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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기억이 통째로 사라진 자신을 발견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러시아 청년이 폭탄 파편에 좌측 뇌의 두정부와 후두부를 손상을 입었는데, 시각적 혼돈이 생겼고, 특히 심각한 증상은 언어와 사고능력이 퇴화된 것입니다.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 같다. 단 하나의 단어도 기억할 수 없다. …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관련 없는 단편적인 기억뿐이다.(16쪽)”는 환자의 절절한 고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기능성 MRI과 같이 영상의학적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현대와는 달리, 연구할 방법이 별로 없던 시절에는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는 뇌의 기능을 연구하는데 크게 기여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세계적인 신경심리학자 알렉산드르 로마노비치 루리야가 바로 폭탄파편으로 뇌손상을 입은 자세츠키를 만나게 된 것은 바로 기억에 관한 뇌기능을 연구하는 기회가 되었고,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하여 25년에 걸친 자세츠기의 노력이 담긴 기록을 바탕으로 기억에 관한 루리야박사의 연구를 엮은 것이 바로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입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올리버 색스박사는 루리야박사의 연구방식을 ‘낭만주의 과학’이라고 일컬어 ‘고전주의 과학’과 비교하고 있습니다.
고전주의 과학자들은 구성요소라는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기 때문에 관념적이고 개괄적인 법칙을 구성할 수 있을 때까지 중요한 단위와 요소들을 차근차근 뽑아내는데, 이러한 접근법은 다채로움으로 가득 찬 살아 있는 존재를 추상적인 배경지식으로 환원할 수 있지만 존재로서 지닌 특징은 남겨지지 않게 됩니다. 반면 낭만주의 과학자들은 정반대의 전략을 채택하는데, 고전주의 학자들의 철학인 환원주의적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살아 있는 존재를 근본적인 구성 요소로 분해하려 하지 않고, 삶의 구체적인 사건을 현상 자체의 특징을 잃어버린 관념적인 모델로 표현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존재의 풍요로움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인 것입니다.(10쪽)
“솔직히 말해서 나는 셰르셉스키나 자세츠키에 관한 연구처럼 ‘전기’ 형식의 연구를 굉장히 좋아한다. 우선은 그것이 내가 소개하고 싶은 낭만주의 과학이기 때문이며, 그 다음으로 형식적이고 통계적인 접근법을 강하게 부정하고 성격에 대한 성질적 연구, 즉 인간의 성격 구조 기저에 있는 모든 요인을 밝히려는 시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11쪽)”는 루리야박사의 설명은 일견해서 과학이라 칭하고 있으나, 이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즉 개별 사례를 과학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개별 사례들 사이에서 유사성 혹은 통합성을 찾아내 공식화할 수 있어야 과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은 자세츠키가 남긴 25년 간에 걸쳐 기록한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되찾으려는 노력과 새로운 학습을 기억으로 연결하려는 노력을 루리야박사의 작가적 통찰력을 통하여 엮어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읽어가다 보면 글머리에서 제가 적었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금씩이나마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을 조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배열하고, 그가 경험한 일과 바람을 하나의 관점으로 구성할 수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쓰는 일기는 그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것은 삶과 이어주는 끈이자 과거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라는 점에서 꼭 필요한 것이었다.(119쪽)”
흥미로운 점은 뇌손상을 입었을 때 순식간에 사라졌던 기억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되살아났다는 점입니다. “나는 부상을 당한 직후 몇 주 동안 내 이름과 성, 절친한 친지들의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덨다.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몇 가지 기억들이 되돌아오기 시작했다.이 기억은 대부분이 어린 시절과 초등학교 시절에 관한 것이었다.(133쪽)” 물론 저자는 자세츠키의 기억이 되돌아오게 되는 이유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과학이라고 불러야 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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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심리학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뇌이버에서. 이해한다. 저자가 신경심리학자이니까. 그러나 그런 책이 아니다.
