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우스, 오딘, 토르, 마르두크, 이난나, 엔릴, 아누, 페룬, 알라트, 미트라, 아후라마즈다, 누아다, 루, 삭소노트 등등.... 고대 인류가 열렬히 숭배했던 신들의 대부분은 지금에 와서 잊혀진 상태다. 시대가 흐르면서 옛 신들은 죽었고, 단지 예술 작품 속에서만 왜곡된 형태로 살아 숨쉴 뿐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신들은 모두 인류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 책은 고대 인류가 숭배했던 신들과 그런 신들을 설명한 신화와 종교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그리고 지금은 비록 잊혀졌더라도, 그 신들의 모습이 이름만 바뀌고 계속 같은 모습으로 전해져 온다는 사실도 가르쳐 주었다. 한 예로 지금 전 세계에서 20억 이상의 인류가 믿고 있는 아브라함 계열의 일신교인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공통 경전인 구약 성경을 보자. 구약 성경에서 말하는 바벨탑과 노아의 방주 내용은 사실 고대 수메르와 바빌론 신화에서 전해진 우트나쉬피팀과 지구라트 신화의 내용을 유대인들이 그대로 가져와서 자기네 경전인 성경에 넣은 것이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교세가 워낙 강해서, 그런 사실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기독교 교리의 근본이 우상들을 섬기는 이방 신앙에서 유래했다고 하면, 기독교의 입지나 교세에 상당한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또, 불교에서 말하는 구세주인 미륵불도 그 근원은 페르시아에서 믿었던 미트라 신앙에서 유래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믿었던 태양과 계약과 진실과 수호의 신이었던 미트라가 동서무역로(실크로드)를 타고 중국과 한국 등 동방에 전해져서 미륵이라는 새로운 이름과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 바로 미륵불 신앙이다. 불교야 기독교처럼 엄격한 유일신 신앙이 아니니, 다른 종교의 신을 받아들이는데 별 문제는 없었으리라. 그리고 중국 무협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종교인 마교도 원래 이름은 명교, 즉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신앙인 마니교를 한자식으로 옮긴 이름이었다. 무협지에서는 마교가 무슨 끔찍한 악마 숭배 신앙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이는 터무니없는 왜곡이고, 본래 마니교 즉 명교는 채식만 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신앙이었다. 이런 명교가 중국 농민들에게 전해지면서 부패하고 타락한 관리들에 맞서 싸우는 반란군들의 신앙이 된 것이다. 그 밖에도 지금 일주일의 영어 이름들은 고대 게르만족들이 믿던 신들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며, 각종 환타지 게임이나 소설 및 만화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마법사이자 음유시인인 드루이드도 고대 켈트족의 성직자 계급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처럼 신화는 결코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가 살아숨쉬는 인류의 보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화를 안다는 것은 인류의 내면 세계를 좀 더 깊숙이 탐구하는 길이기도 하다. |
|
오래간만에 평소에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읽어서 즐거웠다. 그런데. 몇 가지 독자와 저자를 위해서 집고 넘어가야 할 것 들은 있다. 4 페이지에 저자는 ‘애초에
종교와 신을 만든 장본인은 인간이다’라고 선언하며, 이 책을
시작한다. 우물에 앉아서 보는 하늘만 하늘일 수 없듯, 너무
성급하고 빠른 일반화의 오류다. 역사와 종교는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의 머리 속에 있던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어 탄생한
거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태도이다. 책 중반에 저자는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에 대한 언급에서, 실제 전승되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상황과 필요에 따라 만든 창작품이라고 제단하고 있다. 아인시타인은 이 세상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세상, 과학으로
그 오류를 증명할 수 있는 세상 (비과학), 그리고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세상(초과학)으로 구분짓고 있다. 저자의 책은 오직 비과학과 과학만의 이분법만 보이는 것 같다. 유대교, 기독교가 페르시아의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단편적인 접근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또한 이 생각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그리고 있다. 문자로서
구약 성경이 완성된 것은 페르시아 시대 이후이지만, 문자로 기록되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전승의
