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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템이라는 주술적, 종교적 성격을 띤 정신적 문화가 어느 나라든 존재하고 있다. 이것은 동.식물을 상징으로 특정집단이나 인간에게 종교적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그래서 토템은 하나의 집단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대단한 위력과 마법과도 같은 커다란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현세에서 내세에 이르기까지 집단과 인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심대하기만 하다. 초원이 삶의 터전인 몽고지역은 탄생부터 죽음 그리고 사후에 이르기까지 늑대라는 동물이 상징하는 주술적 성격은 실로 어마어마한 것 같다. 몇 년 전 김형수 작가의 『조드 1,2』를 통해 몽고 지역의 유목민과 초원 그리고 늑대의 속성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게 되었는데 이번 작품은 올론 초원에서 펼쳐지는 늑대의 특성과 기질, 인간 사후 늑대에게 자신의 주검을 희사하는 부분까지 몽고 초원의 유목민은 늑대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인연을 갖고 있다.
장융(姜戎) 작가는 11년간의 초원 체험 위에 20여 년간의 연구와 구상 그리고 6년간의 집필을 통해 이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장장 50만자(중국어)에 달한다는 점도 잊지 못할 정도다. 문화대혁명 당시 작가는 하방(下方)운동에 의해 내몽고 지역으로 강제 노동을 겪어야 했다. 당시 작가는 지식청년으로서 내몽고 지역에 들어가 직접 늑대의 기질과 습성 등을 면밀히 관찰하는 등 늑대와의 동고동락하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 몽고초원의 늑대가 유목민들의 정령과도 같은 이미지이고 상징물이 되어 버렸다. 오랜 세월 몽고 지역을 다스려 왔던 다양한 부족들과 칭기즈칸과 같은 무장들이 늑대와의 공생공존의 룰을 형성시켜 왔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 글은 천전이라는 주인공이 지식청년으로서 올론초원에 터전을 마련하고 늑대를 기르고 훈련시키며 인간과의 관계 등을 조밀하게 그리고 있다. 장융 작가는 유목민과 늑대 토템을 그리면서 중화민족의 정신 문제를 그려 내고 있는 것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불요불굴의 중화민족 정신'이라는 원류와 본질을 염황 선조의 유목 정신과 초원 정신에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가는 중국 고대부터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늑대토템과 유목 정신을 세세하고도 설득력 있게 들려주고 있다. 늑대와 같은 강인함과 인내심이 강할 때는 중국이 강국의 면모를 보여 주었고, 그러하지 못할 때는 내우외환에 시달려야 했던 것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비단 늑대토템을 떠나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강인하고 진취적인 속성을 지닌 늑대토템은 중국 유가 사상을 앞지르고 있다. 특히 늑대는 모질고 잔인하고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다. 초원의 모든 동물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쓸이 한다. 일종의 초원의 청소꾼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유목민족은 유구한 세월 속에서 부지불식간에 늑대에 대해 경원시 내지 신성시하는 관념이 깊게 배여 있다. 자신은 죽어서 자신의 육신의 주검을 아낌없이 늑대에게 바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하늘과 인간, 하늘과 동물, 인간과 초원 모두가 하나라고 믿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중화민족의 요체는 무엇이고 어디를 향해 가는가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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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합쳐서 1,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늑대토템>이지만 읽는 동안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마 그것은 이 글의 주인공인 천전처럼, 베이징 태생의 ‘지식청년’이었던 저자인 장룽[姜戎]이 문화대혁명 때에 자원해서 내몽골의 올론[額侖] 초원에 가서 11년간 목동으로 살았기에 몽골 초원의 삶을 마치 눈앞에 펼쳐놓듯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대혁명 때 하방(下放)에 의해 내몽골의 올론[額侖]초원으로 오게 된 천전, 양커 등 4명의 베이징 출신의 ‘지식청년’들은 처음에는 초원늑대를 대하는 빌게 노인으로 대표되는 유목민족의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다가 차츰차츰 초원늑대에 의해 조화를 이루는 초원의 삶에 매혹된다. 