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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백 쪽이 넘어가는 책 두께에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란 다분히 사기(邪氣) 넘치는 제목에 책에 압도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이책에서는 조선 후기 이후 바다를 통해 들어온 이양선(異樣船)을 중심으로 조선이 서구 열강 즉 타자에 어떻게 반응하고 수용하는지, 근대 문명이 조선을 어떻게 압박하는지를 집중해서 풀어가고 있다. 읽다보면 '서양과 조선의 만남'이라는 부제와 제목 속 '악령'이라는 단어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서양 이양선들이 조선 해역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엽부터였다. 당시 조선은 견제와 균형원리가 무너지고 정쟁이 횡행했다. 또 삼정문란과 관리들의 학정으로 백성의 삶이 피폐해졌던 시기였고 천주교가 점차 민초들 사이를 파고들어가 집권층들이 경계를 하던 시기였다. 조선이 이렇게 열악하고 구태의연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환경에 처해있을 때 조선에 등장하는 서양인들은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해 들어왔다. 조선 해역에 출몰하기 시작한 이양선은 대항해 시대를 거친 서구 열강들의 동쪽행 러쉬로 인한 것이었던 것이다.
<하멜일지 스티히터 판본에 실린 목판화>
1666년 네델란드인 하멜이 조선을 빠져나갔고 그가 쓴 '하멜 표류기'는 서구인에게 조선과 조선인에 대한 원형적 이미지를 심어놓았다고 한다. 그 뒤 백년이상 조선 해역에 서양 선박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다가,18세기 말부터 포르투갈, 영국, 네델란드에 이어 프랑스 선박들이 새롭게 조선 해역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이양선의 시대라 할만큼 조선 해역에 다양한 국적의 서양선박들이 나타났고, 조선과 서양의 접촉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양선이 자주 등장하자, 조정이나 백성들 모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정에서는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문정관(問情官)을 파견해 보고했고, 비변사에서도 이들 선박의 등장에 대해 논의하고 이들의 처리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 백성들은 낯선 서양인과 이국 문물에 대해 극도의 호기심과 공포가 뒤섞인 반응을 보였다. 친절하게 대하면서도 이들의 상륙을 거부하는 태도는 당시 조선을 거쳐갔던 서양인들의 눈에는 지독하게 비사교적인 행동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이양선들이 조선을 찾는 동기도 차츰 달라져갔다. 처음에는 주로 우연히 표류하거나 지리학적 탐사가 목적이었다가 19세기 중엽부터는 통상관계를 요구하거나 기독교 선교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갖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던 조선과 서양의 만남이 점차 전면적인 접촉의 단계로 나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이양선의 시대는 양요(洋擾)의 시대로 즉 무력이 사용되는 단계로까지 넘어갔던 것이다. 이 당시 서구 열강은 중국 등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거나, 무력을 사용하여 강제로 조약을 체결하는 가하면 개방하게 하는 등 노골적으로 제국주의의 발톱을 드러내던 시기였다. 그런 도발에 청나라와 조선, 일본의 대응은 각기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문을 열 수 밖에 없었다.
![]() ![]() <1816년 조선 해안을 탐사한 홀(Basil Hall)대령, 그의 여행기에 실린 조선 부근 지도와 여행기 한구절>
청나라는 영국과 두차례에 걸친 아편전쟁과 영,프 연합국의 공격으로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며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본은 중국과 달랐다. 미국 페리호에 의해 불평등한 조약을 체결하고 개방하게 됐지만, 이후 빠른 속도로 봉건제를 해체하고 서구 문물을 받아들임으로써, 서구 열강을 뒤쫓는 근대를 이루고 발전을 이루어 갔다.
반면 조선은 청나라가 개방과 기독교 선교 자유를 허용하고 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지배층은 소중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조선은 서구에 대한 적대감을 갖게 됐고, 반서구, 반천주교의 입장을 취하게 되면서 외부에 빗장을 닫아 거는 쇄국의 길을 걷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에서는 단지 조선의 상황만 담고 있지 않고 청나라와 일본의 당시 상황을 함께 설명하고 있어서, 이 때의 선택으로 제국주의시대 삼국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료도 그렇고 그 과정을 상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당시 무력을 앞세운 서구 열강의 노골적인 압박에 동양 삼국은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었던 것이다.