이 책 좀 무서운 책이다. 반대로 말하면 인간의 뇌가 얼마나 소중한 지도 알려주는 책이며, 또 한 편으로는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눈물겨운 노력을 느끼게도 해주는 책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뇌란 물건의 신통방통함을 새삼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전도유망하고 명석한 러시아인 한 명이 2차대전에 참전하여 총알 한 방을 머리에 맞고 그 후의 인생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신경정신과적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독특하다. 올리보 색스는 책의 서문을 통해 과학의 문예화라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맞는 부분도 있고 틀린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의학적 과학적 형식을 뛰어넘어 아름답고 명료한 새로운 문학 장르를 구축하고 있다는 그의 말은 좀 오버이며 반대로 그런 지식을 일반인이 통감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확하다. 저자 루리야는 이 책의 저자가 자신이 아니라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 얘기 역시 어느 부분에서는 맞고 어느 부분에서는 틀리다. 얘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은 피해 당사자인 자세츠키가 맞다. 자세츠키는 앞서 설명한 전도 유망한 러시아 청년이며, 그가 머리에 부상을 입은 후 힘겹게 써내려 간 병중 일기라고 해야하나? 그 편지를 공개하는 것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은 맞으나, 그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지를 부연 설명하는 역할은 루리야 교수가 맡고 있다. 그러니까, 자세츠키의 증언도 중요하지만 루리야의 설명도 결코 비중이 적지 않다. 만약, 자세츠키의 편지만 수록되었다면 우린 십중 팔구 에이, 뻥이지? 라고 말할 부분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린 때로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고가는 비정상인의 사투를 사례적으로 접하곤 한다. 하반신 불구자가 휠체어를 타고 히말라야를 등반한다던가, 눈과 손을 잃자 혀로 점자를 인식하는 노력을 일구어낸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심지어 발로 그림을 그려 손으로 그린 것보다 훨씬 훌륭한 작품을 선보이는 사례도 있으니까. 이 책의 주요 메시지는 그런 사람들처럼 정상인에서 비정상인으로 전락한 한 젊은이의 눈물겨운 사투를 그려내고 있는데 내가 독특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주요 메시지의 비중보다 결코 적지 않게 신경정신과적인 문제, 그러니까 뇌의 역할을 알기 쉽게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자세츠키는 환자, 루리야 교수는 의사로 편지를 나누거나, 대화를 하며 치료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자세츠키는 자신이 현재 겪고 있는 현상과 증상을 말하고 루리야는 그것을 학문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남녀가 사랑을 하면 좋잖아? 라는 감성적인 문제를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분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어떻게 옥시토신을 분비시키며 그 옥시토신이 어떻게 단점을 보지 못하게 만드는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그 유효기간이 길어야 36개월이란 식의 해설 말이다. 자, 이 책은 앞서 말한 일테면과는 전혀 종목이 다르게 너무나도 비극적이다. 자세츠키는 총 알 한 방을 뇌에 맞고 전선에서 물러난다. 회복과정에서 책을 미루어 짐작컨데 그는 외면적으로는 완벽하게 정상인이다. 그러나 그래서 슬픈 현실을 맞게 된다. 겉으로 봤을 때는 그가 환자인지 아무도 알수 없기 때문에 그에게 공간 감각이 없다거나, 글을 읽을 수 없다거나, 기억이 1분을 넘기지 못하는 메멘토 현상을 보이거나 하는 어려움을 알지 못한다. 심지어 가족 마저도 이 심각한 환자에게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못질을 시키고 해내지 못하는 그를 타박하기까지 하니, 그 어려움을 당사자 만큼은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 느끼게 만들어 준다. 루리야 교수는 그런 증상들을 뇌의 기능을 소개하면서 설명한다. 그 증상들이, 무섭다. 사물을 반만 인식한다. 온전히 하나를 볼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면 마치 퍼즐을 맞추는 해야하고 그 때문에 의자 하나를 구별하는데 엄청난 정신적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당연히 공간 감각도 없으므로 한 자리를 떠나면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방향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도 읽을 수 없다. 배워도 금방 까먹는다. 당연히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루리야 교수는 어떻게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는지 뇌의 기능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 역시 100%를 설명 할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의 뇌가 가진 기능을 우린 10%도 밝혀내지 못했다고 하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환지통도 뇌의 기능중에 하나이다. 떨어져 나간 부위가 아직도 있다고 느끼는 뇌의 오류말이다. 그래서 그 부분이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뇌의 착오. 자세츠키의 편지를 통해 그 보다 몇십 배는 힘들 것 같은 증상들이 반복적으로 연관되어 진술되고 있다. 아, 생각만으로도 답답한 얘기들이었다. 자, 글도 못읽고 쓰지도 못하는 자세츠키가 어떻게 편지를 썼는가. 바로 그 부분이 인간의 의지로 극복해 나가고 있는 하나의 증거물로 제시되고 있다. 자세츠키는 계속 말한다. 겉으론 멀쩡하지만 단 한군데도 쓸모 없는 자신의 몸뚱이, 심지어 엉덩이가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고 배변을 어디로 하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환자가 몇 십년에 걸쳐 3000쪽이 넘는 글을 남기기 까지의 노력을 기울였던 이유는 자신도 뭔가에 필요한 인물이 되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 때문이었다고.
