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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법칙>은 <컷>, <뚱보 생활 지침서> 등을 펴낸 메타포의 책답게 청소년기에 겪을 수 있는 아픈 경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이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도 가슴을 저리는 아픔에 고통스러웠는데, <생존의 법칙> 역시 소설 속 매슈와 캘리, 에미의 아픔이 내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있을 수많은 매슈 들의 아픔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느낌이었다. 소설은 열일곱이 된 매슈가 세 남매 중 막내인 에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열세 살이었던 매슈와 열한 살 캘리, 다섯 살 에미는 예측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며 산다. 엄마는 어떤 때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정한 엄마로서의 의무를 다하려고 하지만, 철모르는 아이가 부엌에서 쿠키 하나를 가져갔다는 이유로 목에 식칼을 들이댈 정도로 불안정한 성격을 보인다. 그 속에서 매슈와 캘리는, 엄마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엄마의 기분을 헤아려 그에 맞게 대답하고 맞장구치며 웃거나 또는 웃지 않는, 엄마만을 관객으로 한 그리고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연극을 하루하루 해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머독 아저씨와의 만남으로 세 남매의 운명은 완전히 새롭게 바뀌게 된다. 편의점에서 말을 듣지 않는다며 자신의 아이를 때리려는 한 남자를 제압하는 아저씨를 본 매슈는, 그에게 반해 그를 만나기 위해 1년여를 수소문한다. 그리고 마침내 머독 아저씨의 주소를 알게 되지만 엄마에게 주소를 빼앗기게 되고, 그것이 오히려 계기가 되어 엄마와 머독 아저씨가 데이트를 시작하자 셋은 기적의 여름을 보내게 된다. 여전히 엄마는 예측하기 힘들었지만 아저씨 앞에서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자제를 하며 아이들 마음속에 아저씨와 한 가족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한다. 그러나 자제를 잃은 엄마가 바닷가 바위 위에서 에미를 거꾸로 잡고 흔들게 되고, 그 사건을 계기로 아저씨는 매슈의 가족에게서 떠나게 된다. 그 뒤 엄마는 아이들을 태운 채 중앙선을 넘어서 맞은편 차를 향해 돌진하기도 하는 등 무엇인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이른다. 매슈는 아버지와 보비 이모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엄마를 두려워하는 아버지는 상황은 대개 잘 풀리기 마련이라는 말만 할 뿐이고, 보비 이모는 자기 조카들 일에 무관심하고 먹는 일에만 빠져 있을 뿐이다. 결국 머독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자, 아저씨는 아버지와 보비 이모를 만나 상황을 이해시키고 그들과 협력하여 마침내 매슈 남매를 엄마로부터 안전하게 만든다. 물론 그 뒤에도 엄마에게서 안전해지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생존의 법칙>은 엄마가 행하는 폭력과 그 폭력을 두려워하던 매슈 3남매가 머독 아저씨를 만나게 되면서 두려움을 이기고 문제를 해결해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민감하면서도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엄마로, 그것도 관심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많은 경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다른 사람이 개입할 수 없는 가정의 문제로 여기고 무심히 넘어가는 문제를, 바로 우리 자신의 문제이고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제시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 사회에서는 자녀의 교육을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이라, 어쩌면 우리 사회에 깊이 숨겨진 문제의 단면을 본 것 같아 놀람을 넘어 충격을 느꼈다. 소설 속에서 매슈는 절망적 상황 속에서 자신을 구원해 줄 영웅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을 바랐고, 그 때 머독을 만난다. 머독은 매슈의 친아버지와 보비 이모를 변화시킴으로써 엄마의 신경질적인 사랑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고 그들이 아픔을 잊고 성장할 수 있는 기적을 일으킨다. 처음부터 편안한 책 읽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소설 속에서 펼쳐지는 매슈와 캘리, 에미의 이야기에 가슴을 졸이며 책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책의 흡인력은 상당하여 늦은 시간 잠을 못 이루던 나를 매슈가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였다. 책을 읽으며 혹시 우리의 주변에서도 드러나는 폭력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진 폭력이 벌어지고 있지나 않은지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직도 머독 아저씨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매슈 들이 있지나 않은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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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독성이 뛰어나고 인물의 심리가 깊이있게 묘사되고있는데다가 주인공인 아이의 시점을 따라가며 감정이입하는것역시 매우 속도감을 주는묘미.
