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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죽음을 앞둔 아버지가 병상에서 가족들을 향해 '밥 좀 잘 챙겨 먹어라'고 이야기 했을 때, 왜 이런 이야기로 서평을 시작하게 되느냐 하면, 그러나 생각해보자. 그리하여 이 책의 가치는 역설적으로 '극적이지 않은 일상'의 전개에서 발견되어진다. 만새기, 식수, 폭풍, 바다, 줄창 반복되는 일상에 관한 기록을 읽다보면, 어찌되었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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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항해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죽음보다 더 가혹한 일이다. 내 마음속의 가장 극악한 부분을 찾아 진짜 지옥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면 지금이 정확히 그 장면이라 할 것이다.”거대한 파도와 누더기가 된 구명보트에 실려 오직 죽음만이 엄습하는 검푸른 대양의 한가운데 절망에 빠진 나라면 내 육신에 영원한 안식을 주고 말지 않았을까? 그 고통과 실의의 깊이가 얼마나 깊었을까?
육신이 흐물흐물 완전히 곤죽이 돼 이성의 명령을 잘 이행하려 들지 않고, 그저 휴식만을 원하고 고통에서 구제받을 길만 찾으려 할 때, 그리고 영원히 구원의 손길에 닿을 수 없는 끝나지 않을 극악한 환경의 연속이라면, 우린 그 때에도 살아낼 수 있다고 자아를 재촉할 수 있을까? 대서양의 한가운데 저자‘스티븐 캘러핸’의 6.4M 소형 순양함‘솔로’호가 침몰하고, 구명보트에 다급하게 생존을 의지하기위해 몸을 옮길 때, 그의 뇌리에 수없이 교차하는 당혹스러움과 절망감, 그리고 죽음의 공포, 살기위한 본능적인 구상들이 나의 뇌에서도 공감을 일으킨다. 이제 망망대해에 그야말로 漂流(표류)가 시작되었다. 그에게 주어진 76일간의 잔혹한 삶과 죽음의 시험의 여정에서 오늘에 이르는 나의 인생여정이 이처럼 표류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은 지나친 비유가 아닐 것이다. “어제는 내리쬐는 햇빛으로 600그램의 신선한 물을 만들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구름덕분에 살이 타 들어갈 것 같은 오후의 햇살은 피할 수 있었지만, 나의 생명수는 그 양이 줄어들 것이다. 삶은 모순투성이다.”이처럼 삶은 양면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大海(대해)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저 끈질기게 반응하는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그칠 줄 모르고 지속되기만 한다면, 그래서 캘러핸의 감정에 불쑥 불쑥 끼어들던 그‘정신적, 육체적 신경의 모든 방어막이 벗겨 나가고 완전히 맨 몸뚱아리가 노출되어버린 듯’한 절망만이 맴돌고 있을 때, “넌 죽어!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하고 정신과 육체의 방임으로 치달을 것만 같다. 그러나 그의 “ 그래. 반드시 이 고비를 넘기고 말겠어. 다시 시작해. 문제를 가려내.”하는 이성의 승리를 견인하는 독백에서 절로 숙연해짐을 느낀다. 주변에 사랑하는 이들이 있고, 평온한 환경이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데 나약해빠진 회피와 절망, 의기소침이 부끄러워진다. 76일간의 표류를 가능케 해준 그의 생명선인 구명보트‘러버더키3호’, 그리고 그의 친구이자 主食(주식)이 되어 준‘만새기’와의 생존을 둔 혈투는, “자연의 경이란 추한 공포에 둘러싸인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라는 그의 표현처럼 살아남기 위해 반응하는 강렬한 깨들음과 엄청난 열정의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각인된다. 스칠 듯 지나가는 대형선박들을 향해 쏘아 올리는 조명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지나쳐버리고, 아련히 그 모습이 사라짐을 바라보는 표류자의 심경에서 안타까움이 묻어나고, 구명선 바닥이 찢겨 생존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버리는 극한적 좌절에서 취약하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지만, “신체적 자아와 본능이 일종의 무대 감독으로서 모든 현실을 재배치하고 통제”하는 캘러핸의 ‘생존의 세계’에서 인간의 숭고한 정신적 승리를 보게 된다. 항로의 끝이 어디가 될지, 그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아니면 영원히 그 끝에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르는 표류자로서 그의 역할 - 그저 해류를 따라 이동하는 구명보트에서 기다리기, 어패류를 잡아먹을 것, 잡은 물고기를 잘 손질해서 저장하고 배분해서 먹기, 증류기를 소중히 다루어 식수를 확보하기 -이지만, 그는 이렇듯 단순하기까지 해 보이는 역할에 미묘한 변화가 생길 때 마다 결정적인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게 하는 심각한 파장이 들이친다. 나는 정말 죽고 말았을 줄 모른다. 그러나 그에게서 “가능성에는 한계가 없다. 