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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복음주의권 개신교회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에게 ‘순례’란 살짝 껄끄러운 느낌을 준다. 가장 큰 이유는 중세 말 교회가 순례에 일종의 공로적 가치를 부여했고, 개혁자들이 이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개혁자들의 후예인 우리가 어떻게 다시 ‘순례의 공로’를 탐하겠는가.
물론 저자인 톰 라이트 역시 우리로 하여금 다시 중세적 순례를 하자고 재촉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는 순례에 새로운 의미―창조 세계의 선함과 은혜가 전달되는 신비적인 매개체로서의 가치―를 제안한다. 이 논지는 서문에 담겨 있는데, 사실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주장이다.
은혜의 수단보다 은혜 자체에 집중하자는 복음주의 개신교의 가르침 자체는 옳다. 다만 인간은 현실 세계에 발을 딛고 있고, 그 현실의 물질이 인간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준다는 점을 놓쳐버린다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 될 것이다. 그렇게 물질보다 은혜에 깊이 천착한다는 이들이 예배당 건물에는 또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걸 보면(근대 이후 건축된 세계의 크고 아름답게 예배당은 대개 복음주의자들의 솜씨다) 말이다.
1장부터 9장까지로 이어지는 본문은 예수의 공생애의 주요 지점들을 선택해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묘사하고 거기에 담긴 신학적, 신앙적 함의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1장의 경우는 예외로 ‘다메섹’에 관한 묵상인데, 우리는 예수께서 그곳에 가셨다는 기록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에는 역사적, 성경적 해석은 물론 알레고리적 해석도 곁들여지는데, 단지 복음서에 등장하는 내용뿐 아니라 구약의 여러 관련 내용들까지 풍성하게 담겨 있다.
팔레스타인의 공생애 로드를 따라가면서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 또한 그분의 길을 따르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요단에서의 세례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광야에서 들리는 유혹의 목소리를 물리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예루살렘의 왕좌에 새로운 왕이 앉으셨음을 믿고 선포해야 한다. 이 선포는 자기를 고집하지 않고, 용서하며 불확실해 보이는 세상의 바다로 나아감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여정에 용기를 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잘 구성된 순서와 내용.
이 내용 못지않게 후기에 해당하는 부분 또한 인상적이다. 서두에 언급한 이유와 함께, 우리가 ‘성지 순례’에 약간의 불편한 마음을 갖는 이유는 오늘날 그 지역이 갖는 독특한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20세기 초중반 팔레스타인을 거점으로 건국된 현대 이스라엘은 그 이전 오랫동안 살았던 팔레스타인인들의 추방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월등한 군사력으로 그 지역을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순례라는 이름으로 그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혹 특정한 정치적 입장에 동의하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하지만 또한 2천년에 걸친 강제적 이산과 고난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구 또한 가볍게 무시해버릴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둘 중 어느 편을 드는 식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는 듯하다. 우선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은 구약 선지자들의 이스라엘 회복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유일무이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오늘날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유대인(혹은 이스라엘인)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점이다. 현대 이스라엘에 대한 무비판적인 지지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학대를 모른 척 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정치적인 견해를 표시하거나,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그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실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힘도 없다) 다만 그리스도인으로써 우리는 그 탄식이 가득한 땅에 기도하러 가야 한다. 우리는 십자군이 아닌 순례자로서 가는 것이니까.
팔레스타인의 여러 지역을 둘러보는 ‘성지 순례’를 위한 준비과정이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근데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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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라는 제목과 함께 톰 라이트와 떠나는 성지순례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그래서 성지 순례를 위한 지침서나 성지에 대한 소개를 하는 책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이 책은 성지순례에 관한 책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성지순례는 아니다.
한국 기독교는 여러모로 변질된 병적인 요소들이 많이 퍼져있다.(물론 올바른 신앙을 추구하는교회도 많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지 순례라는 이름의 관광이다. 기독교, 특별히 개신교에서는 장소적 개념으로써 성지(holy land)라는 개념이 없다. 하나님이 계신 그 곳이 바로 성지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그 곳이 바로 성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의 많은 성도들는 성지순례라는 순전히 ‘상업적인’ 여행 코스를 마치 실제적인 의미에서 성지를 순례하고 돌아온 것이라고 착각한다.
