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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 시간 틈틈이 책을 펼칠 때마다 그곳엔 울창한 나무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동물들로 가득한 밀림이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 아마존의 엘 이딜리오까지는 그저 책 한번 펼치면 되었을 정도로 읽는 순간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이 명작이라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주제로 결론지어지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풍부한 가치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생명과 환경보호라는 커다란 메시지는 차치하고라도 정부의 말을 믿고 정착한 땅에서 죽을 고비를 넘길 고생을 하고도 아내를 잃은 채 긴 세월을 혼자 살아온 한 인간의 고독과, 인간이 이룩한 아름다운 업적인 언어로 이루어진 소설의 재발견, 글을 알지 못해도 생명 존중과 함께 살기 위한 삶의 지혜를 긴 세월동안 간직해 온 수아르 족의 인디오의 모습등이 갈길을 재촉하는 눈의 움직임을 멈추고 소설을 음이하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이 소설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밀림과 그에 적응하기 위한 주인공(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의 생존 과정이 아주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밀림은 그저 티비에서 본 것이 전부인 나의 상상력으로 좇아가기가 역부족일 정도의 구체적인 묘사는 마치 작가가 안토니오가 아니었을까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였다. 인간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 듯한 빽빽한 신비의 밀림 세계에서도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낸 수아르 족의 지혜와 밀림의 세계에선 이방인인 안토니오가 적응하는 과정은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 파괴가 아니라 공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물론 안토니오는 수아르 족이 될 수는 없었지만 외지인임에도 자연속에서 공존의 법칙을 터득하는 것을 보고 인간 존재 내부에서 공존의 유전자를 발견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오로지 연애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인간의 언어와 상상력의 유희를 즐기고 싶었던 안토니오에게 들이닥친 반갑지 않은 사건은 부락의 주민들을 해칠지 모르는 암살쾡이의 존재였다. 내키지 않은 사건을 만든 것은 살쾡이의 가죽을 탐냈던 양키로 대변되는 인간의 탐욕이다. 밀림의 나무를 벌목하고 땅을 마구 파헤치는 것으로도 모자라 인간은 이제 따뜻한 피를 가진 동물의 생명까지 노리게 된 것이다. 복수와 공적만을 꿈꾸는 어리석은 인간의 전형인 읍장과 달리 안토니오는 암살쾡이와의 정정당당한 한판 승부를 생각한다. 노인과 살쾡이의 싸움은 고독한 두 존재가 서로를 알아보는 과정이자 원치 않았던 싸움에서 뒤로 물러설 곳 없는 이들이 벌이는 의식이다. 마치 서로가 서로의 의중을 읽듯 인간 대 동물이라는 분류를 넘어서 한 판 승부를 노리는 장면은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이자 가장 돋보이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보다도 실감나고 소설이라 더욱 깊이가 있는 묘사를 읽는 순간 작가의 능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의 승리도 있을 수 없는 싸움 끝에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리는 안토니오의 모습을 보며 차가운 금속성의 짐승이 어쩌면 내 안에서 나의 몫만큼 자라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의 제압과 굴복을 당연한 논리로 받아들이며 뉴스를, 영화를, 책을, 감흥없이 받아들여 온 일상의 나 역시 밀림의 보이지 않는 파괴자였음을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심코 읽어나간 소설에서 커다란 감동을 받았을 때 ‘아 내가 이래서 책을 읽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헛되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아주 소중한 감동을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명작을 읽고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명작의 가치와 감동을 되새기는 일만이 이제 오롯이 내 몫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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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탐욕의 끝이 어떠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에서 마술적인 신비적 표현들을 소거한 아주 사실적이면서 흥미진진한 아마존 밀림이 대한 그리고 인간의 탐욕에 대한 에피소드입니다. 아마존 밀림에 정착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주인공은 아마존에서 부인을 잃고 우연히 원주민과 함께 살며 자연과 같이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는 문명인이어서 엘 이딜리오라는 정부의 힘이 미치는 마을로 들어와 살게되면서 겪게되는 암살쾡이 살인사건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개발과 환경이라는 큰 이슈 사이에서 인간들은 어떻게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재밌는 소설이다. 불행하게도 최근에 코로나19로 저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아디오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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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이 짧고 위트가 있다. 술술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자연과 문명의 대립을 그린 '교훈'소설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꽂힌 부분은 노인의 독서였다. 아무튼 교육용으로 괜찮은 책이라고 판단되었다. 독후감 "어떻게 '뜨겁게' 할 수 있지?"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0207.htm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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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갑자기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들었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만큼, 종이 책을 사는 것과 이북을 사는 것에서 다시 한 번 오락 가락하였는데,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반반이였다.