머리로 상상하는 것은 실제로도 존재할 수 있다. 마음속 창조의 세계는 결코 물리적인 법칙의 제약을 받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절대적인 음식공급이 결핍된 조난의 혹독한 생존을 위한 시간 속에서 “내 몸에 양분을 공급하기위해 내 감정에게 살해를 강요한다. 나 자신에게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나의 팔과 다리에게 노역을 강요”하는 처절한 극기에서 다시금 작은 장애에도 엄살을 부리기만 하던 내 인생항로의 왜소한 굴절이 가소로워지기도 한다. 아홉 척의 선박이 그를 보지 못하고 지나갔고, 열두 마리의 상어가 그를 위협했다. 그리고 생존과 죽음의 아슬한 싸움의 76일째, 세 명의 검게 그을린 사람들, 그들의 배 ‘클레망스’가 그의 앞에 나타나고, 캘러핸, 그의 앙상하고 상처투성이의 몸에 번지는 환희가 바로 나의 감동이고 승리이고 기쁨이 되어 “삶이란 바로 권리가 아니라 선물이라는 점”을 깊게 이해케 된다. 우리네 삶이 캘러핸의 표류보다 더 악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공포에서 그리고 생존을 위한 정신과 육체의 갈등에서 바로 우리 인간 본연의 숭엄한 이성과 행동을 본다. 또한 그의 표류처럼 그 항로의 끝을 모르는 여정처럼 우리의 인생항로의 끝을 알기도 힘들다. 그러나 “도전이란 늘 위기를 통해서 우리를 혹독하게 시험”하지 않는가? 그 시험을 끝내고 나면 바로 달콤한 가정이 있고, 평온한 침대와 사랑스런 가족이 있음을 새삼 고맙게 느끼게 되지 않는가? 그의‘숱한 약점과 절망’, ‘존재의 무의미함’에 대한 깨달음에서 삶의 겸손을 배우게 된다. 캘러핸의 표류는 정말 값진 고귀한 경험을 안겨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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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마음에 꽉 들어차는 책을 만난 느낌이다.
<표류>라는 제목이 주는 딱딱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건 순전히 표지의 시원한 바다 사진 때문이었다. 물론 표지의 바다는 뜨거운 여름날의 열정적인 바다는 아니었지만.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라는 부제를 굳이 읽지 않더라도 표지의 바다 사진으로 충분했다. 뭔가 내게 많은 말을 걸어 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이구나 하는 느낌. 그렇게 책읽기는 시작되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졌다. 바다를 사랑해서 대서양 횡단이 꿈이었던 한 사내가 어른이 되어 진짜 바다를 건너게 되고, 그 속에서 예기치 않은 풍랑을 만나고,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살아남은 이야기.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하다. 저자가 실제 겪은 일을 항해 일지로 적은 책이라 그런지 마치 내 옆에서 이야기 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생생하다. 퍽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책이 단순히 예기치 않은 사고로 76일간이나 바다를 떠돌다 살아난 기적적인 인간의 사건사고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 있다. 망망한 바다에 홀로 떠돌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저자의 독백을 듣노라면 지금 나의 이야기를 하는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내 현실에 가까운 것들이다.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가 느끼는 고민들, 나의 연약함, 나의 한계들이 그의 독백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그가 바다에서의 사투를 통해 자신의 못난 부분들을 수용해 가고, 바다의 풍요로움에 다른 사람들에게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는 모습들을 보면서 나 역시도 그처럼 넉넉해지기를 꿈꾸게 되었다. 감상적이고 나약한 인간들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신물 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강해지고 싶고 삶을 더욱 소중하게 살아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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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자극제가 필요했다. 똑같은 매일. 지겹고 지루한 하루. 마음은 공허하고 답답하기만 했다. 뚜렷한 목표도 없고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다. 흥미를 가져도 잠깐 뿐이다.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나에겐 무엇이 필요한 걸까? 우연히 인터넷을 카페를 통해 이 책을 알게 됐다. 표류라... 제목이 끌린다. 내가 지금 표류하고 있지 않은가. 내게 해답을 찾아 줄 책인 것 같았다.
