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밤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거리다 자명종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늦잠을 자고 말았다. 흐린 날씨를 뒤로 하고 희뿌연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산을 떨어야 했다. 방학 기간이지만 늘 학교를 제시간에 가야 하는 일상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건강한 육신으로 움직이며 하루를 활기 있게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낸다. 특별함은커녕 아이들과의 마찰도 없는 수업 시간은 생기를 잃고 가판대에 탄력을 잃고 누워 있는 생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중에서 빛을 내며 수업에 열중하는 아이외 진심이 통한 수업을 하였을 때의 뿌듯함이 소중한 일상으로 다가온다. 40대 중반을 넘어섰을 때는 무탈하게 일어나 움직일 수 있고 마음이 주인 되어 행할 수 있는 생활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을 때 비로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생활에 감사하는 것처럼 우리들은 소소한 일상에 깃든 행복을 간과하여 버릴 때가 종종 있다.
세일즈맨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청년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한 마리의 커다란 독충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쳤다. 침대 위에 꿈틀거리며 누워 있는 한 마리 벌레로 변해 버린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동정적이던 가족들까지 벌레로 변한 자신을 냉대하자 견디기 힘든 시간만이 그 앞에 마주 섰다. 지금껏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했을 처음에는 가족은 그를 불쌍히 여겨졌지만 시일이 지나자 어느 새 부끄러움으로 얼룩진 골칫덩어리로 전락하고 만 그레고르다. 노골적으로 그를 혐오하게 되어 비관 속에 빠져 지내던 그레고르는 죽음에 이르고 만다. 벌레로 변신한 그레고르가 죽어 버리자 기다렸다는 듯이 가족은 야외로 나들이를 나갔다.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를 풀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는 가족을 보면서 지금껏 그레고르가 가족을 위해 땀 흘리며 일해 온 것은 무엇이었던지 회의가 든다. 사냥개를 잡고 나면 토기를 삶는다는 토사구팽처럼 그레고르 잠자는 자본을 축적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자 가족에게 버림받고 만 것처럼 존엄한 한 개체가 생명체로 존중받기보다는 물질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 듯해 씁쓸함이 더한다. 가상적인 현실 상황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되고 소외당하다 죽음으로 마감한 그레고르의 모습은 자본을 쌓지 못하면 무용지물 취급 당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족과 사회에서 소외당한 채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되는 그레고르의 모습은 돈벌이의 순단으로 전락하고 만 자본주의의 고독한 얼굴로 비춰진다.
다소 개연성이 떨어져 보이는 설정이지만 한평생 궂은소리를 들으며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은 언제 버림받을지 모르는 현대인의 고독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돌연한 일로 헤어나기 힘든 상황에 빠질 수 있는 상황에 나는 어떤 보살핌을 받아 예전의 삶을 영위해갈 것이라 장담하기에는 우리 사는 세상이 살벌하고 건조한 일상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개체는 소중한 이로 인식하여 소용이 있든 그렇지 않든 존중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토사구팽의 누를 범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문해 볼 일이다. |
|
변신 카프카 대표 작품선 / 클래식 보물창고 8 프란츠 카프카 지음 보물창고
이 책에는 1부에는 카프카의 대표작인 <변신>을, 그리고 2부에서는 <프로메테우스>,
<변신> 1. 이 작품의 '중심 사건'은 무엇인가? - 그레고르 잠자가 해충으로 변신한다. 2. 자신의 변화를 깨달은 그레고르의 독백을 살펴보자.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다시 잠을 청해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을 잊어버리면 어떨까?' '나 원 참, 아무래도 너무 고된 직업을 고른 모양이야. 허구한 날 출장이라니! 시네에 있는 매장에 가만히 앉아서 근무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든 데다 여행의 고단함까지 짊어져야 하니.......' 3. 해충으로 변한 날 아침, 그레고르가 가장 걱정한 것은 무엇인가? - 출근을 하지 못해서 직장을 잃게 되는 것. 4. 그레고르가 돈을 벌어서 이루고자 한 소망은 무엇인가? - 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는 것, 가족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 5. 변신 전의 그레고르의 생활은 어떠하였는가? - 그레고르가 집안의 경제적, 정신적 지주였다. 6. 그레고르의 생각은? - 가족들을 부양해야 하는데, 더 이상 그럴 수 없어서 속상하다. 7. 가족들이 그레고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 그레고르가 가족의 일원이 아닌 해충으로만 느껴졌기 때문이다. 8. 그레고르 등의 염증은 가족들이 아무도 사과를 빼주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9. 그레고르가 죽은 후, 소풍을 떠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어떠하였나? - 홀가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레고르를 완전히 잊고 있다.