이야기의 플롯도 탄탄하고 여러 캐릭터들이 자기만의 성격을 잘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커버도 상당히 이쁘다.
다만 쪽당 글수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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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내일을 위한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하루하루의 삶이 되어버린 생존을 위해 혈투를 벌이는 한 아이의 심리를 적나라게 묘사하고 있는 책이다.
인물의 내면, 심리 등의 스릴러물을 좋아한다면 반드시 보라고 추천해주고 싶고 단순히 스릴러물이 아닌 사회적으로 문제인 유년기 때나 청소년기 때의 학대, 방관 또한 이 문제 해결에서의 취약점과 사람들의 무관심 등을 잘 꼬집어 낸 책이라 생각된다.
혹시라도 우리의 주변이나 이웃 등 이런 문제를 가진 이에게 사소한 관심이라도 가져 준다면 한 사람의 인생과 전체적으로는 사회를 올바를 길로 갈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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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가정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데 있어 법률적으로 많은 맹점을 안고있다. 가정이라는 공간은 법에앞서 관습이 지배하는 공간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매스컴을 통해 가정폭력앞에 무방비로 놓여있는 고통스런 아이들의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느끼는것이 어떻게 저럴수가 있는걸까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상황과 그것을 외면하는 이웃들의 모습이었다. 당사자는 절대 아닐거라 자부하며 그렇다면 이웃이라는 가정하에 난 어떤 행동을 했을까 되짚어보니 참 무기력해진다.
가정 편안해야하고 가장 행복한 공간이어야하는 가정에서 최소한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 메슈,캘리 에미 세아이와 엄마와의 상관관계는 난 나의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인가하는 문제를 떠나 참 마음이 아팠다. 이세상에서 가장 믿고 의지해야하는 대상이 엄마이건만 그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속에서 생존의 법칙을 깨우쳐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위로해야하는걸까 ?
열입곱살의 오빠 메슈가 9살의 막내동생 에미에게 전하는 편지글 형식의 글은 메슈가 13살 이었을때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에미가 잠든 저녁 캘리와 메슈는 아이스크림을 사기위해 간 가게에서 자신의 아들을 폭행하는 아버지로부터 소녀를 보호해주는 머독이라는 사람을 만나게된다. 자신의 애인마저 외면하고 불쌍한 소녀를 구해준 그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캘리와 메슈의 마음속엔 이미 그남자가 들어와있었다.
그후 메슈가 거의 1년의 시간동안 머독이라는 남자를 찾기위해 왜그리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고있는지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항상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하고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럽기만 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자신들의 엄마로부터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상상을 감히 할수 있었을까 ?
캘리가 오빠 메슈의 생일을 축하하기위해 뒤늦게나마 아주 큰 선물을 하고 있었지만 그 선물은 바로 엄마의 몫이 되어버리고 캘리가 메슈에게 전하는 생일선물이엇던 머독아저씨의 주소는 다음날 엄마손에 들려 엄마의 새로운 남자친구가 되어버린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남자친구는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존재였으니 그렇게나마 많은 위안이 되어주고 있기도하다.
그녀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이세상이 온통 본인중심으로 돌아가야하는 방식에서의 재미를 느끼면서 하지만 그녀의 방식은 잘못된것으로 아이들에게 씻을수없는 아픔이요 오로지 생존하기위해 몸부림쳐야하는 고통일뿐이었다.
그녀를 이해할수도 없고 사랑할수도 없었던 머독이 떠난후 아이들의 삶은 더한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의 친구라 믿었던 머독의 조용한 침묵과 아빠의 무기력한 변명 아랫층에 살고있는 이모의 무관심이 이어지며 아이들은 어른들에 대한 실망감이 쌓이기도한다.
