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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평범하게 생각하자면 조금 충격적이다... 책표지에 이끌려 주문하게 된 아귀... 출간 당신 관련기사의 요약에서 'derangeant(불쾌한, 읽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이란 단어가 많이 쓰였다고 할 만큼, 이 작은 책 속에는 엽기와 충격의 연속이다..
폭식증에 걸린 스물일곱의 클라라 그랑... 그녀가 사랑하는 거식증에 걸린 동갑내기 프레데릭 르리에브르...
어렸을 적 겪은 성적인 충격을 음식을 먹고, 다시 토해냄을 반복하면서 씻어내려는 클라라... 사창가 거리를 방황하면 스스로를 몰락 시키고, 회계함을 반복하는 클라라... 사랑하는 프레데릭에게 다른 여자 생겼음을 분노하고 슬퍼하는 클라라...
책의 주 내용은 이렇다...반복적으로 먹고, 토해내고,,거리에서 몸을 내어주고 회계함을...의미없는 몸부림 같지만,,,클라라 자신에게는 꼭 해 내고야 말아야 하는 신성한 의식인 것처럼...
프레데릭이 거식증이 아니라 백혈병 말기환자라는 것을 알고... 그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프레데릭을 지켜내려고 하지만,,, 프레데릭은 자살을 택한다..
프레데릭의 장례식이 끝나고,,,묘에서 골분함을 꺼내서 그와 영원히 함께 하기위해 그의 재를 입으로 넣으면서 위로를 받는 클라라...
결론은 경찰에서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병원에 갇힌 그녀는 그 전의 기억을 하지 못 한채 그렇그렇게....내용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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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난 지금...난 뭐라고 특별한 리뷰를 할 만한 기운이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을 살고 있는 내가... 여태를 살아 오던 내가... 너무 그녀와 닮아 있는 탓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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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귀 다시 읽기. 표지만큼이나 압도적인 무게로 기억에 남아있던 작품이었다. 오드 아이와 엉망으로 흐르는 눈물 줄기. 입가에는 음식물이 더럽게 묻어있고 무언가가 목을 조르고 있는 이 섬뜩한 이미지의 책을 나는 다시 펼쳤다. 바래진 기억들을 다시 채우기 위해 읽기 시작한다. 크게 숨을 내뱉고 마음을 단단히 한다. 이미 학습해온 대로.
멀쩡한 집안에서 자라 화장실 변기와 찬송가 사이를 헤매는 가엾은 창녀. (64p)
27세의 클라라 그랑은 폭식증 환자다. 그녀는 프레데릭을 사랑하고 프레데릭은 거식증을 앓고 있다. 이 정도의 단서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다. 처먹기와 구토와 섹스로 점철된 이야기. 그것도 적나라하게 까발린 도발과 충격의, 어떤 때는 엽기적이기 까지 한 표현들이 즐비했다. 이 지점까지, 만 볼 거라면 이 불편한 소설을 권하고 싶진 않다. 그건 시간을 내주고 불쾌감을 사는 것뿐일 테니.
나는 클라라의 구토의 이유를 찾고자 했다. 끊임없이 먹고 비우고를 반복하는 고통의 행위가 무엇에 기인한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제가 대체 무엇으로 뱃속을 채우는지, 그건 아시는지요? 그리고 무엇을 토하는지도(87p). 매춘의 거리와 성당을 오가며 얻으려 하는 게 과연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더럽고 추하고 끔찍해져갈수록 클라라의 구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아, 주님! 신부님!
이것은 애정의 소설이다. 클라라도 말하지 않았던가. 내겐 그저 약간의 애정만 있으면 된다(64p)고. 죽는 날까지 혼자일 까봐 두려워 몸부림치는 처참한 이야기다. 클라라는 죄인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나 그녀는 정녕 죄인이었나. 진정 처음부터 끝까지 죄인이기만 했나. 넘쳐나는 그녀의 죄의식과 구원을 향한 갈망이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게 만든다. 끝끝내 읽고야 말도록.