중국은 영국의 반식민지가 돼버렸고, 일본은 세계 체제 안에 편입돼 빠른 속도로 발전하며, 군사력을 갖춰갔다. 조선도 근대와 제국주의라는 세계사적 파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선은 서구열강이 아닌 일본에 의해 타율적으로 개항하고 억압받는 식민지로 전락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듯 조선, 청나라 , 일본 모두 육로가 아닌 바다를 통해서 서구 열강과 접촉이 이루어졌고, 이양선의 등장은 그 전초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이양선이 등장했던 당시의 조선과 청나라, 일본 사정은 봉건사회라는 점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지만 개항 뒤의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조선이 일본에게 강제적이다시피 개항하게 되는 상황은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은 채 끝을 맺고 있어서 혈압은 덜 올랐지만, 중국 사정을 보면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연합해서 공격하고, 황제의 별궁을 불태우고 보물을 털어갈 정도로 괜히 중국이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한 게 아니었다.
어려워서가 아니라 집중을 못한 탓에 꽤 오랜 시간동안 이 책을 읽어야 했다. 다 읽고 나니,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후련했지만 읽는 것 조차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한심하고 필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양한 자료를 섭렵하고 정말 성실하게 쓴 책인데..
이 책은 우리나라를 거쳐갔던 이양선과 그 배를 타고 왔던 인물들에 대해서 꽤 세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그림이나 지도도 그렇고 이양선을 타고 조선을 지나쳐갔던 인물들이 남긴 기록들이 생각보다 다양해서 흥미로웠다. 하멜이 남긴 표류기 덕에 조선은 야만적 이미지로 알려졌다는 것을 비롯해서 서구인에 비춰진 조선사회나 조선인의 모습에도 관심이 갔다. 그리고 뒷 부분은 거의 동양 삼국의 대응 방식으로 채워졌는데, 서구 열강의 개방 압력에 대해 사태파악 못하는 지배층의 고루함이나 안이함은 삼국 공통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변화의 흐름을 거부하고 세계사의 흐름과 동떨어진 사회 앞에 닥치는 현실은 이렇게 처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동양을 겨냥해서 벌어진 서구 열강들 사이의 치열한 경쟁에 대해서도 눈여겨 봤다. 타국을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뭉쳤다가도 그 전리품을 독차지하기 위해서는 또 망설임없이 전쟁을 벌이는 서구열강들의 호전성과 탐욕은 적나라했다. 제국주의 시대는 마치 약육강식의 세상을 방불케했다.
또다른 측면에서 보면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에 등장하는 이양선의 존재는 '근대'와 '타자'에 대응하는 당시 조선의 인식을 짚어보는 시금석이 되기도 했다. 조선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 받아들였는지, 봉건제를 어떻게 탈피해야 했는지. 청나라가 영국에게 무력하게 패배하는 것을 보고서도 조선은 여전히 소중화주의와 성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급격하게 반서구의 입장으로 선회함으로써 봉건성이라는 낡은 틀을 고수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국 조선은 개인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세계사의 방향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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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제목이 조금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절로 들었다. 일본이 자랑하는 확인되지 못하는 역사 속에 카미카제 같은 것이 우리에게도 있었던 걸까? 틀림없이 듣기로는 조선의 근대화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는데 말이다. 본론을 얘기하기 앞서 옆길로 잠깐만 새는 이야기를 하자면, 단일권으로는 최강을 자랑하는 편집본 때문에 책을 받고선 약간 겁이 나긴 했었다. 일단은 읽다가 실수로 잘못 떨어뜨리기라고 했다간 제 발등을 심하게 찧을 수 있을 정도의 두께를 자랑하는 외양 때문에 말이다. 먼저 500쪽의 페이지를 자랑하는 상당히 뽀대나는 치한퇴치용 흉기(철학의 탄생이였는데, 출판사측에서 독자 중에 이런 별칭을 붙이는 괴짜가 있다니..라고 괴로워하는 건 아니겠지??)라고 나름 별칭으로 부르는 책을 읽는 내내 아, 이거 다 읽을 수 있는 걸까? 아마 다시는 이런 단일권으로는 최강의 편집본은 나오지 않겠어!! 걱정과 감탄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섣부른 확정은 금물이라고 이렇게 500쪽을 훌쩍 뛰어넘는 편집본을 덜컥 받고 말았다. 내용이 웬만큼 흡입력 있지 않으면 읽다가 질리겠군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웬걸..800쪽이라고는 하지만 내용전개나 방대하면서도 치밀한 자료 등이 집중력을 흐트러지지 않게 하면서 끊임없이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야? 아~당시는 이랬구나 하는 절로 수긍이 가게 하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피드하면서도 정확한 흐름으로 무척 재밌게 그러나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등을 추스르며 읽었다.