하지만 유목민족인 몽골족과 달리 농경민족인 한족(漢族)이 주류를 이루는 당국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양커는 깨닫고 같은 ‘지식청년’인 천전에게 얘기한다. 중국 사람들은 절대 다수가 농민이거나 농민 출신이고, 한인들은 뿌리 깊은 소농의식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게다가 중국 한족은 초식 생활에 길들여져 있고, 또 뼛속에서부터 늑대를 무서워하고 미워해. 그런데 어떻게 늑대토템을 숭배할 수 있겠어? 중국 한인들이 숭배하는 건 농업을 주관하는 용이야. 용 토템은 다만 경의를 표하는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야. 몽골 사람들처럼 그렇게 늑대에게 배우고 늑대를 보호하면서 숭배한다면서 또 늑대를 죽인다는 건 꿈도 못 꿔. 토템이야말로 사람들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고 민족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농경민족과 유목민족의 민족성은 너무나 달라.1) 그러는 가운데 점차 베이징에서 온 ‘지식청년’들은 몽골의 유목생활에 동화되면서 초원늑대의 역할과 그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죽은 사람은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탱그리의 연회에 참석하여 성스러운 물로 세례를 받음으로써 새 생명을 부여 받는 것이다. ~ 누구든 생명의 종점에서는, 발가벗겨져 거리낌 없는 상태로 이렇게 제물로 변하여 깨끗이 해탈하게 된다. 그러니 누가 탱그리와 초원의 늑대에 영혼을 맡기는 초원 몽골민족의 신실한 의식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2) 초원늑대에게 있어 식탐과 전투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신성불가침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렇게 지켜진 신성함 때문에 진정으로 늑대를 숭배하는 초원의 목축민들은 기꺼이 신비스러운 자연장을 치름으로써 자신의 영혼도 초원늑대의 영혼처럼 자유로이 비상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것이리라.3) 그리고 당국이 초원의 생산력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민공(民工)을 이주시키고 그들에 의해 초원늑대가 하나씩 제거되고, 이식된 농경문화에 의해 유목문화가 변질되고 파괴되는 것을 보며 고뇌한다. 예전에 나는 중국의 농경문명만 서양 열강에 의해서 늘 침략당하고 괴롭힘을 당한 줄로만 알았거든. 농경 문명이 유목 문명을 파괴하는 일 역시 이처럼 잔인하고 흉악한 줄은 몰랐어.4) 올론[額侖]초원 최후인 유목민이었던 빌게 노인의 죽음과 더불어 유목문화는 사실상 사라져버린다. 마치 동돌궐 제국을 중흥시킨 빌게 가한이 독살된 후에 동돌궐 제국이 내분에 휩싸여 멸망해버렸던 것처럼…… “늑대가 사라지고 나면 들쥐며 산토끼가 바글바글할 테고, 그런 초원은 완전히 끝장이다. 초원이 사라지면 그 놈들이라고 무사하겠니. 누구도 그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거란다” 5)라는 그의 예언은 한 세대도 지나기 전에 현실로 나타난다. 베이징 지식청년들이 올론 초원의 목축대대로 간 지 30주년이 되던 해 어느 여름날, 천전과 양커는 파란색 체로키를 타고 베이징을 떠나 초원으로 향했다. ~ 중략 ~ 하늘은 건조하게 메말라 구름 한 점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초원의 탱그리가 아니라 이미 사막의 탱그리로 변해 있었다. 습기라고는 전혀 없었고, 바짝바짝 타오르는 하늘 아래서 무성하게 자라나는 어떤 푸른 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간혹 드문드문 누렇게 말라 있는 잡풀 사이로 널찍이 펼쳐진 굳은 모래 땅은 커다란 사포를 여기저기 널어놓은 것 같았다. 모래로 덮인 도로 위로 소와 양을 실은 트럭 한 대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관내로 향하고 있었다. 길가에는 게르도, 말 떼도, 소떼로 보이지 않았다.6) 마지막 에필로그 다음에 저자는 마치 논문처럼 “늑대토템과 지적 탐구”라는 장을 두어 중국의 뿌리깊은 전통적 농경의식에 유목정신을 수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황하(黃河), 용(龍), 만리장성(萬里長城)으로 대표되는 황색문화(黃色文化)가 쇠퇴했으니 해양문명-공업문명-현대문명인 남색문화(藍色文化)를 수혈 받는 것이 중국민족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제시한 천안문 사건 직전의 <하상(河殤)>처럼…… 그러면서 아래와 같이 제국주의적 침략을 긍정하는 듯한 장광설을 늘어놓아 바로 직전까지의 감동을 차갑게 식혀버리는 아쉬움을 안겨준다. 