그래서 나는 결정했다. 종이책을 사기로. 하지만, 막상 카트에 담아 보기 시작한 것은 이북이다. 종이책과 이북의 갈등은 아무래도 집에 뭔가가 쌓여간다는 것이겠지, 한 때는 애서가 장서가였으나...요즘은 다 덧없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거지, 종이장을 넘기고 줄을 긋는 것도 그냥 허영심이 아닐런지.
여하튼 , 심사숙고(요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어서...)하여 고른 책.
아무래도 중남미 소설이라고 하면, 마르케스의 글을 읽었을 때처럼 뭔가 신비로운 느낌인데, 비록 그것과는 다르지 않지만, 인디언이 나오고 그 시절의 시대상이 살짝 지금과 같지 않기에, 색다른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였다. 하지만, 책 표지의 극찬처럼 그렇게 대단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어느 정도 비슷한 플롯은 본 것 같은 느낌. 그리고, 작정하고 읽은 책이 이렇게 짧을 줄이야. 각각이 의미하는 바는 대충 알겠다. 하지만, 그 지역에 살아보지 않아서, 미국이 과연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임팩트는 그냥 갸우뚱이다. 뭐...자연친화적인 곳에 미국의 천박한 문물이 침투하여 엉망 진창으로 만들어 버린게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은 인간의 이기로 인한 자연파괴에 나도 꽤나 민감한 편이다.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인지...원래 그랬어야했는데, 이제야 사건과 사물을 보는 눈이 생긴 것인지. 간장에 밥비벼 먹는 식으로 이야기 하자면, 나도 그 시절이 그립다. 더 불편하고, 조금은 비위생적이기도한 그 시절은 지금과 같은 삭막한 느낌은 아니였던 것 같으니. 그래서, 이 짧고 간결한 소설을 읽으며 나는 살짝 아련하기도 했던 것 같다. (유기견들과 굶어 죽고 있다는 북금곰들도 생각이 났다) 노인이 모닥불옆에서 소설을 읽어주는 장면과 마지막 살괭이와의 대적 장면은 마음에 든다.
소설의 결말은 아쉽다. 나는 화끈한 반전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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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삶과 사랑, 그리고 고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인은 매일같이 연애 소설을 읽으며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감정을 되새깁니다. 그의 소설을 통해 우리는 사랑의 본질과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사랑의 복잡성과 아름다움입니다. 그는 연애 소설 속 인물들과 자신의 경험을 교차시키며, 사랑이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더욱 깊이 있게 이해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과거의 사랑이 남긴 상처와 기쁨은 그의 삶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며, 독자는 그 속에서 공감과 위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세풀베다의 문체는 따뜻하면서도 섬세하여, 독자가 노인의 감정에 쉽게 이입할 수 있게 합니다. 또한, 노인의 고독한 삶 속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꿈꾸고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줍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노인의 연애 소설 읽기를 넘어, 인생의 의미와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결국,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사랑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작품입니다. 노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사랑의 다양한 형태와 그것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소설은 세풀베다의 뛰어난 문학적 감각과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을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작품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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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칠레에서 태어나 남미의 복잡한 정치 세계에 뛰어들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투쟁가이자, 자연을 사랑하고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누구보다도 안타까웠했던 남미의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 그의 삶 자체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는데 안타깝게도 2020년에 코로나에 감염되어 되어 스페인에서 생을 마감했다.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을 읽고나면, 이렇게 재미있고, 이토록 따뜻하고, 그토록 감동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 한 명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얼마나 슬프고 마음을 허하게 만드는지 느낄 수있다. 재미도 압권이다. 남미 문학은 언제 읽어도 매력적이고 인간적.
