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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곰치 소설 ‘빛’ 빛 블로그 http://blog.naver.com/gomchilight 김곰치 작가는 부산 연산동 산중턱에 삽니다. 늙은 부모님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롱이와 함께 살죠. 김곰치와 알고 지내는 사이라 이번 여름에 볼 일이 있어 잠깐 김곰치 작가 집에 들렀는데 작가가 글을 쓰는 방은 아주 작았습니다. 오로지 글만 쓸 수 있는 ‘존재의 방’이라고 할까요? 2평정도? 그 방에서 마롱이는 나른하게 누워 있거나 자궁속 태아처럼 웅크려 있고 옆에서 김곰치가 글을 쓰거나 글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놀랬던 건, 방 크기의 협소함보다 방이 너무 더웠다는 거죠. 저는 10분만 컴 앞에 앉아 있어도 숨이 헉헉 막힐 지경인데 작가는 단련이 되었는지 그 방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아랑곳없이 일을 하더라고요. 한여름에도 문을 닫고 있어야 했던 까닭은 마롱이 때문이었습니다. 마롱이의 잦은 짖어댐이 신경이 예민하신 어머니를 불편하게 해 드릴까 조심 하였고, 최근에 생리를 한 마롱이가 혹시 새끼라도 가지게 될까 염려하여 둘이 함께 옥상이나 앞 마당에 나가는 외출 외에 종일 닫힌 사각 박스 안 조그만 선풍기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거지요. ‘빛’을 만들어낸 작가의 방은 뭐랄까요, 평범한 학생의 공부방 같았지만 그 작은 방에는 치열함과 땀과 열정이 넘쳤습니다. 소설 속 대화의 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꼭 밖에 나가야 날씨를 만끽 합니까? 말대로 창문만 열어도 하늘이 다 들어오는데’ 아마 작가는 손바닥 만한 창을 통해서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하느님’을 느꼈겠지요. 이 소설은 많은 부분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실제 비기독교인인 작가가 37살 때 기독교인인 37살 여자와 잠깐 교제 했었지만 사랑은 좌절되고 말죠. 이루어지지 못한 좌절과 분노는 작가에게 소설을 쓸 수 있는 폭팔적인 힘을 만들어 내었고요. 소설 속에는 15년동안 고민해 왔던 ‘사람과 자연과 사물에 대한 사색’ 그리고 인간 예수에 대한 그리움과 변함없는 애정 그리고 그동안 소설가로, 생태 환경 르뽀 작가로, 귀농을 꿈꾸며 함께 공부했던 학생의 마음으로 만났던 많은 따뜻한 사람들이 등장 합니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그들과의 만남이 남겼던 촌철살인 같은 멘트들도 밑줄을 긋게 만듭니다. 저는 이 소설을 연애 소설로도 또한 딱딱한 종교 소설로도 규정하기 싫어요. 이 소설은 사람과 사물 아니 이 세상의 만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빛나는 ‘빛’인 존재들이라 말합니다. ‘고매한 인격, 뛰어는 감성의 소유자였고 말과 행동이 거의 완전히 일치한 아름다운 사람 (373쪽)’인 예수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작가가 꿈꾸고 그리는 ‘사람 사랑에 대한 지향’을 담았습니다. 작가는 독자를 향해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편지(형태로 소설)를 썼지요. 아주 오랫동안 작은 방에 앉아 잔잔하고 따뜻하게 때로 절규하며 모니터에 숱한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작가는 또 이 글자들 하나 하나가 ‘빛’이라고 했습니다. 이 ‘빛’을 저는 많은 독자들이 읽고, ‘빛’과 같은 글자들이 읽는 이의 마음에, 그 마음의 방에 하나 하나 따뜻하게 불을 켰으면 좋겠습니다. 치열함과 땀과 열정이 있는 작가의 작은 방은 너무 뜨겁고, 그 뜨거움은 큰 울림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입니다. 저는 김곰치의 작가적 진정성을 믿습니다. 마롱이와 함께 였던 존재의 방, 작가의 방은 작았지만 ‘빛’은 크고 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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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종교의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이 커져 가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 종교를 비판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에도 한 방송사에서 기독교의 근원을 객관적으로 되짚어 보는 방송을 기획 방영하다가 반 기독교적이라는 이유로 일부 종교인들의 커다란 저항과 사회적 파장을 불러온 바 있다. 특정한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에도 우리는 여지없이 광화문 광장에 성조기와 태극기를 맞잡은 특정한 종교와 정치의 색채를 띤 인파를 보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내용을 소설의 큰 축으로 잡는 일은 작가에게 그 만큼의 용기와, 시대와 맞서는 정신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김곰치의 신작 ‘빛’은 한 마디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남자와 교회에 다니는 여자의 실패한 연애담이다. 