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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상호간의 Interacion이고 기억은 혼자만의 것이다. 그래서 기억이 더 중요하고 그래서 기억이 더 아름답다. 사랑의 기억이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 얼마나 영양가(?)가 있는 지를 따지는 것은 재미없다. 산다는 것은 필요한 것만을 택하고 필요없는 것을 버리는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아니니깐. 그런 인생이 남보기에 화려할 순 있겠지만.. 그건 무척 재미없는 삶이기 십상일거 같다. 내 생각엔..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은 그 사람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살찌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이 하나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라면 그런 것들은 길 그 자체와는 별 상관없이 주변에 나무며, 꽃이며, 바람이며 그런 애초에 의도하지 않은 보고 듣고 느낄 거리를 제공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산만함을 제공하지 않는 길은 제 아무리 포장이 잘 되고 가파르지 않은 곧은 길일지라도 너무 건조하거나 사람을 쉬이 지치게 만들거 같다.
소설의 구성 자체는 두 남자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를 그려내는 평이한 구도이지만, 작가 김연수는 이를 자신만의 재치로 평범함 이야기를 재치있게 풀어낸다. 누가 누구를 사랑하고, 누가 누구를 기만하는지는 별로 중요한 거 같지 않다. 젊은 날을 살다보면 흔히 주변에서 볼 수있는 타입(또는 자기 자신일수도 있는)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각각 '사랑'을 말한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사랑의 감정'을 보여준다. 그들의 사랑은 상호작용이라기 보다는 의식(감정)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사랑은 변한다. 대상이 변하던, 방법이 변하던 늘 변하기 마련이고 또 변해야 한다. 그건 대상이 되는 사람이 또 사랑을 하는 주체인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라는 질문은 '어쩌면 그럴 수 있니?' 라는 배신감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필연에 대한 안타까움이라고 보는게 맞을 거 같다. 상대방에 대한 배타적 집착과 사랑을 순수한 마음에서 혼동하는 광수도, 사랑은 선택이고 그 선택이 아픔을 동반하는 것을 슬퍼하는 선영도, 사랑을 순간의 느낌이며 또 도전의 대상이라 믿는 진우도 모두가 사랑이 변한다는 사실, 그러므로 상대방의 사랑도 변했고,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데 애를 먹고 있다. 그런 감정의 상태를 '방황'이라고 하는 걸까?
균형점을 찾을 수 없는 세사람의 사랑은 이야기의 흐름을 우울하고 통속적이게 만들 수도 있었는데 이를 가볍고,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낸 작자의 재간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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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태어난 시기와 문단에 나온 시기가 엇비슷하다고 해서 따라서 1. 광수 생각 :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조선일보 연재만화로 잘 알려진 <광수생각>에 자주 등장했던 어린 왕자풍의 청년처럼 『사랑이라니, 선영아』에 나오는 광수 역시 낭만적 사랑의 신봉자다. 옛날에 사귀었던 여자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친구 진우의 말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느냐고 메뜨게 반문할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낭만주의자들은 또한 쉽사리 질투심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고 그 질투심을 자분자분 말로 따지기보다는 좌충우돌의 행동으로 표출하는 경우가 많은데 광수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사소한 문제를 빌미 삼아 이제 자신의 아내가 된 선영의 옛 애인이기도 한 친구 진우에게 퍼붓는 쫀쫀한 광수의 욕설과 주먹질과 끈질긴 심문은 모두 질투심의 폭발인 셈이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질투란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면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13세기 사람 앙드레 샤플랭은 “질투하지 않는 자는 사랑할 수 없다”는 주장까지 했다. 자신들의 사랑을 충분히 확인한 사람들 중에는 급기야 질투로 사랑을 확인하려는 욕망을 느끼는 부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처음 만난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자기보다 잘생긴 사람을 만나서 질투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경우를 위해서는 시기심이라는 단어가 준비돼 있다. 그런 점에서 어휘력이 부족하면 세상사를 이해하는 데 상당한 곤란이 따른다. (116~117쪽) 이처럼 광수에게는 자신의 사랑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질투가 필요했던 것. 대부분의 낭만주의자들에게 있어 결혼이란 게임 종료를 몇 분 남겨두지 않은 축구 경기와 같은데, 광수는 이제 막 결혼을 한 처지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전ㆍ후반을 모두 뛰어서 숨을 헐떡거리고 있는 주전선수 ‘사랑’을 대신할 후보선수 ‘질투’의 투입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아, 낭만이란 그리고 사랑이란 얼마나 변질되기 쉬운 것인가! 