차라리 마지막 장은 없는 것이 나았다. 서양 민족은 이런 야만적인 본성을 견지하면서 문명 발전의 길을 걸었지만, 중화민족은 야만적인 본성이 모두 배제된 채 농경식 문명 발전의 길을 걸어왔어. 다시 말하면 서양 민족은 ‘문명화된 늑대’의 길을, 중화민족은 ‘문명화된 양’의 길을 선택했던 거지.7) 해양민족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각 민족의 우수한 문명을 흡수할 수 있고, 그만큼 성과도 광범하게 거둘 수 있었어. 그 대표적인 예가 신대륙 발견이라 할 수 있지. 그리고 그들은 일찌감치 해외에 식민지를 만들고, 그곳의 원시축적물을 빼앗아 기선을 제압했어. 본디부터 강인했던 서양의 유목민족은 바다로 나간 후로 날개를 단 늑대처럼 비상해 나갈 수 있었던 거야. 그래서 지금 세계를 주도하는 민족들은 대부분 초원유목에서 해양유목으로 발전한 민족이거나 원래부터 바다에서 활동했던 해양민족들이지.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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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토템이란 무엇인가? 늑대토템은 하나가 열을, 또 백을, 천을, 만을 상대할 수 있는 강인한 정신력이다. 하며, 마지막 남은 한 마리 늑대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 저자 장룽(姜戎)이라는 분은 1946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문화혁명이 터진 이듬해 내몽골 올론초원 농장에 자원해 초원생활을 시작하여 약 11년을 머물며 초원에 대한 이해와 지식, 그리고 초원에서 빠질 수 없는 늑대를 연구했다. 늑대새끼를 기르며 늑대를 관찰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후에도 늑대토템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여 약 30여년간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냈다. 내가 직접 체험해보지 못한 관계로 아직 호두껍질 속에 내가 빼먹지 못한 호두 속이 아쉽기도 하다. 읽다보면 책을 놓는 것이 아쉽기도 하고 아껴서 읽고 싶기도 하다. 역시 저자의 30여년 간의 노력은 헛된 것이 아니었고, 무엇보다 다종의 소수민족과 함께 중국이라는 나라를 구성하고 있는-절대다수의 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한족의 입장에서 공평하고 정당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마음에 든다. 며느리인 가스마이 등,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그들과 함께 늑대의 혹독한 가르침을 받는다. 초원에서의 자연섭리와 유목민족들의 토템, 그리고 늑대... (하늘)가 내린 존재이다. 없지만, 결국 죽음에 이른 후에는 늑대에게 몸을 맡겨 탱구리로 오른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가축을 지켜야하는 적임과 동시에 그들이 초원에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며 상호공존할 수 있는 여견을 조성해주는 자연의 조절자요 신성한 존재이다. 민족성과 연관지어 현재 중국이 봉착한 문제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길 까지 제시하고 있다. 늑대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리고 2001년 외몽골 울란바투르에 갔을 때 그곳 현지인들의 눈빛이 늑대같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인들이 주의를 주었다. 초원의 독수리는 날개를 쫙 펴면 너비가 2미터가 넘고 힘도 좋아서 3, 4살 가량된 어린아이도 낚아 채 간다고 했다. 하루 전부터 날씨가 따뜻해져서 겨우(?) 영하 26도라고 했다. 돌아가고 난 후 다시 추워졌다며 온기를 몰고 다시 오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으로 나갔다. 나가는 것 같았다. 이 책을 읽고 나 역시 늑대처럼 먹고, 늑대처럼 굴복하지 않고, 늑대처럼 기다릴 줄 알고, 늑대처럼 협조하고, 늑대처럼 잠을 자고, 늑대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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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읽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한 50% 읽었나 봅니다.
