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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곳에서 지구 온난화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데 진정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 답을 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하는 기대로 구입했다.
학자의 양심을 걸고 진실을 공개한다는 투로 포장하고 있는데 읽어보니 처음의 기대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야말로 한심한 수준의 책이다.
지구 온난화라는 주제에 대한 학계 대다수 과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를 종합하면 "인간의 활동이 지구의 기온을 상승시키고 있다."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분명히 인간의 활동이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고 이 책에서도 인간의 활동으로 공기중에 이산화탄소 분자 수가 많이 늘었다고 적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대다수 학자들의 견해와 다르게 그것이 극소량이라 무런 위험성이 없다고만 한다. 이런 주장을 펴려면 최소한 얼만큼의 이산화탄소량이 적절한데 얼만큼 범위안에 들어있으니 괜찮다 정도는 과학으로 설명해놓고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그냥 많이 늘어봤자 얼마 안되는 양이니 괜찮다고만 한다.
실험 설계에 대해서도 다른 학자들을 비판하는데 다른 학자들이 지구 수증기 등의 흐름을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기후 예측 모델에서 그런 부분을 배제하고 모델을 만든다고 한다. 당연히 예측 불가능한 것은 제대로 만들어진 모델이 될 수 없고 그 실험 결과도 인정받을 수 없다. 과학자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나. 분명히 예측 불가한 것이라면서 그런 시스템이 있어서 인간의 활동과 관계없이 균형이 유지된다고 막연한 주장을 펼친다. 마치 약장사가 약 광고하면서 자기가 아는 누구누구가 이러이러한 효능을 봤다고 외며 만병통치약이라고 광고하는 수준이다.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를 못 하면서 어떻게 그게 그렇게 돌아간다고 주장하는가. 그러면서 어떻게 다른 학자들이 그 부분을 제외하고 모델을 만든다고 비판하는가. 신약을 임상실험할 때도 실험군과 대조군을 두고 약을 먹은 사람과 위약을 먹은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데 약이 어떻게 작용해 어떤 효과가 나올거라는 예상을 가지고 한다. 이를테면 우울증 환자는 세로토닌의 분비가 부족해서라는 가정을 가지고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를 투입해 효과를 보는 식이다. 실험에 따라 환자에게 차도가 있으면 그 가정이 맞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틀리는 것인데 과학자라고 하는 저자는 실험 설계에 있어서 전혀 기초를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모델을 설계할 때 당연히 어떤 가정을 가지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는 것인데 저자는 그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 문제가 없다는 식의 막연하고 황당한 주장을 펼친다. 그래도 이 부분은 그럭저럭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모델에 모든 변수가 다 들어가지 않으면 정확한 계산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을 지적한 부분은 인정해줘야 하니까.
하지만 앨 고어를 거론하며 대체에너지를 비판하는 부분에 가서 진정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다. 대체 에너지 산업에 주어지는 각종 이득과 보조금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고 하며 경제성이 따른다면 알아서 발전할 것인데 왜 거기에 지원하느냐고 비판한다. 마치 어떤 독수리가 새끼를 절벽에서 밀어서 날게 되는 녀석만 살아남고 날지 못하는 녀석은 죽게 한다는 것처럼 저자는 그야말로 무한 경쟁 야생의 시대를 원하는 것이다. 세상은 혹독한 것이니 약한자는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게 당연하고 부자는 열심히 살아서 부자가 된것이니 세금도 줄여주고 우러러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결국 이런 얘기들이 하고 싶었던거였구나 하고 느꼈다. 미국 리퍼블리칸들의 전형적인 주장. 세상은 혹독한 곳이라 철저히 자기를 제어하며 노력하는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논리.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부족한 사람은 틀렸다고 하는 그들의 논리. 지구 온난화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을거라는 기대로 책을 선택했지만 예상과 달리 어이없는 책을 고른 것이었다. 매번 인터넷에서만 보고 책을 구입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느꼈는데 이렇게 최악인 적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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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많이 녹아 배가 지나다닐 수 있는 항로가 생겨버렸다며 부산이 아시아의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뉴스보도를 불과 몇 시간 전에 들었다. 