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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기도 쉽지 않은 여행이었다.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글이라고 해서, 과학자이면서도 문학적인 과학글을 쓰는 작가의 이름에 빠져 본 책인데, 흠, 결코 쉽지 않았다. 글을 읽을 수는 있었으나 그 글이 설명하는 과학적-우주천문학과 관련된- 지식이 부족한 탓에 읽고도 의미를 다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우리 애들에게 권할까 생각했던 책인데, 어쩌면 지금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 아이들이 나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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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 하면 떠오르는 것은 고등학교 때의 지구과학 시간. 혹은 별자리 정도의 수준이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이 책과의 첫만남이였다. 경도 0도를 자오선이라고 하는 것을 약간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책을 계기로 알게 되었다. 이 책은 저자 쳇 레이모가 경도 0도를 지나고 있는 도시들을 직접 다니면서 과학적인 발견에 대해 다루고 있다. 분명 간단한 이야기는 아니였고 깊이있고 나름 심도 잇는 내용이였다. 다만 내가 접하기에 조금 어려웠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내가 보기에 나같은 왕초보 보다는 천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으면 나보다 훨씬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읽으면서 느낀 점은 경도 0도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가지고 있는 영국의 대단함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비록 처음의 목적이 그것이 아니였다고 해도 말일다. 모든 세계의 시간이 영국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뜻깊은 저자와의 여행은 나에게는 신선하고도 의미가 깊었다. 그리고 과학자의 지식으로 풀어 놓는 에피소드들은 어디에서도 알 수 없는 값진 정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누구나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의미를 가지고 떠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영국에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 책에 나오는 경도 0도의 도시들을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모든 지식이 상대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지식은 다른 지식보다 더 믿음이 간다. 이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른바 성장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계속 머릿속에 남는 문구였다.
아마 이 책이 아니였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법한 것들을 많이 배웠다. 쳇 레이모와 함께한 과학탐험은 신비로웠고 보람으로 가득찬 여행이였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문가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아마 쉽게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경험을 한 것에 감사한다. 약간은 깊이도 있고 어려웠지만 공부를 마친 학생의 심정이라고나 할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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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나아가 천체, 우주의 근원적 발생까지, 우리 인간의 위대한 정신적 소산에 대한 자연과학적 발자취를 기반으로 한 철학적인 사색의 여정이다. 오늘의 인류에게 자오선이 갖는 의미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지구시간, 아니 우주시간의 기준선이다. 영국의 그리니치천문대를 지나는 북극과 남극을 연결하는 수직의 선인 본초자오선을 경계로 15도 마다 1시간씩의 시간이 빨라지거나 늦어지게 된다. 저자는 바로 이 자오선이 오늘 왜 영국의 그리니치를 지나는 것이어야 했는지에 대한 이해관계국의 갈등과 확정에 이르는 역사적 일화를 소개하며, 인류의 합일점으로서의 그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를 사유한다. 이렇듯 인류 정신의 합의가 가능하듯이 오늘의 종교간 갈등, 인종간의 갈등도 인간의 위대한 행로에서 이루어지리라는 소망으로 연결 짓기도 한다. 