너무 감동적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아직 다 읽지는 않아서 평을 쓰고 싶지는 않았지만
오늘 리뷰를 보며 나와 같은 생각들을 가진 분들이 계신지 왔다가 첫리뷰어가 되어 볼까 해서요
나중에 다 읽고 리뷰 쓸께요
망설이신다면 꼭 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10장만 읽어도 뒤가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광활한 몽골 초원의 무리지어 사는 늑대 그리고 늑대와 맞서 양들을 키우고, 그들의 침략을 막고 반대로 그들을 침략하는 인간
하지만 그곳을 지키는 몽골인들은 늑대를 죽여 없앨 동물이 아니라 그 늑대를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늑대와의 전쟁을 통해 늑대의 엄청난 전략과 전술을 익힌 몽골 민족 그래서 징기스칸은 10만의 소군으로 전세계를 호령했던 것입니다.
늑대로 부터 양을 지키고 싸우면서도 늑대로 부터 그안에서 자연의 진리를 깨닫고, 겸손과 다부짐을 배우고 그런것을 알려주는 늑대를 존중하며 탱그리로 가는 매게체로 생각하는 몽골인들
감동적이고 재밌네요 묘사도 좋고, 정말 맘에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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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원민족이 지키려는 것은 큰 생명체다. 그래서 그들은 초원과 자연의 생명이 사람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농경민족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작은 생명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람의 목숨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큰 생명체가 사라지면 작은 생명체도 전부 죽게 된다." 봄의 길목에 들어서면 우리나라 각지에도 멀리 중국대륙으로부터 황사가 날아든다. 만리장성으로도, 도중에 가로막고 있는 바다로도, 혹은 최첨단 과학기술로도 그것을 막아낼 방법은 없다. 예전에는 비옥한 초원이였던 광대한 몽골 평원이 불모의 사막으로 변해가는 원인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현대인이 얼마나 있을까. 나는 전혀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한권, 아니 두권의 책이 무지한 나의 머릿속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늑대토템 상, 하(장룽 저)를 읽은 것은 정말이지 하나의 새롭고도 놀라운 경험이였다고 생각한다. 문화대혁명 당시의 1970년대를, 내몽골 올론 초원에 하방되어 11년간 유목생활을 하며 보낸 북경의 지식 청년 천전과 함께, 나 역시도 시공을 뛰어넘어 초원으로 떠나 있는 듯한 현장감을 시종일관 느낄 수 있었다. 초원민족의 두려움의 대상이자 경배의 대상이기도 한 늑대에게 매료된 천전은, 금기를 깨고 새끼늑대를 잡아 사육하는 일종의 모험이자 실험을 시도한다. 천전은 이 한마리의 늑대에게서, 절대 인간에게 굴복 하지 않는 늑대의 본성을 빠짐없이 배워 나간다. 우두머리의 통솔하에 노련하고 뛰어난 전술을 발휘하는 늑대의 무리, 가축을 습격하는 그 늑대들과의 엄청난 사투, 공방전, 포식 관계인 초원의 동식물들 간의 섬세하고 미묘한 균형과 연쇄작용, 오랜 세월동안 늑대 토템을 숭배하고 경배하는 전통을 사수해 온 유목민족의 예지, 초원을 침탈하는 농경민족과 초원의 생명들과의 충돌 등등... 일일이 다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국면에서의 천전의 체험이 써내려져간다. 천전과 늑대와의 관계를 그리는 것만으로도 이 이상 더 스릴 넘칠수 없는 동물기라고 할 수 있지만, 보다 큰 문맥 안에서 늑대가 몽골 제국의 흥망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또 중국의 역대 왕조에는 어떤 영향을 끼쳐 왔는지, 훗날 도시에 돌아와 학구의 길을 걷는 천전의 역사관에 있어서 그 중심축이자 신념으로서 작용하게 되는, 늑대의 가르침에는 끝이 없다. 이 자전적, 지지학적, 민속학적, 역사학적, 환경학적(아직도 얼마든지 더 열거할수 있다) 소설은,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33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창조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든 대작이다. 늑대(유목민족)와 양(농경민족)의 대비만으로 민족성을 판단할 수가 있는가, 중국의 왕조나 각국의 군웅할거를 그렇게 흑백논리에 의해 논할수 있는가, 반론은 얼마든지 쏟아져 나올수 있을 것이다. 타국의 독자인 내가 그런 의문을 떠올릴 정도라면 아마도 당사자인 중국인들에게는 국가의 주체성을 둘러싼 논쟁의 불씨가 될 여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늑대토템이 대자연을 이야기하고, 사람과 늑대를 포함한 생명체들을 관찰하고, 변화하는 지구에 대해 사색 하는 장대한 무대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늑대 들의 생태는 압도적인 매력으로 독자를 덮쳐온다. 