그럼 북극 빙하가 사라져 걱정이 태산인 기후학자들과 반대로 우리(대한민국 국민들)는 즐거워해야 하는 건가? 그렇다면 빙하가 사라져 서식지를 잃어가는 북극곰들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얼마 전의 마음은 접어야하는 건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니 조금도 모르겠다. 지금껏 지구 온난화는 전 지구인이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 할 무엇이였고, 우리는 후손에게 잘 물려줘야할 의무를 갖고 있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고갈되어가는 자원.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며 자연은 우리의 소유가 아닌 잠시 빌려 쓰는 것 뿐이라던 교육. 그것에 일말의 의심도 반항도 없었다. 당연히 그래야하는 줄 알았고, 그래야 맞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란다. 이 무슨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란 말인가.. 저자는 말한다. 정치인들이 맹목적으로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정보로 무장한 대중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략- 대중은 환경과 관련된 온갖 으름장을 하나도 빠짐없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대중이 꿈꾸는 가상의 세계는 환경 관련 규제가 어떤 부정적인 영향도 끼치지 않고 위험은 전혀 없이 편익만이 제공하는 세계이다. p21 나 역시 그랬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앨 고어의 활동을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에 물러나서도 선거철만 되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짓 말고, 전 지구적인 활동을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이다. 나는 환경을 배척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오랜 연륜을 가진 삼림을 보존하고, 물의 오염을 최소화하고, 에너지를 보존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자연의 이런 요소들이 가치를 갖는 것은 그 무엇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을 기본권을 타고났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그것들에게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p147 그 옛날 할어버지께선 6시에 저녁을 드시곤 전깃불을 끄고, tv만 틀어놓으셨다고 한다. 행여 엄마가 방에 불을 켜놓으면 헛기침을 하시며 ‘애미, 불꺼라~’라고 하셨단다. 대발이 아버지만큼이나 절약에 철저하셨던 할아버지. 나 역시 그 영향인가? 집에서 뿐만 아니라 목욕탕에서도 수돗물을 콸콸 틀어 놓치 못한다. 조금만 넘치려 해도 잠그고, 물이 넘치면 내 자리가 아니라도 신경 쓰이고, 돌아다니면서 스위치를 내리고.. 난 그게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도요금이 저렴하단 이유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전기요금이 누진제로 바뀐 후론 부쩍 전기요금에 신경을 쓴다. 이 역시 그 가치에 따른 사람들의 인식인가? 사회의 욕구는 무한하지만 사회가 가진 재정적 자원은 유한하므로,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은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다른 문제들에 들어가는 비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p179 가장 중요한 것은 편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극소화하는 방향으로 환경 규제가 구상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p182 그는 환경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몇 십년 안에 빙하가 녹아 지대가 낮은 나라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고 일어나지 않을 일에 대해 미리 불안감을 조성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환경에만 올인 할 수는 없다는 의견. 그건 내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사실이였다. 어느 곳에서도 ‘지금 아니면 늦고 만다’라고만 말해줬을 뿐이였다. 우리는 전기를 지속적으로 이용하기를 바라면서도 발전소가 더 세워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풍력 발전을 더 많이 이용하기를 바라면서도, 풍력탑이 풍경을 망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쓰레기와 폐물을 내다버리기를 바라면서도 더 많은 매립지가 들어서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원자력이 공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고 좋아하면서도, 원자력 폐기물과 안전성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p210-211 현대 세계에 기근이 존재하는 것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물론 가뭄 때문에 식량 사정이 악화될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기근의 해법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식량이 도달할 수 없게 하는 정치적, 경제적 장벽을 제거하는 데 있다. p219 휘발류 대용의 식물성 에탄올의 생산이 증가하면, 식량 가격이 상승하는 예상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수용에 비례하여 공급이 증가하지 않으면 곡물 가격은 상승하고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p245 정말 그렇다. 