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여러번 나는 혼란스럽다. 처음부터 <행복이란 무엇일까?>란 화두를 제시하면서 매우 철학적인 접근을 시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처음부터 어려운 질문을 접하게 되니 내게 너무 버거운 책은 아닌가 하는 기우를 하게 된다. 릭이란 이 사람. 도대체 어디에서 행복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 새하얀 방바닥. 자신을 하늘과 갈라놓은 쇠창살 저 너머. (정신병원?) 이런 추측을 난무하게 했던 문장을 읽다가 엄마 구엔디가 늑대개라니. 그렇다면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릭이 늑대개라는 얘기인가? 내가 정신병원으로 생각했던 곳은 개를 사육하는 곳인가? 별 상상을 다하며 읽고 있다. 하지만 릭이 늑대개를 엄마로 두게 된 사연을 읽게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을 때, 가끔 동물이 키우다 발견된 아이들의 이야기인가 하는 그런 틀 속에 나를 가두는 오류를 또 범하게 되었다. 어떤 때 보면 사고라는 것이 오히려 나를 제약하게 된다.
릭은 인간들의 욕심때문에 엄마가 죽임을 당하고, 자신이 속했던 마법의 원에 인간들이 발을 들여놓음으로써 자신의 행복이 깨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마법의 원이 사라짐도 동시에 엄마 구엔디도, 우르술라도, 그와 함께 자란 다른 친구들도 더 이상 곁에 있지 않게 되었다. 릭은 이제 무엇이 행복인지 알게 되었다. 그의 지난 시절이 바로 행복이었다. 행복은 아침마다 아무 걱정 없이 눈뜨는 것이라는 걸...
야생에서 키워졌던 릭은 트레폰조에게 입양이 되었다. 트레폰조는 '깨끗한 세상'이란 비전을 내세우며 마법의 원을 없애는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하지만 트레폰조의 배후에는 몰로사 팔라치치아가 있었다. 이들은 '깨끗하고 순종하는 세상. 가득 찬 배와 텅 빈 머리'라는 모토를 내세웠고, 푸르름이 있는 모든 지역을 초대형 슈퍼마켓으로 만들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마법의 원을 파괴한 것이다. 초대형 슈퍼마켓을 지어야 할 자리에 더 이상 푸르른 녹지는 필요없다. 인간의 물질적인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자연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였다. 또한 다음 세대의 소비자인 어린이들에게도 텔레비전을 통한 무차별적인 공격은 아이들의 눈까지 네모나게 만드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삶을 살고 있는 릭은 혼자 덩그라니 버려진 것일까? 아니다. 고양이 도도 아줌마와 텔레비전을 혐오하는 치폴리니 아줌마가 있다. 트레폰조와 팔라치치아가 릭과 치폴리니 아줌마를 싫어하는 것만큼 팔라치치아 일당에게 릭과 치폴리니는 적이고, 유일한 희망이다.
무섭다. 가상 현실을 보는 것도 같고,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영화 속 세상을 보는 듯도 하다. 무념 무상의 세상을 꿈꾸는 악당들과 이를 극복하려는 릭의 대립의 구도가 극적으로 치닫는다. 물질 만능주의에 빠진 인간에 대한 경고는 아닐까? 점점 더 이기적으로 변해가는 인간성을 꼬집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릭이 승리한다. 아무리 다수의 인간이 트레폰조와 팔라치치아에게 조종을 당해도 인간에게는 인간이 희망이라는 메세지를 던져주는 듯하다.
