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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말을 통해 다른 사람,사물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말을 잃어간다는 것은 관계 자체를 세계를 잃어가는 것이다(작가의 말 중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춘기를 보냈다.아니 그렇게 보내왔다고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보냈다가 아니라, 보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생각한다는 건 나에게 아직도 털어 내지 못한 마음 속에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감정들을 참아내면서 어른으로 가는 거라 믿고 있었던 것 같다.
굿바이 미스터 하필은 성장소설이다.그런데 나는 이 소설이 성장소설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가 만들어 낸 하필이란 인물때문이었다. 소설을 따라 읽으면서 소년의 소통에 대한 갈망이 그래서 내 눈에 크게 들어 오지 않았다. 오히려 내 모습을 소년의 모습에 투영하고 있었다.그리고 사춘기시절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현재의 모습에서 하필이란 인물이 필요할때가 나에게도 얼마나 많았던가를 생각 할 수 있었으니까... 조숙한 사춘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고통은 누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물론 친구들의 고민은 많이 들어 주는 편이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고민을 털어 놓는 다는 건 나의 나약함이 드러나는 거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외로움을 저자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참아야 하는 것은 아닐터...저자는 힘든 순간 하필이란 친구를 떠올리기 바란것 같다. 애완견을 키우는 누군가, 벽을 보고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애완견에게 말을 하는 것이 훨씬 위로가 된다는 말이 더 크게 와 닿는 순간이었다.
소설을 통해 나 역시 조금은 성장 한 기분이다.참는 것이 어른의 덕목은 아니라는 것.관계를 통해 소통을 하는 것이 물론 좋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참지 말고 언제든 하필이를 떠 올려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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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의 공간, 너럭바위에 떡하니 나타난 시체, 지수는 참 난감하다. 이 상황에서 시체를 보고서도 왜 신고하지 않냐고 말해야 하나? 그저 자신의 공간을 침범 당해 기분이 나쁜 지수는 이 시체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미스터 하필", 왜 하필이면 그 곳에? 라는 뜻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빚쟁이들이 몰려오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는 지수는 학교에서 모래무지처럼 지낸다. T중학교에 갔을 때 자신이 몸을 숨길 모래가 없어 얼마나 낯설어 했던가. 하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과 같은 모래무지들과 어울리며 학교 생활에 조금씩 적응해 간다. 물론 학교로 찾아오는 사람들만 빼면 그럭저럭 버티기 괜찮았을 것이다. 지수에게 빚쟁이들이 자주 찾아오면서 지수는 실어증에 걸려 버린다. 마음속으로야 봇물터지듯 할 말이 많지만 소통에 문제가 있는지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그 때 코끝을 스미는 악취, 미스터 하필과의 마음속 여행이 시작된다.
지수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른들만의 세상이다. 하필과 대화를 하며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지수를 보며 세월이 흘러 지수가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또한 내가 어른이 되어 세상에 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이제 나는 아이들의 말은 잃어버린 채 어른들만이 쓰는 언어만 사용한다. "꼭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살아온 시간들, 나는 그렇게 내 어린 날의 추억도 가둬버리고 있었다. 흰장미를 좋아하는 지수에게 아버지는 흰장미가 아이들의 장미라고 말한다. 흑장미는 어른들을 나타내는 빛깔이라고 했을 때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미 세상이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이리라. 흰장미는 너무 깨끗하고 순결해 보여 만지는 것이 불편하다. 이에 반해 흑장미는 나를 끌어당기는 어떤 마력을 느끼게 한다. 흑장미의 다른 느낌은 '죽음'일텐데 삶과 죽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이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미 밝음의 이면에 어둠도 함께 있음을 알아가는 것일게다.