지구의 허파 아마존 밀림의 나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잘려나가는 것은 가난한 그들에겐 밀가루와 맞바꿀 것이 나무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밀림을 보존해야한다고 말하지만 선진국에서 썩어나는 음식물 쓰레기는 줄어들지 않으며 수요와 공급은 언제나 불일치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가진 것이 많은 자들은 평균 온도가 올라가면 에어컨의 설정온도 다이얼을 낮추고, 황사가 불어오면 공기청정기를 돌리며 수돗물이 의심스러워 정수기를 사용하면 그만인 것이다. 그들에겐 물 한 방울을 얻기 위해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야하는 아프리카 원주민도 황사로 인해 고향을 버려야하는 중국 내몽고인들도 먼 나라 이야기 일 뿐일 것이다. 저자의 모든 주장에 대해 찬성하진 않지만 그의 용기 있는 선택엔 힘을 실어주고 싶다. 지금껏 그 누구도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의견을 내놓치 못했던 것 같다. 모든 지구인들을 포용할 수 있는 환경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란 걱정부터 앞서지만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진실’을 찾도록 우리 모두 좀더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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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커넥션은 IPCC 전체와 엘 고어가 지구 온난화에 힘쓴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가운데 나온 용기 있는 보고서였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NASA에서 대기과학을 업으로 삼아온 과학자로서 동료 연구자들을 비판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음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서론부터 강도 높은 비판으로 시작한다. 과학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적으로만 지구 온난화를 이용하려고 하는 현실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공부하는 마음으로 IPCC 보고서와 함께 비교하며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작가는 지금의 세태를 위트 있게 비판하면서도 정확한 과학적인 내용들을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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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위대한 지구 온난화 사기극'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전혀, 불과 1%도 채 안되는 농도를 가지고 있다. (수능에 나온다며 별을 한 10개는 쳤던 걸로 기억한다.) 기자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욕 한바기를 먹을 수 있든, 누군가를 흥분시킬 수 있든간에 그래서 이런 제목의 기사를 실어버리곤 한다. "온실 가스 1% 증가 시 대기 온도 크게 상승"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위의 경제력과 정치가 합해지면 그야말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과정을 보자. 물론 '지구 온난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겠다. 그들이 미쳤다고 '지구 온난화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연구할까? 당연히 '지구 온난화에 대한 심각성'에 대해 연구하겠지. 설득을 위한 설득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겠다. 과장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물론 이 책의 저자도 기상학자이니 결국 지구 온난화에 대해 약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책의 말미에는 지구 온난화의 해법, 아니 지구 온난화 과장에 대한 해법을 몇 가지 실어놓았다. 지구 온난화가 과장됨에 따라 배운 '지속 가능한 연료'의 개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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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내 기억력이 원망스럽다. 주위에 보면 책 속의 내용을 잘 외웠다가 적시에 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던데, 나는 그게 통 안 된다. 분명히 읽을 때는 잘 읽어둔 것 같은데, 다 읽고 나면 세세한 내용들은 몽땅 사라져 버리고, 결론만 남는 것이다. 그 결론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를 해 주고 싶어도 결론에 이르는 과정에 대해 기억을 못하니, 이제까지 알아왔던 상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것일수록 나를 난감하게 만든다. 말은 하고 싶은데, 할 말을 기억 못한다는.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쩐지 요즘 내가 꽤나 지구 차원에서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런 류의 책들이 자꾸 내 손에 잡히는 것도 그렇고, 관심이 계속 이어지는 것도 그렇고. 