머독과 아이들에게 보이는 엄마 니키의 행동은 과연 무엇이엇을까 그녀만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보장된 삶을 위한 미끼였던것일까 엄마를 죽이고싶다는 욕망과 죽일수있는 상황에서 방해자로 나타난 머독에게 살인자를 모면해주었다는 감사보단 기회를 앗아갔다는 원망을 하고있는 메슈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한다 할수 있을까 가정폭력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수 없는 너무도 큰 죄악이요 아픔이구나 가늠해볼뿐이다.
여전히 계속되는 엄마의 협박앞에 자유를 꿈꾸며 먼길을 떠나는 메슈가 그 아픈 기억을 제발 잊을수있기를 빌어본다. 그리고 나의 아이이기때문에 가능하다라는 논리를 앞세워 일어나는 가정폭력들이 더이상은 없기를 간절해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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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엄마>라는 책이 먼저 나왔을 때, 한 구석이 뜨끔했었다. 내 모습에서 조금 과장되게 덧칠하면 그 책의 나쁜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음 때문이었다. 이 책도, 슬프게도 마찬가지다. 자식을 매우 이기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며, 실제로는 아이를 '생존' 그 자체로만 살아가게 하는 매우 불안정한 정신을 지닌 엄마. 실제로 생명의 위협을 느껴본 적이 있는 아이, 적어도 아이의 마음에 그런 생각이 떠오르게 해본 부모는 의외로 많을 것이다. 다만 그게 지속적이냐, 한 번이냐, 혹은 간헐적이냐의 차이일 뿐.
아마 자식을 위협하는 엄마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병자이므로. 그래서 자식이 어느날 자신을 떠나 버리거나, 도리어 위해를 가하거나, 밀쳐버리면 심한 배신감에 몸을 떤다. 그리고 지독한 증오를 품는다.
매슈와 캘리와 에미는 어떻게 하든 엄마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내기만 간절힌 원하는 형제자매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신뢰로 생존해 나가므로, 결코 자신들 중 하나의 위험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다른 막내 에미에 대한 매슈와 캘리의 절박한 보호본능은 간절하고 질기다.
그들이 어느 날 자신의 부모로부터 폭행을 당한 위기에 처한 아이를 구해내는 머독 아저씨를 보고 집착이라 할 정도로 매달리는 것, 역시 생존의 법칙이었다. 도와 줄 어른이 그들에게는 그만큼 절실했던 것이다. 머독은 이 아이들 때문에 매우 불편한 입장에 빠지고, 자신이 '남의 집' 아이들 일에 개입하는 일로 고민한다.
실제로 아래층에 사는 이모와 친아버지, 머독의 역할은 생각보다 미미하다. 그들은 아이들의 절박함을 오랫동안 외면하고 살았으며, 그저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슬픈 일은, 그런 마지못한 원조의 손길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힘을 지녔다는 것이다. 세상은 아이들에게, 그처럼 가혹하고 힘들다. 약자.
끊임 없이 회피하다 맞닥뜨리는 삶의 진실이라.
매우 고통스러운 책이고, 현실이고, 또한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적나라하게 내보이는 통렬한 책이다. 섬세하고 날카로운 문장들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하다.