그 과정에 촘촘히 짜여 진 에피소드에서 그는 예수의 성령잉태와 예수의 치유 이적에 대해 경쾌하게 문제제기를 하기도 하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살인, 강간의 중죄인에게도 구원이 온다는 단순극치의 구원법’이 애초에 ‘예수쟁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탄압의 선봉에 섰던’ 바울로가 초를 잡은 교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살인 강간의 죄도 용서되는 종교가 바로 바울로교라고 일갈하는 대목에서는 이청준 소설을 영화화한 ‘밀양’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기도 했다. 반면에 작가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하느님은 ‘똥 누는 하느님’이고 ‘사계절의 변화, 모든 존재에 섭리와 품성이 깃들어 있는’ 하느님이며, ‘인간의 몸과 생활에 밀착한 범신론’적인 하느님이다. 그런데 이 책의 장점 중의 하나는 이런 종교와 관련한 이야기를 필자의 ‘리얼’한 일상과 연애담 속에 자연스럽게 짜 넣어서, 전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사실일 것이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동시대의 다양한 인물들과, 마치 부산의 어느 거리를 주인공과 같이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생생한 풍경묘사 등도 이러한 읽는 재미에 기여하고 있다. (책을 읽고 나는 소설에 등장하는 ‘Once'라는 영화를 실제로 보기도 했다.) 이 책을 읽은 일은 기독교에 대해 일천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우리 사회 기독교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체계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고, 나름대로 기독교에 대한 상식을 넓힐 수 있었다. 또한, ‘성경’과 ‘크로이체르 소나타’를 내 다음의 독서목록에 올려놓기로 한다. 아울러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이 일부 편협한 종교인들에 의해 반기독교적인 불온서적(?)으로 몰리기보다는 보다 더 폭넓고 열린 종교적 관점에서 생산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한다. 그들이 직시해야 하는 현실은 실제로 내 주변에도 이 책을 읽고 한 마디로 ‘통쾌하다’는 평을 내 놓는 독자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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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재미있었다. 잘 읽혔다. 살인자 바울이 저지른 이 땅의 기독교에 대한 왜곡을 향한 조경태의 일갈은 아주 통쾌하고 전율적이었다. 똥 누는 예수의 모습은 너무 친근해서 화장지라도 갖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예수의 여자 정연경에 대한 질투와 화해와 반성과 사랑스러움은 소설의 곳곳에 배치되어 내 입가에 미소를 짓게 했다. 두 연인은 삐치고 싸우고 전화하고 만나고 또 욕하고 원망하고 다시 만나고 결국 헤어진다. 세상에 이런 소설이 있을까. 이렇게 세세하게 적어놓은 연애담이 또 있을까. 조경태가 얼마나 소설에 몰입했는지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여러 번 감탄했다.
하지만 나는 말했다. 이슈화시키려면 차라리 기독교의 공격은 받는 게 좋겠다. 하지만 여자들의 공격은 조심하는 게 좋겠다. 여자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하고 툴툴거리는 남자 조경태를 읽는 여성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여자를 배려하지 않고 우월감에 차서 자기위주로만 생각한다고 분노하는 여성독자도 있을 것이다.
조경태는 정연경이 이기적이라고 말하지만 연애에 초보인 조경태도 만만찮게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이해할 생각도 없다.
여자는 원한다. 그거 팝콘 봉지, 들어주고 안 들어주고가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가 여자에게 관심이 있다면 여자가 들고 있는 팝콘봉지가 ‘눈에 들어와야 하는 것’ 이다. 관심이 있으면 팝콘봉지는 저절로 남자의 눈에 들어온다고 정연경은 생각할 것이다. 그거 들고 있기 불편하지 않아요? 그거 그만 버리죠. 안 들어주려면 적어도 이런 말이라도 정연경은 듣고 싶은 것이다. 불편하고도 굽 높은 부츠를 신고 몇 정거장씩이나 걷는 여자가 얼마나 힘들고 발이 아프고 고통스러운지 알아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걱정이다. 서면에 걸어 다니는 여자들 중 80프로는 아마 정연경일 것이니 조경태가 아직 미혼인 걸 생각하면 내가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함께 모임을 하는 창덕씨는 곰치와 떨어져 앉거나 그것이 안 되면 나란히 앉기를 권한다. 침 튀는 그의 열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침을 감당할 수 없는지, 누군가의 표현대로라면 그의 현란한 씨부림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인지 나는 직접 앉아 보라 권하고 싶다. 그렇다면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며 사물에 대한 사랑이 많고 그리고 따뜻한 똥을 누는 남자인지를 말이다.
책이 나오기 전에 소설은 뜨겁게 토론되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감동적이었다. 나는 ‘존경한다’는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소설에 대한 토론 중에 한 지인은 마음에 틀어져 버리기도 했다. 그것 역시 작가에 대한 두터운 애정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는 나는 아직 변함이 없다.