미지의 대륙을 향한 탐험의 시기를 거쳐 통상과 개항, 개화를 시기를 갖게 되는 근대로까지의 이야기를 초반부는 탐험자 혹은 개척자로 스스로를 지칭했던 서양의 입장에서 후반부는 조선과 민중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대청제국을 섬겨 왔습니다. 대청제국은 우리의 상국(上國)입니다. 감히 속국이 어떻게(외국과) 통상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는 중국 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국의 명령과 승인없이는 크고 작은 일을 떠나서 감히(외국과) 새로운 관례를 세울 수 없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제국의 결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감히 당신의 요청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소중화주의라는 허구적이고 주체성이 빈약한 이념에 사로잡혀 중국의 옷자락만 꼬옥 부여잡고, 뒤에 숨어 있기만 하던 조선에 어느날 홀연히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얼굴은 귀신마냥 희고, 괴상한 옷차림과 감히 대국에서도 볼 수 없었던 철갑선을 타고 나타나 알 수 없는 말과 글을 내 보이던 이방인에 의해 자칭 평온하다고 자부하고 있던 조선의 일상을 완전히 깨 놓았다. 근대의 단계에 대처하는 각 국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몇 천년의 문화를 자랑하며 천하의 주인을 자처하는 중국. 집권층은 문화적 우월감에 차서 지나치게 보수적인 쇄국정책을 펼쳤으나, 너무 오래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인지라 내부의 결속력은 형편없었고, 이러한 중국은 금새 서양 열강의 게임장이 되어 버렸다. 먼저 땅을 차지하는 자가 이기는 무한경쟁의 장이 된 것이다. 일본은 중국과는 또 달랐다. 처음엔 분명 마이너였으나, 곧 근대의 주류로 편입한다. 어차피 섬으로 이루어진 곳이였다. 마르코 폴로가 그렇게 격찬했던 황금의 도시라는 지팡구는 현실이 아니었다. 활용가치도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 중국으로 가기 위한 일종의 거점도시로써의 가치밖에 지니지 않았다. 또한 중국이나 조선이 갖고 있는 중화주의라든가, 문화적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지도 않는 다소 느슨한 체제였다. 더군다나 사무라이라든가 하는 전투를 직업으로 삼았던 통치계급, 편리함을 추구하고 새로운 것에 대해 경계하지 않는 기풍이 서양의 물질문명을 빠르게 받아 들이고 적용하는 시대적 부름을 만들어 냈다.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유일신을 부르짖으며, 천상 날 때부터 천것들과 감히 지체 높으신 양반님들과 서로 얼굴을 맞대며 얘기를 할 수 있고, 배워 먹지 못한 야만스러운 족속들인지라 불경스럽게 조상님의 위패를 모시지 아니하고, 제사도 지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천벌 받을 천주교라는 걸 감히 조선의 땅에 발을 딛게 할 수 없다는 이단종교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강박관념은 근대의 어느 단계도 허용하지 않았다. 서양의 입장에서 봤을 때 조선은 계륵이였다. 마르코폴로가 찬양했던 황금의 도시 지팡구-막상 현실은 달랐지만 적어도 초기 서양의 입장에서는 막연한 환상과 동경을 제공했었다. 광활한 대륙을 갖고 있는 중국에 비하면 삼면이 바다라는 것 빼고는 지나치게 야만적이고 자기방어기제가 강한 폐쇄된 야만인들이 사는 공포의 왕국이였다. 강력한 쇄국정책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일부 지식인들은 계몽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약용이 그러하였고,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 이익, 유몽인 등이 있었지만, 그들의 정책은 하나도 반영되지 못한 채 조선은 자존심이라든가, 주체성이라든가 하는 중요한 것들을 차례 차례 빼앗긴 채 찢어 발겨진 형편없는 몰골로 근대 3단계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위와 같은 역사만을 아니라,시류를 읽는 감각이라는 전혀 없는, 성리학 절대주의를 내세우며, 이미 쓰러진 소중화주의를 대의로 내세우는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이익외에는 전혀 눈 돌릴 줄 몰랐던 조선의 집권층과는 반대로 하루하루 땀 흘려 오롯이 바다가 주는 것에 만족하는 일상의 노동에 충실했던 민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홀 일행이 점심 식사를 하러 자리에 앉은 후 한 시간쯤 지났을 때였다. 선원들과 어울리고 있던 주민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급히 홀 일행 쪽으로 달려왔다. 그는 아무 거리낌 없이 불이 붙은 담뱃대를 주었다. 홀 일행은 그에게 포도주 한 잔을 들라고 권했다. 포도주를 마시자마자 그는 ‘호타! 호타!’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도 홀 일행 곁으로 다가와 앉고 자유롭게 마시며 이야기했다. 그야말로 떠들썩하고 유쾌한 만찬이었다. 주민들은 홀 일행이 가리키는 모든 것의 이름을 말해주었다. 클리포드 대위는 이 조선어를 하나하나 채록했다. 주민들은 홀 일행의 옷 이름이 영어로 어떻게 발음되는지 물었다 우리가 나중에 만난 조선인들은 이 어부들처럼 쾌활하고 친절했다. 조선인들이 낯선 이방인들을 적대적으로 대한 것은 정부가 심어놓은 철의 규율 때문이었다. 실제로 서양인들이 가장 먼저 만날 수 있었던 인물은 우월감에 가득 찬 관리들이 아니였다. 순박하고 의심할 줄 모르는 섬주민이나 바닷가 어민들 바로 민중이 먼저였다. 그들은 처음엔 서양인들의 외양이나 그들이 타고 있는 배의 모양새에 겁을 집어 먹고 단단히 경계를 하곤 했지만, 이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절대적인 배척이 아니라 우리들 모두가 갖고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한 순수한 본능적인 공포심의 일종이였을 뿐. 민중은 곧 서양인들에게 그들 본연의 순박함을 내보이며, 서양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기도 하고 평소 들어 보지도 못한 외양들의 말을 곧잘 따라 하기도 하며 유연한 사고를 보였다. 