얼마 전 지하철에서 난데없이 우산을 휘두르던, 제정신이 아닌 듯한 초로의 남자에게 무방비로 얻어맞던 젊은 여성이 떠올랐다. 그녀는 비명을 질렀지만 근처의 누구도 그 남자를 제지하지 않았다. 남에게 원조의 손길을 내미는 일, 혹은 적어도 자신의 가정에서 가해자가 되지 않는 일은 생각 이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늘 되돌아보고, 삶의 방침을 재정비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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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서문에 아래와 같은 글귀가 있다. 이 책은 살아남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언제나 기억하세요. 살아남은 자만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음을. 이 작품은 엄마의 정신적 물리적 폭력에서 살아남은 아이의 이야기이다. 제일 맏이인 매슈가 막내 동생 에미에게 들려주는 일기이자, 그의 삶의 투쟁기이며, 정서불안증을 앓고 있는 엄마 밑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생존기록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픽션이다. 그렇지만 너무 끔찍하게 전개되어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을 때가 많았다. ‘세상에 이런 부모가 과연 존재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 때문에 책 읽기가 힘들었다. 작가의 상상력과 현실 사이에는 분명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단 %의 확률일지라도 현실에 이런 인물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분명 착하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자기 피붙이에게까지 그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인간의 본질적 악을 집요하게 파고들었고, 이런 집요함 때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작가는 그 악을 이겨낼 수 있는 한줄기 빛도 선사해준다. 어둠이 짙으면 빛이 더 찬란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작가는 희망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 상황을 더욱 깊은 절망 속으로 몰아넣었던 것이었다. 끔찍하도록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을 밝은 빛으로 이끈 것은 희망이었다. 그 빛의 발원지인 부싯돌을 부빈 사람은 머독 아저씨였다. 매슈의 말대로 자기들을 구한 사람은 영웅이 아니라 부탁했을 때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인, 머독 아저씨였다. 한사람 힘의 위대함이 느껴졌다. 물에 빠진 사람에게는 지푸라기 하나도 희망이 되듯이, 평범한 한 사람의 힘이 절망에 빠진 이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상황이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라는 한줄기 빛이 우리 삶을 인도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한줄기 빛은 영웅이나 위대한 자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이웃들,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될 수도 있음을 느꼈다. 작은 반딧불이의 빛도 어둔 밤에는 힘이 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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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고밖에 는 생각 들지 않는다. 끔찍하다는 말 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꼭 미국 CS나 그런 류의 드라마를 보는 것만 같다. 보통의 부모가 아닌 정신이 이상한 엄마에게 사육당하는 아이들 셋과 그 중 맏아들이 동생들을 보호하고 지켜내려 한다. 어느 부모나 형제보다도 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극하다. 자신의 아이들을 사랑이라는 이름아래 맹목적이고 비뚤어진 애정을 나타내는 엄마에게 미국이라는 사회가 그토록 관대할 수 있는 것일까?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우리 주위의 아이들도 그런 대우를 받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을 볼 때가 있다. TV에서 밤늦게 보여주는 학대당하는 아이들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과 오버랩 되어진다. 한창 부모로부터 사랑만 받고 보호 받아야 할 아이들이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여러 상황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나름대로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엄마의 기분을 망치는 생존의 법칙을 지켜나가지 않을 때 엄마는 돌출된 행동으로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노예가 되게 만든다. 과자를 몰래 먹었다고 식칼을 어린 아이 목에 대거나 아이들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하루 종일 놀이동산에 가서 수차례 기구들을 타야만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를 사랑한다는 말을 확신 있게 말하지 않는다고 맞은 편 차량을 향해 돌진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오죽하면 막내 에미를 위해선 이런 상황을 계속해서 지내기보단 차라리 일찍 죽는 것도 그 아이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까 말이다. 아빠가 맷이 엄마의 지나친 이야기를 해도 엄마에게 벗어나게 도움을 줄 생각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는 걸 보면 아빠도 엄마의 히스테릭한 면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다행히도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 준 머독 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그와 연관된 인연으로 맷과 캘리의 아빠와 보비 이모가 점차 엄마에 맞서 나갈 수 있게 된다. 자신과 헤어진 머독을 향해 모진 집념과 광기어린 행동을 서슴지 않는 엄마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다. 머독의 이웃 줄리가 선한 도움을 주고자 했는데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지만 섬뜩하기만 하다.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소름 끼치는 스토리지만 실제 사실이 아니기에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부모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 속에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지 아닐 까 싶어 더욱 찝찝하기만 하다. 여름용 호러블 소설로 읽혀지기만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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