표지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미지가 강렬한 소설이다. 변기를 붙들고 구토하는 클라라, 프레데릭의 뼈마디를 세는 클라라, 무릎을 꿇고 친구의 상처 난 부위를 빠는 클라라, 엄마가 들어간 화장실 앞에서 보초를 서는 어린 클라라, 부활절 직전의 일요일, 스스로에게 가하는 촛농 징벌, 화가의 작업실, 프레데릭의 뼛가루를 삼키는 클라라. 모든 장면이 붉게 떠오른 채 쉬이 지지 않는다.
간결하고 일상적인 문장으로 씌어져 불편한 내용임에도 잘 읽힌다. 클라라의 독백으로 이뤄진 점이 가독성을 더 높였다. 그럼에도 나는 늦었다. 한 문장마다 걸렸다. 내 목구멍을 타고 개같이 비천한 삶의 냄새가 올라온다. 이 냄새가 좋아. (66p) 같은 문장에서 멈칫멈칫 하는 것이다. 이런 문장들 앞에선 시인 김하늘을 떠올렸다. 적나라하고 생생한 것, 거침없는 것, 자극적인 것, 불쾌와 쾌락 사이에 걸쳐 있는 것, 그럼에도 자꾸 찾게 되는 것, 구원을! 소리 지르게 하는 것. 단연 내가 환장할 만하다.
이야기 나온 김에 그녀의 시로 마무리 지어야겠다. 클라라를 창녀로 받아들일지 내동댕이쳐진 양으로 받아들일지는 읽는 자의 몫. 나는 줄곧 바랐다. 구원받기를!
-花
37.2˚ L'aube 김하늘 베티의 푸른 나신이, 일찍이 내 정신의 폐허를 도왔다 침실을 온통 노랑으로 페인팅하고 어깨에 동물적인 장미를 문신하고 모나리자 액자가 걸린 방에서, 개처럼 서로를 핥았다 꿈을 꾸는 일도 짐이 되는 세상, 불면의 밤이 차라리 고맙다 정액을 서로의 얼굴에 문지르고 발목을 쥐고 또 한 번 사정한다 여름이면 찬 우유를 나눠 마시고 사나운 달빛에 체하고 흰 고양이 옆에서 글을 썼다 잉크를 쏟아가며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은 베티를 증오했다 비바람이 불면 모나리자를 노려봤고 엉더이가 뜨거운 베티를 안았다 어떤 날은 그조차 누군가가 나를 대신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내 것인 것은 없었다 그러나 그 시절, 가진 게 페니스가 전부인 사내는 많았고 누구나 베티에게 오줌을 갈길 수 있었다 싸구려 샴페인을 바르고, 마시고, 목구멍으로 사내들의 정념을 들이켰다 목을 축일 수 있는 것은 그것뿐 Too drunk, to fuck! 베티는 베티이기를 거부했다 탕아, 야생마, 마리화나, 또는 베티, 라고 열거한다 쥬 뗌므! 안 들려, 뭐라구? 쥬 뗌므! 안 들려, 더 크게! 쥬 뗌므! 쥬 뗌므! 쥬 뗌므! 자신의 눈을 도려 낸 베티를 사랑할 때, 나 역시 베티가 되어야 한다 아무도 베티를 기억하지 못할 때, 베티의 일생에 진실로 참견하기 위해 푸른 장미를 짓이기고 돌아온 밤, 모나리자 앞에서 페니스를 더욱 소중히 붙잡고 긴, 긴, 마스터베이션을 한다 베티의 신음이 들릴 때까지, 베티가 질식할 때까지, 베티의 인기척이 잦아들 때까지 (쥬 뗌므! 쥬 뗌므! 쥬 뗌므!) [시와반시 The Poetry and Anti-Poetry] 2012 가을,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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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자의 입에 묻어있는게 토라는걸 읽어가면서 알았다ㅠㅠ 그 후로 책의 표지를 보면 토나온다 ㅠㅠ 이 책은 절대 교훈을 찾거나 탄탄한 구성을 바라면서 읽는 책은 아니다. 자기혐오에 빠져있는 폭식증인 클라라를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데 작가의 묘사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다. 게다가 매우 쉽게 읽혀진다. 매우 병적인 주인공 클라라는 어떻게 보면 나와도 닮은것 같다. 내 친구에게도 책을 빌려줬는데 자신과 닮은것 같다고도 하였다. 일반적인 사람의 시각에서 볼때 더럽고 병적이고 엽기적인 내용들로 가득한 책이지만 어쩌면 클라라의 병적인 행동은 무기력한 현대인이 공감할수 있는 내용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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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생 젊은 작가에겐 어울리지 않는 냉소였다. 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자의 최후가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지, 난 그녀의 글을 읽으며 몸서리쳤다. 주인공의 몸은 나날이 비대해져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고 제 몸매에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노라고 표현하곤 했지만, 그녀는 사실 폭식증 환자였다. 유년기의 끔찍한 기억이 가져다 준 트라우마 탓일까.