이렇듯 인간 위에 인간이라는 치졸한 줄 세우기는 민중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미지의 세계에서 온 사람들에게도 ‘새롭다’라는 것을 순수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거칠게 때로는 격렬하게 거절하는 집권층과는 다르게 민중은 비록 배우지 못하고, 배불리 먹지 못하고 제대로 된 집에서 살지도 못했으나, ‘새롭다’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만을 갖고 있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집권층이 매일 책상머리에 앉아 외우고 선비의 도라고 치켜 세우는 중용의 도를 한낱 무지렁이라고 무시하고 지배하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던 천 것들은 입으로만 나불대는 공자나 중용이 아닌 실천의 미학을 보여 주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과거의 그때로 돌아 가서 일본처럼 유연하게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진보적인 학파로 알고 있는 실학자들의 정책이 반영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조금은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우리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어느 판타지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분단되지 않은 단일국가로서 최강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감히 우리의 영토임이 공신력 있는 역사서만 확인해 봐도 몇 백년전부터 확실한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이름 붙여 자국민들에게 후안무치한 한국의 국민들 때문에 소중한 우리 영토가 유린당하고 있습니다라고 국민들을 잘못된 정보로 세뇌하고 선동하며 앞에서는 웃고 뒤로는 아예 해머로 뒤통수 빵빵 쳐대는 일본은 없었을 것이다. 그뿐이랴. 올림픽이라는 세계의 친화를 다지기 위한 행사를 교묘하게 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라고 떡하니 조선족을 등장시켜 놓고 정작 한복을 입혀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봤다면 응당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그런 비열한 일은 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집권층은 허구적인 이념에 사로 잡혀 또다시 자존심을 내팽겨친 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허둥지둥대고 있다. 매일매일 한다는 짓이라곤 내가 잘 했네, 내가 절대로 옳다는 등의 쓸데없는 짓거리뿐이고, 우리의 나랏님이 하시는 일은 주로 민중의 의중을 살피고, 어떡하면 민중의 입에 떡하나 더 넣어 줄 수 있을가하는 고민이 아니라 어떡하면 인기가 올라갈까 혹은 어떡하면 내가 다니는 교회의 식구를 한 명 더 공직에 넣을 수 있을까 하는 민중의 관심과는 전혀 동떨어진 것들뿐이다. 이러다간 곧 한국은 또다시 집권층에 의해 공중분해되어 버릴 것이다. 또 앉아서 손 놓고 당해야 하는 건가? 아! 아직 방법이 남았다. 악령이 출몰하는 조선의 바다에는 쇄국정책만을 고집하며 오돌오돌 떠는 집권층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비록 겁은 먹었으되 친절하고 따뜻한 환대를 보여줬던 민중이 있었다. 순박하고 때로는 천진난만한 아이같았던 그러나 알지 못하는 말을 내뱉는 생전 처음 보는 겉모습에 두려움에 떨기도 했으나, 그들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중용의 도를 보여주며 유연한 사고를 가졌던 민중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치욕적인 역사를 겪고도 비록 분단은 됐지만, 단일민족으로써의 자존심을 지키며 오늘에 이를 수 있었다. 그렇다! 역사를 지켜 온 것은 멍청한 집권층이 아니라 순진하고 땀의 노력을 아는 민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현재 환란의 시대로 접어드는 이 시기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은 집권층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 자신에게 있다. 하루 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세금 꼬박꼬박 내고, 하루의 희망만큼 내일을 기대하는 평범한 시민들 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적어도 작가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역사는 과거의 기록으로 접어 들었으되 현재는 기록되고 있는 중이니까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말자는 게 아닐까. 현재를 위해서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민중의 마음을 잃지 말자고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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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비록 삼면이 바다로 막혔지만 예로부터 다른 나라 배가 정박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근자에 와서 이상한 배가 자주 출몰한다. 서양의 여러나라 가운데 영국과 불란서가 가장 강대하고 또 성품이 만족할 줄 모른다. 넓은 바다를 두루 돌아 이르는 곳마다 처음에는 이(利)로써 유혹하고 나중에는 위세로써 협박한다.(본문중에서) 이 책은 조선의 이양선에 대한 책이다. 아니 바다를 통해 찾아온 이방인들과 조선의 만남을 그린다. 이양선(異樣船) 으로 불리는 16세기부터 19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해안에 출몰했던 서양 선박과 서양인들의 모습과 함께 '근대'가 조선에 침투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조선의 관찬 사서에 최초로 서양인이 등장한 것은 16세기 말이었다. 당시 조선에게는 중국과 일본 두 나라가 세계의 전부였다. 서양의 이방인들에게도 조선은 잘 알려지지 않은 땅이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사태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은 상품 시장과 선교 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밀려들었고, 18세기 중반을 지나며 본격적으로 군함과 총포를 앞세워 우리나라로 몰려 들었으며 서양의 이양선들이 조선 해역에 본격적으로 출몰하기 시작한것은 18세기 말부터였다.