지금 이순간에도 어둠속에 울려퍼지는 늑대의 울음소리가 어디선가 정말로 들려 오는 것만 같다. 저자는 멸종해가는 늑대의 종족 보존, 재생을 설득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서 자유와 불굴의 영혼의 상징으로서의 늑대의 귀환을 말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하나의 신화를 쓰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알고, 이 책을 직접 읽게 될 사람은 두말할 나위없이 행운아다. 그리고 그 행운아중 하나인 나는 지금 말할수 없이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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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을 합쳐 1000페이지를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 게다가 텍스트는 한눈 팔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해, 책을 읽는 속도가 그리 느리지 않은 편이라 생각하는데도 거의 3주 가량을 읽었습니다. 읽고있는 책이 오래도록 진도가 안나가면 지루함을 느끼는데, [늑대 토템]을 읽는 동안에는 지루함도 빨리 읽어 치워야겠다는 조바심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묘한 책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주된 줄거리는 중국의 문화혁명당시 소련과의 접경지역, 몽골 유목민들의 살고있는 올론 초원지역에서 벌어지는 유목민들의 삶입니다. 거기에는 양과 소, 말, 개 등의 가축이 있고, 늑대, 여우, 토끼, 마르모트, 들쥐, 모기 등의 야생 동물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공산주의에 입각한 실용주의가 들이닥치고 초원의 신 탱그리와 늑대를 숭배하며 살아가는 몽골인들과 가치관의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 모습을 한족이면서 몽골 유목민들의 정신에 동화된 중간자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소설 자체로도 훌륭하지만 먼 미래를 고려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는 얇팍한 결정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실용주의 수장의 모습을 바라보는 2009년 대한민국에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모택동이 "참새는 나쁜 새다"라고 지적하여 엄청난 재앙을 몰고왔듯, 올론 초원에서의 "늑대는 나쁜 짐승이다."라는 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어마어마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몽골 초원의 유목민들은 자연의 일부로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살아왔지만, 실용주의 지도자가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라는 실용적인 정책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몽골 초원의 인간은 더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닌, 파괴하고 약탈하는 기생충같은 존재가 되어버리고 생태의 균형이 무너져 파괴자인 인간들마저 터전을 잃게 됩니다.
또 한가지 큰 이야기의 흐름은 중국의 민족성(?)에 관한 것입니다. 책의 말미에 따로 정리해놓은 부분에서 이 부분이 조금은 지루한 방식으로 서술되는데, 중국의 역사를 훑으며 중국의 강함은 바로 늑대를 숭배하던 늑대토템, 유목민의 정신으로부터 말이암는다는 주장을 합니다. 그러던 것이 정착하여 농경중심의 사회구조로 바뀌며 늑대토템을 버리게 되어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21세기에 중국이 지향해야 할 바는 늑대 토템을 섬기던 유목민의 정신이 아니겠는가. 하는 주장을 하고있습니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부분에서 큰 흥미를 느낄만 합니다만, 공돌이 출신인 저로서는 좀 따분하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을 읽으며 든 생각은, 북방의 돌궐, 흉노, 몽골 등의 유목민족과 남방의 한족들을 비교하는 부분에서 북방의 고구려와 남방의 백제, 신라의 대비를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좀 딱딱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재미라는 면에서 100점을 넘는 점수를 주고싶을 정도로 대단한 책입니다. 정확히 묘사된 다큐가 잘 연출된 영화보다 더 큰 감동을 주고 주장하는 바도 더 뚜렷한 법이지요. 영화 제작이 결정되었다는데, 읽는 내내 이런 부분은 어떻게 묘사하려고? 