐 그저 옛날 사람들은 학교 안 다녀서 좋았겠다는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지금 우리 나이 때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치열하게 공부했었다는 걸 알고 있지요.


 


양반집 아이들은 과거 급제를 위한 공부에 매달려야 했는데 그럼 평민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더 바쁘게 살았더라고요. 온 가족이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아이 키에 맞는 작은 지게를 지고 다니는 모습도 그림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선비들이 계곡물 구경 하러 갈 때도 아이는 비서이자 경호원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양반들의 짐을 지고 다녀야 했고, 그들이 타고 다닌 당나귀를 관리해야 했던 아이. 어른들 못지않게 일해야만 했죠. 이쯤 되면 우리 아이가 한숨과 함께 내뱉은 차라리 학교 다니는 게 편하지라는 말이 나올 법 합니다.

 

 

 

그림 속에 드러난 아이들의 표정, 행동을 보면서 상상해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엿볼 수 있는데요, 요즘도 하는 공기놀이가 옛 그림에도 나타나고 고누놀이라고 하는 전통 놀이도 알게 되었어요. 제 어린 시절에만 해도 바닥에 줄 긋고 돌멩이를 도구 삼아 한 다양한 놀이들을 했었는데, 요즘은 바깥놀이를 전혀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 생활. 그런 놀이를 사라지게 만들어 미안한 마음이 드네요.

 

그 유명한 김홍도의 <서당> 그림에서는 지금까지 미처 몰랐던 사실을 배우기도 했어요. 어린이인데 갓을 쓴 모습도 있고, 그냥 머리를 길게 땋은 아이도 있는데 왜 그런지 아세요? 갓을 썼다면 결혼한 어른인 셈이라고 합니다. 김홍도 그림은 워낙 유명해서 눈에 익어 있었지만 이런 부분이 있었다는 걸 몰랐어요.  그저 혼나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만 집중해 있었던 겁니다. 보고 있다고 진실로 다 아는 게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네요.

 

 

 

아이들이 그림 속에 있으면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특히 흥겨운 곳에 빠지면 안 되죠. 행복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림에도 동자가 있어야 살아납니다. 산신령, 신선이 나오는 그림에는 동자가 꼭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죠. 작고 여리지만 강한 생명력을 가졌고, 희망을 상징하는 아이. 순수한 마음의 표상인 아이를 그림에 집어넣음으로써 화가의 소망을 엿볼 수도 있어요.


아이와 직접 박물관에 가서 그림을 확인하면서 한번 더 감상해봐야겠습니다.

 

 

 

l****5 2016.08.2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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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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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면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그 그림 속에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아이들은 있었다.그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과 달랐다. 억압되지 않고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오늘날 놀이문화와 확연히 다른 자연스러움.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건강함이 느껴졌다.그런 아이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서평단으로 신청한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 내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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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을 보면 그냥 보고 지나쳤는데, 그 그림 속에도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아이들은 있었다.

그 아이들은 요즘 아이들과 달랐다. 억압되지 않고 강요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오늘날 놀이문화와 확연히 다른 자연스러움.

자연 속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건강함이 느껴졌다.

그런 아이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서평단으로 신청한 책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이 내게로 왔다.

역시나 그림책, 오랜만이다^^ 그래서 더 반갑다.

옛 그림 속의 아이들을 보니 그들의 삶을 아울러 엿볼 수 있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한 집안에 아이가 태어나면 경사스런 날이다.

부모나 집안 어르신들이나 한 마음으로 자라면서 아이의 무탈함을 기원한다.

 

 

옛날에는 아기가 죽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옛 사람들은 아기의 태를 깨끗이 씻어 태항아리 속에 넣은 후 땅에 묻었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를 향한 소중한 마음들을 엿볼 수 있엇다.

 

 

이렇게 부모와 어른들의 관심 속에서 아이들은 자란다.

궁핍한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부모들이 일을 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린 아이들을 돌봤다.

온 식구가 도와가며 아이를 키워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어린이집이 맞벌이 부부에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인데, 세월이 참 많이도 변했다.

 

 

 

아이들은 냇가에서 낚시를 즐기며, 해질 무렵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부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특히 가난한 집 아이일 경우 부모 일을 거들면서 공부를 했다.

대견해하면서도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부모의 애닳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참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아이들의 모습이다.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이들을 훈육하는 방법은 역시 옛날 우리 조상들이 더 한 수 위인 것 같다.