탐험과 발견의 단계를 거쳐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유럽 국가들은 무진장한 상품시장과 선교기지를 찾아 동쪽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중국의 속국으로 만족하고 있던 조선왕조에 이양선은 악령의 출현이자 몰락의 전주곡이었다. 조선에 근대는 아무런 준비가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 해일처럼 밀려왔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이 교역을 요구했을 때 조선왕조는 적개심과 회피로 일관했다. 조선의 집권층은 스스로 중국의 속국임을 자처하며 현실에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서양에 알려지는데 하멜표류기는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책이 출판되던 당시 유럽 사회는 구텐베르크의 출판 혁명 직후인지라 새로운 책의 출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던 시기였다. 조선은 결코 미지의 세계가 아니었다. 더욱이 지리상의 대발견이라는 유럽의 동양 진출 붐 속에서 이 책은 그때까지 유럽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대한 신비감을 불러일으켰고, 조선을 찾은 서양인들은 하나같이 조선인의 본성이 이방인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이방인과의 접촉을 막는 조선 조정의 엄한 규율과 낯선 세상에 대한 공포가 뒤섞인 결과임을 알수있다. 서양의 배가 찾아오게 된 계기도 처음에는 우연히 표류해 오거나 식량과 물 등을 찾아 잠시 상륙하는 경우였지만 점차 탐험과 측량, 통상 요구, 기독교 선교, 보복 원정 등으로 바뀌어갔으며 구성원들도 탐험가, 측량기사, 군인, 상인, 선교사, 의사, 통역관 등 가지각색이었다. 이 책은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부분인 19세기 후반 개항 이전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동서양의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림, 사진 등을 서양과 조선 양쪽 모두의 시각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는 특히 신분에 따라 차별적이었던 조선인들의 외부인에 대한 태도에 주목한다. 고문서를 다수 소장한 재단법인 아단문고 학예연구실장인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일성록’ 같은 조선정부 공식사서는 물론이고 ‘하멜표류기’ ‘라페루즈의 항해’ 등 조선과 조우한 조선을 찾은 서양인의 일기, 여행기, 항해일지, 편지, 보고서와 조선이 서양 배들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한 문정관의 기록도 조사해 당시 상황을 생생히 구성했다. 80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지만 역사이론서의 딱딱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역사적인 사실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입혀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책으로 잘알려져 있지 않는 역사를 발굴해 쉽게 풀어놓는 저자의 탁월한 필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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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적인 근대의 출발? 악령의 이양선?]
조선의 근대화 문이 열리기 시작한 때를 생각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16세기부터 1860년대 초까지 조선 앞바다에 나타난 서양 이양선은 조선에 있어서는 원치않는 무대에 나타난 불청객이라고 표현된다. 그도 그럴 것이 가장 거부하게 되는 원인은 천주교라는 종교와도 무관하지 않다. 조선을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던 유교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이 충과 효이다. 충이 임금에 대한 신하로써의 충성이라면 효는 대부분의 양반가에서 중시하는 조상에 대한 섬김 그리고 제례와도 통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서양 이양선에 대한 거부감은 후에는 천주교 박해라는 커다란 맥과도 상통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처음부터 우리가 서양 이양선에 대해서 배타적인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조선은 표류선(대부분 외국 선박)에 대해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대했다고 한다. 무조건 서양 이양선이라고 해서 배척하지 않고 유원지의라는 성리학의 가르침에 따라 먼 곳에 사는 백성이나 먼 곳에 있는 나라에 대한 배려였던 것 같다. 1808년 <만기요람>이라는 책에는 표류인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까지 언급되어 있따고 한다. 악천후나 여러가지 이유로 표류하게 되는 배와 사람에 대해서는 이렇듯 관대하지만 측량이나 통상, 선교등을 요구하는 외국선박에 대해서는 아주 강경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는 중국의 요구가 있었다기 보다는 중국의 외국 선박에 대한 외교권에 대한 압력과는 무관하게 아편으로 서구열강에 점차 침식되어가는 중국을 바라보며 오히려 소중화사상을 지속하고자 했던 폐쇄적인 당시의 지배층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책에서는 말하고 있다. 나도 어느정도 이 부분에는 동감한다. 그러나 처음 서양 이양선이 나타났을 때와 그 수가 빈번해지고 강력해지는 18세기 말과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처음에는 탐사적인 면이 강했다면 나중에는 의도적인 도발이 더 강했고 그런 차이를 지배층에서도 어느정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대처하는 면에서 일방적인 쇄국이 옳지 않다는 생각에는 동감하지만.