자오선을 여행하기로 한 저자의 위와 같은 인류정신의 숭엄함 위에 놓인 과학적 발견과 그 발견을 위한 노력들의 자취를 시(詩)가 흐르듯 저작의 전체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철저한 기독교 집안의 종교적 환경과 가치에 둘러싸여 성장한 저자가 “신이 우주를 만들어낸 단 한 가지 이유는 죄와 구원의 인간 드라마를 위한 무대로 쓰기 위해서일 뿐이었다.”고 인간 중심적인 종교에 헛웃음을 날리고, 서구중심의 역사적 추진력에 대한 허위에 대해 각성을 하기에는 진실을 쫒는 과학적 탐구의 산물이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자아중심적인 세계에서 직접적인 인식을 뛰어넘는 공간으로, 우리가 결코 경험한 적 없는 과거와,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의 미래를 향해 무의식적으로 여행을 시작” 하는 인간의 과학적 창의성에는 절로 숙연해진다. 이 저술은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 아리스타르코스에서 시작하여 케플러, 뉴턴에 이르는 지구와 우주의 탐구에서 퀴비에, 제임스 허턴의 동일과정설과 같은 지구역사의 가설에 이른 탁월한 인간들에 대한 경외를 보여준다. “허턴은 바위의 흔적을 설명하는 데 신의 간섭 같은 것은 필요 없으며, 오로지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자연의 힘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질학 시간이 인간의 시간과 얼마나 다른 것인지 “그토록 거대한 시간의 심연을 바라보려니 현기증이 날 만큼 마음까지도 넓어지는 듯 했다.”고 지질학적 시간의 탄생에 열정적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다. 한편 헉슬리의 노동자들을 위한 연설문을 인용하면서 과학적 가르침은 “도덕심이 향상되고 자유, 평등, 박애 정신과 새로운 천상세계, 새로운 지상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이 널리 퍼지기 바랐다.”고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믿음에 대한 지식을 주장한다. 많은 과학적 발견이 당시대에는 진실이라 여겨졌지만 오늘에서는 그 과학적 진실이 오류임이 밝혀지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저자는 “과학이 밝혀내는 것은 본원적인 진리는 아니라는 의미”라고 하며, “자연 자체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도록 이끄는 완전히 객관적이고 보장된 방법, 즉 절대 오류가 없는 불변의 진리를 낳는 “과학적 방법”같은 것은 없”으며, 다만, “우리가 과학에서 찾는 것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다른 대안보다 믿음직한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저술에 매료되는 것은 이와 같은 과학에 대한 철학적 사색뿐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멸종은 분명 거대한 인간 역사 드라마의 일부로서 우연이든 고의이든 같은 종 내의 대량 살상이 이루어졌다는 충격적인 증거일 뿐 만 아니라 ‘호모사피엔스’ 때문에 생물의 다양성에 발생한 가장 중대한 손실이다.”라는 인류기원에 대한 탐험과, ‘다윈’의 자연선택이론을 인간 본성에 대한 연민으로서 “딸의 죽음은 자연에 도덕율 따위는 없으며 모든 생명체는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는 그의 주장에 통렬한 의미를 선사했다.”와 같이 흥미로운 공감을 조성하는 문체에 있기도 하다. “과거나 미래의 누구보다도 심오하게 우주의 본성을 들여다 보았는지 모르지만”하고 뉴턴의 우주에 대한 겸허의 소박한 한 구절이 절로 오만한 나의 이성을 잠재운다. “거대한 진실의 바다는 고스란히 미지의 모습으로 내 앞에 펼쳐 있는데 나는 바닷가에서 놀다가 이따금씩 좀 더 매끄러운 자갈이나 조개보다 모양이 더 예쁜 조개껍데기를 찾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어린아이에 불과했던 듯하다.” 자오선을 따라 영국의 남부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하여 울스소프, 배로올험버에 이르는 인류의 위대한 과학적 발견을 따라 거니는 사색의 여정에서 우리는 무지를 인정하고, 진정한 믿음의 버팀목 없이 단지 두발로 서서 존재의 신비를 맞딱뜨리기 위한 용기를 보게 된다. 저술의 말미에 자오선이 갖는 인류의 의미로 “저마다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려는 뿌리 깊은 경향을 뒤엎은 과학적 사고의 승리이며, 아직도 격렬하게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종교와 정치, 인종의 차이가 언젠가는 무의미한 것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희망의 징조다.”라고 하는 저자의 인류화합과 과학적 가치에 대한 기대에 그저 감정을 편승해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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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의 의미. 어제와 똑같은 해가 뜨고 어제와 똑같은 시간에 밥을 먹고 어제와 똑같은 장소로 가서 일을 한다.