증상을 보면 정말이지 죽는 것만 못한 인지 능력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듯이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모양새인 것은 분명하다. 그 정도 지경이면 삶을 사는 사람보다 포기하려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자세츠키는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애쓰고 있으며 3000쪽을 쓴 시점까지도 그것은 계속 되고 있었다고 한다. 노력에 비해 달라진 것은 극히 미비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는다. 문득, 나라면 어땠을 까 하는 생각이 든다.
루리야 교수는 그의 눈물겨운 사투를 보며 어떻게든 뇌의 비밀을 더 알아내려고 했을 것이다. 거울을 통해 환지통의 치료 방법을 개발한 의사처럼 자신도 그런 노력을 기울이려 했을 것이다. 뇌라는 것이 얼마나 무한한 세계이며 그 하나의 덩어리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주는 이 책의 에필로그는 그만큼 강렬하다.
지구라는 곳은 전쟁만 없다면 행복해 질수 있다는 것이다. 환경도 인구도 모든 문제는 다 해결할 수 부분이라는 것이다. 전쟁만 없다면 지구가 후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맞다. 나는 그 말에 100% 동감한다. 전도 유망한 한 젊은이가 총 알 한 방으로 얼마나 암흑같은 세상속으로 벼려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며 독자를 많은 생각속에 잠기게 하는데 아마도 올리버 색스는 이런 점을 두고 이 책을 그리 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딱딱한 의학을 감성적인 메시지에 담아 풀어내었다는 사실 말이다. 독특한 기술임은 분명하며 흥미로웠고 다소 두렵기도 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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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쇠퇴해가는 기억력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 본 적이 있는가 아직도 젊은 나이에 난 가끔 내 기억력에 대한 의심을 하곤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실제로 있었는지, 아니면 거짓 기억인지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엔 젊은 사람들도 치매에 걸릴 위험이 높다는데, 혹시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얼마 전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 접속하기 위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눌렀다. 항상 사용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인데, 어제까지만 해도 로그인을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비밀번호가 생각나질 않는다. 비밀번호를 알아내겠다는 생각으로 난 거의 3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고민했었는데, 그때 난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전쟁에서 얻은 머리의 부상으로 인해 기억이 지워진 남자!!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로 부터 시작한 그 환자의 이야기는 자신의 지워진 기억을 조금씩 기록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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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접하고 언뜻 떠오른 것은 ‘메멘토’라는 영화. 기억상실증이라는 병을 매개로 스릴러와 미스터리를 짬뽕해 나를 흥분시켰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쉽게 그 영화의 원작인가 라는 생각이 빠르게 스쳐지나 갔지만, 저자의 약력과 서문을 읽고 단순히 꾸며내고 지어낸 이야기는 절대 아니겠구나라고 바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뇌’라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절대적인 신체기관이라는 건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뇌가 손상된 후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뇌가 정지하면 단순히 ‘뇌사’ 상태가 오고, 뇌 병변으로 생기는 ‘치매’는 지금 세상에서는 너무도 흔해져 버린 질병이기에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한 장면을 자연스레 떠올리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여기서 만난 주인공은 머리에 총상을 맞고 망가진 뇌를 가지고 무려 25년간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3000페이지에 달하는 기록을 남긴다. 그 치열한 투쟁기간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그가 남긴 기록들을 읽어 나가다 보면 상상해 보는 자체만으로도 인상이 찡그려지고 마음이 울컥울컥 해져서 중간에 몇 번씩 책을 접고는 했다. 끊어진 기억 속에서, 새롭게 글자를 읽히고, 숫자를 배워나가고, 말하는 법, 쓰는 법을 깨우쳐 가야 하는 과정. 물론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이런 과정들을 누구나 겪는다. 