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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세상 모든 풀을 '잡초'라고 불렀다. 지난 해 3월, 두 돌을 지난 아들 녀석은 찬기운이 물러가자 저녁마다 산책을 나가자며 졸랐다. 그리곤 산책길에서 처음보는 풀, 꽃, 나무를 만날 때마다 '아빠, 이건 뭐예요?' 라며 줄기차게 묻기 시작했다. 꽃과 나무는 그래도 반쯤은 이름을 대 가며 답해 줄 수 있었지만 풀은 달랐다. 가지 수가 많았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는 대부분 낯익은 풀들이었지만 강아지풀, 토끼풀, 괭이밥 말고는 모두 '잡초'라는 이름으로 통일되었다. 내 머릿 속에는 풀들의 이름이 없었다. 나의 순수한 무식함과 뻔뻔스런 오만함이 세상 모든 것에 막 관심을 가지고 선의로 다가서는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중지능이론이 퍼뜩 떠올랐다. 80년도 초반 하버드대학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지능지수(IQ)만으로 인간의 지적능력을 측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중지능이론을 발표했다. 즉, 과거의 지능지수 측정이 언어, 공간, 논리수학영역으로 한정되었다면 가드너 교수의 다중지능이론은 인간친화, 자연친화, 자기성찰, 음악, 신체운동까지 포함하여 8가지 영역의 지능이 복합적으로 관련되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결정한다는 이론이다. 부모라면 자녀가 유년기를 보내는 동안 모든 영역에서 지적 능력을 고르게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건 의무라고 해야할 것이다. 아들 녀석의 자연친화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릴순 없었다.
풀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당연히 책을 스승삼았다. 내게 풀 이름을 가르쳐 준 책, <세밀화로 그린 보리 어린이 풀 도감>(이하 <풀 도감>)이다. <풀 도감>은 우리 땅에 사는 흔한 풀 100종을 세밀화로 그려 생김새와 한살이를 설명해주는 풀 그림 사전이다. 사진이 아닌 세밀화로 그려진 풀들에서는 소박하고 친근한 느낌이 든다. 풀내음도 막 나는 것같다. 책 맨 앞에는 쉽고 빠르게 찾아볼 수 있도록 '그림으로 찾아보기'를 붙여놓았다. 또한 식물은 생김새에 따라 어떻게 분류되는지, 어떤 한살이의 과정을 거치는지를 개괄하고 있다. 그런 다음 본격적으로 하나 하나 소개하기 시작한다. 숲을 본 다음 나무를 보는 것같다. 친절한 책이다.
어릴 때 풀 이름을 몰라서 맘대로 이름을 붙였다. 계란 후라이가 연상돼 계란꽃이라고 불렀던 개망초, 기는 줄기로 땅바닥을 완전히 감싸고 있어 뱀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아 뱀풀이라 여겼던 환삼덩굴, 나팔꽃을 닮아서 작은 나팔꽃으로 알았던 아기메꽃, 강아지풀이 너무 커서 변형된 강아지풀이라 의심했던 수크랑. 나는 한 동안 아들 녀석과 함께 '잡풀'의 감옥에 갇혀있던 풀들을 의미의 공간으로 탈출시켰다. 재미가 쏠쏠했다.
이제 주변의 풀 이름이 궁금해질때마 나는 <풀 도감>을 펼친다. 도감을 펼쳐 풀의 정체를 확인하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내가 얼마나 이 세상 존재들의 '다양성'을 용감하게 말살해 왔는가를 깨닫게 된다. 세상에는 단 한사람도 '그냥 인간'으로 불릴 사람은 없다. 한 사람의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독특함은 셀 수가 없다. 우리는 그 다양함 속에서 '특별하고 유일한 그 누구'로 존재한다.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나비를 '그냥 나비'라고 부르는 것은 나비에 대한 모욕이 되는게다. 굴뚝나비, 배추흰나비, 처녀나비, 모시나비, 표범나비, 유리창나비, 지옥나비, 부전나비...그래서 나비박사 석주명은 국내 240여종의 나비 이름을 불렀다. 곧은 뿌리와 수염 뿌리, 곧은 줄기와 감는 줄기, 그물맥과 나란히맥, 통꽃과 갈래꽃이 다르다는 사실이 자명한데도 난 그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이름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알지 못하니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잡풀', '그냥 풀'이라 했다. 세상에.
걸어서 하는 아침 출근길, 아들과 함께하는 저녁 산책길에 이제 쇠뜨기, 지칭개, 참새귀리, 새팥, 흰명아주가 인사를 한다. 친한 친구가 확 늘었다. 아들 녀석 가르치려다 내가 배웠다. 세상에 '그냥~'은 없다. 세상 모든 풀은 이름이 있다.