이 책은 신기했다. 망망대해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 법이나 작살총의 사용법, 구명선 튜브에 난 구멍 메우는 법, 증류기 사용법등은 아무리 읽어보아도 배에 관해서, 항해에 관해서 문외한인 내게 너무 어려운 설명이었다. 그림으로 따로 설명해 두었지만 그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저자가 결국 구조된다는 결말도 알고 있었지만 저자의 급박함, 고독, 고통, 절망, 기쁨, 행복 등의 생생한 감정 때문에 마지막까지 이 책을 따라 가고 싶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쉬웠다는 저자.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지 않나 싶다.
의식주가 부족한 상황에서 급변하는 바다를 주시해야하고 상어나 다른 생명체들의 공격에 대비해야하며 구명선 체크로 할 일이 끊이지 않는다. 잠을 편히 잘 수도 없다.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고독하고 힘들다. 생존에 이보다 더 열악한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저자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그 일을 한다. 생존을 위한 그의 활약상은 정말 대단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없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이 있고 편히 입고 맘껏 먹을 수 있으면서도 만족이란 것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그들보다 더 좋은 것을 원했고 필요로 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자 나는 지금 충분히 풍족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게 부족한 것은 내 주위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것. 저자에겐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이였다. 저자는 어려울 때일수록 자신보다 더 힘든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그 상황을 이겨냈다. 포기하지 않는 것. 생존에 필요한 것은 이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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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단순히 조난을 당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아닌, "바다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이란 부제처럼 깊은 꺠달음을 주는 책이다.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놀라운 탐험 기록으로 꼽히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해양 모험기 중 하나"라는 소개글이 보여주 듯 이 글은 탐험소설의 백미를 보여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이 아닌, 생생한 사실만을 바탕으로 쓰여진 살아있는 글이다. 표류라는 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망망대해에서 조난당한 주인공이 76일간 바다에 표류하며 겪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우연히 바다에서 조난당한 후, 어려운 과정을 거쳐 살아남아 께달은 것들에 대한 글이다. 작가는 바다에서 표류하면서 바다를 통해 깨닫고 배운 것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글쓴이가 바다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게 해주는 그 위대함을 사랑한다고 했던것처럼 바다는 우리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큰 존재인 것만은 확실한 듯 하다. 1981년 소형 범선인 나폴레옹 솔로 호를 만든 스티븐 캘러핸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대서양 1인 횡단에 나선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조난을 당하게 되고 그는 망망대해에서 표류하고 만다. 그는 자신이 곧 구조될 것이라 생각하고 바다에서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그의 생각처럼 그의 구조는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고, 그는 겨우 탈출한 작은 고무보트에 몸을 의지한채 하루하루를 살아나간다. 그는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주변 여건에 맞춰 고기를 잡아먹고, 바다의 모든 것에 대항하며 하루하루 탐험과 같은 삶을 살아 나간다. 하지만 항상 그는 희망을 잃지않으며 항해 일지까지 쓰는 열의를 보인다. 만약 그가 희망을 버렸다면 우리는 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운 글을 절대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으며, 비관하지 않고 주변 환경에 맞추어 생존 방법을 찾아나갔다. 그는 조난이라는 최악의 상황에서 고무 보트가 구멍나고, 구조신호를 보내도 발견되지 못하는 등의 더 큰 절망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살아남은 불굴의 의지를 보여줬다. 견디고 노력하고 역경에 투쟁하고 적응하는 과정과 결국 그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고, 또한 우리에게 시사하는바가 너무 컸다. 요즘 경제가 어렵고 실업자가 많아지는 최악의 상황에서 절망하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또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을 헤쳐나가고 극복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 책은 희망이 보이지 않아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큰 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의미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희망을 찾았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 또한 이 책에서 한줄기 빛을 보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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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뙤약볕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헤매다 돌아 왔습니다. 사실은 아니고 스티븐 캘러핸 의 바다에서 76일간 표류하며 살아남은 뒤에 쓴 이책 표류가 얼마나 몰입감이 좋은지 마치 제가 바다위에서 사투를 벌이다 겨우 구조 된듯 하달까요... 스티븐 캘러핸은대서양 횡단 모험가로 직접 선박을 설계하고 전 재산을 쏟아부어 솔로호라는 선박을 만들어 항해에 나섭니다. 항해6일만에 폭풍우가 몰아치는 와중에 고래와 부딪쳐 배가 난파하며 고무 구명선을 타고 바다위를 표류하게 되죠. 바닷물에 의해 온몸은 부스럼 투성이가 되고 먹을건 부족해 지방이 빠지다 못해 근육이 근육을 잡아먹는듯한 고통 속에서도 캘러핸은 삶의 끈을 놓지 않고 두려움과 절망을 이겨내며 망망대해를 떠돌고 몸이 부패해가기 시작하는 와중에 결국 마리 갈랑트섬 어부들에게 발견되어 구조 되죠.