세상에서 지워진 사람 미스터 하필, 노숙자인 그가 자살을 선택했을 때 자신은 물론 세상은 그를 잊고 말았다. 물론 노숙자가 되었을 때 세상은 벌써 그를 버렸는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이름이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의 안내가 아닌 이렇듯 지워진 사람과의 마음속 여행은 그 무게가 더 묵직하게 다가와 무엇이든 흘려 들을 수 없게 만든다. 지워진다는게 어떤 것인지 그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수의 성장소설 같지만 지수 가족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역사다. 5.16을 오점일육으로 읽어 선생님에게 뺨을 맞은 지수, 데모의 주동자였던 셋째 형, 아버지와 당숙의 대까지 올라가면 일제 시대까지 거슬러가게 되니 역사가 되는 것이다. 녹록치 않은 인생의 무게를 느끼며 지수보다 내가 얻은 것이 많은 여행이었다. 시체와 소통한다는 것이 현실에서 가당치 않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이런 관계가 더 현실감있게 다가오니 조금은 아이들의 세상을 엿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쉽지 않은 세상에 이렇게 나를 이끌어주는 안내자가 있다면 덜 외롭고 힘들텐데, 그래서 지수가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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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굿바이 나에게도 소중한 가족과 친구가 있다. 그 무언가가 내 옆에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된다면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슬프다. 이 책을 손에 넣으면서 굿바이 미스터 슬픈 감정이 차오른다. 부모님의 빚으로 어느 날 갑자기 가족이 헤어지게 되고 친척 집에 겨우 살아가는 주인공 지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그녀라면 어땠을까? 막막한 감정을 억누르며 한 장씩 책장을 넘어갔다. 그러나 그 슬픔에 빠져 있는 순간에 지수는 힘을 낼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친척 집 근처의 너럭바위. 바로 그 덕분에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놓으며 하나씩 마음의 슬픔을 덜어간다. 이를 마주하며 나도 어느 날 가족과 헤어지는 상상을 한다. 주위에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면 난 누구에게 지수처럼 너럭바위를 만날 수 있을까? 항상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일상의 하루를 이 글을 쓰면서 돌아보게 된다. 아침에 눈을 떠 가족과 아침 식사를 하고 난 나에게 주어진 공부와 학원을 오가면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일상에 지쳐 공부가 하기 싫어지는 많은 나날들. 그 속에 흘려버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어느날 나에게 사소한 일상의 하나로 친구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나의 표정이 얼그러지거나 나 또한 되받아 기분좋지 않은 나쁜 말을 전하는 순간이 있었다. 이외에도 부모님께 특히 엄마에게 평소 짜증을 부리면서 나에게 해주지 못한 섭섭함을 풀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런 부정적인 말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기분이 우선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갑자기 너무 부끄러운 감정에 몰려든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말 못할 소중한 비밀은 여러 개 있다. 물론 지수처럼 생계를 위협할 만한 가정과 관련된 가난한 일상이나 생계적인 문제가 아니라서 사소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그러나 나는 내 친구 이야기. 어찌 보면 가벼운 일상으로 고민하는 것이 분명할텐데.. 작은 문제라도 어릴 적 엄마와 함께 이야기하며 도란도란 소중한 시간을 보냈던 지금보다 더 어릴 적 모습을 생각해본다. 물론 자세하게 떠오르지는 않지만 엄마 무릎에 누워 하나씩 얘기했던 어린 나의 모습이 괜스레 귀엽게 느껴진다. 앞으로 부모님께 따뜻한 말 한 마디 전달해드릴 수 있는 착한 딸이 되어야지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지는 오늘 하루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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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만화작가가 앞 표지를 장식했다. 그래서 읽게된 책. 성장소설인데 나하곤 거리가 멀어. 우리집은 화목한 가정에 가족들 모두 함께살거든. 고등학교온 언니랑 나만 빼고.. 이렇든 저렇든 주인공이랑나는 둘다 가족이랑 떨어져서 살고있다. 붙어있을땐 그렇게 왠수같던 동생들도 일주일에 한번씩 보니 그렇게 이쁠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떨어져서 살아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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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그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우선 청소년 소설로서의 의미이다. 작가는, 아직은 부모나 학교 또는 사회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중학생인데,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주인공을 통해 청소년이 안고 있는 문제,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것들, 학교라는 제도가 갖는 해악 등등을 청소년의 입장에서 잘 다루었다는 점이 있다.
공부 잘 하고 집안 좋은 아이들은 물속에서 늘 치리 같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주인공처럼 열악하고 특수한 환경에 있는 아이는 늘 모래 속에 몸을 숨기는 모래무지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몸을 묻을 모래도 없는 곳에서.
‘초등학교 때의 나는 물고기로 말하자면 모래무지였다. 모래무지는 순식간에 모래를 파고 숨어버리는데 등 색깔이 모래와 똑같아 금방 숨는 걸 보고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초등학교 육 년 동안 나는 모래무지로서 사는 데 대체로 성공한 셈이었다. (...) 그런데 T중학교의 신입생 예비소집에 가보니 물이 안 좋아도 보통 안 좋은 게 아니었다. (...) 게다가 바닥에는 모래가 하나도 없었다. 나 같은 모래무지로서는 참으로 암담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또 하나는 작가가 자라던 시절의 시대상에 대한 의미가 있겠다. 철길에 대못을 놓아 뾰족하게 만드는 위험천만한 아이들 놀이라든가, 계파동이라든가, 담임이 직접 아이들을 과외하던 시절, 정국이 어수선해 늘 데모를 했던 그 시절, 가난이 어디서나 설치던 그 인정머리 없던 시절에 대한 묘사는 정말 밥이 없으면 라면을 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요즘 아이들에게 시절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것이고 부모들은 추억을 곱씹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안의 행위를 나타내는 연극조의 설명은 좀 거북했다. 신선함을 주고자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설명이었으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미스터 하필은, 가족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도 없던 주인공에게 나타난 구세주이자 친구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알고 보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지만 그 당시 주인공에겐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자신의 얘기, 속마음을 터놓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표현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게 도와주는 존재였던 것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 암담한 시절의 모래무지에서 어느 정도는 미스터 하필의 도움으로 세상을 되찾는다. 커서 뭐할 거냐고 묻는 동생에게 이렇게 대답하면서.
“마음의 연금술사.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슬픔이나 외로움이나 분노나 욕심이나 두려움이나 그런 것들을 아주 아름답게 빛나는 다른 뭔가로 바꾸는 거야. ……나 사실은 많이 힘들었거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너도 많이 힘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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