그러나 손상된 뇌와 멀쩡한 뇌로 학습하는 과정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주인공은 말 그대로 뼈를 깍는 고통을 견뎌야 했다. 나는 바로 전날 익힌 영어단어를 오늘 생각해내지 못함에 분노하며 답답함에 펄쩍 뛰는데 러시아어, 독어, 영어를 쓰며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졸업한 이 주인공은 전쟁터에서 머리에 총상을 맞은 후 머리속이 완전히 백지상태로 바뀌었으니 천지가 개벽을 한다 해도 시원찮을 노릇이었을 터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잘 인지한다는 것이다. 아예 그런 기능마저 망가져 버렸다면 기억을 찾기 위한 처절한 노력을 해 볼 생각도, 그런 고통을 느끼지도 못했을 텐데 주인공은 서서히 아주 오래된 기억들부터 하나 둘씩 생각해내면서 자신의 뇌가 비정상이고 자신이 바보가 되어버린 사실을 알아버린다. 그리고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한다. 그 싸움의 결과물들이 바로 그가 25년간 남긴 소중한 기록물들이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런 힘든 싸움을 시작한 것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단지 ‘살아가기’ 위해서인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을 철학적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이 단번에 이해가 가는 이유는 이 주인공이 “생각하는 방법”까지도 잃어버렸기에 그렇게 기억을 찾으려 애쓰지 않고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존재마저도 쉽게 부정 당해버리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눈물겹다 못해 참담할 정도이고, 어차피 정상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의 삶 자체가 ‘살아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의학서적도, 투병일기도 아니다. ‘나’로써 인식되고 존재되어야 하는 한 인간의 인생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철학적 견해가 담긴 책이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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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신경심리학자 올리버 색스가 극찬한 낭만주의 과학의 고전이다. 소설이나 다큐멘터리라고 불러도 좋을 이 작품은 심각한 기억 상실증과 실어증에도 불구, 오로지 과거를 복원하려는 일념으로 일기를 써 나간 청년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알렉산드로 로마노비치 루리야(1902~1977)라는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이다. 1943년 독일군 방어 전투 중 머리에 총상을 입고 25년 동안의 기억을 잃어버린 청년 자세츠키의 삶을 추적, 소설처럼 재구성했다. 25년 동안 절망과 싸웠던 희망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성적 지각과 판단의 기능이 제거된 청년의 마음속에 의사가 들어가 대신 질문하고, 화답하는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 기록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사례 심리학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결국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는 잃어버렸던 자신의 삶까지도 되찾게 된다. 한 남자의 일생에 대한 치밀한 묘사가 실화처럼 느껴지지만, 인간의 심리를 관통해 풀어낸 소설이다. 책의 내용은 총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 자세츠키와 긴 세월 동안 그의 곁에 있었던 루라야의 이야기가 번갈아 나온다. 기억상실과 실어증을 앓고 있던 자세츠키가 직접 일기를 쓰며 기억과 생각을 메모하고, 불굴의 의지로 글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이 책에는 자기가 누구인지에 대한 기억을 비롯해 말과 글까지 잃었던 사람의 절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심각한 기억 상실과 실어증을 앓고 있던 자세츠키가 기억과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기를 시도했다. 오로지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해 내려는 일념으로 불굴의 의지와 인내심으로 20년 넘게 무려 3천 쪽에 달하는 글을 써내려 갔다.
그러나 그는 대뇌전두피질의 3차 영역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정신이 없을 때가 많았으며, 쓴다고 해도 몇 문장을 써 내려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것은 끔찍할 정도로 고통스럽고 더딘 작업이었지만 자세츠키는 그가 이 작업에 매달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배열해서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회복하고 재구성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이 작업에 매달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배열해서 잃어버린 자신의 기억을 회복하고 재구성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을 통해 쓸모없는 인간에서 의미 있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었던 것이다.