나탈리 골드버그의 말이 가슴에 환하게 울려퍼진다.
"사물에도 인간과 똑같이 이름이 있다. '창가의 꽃'이 아니라 '창가의 제라늄'으로 묘사하는 편이 훨씬 좋다. '제라늄'이라는 단어 하나가 훨씬 구체적이고 생생한 영상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그 꽃의 존재 속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도와 준다.....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만 같다." 나탈리 골드버그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 120~122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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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세밀한 그림을 그려온 보리에서 풀도감이 나왔다. 풀이라 하면 뽑아내야 할 잡초이자 이름 따위 알 필요없이 다 풀이었던 녀석들이 어여쁜 우리말 이름으로 나도 꽤나 쓸모 있고 게다가 아름답기까지 하지 않니?라며 말을 걸고 있다.
풀이 하는 점잖은 역할만을 알려준 풀이 하는 일, 풀로 하는 놀이(토끼풀 꽃으로 반지나 목걸이를 만들어 보지 않거나 바랭이 우산을 만들지 못하고 유년시절을 보내는 것은 참으로 슬프다 아니할 수 없다), 우리 민족이 흔하게 지멋대로 낳고 자란 것들을 어떻게 유용하게 삶에 활용했는지를 알려 준다.
교과서에 나온 식물학적 지식에 관한 정보도 담았다. 참고서적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아름다운 풀 그림만 보여주려 한게 아니고 초등교과서와 연계시켜 풀과 꽃의 종류, 구조, 역할을 상세히 풀어내어 식물에 관한 총체적 정보를 전달해 준다. 예전과 달리 순화된 우리말로 전해주는 지식어는 생경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해 주었다.
흔하게 보는 풀 100가지 그림이 이제 본격적으로 나온다. 정말로 흔하게 보는 풀이 맞다. 적어도 70개 정도는 내가 지긋지긋하게 뽑아낸 풀이고 3년을 시골에서 보낸 우리 아이들도 30가지 정도는 어 이거 할머니집 마당에 있는 거잖아, 밭에 있는 거잖아, 뒷산에 가면 이런 풀 있는데... 하며 찾아낼 수 있었다.
이렇게 보자마자 그림과 실물을 연관시킬 수 있다는 게 세밀화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다. 사진기술이 아무리 좋아져도 이 경지에까지는 못 이르는 것 같다. 뿌리와 줄기, 잎, 꽃을 통째로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린 잎, 씨앗까지 따로 그려주어 식물의 일생을 알 수 있도록 했다. 풀 이름이 사투리가 많아 달리 부르는 이름까지 다 알려준다.
풀이 가진 약효도 앞으로를 위해 유용한 지식이 될 것이다. 난 어렸을 적부터 까마중을 굉장히 많이 먹었는데 자라서 본 약이 되는 식물 이런 류의 책에선 독이 있으니 3~4알 이상 먹지 말라고 적혀있었다. 책보다 경험을 믿는 나로써는 이런 글을 보고도 나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까지 이 열매를 먹이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한여름부터 가을까지 3~4그루만 있으면 매일매일 따먹을 수 있다. 밥 그릇 가득 따서 먹은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해답을 준다. 익지 않은 열매만 독이 있어서 먹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익지 않은 까마중 열매는 아무도 안먹는데...
바람하늘지기, 닭의장풀, 꽃다지, 버들여뀌, 봄까치꽃, 곰달래 등 이름만으로도 예쁜 이 풀을 찾아 들과 산을 쏘다니고 싶지 않은가. 당장 이 책 한 권이면 풀이름 뿐 아니라 풀의 약효까지 줄줄 읊을 수 있을 것이다. |
| 등교도 못하고 집에만 있던 시절 답답해하는 아이와 함께 근처 공원으로 산으로 산책을 많이 했습니다. 그때 유난히 눈에 들어오던 이름 모를 풀들… 자주 마주쳐도 이름을 모르니 불러줄 수 없었습니다. 궁금해서 풀 이름을 물어볼 수 있는 앱을 설치해서 하나 하나 사진을 올려가며 고수들의 답글을 통해 이름을 알아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보게 된 풀도감. 반가운 얼굴들이 이 책에 다 모여있었네요. 그래서 얼른 하나 소장했습니다. 손톱보다 작은 풀꽃에도 하나 하나 이름이 있고 각자 피어나는 때가 있고 얽힌 이야기도 있다니 뭔가 뭉클했어요. 아이는 별 관심없어 했는데 길에서 볼때마다 이름을 알려주었더니 듣고 있었나봐요. 체험학습에서 혼자 풀이름을 맞췄다고 기뻐하더라고요. 저는 꽃마리를 특히 좋아합니다. 가까이 봐야 얼마나 이쁜 꽃인지 알 수 있고 길에서 흔히 보이는데 이름은 또 어찌나 이국적인지… ㅎㅎ 식물도감에서 못 찾던 풀들이 여기 다 있네요. 풀과 친해지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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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너무 예쁘게 핀 장미나 온갖 멋을 낸듯 피어나는 요란한 꽃보다는
보일듯 말듯 있는듯 없는듯 그렇게 잔잔한 기쁨을 주는 풀꽃들을 참 좋아한다.