 

 

아이들은 어느 대감집 잔치나 재밌는 볼거리가 있는 마을 축제때 제일 신 났다.

역시 경사스런 날에 아이들이 빠지면 재미 없지.

잔치나 축제의 주인공은 어쩌면 아이들이 아닐까싶다.

 

 

선비는 말을 타고, 뒤를 따르는 아이들.

선비들의 시중을 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이고, 무거운 짐을 등에 메고.....

이런 선비의 잔심부름들을 감당하려면 아이의 힘도 세어야한다는 부분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의 삶들이니 뭐 어떻게 왈가왈부 할 수 없지만 지금이라면 그 선비 당장 신상이 털렸을 것이다.

아동의 노동력을 착취했다고.... 종(노비)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업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종교화나 신선들이 나오는 그림을 봐도 아이들이 등장한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마음이 신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무릉도원.... 말만 들어도 평안해진다.

바빠도 너무 바쁜 삶을 살아가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세상이 아닐까싶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어른들의 생각에 맞춰 살아가는 요즘 아이들을 생각할때면 마음이 안 좋다.

나도 아이를 키우는 어미 입장으로서 나름 자유롭게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지만 쉽지 않기에....

얽매인 공부와 간섭에서 자유롭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으면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

적어도 저 옛날 그림 속 아이들처럼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싶다.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을 보니 또 생각과 고민이 참 많아진다.

어떻게하면 내 아이 잘 키울 수 있을까?

소위 시대의 흐름(대세)을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시대를 거슬러야 하는지......

아이를 키우기 참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구나!!!

새삼 우리 부모님도 이런 고민을 하며 나를 키웠을까? 생각이 든다.

옛 그림 속 아이들처럼 그저 생각과 몸,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줬으면 좋겠다.

 

 

 

 

 

 

 

l*****5 2016.08.2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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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있는 아이들 - 꼭꼭 숨어라~머리카락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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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상권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 생각했더니만, 전에 읽었던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풀꽃과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풀꽃도 맛이 있었어요.’를 쓰신 분이다. 어쩐지 내 취향의 글만을 내시는 것 같다. 이젠 확실히 기억해야지.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주인공이 옛 그림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미술책에 실렸거나 미술관에 있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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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이상권

 

 

 

  저자의 이름이 낯익다 생각했더니만, 전에 읽었던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 ‘고양이가 기른 다람쥐’, ‘풀꽃과 친구가 되었어요.’ 그리고 ‘풀꽃도 맛이 있었어요.’를 쓰신 분이다. 어쩐지 내 취향의 글만을 내시는 것 같다. 이젠 확실히 기억해야지.

 

 

  생각해보니 아이들이 주인공이 옛 그림을 별로 본 기억이 없다. 미술책에 실렸거나 미술관에 있는 그림들의 대부분은 산이나 강 같은 자연, 동물이나 꽃과 벌레, 선비나 신선 등등이었다. 그나마 기억에 남는 아이들이 등장하는 그림은, 서당에서 훈장님에게 혼나는 아이를 그린 것뿐이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들 역시, 아이들이 주인공인 것은 아니다. 저자는 그림 한구석에 그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서, 어떤 상황인지 구연동화를 하듯이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면서 그림을 보면, 마치 그려진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엄마 등에 매달린 아기는 졸리다 칭얼대는 것 같고 어린 동생을 돌봐야하는 어린 형이나 누나는 놀러가지 못해서 귀찮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따르는 동생을 귀여워하는 것 같다. 또한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은 ‘너도 같이 하자!’고 손짓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선비들의 심부름을 맡은 꼬꼬마들이 속으로 궁시렁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놀란 것은 선비들이 심부름꾼이자 짐꾼으로 어린 아이들을 썼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아이들에게 술심부름까지 시키다니! 지금이라면 아동 학대 내지는 청소년 보호법에 걸릴 일들이다. 아기일 적에는 금이야 옥이야 싸고돌다가, 조금 크니까 밥값 하라고 일을 시키는 격이다. 음,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서 강하게 키우는 것이라 보면 괜찮을까?

 

  그 전에는 몰랐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니 은근히 아이들이 구석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눈이 나쁜 것이 이리도 억울할 줄이야! 아이들의 모습과 표정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은데, 안타깝다.