살면서 지구나 우주에 대해 생각해 보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다못해 우리나라의 운명에 대해 생각하는 일조차 뜸한 형편인데,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동네에서 직장까지의 길에서 뱅뱅 도는 일상을 벗어나 우주에서는 한 점으로도 보이지 않을 지구를 생각해 보다니. 과학 관련 책인줄 알았는데, 과학보다 사회 문제와 더 큰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내게는 새롭다. 과학이 과학의 영역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이 책을 쓴 작가의 말대로라면 과학은 정치와 경제의 구속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영역이다. 하기야 이런 내용의 영화를 간간이 보기는 했다. 참된 과학자가 참된 연구를 하고 싶어도 돈 많은 기업가와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가 때문에 위험에 처한다거나 연구를 포기해야 한다거나 하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렸던 영화들. 이 책은 용기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준다. 정말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될까. 그것도 이른바 '돈'을 안 주겠다는 생계 위협까지 받아가면서 진실이 아니라고 드러내놓을 수 있는 용기. 나는 작가의 그 용기가 너무 위대하게 보여 그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하는 말들, 특히 기후와 관련된 과학적 지식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그가 하는 말의 취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무비판적으로. 그가 책 속에서 한 말처럼, '유익한 편견'을 갖고 싶었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종 하나가 이렇게 저렇게 까불어댄다고 해서 영향을 받을 별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 아주 약간의 영향을 받기는 하겠지만, 오로지 인간만의 힘으로 지구의 생존을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겪는 온난화도, 이상 기후도,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지구 역사의 한 과정이라는 것. 그것을 마치 오늘날의 인간들이 몽땅 저질러 놓은 잘못의 결과인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그 틈을 타서 돈을 벌려고 하는 정부와 기업가와 빌붙어 사는 환경단체들을 비판하고 있으니. 나같은 독자는 홀라당 설득당할 수밖에. 가난한 사람들,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그지없이 안타깝다. 자유 시장 경제 체제에서 살고 있는 내가, 이만큼이라도 잘 살고 있는 내가,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부와 여건들이 그저 고맙고도 미안하다. 작가가 당부한 말 두 마디가 남아서 나를 떨리게 한다. 1. 다른 사람에게 쓸모있는 일을 하라는 것 2. 지식으로 무장하고 목소리를 내라는 것 (그런데 지식이 외워지지 않으니 이 노릇을 어찌할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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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지구온난화'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한 기후 과학자가 쓴 책이다. 스스로를 '온난화 회의론자'라고 부르는 그는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사실과는 다른 다소 충격적인 논조를 편다. 바로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언론과 학계에 의하여 보고되어져, 이제는 '진리'가 되어 버린 '지구온난화'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사건의 범인이 '인간'(혹은 그들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 아니면 누구란말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도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인류의 탐욕이 만들어낸 원죄는 아니라는 것이다.
기후 변화와 관련하여 과학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대부분의 기후 과학자들은 기후 시스템의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전산화된 기후 모델들은 지구 기후의 여러 가지 평균적인 측면들을 본뜬 여러 가지 물리적 과정을 포함하고 있을 뿐, 자연에 전재하는 중요한 안정화 과정들을 모두 포괄하고 있지는 못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후 시스템의 민감성에 대한 기후 모델 개발자들의 믿음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기후 모델들에 대한 과신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 모델들 안에 현실의 기후 시스템 내부에 존재하는 일체의 안정화 과정들을 포함시키려면 높은 수준의 이해가 요구된다. 기후 모델들은 지나친 단순화에 의존하기 때문에 아직도 현실적인 기후와는 동떨이진 경향을 보이는 것이다. 기후 모델들은 인류가 발생시키는 미미한 온실효과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 [10장. 기후의 미래, 인간의 미래]중에서...