저자 톰라이트는 서두에서 이 부분을 적시하고 들어간다. 머랄까,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성지의 개념을 올바르게 제시하는 분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예루살렘은 의당 ‘성지’였고 ‘성지’이며 ‘성지’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비록 성경적 의미에서 성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 ‘여행코스’에도 분명히 유익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여행은 성경에 대한 보다 생생한 통찰력을 가져다 줄 수 있으며, 우리를 더욱 기도로 이끌며, 우리의 신앙을 성숙케 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대한 보다 생생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를 더욱 기도로 이끌며, 우리의 신앙을 성숙케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성지순례에 대한 아주 건전한 시각이라고 생각한다.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은 그 땅을 ‘성’스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오히려 그 땅은 전쟁과 피가 가득한 곳이다. 다만 그 장소가 우리에게 의미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주님이 그 곳에서 숨쉬며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유대 땅이나 지리 혹은 역사적 건물(사실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역사적 건물이라는 것은 죄다 관광상품으로 지어낸 것들이다. 수많은 전쟁으로 수차례나 파괴되고 새로 건설된 땅에 2천년전의 돌하나라도 제대로 남아있겠는가?)에 대한 설명은 별로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 지역이 갖는 의미에 집중한다. 말하자면 신학적 단상이라고 할까? 요단강을 보면서 요단강이 가지는 신학적 의미를 되새기고 광야를 보면서 광야을 거쳐야 하는 우리의 신앙을 점검하고 갈릴리 호수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 선포의 의미가 무엇인지 조명한다. 그가 ‘우리의 순례는 우리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는 유대 땅에서, 유대 땅을 촉매로 삼아 진정한 성지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땅과 초기 기독교가 전파되었던 유럽지역을 순방하는 것은 그냥 관광일 뿐이지 성지 순례는 아니다. 참된 성지순례는 하나님을 향한 영적인 여정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순례자이고 지금도 우리는 성지순례를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많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상업주의로 퇴색되어버린 성지순례가 진정한 성지순례를 원한다면 바로 이 책에서 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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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라는 주제보다는 성지순례라는 부제목에 더 관심이 있다. 아직 성지순례라는 것을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생애에 꼭 한번은 가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 같아서 마누라하고 항상 같이 가는 날을 꿈꾸고 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사진을 보면서 생각보다 못하다는 느낌도 있다. 또 어떤 곳은 생각이상의 장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빨리 가보고 싶은 곳이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총 9곳의 성지 순례장소가 나온다.
그런데 실망을 했다. 기존의 성지순례에 대한 내용과 전혀 다르다. 다른 책들은 이곳이 어떤 장소이고 지금은 어떠하며 사진들과 함께 성지장소를 소개하고 있다. 칼라판 사진들, 유물들, 지도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눈을 사로잡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판화로 그려진 그림이 각 성지 처음에 달랑 하나있다. 성지순례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글들로 가득차 있다.
곰곰히 생각해 본다. 저자도 끝부분에 말했다. 예루살렘에 3가지 종교가 있다고 하지만 4가지라는 것이다. 1. 유대교 2. 기독교,천주교 3. 이슬람교 4. 관광교(-ism)
정말 그렇지 않는가 한다.
성지순례도 관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중세의 성지순례자들이 과연 관광을 목적으로 그 험란한 여정을 걸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생각을 가지고 책을 다시 보니 전혀 다른 의미로 나에게 다가온다.
아! 이 맛이구나!
이전의 성지순례에 대한 생각이 깨지는 순간이다. 성지를 통해 의미를 찾으라고 권고하는 톰 라이트의 목소리를 이제 들었다.
글을 통해 의미를 찾기를 바란다. 성지순례를 통해 흥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성지의 의미를 회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정말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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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은 “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다. 아래 부제로 톰 라이트와 떠나는 “성지순례”라고 적혀있다. 이 책과 접하는 순간 대부분의 독자가 성지순례에 관한 여행관련 책 또는 성경을 풀어놓은 해설서로 생각할 것 같다. 나 역시 이러한 생각으로 부담없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으나, 서론부터 많은 어려움을 느꼈다. 아마도 이 책을 정확히 읽기 위해서는 이 책의 저자와 성공회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 *톰 라이트에 대해서... 2008년 1월, 21세기 신학자를 소개하는 글에서 김영봉 와싱톤한인교회 목사는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아래 몇가지 언급을 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소개에서 캐나다 맥길대학교, 영국의 옥스퍼드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국 성공회 주교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 영미 신학계에서 부활된 “역사적 예수 연구”의 한축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가 옥스퍼드 대학교수의 명예를 버리고 교회로 나간 까닭은 종교에 대한 소명감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는 신약신학을 집대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이라는 6부작 저서를 계획중인데, 그 가운데 세권이 이미 출간되었고, 이 책이 그중 한권이다.
그가 집대성하려는 6부작의 주제 중,기독교의 기원을 자주 언급했다.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 있어서 그는 1세기 유대교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예수가 살았던 1세기 팔레스틴 유대교의 시각에서 바울의 신학을 보는것이다. 아직까지 이 과정은 진행 중이며 신학에 관한 연구를 일반독자에게까지 전파하려는 시도를 하는중 이라고 한다.