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듯 그녀는 행동하고 있었다. 미친 듯이 먹고 토하기의 반복으로 그녀의 하루는 꾸려졌다. 그녀의 상처를 감싸 안아야 하는 게 작가로서의 도리인 것 같았으나 저자는 우리가 바라는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 짝, 프레데릭을 선사했으니, 그녀의 남자친구는 말라도 너무 말랐다. 주인공의 말을 빌리자면, 벗은 남자친구의 몸을 바라볼 때마다 두드러진 갈비뼈의 개수를 센다고 했다. 그녀는 그가 거식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도통 먹으려 들지 않는 남자친구와 먹는 행위를 그치지 못하는 그녀. 서로 같은 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즐기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과도 같아 보였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듯하면서도 모든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프레데릭의 사랑이 식어가고 있음을 느꼈고, 급기야 그가 다른 여성을 만나고 있다고 믿어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이미 버림 받은 그녀의 몸은 강렬히 타인의 폭력을 갈구했다. 자신의 여성임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안타깝게도 그녀에겐 폭력이었으니, 사랑 받을 수 없다면 차라리 아픈 게 낫다는 식의 사고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길거리를 방황한다. 타인의 무지막지한 손이 그녀의 몸에 해를 가하는 그 순간에도 거부하기보다는 차라리 즐기기를 그녀는 택한다. 그렇게라도 존재하고 싶었다고, 그러나 잃어버린 여성성의 회복은 그와 같은 방식으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모든 상처가 무디어져 간다. 시간도 해결해주지 못할 문제를 그녀는 약물을 통해 해결해가고 있었다. 아직 세상의 빛을 언제쯤 다시 누릴 수 있다는 확신 따위는 할 수 없었지만, 작가는 약물이 가져다 주는 몽롱한 기운을 빌어 주인공에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허락한다. 그녀의 세상에는 새가 날고 있고, 여전히 프레데릭이 살아 있다. 그녀는 비현실적인 공간 안에서만 비로소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삶을 설계한다. 참으로 끔찍한 결말이다. 한 번 생긴 상채기는 그렇게 영원히 누군가의 몫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적어도 작가에게는... 한 번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 사람에게 감정의 전환이 힘든 것처럼...
내가 아직 어린아이였을 때, 나는 너무나도 일찍 나쁜 어른들의 세계로 불려갔다. 그때 그 독방 속에서 다시는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방황했고, 마구 음식을 먹었고, 그 마구 먹은 음식들을 토했다. 수천 시간 동안 오지도 않는 평화를 기다렸다. 자다가 한밤에 문득 눈을 떴을 때 느낌이 바로 그렇다. 분명 창이 있고, 정원이 있고, 지척에 길이 있고, 걸으면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광대한 공간이 존재하는 걸 아는데, 그러나 결코 침대에서 일어나 나오지 않는 것. 스스로의 눈물과 회한, 그리고 입술에 남은 재 맛과 함께 어쩌면 영원히 그 안에 묻혀버리는 것. -p139~1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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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괜찮은 신간없나..하고 쭉 훑어보고 있던 차에 눈에 띄었다. 언뜻 보면 예쁘지만 자세히 보면 살짝 혐오스럽게 생긴 아가씨의 삽화, 그리고 책의 띠지에 붙어있던 '아멜리 노통브와 비견되는'..어쩌고 저쩌고. 물론 이런 띠지의 말따위 믿어서 큰 도움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노통브의 그 가볍고 쉽고 촌철살인이 흘러넘치는 유쾌함과 비틀림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에 비견될 만한 누군가가 나온다는 건 나에겐 심히 반가운 일인거다. 그래서 읽게 되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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