자세츠키는 전쟁 중에 총알 파편으로 인해 뇌가 손상되었는데 뇌 중에서도 정확히는 대뇌 피질의 3차영역이 손상되었다. 이 영역은 뇌의 시각, 촉각 운동, 청각-진정 영역을 결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런 부분이 손상된 자세츠키는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을 종합하여 하나의 완벽한 이미지로 인식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자인 루리야의 이야기와 총상을 당한 당사자인 자세츠키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며 서로 화답하는 듯한 형식으로 쓰여 있다.
“그는 물체의 오른쪽을 볼 수 없었다. 형태를 알아본다 해도 희미한 여백에 불과했다. 그는 물체의 완벽한 형태를 인식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각들을 조합하고 그것의 의미를 유추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42쪽) 그러나 그것은 그를 괴롭히고 있는 일부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망실한 것이다.
내가 만약 자세츠키의 입장이라면 이렇게 25년 동안 나를 찾기 위한 지루하고도 괴로운 노력을 꾸준히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인간의 삶은, 되돌아보고 진실로 기억되고 적절히 활용되기 전까지는 진정한 삶이 아니다”라는 보편적인 진리가 들어 있는 이 책을 통해 기억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이며, 우리의 삶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구성하고 자기 삶의 진솔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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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찾는 한 남자의 처절한 몸부림.
책의 내용은 전쟁에서의 부상으로 기억을 잃은 자세츠키와
그를 지켜보고 원인을 규명하려는 학자인 루리야의 이야기로 꾸며진다.
자세츠키는 뇌를 심하게 다쳤기 때문에 그로 인해 손상된 대뇌피질은 회복되지 않고
'계속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즉시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한 패턴으로 전환시키는 대뇌피질 영역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단어의 배열이나 글, 혹은 사물의 연관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어떻게든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금씩 나아지는 부분도 있지만
읽기와 '공간 인식 장애'는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가족들과 대화할 수도 없고 벽에 못을 박는 사소한 일거리도 해낼 수 없다.
문장을 읽으면 앞의 단어는 기억하지만
앞 앞의 단어는 금새 잊어버리기 때문에 문장을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다.
그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서 연필을 잡으면 그 순간 그것은 사라지고 만다.
하루 종일 그것을 기억해내려고 애써보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라고 말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종종 보통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무슨 말을 하려 했는데 금새 잊는다든지,
무엇을 가지러 창고나 부엌에 갔는데 왜 그곳에 간 건지 잊는다든지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 종종 일어나는 일이 자세츠키에게는 일상이며
어떻게든 극복해내고픈 절실함이다.
그는 무엇을 떠올려보려고 오래 생각하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기도 하다.
머리를 쥐어짜듯이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이틀동안은 침대 신세를 져야 하는 정도이다.
25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 해 써내려간 3천쪽의 노트는
그에게 삶의 애착일거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그는 그의 문제를 끝나지 않은 싸움이라고 했다.
행복하고 똑똑한 젊은 청년이 전쟁터에서의 부상으로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수없이 좌절해도 포기하지 않는 과정이 고스란히 이 책에 담겨있다.
책의 마지막엔
<에필로그를 대신하여
전쟁이 없다면>
라는 글이 있다.
전쟁만 없다면......휴......
의미를 부여한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며 노력하는 것이
<의미 있는 무언가>라는 결과물보다 더 가치가 있다.
현재를 사는 것. 최선을 다 해 노력하는 것.
자세츠키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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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총명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소대장이 되었고, 두려움을 무릅쓴채 조국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소대를 이끌었다.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순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이 그 젊은이의 뇌를 손상시켰다. 젊은이의 두피와 두개골을 뚫은 그 쇠파편은 뇌의 한부분에 박혔고, 그 부근을 손상시켰다. 그리고 그 주변에 생긴 감염으로 인한 염증 역시 신경세포들의 많은 부분을 손상시켰다.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생긴 반흔 역시 그 젊은이의 두뇌의 신경세포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방해했다.