조선의 앞바다와 악령이라고 지칭되는 서양이양선. 이 둘의 관계는 조선의 기형적인 근대화와 우리 나라의 근대 기원이라는 측명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저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담겨있어 옳고 그름을 판가름하기 보다는 알지 못했던 당시의 상황이나 문헌을 살필 수 있고 조선이나 성야에서 서로의 눈에 비친 사람을 표현한 그림을 살펴보는데 흥미로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분량에 압도되어 언제 읽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책을 잡으면 지루하지 않게 조선의 근대사와 바다, 서양 이양선의 관계에 빠져들게 된다. 마지막 서양인들에 의해 기술된 조선의 두 얼굴이라는 표현이 깊게 남는다. 조선에는 두 얼굴이 있는데 권력이 높아질수록 타자를 강경하고 거칠게 대하고 그렇지 않을수록 호의적이고 격의가 없다는...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대부분의 결정은 윗선에서 이루어지지만 결국 변화라는 것은 아래에서부터 서서히 밀려온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
조선시대, 혹은 그 이전시대에 서방의 사람들이 우리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 또 그들의 눈에는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보였을까.. 이 책을 통해서 잘 알수 있게 되었고, 국사책에서만 배웠던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서양이 우리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음을 알수 있었다. 조선시대는 성리학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이고 특히나 조선의 성리학은 타교에 대해 배타적인 성향이 강해 모두 이적으로 간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는것은 알았다. 하지만, 16세기 외세라고 나오는 나라들은 중국의 명청을 비롯한 민족들 혹은 일본과의 관계가 거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기때문에 이렇게 일찍부터 우리의 바다에 이양선들이 출몰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물론 처용가나 하멜표루기 같은 것들을 통해서 이방인이 우리 땅에도 살고 있었음을 알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연"에 의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일본 혹은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동야에 관심이 많았고, 조선이라는 꽉 닫힌 나라에 대해 끊임없이 문을 두들겨 왔음을 알수 있었다. 다른 나라라고 해야 기껏 청이나 왜에 대해서만 알고 검은머리,검은 눈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 봐왔을 백성들이 노란머리,큰코,파란눈의 서양인을 봤을때 어땠을까.. 마치 괴물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생전 처음들어보는 소리를 내고 있고, 뭔가를 가져가려하고.. 우리의 시선으로 봤을때 이와 같음은 대강 눈치를 챌수 있지만 예전부터 선비의 나라, 예의지국으로 알고 배운 우리나라 백성들을 그들은 무식하고 거칠고 지저분하고 또 무섭기도 한 그런 시선으로 봐왔음을 알고 약간은 놀랍기도 했다. 또한 관리들은 행태들도 자세히 묘사하고 있고, 후에는 중국어를 통한 통역을 통해, 대화도 어느정도 통했음을 알게된것도 새로운 사실이었다. 중간중간 삽입된 일러스트들을 보면, 직접 보고 그린게 맞나 싶을 정도로 엉터리로 묘사된 그림들도 있고,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진 것들도 있다. 물론 tv속 사극에서 보이는 차림새와 환경과는 많이 다르지만.. 아마도, 낯선 이방인들의 차림새를 자기의 의복이나 환경에 맞게 짜맞추어 그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를 들어 갓을 햇빛도 가려주지 않는 이상한 그물같은걸 머리에 쓰고 있다는 묘사에선 웃음이 나왔다. 한번도 갓을 그런 식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외국에서도 모자가 실용성위주의 것만은 아니였을텐데.. 책 읽는 내내 여러 외국의 문헌들과 우리문헌들을 참고해서 실질적인 수치까지 세세히 설명해놓고 있는데, 그당시에 닭이나 돼지,소 몇마리까지도 중요한 품목이었고 그런것 하나까지 세세히 기록해놓았다는것도 놀랍기도 했다. 다만 읽는 내내, 거의 이런 수치들의 기록이나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묘사하는게 거의 비슷하게 기록되어있어 약간 지루하기도 했다. 처음엔 단순히 지나가는 길에 먹을것을 얻거나 혹은 표류하거나 해서 들리게 된 조선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해안을 측정하고 광물조사를 하고, 언어를 조사하고, 식물들을 채집해가면서 점점 자기들의 또 하나의 식민지로 개척하려는 서구열강들의 모습을 보면서, 성리학이라는 배타적인 학문이 조선을 지배하지않았다면, 조선 후기 정조같은 임금이 더 나왔더라면, 훨씬 그 이전에 좀 더 세상의 중심에 청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계속 갖게 되었다. 그랬다면 아마도 우리의 근대역사는 많이 바뀌지 않았을까. 