똥은 따뜻했고, 빛은 두터웠다. 그 두터운 빛이 멀리멀리 비추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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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너무 이쁜 책 '빛' 입니다. 제목처럼 ‘빛’과 같은 책입니다. 머리 맡에 두고 늘 '빛'을 읽고 만지며 이 '빛'과 함께 늙어가도 좋을 책 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 '조경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경태'는 '김곰치', 치열한 사고와 사랑의 흔적인 활자의 행간에서 독자는 참, 숨막힙니다. 덧붙임: 김곰치 ’빛’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gomchil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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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어떤 작가의 크리스천 여성과의 짧은 연애담이다. 시간상 길지는 않지만, 주인공의 상념이 어찌나 길고 풍부한지 장편소설이 되어 버렸다. 사건들보다, 주인공의 독백, 그리고 예수에 대해 품고 있는 묘한 적의가 상당히 짭짤한 읽을거리이다. 책을 읽어본 지인들의 공통된 의견은, 주인공이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이 ‘귀엽다’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매우 보통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남자인 나로선 역시 남자인 주인공이 귀엽다는 그 표현에 도무지 공감하기 힘들었지만. 조경태, 그러니까 이 주인공은 글로 먹고 사는 30대 후반의 남자다. 아무래도 예능관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그렇듯이, 대단히 감성적이고 잡생각이 많다. 말도 많다(쓸모있는 말은 적다). 그런 감성을 신변의 작은 일들, 강아지라든가, 그 배설물이라든가… 에 쓰고 있다. 소소한 것들에 대해 독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 이런 남자들이 연애하면 자신도 상대도 피곤해진다(하지만 보는 사람들은 재밌다). 자신의 생각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 특히 여자 대하는 법을 도통 모른다. 글을 쓸 때 주인공에 몰입해서 쓰기는 쉽지만 그 주인공의 바보짓을 3자가 볼 때 어떻게 느낄 것인지를 아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데, 김곰치 작가는 바로 이 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묘사했다는 점이 대단하다. 그래 이 감성적인 남자가,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알게 된 여자에게 ‘작업’을 걸기 시작하는데, 처음엔 상당히 괜찮다. 여자는 연애를 좀 해봤는지 살짝살짝 밀고 당기지만, 맞받아칠줄은 모르고 자기 스타일만 고수하는 경태에게 좀 끌려다니는 모양새를 보인다. 경태의 입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썰들에 그리 심심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자신의 종교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유감이 생기게 되고, 보편적 여자의 기대치 – 그러니까 내 가방좀 들어주면 안 되나? 이 팝콘좀 자기가 들고 가면 안 되나? 그렇게 먼저 앞서 성큼성큼 걷지 않으면 안 되나? - 에 한참 못 미치는 쑥맥 조경태에게 결국 이별을 통보한다. 보다보면 실소를 넘어 불쌍할 지경이다. 상대가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주제, 좀 더 내밀한 관계에서나 진지하게 꺼낼 주제를 꺼내어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누구든 지치지 않을 수가 없다. 삼십대 후반이라는 조경태는 도대체 그 나이까지 사람 대하는 기본적인 요령은 안 배우고 뭘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욕망에 초연한 타입도 아니고, 초연한 ‘척’을 하는데, 너무 뻔히 속내가 들여다보이니 아주 ‘귀여울’ 지경이다. 결국 다시 혼자가 된 조경태는 마음의 평화를 찾지만… 또 방아쇠가 하나만 당겨지면 그 평화는 박살날 것이라는 데에 얼마든지 베팅하겠다. 아무쪼록 조경태의 남은 인간관계가 가능한 한 오래 평화롭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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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십자가 그림이 있다. 뒤표지에는 예수가, 하느님이 어쩌고 하는 추천 글도 있다. 종교소설 같아서 다소 재미없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다. (종교라는 낱말이 재미와는 좀 멀게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가?) 김곰치. 표지에 크게 써 있는 작가 이름이 좀 독특하다. 마침 소설이 읽고 싶은 날, 책장에 꽂힌 아직 읽지 않은 소설 가운데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을 들기 전에 갖는 내 신념 아닌 신념. ‘재미없으면 읽다 말면 되지. 