어찌나 긴박하고 절박한 심정을 절절히 써놓았던지 구조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우와~"하고 탄성을 지를 정도 였습니다. 그 고통도 고통이지만 주인공의 자기성찰 이야말로 이책의 백미죠. 자신이 현실에서 얼마나 달아 났던가? 표류과정에서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 실수는 곧 죽음과 연결되므로... 캘러핸은 자신이 생환함으로써 약점을 깨닫고 보완할 기회가 주어진 것에 감사하죠. 우리역시 인생이라는 바다를 표류하는지도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는새 엉뚱한 실수로 배를 가라 앉히고 있는건 아닌지... 좀더 우리의 삶에 감사하고 주변에 좀더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게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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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와우!
2. 나는 아직 로빈슨 크루소를 읽어보지 못했다. 그냥 그런 양반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안다. 그리고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보았다. 포레스트 검프가 조난 당한 이야기였다. 택배회사 직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거긴 또 언제 취직했대?) 혼자 살아남아 무인도에 도착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도저히 혼자서는 안되겠는지 뗏목을 만들고, 빤스바람으로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극적으로 구조되기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시 한 번 봐야지.
3. 이 책은 뭐랄까, 다큐멘터리 조난 수기 같은 글이다. 그러니까 실화이고 제목처럼 표류이야기이다. 에세이의 형식이 어디까지 적용되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수필형식은 아닌 것 같다.
4. 이 책은 저자의 배가 바다위에서 꽈당한 이후에 조그만 고무 구명선 안에서 76일간을 바다에서 표류한 이야기이다. 아우. 표류 1일째, 2월 5일. 이런 형식으로 구조되던 표류 76일째 4월 21일까지 이야기는 계속된다.
5. 이 책은 매우 매력적이고 놀라운 책이다. 이 책을 읽고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멋있다! 였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소설보다 강렬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품고있다. 저자가 표류해서 생존하기까지의 과정이 정말이지 생생하게 잘 묘사되어있을 뿐더러, 사람을 깊이 몰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읽는 중간 중간 이 책이 소설이 아닐까 싶을 만큼 문학적 감성이 빛나는 문장들도 있었고 또, 우리의 삶 전체를 되새겨 볼만한 멋진 문장도 곳곳에 등장한다. <구름 덕분에 살이 타들어 갈 것 같은 오후의 햇살은 피할 수 있지만, 나의 생명수는 그 양이 줄어들 것이다. 삶은 모순투성이다.> 109쪽 <삶에 대한 근본적이고도 생생한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본능을 교육에 의해 얻은 이성이 어느 정도까지 통제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122쪽 <무엇이 진실이 아니고 무엇이 가당찮은 것인지 누가 감히 단언할 수 있겠는가?> 134쪽 6.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저자의 내면묘사였다. 호기로움과 좌절을 연거푸 겪는 저자의 내면이 정말정말 리얼하게 잘 묘사되어있었다. 이것은 어떤 일이든 끊임없는 도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심리적인 변화이어서 읽는 내내 맞아, 그래, 그 기분 뭔지 알것 같아. 그랬고, 그러다 보니 저자와 함께 힘내라구! 를 외치고 앉아있게 되었다. 정말 삶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역경을 겪어보고 또 그것을 극복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단순히 한 사람의 표류이야기라기 보다, 한 사람이 인생을 살아나가는 데 있어 겪게 될 모든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살아 펄떡이는 감동과 교훈이 생생한 글이다.