*성공회에 관하여
성공회는 전통,특히 가톨릭 전통을 강조하는 고고회(High church)와 종교개혁의 전통을 강조하는 복음주의 유산인 저교회(Low church)로 양분화 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대한성공회는 영국에서 고고회 운동을 하시든 분들에게 선교되었다. 아마 이 책을 읽는 관점으로 고고회를 염두에 두는 것이 좋을듯하다. 간단히 이해하려면 천주교의 관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이 책의 본문 중에서 "임재(臨在)"라는 표현이 자주 볼수 있다. 임재라는 표현은 성공회의 성체성사와 관련된것이며 개신교와 가톨릭 그리고 성공회마다의 약간의 차의가 있음을 알수 있다.
즉,로마가톨릭은 화체설(化體說)이라고 하여 매 미사 때마다 사제의 축성선언에 의해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믿음이다. 천주교에서는 평신도 없이도 사제 혼자 성체성사를 거행할 수 있고 또 사제만 성혈을 받고 평신도는 성체만 받을 수 있게 시행되고 있다. 모든 예배에서 성체성사가 거행되며 성체성사가 있는 예배를 '미사'로 부른다.
성공회는 성사적 임재설(臨在說)이라고 하여 사제의 축성(祝聖)에 의해 포도주와 빵이 실제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사적으로 임재하신 다는 믿음이다. 즉 빵과 포도주는 그대로이되 믿음으로 받는 이들에게 '효력있는', 성령이 일하시게 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임재”라는 의미가 가톨릭의 미사개념과 확연히 다름을 이해할수 있으므로, 이 점을 참고하여 책을 읽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것 같다.
따라서 성공회에서는 사제 혼자 성체성사를 할수 없고, 최소한 한사람 이상의 평신도와 함께 이를 거행해야 한다. 가톨릭과 동일하게 거의 모든 예배에서 성체성사를 거행하며 성체성사가 있는 예배를 가톨릭과 같이 '미사'로 통칭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개신교는 기념설이라고 독일 루터파를 제외한 일반 한국개신교회는 '성사'(聖事sacrament)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따라서 성체성사 또한 '성만찬', '성찬례'로만 표현되며 마치 하나의 기념식처럼, 성찬식을 행할 뿐이지 빵과 포도주 자체에는 아무런 효력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성만찬도 일년에 한 두번 정도 밖에 시행하지 않는다.
개신교 성직자의 가장 큰 은사는 '설교'이기 때문에 상기 두 교단에 비해 성직자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고 성만찬이나 세례 등 교회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 일반적으로 개념이 없는 편입니다. 보통 카스테라 류의 빵과 포도주스 및 포도주를 앉아 있는 평신도들에게 돌린다.
다시말해, 성공회와 카톨릭은 형식적으로 매우 흡사하나, 성체성사부분에서 “미사”라는 동일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내용에 있어서는 다른 차의가 있음을 알수 있다. 또한 이 책의 저자인 톰라이트는 “기독교의 기원”에 관한 연구중 하나로 이 책을 저술하고 있다. 그의 저술관점은 역사적 검증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즉 1세기의 역사적 상황을 분석하여 역사에 대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정통적 기독교의 수호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책의 서문에 1998년 사순절 기간 동안 리치필드 성당(성공회 교구)에서 했던 일련의 설교들을 묶은 것으로 우리나라의 기독교 즉, 개신교, 가톨릭의 관점으로 본다면 다른 해석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또한 저자는 역사적 상황, 즉 1세기의 상황에서의 성경을 해석했다. 물론 저자가 9군데의 성지 순례를 하면서, 그 목적지의 볼 것과 즐길 것, 우리가 소위 말하는 “관광지”에 대한 소개를 하는것이 아니라 도리어,그곳의 경비원과 어쩔 수 없이 엽서를 파는 작은 소년들에 대해서 쓴 소리를 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려고 하는것은, 성지순례를 하는 곳이라면, 예수가 살았던 곳의 그대로의 느낌을 받아, 자기의 삶을 영원한 삶으로 지향할수 있도록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지순례와 관련된 새로운 영적경험과 자기의 생각을 분명히 하고 있는 책이다.
책의 원제는 ‘주님의 길’이라고 한다. 좀 아쉬움 있다면 원제목만 사용했으면, 이 책에 대한 처음의 오해들은 있지 않았을 것 같다. 특히,부제로 보여진 ‘톰 라이트와 떠하는 성지순례’라는 문구에서 이 책에 성지순례, 즉 우리 주변에서 많이 떠나는 그러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성지순례를 강조하는 문구은 책표지 뒷면에서도 볼수 있다.)
작가는 정통에 입각한 신약신학자이다. 성지순례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목적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읽고 성지순례를 떠난다면, 보여지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그 본질을 느끼는 충만한 성지순례를 경험하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