이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굉장히 복잡하며 현재의 과학으로는 그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지나친 단순화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간'을 지구온난화 사건의 주범으로 몰기에는 증거가 너무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단지 심증에 의해서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는 안되고, 좀 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 인간이 그 사건의 피해자이고 가해자이며 동시에 배심원이기 때문에....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기상학 박사이며 전 미국우주항공국(NASA)의 기후 연구원이기도 했던 저자의 이력때문에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 도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과학보다는 사회학적 접근을 통하여 이야기를 풀어 나감으로서 기상학에 대한 과학적 지식이 전무한 나 같은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약간의 '까칠함'이 느껴지는 저자의 유머도 읽는 재미를 더 해준다. 다만, 저자 자신이 기후변화에 대한 낙관론을 펼치면서 제시한 경제적 정치적 담론들은 앞서 저자가 비관론자들의 오류로 지적한 '지나친 단순화'의 잘못을 그대로 답습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 시장경제 체제의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그 효율성을 강조한 나머지 자신의 논조에 힘을 실어주지 못한것 같다. 하지만, 한쪽으만 편향되고 종교화된 맹신이 지배하는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새롭고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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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홍수, 토네이도, 허리케인 등
이러한 현상은 기상의 이상현상일까, 그저 일어날 것이 일어난 자연현상일까 지구온난화의 문제가 제기되기 전까진 자연현상이었을 테지만 지구온난화에 대한 염려가 해마다 강해지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해 야기된 이상현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렇게 보자면 인간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히는 자연현상들의 원인은 사실상 지구온난화라는 말로 해석해도 될 듯 하다. 뉴스에서 간간히 접하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소식. 지구온난화로 인한 연평균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몇년후에는 몇도 상승해서 남극의 빙하가 녹아 버릴 것입니다. 철새들이 이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등등의 뉴스를 접하면은 지구가 곧 멸망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전기를 아껴쓰면 연간 몇억원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 등의 공익공고는 마음을 꽤나 고무시키는 안전장치 역할도 한다. 하지만 내가 이책을 읽은후 느낀점은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지구종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정책 및 언론의 보도가 편파적일수도 있다는 점이다. p86 "온실효과는 지구를 생물이 거주할 수 있을 만큼 따뜻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많겠지만 "기상이 지구를 생물이 거주할 수 있을 만큼 차갑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꽤나 아이러지 하지 않나. 어떻게 하나만 보고 다른 하나는 보지 못하는 것인지. 일반인이 전문가는 아니다라는 맹점을 이용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온실가스로는 수증기, 이산화탄소, 메탄이 있다. 인간이 석유등의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가 매년 누적되기 때문에 이것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인데 이러한 이산화탄소 분자는 공기분자중 극히 미세한 소량이라는 것이다. 또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열이 넘치는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움직이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결과적으로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 위기론자, 환경보호자, 정치가, 언론인들의 자기목적에 맞게 알맞게 포장되어 발표된다는 것 - 지구온난화가 걱정할만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위기론자나 환경보호자가 설곳을 잃게 만들고 정부자금을 의심없이 받을 수 있는 원천을 잃을 수 있게 만들 것이다. 정치가 역시 지구온난화에 대한 주제에 꽤나 열성적이고 또한 언론인도 자극적인 것을 좋아할테니 이러한 주장은 이들에겐 꽤나 이단적인 것일 지도 모르겠다. 비판적인 시각없이영향력 있는 사람이나 단체에 의해서 주입식 교육을 받게 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지구온난화 회의론자 (지구온난화가 지구멸망을 초래할 정도의 것은 아니다)에 대한 무조건식 감싸기가 썩 달갑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무조건 나쁜것이라는 맹목적인 시각을 흔들어주는 계기가 됐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점에서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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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창세기>를 보면, 아담과 하와는 지혜의 선악과를 따먹는 <원죄>를 저질러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고 적혀 있다.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진위여부를 떠나서 모든 인간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지었다고 적여 있단다. 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가? 이와 같은 관점에서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단독으로 저지른 죄인가? 정말 그럴까? 이 책을 읽는다면 자연스레 드는 의문이다. 난 무언가 거대한 <속임수>에 빠져든 것인가?
저자는 스스로를 <지구온난화 회의론자>라 불렀다. 풀이하면, <지구온난화>를 한 번쯤 의심하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저자와 반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지구온난화 위기론자>라고 지칭했다. 풀이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지구온난화>를 의심한다? 그렇다면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아니.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재 뜨거워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걱정할 지경은 아닐 것이라고 믿는단다. 무슨 근거로?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기후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만으로는 워낙 미미한 영향밖에 줄 수 없단다. 또 지구는 뜨거워지는 만큼 스스로 차가워지기도 한단다. 그래서 인간이 저지른 <지구온난화>가 지구멸망(사실은 인류멸망)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단다.