7.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이야기, 노인이 사투를 벌여 쟁취한 상어가 그의 꿈이고, 그의 꿈을 배에 매달아 돌아오는 길에 또 다른 상어로부터 습격을 받는데, 얻고자 했던 꿈이 또 다른 꿈의 공격를 받아 종국에 뼈만 남게 되는 거대한 숨은 의미를 깨닫는 순간, 전율같은 반전을 느꼈었다. 얻고 잃는 것이 모두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커다란 메시지 말이다. 이 책 역시, 책 이상의 의미를 가진 책이라고 볼수 있다.
8. 중간중간 그림이 등장하는데 그림도 참 잘그렸다. 만세기 녀석이 진짜 만세기를 닮았더라. 그런데 만세기는 우리가 남태평양 휴양지에 놀러가서 요트 태닝을 하거나, 열대어 낚시를 할 때 종종 보게되는 돌고래들 만큼이나 큰 물고기이다. 물론 큰 놈들은 말이다. 그런데 그런 놈을 조그만 작살로 잡아 올린다는 게, 처음엔 좀 이해가 안갔다. 바다 낚시를 건져 올리는 건 봤어도 조그만 구명보트에서 만세기를 작살로 건져 올리다니, 대략 난감. 사람이 궁지에 처하면 슈퍼맨적인 기질이 생긴다는 사실이 사실인가 보다. 그렇다. 이 책이 완전히 100%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저자의 욕심이 조금 가미되어서, 그러니까 또 다른 조난자들에게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비교적 상세한 전문지식이 책의 중간중간에 등장한다. 실제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는 상당히 유용한 지식으로 이용될 것이라 추측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약간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뭔 말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저자도 그 생각을 했는지 종종 그림을 곁들어 더 자세히 설명하곤 했지만 여전히 봐도 모른다.
9. 그러나 그런 것에 연연하지 말기를 권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그 모든 걸 커버할만큼 생생한 체험이 살아 숨쉬니까. 나의 경우는 거의 저자의 입장이 되어서 같이 한탄하고 같이 힘을 내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더라. 특히 구조 장면은 매우 짜릿했다. 귀신보듯 쳐다보는 어부들을 바라보며 저자가 외치는 외침은 가히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자신은 괜찮으니까 물고기부터 어서 잡으라는 장면. 정말 가슴이 찡했다. 자신은 이미 살아있는 시체라 할만큼 만신창이가 되어있음에도 구조된다는 기쁨 하나로 "나는 괜찮아요. 물은 많이 있어요. 기다릴수 있어요. 물고기를 잡아요. 물고기!" 라고 말하는 장면....아흐! 그의 기쁨이 마치 이온 음료처럼 내 온 몸 속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10. 생각해보라. 76일. 두 달이 넘는 기간동안 망망대해에서 먹을 거리, 물 한 모금 없는 구명보트에 몸을 의지해 76일을 지낸다는 상상을 해보라. 육체가 시들어가며 정신 또한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함에도 저자는 이겨낸다. 끊임없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낸다. 나는 단지, 그 위대한 경험, 저자의 그 위대한 체험 하나만으로도 그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인류 역사를 이끌어 온 인간의 가장 위대한 본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책은, 과연 뜨겁게 펄떡이는 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 권해주어도 최고의 선물이 될만한 가치를 지닌 책이라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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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 말그대로 바다에서 표류했던 내용을 일기의 형식으로 만든것이다. 준비단계 그리고 항해...표류...그리고 구출...
둘째는 지은이의 마음가짐이다. 아마도 모두가 저러한 상황에서 70여일을 살아간다는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울것이다.
세째는 일지에 나와있는 바다와 나...그리고 나의 육체와 마음의 표현이다.
아마도 현재 처한 상황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길 권한다. 내 삶의 가치에 대한 또 다른 부분을 깨닫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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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이렇게 이책이 좋지?
리뷰를 쓰려고 클릭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는 과정부터 표류하던 이야기가 사실감있게
그리고 박진감 넘치게 표현되어 있다!
가끔 사진과 상세한 묘사가 돋보이는 그림으로 당시의 상황을 머리속에 그려준다!
망망대해 속에서의 절망, 그리고 생존 욕구를 더없이 잘 표현했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나라면 이정도로 살지 않을 것이다."였다.
망망대해 속에서 앞으로 이 속도라면 몇십일을 홀로 떠내려간다는 것을 알때
끊임없이 전쟁하여 생을 지켜내리라는 결심을 하기는 참 힘든일이다.