 

 

  이 책에 실리지 않은 다른 그림 속 어딘 가에도 아이들이 숨어서 ‘나 찾아봐라~’라면서 숨죽여 웃고 있을 것 같다. 좋았어! 나중에 미술관이나 그림 관련 전시회를 가게 되면, 꼭 찾아봐야겠다. ‘너희들은 지금 그 그림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니?’라고 물어보면, 그곳의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지 궁금하다.

 

  다른 아동용 책들 같은 경우에는 서점 사이트에 삽화라든지 책 목차 사진 정도는 들어있었는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아무래도 명화라서 안 되는 모양이다. 아쉽다.

 

 

 

 

 

 

 

v********0 2016.08.23.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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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주니어-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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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주니어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을 만나보았습니다.옛 그림들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꾸며진 겉표지가  무척 정겨운 느낌입니다.옛 그림들 안에 그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안에 숨겨져 있는  시대의 이야기들을 알아보고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옛 그림들 안에 숨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책안에 소개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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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주니어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옛 그림들에서 보았던 아이들의 모습으로 꾸며진 겉표지가  무척 정겨운 느낌입니다.

옛 그림들 안에 그려진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안에 숨겨져 있는  시대의 이야기들을

알아보고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옛 그림들 안에 숨어있는 아이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느껴 볼 수 있었습니다.

 

 

책안에 소개되어진 여러 그림들중 아들이

아름답고 예쁘다며 마음에 들어했던 김희겸의 <무릉도원도>

 이런 살기 좋은 무릉도원을 한 눈에 알아보는 아들이  제법입니다.^^

 

옛날 그림에는 아이들이 즐거워 보였어요.

전체 그림중 무릉도원도 그림이 예뻐서 마음에 들었어요.

그림을 보면서 옛날 전통 놀이, 그림 이름, 옛날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알게 되었어요.

옛날 아이들 모습이랑 지금 아이들 모습이랑 달라서 신기해요.

여러 이야기중 아기가 태어났을때 태를 깨끗이 씻어서

 깨끗한 항아리에 넣어서 땅에 묻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책을 읽는데 조금 어려웠지만 재미있었어요.​ 

u*******7 2016.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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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옛 그림에 숨어있는 아이들-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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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민화에서 살펴볼수 있는 당시 시대의아이들의 위치와 문화, 놀이등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마치 선생님이 어린 제자들에게 민화를 풀이해주는 듯한 이 책은, 초등학교 어린이가 봄직한 책으로, 민화속 어린이들에 대한 해석과 시대상을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현대의 아이들과 옛 시대의 아이들, 아이들은 모두 사랑받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옛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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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민화에서 살펴볼수 있는 당시 시대의아이들의 위치와 문화, 놀이등 어린아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다.
마치 선생님이 어린 제자들에게 민화를 풀이해주는 듯한 이 책은, 초등학교 어린이가 봄직한 책으로, 민화속 어린이들에 대한 해석과 시대상을 그대로 설명해주고 있다.
현대의 아이들과 옛 시대의 아이들,

아이들은 모두 사랑받는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옛 화과들의 유명한 그림에서 어린이들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함에, 화가들의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누구나 앎직한 김홍도, 신윤복, 노가등등 그들의 그림속에 등장하는 어린이들에대한 상황설명과, 그림속 어린이들의 모습으로 어떤 놀이를 주로 하였는지, 아이들의 위치는 어떠한지 살펴볼 수 있었다.

익숙한 그림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예전 무심하게 지나쳤던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을 다시 새로운 관점에서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림 한켠에 자그맣게 그려진 아이들은, 약방의 감초처럼 어디에나 존재했다.
익살스러운 표정과 행복한얼굴들, 아이들을 사랑스레 바라보는 부모의 표정에서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은 사랑으로 키워야함을 되새길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무심코 지나친 작은 그림한켠이, 당시 어린이들의 사랑스런 모습을 담고 있었다니..

이 책은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가 아이와 함께 읽은다면, 지루하고 단조롭다 생각한 어려운 민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을것 같다.
j********4 2016.08.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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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주변을 찾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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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생활, 그 시대의 도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옛그림을 보면 볼수록 아 ~~~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네~~~하고 느끼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도구가 편리하게 발달되었을뿐 옛날에도 그랬구나 하고...   예나지금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했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던 아이들도 있었겠지 그건 지금과 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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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우리는 옛날 사람들의 생활, 그 시대의 도구,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옛그림을 보면 볼수록 아 ~~~ 그때도 지금과 비슷했네~~~하고 느끼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도구가 편리하게 발달되었을뿐 옛날에도 그랬구나 하고...