특징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대게 구전이라고 하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그 내용이 변질되고 당시
사회상이 반영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골간을 이루는 창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은 암송에서 암송으로 전승되었다. 지금까지도 지켜지는 유대인의 중요한 의식은 만 12세가 되어 성인식을
통과하는 의례로 창세오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이 문자화 될 때 (또는 번역될 때) 번역가의 예외 없는 일치가 보고되기도 했다. 190페이지의 스페인 침략군 대장인 코르테즈가 ‘나도 당신과 같은 인간이요’라고 아즈텍 황제에게 말한 대목을 들어
저자는 이것이 아즈텍인이 스페인 사람들을 인간으로 보았다는 해석을 한다. 많은 사람들의 해석은 이와는
정 반대다. 아즈텍 사람들이 스페인사람들을 신처럼 신봉하는 것에 대해 코르테즈가 자신도 사람임을 강조한
대목으로 해석하다. 유사한 상황이 신약성경에도 등장한다. 사도
중 하나에게 그가 보인 이적을 보고 사람들이 경배하려 할 때 그도 비슷한 말을 한다. 244페이지에는 핀란드의 원시신앙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돈을 만들어 내는 솥’이 창세에 있었다는 얘기를 소개한다. 사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좀 더 깊이 신화를 다루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돈이 정말 태초부터 있는 개념일까? 만약
돈이 생겨났다면, 그것은 사람이 창조된 이후일 것이다. 왜냐면, 동물이나 식물은 화폐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돈은
기원전이기는 하나 매우 최근에 생겨난 개념이다. 그래서 신화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다양한 신화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나 단어 하나하나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핀란드의
신화가 잘 못되었다고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핀란드 신화에 돈이 나오는 솥이 존재한다면, 그 신화는 돈이 있는 시기에 완성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종교를 애초에 사람이 만들었다’는
주장에 핀란드 신화는 적합하다. 반대로, 여전히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남아있는 것들은 연구의 대상으로 남겨놓는 것이 옳다. 다양한 신화, 다양한 이야기는 하나의 공통분모를 가질 수는 없을까? 만약, 어느 한 사람의 머리 속에서 순수한 창작의 영역에서 등장한
것이라면 다양한 신화 속에 공통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해와 달 그리고 별처럼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신적 영역에서 등장할 수 있고, 또 실재 이들이 많은 부분 공통적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얘를 들면, 거인이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은 동일하게 성경 창세기에도
등장한다. 거인신화는 매우 많은 신화들이 기록하고 있는 현상이다.
290 페이지에 있는 중남미의 오나족의 신화에도 인간을 습격하여 잡아먹는 포악한 거인 포쉬켈이 등장한다. 거인이 사람을 공격하고 잡아먹었다는 기록은 구약의 외경과 그리스 신화 그리고 북유럽의 신화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없는 거인을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 거인이 하는 행동을
같이 상상할 수 있을까? 전승되는 신화에는 이처럼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는 공통점들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잘 쓰인 이야기 책이다. 다만, 독자들은 이 책에서 사실과 저자의 생각을 구분지어 읽을 필요가 있다! 저자의
생각은 접어두고 이 신화나 종교에는 이런 일들이 있었구나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종교와 비교해보며 음미해보는 일도 매우 즐거운 독서의 길이 될
수 있다. |
|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7 오래된 나무를 섬기던 리투아니아 사람들 ―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도현신 글 서해문집 펴냄, 2016.8.13. 13900원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 수메르나 바빌론에서 이루어진 종교, 또 미르라교나 조로아스터교, 만주족이나 오나족이 품은 종교, 여기에 핀란드나 몽골 옛 믿음을 두루 살피는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서해문집,2016)입니다. 이 책은 ‘지도에서 사라진’이라는 대목에서 여러 종교를 살핍니다. 