<만약 우리 가족 중 한 사람이 '벌레 인간', 즉 '괴물' 로 변신한다면? - 착한 그레테가 되어> 방학이 많이 남지 않은 날이였다. 오늘따라 언니는 일어나지 않고, 문이 굳게 닫혀있었다. 점심을 먹을 시간이 되고, 큰 소리로 불러도 언니가 일어나지 않자, 우리는 문을 열고 깨우기로 했다. 문이 활짝 열어지자, 안에 누워있는 ....... "꺄악~!" 베개만큼의 거대한 몸집을 가진 시커먼 벌레가 언니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태평하다는 듯이 누워있는 벌레는 이불을 덮은데다 침(???)까지 흘리고 있었다. 언니를 잡아먹고는 부른 배를 다독이며 누워있는 것인가? 아니면 벌레 탈을 쓴 언니가 자고 있는 것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두 번째는 말이 되지 않는다. 한 여름에 벌레 탈을 쓰고 자는 자 누구며, 베개 만한 몸집을 가진 중학생 소녀 또한 누구겠는가? 그게 누구든 내 앞에 있는 '것'은 아닐테다. 내 인생 12년 동안 때려 잡았던 산모기 수컷, 파리, 개미, 벌, 곱등이(학살자 아닙니다......) 수가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다시는 모기와 파리 말고는 잡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우리 언니를 먹었다면 한두 대로는 안될 것 같았다. 그 때였다. 벌레가 일어나자 우리 모두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런데 벌레의 표정이 뭔가 낯익었다. "혹시...... 언니야??" 그러자 벌레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 감는 사이에 언니로 변해있었다. 언니는 꿈에서 "벌레로 변신해도 누군가 자기를 알아봐 준다면 되돌아올 것이다!" 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을 더 사랑해야지. 2014.3.16.(일) 이은우(중1) |
|
프란츠 카프카 저 '변신'은 평범한 출장영업사원인 그레고르 잠자가 갑작스레 벌레로 변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그가 일어났을 때 더 이상 그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었다. 여섯개의 가느다란 다리, 딱딱한 배와 등. 그의 모습은 하나의 갑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출장 때문에 타야 할 새벽 기차 생각, 그리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생각 뿐이다.
세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감정표현도 즉각즉각 전달가능하며, 반응도 즉각즉각 나타난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가져야 할 깊은 감정, 내면의 성찰과 같은 아날로그적 요소는 버려지기 쉽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버려지는 요즘 세태를 신기하게도 그 시대에서 발견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
|
변신은 서늘한 소설이다. 읽으면서 그레고르가 변신한 형태가 큰 바퀴벌레로 상상되어 구토감이 일었다. 갑충이라고만 표현되어 있지만...바퀴벌레 이외인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최악의 벌레는 바퀴벌레이기 때문일지도. 그러나 그레고르의 변신보다 더 구역질 나는 것은 그의 가족들의 '변신'이다. 그레고르의 가족들은 너무도 솔직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레고르처럼 벌레로 변한 것은 아니지만, 병에 걸리거나 장애인이 되거나 이전과는 다른 나쁜 상황에 처하게 된 가족, 친구, 연인을 자신이 돌봐줘야만 한다면 누구나 한번이라도 '없어져버리면 좋을텐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이 가장 우선인 동물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유나 평화로운 생활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심리이다. 이는 인간 본성에 대한 비판이다. 또 한가지. 카프카가 실존주의 작가라고 불려지는 이유. (물론 평론가와 학자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지만...) 벌레가 된 그레고르의 내면. 그레고르는 생각으로 가득찬다. 인간일 때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것, 자신으로 인해 변화한 가족의 일상에 대한 것, 가족에게서 변한 자신의 의미에 대한 것 들. 여동생과 어머니가 그를 위해 그의 소지품들을 치우는 부분에서 그레고르는 자신이 존재했던 증거들을 잃어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이었을 때보다 벌레가 되서야 자신의 실존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는 자유로이 방안을 기어다니고 싶은 벌레로서의 욕망과 인간이었음을 자각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들 사이에서 자신이 점점 인간이었던 과거를 잊어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것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그저 살아가고만 있지는 않는가? 벌레처럼. 그레고르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 위한 움직임은 그가 마지막으로 인간으로서 선택한 것일지 모른다. 그의 결말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났다. 한 명의 인간이 죽었기 때문이다. |
|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은 학창시절 읽다가 너무 어렵고 재미없어 내 팽개쳐 두었던 책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물창고에서 올에이지 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나왔다기에 용기를 내어 다시 읽어 보기로 했다.