 

  예나지금이나 공부를 열심히 해야했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던 아이들도 있었겠지 그건 지금과 다르네...

식구가 많던 그 시절엔 가족 모두가 아이를 키우는데 동참했구나. 유모차 같은 것들이 없어서 불편하겠지마는 가족들의 끈끈한 정은 지금보다 더 진했을 뜻 싶다.

 

꼭꼭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6학년 조현서

 

 옛날에도 화가가 있었다. 어쩌면 그 화가들이 지금의 화가보다 실력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시대레는 제대로된 미술도구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림을 잘 그려서 신윤복이나 김홍도 등의 그림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런 그림에는 갓난아이부터 내 또래의 아이들까지 여러 아이들의 모습이 숨겨져 있다. 사람들은 이런 그림을 보고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모습등을 알 수 있었다.

  그림에 숨어있는 이야기는 이런 것이 있다. 돌잔치,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 아이들이 놀고 공부하는 모습 등 어느 그림에도 아이들은 빠지지 않는다. 역시 아이들의 손재감은 숨길 수다 없나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신나게 놀고 때론 의젓하게 제 몫을 해내던 옛그림 속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 보세요.

아이들아 그림 속에 꼭! 꼭! 숨! 어! 라!

<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쓴 것입니다. >

k*****3 2016.08.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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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깔나고 찰지게 듣는 옛 이야기 :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맛깔나고 찰지게 듣는 옛 이야기 :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 내용보기
<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은 이상권씨의 옛 시리즈 중 한 편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도서의 주인공으로 아이들이 나오는 건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가상의 어린 인물들도 귀엽지만 옛 아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구어체 말투로 담화를 이끌어가는 교육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옛날엔 찢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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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에 숨어 있는 아이들>은 이상권씨의 옛 시리즈 중 한 편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적 도서의 주인공으로 아이들이 나오는 건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다. 가상의 어린 인물들도 귀엽지만 옛 아이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듣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구어체 말투로 담화를 이끌어가는 교육책을 좋아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옛날엔 찢어지게 가난해서 먹을 음식보다 먹을 입이 더 많았는데 말이지~" 하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했다. 작가의 친근한 어투가 어려운 설명을 구렁이 담 넘어가듯 훌훌 넘어가게 만든다. 아이고 맛깔나!

 

작품의 주 요지는 제목에 걸맞게 선인들이 남긴 민화 속에서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무얼 먹고 살았는지, 어떤 놀이를 하고 살았는지 생생하게 설명해주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나이 든 노인들은 남성이 아기를 데리고 있으면 어디를 떼버리라고, 사내답지 못하다고 하지만 사실 선인들은 남성도 아이를 돌볼 수 있었다. 평민은 노동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쉬는 사람이 없었고, 공동체 생활에서는 누구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아닌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조금씩 돕는 '지혜로운' 방식을 택했단다. 오히려 양반의 비뚤어진 가장 체면을 오늘날 잘못 받아들여 왔다는 사실을 우리 아이들이 알아야 하는 것 아닐까.

 

아이들은 아침 해가 뜨고 달이 질 때까지 놀 기도 했다. 어머니는 눈에 불을 켰지만 아버지는 늦지 않게 들어와라, 한 마디 하시고 눈치껏 외면해주는 소소한 일상도 보여진다.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숙제를 해오지 않아 회초리를 맞고 우는 아이의 모습, 내 아들은 고생스러운 일 안하고 배불리 먹고 남들에게 우대받는 관리가 되길 바라는 부모를 위해 열심히 책 읽는 아이의 실오라기 하나 안 걸친 엉덩이 내민 모습까지. 부끄럽다고 감출 것도 없는 순수한 아이들의 모습과 생활이 <옛 그림 속에 숨어있는 아이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옛 학자들은 무릉도원에는 반드시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아이들은 순수함의 결정체이고 또한 행복한 미래의 근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따스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가 없는 곳은 낙원일 수 없다는 선인들의 정신은 우리가 이어받아 키워나가야 하는 소중한 유산이다. <옛 그림에 숨어있는 아이들>로 하여금 그 따스한 정경과 마음을 경험하길 바란다.

 

 

g*******8 2016.08.2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