일제시대를 겪음으로 해서 문호가 개방되고 근대화가 앞당겨졌다는 이런 쉰소리도 듣지 않았을수도 있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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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라는 제목에서 나는 왠지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악령'의 의미가 무엇일까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조선의 쇄국정책이 당시의 정세를 파악함에 있어 올바른 판단이었는가, 그러지 못했는가에 대한 논란과는 전혀 상관없이 바다건너 이국의 오랑캐들이 조선을 넘보고 있음이 그들을 악령으로 보이게 한 것이리라는 생각을 해 보면서도 괜한 자격지심인지 천주교도인 나는 천주교 박해의 시기가 있었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를 위협하는 서양오랑캐의 무리들 - 때로 선교사를 앞세운 그들을 '악령'이라 지칭한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움찔하게 된다. 보통 책 분량의 두세배는 되는 이 책은 그 페이지수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듯이 수많은 자료를 참고로 하여 조선의 바다에 출몰한 이양선에 대해 시시콜콜이 다 설명해주고 있다. 간단한 상황설명과 표류한 선박에 대한 정보는 배의 구조뿐만 아니라 선체의 재질까지 조사하여 알려주고 있다. 이양선에 타고 있던 함장의 기록을 찾아내어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는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인상, 풍습, 음식, 의복 등 문화적인 부분등을 보여주고 똑같은 사건이 있었던 조선의 기록을 찾아내어 비교 분석해 볼 수 있어 이 책은 정말 친절하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이렇게 사실적인 부분들에 집중하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문득 나는 정말 조선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르고 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버렸다. 아니, 어쩌면 '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에 대한 기록은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보다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배우는 한편으로 나는 당시의 정치,사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천주교의 전래와 역사에 대해서도 남들보다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치기로 배운 지식들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또 엉켜버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너무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리게 된 것이다. 사마랑호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고, 조선인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라파엘호'를 타고 표류하다 제주를 거쳐 국내에 들어오게 된 사건에 대한 설명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들과 비교하면서 자료의 정확성에 대한 것을 조사해 볼 마음이 생겨나기도 했다. 근대 조선시대의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적 사건들을 다시 훑어보게 된 것은 단지 그 역사적 사건만을 되새기는데에만 의의를 두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여러 의미들을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엄연히 우리의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서양오랑캐들은 자신들의 목적 달성을 위해 우리의 해안을 마음대로 측량하고 선교사의 죽음을 빌미로 함대를 끌고 와 협박하기도 했음을 떠올려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기 중심적이고 우월주의에 빠져있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읽으며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분개하기도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이 조선과 서양의 만남이라는 측면에서 전부를 만날 수 있는 완벽함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방대한 자료를 시기에 맞게 분류하고 정리하여 알기쉽게 설명했다는 점에서 최고의 책이라 하지 않을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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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으며 해냈다는 뿌듯함이 앞섰다. 장장 800페이지(주석을 제외하면 조금 안 되지만)가 넘는 책을 읽어냈다는 뿌듯함. 그러나 솔직히 내용이 남는다고는 이야기하지 못하겠다. 수많은 인물의 이름과 직책들을 읽다 보면 정작 내가 지금 무엇을 읽고 있나를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생소한 직책들까지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서 그쪽에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헷갈릴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읽고 나니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내지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외국의 배가 출몰하던 시기를 대충 조선 후기로만 알고 있었다. 자세히 다룬 적도 없었거니와 쇄국정책을 이야기하고 개항을 이야기할 때만 잠시 언급되어서 정말 그런 줄 알았다.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 계기였다.