그런데 마침 세밀화로 인정 받고 있는 보리에서 풀도감을 만들어 냈다는 즐거운 소식이
사실 여기 저기 아무데서나 피어난 풀들을 가만 가만 들여다보는것을 좋아하는 나는
들고 다니며 요모 조모로 살펴볼 수 있는 도감이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가만 책을 들여다보면서 보일듯 말듯한것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담은
그린이의 온갖 정성이 담긴 책이기에 더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면 그저 그런 초록빛을 띤 풀에 지나지 않는듯 하지만
가만 가만 들여다 보면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앙증맞고 이쁘고 귀여운 예쁜 색깔의 꽃도 피워낸다.
봄이 되면 어느새 길을 가던 나는 발걸음을 빨리 하지 못하고
자꾸만 헤찰을 하게 되는데 바로 다름아닌 여기 저기 제 몸을 무기삼아 언땅을 뚫고
올라오는 풀들때문이다.
그리고 어느새 노랗고 빨갛고 푸른 꽃을 피워내는 고 자그마한것들도
모두 자기만의 이름을 지녔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롭기만하다.
이 책은 책표지에서부터 세밀한 폴꽃 그림들이 눈길을 끄는데
집둘레나 길가에 사는풀, 밭에 사는풀, 산에 사는 풀, 논이나 물가에 사는풀
이렇게 네가지 색으로 쉽게 찾아볼 수있도록 구성해 놓았다.
차례도 가나다 순으로 꽃이름만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어 유용하다.
우리집 둘레에서 본 꽃인데 그 이름을 몰랐던 꽃을 찾아보았다.
그럼 똥색으로 분류되어 있는 부분을 펼치면 된다.
지칭개!
참 그 이름도 이쁘장하다.
엉겅퀴꽃을 살짝 닮아 있어 그 동생뻘쯤 되는듯했는데 찾아보니 과는 같은 국화과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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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주문을 하면서 책 사이즈를 확인 안 하고 사서 요즘에 샀던 다른 세밀화 책과 같이 큰 판형인줄 알고 있었는데 막상 받으니 그것보다 작은 사이즈라 첨엔 좀 실망했어요. 그런데 책장을 넘기면서 보니 시골사는 관계로 주변에서 많이 보던 아이들이 떡 하니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책장에 들어 앉아 있네요. 평소에 '아! 지저분하다'하면서 다 무차별로 뽑아버리던 녀석들이 대부분이라 속으로 웃었어요. 너희들도 다 책장 하나를 차지할 만큼 이름있고 쓰임이 있는 것들인데 어쩌다 잡초라는 무리속에 들어갔을까하는 생각에 좀 안스럽기는 하대요. 그래서 아들녀석에게 학교 갔다오는 길에 풀 뽑아오면 우리 여기서 찾아서 식물도감만들자 했네요. 앞으로도 지저분한 녀석들이란 소리 들으면서 뭉터기로 뽑혀나가겠지만 이름은 기억해줘야 할 것 같아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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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산에 다니면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저도 모르는 다양한 꽃과 풀들.. 그리고 나무들..
짧은 지식으로 아는 몇가지를 알려주니, 아들녀석은 엄마가 천재라도 되는양 흐뭇해하며 이것저것을 물어보더군요. 하지만 저 역시도 집과 도서관을 왔다갔다 하며 교과서만 파던 시절의 공부를 하던 사람인지라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꼈어요.
아이에게 더 많은 정보를 알려주고 싶어 구입하게 되었어요. 책을 보며 자기가 알고 있는 몇가지 풀을 찾아보고 좋아하는 아이를 보니 괜히 흐뭇하네요.
보리의 세심하고 따뜻한 느낌의 세밀화는 역시 절 실망시키지 않았어요. 식물도감을 살까 고민도 했지만, 나무도감이 있어 풀도감만을 구입했어요. 좋은 책인 것 같아요..
다만.. 꽃의 모습이나 풀잎의 모양 등 일부가 조금 클로즈업된 그림이 좀더 많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어 별 4개지만.. 이것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운 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