목숨을 건졌다. 기적적으로. 뇌와 같이 혈류가 많이 통하는 뇌조직에 생긴 상처. 2차세계대전이라는 열악한 의료환경에서 입은 상처. 총알이 빗발치는 전선에서 그렇게 큰 상처를 입은 사람치고 생명을 건진것만해도 다행이었다. 다행히 파편은 그의 생명을 유지하는 뇌부분은 비켜서 지나갔다. 그래서 그는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하기에 지장이 없었다. 그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뇌는 많은 것이 상실된 상태였다.
잔인한 것은 외견상 정상처럼 보이는 그의 두뇌가 가장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에 중요한 손상을 입었다는 점이다. 데이터가 없는 두뇌는 그를 과거가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기억상실. 기억상실이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과거에 경험했던 개인적인 기억들의 소중한 부분만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는 알파벳을 읽는 법도, 간호사를 부르는 방법도, 간호사라는 명칭도, 급하게 소변을 봐야 한다는 말조차도 잃어버린 것이다.
그는 글을 읽고 쓰는 법을 알기 위해 이 책이 지어지기까지 무려 35년을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끊임없는 그의 노력과 불굴의 의지로 그는 더 나은 곳을 향해 날마다 일보 전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전진속도는 무척이나 더딘것이었고, 그 전진을 그가 생명이 붙어 있는 도안 평생을 계속해도 그가 정상인과 같거나 그 비슷해진다는 것은 무망한 일이었다. 그는... 가망이 없었다...
가망이 없다는 것, 정상인 처럼 되거나, 정상인과 비슷한 존재가 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잔인하게도 그의 파괴된 대뇌는 그에게 어렴풋이 그런 비극적인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덜 파괴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이 아무런 가망없는 것을 위해서 평생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는 만큼만 덜 파괴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더 나아지기 위한 노력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노력의 모든 과정을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면서 30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기록을 만들도록 했었다.
이 책의 저자는 그가 남긴 그런 기록들을 보면서, 그의 기록들이 의미하는 인간두뇌의 작동방법을 역으로 추적하는 작업을 했다. 과학자들, 인간의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두뇌라는 미묘한 구조에 관해서 이제 많은 것을 안다. 그 지식중 적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책에서 일인칭으로 등장하는 기록자 '자세츠키'라는 러시아의 한 청년장교 출신 뇌부상자의 기록에 빛진것이 큰 것 같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두뇌의 작동방법에 대해, 고장난 두뇌 스스로가 남긴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곳이 이런 식으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고장난 뇌의 안쪽에서 들려오는 이런 신호를 힌트로 삼아서 과학자들은 뇌가 이렇게 손상을 입으면 이런방식으로 뇌의 기능에 장애가 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거꾸로 "뇌의 이런 부위들은 고장이 나지 않았을때는 이런방식으로 작동을 하고 있었겠구나" 하는 추측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의 초인적인 의지와, 과학자들이 자신의 아픔을 통해 뇌의 부상이 가져오는 것에 대해 알아주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을수 있기를 바라는 그의 초인적인 의지때문에 가능하게 된 일이다.