친구 진우에게는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광수는 겨우내 골목길에 쌓여있다가 봄기운에 녹아버리는 눈처럼 결혼과 더불어 자신의 사랑이 녹아버리고 있음을 느낀다. 따라서 눈이 녹으면 그 하얀빛은 과연 어디로 가는지, 광수가 선영에게 물었을 때 그가 정작 묻고 싶었던 것은, 연애 시절에 우리가 나누었던 사랑이 결혼 후에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라는 질문이었을 터. 공항 수하물 수취대의 맨 앞 구멍처럼 ‘결혼’이라는 구멍은 작고 가볍고 매끈한 가방 대신에 언제나 크고 무겁고 흠집이 난 가방만을 토해내는 것이다. 어쩔 도리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낭만주의자는 체제순응적인 현실주의자로 쉽게 표변하게 된다. 낭만적이고 윤리적으로도 읽혀질 수 있는 ‘광수 생각’이 위험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2. 진우 생각 : 사랑이란 프리즘과 같은 것. 이처럼 낭만적 사랑이 환상이라는 것, 18세기 자본가들이 개인들을 평생임금노동자의 굴레에 묶어놓기 위해 발명한 이데올로기라는 것을, 자칭 ‘문학계의 “난 후일담 소설만 보면 형상기억 브래지어가 생각나. 세탁기에 돌리면 일반 브래지어가 좀 상하듯이 사회에 나가면 적당히 망가져야만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사람이 많거든. 졸라리 많아. 망가지는 게 정상인데, 자꾸 옛날의 기억으로 돌아가니까 이거 문제가 많은 거지. 자기 젖은 AA컵이 됐는데, 브래지어는 아직도 D컵뿐이니 그 빈자리가 얼마나 허전하겠냐? 그러니까 자꾸만 돈에 미치거나 과대망상에 빠지거나 잃어버린 세월을 돌려달라고 말하는 거지. 그 문제 해결하는 건 간단하거든. 새로 AA컵 사면 돼.” (106쪽) 자신의 말처럼 브래지어 컵 사이즈를 바꾸듯이 여러 여자들을 갈아치운 진우였건만, 선영의 결혼 소식을 듣는 순간 그는 자신이 한때 착용했던 D컵을 떠올리며 옛 애인 선영에게 다시 연정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의 감정은 사랑도, 질투도 아니었고 다만 장난기가 조금 섞여 있는 시기심이었을 뿐이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한때 내 것이었으나 그리 맛있어 보이지 않아서 차버리고 만 단호박이 이제 남의 차지가 된다고 하니 그걸 어떻게 해서든지 한 번 찔러 보려고 하는 심술궂은 마음보라고나 할까. 그런 마음을 품고 그는 광수 몰래 선영에게 작업을 건다. 마침내 자신의 원룸 침대에 선영을 눕히는데 성공한 진우는 선영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사랑해, 사랑해, 선영아, 사랑해.” 하지만 선영은 몇 해 전 한 여성 포털사이트의 광고 카피로 유명해진 이 달콤한 속삭임에 쉽사리 넘어가지 않는다. 선영은 “사랑이라니? 사랑이 다 뭐야, 지금? 니가 왜 나를 사랑해 ”라고 미심쩍어한다. 그런 선영에게, 진우는 대학 시절 그녀의 집 앞에서 술이 취해 ‘얄미운 사람’을 소리내어 불렀던 기억을 사랑의 증거물로 제시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건 그녀가 아니라 다른 여자의 이름이 찍혀 있는 사랑의 영수증이었다. 옛 애인과의 사랑을 증명할 기억의 영수증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던 진우는 엉뚱한 기억을 증거물로 제출했던 것이다. 진우의 작업은 실패하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선영과 광수의 결혼식장에서 또 한번 ‘얄미운 사람’을 소리내어 부르는 일뿐이었다. 3. 선영 생각 : 좋아하는 거는 좋아하는 거고 사랑하는 거는 사랑하는 거지. 선영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도, 신랑 친구이기도 한 진우의 유혹에 넘어갈 뻔했던 것은 한때 진우를 몹시 사랑했던 기억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열렬했던 진우에 대한 사랑은 이제 희미해져서 그저 우정으로만 남았지만 진우를 사랑했던 기억은 영수증처럼 뚜렷하게 선영의 마음에 간직되어 있었던 것. 기억이 아름다울까, 사랑이 아름다울까? 물론 기억이다. 기억이 더 오래가기 때문에 더 아름답다. 사랑은 두 사람이 필요하지만, 기억은 혼자라도 상관없다. 사랑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가 덧정을 쏟을 곳은 기억뿐이다. (……) 모든 게 끝나면 유통기한이 지난 식료품처럼 사랑했던 마음은 반품시켜야만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만은 영수증처럼 우리에게 남는다. 한때 우리가 뭔가를 소유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증거물. 질투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억이 없는 사람은 사랑했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다. (139~140쪽) 그러나 이미 지나간 사랑은 지나간 것이기에 선영은 다만 우정의 관계를 전제하고 진우와 다시 만났던 것이다. 선영의 입장에서는 진우는 그저 친구로서 좋아하는 거고, 지금 사랑하는 이는 광수가 있으니 광수 몰래 진우를 만난다고 해도 하등 문제될 게 없다고 자위한다. “좋아하는 거는 좋아하는 거고 사랑하는 거는 사랑하는 거지”라고 자신의 생각을 애써 합리화하는 선영의 이러한 입장은, 진우가 “선영아, 사랑해’ 라고 속삭이며 노골적인 섹스를 개입시키는 순간 그 말 속에 감추어 두었던 그녀의 진심을 드러내 보인다. 즉 사랑 없이 그저 쾌락으로서의 섹스는 그저 좋아하는 사이에라도 가능하겠으나 사랑을 전제로 한다면 오직 결혼한(또는 결혼할) 사람하고만 섹스가 가능하다는 것. 이러한 선영의 생각에는 사랑은 섹스와는 달리 깊은 책임감이 뒤따르는 행위이며 결혼은 사랑에 따르게 마련인 그러한 책임감의 궁극이라는 관점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섹스가 사랑보다 앞서기 마련인 남성들과는 달리 사랑을 섹스보다 앞세우는 여성들이 결혼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언제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때의 뜨거운 피를 만족시키는 섹스가 아니라 피가 모자라더라도 오래 지속되는 사랑인 것이다. 4. 