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하루하루 쌓고 있다. 그런 시간을 2000년이면 어떻고 2001년이면 어떻겠는가? 그건 인간이 지나친 상징성을 부여하고 싶은 새날, 새해, 새천년을 기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29살의 마지막 날이나 30살의 첫 날이나, 어제와 같은 오늘일 뿐이라고 지나친 호들갑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내가 얼마나 감상적으로 시간과 공간을 정의내리고 있는지 알게 했다. 이 책의 저자인 쳇 레이모는 과학과 자연뿐만 아니라 좋은 교수일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글쓰기방식은 친절했다. 수학과 과학에 열등한 나에게 천문학에 대한 접근을 쉽게 접근시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진솔한 글쓰기를 통해 딱딱한 껍질을 벗기고 말랑말랑한 속살을 간직했음을 알게 해줬다. 그리니치 천문대는 1675년 찰스 2세가 그리니치에 있는 왕실 공원 부지 제일 높은 곳에 국립 천문대를 지으라는 왕명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자연과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식민지를 약탈하기 위한 해군의 안전과 무역의 번성을 위해 지어진 것이다. 위도의 경우 지구의 어떤 위치에서든 남쪽과 북쪽으로 나타내는 데는 모호함이 없어 단번에 결정되어지지만 경도의 경우 정확한 지점을 정하기는 어렵다. 영국 왕실은 그 경도를 그리니치에 천문대를 건설함으로 경도 0도를 지정한 것이다. 위도의 확인은 해나 별 같은 천체가 해당 지역 자오선을 지날 때 수평선과 이루는 각을 재기만 하면 되지만 경도는 출항했던 항구의 시간을 정확하게 가리켜 줄 시계가 있어야만 했다. 지구는 시간당 15도씩 자전하므로 배가 있는 곳의 하늘에서 태양이 가장 높은 곳에 당도했을 때 그리니치 시간을 유지하던 선상의 시계가 오후 1시를 가리키면 배는 동쪽으로 15도 항해했다는 의미가 된다. 시간과 거리는 맞교환되면서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정확한 시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곧 우주의 시간을 재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째깍째깍 소리는 우주가 움직이는 가장 큰 소리였던 것이다. 그런 그리니치의 자오선을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과정도 무척 흥미 있었다. 프랑스는 영국에 본초 자오선을 양보하는 대신 미터법을 국제 표준으로 만드는 조건을 걸었다. 이로써 1884년에 경도 0의 본초 자오선과 표준시에 대한 구제적인 합의가 이루어짐으로써 공간과 시간의 세계화가 단행되었다.
우주와 인간의 시간과 공간의 기준선인 그리니치 본초 자오선. 그 자오선을 따라가다 보면 에닝이 공룡 화석을 발견한 라임리지스 절벽이 있고 화석 사기극의 무대인 필트 다운과 다윈이 살던 다운 하우스, 헤리슨의 해상 시계가 놓은 그리니치 전문대, 과학자의 성역인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뉴턴의 방이 있는 케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가 있다. 우연의 일치 치고는 운명에 가까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쳇 레이모는 여기서 최초의 지구 지도를 그렸으며 우주 공간을 이야기했고 지구의 과거와 인간의 과거, 우주시간과 공간을 끄집어낸다. 본초자오선을 따라간 쳇 레이모의 천문학 산책은 무척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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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면 특히 많이 나오는 책이 여행서다. 실용 여행서뿐 아니라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온 여행자들의 달콤쌉싸르한 여행기들이 독자들을 희롱한다. "너희도 가고 싶지? 이것저것 고민 말고 한번 나와보라니까!" 라며 끊없는 유혹을 보낸다. 이번에도 여행이다. 그런데 자오선 여행? 이거 뭔가 색다르다. 영국 남동부를 가로지르는 경도 0도의 본초 자오선. 그렇다면 일단 영국 여행인 것 같은데... 이 흥미로운 여행이 궁금해진다.
분명 여행에세이지만 여행에세이가 아니다. 인류와 지구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 걸어오는 심오한 여행이다. 이미 <아름다운 밤하늘> 외 여러 저서로 과학, 자연에 대한 즐거움을 전해준 저자 쳇 레이모. 처음부터 흔한 여행은 아니리라 예상은 했다. 아! 마치 고등학교 지구과학 수업으로 돌아간 듯한, 어느 생물 수업 시간으로 되돌아간 듯한 책읽기다. 지루하냐고? 아니, 이렇게 재밌게 수업해주는 선생님이 있었다면 난 분명 과학 시간을 매우 좋아했을 것이다.
총 6개의 큰 챕터로 이루어진 책은 지구 지도 그리기, 우주 공간 속의 지구, 지구의 과거, 인간의 과거, 우주 시간, 우주 공간으로 나뉘어진다. 제목만 보면 이게 뭔가 싶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은 편안하다. 자오선이 지나는 피치헤이븐에서 시작하는 여행은 본초 자오선의 주위를 오락가락하며 재미난 천문학, 인류학 이야기를 전해준다.