뇌의 부분적 파괴에 의한 기억상실이라는 것은 우리가 영화를 통해보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기억은 데이터만으로 따로 존재하지 않았었다. 기억은 시각적 이미지와, 공간적 감각들이 함께 뭉쳐진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는 단순히 기억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인간으로서 생활하기에 필수적인 공간의 감각, 시각적 정보, 계산, 연산, 추리, 정보처리,,, 같은 광범위한 능력에 손상을 입은 것이었다. 뇌손상에 의한 기억의 상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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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를 읽었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그가 만난 다양한 환자들에 관한 글을 보며 ‘뇌’라는 미지의 세계를 조금 엿본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태도가 한결같이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것에 감동받았다. 바로 그가 서문을 쓴 이 책은 루리야 박사에 대해 낭만주의 과학자라고 표현한다. 살아있는 존재를 분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을 지닌 과학자라는 것이다. 루리야 박사의 연구는 단편적인 실험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전기’의 형식을 띠고 있다. 이제껏 어떤 학자도 30년에 걸친 장기간의 사례 기록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따뜻한 인간애를 지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연구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루리야 박사와 이 책의 주인공인 자세츠키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자세츠키는 1942년 폭탄 파편을 맞아 좌측 두정 후두부가 크게 다쳐 뇌 손상을 입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한 남자가 뇌 손상으로 겪게 되는 고통에 대해 본인이 적은 글과 루리야 박사의 의학적 설명이 함께 적혀있다. 자세츠키의 외상은 치료됐지만 대뇌피질의 손상은 영구적인 상처를 남겼다. 자세츠키는 말한다. 1942년 자세츠키는 죽었다고. 뇌 손상으로 자신이 기억하며 알고 있던 모든 지적 능력이 송두리째 사라진 그는 낯선 남자로서 남은 생을 살아간다. 원래 그는 이 책의 제목을 <끝나지 않은 나의 싸움>이라고 짓고 싶어했지만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가 되었다. 그는 단순히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언어능력과 기억력이 모두 파괴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기도 힘들고 단어 자체가 어떤 의미인지조차 알 지 못한다. 그는 끊임없이 노력하여 자신의 원래 기억들을 찾고자 한다. 박사의 충고대로 무의식 중에 글쓰기를 시도하여 과거의 기억이나 생각들을 적을 수는 있지만 자신의 적은 글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자세츠키의 삶은 지나간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한 끝없는 싸움이 된 것이다. 단지 원래의 자신이 누군지를 찾고 싶은 한 남자는 고통스런 삶을 매일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의 증상을 모르는 사람들은 자세츠키의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일반 사람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미처 인식하지 못한다. 뇌 손상이 이토록 치명적인 장애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자기자신이라고 확신하는 모든 특징들은 결국 ‘뇌’가 만든 결과물인 것이다. 다양한 성격과 능력을 지닌 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은 건강한 ‘뇌’가 있어서 가능하다. 루리야 박사와 자세츠키는 이 책을 통해 일반인들도 뇌 손상 환자들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인간 본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자세츠키는 평생 뇌 손상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아야겠지만 그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의 용기야말로 가장 인간다움을 드러낸 것이리라. 루리야 박사는 마지막에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전쟁이 없다면…… ” 심각한 뇌 손상 환자들이 생겨났던 것은 비극의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 때문이었다. 장래가 촉망 받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 순간에 부상 당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뇌 손상으로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자세츠키처럼 불행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 없다면 인류는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 것이라는 루리야 박사의 말이 계속 뇌리에 남는다. 인간의 생명과 본질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인류에게 희망이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희망을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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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자제스키라는 한 똑똑한 청년이 있었다. 전쟁에 나가 총상을 당한 그는 머리에 심한 부상을 당하고, 실어증에 걸리고 만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사고한다. 우리가 최초의 기억일것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시기와 언어 습득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인것과 결부시켜 생각해 보면, 언어와 사고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다. 뇌의 어느 부분을 다쳐 실어증에 걸리게 되면, 그 언어(단어)와 그것이 지칭하는 의미나 이미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게 되고, 이 제목 그대로 그가 알았던, 그가 이루어왔던 세상은, 아니 그 사람 자신은 shattered world 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자제스키라는 청년은 자신의 문제점 알고나서 알파벳부터 다시 배우고, 읽기, 쓰기를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하루에 단 한 페이지를 쓰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그의 상태에 대해서 끊임없이 쓰는 작업을 수십년째 계속 해왔다. 이 책은 루리야 교수가 자제스키의 3천페이지가 넘는 일기를 보며, 실어증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이다.