작가 생각 : 사랑은 어른들의 학교다. 『사랑이라니, 선영아』에 연애 소설에 으레 따르기 마련인 노골적인 성애 장면이 전무한 것은 이 때문이다. 꽃에는 입술이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라고 말한다. 사랑에는 혀가 없지만 네가 누구인지 먼저 알아내라고 종용한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저마다 위대한 개인으로 자란다. 거울에 비친 그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까지 갈 수 있느냐는 미 우주항공국의 업무지만,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딸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주민등록번호를 통해 성인 인증을 거쳐야만 입학할 수 있는 성인들의 학교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낼 때까지 우리는 계속 낙제할 수밖에 없다. 죽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할 테니, 결국 우리가 그 학교에서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91~92쪽) 우리는 사랑을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확인하게 된다는 것, 따라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앞서서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는 것, 사랑의 깊이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사랑의 깊이에 다름 아니라는 것, 따라서 사랑은 우리가 스스로를 궁금해하는 나이인 어른이 되면 누구나 입학하는 학교라는 것, 하지만 누구나 쉽게 입학하는 학교이지만 졸업하기란 참으로 어렵다는 것, 그래서 평생을 두고 노력해도 그 학교를 졸업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결국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이외에도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어나가다 보면 절묘한 비유와 상상력으로 포착해낸 사랑에 대한 수많은 에피그램들과 만나게 된다. 보석처럼 빛나는 그 글들을 읽고 있노라면, 알랭 드 보통이 자신의 출세작인 연애소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 펼쳐놓고 있는 재기발랄한 사랑론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5. 독자 생각 : 삶은 사랑의 준말이고 사랑은 삶의 꽃말이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사랑론이 진실임을 믿는다. 그리고 이제 위 문장에서 누가 ‘사랑’을 ‘사람’으로 바꾸어 읽더라도 그게 오독이 아니라 역시 진실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인데, 그건 순전히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으면서 마주친 다음 구절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자신의 사랑과 삶을 한 송이 꽃으로 꽃피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걸 납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시방 위험한 짐승들’이 아닌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그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지만, 그 수많은 사람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큰 존재다. 예컨대 1천 송이의 꽃이 있다고 치자. 한 송이 꽃은 1천 송이 중 하나의 꽃에 지나지 않지만, 그 한 송이 꽃이 없다면 999송이의 꽃은 존재할지언정 1천 송이의 꽃은 존재할 수 없는 법이다. 사랑을 한다는 건 그 한 송이 꽃을 통해 1천 송이의 꽃을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통해 자신도 1천 송이의 꽃이 되는 한 송이 꽃이라는 사실을 납득하는 일이다. (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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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 뼛속 시리게 추운 나날. 따끈한 국물을 그리워하며 성석제 님의 <칼과 황홀>에 풍덩 빠져있다. 그러다 문득 드는 생각. '2011년을 마무리하는 나름의 독서를 해보자'. 주저 없이 김연수 님의 소설들을 떠올렸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읽은 터에, 그나마 가장 무난했고, 따뜻했던 두 권의 책을 골랐다. 그 중 하나가 <사랑이라니, 선영아>다.
어쩌면 김연수 님의 소설 중 가장 잘난 체 하는, 그러면서도 재미가 철철 넘친다. 작가의 말대로 팬들을 위한 나름의 헌정 소설 같은 것인데,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두 남자의 이야기. 일단 사랑에 관한 소설에서 삼각관계란 설정이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아닐까? 2006년 안정된 직장 생활에 한껏 기쁨을 누리던 시기에 이 책을 만났었다. 물론 지금의 아내와 목하 연애 중이었지만, 여전히 '사랑'에 대한 약간의 희구와 회의는 갖고 있었다.
2011년 12월. 6년의 결혼생활 속에서 첫째 딸은 5살, 뱃속 달콩이는 이제 4달 후 세상을 보게 된다. 직장생활의 쳇바퀴속을 내내 돌다가 잠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지금. '사랑'에 대한 희구는 옅어졌고, 회의는 한없이 깊어만 간다. 이 소설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그리 다를 것 없지만, 확실한 건 내게 사랑은 사치란 것. 남녀 간의 사랑은 이해불가이지만 그리 신비롭지 않다는 것. 별로 궁금하지도, 해보고 싶지도,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는 것.
