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는 덕후(단순 팬, 마니아 수준을 넘어선 특정 분야의 전문가)하면 사회부적응자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는데, 요즘은 공중파 Tv에서 덕후를 능력자라고 프로그램을 만들만큼 덕후를 바라보는 시선이 상당히 너그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추사에 미치다'란 제목을 보면서 바로 추사 덕후가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꼈던 것은 내가 추사 김정희에 대해선 그의 명성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해서 생각보다 아는 게 많지 않았구나하는 점이었다. 걸출한 서예나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예술가라고 여겼는데, 그게 다는 아니었다. 경주 김씨인 김정희 부친 김노경은 안동 김씨와 척을 지고 그래서 시련을 겪은 것을 보면 김정희에게도 정치적으로도 입지가 있었다. '세한도'도 제주 유배시절에 탄생한 작품이었다. 또한 학문적으로도 경지를 이뤘고, 금석문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야말로 넓으면서도 깊은 즉 정약용에 비견할만큼 다재다능한 팔방미인형의 인물이었다. 김정희는 이른 나이에 벌써 명성이 중국에까지 미쳤고 그래서 중국 지식인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그에게 영향을 미친 중국 지식인도 적지 않았고. 그의 행적을 좇다보면 조선과 청, 그리고 학문과 예술을 두루 살펴야했다.
'추사에 미치다'는 호암아트홀에 전시된 '세한도'를 접한 이후 추사에 빠져 들게 된 필자 이상국의 추사 덕후질의 진면모를 볼 있었다. 추사의 행적을 좇는 것은 물론이고, 시와 서체를 찾아 감상하는 심미안의 즐거움까지. 한 분야에 빠지게 되면 견문이 좁아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한 추사에 대한 지적, 예술적 탐구를 통해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필자의 안목이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고전과 관련한 내용은 제법 많이 나와서 그부분 때문에 어렵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 책에서 내 눈에 더욱 들어왔던 것은 추사에 대해 탐구해가는 필자의 열정보다는 추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살찌워가고 필자의 모습이었다. 한국에서 중년 남자들이 시간이 날때 하는 일이라고는 유흥이 대부분일텐데.추사가 남긴 시나 그가 남긴 서체를 찾아가고, 그의 행적이 남겨진 장소에 가고..그렇게 추사의 행적을 더듬어가면서 추사를 느끼는 중년 남자의 모습, 그 모습을 상상해보니 실로 아름답기까지했다. 필자만 하더라도 추사에 미친 여정을 이렇게 책으로 펴낸 것으로도 증명되듯 덕후가 된다는 것은 창작이나 문화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저력이 된다.
사실 덕후로 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그 대상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열정을 가져야 하고 그것도 꾸준하게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니.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 미친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직업으로서나 노동과 다른 차원의 열정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채워가는 길이 될 것이니.
|
|
이상국 저 | 푸른역사 | 384쪽 | 691g | 2008년 07월 21일 | 정가 : 15,000원
교과서에 나와 있는 박제가 된 추사만 봐 왔으니 문인화의 정수라는 <세한도>를 보고도, 그림 하나를 길게도 풀이해 놓은 책 [세한도]를 읽고도 덤덤하니 큰 감동이 없었다. 여전히 추사는 유리벽 안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펼쳐 읽고 있자니 추사가 책 속에서 걸어나와 방바닥에 마주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닷없는 친근함은 추사의 인간적인 풍모가 드러나는 편지글들 때문이었다. 추사의 초의에 대한 찡얼거림과 잘난척을 읽다보니 괜히 입끝에 웃음이 매달린다. 그래, 아무리 후대에 칭송을 받는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추사도 밥먹고 화장실 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도 인간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섭섭한 것도 있고 아프고 슬픈 것도 있는 것인데, 사람을 그림에 가두고 글에 가두어 놓고 <세한도>에서 뭐가 안보인다고 탓하고 있었던 것이 미안해졌다. 자신의 처지를 보여주고 덧붙여 이상적에 대한 큰 고마움의 표현이 마음에 와 닿는다.
마음에 꽃바람이 불었다가 부인에게 들켜, 놀라서 성급하게 보냈던 편지글과 제주 사람들이 수선화를 함부로 호미로 켄다고 속상해하는 모습을 읽으면서 추사에게서 사람냄새가 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도 <세한도>와 추사의 글씨에 대한 매력은 크게 느끼고 있지를 못하다. 문인화의 매력을 알기에는 내가 문인이 아니라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시원한 듯 하면서도 거칠고, 너무 거칠다 싶을 때 귀엽게 보이는 암호 같은 추사체는 내가 한자를 모르기에 더욱 가까이 할 수 없어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역사 지식이 없는 내가 읽기에는 조금 벅찬 책이 아니었나라는 생각도 해봤다. 책을 덮으며, 전 아무 생각없이 방문했던 제주의 "추사거적지"를 다시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추사고택도 언젠가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상태는 지루하지 않은 편집과 길지 않은 글들로 잘 읽히는 책이었다. 모든 책의 이해는 자신에게 있는 것 아닌가라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초의에게 보낸 추사의 편지들을 읽다보니, 추사의 걸명은 애원을 넘어 협박 수준으로까지 변한 걸 보고 웃음이 났다. 추사는 정말 집요하게 차를 요구했다. 이상적에게 책을 요구할 때도 그랬지만 그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에 미안해하거나 쑥스러워하지 않는다. 귀하게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는 쪽보다는 이쪽의 다급함과 절심함을 홍보하는 일에 익숙하다. |
|
추사에 지적 갈증이 확장된 것은 다산을 읽으면서 부터였다. 추사와 초의 그리고 조선의 차문화를 한꺼번에 들여왔고 드디어 미뤄두었던 시작을 당겼다. 그런데...삑사리다. 추사체에 대한 설명 부분에서는 잠깐 심장박동수가 증가하긴 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의무감 때문에 읽었던 책이다. 구성 또한 앞으로 뒤로 왔다갔다 해서 불편한 점이 있었다. 추사를 만나는 입문서로서는 그다지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듯 싶다. 살 붙이는 책으로 읽었다면 더 좋은 인상을 갖지 않았을까. 자칭 '추사쟁이'로서의 저자의 감정이 너무 앞선다는 느낌을 받는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라기 보다는 10년 간의 추사놀이를 독백하듯 풀고 있는 모습을 관망하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공감하기보다는 괴리감이 들었다. 저자 만큼 추사에 미치지 못한 독자가 볼 때 좀 오버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재미없는 영화는 이것저것 다 건드려서 결국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나에게 이 책은 한 편의 재미없는 영화였다. 인문서도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답사기도 아니고 전기도 아닌...... 물론 '그 모든 것이 농축된 것'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저자가 추사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인데, 그것 알자고 책을 읽은 것은 아니니...... 암튼 결론은 '함께 하고자 하였으나 나는 그리하지 못 하였소'. |
|
이상국으로 인해 되살아나는 추사 김정희 |
|
건성으로 읽으려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읽는 내내 추사 김정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남긴 글과 그림들과 생각들 그의 많은 호들 그의 인간적인 모습들 그가 아내에게 남긴 애뜻한 편지들 그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나 뜻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싶어진다.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때이른 죽음을 맞이한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이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펼쳐 보기라도 했다면 이 땅이 좀 더 부강한 나라가 되었을 것 같다. 백범 김구가 꿈꾸었던 부강한 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