슬프지만, 자제스키는 실어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번 다친 뇌는 절대 복구되지 않는다. 단어는 알지만, 그 단어가 가리키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고, 어떤 사물을 보았을때, 그것이 무슨 단어인지 기억해내는데 하루 종일이 걸리고, 문법은 이해 불가능한 그 무엇이었다. 어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것은 그 사람 안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사고나기 이전의 그는 산산이 부서져 버려 이미 없고, 그 이후에는 그는 숨은 쉬고 있지만 기억이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았다. 과연 산것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사는것을 증명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쓴것일까.. 이유야 어쨌건 그는 끊임없이 썼다. 생각나는대로 썼고, 읽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보다 눈물겨운 장애 극복 스토리가 또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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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츠키는 유능한 젊은이였다. 비록 아버지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유복한 삶을 살진 못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당신이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에게 베풀었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예정대로 학교를 졸업했을 것이고 남들처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 독일의 침공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기에 충분했다. 전쟁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메마른 삶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그런데 그는 총을 들고 직접 전장을 누비는 군인이어야만 했다. 불과 23살의 나이에 그는 군사들을 지휘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죽였을 것이다. 만일 그렇게 전쟁이 끝이 났더라도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간 사람들로 인해 평생을 괴로움 속에 떨며 살아야 했을 게다. 그런데 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날아온 포탄 파편이 바로 그것이었다. 눈을 떴을 때 그는 이미 한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 때부터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그는 ‘환자’로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도록 예정된 상태였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인간의 뇌는 꽤나 미세해 아주 작은 상처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루리야 박사는 대뇌피질의 3차 영역이 총알 파편에 의해 손상되었기 때문에 자세츠키의 삶이 그토록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솔직히 나는 의학적인 부분까진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 다만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오던 것들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도 어려운 것으로 돌변했을 때의 당황스러움에 대해서만큼은 이 책을 통해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부상을 입은 환자는 내면세계가 산산이 조각난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떠올릴 수도 없다. 또한 문법 관계를 너무도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배웠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은 개별적이고 연관성 없는 정보로 분리된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 뇌의 일부분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그의 세계는 끝없이 연결된 미로가 되고 말았다. (P 57) 다음은 루리야 박사의 설명이다. 실제로 자세츠키는 마치 이제 막 태어난 아기와도 같았다. 특정 단어가 그의 앞에 놓였을 때 그는 이를 단어로 인식하기 보다는 알파벳 하나하나로 인식했다. 게다가 그의 오른쪽 눈은 사물을 전혀 읽어내지 못했다. 단순히 못 보는 것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자신의 몸을 바라볼 때 조차도 그는 자주 오른쪽을 잊어버렸다. 상대가 오른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때면 그는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질 못했다. 자신의 오른손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은 혼재된 상태로 존재했다. 머리의 크기가 정상치보다 훨씬 크거나 작게 느껴졌고, 허리나 엉덩이 따위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질 못했다. 심지어 급히 화장실을 가야 하는 순간에도 그는 자신의 항문을 인식하지 못해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했다. 의기소침한 상태로 평생을 살았더라면 그는 마냥 불쌍하기만 한 환자로서 우리에게 기억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현실에 저항했다. 나이 스물이 넘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 마냥 글을 배우는 게 어이 없는 상황처럼 느껴졌을 테지만 그는 결코 포기치 않았다. 비록 평생 글을 읽는 것을 어려워했고 공간 감각이 완전치 못해 못을 박는 아주 간단한 일조차도 성공하는 일이 드물었지만, 25년간 3천 쪽이라는 방대한 분량에 해당하는 글을 적어 내려감으로써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했다. 우리에게도 적지 않은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이 일을 뇌 손상을 입어 글을 읽지도 못하는 그가 해냈다! 그가 남긴 메시지로부터 나는 평화를 갈구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각국은 전쟁을 피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지구 곳곳에서는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눈 이들의 슬픈 눈을 만날 수 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어린 아이들로 왜 상대방을 총으로 쏘아야 하는지 이해하질 못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총에 맞아 죽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위해 상대를 죽일 따름이다. 전쟁에서 살아났더라도 그들은 온전한 삶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신체 장애로 인해 일상적인 활동에 제약을 받는 이들도 있을 것이며, 그 주에는 자세츠키처럼 뇌를 다쳐 자신이 누군지 인식조차 하지 못한 체 사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상흔이 없을지라도 그들의 마음은 치유를 필요로 한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들이 자신의 눈 앞에서 죽어나가는데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사실로 인해 평생을 무기력감에 시달릴 수도 있으며, 누군가를 죽였다는 죄책감을 떨쳐내기 위해 몸부림칠 수도 있다. 애초에 전쟁이 없었더라면?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았던 자세츠키를 바라보며, 그가 치러야 했던 ‘끝없는 싸움’을 지켜보며 나는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제 아무리 강한 의지를 갖고 삶을 대할지라도 전쟁이 가져다 주는 파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