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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결혼상대자로 남자를 평가할 때 이왕이면 피해가고자 노력하는 유형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자신보다 키가 작은 남자이고 둘째는 자신보다 돈이 없는 남자이며 마지막은 형제가 여럿인 집의 장남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속하지 않으며 절대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는 유형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종가집의 종손이다. 종손.주로 명문가로 일컬어지는 집안의 적통을 이어나가는 아들에게 붙여지는 이름이자 일종의 권위가 배인 직함이다. 물론 옛날옛적 양반상놈 사내계집을 구분하던 시절에는 이 이름이 지닌 엄청난 권위와 위엄은 상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덩달아 사람들의 인식, 특히 여성들의 인식이 변화한 현대 사회에서 명문가의 종손은 부담스럽다 못해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일 년에 스무 번 정도는 기본적으로 치러내야 하는 제사도 그럴 뿐더러 늙어 죽을 때까지 아들 하나는 꼭 생산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은 여성의 인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종손이 지닌 위엄이 한낫 공포의 대상이나 우스개소리 소재로 쓰이는 요즘 세상에 종손과 종부, 크게는 종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서술한 책이 있다. 바로 이 책-명문 종가를 찾아서-가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처음에는 종가의 음식문화와 차문화를 알기 위해 여러 종가들을 방문했다고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다 종가가 지닌 전통성과 매력에 빠져들어 종가 고유의 생활문화에까지 그 관심이 미쳤음을 수줍게 고백하고 있다. 특히 종가에서 종부가 차지하는 위치와 권위에 대해서도 세세히 나열하고 있다. 이 점이 종가에 대한 삐딱했던 내 시각을 교정시켜주었다. 내가 생각하는 종가집의 종부란 평생을 그 집안의 거름 노릇을 하며 한많은 세월을 보내야한 하는 불쌍한 여인네였다. 일년에 수십번의 제사를 지내고 수많은 손님들의 먹거리와 잠자리를 걱정해야 하며 늘 아들낳기를 소망해야 하는 여인.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지녀왔던 종부의 인상이었다. 그러나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집안의 종부들은 기존의 내 선입견을 완벽하게 깨놓고 있었다. 독립운동을 하다 단명한 남편을 대신해서 옥살이하는 시아버지 수발과 집안 부흥에 앞장섰던 당찬 여장부인 의성 김씨 종가의 종부 손응교씨, 한국전쟁 당시 실종된 남편을 대신해서 종가를 일으켜 세우며 자식들을 키워낸 장흥 고씨 종가의 종부 기묘숙 씨 등 책 속의 종부들은 집안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자신만의 고유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또한 집안 내에서 차지하는 종부의 역할이 종손 못지 않음을 여기저기서 내비치고 있다. 종손이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을 경우 양자를 들여 집안의 대를 잇고 차종부에게 살림을 넘길 때까지 집안 살림을 관장했던 씩씩한 종부들이 여러 명 등장해서 나를 감탄하게끔 만들었다.
또한 (계녀서)에 전해지는 것처럼 자녀교육과 경제권, 노비 다루는 것과 제사 참여 등 가정사 모든 권한이 여성에게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를 통해 당시 여성들의 지위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런 새로운 사실과 더불어 이 책이 주는 흥미로움은 또 있다. 작가의 저술 의도에 따라 각 종가의 특색있는 먹거리와 전통주,전통차 등을 소개하여 지역과 종가에 따라 집안의 문화가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음식문화를 다시 한 번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넘치고도 남는다. 특히 전통유지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를 계승해나가려는 여러 종가의 노력들이 책 구석구석에 잘 드러나고 있다. 350년이 넘는 고가를 예술촌으로 단장하여 예술가들의 구심점이 되고자 노력하는 의성 김씨 김방걸 종가와, 옛조상들간의 인연을 500년 넘도록 이어온 김굉필 종가와 김종직 종가의 모습에서는 요즘 보기 드문 의리와 향수마저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작가는 요즘은 보기 드문 전통 제례와 혼례, 성인식 등의 모습을 종가의 전통을 통해 글과 그림으로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관혼상제 문화를 계승하고자 노력하는 종가의 노력을 작가의 시각에서 따뜻히 수용한 결과이다. 여기에 덧붙여 단순히 글만을 제시하지 않고 다양한 인용문과 사진, 인물소개 등을 덧붙여 종가에 대해 일반인들이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작가의 마음이 잘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종가와 종손, 종부에 대해 일정한 지식을 갖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전통문화가 이러하며 이를 계승,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 주위에 남아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만든다. 더불어 이런 종가문화가 우리 민족의 고유성이자 특색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우리 스스로도 지키고 보존해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 책을 들 때의 삐딱했던 내 시선이 책을 덮을 즈음에는 예전보다는 따뜻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내게 남아있는 생각은...종부는 아무나 할 수 있는건 아니다 라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채에서는 주인이 손님을 맞고 안채에서는 길손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며 서당에서는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한 이곳.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다 : 종가가 지닌 특색을 단 세 줄로 잘 표현해낸 문장이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