하는 의문이 계속 들 정도로 이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장면들이 숨막히도록 튀어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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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활한 몽골의 초원, 생존을 향한 처절한 몸부림, 현재 서울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환경과도 결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겨진다. 최근 읽은 책중에서 가장 많은 느낌을 주는 책으로 강력하게 추천해 주고 싶다. 초원의 늑대가 중국역사에 끼친 가감없는 평가와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다시 한번 더 읽고 싶은 멋진저서라고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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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장룽이 이 책 '늑대토템'을 쓰기 위해 30년간을 공들였단다. 문화 대혁명이 터진 이듬해 21살의 나이로 내 몽골 올론 초원 농장에 지원해 초원 생활을 시작하면서 '초원의 혼'이라 불리는 은빛늑대무리의 생존방식과 정신에 깊이 매료되어, 늑대를 기르고 늑대와 함께 생활하며 늑대의 생태와 정신을 체득하였단다. 늑대와 함께 고난을 겪으며, 늑대의 본성과 본은, 그리고 초원의 생명력에 힘입어 다시 태어나는 강렬한 경험을 바탕으로 '늑대 토템'이 완성되었다. 중화민족이 오늘날 광활한 영토를 갖게된 원인, 역사적으로 화하華夏문명이 유목민족을 정목한 것인가, 아니면 유목민족이 한족에게 끊임 없이 수혈을 해 줌으로 중화문명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인가? 말을 타던 민족이 왜 말이 아닌 늑대토템을 신봉하게 되었는가? 등 많은 의문점에서 이 책은 출발을 하고, 지은이의 경험과 정신이 책에 그대로 녹아져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책에서는 야생늑대의 모든 것들이 정말 자세하게 기술되어져 있다.
책의 주인공 천전이 문화 대혁명으로 인해 지식 청년으로 올론초원의 목장으로 배속되어, 양들을 보살피며 그들의 적인 늑대들과의 전쟁을 시작으로 시작되는 늑대 토템은 그야말로 늑대 판이다. 동물원에서 아님 아이들 동화속의 늑대만 생각하던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몽골늑대는 적이면서도 많은 유목민들에게 살아있는 교과서가 되어준다. -늑대의 교활함과 지혜, 군사적 재능과 꺾이지 않는 강인함, 늑대에 대한 초원사람들의 애증, 늑대들의 단결정신 .등 많은것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하는 원천인 것이다. 늑대는 초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위협이 되고, 말과 소와 양의 최대의 적이다. 그런데 어째서 초원민족들은 늑대를 그들의 토템으로 삼은 것일까? 주인공 천전의 의혹은 끝이 없다 . 초원의 아버지 빌게를 따라 하나씩 그 의문점들을 밝혀감과 동시에 천전은 늑대들에게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된다. 유사이래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소유한 거대제국을 창조해 낸 장본인이 바로 몽골인 이었다. 자기네 문자나 철화살촉 하나없이, 동물의뼈로 화살을 만들 정도로 원시적이고 낙후된 유목민족이, 어떻게 그렇게 어마어마한 군사적 에너지와 지혜를 발휘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이 문제는 이니 세계사에서 가장 불가사의 한 수수께끼가 되었다. 주인공 천전의 많은 의문점과 늑대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죽어서 갈 수 있는 탱그리에 대한 유목민들의 절대적인 신봉등 많은 생소한 단어와 환경들이 책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했다. 중국의 문화혁명의 대 혼란에서 빚어지는 지식청년의 천전의 끊임없는 사고의 끈으로 이어지고, 늑대의 새끼를 기르게 되면서 일어나는 많은 슬픔과 좌절들 ,초원의 광활함과 자연의 바른 이치, 그리고 인간의 이기심이 낳은 많은 폐해등을 덩달아 배운다. 광활한 초원에서 벌어지는 먹이 사슬은 순간 순간을 긴장하게 하고, 늑대와 가젤 그리고 양, 말 ,개, 말없는 동물들은 이기심의 중심인 인간에게 죽음으로 많은 것을 알게 해 준다 몽골인과 한족의 의식차이, 문화차이등은 지금의 중국의 황사같은 것들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이 책에서는 조용히 설명되어지고 있다. 그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고 하든가? 주인공은 늑대지만 이 책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어디에서든 질서는 있는 것이고, 그것을 인위적으로 무너뜨리려 할때 재앙은 일어나는 것이다.