릭이 처음에 화두처럼 내게 던진 <행복이란 무엇일까?>. 나에게도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
|
비록 모든 것이 끝날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의 마법의 원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마치 아름다운 꿈속을 거니는 듯 환상적인 분위기가 현실을 초월하게 만든다. 큰 도시 공원 안에 있는 숲은 마법의 원이다. 이 곳에서 한때 사람의 아이였지만 지금은 늑대의 아이로 키워진 릭은 엄마 늑대 구엔디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침팬지 우루술라라는 친구도 있고 왜 라는 질문을 수 없이 해 대는 릭은 소원이 있는 곳에 떨어지는 별이 만들어 낸 마법의 원안에 있었기에 한 마리 침팬지와 벌거숭이 아이를 벗어나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숲이 위험하다고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게 되고 공원을 정리하고자 하는 데 앞장 서는 트리폰조를 따라 공원을 없애버린다. 나무를 없애고 꽃을 태우자! 지저귀는 새 소리의 쓸데없는 소음 때문에 잠을 깨는 것이 지긋 지긋하다고 인간만이 유일한 세상의 지배자라고 하는 그의 말에 열광하는 시민들과 숲속으로 들어 와 구엔디를 쏘고 릭을 가둔다. 행복이 뭔가요? 이제는 행복이 무언지 알게 된 릭은 자신이 엄마 늑대와 함께 마법의 원안에서 지낼 때 가장 행복했음을 뒤늦게 알게 된다. 깨끗하고 순종하는 세상과 가득 찬 배와 텅 빈 머리를 사람들이 가져야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기에 지배자인 팔라치치아와 그의 심복 트리폰조는 사람들의 꿈을 없애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 볼 수 있는 아이들을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텅 빈 머리로 가득하게 만들려 하는 것이다. TV 속 세상에 빠져 현실을 분간 할 수 없게 만들고 먹고 마시는 광고와 만화 퀴즈 등만을 아이들이 보게 만들고 뛰어 놀고 생각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그래도 세상엔 희망이 있는 법! 아직까지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악취나는 꽃과 나무와 동물을 좋아하는 치폴로니 여사가 있었다. 고양이 도도의 도움으로 그녀를 만나게 된 릭은 여사의 도움으로 개로 분장하여 숨는다. 자신을 늑대로 소개하는 릭이지만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본 여사는 릭을 사람의 아이만 눈물을 흘리는 법이라 이야기한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없애려 하는 팔라치치아 일당에 맞서 계획을 짜고 행진하는 아이들을 따라 그 속에 들어 간 릭은 거대한 성에 들어간다. 여느 아이들과 달리 갖고 싶은 게 하나도 없다고 대답하여 그들에게 잡힌 릭은 예전 마법의 원에서 동거 동락하던 우루술라에 의해 구출된다. 팔라치치아 일당은 자신이 짜 놓은 덫에 스스로 걸려 코끼리의 독가스를 맞고 폭발되는 최후를 맞게 된다. 이제 세상은 변했다. 창가마다 꽃들이 놓여 있고 사람들은 초대형 슈퍼마켓의 벽을 허물고 나무와 꽃을 심는다. 공원의 따스한 바람 속에서 나는 꽃향기와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리는 이제 릭이 살던 마법의 원에서 살 때 나던 냄새와 소리를 풍기고 있다. 비록 모든 것이 끝날지라도 사랑하는 이들의 마법의 원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엄마 늑대 구엔디의 말처럼 사랑하는 릭에겐 칩숙모가 생겼고 우루술라 말처럼 세상은 동그란 원이기에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고 끝이 있는 것이다. 환상적인 동화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하는 릭의 순수함이 자연이 주는 평화와 안식을 느끼게 한다. 아이들의 창의력을 망치는 TV의 해악이 이 동화에서도 잘 나와 있다. 아이들이 게임이나 TV 시청보다는 자연 속에서 몸으로 뛰어놀며 소통하며 진정한 아이들만의 세계 속에서 자라났으면 좋겠다. 릭과 마법의 원으로 둘러싸인 숲이 한동안 더운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
|
마법의 원은 ‘빌라 조이오자(*‘즐거운 마을’이라는 뜻)’ 라는 공원 안에 있는 숲이다. 그곳은 이상적인 세계다. 바꾸어 말하자면 마음의 고향,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어느 날 트리폰조 시장이 이 마법의 원을 파괴해버린다. 그곳에 살던 늑대아이 릭은 트리폰조 일당에게 체포된다. 릭의 엄마는 늑대개 구엔디였다. 릭은 졸지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엄마를 잃게 되고, 지혜로운 침팬지인 우르술라와도 헤어지게 된다.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살던 릭은 몸은 인간이지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늑대처럼 행동하던 아이였다. 트리폰조 일당에게 잡혀있던 릭의 눈으로 본 세상은 기이하기만 했다. 어른들은 꿈을 잃고 맹목적으로 물질적인 것만 탐했고, 그들을 세뇌시키는 모토는 ‘깨끗하고 순종하는 세상, 가득 찬 배와 텅 빈 머리’였다. 아이들은 텔레비전과 과자와 장난감만을 찾으며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눈은 네모난 텔레비전을 닮아가고 있었다. 트리폰조 일당을 조종하는 것은 물로사 포르켓자 팔라치치아였다. 물로사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등장하는 ‘대형’과 같은 존재이다. ‘물로사’나 ‘대형’은 우리 의식을 지배, 조정하는 두려운 존재이다. 이런 무시무시한 세계에서도 희망의 불씨는 남아있었다. 사람들이 로봇처럼 조종당하는 세상에서 물들지 않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치폴리니 아말리아 부인이다. 