이렇게 단언해버리니 더이상 이야기하기가 주저된다. 그럼에도 김연수의 소품같은 이 소설은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언어 유희라기보다 나름의 문체를 재정립하기 위한 노력이 보인달까? 한 페이지에 한 두개 이상은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한다. 또한 구성 자체가 단촐하다.
광수와 진우, 광수의 아내 선영. 셋의 삼각관계. 딱히 삼각관계랄 것도 없다. 셋은 대학 동기고, 진우와 선영이 CC였으나, 세월이 흘러 선영은 광수의 아내가 됐다는 것. 내 주위를 보더라도 새삼스러울 것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유부남이 되면 갑자기 자신을 둘러싼 중력이 여섯 배나 강해진다는 사실에 멍멍해진다.'-P18
'미혼녀에서 유부녀로 바뀌는 건, 뭐랄까 호두를 깨무는 일과 비슷하다. 애당초 허기진 배를 채우겠다고 깨문 게 아니다. 왜 먹지 않고 놔두느냐는 주위의 채근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게 먹을 게 없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볼썽사나운 껍질뿐만 아니라 초라한 알갱이까지 갈부수고 난 뒤에야 차라리 막연하게 상상하던 때가 더 좋았다는 걸 알게 된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미혼녀와 유부녀, 그 사이에는 무중력 공간의 활홀감 따위는 없다. 그저 혼자 빗자루를 들고 정리해야 할 부서진 감정의 껍질나부랭이들만 파몰아칠 뿐이다.' -P20~21
유부남, 유부녀가 되는 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소심한 광수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뇌리를 떠나지 않는 부러진 부케의 꽃대, 결혼축가로 '얄미운 사랑'을 불러제낀 진우의 만행, 점점 불안해지는 진우와 선영의 관계에 그는 잠 못든다. 이 소설은 두 사나이의 사뭇 다른 사랑론을 대면시킨다.
광수는 낭만적 사랑론자다. 나를 먼저 상대에게 내보이고, 상대를 속속 이해하는 것을 사랑의 단계로 이해한다. 반면 진우는 그저그런 소설가다. 매번 소설에서 첫 만남에 눈 맞은 남녀가 여관방을 뒹구는 그런, 즉흥적인 사랑을 예찬한다. 하여 마지막에 선영이 '사랑'에 대해 이야기를 꺼낼 때, '사랑이라니 선영아'라 울부짖는다. 그에게 사랑은 하룻밤 엔조이하고 싶은 상대의 귓전에 애무하듯 흘리는 신음의 다름 아니다. 그런 그들이 선영을 놓고 이야기를 하니...
사랑이 입을 열면, 그 안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한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이다. 사랑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됐다면 거기서 멈춰야만 한다.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즉 너무 알려고 하지 말아야만 한다. 너무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의 정체성마저 요구하는 일이다. 그건 무방비 도시의 어둠 속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너무 무리한 요구다. 현대적인 사랑의 방식이란 우리가 절대로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혹은 '어쩌면'으로 시작되는 문장의 본뜻이 'You never know'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일이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걸 모르면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갈 수는 없다. 누구도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P120~121
'너무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란 결론. 김연수가 자주 꺼내는 말이다. 어쩌면 김연수의 분신이라 할 진우가 광수에게 하는 말이다. 자기애에 넘치도록 빠져있는 진우에게 쫀쫀한 광수가 건네는 말일 수도 있다. 결론은 이렇다. 졸지에 두 남자의 중심에 선 '선영'은 자기애에 빠진 시시껄렁한 소설가보다 쪼잔하지만 자신을 내보이며 관심을 기울이는 광수를 택했다는 거다. 그들이 유부남, 유부녀가 되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르겠지만, '연애의 목적은 결혼이다'란 나름의 결론에 동의한 커플이다.
한편 후일담소설에서 형상 기억 브래지어를 언급했던 진우. 결혼 후 줄어든 찌찌에 B컵 브래지어가 크다고 뽕을 넣을 게 아니라 줄어든 만큼 A컵으로 입으면 된다는... 시시각각 닥치는 감정에 따라 충실해야 함을 역설한다. 결국 광수를 택한 선영에게 하룻밤 같이 자자고 보채며, 사랑을 남발한다. 결국 사랑한다는 진우의 말에 돌아서버린 선영. 느닷없이 광수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뜨악하는 광수, '사랑이라니 선영아'라며 그녀를 품에 안는다.
몇 번이나 웃음이 차고 넘쳐 책읽기가 쉽지 않았다. 노래방에서의 두 사람의 말싸움은 단연 압권이다. 다짜고짜 '너 선영이랑 잤지?'란 물음만 반복하는 광수와 발뺌하는 진우. 그 사이를 채우는 '얄미운 사람'과 '양산도'의 절묘한 가사 오버랩.