작가는 그 곳에 서식하는 셀 수 없는 생태적 존재들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질서를 이루며 살아아고 있는지. 이 곳을 불도저로 밀고 들어와 파괴하고, 약탈하는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적일 뿐더러 얼마나 어리석은 존재인지 계속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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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소설 읽는 노인은... 사실 학교 수업 때문에 처음 읽게 된 책이에요. 처음 들어봤고 제목만 봐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웠어요.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편협한 제 사고방식을 반성하며... 리뷰를 씁니다. 저는 노인과 바다라는 책과 함께 이 책을 읽었는데,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과 대비되는 부분이 재미있었어요.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화자는 잔잔한 바다 같았다면 연애 소설 읽는 노인의 화자는 좀 더 거센 파도 같은 느낌이어서요. 읽을수록 흥미진진했던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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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는 사실 내용이 예측이 잘 안되었습니다. 짧지만 강렬한 책입니다. 처음부터 책에 빠져들 수 있었으며 정글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숨죽이며 나의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하며 보았습니다. 벌써 읽어본지 2년쯤 되옵니다. 올 해는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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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 프로아뇨’라는 이름의 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존이라는 거대한 밀림 속에서 이따금 인간들의 야만성을 잊게 해주는, 세상의 아름다운 언어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연애 소설을 읽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 노인을 통해 저자가 혹은 우리가 향해야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말이다. 솔직히, 연애소설과 노인이라는 두 단어의 불협화음에 이끌려 구매한 건 사실이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2021년을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연애와 사랑은 젊은이들의 소유라는 고지식한 개념을 가지고 산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행동하는 지성, 루이스 세폴베다(1949.10.4-2020.04.16)” 세풀베다는 작가이기 이전에 지칠 줄 모르는 여행가로 알려져 있다. 행동하는 지성으로 지칭되는 그는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반휴머니즘이 극도로 팽배된 사회, 가진 자와 없는 자의 차이가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루는 사회라고 말한다. 일례로 그는 오늘날의 세계를 흔히 [지구촌]이라고 표현하지만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의 비문명 지역이나 저개발 지역을 배제하는 지구촌이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그것은 단지 장보 통신을 장악하고 소유한 국가나 개인 또는 그것에 관심을 가진 자들만을 위한 거짓구호라고 질타한다. 모든 국가가, 모든 인종이, 모든 인간이 함께 누려야 할 진정한 지구촌의 개념은 이 지구상에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p172, 역자 정창. 다양성에 대한 인정, 인식의 자유로움은 내게 있어 역자가 말하는 것 처럼 단지 허울일 뿐인가 싶어 반성하게 된다. 행동하는 지성이라니 정말 멋진 분이다. 그런 분이 안타깝게도 20년 4월 코로나19로 생을 마감하셨다. 생의 언저리에서도 자연 앞에서 취해야 할 인간의 태도를 생각하셨을 것만 같은 분,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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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된다. 다음은 책의 내용 중 인상적이었던 문장들이다. "죽은 짐승의 털을 어루만지던 노인은 자신이 입은 상처의 고통을 잊은 채 명예롭지 못한 그 싸움에서 어느 쪽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고생각하면서 부끄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노인은 눈물과 빗물에 뒤범벅이 된 얼굴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짐승의 시체를 끌고서 강가로 나갔다. 그는 그 짐승의 시체가 우기에 불어난 하천을 따라다시는 백인들의 더러운 발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거대한 아마존 강이 합류하는 저 깊은 곳으로 흘러가길 바라면서, 그리하여 영예롭지 못한 해충이나 짐승의 눈에 띠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지길 기원하면서 강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노인은 느닷없이 화가 난 사람처럼 손에 들고 있던 엽총을강물에 던져 버렸고, 세상의 모든 창조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그 금속성의 짐승이 물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