치폴리니 부인은 꽃과 채소와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다. 치폴리니 여사는 물질문명에 반대하는 자연주의자의 상징으로 보인다. 늑대아이 릭은 치폴리니 부인의 도움으로 물질문명에 물든 사람들과 아이들을 깨워서 제자리로 돌아오도록 돕는다. 소설 속의 상황을 현실에 대비시켜보면 더욱 의미심장해진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 여유로워졌지만 정신은 더욱 황폐해지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고 늘 다른 사람들 이야기만 하고 있다. 혹시 자기 자신만의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사람들은 더 좋은 집, 더 나은 성능의 차를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정신의 집은 너무나 허술하게 관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정작 정신의 집은 비 맞고 바람이 들이치는 상황인데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나만의 착각이기를 바라며 책장을 덮었다. 그리고 인류의 미래에 대해 잠시 무서운 상상을 해보았을 뿐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아직은 우리에게 희망이 훨씬 더 많다는 근거 없는 낙관에 표를 던졌다. 요즘 하늘이 유난히 맑다. 낮에는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때문에 내 눈빛까지 푸르게 물드는 것 같았고, 밤에는 밝은 달과 별빛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졌다. 내 근거 없는 낙관은 이런 아름다운 풍경에 바탕을 둔 것인지 모르겠다. |
|
참 상반되는 느낌, 감정으로 읽히는 책이다. 청소년 도서로 보자면 조금 어린 듯하고 어린이 도서로 보자면 약간 낯설 것 같고. 메시지가 무척 강하고 상상력이 극으로 치달아 약간 불편한 느낌도 있고, 현실은 이보다 더 무섭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고.
<마법의 원>이라는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자연과 인간성이 아직 살아 있고,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 등 생명 있는 것들의 유대가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개념이다. 어쩌면 지구상에 그런 곳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라는 통렬한 깨달음이 밀려오니, 그야말로 현실이 아닌 마법의 원으로 그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지목하는 좁은 의미의 마법의 원은 큰 도시의 공원 안에 있는 숲이다. 그곳에는 오랑우탄 우르술라가 있고, 늑대와 셰퍼드의 사이에서 태어난 늑대개 구엔디가 있고, 구엔디의 아들 릭이 있다. 그들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그 마법의 원 안으로 인간이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공간이었을 적에. 거기서 릭은 버려진 인간의 아이가 아니라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늑대개의 아들이다.
어느 날 트리폰조라고 하는 인물이 앞장서고, 사람들이 마법의 원을 파헤치러 나타난다. 구엔디의 죽음과 릭의 납치.
트리폰조 일당을 알고 보니 괴물 같은 팔라치치아를 중심으로 지구 전체를 비인간화하려는 악당 무리다. "깨끗하고 순종하는 세상, 가득 찬 배와 텅 빈 머리"가 그들의 테마송이다. 그들의 주무기는 텔레비전이다. 심지어 아이들은 눈이 텔레비전을 닮은 네모꼴로 바뀌고 그들에 의해 텔레비전으로 가득찬 방에 유인, 감금된다.
말하자면 자연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각종 첨단 매체에 의한 세뇌 및 인간성 상실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결국 릭과, 고양이 도도,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는 치폴로니 여사가 세상을 되돌리는 주역으로 활약한다. 코끼리의 방귀를 이용해 지구를 파괴하겠다는 저들의 아이디어를 거꾸로 이용하여 악의 무리를 물리치는 대역전극은 아이들이 신나 할 대목이다. 참 기발한 아이디어.
그런데, 솔직히 조금은 이야기의 흐름이 튀고, 과장스럽다. 코끼리의 등장이나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팔라치치아. 릭이 동물과 소통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순식간에 인간과 말이 통하는 것도 좀 개연성이 부족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트리폰조 일당에 대해 계속 배불뚝이라느니 하면서 생김새 자체가 역겹다는 식으로 서술하는 부분이다. 반대로 치폴리니 여사는 키가 크고 날씬한 몸이라고 되어 있다. (나 자신의 체형의 의식해서 하는 말이 아님) 생김새로 인물을 설명하는 것은 구태의연하거니와, 요즘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날씬하고 건강한 걸 생각하면 부당하게 여길 이들도 적잖을 듯.
또, 등장인물 중 고양이와 늑대, 오랑우탄 등은 이성과 언어가 있는 동물로 나오지만 그들의 먹이가 되는 물고기 등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도 좀 그렇다. 인간을 깡통 딸 줄 아는 특징만으로 이름 붙이는 것도 지나치게 시니컬하지 않나 싶었다.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이 두드러지지만,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조금 부족한 듯한 책. 그나저나 아이들 눈을 잘 살펴봐야겠다. 요즘 같아서는 그들의 눈이 네모꼴로 변할 날이 멀지 않은 듯하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