선입견 갖지 말고 몇 장 열어나 보자.’ 요 마음으로 책을 보기 시작했다. 어라? 종교소설 아니네~ 술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 남자의 연애와 삶이 알콩달콩 담긴 이 소설. 뜻밖에도 재미지게 술술 읽히더라니. 곳곳에 예수와 종교 이야기가 자주 나오기는 하지만, 거슬리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를 제대로 보기 위한 작가의 끈질긴 노력(?) 덕에 종교 이야기마저 흥미롭기만 하다. 이를테면 예수와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고나 할까? (여기서 ‘비판적 지지’는 좋은 뜻으로 한 말임.) 고등학교 때 미션스쿨 다니면서 상처받은 기억과 경험이 워낙 커서인지, 기독교에 관심이 잘 가지 않는데, 이 글을 보면서 성경 한두 줄 읽어나 볼까나 하는 생각 잠시 들었다. 이 책을 집어들 때처럼, ‘재미없음 말고!’ 정신으로. 다만, 성경책은 글씨가 너무 작아서, 쫌……. “술을 사랑하는 사람은 술이 깰 때의 고통도 사랑한다. 이튿날 술을 원망하는 사람은 진정한 술꾼이 아니다!” (76쪽) “잠은 신비로와요. 하룻동안의 기억과 감정을 정리정돈합니다. 의식이 다 하지 못하는, 중요한 것 중요하지 않는 것을 가려내지요. 감정의 거품을 걷어내는 데는 잠이 최고예요.” (249쪽) 첫 문장을 보면서, 속 시원하게 웃었다. 내 생각이랑 아주 비슷해서. 아무래도 내가 술을 좋아해서일 테지. 주인공 경태가 숱하게 취하고 끊기고 널부러지고 하면서도 꿋꿋하게 ‘술’을 애정하는 모습이 살갑게 다가온다. 물론, 먹을 때마다 필름 끊기는 태도는 좀 고쳤으면 싶지만. 그런 사람들이 술 좋아하는 사람들 이미지를 통째로 흐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어쨌든 술로 인사불성이 되고 나선, 눈 뜬 뒤에 ‘어제 내가 뭐라고 했더라?’ 하면서 머리 쥐어뜯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데, 그런 경험 적지 않게 해 본 나로선 동지라도 만난 듯 푸근한 감정이 밀려온다. 잠에 대한 확실한 정리도 아주 마음에 든다. 기억해 두고픈 멋진 글귀! “나는 병과 죄도 하느님이 틀림없는 사랑의 노력으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죄를 미워하면 안 되고, 웬만한 죄는 인생을 더 깊이 통찰하게 하는 값진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인간과 인간끼리 노력하여 해결해나가면 됩니다.” (216쪽) 저 평범해 보이는 말이 왜 그리 내 맘에 꼭꼭 박히던지. 아무래도 지은 죄가 많은가 보다. 뭔가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한 저 글 때문에 마음이 막 따뜻해지면서 경태라는 사람이 다시 보였다. 생각보다 깊이가 있네! “사람의 삶이란 자기 안의 천 개의 방에 무엇인가를 채우고 또 불 밝히는 일이라고 나는 생 각했다.” (240쪽) 이 짧은 문장 하나도 내 마음 구석으로 쑤욱 밀고 들어왔다. 내 마음속에도 빈 방, 어두운 방 고루고루 있겠다 싶으면서 그 방 하나하나에 불을 밝히고 싶은 충동도 일어나고. 역시 소설가는 뭔가 달라도 다르다니깐. “우리 인생에 흔하디흔한, 기적도 아닌 너그러운 우연.” (22쪽) ‘너그러운 우연’이라는 말이 참 좋다. 노총각 소설가 경태와 독실한 기독교 신자 연경. 마음이 가고, 마음이 식고, 또다시 마음이 살짝 불타오르고, 그러다 결국 헤어지고. 삼십 대 후반 두 남녀 사이에 벌어진 조금은 어설픈 연애 이야기는, 글 첫 장에 나오는 저 글처럼, 누구에게나 다가올 법한 너그러운 우연이자 선물일 것이다. 가끔 짜증나고 힘들고 고통스럽더라도. 기대 없이 펼쳐 본 책 덕에, 무언가에 마음을 기대고 싶게끔 헛헛했던 주말 오후가 꽉 차서 저만치 흘러갔다. 이 책도 나에게는 ‘너그러운 우연’으로 기억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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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게 종교라는 문제가 너무 어렵게 다가왔던걸까. 물론 '마롱이' 얘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전개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 장편치고는 꽤 술술 넘어가는 책이었다. 그만큼 문체가 독자를 이끈다는 것이겠지. 어느 한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는 나에게 <빛>이 큰 지식이 되었다. (예수이야기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기때문에)
늘 우리 인생에서 남자와 여자가 빠지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남자들끼리 하는 얘기에는 꼭 여자가 들어가고, 여자들기리 떠는 수다에도 꼭 남자가 들어간다. 늘 대화의 마무리는 남자와 여자라는 것.
그리고 <빛>에서는 예수도 들어가지.
사실 많은 부분에 얽혀있는 종교적 이야기가 들어있어서 지루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이로인해 얽혀진 남녀의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한 장씩 넘기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펼친 <빛>은 많은 생각을 가지고 덮은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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