간만에 유쾌하게 소설을 읽었다. 도처에 현학적 수사들이 넘치지만, 김연수의 능청에 그마저도 재미로 재탄생한다. 당시 유행하던 유행가와 영화 제목이 불쑥 불쑥 끼어들며 잔재미를 선사한다. 외려 알랭 드 보통의 사랑론보다 훨씬 재밌고, 직접적이며, 색다른 맛이 있다. 이미 내겐 너무나 먼 사랑 이야기일 뿐이지만, 그래서 별로 궁금하지도, 신비롭지도 않은 그저그런 이야기지만, 적어도 회의보다는 재미 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되었다. 사랑은 재미로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것을 할 수 없는 못난이들에겐 질투하면서 지켜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사랑이라니 선영아> 불쑥 외치고 싶다. 사랑일수도... 그러니까 선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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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이 작가의 이름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또, 기억에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다 보면 어쩌면 내가 그의 책을 한 권쯤은 읽었을지도 모른다. 뭔가.. 읽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희미함.. 그 희미함을 <사랑이라니, 선영아>는 아예 뿌옇게 만들어버렸다. 내가 그의 책을 읽기는 읽었던가? 낯설다.. 울 언니와 동년배인 그의 2003년 작품을 나는 핸펀 속 국어사전을 수시로 찾아가며 읽었다. 2003년도에도 나는 책을 좀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그가 뱉어내는 단어들은 하나같이 낯설어 진땀 흘리며 사전을 뒤지고 메모도 하면서 마치 고전을 읽듯이 그렇게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읽어냈다.
혹여, 먼훗날.. 한여름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시원함이 아닌 추위를 느끼며 눈물을 뚝뚝 떨구게 했던 그애가 만약 만약에라도.. 내게 그때는 사랑했노라.. 그리고 지금도 사랑하노라..라며 나를 안는다면 나는 어떨려나? 선영과 같은 반응이려나? 아님.. 피식 웃어넘기려나? 또 아님.. 멍해지려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뭐라 말할 순 없지만.. 어쩌면 난.. 그 녀석을 좀 패주고 싶을 것 같다. 뭐.. 그때도 그랬지만, 가끔씩 그 녀석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나 이런 저런 것들이 생각나면.. 다음에 만나게 되면 술 좀 먹여서 티 안나게 좀 패줘야지..하곤 했다. ㅋ 어헐~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도 넘은 이야길세.. 세월 참~ 빠르다. 참 빨라~. 나는 여전히 그대로인데, 세상과 시간만 가는 것 같으네.. 어헐~^;;;
p.15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지며 학 그림과 500이라는 숫자 중 하나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을 한꺼번에 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들 단 하나 뿐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진눈깨비가 비인지 눈인지 판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복채를 내놓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만 한다.
p.64 처음에는 두 사람이 함께 빠져들었지만, 모든 게 끝나고 나면 각자 혼자 힘으로 빠져나와야 하는 것. 그 구지구레한 과정을 통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뼛속 깊이 알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사랑이다.
p.87 "사랑해", 그 대담한 말을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간단하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먼저 누구인지 보여주겠다. 이번에는 네가 너를 보여줄 차례다. 그래서 "사랑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기꺼이 자신을 드러내거나 못 들은 걸로 치거나. 못 들은 걸로 치겠다, 그건 '나한테 네가 누구인지 설명하지 마라. 우리 사이는 사회적인 관계이다'라는 뜻이다.
p.157 아이들은 자라나 어른이 된다지만, 어른들은 자라나 무엇이 될까?
p.171 걸어가면서 진우는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선창리 지심도에 피어날 동백과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섬진리 매화마을에 피어날 매화와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명 위안리 상위마을에 피어날 산수유를 차례로 생각했다. 진우에게 봄은 그 순서대로 찾아왔다. 진우는 과연 봄이 어디까지 온 것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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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는 13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했던 선영이와 결혼을 하게 된다. 광수에게는 대학 동기 소설가 진우가 있고, 진우와 선영은 대학시절 서로 사귀었던 적이 있다. 결혼식 하기 직전 신부 대기실에서 진우가 선영에게 불러주었던 노래 '얄미운 사람'과 그 노래에 대해 히스테리를 부르는 선영의 모습, 부케를 던지는 순간 부케 윗 단의 꽃 팔레노프시스가 꺽여진 모습을 본 광수에 마음에 의심과 질투의 마음이 커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흔들리기 시작한 이유가 모두 팔레노프시스라고 생각한 광수! 의심에 대한 마음으로 진우에게 전화를 하고, 셋의 사랑에 엇갈린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독특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 한다.