지구 지도 그리기에서는 에라토스테네스의 대략적 지구둘레 재기에서 시작한 지도 그리기의 역사를 구경한다. 우주 공간 속의 지구로 넘어가면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옮겨오는 역사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이어 공룡의 화석으로 시작하는 지구 나이 알아내기, 다윈이 말하는 인류의 진화를 감상한다. 마지막으로 우주의 시공간을 유랑하다 보면 어느 새 끝. 아, 아쉬워라.
책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생각을 하고 연구를 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사람들이었다. 그 시대에서는 이해하지 못했던 일들을 그러나 굳건하게 믿고 주장한 그들 덕분에 지구는 오랜 역사를 인정 받고, 태양 주위를 돌며, 진화해 온 것이다. 어느 발전에든 시대를 바꾼 사람들이 없었겠냐만은 지구, 사람을 연구하고 알아내고자하는 그들의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러 나라와의 경쟁을 뚫고 본초 자오선 0도의 나라가 된 영국. 그 유구한 붉은 선을 좌우에 두고 한 발을 내딛는 표지의 모습은 무심한 듯 신선하다. 아마 이 책에 소개된 많은 일화와 인물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대단하게 알려지지 않아도 조용히 세상을 밝혀낸 그들을 생각하며 언젠가 나 또한 같은 포즈로 사진 한 방 멋지게 찍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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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고등학교 1학년때 지구과학 선생님이다. 성격이나 수업방식이 조금 독특해서 학기초에 그분의 성향이나 수업방식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나는 지구과학 첫 파트에 나오던 자오선을 포함한 내용들의 개념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그 파트를 넘겨야 했다. 과학 과목을 좋아해 열심히 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때의 영향 때문인지 유독 자오선과는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대학시절 내내 아마추어 천문 동아리에서 보냈음에도 말이다. 이젠 지구과학 책을 펼쳐놓고 자오선 운운할 일 따위는 없지만 내 머릿속의 기억은 자오선에 대한 충격에서 쉽게 벗어나질 못하는 모양이다. 이책에 눈길이 간 것도 바로 '자오선' 때문이었으니까. 자오선 여행이라, 지구의 자오선을 따라 여행을 한다는 발상 자체가 무척 기발하게 느껴졌다. 자오선을 따라 과학의 흔적을 좇아가는 여행이라니! 저자 본인이 과학자이기에 자오선을 따라 걸으면서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들이 자못 흥미로울 듯 했다. 여행을 통한 과학이야기, 두근두근 하는 마음으로 그 시작을 함께 했다. 이야기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기준으로 한 본초자오선 이야기로 시작된다. 본초자오선, 그러니깐 경도 0도의 기준이 왜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일까라는 의문은 누구나 한 번쯤 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책을 통해 그간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위도 0도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다. 지구의 양극을 기준으로 했을 때 중심되는 지점은 누가 봐도 명확하니 말이다. 그러나 경도는 다르다. 둥근 지구에서 어느 한 점을 중심으로 잡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로 자기 나라를 경도의 기준으로 세움으로써 세계의 중심이 되고자 했기 때문에 본초자오선을 정하는 일은 각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다. 마지막까지 이어지던 영국과 프랑스의 대립 끝에 영국이 승리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지구의 본초자오선은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으로 정해져 오늘날에 이르렀단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정하는 기준 중의 하나인 본초자오선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와 함께 저자는 영국의 피치헤이븐 마을의 절벽에서 본초자오선을 따르는 도보 여행을 시작한다. 본초자오선을 좇는 여행은 라임리지스 절벽, 필트 다운, 다운 하우스, 그리니치 천문대, 웨스트민스터 사원, 케임브리지 등의 장소를 거치는데 그 과정동안 저자는 천문학은 물론 생물학, 지리학, 지질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이야기가 자못 흥미롭다. 처음엔 과학관련 서적이라 어렵지 않을까 하는 선입견도 있었는데 과학의 여러 영역을 자연스레 오가면서도 여행을 하듯 즐겁게 들려주는 저자의 이야기에 이내 귀를 기울이게 된다. 자오선을 따라 떠났던 특별한 여행을 통해 한층 가까워진 과학의 세계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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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지도를 보면 가로선과 세로선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져 있다. 세로선은 경도이고, 가로선은 위도이다. 위도를 긋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적도를 기준으로 양 극을 중심으로 90도를 나누면 되는 일이었기에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경도를 긋는 것은 위도와는 다른 면이 있었다. 경도는 시간을 결정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경도의 기준을 자신의 나라에 두고자 경쟁을 한다. 그 경쟁은 1884년 영국의 승리로 끝이 나면서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선이 경도 0도가 되고, 각 나라는 경도 15도에 따라 1시간씩 시차를 두게 된다. 그리하여 한국은 영국보다 9시간 빠른 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도 0도가 왜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가게 되었는지가 궁금하다. 본초 자오선이라는 명칭을 쓰기도 하는 경도 0도는 “3개 대륙 9개국을 지난다. 본초 자오선의 3분의 2에 달하는 거리는 바다에 드리워져 있다.”고 한다. 북극에서 시작한 본초 자오선은 영국을 지나, 프랑스로 넘어가고, 이어 스페인 영토를 지나 서부 아프리카를 통과해 남대서양을 가로질러 남극 대륙으로 들어간다.