오늘날 같은 ‘나라’를 이룬 사회 얼거리에서 설 자리를 잃거나 아예 자취를 감추고 말아 버린 ‘오랜 믿음’이 무엇인가를 다룹니다. (수메르 신화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는 사랑을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을 대신해 힘든 노동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19쪽)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라 하더라도 지도에서만 사라졌을 뿐, 이러한 종교가 무엇을 바탕으로 생겨났고 어떠한 생각을 담으며 어떻게 사람들 사이에 스몄는가 하는 대목은 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수메르 옛이야기뿐 아니라 여러 ‘오랜 믿음’에서 흔히 나오기를 ‘신이 사람을 지은 까닭’은 ‘종(노예)으로 부려서 일을 시키려는 뜻’이었다고 해요. 사람이 무슨 ‘종’인가 하고 되물을 만할 텐데, 어느 모로 보면 오늘날 우리 모습도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에는 ‘신을 섬기는 종’과 같았다면, 오늘날에는 ‘돈(자본주의)을 섬기는 종’과 같거든요. 돈 때문에 신분이나 계급이 갈리고, 돈 때문에 고단하거나 힘겨운 살림이어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으로 예배당을 어마어마하게 올리고, 돈으로 권력을 휘두르는 짓도 곳곳에서 일어나요. 물리적 힘이 아니라 음악을 사용해 고비를 넘기는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마치 마법 같다. 실제로 고대인들은 신의 경지에 이른 최고의 음악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동물과 식물을 매료시키며 날씨마저 조종한다고 믿었다. (33쪽) 오르페우스 이야기가 아니어도 ‘노래’는 우리 마음을 따스하게 달래거나 포근히 감싸 준다고 느낍니다. 풀이나 나무한테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주면 참말로 풀이나 나무도 잘 자란다고 과학 연구로도 나와요. 시끄러운 소리를 늘 들어야 하는 풀이나 나무는 잘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일찍 시들어 죽기까지 한다지요. 그러니 아주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지어서 부르거나 들려주는 노래는 ‘사람 마음을 움직일’ 뿐 아니라 ‘신까지 움직일’ 만하리라 봅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물과 흙과 불은 신성한 것이라고 가르쳤으며,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를 물에 빠뜨리거나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우지 못하도록 했다. 시체로 인해 자연이 더럽혀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58쪽) 기독교 선교사들은 세계를 지배하는 로마 제국도 기독교를 믿었으니 당신들도 기독교를 믿으면 로마와 친구가 되어 뛰어난 문명이 주는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119쪽) 한겨레한테는 어떤 오랜 믿음이 있을까요? 한겨레한테도 마을마다 집집마다 오랜 믿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 오랜 믿음은 조선 사회 유교를 지나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몹시 짓밟힙니다.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퍼지면서 아예 뿌리까지 뽑히고요. 서낭도 장승도 지킴이도 모두 자취를 감추어요. 조로아스터교는 물과 흙과 불은 거룩하다고 가르쳤다는데, 종교라는 이름이나 옷을 입지 않은 수많은 겨레 수많은 사람들은 오랜 옛날부터 물도 흙도 불도 고이 아끼고 섬겼어요. 비를 섬기고 땅을 섬기며 하늘과 해를 섬겼어요. 종교라기보다는 ‘숲을 가꾸고 숲에서 살림을 지으며 숲에서 옷밥집을 얻는 동안’ 물이나 흙이나 불은 참말로 고이 아끼면서 섬길 수밖에 없지요. 리투아니아인들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처럼 신전을 만들지 않았다. 그 대신 깊은 숲속에 들어가 가장 크고 오래되어 보이는 나무 한 그루를 골라서 신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성스러운 도구로 삼았다. (175쪽) 아즈텍 신앙의 사제들은 지금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는 이미 네 번이나 멸망했다가 다시 재생되었으며, 현재 다섯 번째 세상도 머지않아 멸망하고 여섯 번째 세상이 새로 들어선다고 믿었다. (186쪽) 리투아니아사람은 ‘오래된 나무’를 거룩히 여겼다고 해요. 그러고 보면 한겨레도 옛날부터 오래된 나무를 거룩히 여겼습니다. 마을마다 ‘마을나무’가 있어요. 마을에는 ‘숲정이’라고 하는 자리를 알뜰히 돌보았습니다. 아마 인도네시아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버마에서도 필리핀에서도 ‘오래된 나무’ 한 그루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거룩한 숨결이 되어 살림을 지키거나 감싸 주는 구실을 했지 싶어요. 높은 봉우리도, 커다란 바위도, 우람한 골짜기와 폭포와 냇물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저마다 우리를 돌보거나 보듬는 숨결이라고 여겼지 싶어요. 옛 사람들은 사람의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이른바 언령言靈 신앙을 믿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도 그렇다. (238쪽) 테마우켈은 기본적으로 하늘의 신이지만, 언제든지 땅 위와 지하세계로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그는 인간들에게 자신이 내린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엄격하게 명령했다. (289쪽) 도현신 님이 쓴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만 수많은 종교를 살피면서 ‘종교라는 이름’에 깃든 오랜 살림과 이야기를 짚어 봅니다. 