선영과 함께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를 따지는 광수의 머리속의 그 사이의 과정은 중요하지 않고, 선영과 함께 밤을 보냈지만 관계를 맺지 않은 진우는 자기의 합리화를 위해 지나온 과정 중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으로 기억을 재구성한다. 진우와 함께 보냈던 길을 거닐며 옛 추억에 잠기었던 선영 역시, 그 이야기는 다 사라지고, 광수에게는 사랑한다는 이야기만을 되뇌인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유행어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와 그 당시 유행하던 옥동자 유머의 패러디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 장난척 하기는"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사랑해 선영아" 티저 광고 패러디 등 그 당신의 대중과 호흡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 때 유행하던 이야기가 다 식어버릴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읽었지만, 책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련한 추억과 함께, 엇갈리는 그들의 행보와 사건의 전개를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지만, 결국 서로의 속마음을 언제나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의 한계이자 매력이라 생각한다. 중요한 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식장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라는 광수의 말에 진우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모든 건 너한테 달린 문제야. 네가 알고 싶다면 내가 그때 선영이에게 뭐라고 말했는지 말해줄 수 있어. 하지만 진실을 다 알고 난 뒤에는 니 생각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책임져야만 하는 일도 생길 거야. 나는 세상만사의 진실을 샅샅이 알아낸다고 해서 더 나아지는 건 없다고 생각해. 그러나 니가 정 원한다면 말해줄 수는 있어. 얘기해줄까?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까?"
내가 광수였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라는 고민과 함께, 사랑과 기억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현재의 나에게 끼치는 영향, 기억의 불안전성의 한계를 알고 있는 우리는 사랑을 기억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사랑을 기억하고 자신의 신념에 사랑을 꿰어 맞추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과 기억에 관한 독특한 작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진지하려면 얼마든지 깊어질 수 있는 소설! 그게 김연수만의 매력이자, 특징인 것 같다. 쉽게 소설을 쓰지 않는다는 느낌을 책을 읽는 내내 잔뜩 느끼게 해주는 작가, 김연수! 2009년 출간 될 그의 또다른 사랑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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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지금 당신이 한때 사랑했던 한 여자를 영영 다른 남자의 품으로 떠나보내게 된 것이라면 진눈깨비는 당신의 뜨거운 한 줄기 눈물을 가리려고 하늘이 찔끔거리는, 강파른 빗줄기랄 수 있겠다. 하지만 오랫동안 시난고난 혼자서만 사랑해왔던 한 여자와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라면 그건 '그 후로도 행복한' 삶을 예고하는 서설일 수밖에 없다. 오백 원짜리 동전을 던지면 학 그림과 500이라는 숫자 중 하나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둘을 한꺼번에 볼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들 단 하나뿐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지, 다른 누군가의 삶을 살아가는 게 아니다. 진눈깨비가 비인지 눈인지 판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에게 복채를 내놓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만 한다. (pp.15-6) 팬이건만, 읽은 책이라고는 에세이집 몇 권과 소설 몇 권(그것도 최근작으로만)이 전부인 게 민망해 도서관에서 김연수 작가의 코너를 찾아 그 중 가장 얇고 깨끗한 책을 빌렸다(이 책 말고 도서관에 있는 김연수 작가 책들은 죄다 낡아서 다음부터는 다 사서 읽을 생각이다). 주말에 읽으려고 보니 주인공 세 사람 중 한 명의 이름이 내 이름과 같았다(성은 다르다). 나와 같은 이름의 주인공이 나오는 소설을 읽은 건 이번이 두번째인데, 첫번째는 친구가 알려준 유명한 BL 소설이었고 두번째가 이 소설이다. (전공, 직업 등등) 작가님과 가장 닮은 인물의 이름으로 정하신 걸 보면 이 이름이 마음에 드셨던 거겠지(라는 건 나의 팬심?)? 각설하고, 소설은 대학 영문과 동기인 선영과 광수의 결혼식 장면에서 시작된다. 선영을 십삼 년 동안 짝사랑한 끝에 어렵게 신부로 맞이했으니 싱글벙글 즐거워할 법도 한데, 광수는 결혼식 내내 사소한 것 하나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것은 바로 선영의 부케 속 꺾인 꽃 한 송이. 그 꽃을 보는 순간 광수는 찝찝하기 그지없는 사실 하나를 떠올린다. 같은 대학 동기이자 오랜 친구인 진우가 선영과 한때 사귀는 사이였고, 어쩌면 두 사람은 아직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말이다. 큰 틀은 세 사람의 어긋난 삼각관계를 그린 연애 소설이지만, 읽고 나니 연애 말고도 많은 것들이 떠오른다. 그 중 하나는 '기억'이다. 목격자들이 같은 장면을 보고도 다른 증언을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기억은 결코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두 남자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억에 매달린다. 광수는 어렵게 손에 넣은 사랑의 진실을 알기 위해, 진우는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사랑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밝혀진 진실 역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다. 기억이라는 녀석은 버릇을 고치기가 영 어려운 장난꾸러기라서 어렵게 밝혀진 진실 또한 현재의 감정과 관점과 관계로 인해 왜곡되기 쉽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고 믿었)건만 서로 다른 기억을 안고 살게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영원히 하나일 것라는 착각에 사로잡힌 연인들에게 있어 가혹한 일일 터. 한때나마 그런 착각에 빠져 있었던 내가 한심하고, 그런데도 계속 착각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마음이 무섭다. '선영아 사랑해', '광수생각' 등 90년대 후반의 대중문화를 충실히 반영한 점도 재미있다. 그러고보면 요즘 인기인 <응답하라> 시리즈의 또다른 버전같은 느낌도 든다(물론 이 소설이 더 먼저 나왔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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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에게 있어 이 짧은 소설은 특별하다. 계획에 따르면 올해 그는 대단히 골치 아프고 복잡하고 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다녀야만 했는데, 그 일을 시작하는 게 여간 겁나지 않았다. 숙제를 미루는 학생처럼 나는 자꾸만 미적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겁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쉬었다 가는 기분으로 이 소설을 썼다.