아마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젠장"하면서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럼에도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야만인같은 식품을 먹고 짠 물을 마셨던 그가
존경스럽기 그지 없다.
삶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한 특히 나같은 사람은 필히 읽으면서
인간의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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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각하는 고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끝이 어딘지 잘 모르겠다. 내가 경험한 고통 자체가 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또 육체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그것이 가장 큰 고통같이 느껴지지만,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의 눈물 섞인 말을 듣다보면 그것이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 같기도 하다. 게다가 돈이 모든 것인 양 생각하기 쉬운 현대사회에서 돈 문제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 그 또한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고통의 크기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차라리 어떤 고통이 더 큰 고통인지 판단하는 것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객관적인 크기보다 고통 받는 사람이 느끼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여러 권의 책을 읽다보면 요즘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기계발전문가들은 자신의 고통 하나를 통해 강사나 저술가로 변화한 사람들이 가끔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니 가끔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만 봐도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을 스티브 도나휴,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의 여행>을 쓴 브라이언 트레이시, 얼마 전에 서평을 썼던 책인 <위대한 반전>의 플립 플리펜, 자기계발서의 원조와 같은 <성취의 법칙>을 로버트 콜리어와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를 쓴 앤서니 라빈스, 영성분야의 스터디 셀러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의 에크하르트 툴레 등이 바로 고통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이를 사람들에게 저술과 강연을 통해 전파하면서 유명해 진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나열하라면 A4용지 몇 십장을 쓰고도 부족하겠지만)
이 책 역시 일반사람들은 생각하기 어려운 저자만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이고, 저자는 이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즉 구명보트 하나로 막막한 대서양에서 76일 동안이나 표류함으로써 몸무게는 20kg이나 빠졌고, 땅에 내려 제대로 걷기까지(오랜 시간 바다 위에서 생활하다보니 딱딱한 땅에 익숙해지지 못해) 거의 한 달여 시간이 걸린 상황까지 갔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사실 조금 덤덤했다. 타고 가던 배가 침몰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조그마한 구명보트 하나에 의존한 삶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거기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몰랐다. 두려움, 안타까움, 목마름, 배고픔, 인내 등 우리가 평소 자주 듣는 이야기 이상 무엇이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표류해 본 적이 없는 내가 저자의 모습을 어떻게 상상해 낼 수 있겠는가? 큰 바다라고 해봐야 하와이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한가로이 칵테일 마시던 경험이 전부였던 내가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며 나도 모르게 서서히 저자의 급박한 상황과 심리적인 동요, 그가 탄 구명보트의 허술함 등이 마음에 와 닿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와 닿기 시작했다.
저자의 상황은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망막한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보이는 것은 짙푸른 바다, 거기에 지름 1.5m, 두께 15cm의 둥그런 고무보트에 혼자 앉아 잘 듣지도 않은 태양열 증류기와 약간의 음식(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분량)과 창살, 나이프 등 몇 개의 소지품만 가진 채 타고 있었다.
한 번 생각해 보라. 경포대에서 이런 보트를 타고 어디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나 전복되지 않은 채 떠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만약 큰 파도가 밀려온다면 그것을 어떤 심정으로 바라볼 것인지, 게다가 하루에 250ml(일반적인 컵 한잔 분량)의 물만 먹으며 버틴다면 말이다.
저자의 표류기 중에 가장 가슴을 저미며 봤던 부분은 구명보트의 바닥에 찢어져 바람이 새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잡은 물고기가 도망가면서 보트에 상처를 낸 것이다. 바람이 빠지는 상황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조금전만해도 15cm이었던 바닥이 6cm로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신의 몸 자체가 물속으로 쑥 빠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상어라도 지나가면 아마도 물밑으로 쑥 내려와 있던 그의 다리가 먹이인줄 알고 물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결국 바람 빠진 구명보트를 정비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씩 생각해 보며 수리에 필요한 방법을 찾아냈다.
그는 책에서 자주 말한다. 항상 이성과 감정이 싸우는데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판단을 위해 자신의 몸을 학대했다고. 항상 몸을 움직임으로써 나약해지려는 자신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었다고 말이다. 그 결과 구조되었을 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죽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쉬울 것 같아 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 썼다고 한다. 멋지지 않은가. (물론 저자 입장에서는 이런 표현 자체가 듣기 거북하겠지만 말이다.)
만약 자신의 고통 때문에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세상을 원망하며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면 이 책을 보라. 그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축복받은 삶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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