종교라는 이름을 넘어서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가꾸고 살림을 지으면서 마음자리를 정갈히 다스리도록 이끌던 넋이란 무엇인가를 건드리려 합니다. 다툼이나 싸움으로 일삼는 삶이 아닌, 스스로 즐겁게 누리려는 삶을 꿈꾸면서 조그맣게 믿음을 이루어요. 평화로우면서 사랑스러운 살림을 바라면서 이 바람을 하나둘 엮어 자그맣게 믿음이 태어나요. 사제나 예배당이 없이 얼마든지 아름답게 어깨동무를 하고 이야기를 누리던 옛사람들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책이나 경전이 아니어도 서로서로 마음으로 아끼고 섬기던 사람들이 빚은 고운 이야기를 헤아려 봅니다. 문득 돌아보면 ‘지도에서 사라진’ 것은 ‘종교’일는지 모르나, 우리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름다움과 꿈과 사랑이 새롭게 피어나면서 흐르리라 봅니다. 2016.8.27.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
|
잊혀지는 신앙과 사라진 신들의 역사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저: 도현신 출판사: 서해문집 | 출판일: 2016년 7월
리처드 도킨스나 크리스토퍼 히킨스와 같은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지만, 나는 무신론자다. 우리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우주에서 태어났다.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나는 우리 삶의 출생과 죽음의 바깥에는 오직 영원한 침묵만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이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은 거대한 두려움을 맞이한다. 삶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의미 있게 살아가야 되는 강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 혹은 사회적 맥락에서 신의 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거대한 악을 맞이한 듯 (혹은 중동에 암약하고 있고 IS를 생각하듯) 종교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어떠한 이유들로 인해서 인간 사회에 그러한 구조들이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중요한 의미도 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어본다면, 인간의 상상력에 기초한 사회체제의 토대 위에서 인간이 발전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동의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말하자면 신도 그러한 인간의 상상력에 기초한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냉전시대의 공산주의라든지 오늘날의 자본주의라든지 그 모습은 종교와 닮아 있다. 다만, 신이라는 존재가 사실상 교묘하게 구체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내전을 겪고 있는 중동에서처럼 자신의 목숨을 걱정할 필요는 없으니까. 다만, 나는 오늘날 교묘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며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이러한 광신적 종교의 일면을 우리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데 아쉬움이 있다. '자유주의 수호'라는 낡은 구호 (혹은 비슷한 구호들) 속에서 어느덧 독재자는 우상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절대적 존재인 신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신이 결국은 자신을 추종하는 집단의 믿음이 없으면 절대로 존재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그러한 자취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편은 여러 곳에서 그리고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믿음을 쟁취한 종교에서조차 그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종교는 어느 역사공동체의 유래를 따라갈 수도 있고, 대초원을 건너 뿌리내릴 수도 있다. 어느 것이든 우리는 신이라는 존재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는 개연성을 항상 가지고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 책이 심각한 것은 아니다. 오해는 말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비교적 괜찮은 교양서이다. 이런 부류의 책은 잘 읽으면 보다 더 깊은 곳까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다.그리고 그 중에서는 보다 복잡한 사유에 맞부딪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심각할 필요는 없다. 조금 너그럽게 생각이 다른 사람이 많다는 사실만 깨닫는다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