나 역시 잠깐 쉬었다 가는 기분으로 이 소설을 읽었다. 책을 빨리 읽는 나는, 이 책을 2시간(담배피는 시간까지 포함하여)만에 헤치워버렸다.
쉽게 읽을 수 있고, 쉽게 쓴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쉽게 다룰 수 없는 주제다.
작가는 통속적인 연애소설에 '사랑'이라는 자신의 주관을 담았다. 결혼을 한 광수와 선영, 그리고 진우의 관계. 누가 봐도 뻔한 전개, 결말이었다.
소설속에서 광수는 쫀쫀한 질투의 화신이다. 소설속의 표현을 빌려, 그건 아름다운 여자를 자신만이 소유했다고 믿는 모든 남자들이 두둑한 지갑과 함께 늘 지니고 다녀야만 하는 감정인, 질투심 때문이다.
선영이는 좋아하는 감정과, 사랑이라는 감정을 구분하는 여자다. 사랑을 믿기도 하고, 적당히 저버리기도 하고, 아무튼 현실적으로 돌아오는 그런 여자다.
진우는 개새끼다. 처음에는 사랑이 18세기의 낭만주의 산물이려니 어쩌느니 궤변을 늘어놓다가, 선영이와 하룻밤 자기 위해 13년동안 하지않았던 '사랑해'라는 말을 내뱉는다.
작가는 말한다. 거울에 비친 위대한 개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향해 단호한 어조로 "사랑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스스로 대답할 문제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자신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느냐, 혹은 우리가 얼마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느냐에 달린 문제다. 사랑은 우리의 평생교육기관이다.
또 작가는 말한다. 일단 온 존재가 완전히 비워지면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다. 사랑은 '나'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사랑에 빠졌을 때, '나'는 질투로 몸이 달아 자살을 떠올리는 심약한 청년이 되기도 하고 어떤 투정이라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너그러운 성자가 되기도 하고 청소차가 지나가는 새벽 거리를 비스듬히 누워서 바라보는 폐인이 되기도 한다.
질투란 숙주가 필요한 바이러스와 비슷하다. 즉, 즐티루나 독립적인 감정이 아니라 사랑에 딸린 감정이다. 주전선수가 아니라 후보선수라 사랑이 갈 때까지 가서 숨을 헐떡거리며 질투가 교체선수로 투입된다. 질투가 없다면 경기는 거기서 끝나버릴 지도 모른다.
진우의 사랑에 대한 궤변도 들어보자. "18세기에 낭만적 사랑이 발명되기 전까지는 뛰는 가슴으로 만나 일부일처제 가정을 꾸려,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는 없었다는 뜻이지. 두 연인이 일부일처제 가정을 꾸려 그 후로도 행복하게 살아갈 때, 낭만적 사랑은 최고의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사람들은 믿잖아. 그런데 이게 다 환상이란 말이야. 음모란 말이야. 사실은 18세기 자본가들이 발명한 사랑이란 말이야. 낭만적 사랑의 공식, 낭만적 사랑의 표준 규격이 그때 다 발명됐단 말이야. 왜 그랬겠니?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안 그러면 인간들이 노동을 안하니까."
이말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있을테고,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을거다.
처음 나는 진우의 말을 듣고, 이섀끼 사랑에 대해 개념이 있는 아이구나, 착각했으나, 결혼을 앞둔 선영의 브래지어를 푸르며 "사랑해, 13년전부터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해"를 외치는 방정맞은 입에 그의 얼굴이 그려졌다. 입끝, 손끝, 자X끝을 조심하라는 어떤 현인의 말도 떠올랐다.
그렇다. 이 소설은 가볍고, 쉽게 쓰였고, 쉽게 읽힌다. 이만교 작가님의 <결혼은, 미친짓이다> 정도의 고뇌도 없고, 사랑에 대한 고민도, 결혼에 대한 고민도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책에는 적어도 한 구절 이상의 깨우침이 있다고 믿는다. 또한 책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다보면, 쓰레기 같은 책도 고전이 될 수 있다. 책을 통해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고전도 곧 쓰레기가 된다.