외국의 배가 우리나라 해안에 닿았을 때는 당연히 그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만났을 텐데 지금까지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 물론 하멜이 제주도에 닿았을 때 주민들과 말이 안 통해서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훨씬 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외국인과 만났을 것이라는 점은 생각질 않은 셈이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국가적으로 외국인과 거래하는 것을 금했기 때문에 배척했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간적인 면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그동안 읽었던 탐험에 대한 책이 생각난다. 그것들은 주로 서양인의 눈에 비친 원주민의 생활이라서 미개하다느니 초라한 행색이었다느니 하는 식의 서술이었다. 대개 아프리카나 오세아니아, 남미 등의 나라였기에 나도 모르게 그들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았었는데 마찬가지로 서양인은 우리를 같은 식으로 묘사했다. 그렇다면 역시나 그들은 우리를 미개하고 궁핍한 생활을 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했을 것 아닌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환상이 깨지는 순간이도 했다.
외국인들은 일지나 여행기 형식으로 자유로운 자신의 생각을 담고 있는 글들이 많으나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것들은 대부분 관에서 주관한 문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의 것이 재미있고 다양한 반면 우리의 것은 딱딱하고 형식적이어서 기초적인 것 외에 다른 것은 알아내기가 힘들다. 또한 규격화된 질문지 형식의 문답은 새로운 사실을 알아낼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것만 보아도 우리가 얼마나 형식을 중시하는지 알겠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개인의 창의력이 집단의 횡포에 묻히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닌가하는 확대해석까지 해보았다. 게다가 외국의 배가 나타나기만 하면 거의 대부분 담당자가 문초를 당했다는 사실은 참 어이없다. 과연 중앙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오로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한 것은 아닐런지. 지금과 너무 닮은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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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이 출몰하던 조선의 바다> (2008, 박천홍 지음, 현실문화연구 펴냄)는 '서양과 조선의 만남'이라는 부제와 같이 우리 역사에 이양선이 출몰한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제목에 들어있는 '악령'은 쇄국으로 자존자대하던 동양의 왕조들에게 다가오는 근대 서양 세력을 의미한다.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로 대표되는 해상 국가들은 저마다 무적함대를 결성하여 바다 곳곳을 누비며 원료와 인력을 강탈하는 식민지를 앞다투어 건설하였다. 그와 같이 무장 함대를 통해 서양의 직접적인 식민지가 된 많은 나라들보다는 덜하지만, 이런 이양선과의 교류를 통해 반 식민지화된 일본이 재빠르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고 조선을 식민지로 삼게 되는 역사의 흐름으로 볼 때 조선에게는 이양선이 악령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시간 순으로 조선의 바다에 출몰한 서양 배들과 그들에 대한 조선의 대처를 이야기한다. 조선의 사료들과 서양인들의 책을 통해, 배의 규모와 실린 화물, 대포의 문수, 선원의 수와 그들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실었는데, 같은 사건을 두고 조선과 서양의 서술이 다른 것도 흥미롭게 읽힌다. 18세기까지는 우연히 표류하다가 도착하거나 지리적 탐사의 목적으로 도착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선에 처음 외국인이 표류해 온 기록은 1577년으로 되어 있는데, 조선은 난민을 발견하면 북경으로 보내서 그들의 나라로 돌려보내는 것이 관례였다. 조선의 존재를 서양에 알린 <하멜 표류기>를 쓴 하멜은 1653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13년이나 억류되었다가 탈출한 후 책을 써서 조선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알렸다. 19세기 이후로는 정식으로 통상 관계를 요구하는 한편 기독교 선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배들의 출현이 늘어났다. 청나라의 속국임을 천명한 조선은 청나라의 결정 없이는 무역의 자유가 없다며 이를 거절함으로써 흥선대원군 시대까지 철저한 쇄국을 거행한다. 그러나 자체적인 힘과 기술이 바탕이 되지 않는 쇄국은, '아기 돼지 삼형제'에서 첫째와 둘째의 허술한 집이 늑대에게 무너지는 것처럼 힘없이 스러지고 말았다. 교역을 요구하는 첫번째 이양선이 왔을 때 문호를 개방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는 워낙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강했던 때였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자유무역의 기조보다는 침략과 수탈이 강했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은, 일단 수탈된 이후로는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려고 나섰던 일본처럼 하지 못했던 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씁쓸한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재에도 제국주의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데, 이제는 우리나라가 그런 제국의 입장이 되어 있다고 하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국사와 세계사 과목이 따로 있어서 각각을 공부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와 다른 세계들에서 있었던 사건들을 동시대로 연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과 계열은 학력고사에서 사회 과목 중 하나만 선택했는데, 역사를 어려워한 나는 세계사를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무지는 극에 달한다. 더이상 시험의 부담 없이 역사를 읽어도 되는 이제, 국사와 세계사를 엮어서 통합하는 과정은 꽤 어려우면서도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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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모방송국에서 세종대왕의 치적을 그린 드라마를 하고 있다. 사실 이당시 이룩한 문화적 성과는 그뒤 수백년간 조선의 기준이 됨음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앞서나간 문화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