책은 작은 단락으로 연이어지고 시작 머리에 중국의 역사와 관련된 글들이 이해를 돕고 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경이와 어느나라에서든 있는 토템신앙을 이렇듯 깊이 관찰하고 방대하게 저술한 작가에게 존경을 보낸다. 너무 아끼고 싶은 글들이 많아 내내 연필을 들고 줄을 그어가면서 책을 읽었다. 책의 두께에 놀란 가슴은 책의 내용으로 충분히 위로가 되었고, 재개발이라는 말로 온동네가 깜깜한 밤이 되어버린 집뒤 언덕을 쳐다보며, '모든것이 자연의 순리대로'라는 말이 그저 내 가슴에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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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하면 개썰매를 끄는 시베리아 허스키 종자의 늑대개나 고대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물루스 형제를 젖먹여 살린 늑대정도의 지식밖에 없었다.게다가 이 책을 접하기 전 동물을 집중적으로 관찰해 쓴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읽은 책 중 동물이 소설의 핵심 주제였던 것도 등장인물이었던 것도 기껏해야 갈메기의 꿈이나 동물농장, 이솝우화정도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라 처음엔 이 책이 어색했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늑대토템에 푹 빠졌다. 약 450 페이지를 육박하는 책 두권을 이주내로 읽고 글을 쓴다는거 자체가 부담스럽고 힘들거라고 생각했지만, 책 자체가 지루하지 않게 독자를 이끌어 가는 맛이 있어 가능케했다.
문화혁명때문에 주인공인 천전을 비롯한 여러 지식청년들은 폭발적으로 실업자가 늘어나는 도시와 대조된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강제이주하게 된다. 그들이 새롭게 정착한 곳은 몽골에서도 풍요롭고 용맹하기로 이름난 올론초원이다. 그곳에서 천전을 비롯한 양커, 장지웬 등의 지식청년들은 한족과 몽골인들의 문화차이를 경험하고 때로는 농경주의로 자연과의 공생을 파괴하는 한족을 비판하고 몽골인과 그들의 문화를 동경하게 된다. 새로운 양치기라는 직업을 갖고 몽골아버지인 빌게노인과 그의 가족들과 관계를 맺으며 점점 한족이 아닌 몽골인으로 탈바꿈하는 천진일행의 일담은 늑대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할때가 많았다.
그리고 늑대들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빌게노인의 늑대는 탱그리의 전령이자 올론초원의 수호자라는 말이 이해가 될정도로 늑대는 굉장한 동물이다. 뛰어난 전략으로 북서풍과 지형, 그리고 사냥감의 습성까지 완전히 파악해 가젤을 포획하는 그들은 정말이지 노련한 전략가 같았다. 특히 새끼늑대를 포획하고 자신들의 먹이인 가젤을 죄다 탈취해간 인간들에게 보복하고자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군마들을 습격해 잔인하게 죽인 늑대들의 모습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잔인무도한 동물은 아니다. 적절하게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하는 욕심없는 자세때문에 그들은 초원의 생태계 벨런스를 유지했다. 또한 몽골인들에겐 수호자 이상의 뛰어난 스승이 되었다. 언제나 인간 우월주의가 어느정도 다분히 인식되었던 나에게 인간 이상의 뛰어난 동물들이 많다는 사실을 늑대들이 알려줬다.
정말 훌륭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이야기도 책의 후반부로 갈 수록 지나친 인간들의 편의를 위해 초원을 개간하고 늑대를 과도하게 포획하면서 황폐화된다. 더이상 빌게 노인을 뒤로 몽골식 전통 장례를 치루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고, 몽골인들은 문화와 생활습성마저 한족으로 변했다. 안타까운 결말은 슬프게도 우리에겐 너무 익숙한 장면이 되었다. 살아갈 보금자리를 잃어가는 동식물들... 우리가 탱그리와 늑대가 지키고자 한 큰 어머니인 자연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고 있다. 작가는 단지 흥미로운 늑대이야기정도만 하려고 이 책을 쓴게 아닌 것 같다. 지금도 아픔을 토로하고 있는 자연에게 우리가 한마리의 늑대가 되어 탱그리와 자연의 수호자가 되길 간절히 바라기에 이 책을 쓴게 아닌가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