대학의 길고 긴 겨울방학. 나는 이 기나긴 방학의 반을 독서에 투자하려 한다. 도서관에서 세 권의 책을 읽고있는 내내 나는 고요했고, 행복했다. 그리고 나의 여러가지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책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 남녀간의 사랑엔 끝이 있다고들 하지만, 책에 대한 나의 사랑은 끝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08/12/23 락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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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가볍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내용이 너무 가벼워서 나한테는 별로였다는 지인의 이야기. 그래서 생각했어요. 김연수 작가님의 글이 어려운 것들도 많으니까 이건 좀 쉬운건가보다 하고. 그런데, 사랑이 쉬울 수가 있나요. 아무리 고민하고 생각해 봐도 답이 안 나오는 게 사랑이지요. 너무나 본질적이고 흔하지만 어느 하나 명확히 모르고 따라가는 그것. 그 사랑에 대한 김연수 작가님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 두 명의 남자, 광수와 진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명의 여자, 선영이 있지요. 광수는 선영과 결혼합니다. 결혼 전 선영과 진우는 애인사이였지요. 셋의 관계 구조를 기본으로 서로에게 느끼는 생각들, 감정들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질투가 어쩌면 사랑의 본질일지도 모르겠어요. 왠지 큰 관심 없다가도 남이 가진다고 하면 배가 살살 아파오는 게 인간인가봐요. 그래서 그런지 결혼한다는 소식에 진우는 다시 선영과 잘해보려 합니다. 광수는 광수대로 진우와 선영의 감정이 무엇인지 괴로워합니다. 이 이야기 틈틈 작가님의 생각이 들어있습니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
인물을 통해서 이야기 한다기보다 작가님은 직접 이야기 해주고 있어요. 그렇지, 이런게 사랑이지 하면서 듣다보면 소설은 끝이 납니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감정일지 조금은 이해 되는거 보니, 저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봅니다.
사랑에 빠졌을 때 ' 청소차가 지나가는 새벽 거리를 비스듬히 누워서 바라보는 폐인'이 되기도 한다는 말, 너무 좋았어요. 너무 공감됐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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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에 아주 살짝, 발가락을 담글 정도의 관심만 가져도 심심찮게 <김연수>라는 이름을 들을 수 있는 요즘이죠. "김연수가 요즘 난리라며?" "쓰면 쓸쓰록 잘 쓰는 작가래." 하는 이야기들은 물론, 인터넷에 "요즘 괜찮은 한국 소설 추천해주세요."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김연수>라는 이름이 어김없이 되돌아옵니다. 아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괜찮은 작가이길래 이 정도인가 .. 궁금해하며 도서관에서 그의 책 <밤은 노래한다>와 제목에서부터 웃음이 나오는 <사랑이라니, 선영아>를 빌려왔어요.
늘 그렇듯 얇은 책<선영아..>부터 홀랑 꺼내들어 읽기 시작했는데. 굉장히 얇은 두께에 굉장히 큰 활자 크기에 쉬어가는 의미로 썼다는 작가의 서문에 굉장히 많은 여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게 읽히질 않더군요. 진도 (이상한 진도 말고..)가 확확 나가는 소설을 좋아하는 제 성격과 맞지 않게 이 책은 작가의 목소리인지 누구의 목소리인지도 애매한 철학적 서술이 많은게 철학집 같기도 하고 어째 ..
내용은 어찌보면 단순합니다. 광수와 선영과 진우는 모두 친구사이. 진우와 선영은 옛날에 사귀던 사이. 광수와 선영은 결혼하는 사이.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장에서 선영의 부케에 꽃 한송이 고개가 꺾여진 걸 본 순간부터 광수 심기불편해집니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결혼식 사진을 하나 하나 살펴보는 광수. 선영과 진우가 대화하는 사이 꽃이 꺾여졌다는 사실을 알고 그떄부터 광수 심기 더더욱 불편해집니다. 그때부터 진우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며 못살게 구는 광수. 노래방에서 진우를 잡아먹을듯한 눈초리로 쏘아보며 물어보는 광수. "너 선영이랑 잤지."
대충 이렇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두고 등장인물들의,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주로 진우의, 결혼에 대한 입장, 결혼관이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데요. 읽다보니 김연수라는 작가가 제가 생각한, 아마도 이름에서 그렇게 느꼈던 것 같은 여리여리하고 순수하고 청초한 연꽃 같은? ^^; 그런 느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더라구요. 한마디로 씨니컬하달까.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설파되는 결혼관과 사랑관을 듣고 있자니 절로 이 시대의 결혼과 사랑에 대해 냉소적이 되어가는 제가 느껴지더라구요. 비웃는 눈초리, 냉소를 머금는 입술. 그런 느낌이랄까.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너무 책을 만만히 보고 집어들었다가 예기치 못한 난해함에 더더욱 당황해서였을지. 이해도 잘 되지 않았고 정리도 잘 되지 않네요. 김연수라는 이름에 덧붙여지는 찬탄과 찬사에 공감을 표하기엔, 작가가 이 책에 부여한 의미를 보았을 때도 그렇고 부족한 감이 많은 것 같습니다. 어서 어서 <밤은 노래한다>를 읽고 작가의 진수를 느껴보아야겠다는 다짐을 서둘러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