그렇다면 인간은 아무 걱정할 것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쓰고 또 쓰면서 <온실가스>를 마음껏 배출해도 괜찮다는 말인가? 그건 또 다른 문제(예: 대기, 토질오염, 소음공해, 열섬효과 등)를 야기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현재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가 우려할 만큼의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기론자>들이 말하는 것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회의론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모종의 <관계>를 살펴봐야겠다. 바로 <과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경제적 효과>와 <특정 종교계의 이익>말이다.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지구온난화 위기론자>들이 말하는 저의가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논리>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나도 순전히 지구를 구하려는 마음에서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그런데 말이다. 생각해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선진국들은 누릴 것 다 누리면서 살면서 <환경주의>를 앞세워서 후진국들의 경제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 자기네들이 만든 <환경파괴>를 후진국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를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떠넘기면서 선진국은 후진국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다. 물론 자국민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정치가들이 가로챘지만서도.
더 자세한 내용은 이 책에서 읽어보시길, 여하튼 <지구온난화>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뒤바꿀만한 책이다. 그런데 저자는 <지구온난화 위기론>를 여러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지만 <환경주의자>를 <비효율>적이라는 면에서 <위기론자>들과 싸잡아서 비판하였다.
이 점에선 살짝 반감이 들었다. 물론 저자의 지적대로 현재 우리가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살거나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서 살아갈 수는 없다. 생각해보고 말 것도 없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끔찍할 것이다. 인정한다.
그러나 <전원생활> 정도를 꿈꾸는 것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아침에 새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햇살로 아침을 맞으며, 한낮에는 야생동물(사자나 늑대같은 맹수 말고)과 함께 하는 피크닉, 청정한 개울물을 마시며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이불삼아 잠이 드는 생활을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자는 생활의 편리함을 <전기>라는 에너지에 의지하면서 환경을 파괴하는 화력발전소를 없애라는 <환경주의자>들은 모순덩어리라고 비판하였다. <문명의 혜택>과 <자연친화>를 동시에 꿈꾸지 말라는 저자의 목소리는 왠지 얄미워진다.
저자 역시 <지구온난화>가 현재진행형이라는 데에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곧 죽을 것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지구온난화>가 부각되고 누가 위기감을 조성하는가? 저자는 대담하게도 <종말론>을 들먹이지는 않았지만 기독교의 원죄(엘 고어<불편한 진실>가 앞장서는 듯)를 꼬집었으며 <대체연료>와 이를 이용한 기기(엘 고어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타라고 했다)를 팔아먹을 자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난 저자의 주장에 생각을 고쳤다. 비판할 점이 없진 않지만. 당신은 어떤가? 여전한가? 이 책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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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리뷰어 신청하기에서 받은 책입니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이 어떤 비판적인 면을 가질 것으로 추측하였고 또 흥미로울 것 같아서 신청하였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이 책은 기후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이야기를 함께 하는 어떤 기후학자(자칭, 지구 온난화 회의론자)의 글입니다. 당연히 내용은 일부(또는 다수) 지구온난화 위기론자를 겨냥한 것입니다. 따라서 글의 대부분은 냉소적입니다. 냉소적이라는 것은 부정적이라는 것과 다릅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주장하듯 경제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지원받는 다수를 대항하는 세력은 보통 냉소적으로 비꼬아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젊잖게 말하면 다수인 상대의 목소리에 파묻혀 버립니다.
근래의 관심은 환경보호에 쏠려 있습니다. 따라서 저자와 같은 현실론자(균형론자)는 공격을 받는 위치에 있게 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파하는 것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이러한 대중을 상대로한 글은 (적절한 뒷받침을 받는다면) 큰 효과를 지니고 있습니다.
저자는 서두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시종일관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 이 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나의 주제 서술 방식이 편파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 말은 옳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연구했기 때문에 확고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견이 있느냐 없는냐가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편견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편견이 가장 유익한 편견인가 하는 점이다. (22페이지) ==
저자의 주장 전부를 인용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저자는 기후학자임에도 불구하고 글의 반 이상을 경제에 관한 이야기로 채우고 있습니다. 다만 대상이 학자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기 때문인지 반복되는 사례를 여러번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거슬리는 면이 됩니다) 덕분에 주장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연결됩니다.
글 전체는 하나의 잘 꾸며진 작품이 됩니다. 따라서 흥미로, 재미로 읽어도 될 정도입니다. 주장이 옳은지는 불확실합니다. 옳지않다는 근거도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근자 들어 주로 보아왔던 이야기와 대치되는 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너무 쉽게 쓰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