경도는 국제적인 화물 운송량이 많아지면서 출발지와 도착지의 정확한 시간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었으며, 1704년10월에 군함이 암초와 부딪치는 바람에 2000명의 군인이 생명을 잃었는데, 이 원인은 경도를 알지 못해 항해하고 있는 지점을 지도상에서 정확히 알지 못해 일어난 일이었다. 그 상황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17세기 말에는 원거리 항해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정확한 시계가 없었다. 한 달간의 항해에서 시계가 겨우 1분 느려지거나 빨라진다 해도 바다에서는 거리가 10여 킬로미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는 시간인데, 17세기에는 그 정도의 정확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이에 영국 의회는 확실한 경도를 알아내는 사람에게 큰 상금을 주기로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은 천문학자가 아니라 존 해리슨이란 이름의 시계공이었다. 그는 항해용 크로노미터를 발명함으로써, 경도 문제를 해결했고, 해리슨은 바로 본초 자오선이 지나가고 있는 링컨셔의 배로온험버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책 <자오선 여행>(사이언스북스.2008년)의 저자인 쳇 레이모는 물리학은 전공한 교수로 경도 0도를 따라서 도보로 여행을 한다. 그는 해당 지역에서 과거에 일어난 유명한 과학적인 발견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자오선이 지나가는 도시 중 하나인 ‘다운’은 찰스 다윈이 살았던 곳이다. 그곳은 다윈이 ‘진화론’의 뼈대를 이루게 했던 지질학적 지식을 확인할 수 있을만큼 많은 화석을 가지고 있는 지형이 있는 장소였다. 다운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필트타운’이라는 곳이 나온다. 여러 책에서 ‘필트타운 인’ 사건에 대해서 소개되어 있듯이, 이곳에서는 고고학사에 있어서 20세기 최고의 사기극이 벌어졌던 곳이다. 사람의 두개골에다가 오랑우탄의 턱뼈를 붙여서 마치 오래된 인간의 조상 유골처럼 만들어, 이를 수십 년간 사람들은 이를 믿었다. 물론 나중에 이것이 사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직도 이 사건의 범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사기극이 벌어진 이유는 유럽 여러 곳에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이 발굴되었지만, 영국에서는 이런 유골의 발굴이 없었기에 자신의 나라에 인류가 오래전부터 살았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영국인들의 빗나간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이 책에는 공룡의 화석이 발견된 장소인 라일리지스 절벽과 많은 과학자의 무덤이 있는 웨스트민스트 사원, 아이작 뉴턴이 연구한 장소인 캐임브리지 트리니티 칼리지 등 경도 0도에 해당하는 지역을 2003년에 도보로 여행하면서 관련 도시에서 일어난 과학적 업적과 해당 과학자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근현대 과학에 있어서 영국인들의 위대한 역할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저자의 이 도보여행을 통해서 독자들은 지리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인류학, 물리학 등 여러 학문을 통해 인간과 우주 등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의문을 해결하고자 노력했던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과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만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