첫 장 첫줄부터 심상치 않다. 자고나니 해충으로 변해 있는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 도대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이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마음 졸여 가며 읽었다. 그레고르가 자기한테 갑자기 닥친 비극적인 현실을 어떻게 극복 해 갈 지 참으로 궁금해진다. 또한 가족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지 사뭇 궁금하다. 순간순간 궁금하고 사건 전개를 작가는 어떻게 끌고 나갈 지 전혀 상상할 수 없으니 열심히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작정 읽게 하지는 않는다. 읽는 순간순간 가족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고, 작가가 의도 하고자 하는 내면의 세계는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참으로 열심히 일한다.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는 회사도 5년 동안 결근 한 번 없이 일하는 성실한 사원이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이 해충으로 변해 버리자 회사에서는 해고당하고, 가족들도 겨우 밥만 던져 놓고 나가 버린다. 자신이 그토록 노력해서 먹여 살리고 희생을 했던 가족이란 말인가? 회의에 빠지고 슬퍼하지만 나는 어떻게 내 몸 하나조차 해결하기 힘든 해충에 불과하다. 가족의 얘기를 들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를 가졌지만 어느 누구 하나 관심을 가져 주지 않는다.
카프카가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인간관계는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며칠 전에 아는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을 다녀 온 적이 있다. 그 할머니는 젊어서부터 그레고르처럼 그 집안의 가장 노릇을 오랫동안 해 오셨다. 그런데 고생을 너무 한 탓인지 몇 년 전부터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병에 걸려 누워만 계셨다. 엄마인 자신이 없으면 집안 식구들이 굶어죽을 줄 알고 계시던 할머니는 자신이 누워있자 가족들도 나름대로 일을 해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서운하셨다고 한다.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도 자신이 일을 안 하면 빚더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살 줄 알았던 가족들이 해결점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나름대로 자신의 과거 모습에 회의를 느낀다.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남아있는 가족들은 참 홀가분한 마음으로 우는 사람 없이 장례를 치렀다. 그레고르의 가족도 해충으로 변한 아들이 죽자 “ 자, 이제 우리, 하느님께 감사 드려도 되겠다.”며 그레고르의 죽음에 기뻐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대신 할머니의 얼굴이 그려지는 것은 왜일까? 우리 사람이란 동물도 결국 필요 없어지면 도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에 자신들을 위해 그렇게 희생하며 헌신적으로 노력하던 아들이 해충으로 변했다고 쉽게 버릴 수 있을 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카프카의 <변신>을 읽고 나 자신도 변신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긍정적이며,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한 변신을 준비하는 여름을 기대해 본다. 고1인 딸이 지금은 이 책을 읽고 있다. 딸아이는 어렵다는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읽고 있다. 다 읽으면 얘기를 나눠 볼 작정이다. 내가 딸 아이만한 나이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인간 존재의 문제를 딸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이며 읽고 있을 지 사뭇 궁금하다.
|
|
고전과 클래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작품들을 만나다보면 이제서야 읽고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게되는 경우가 많다. 변신이라는 제목하의 프란츠 카프카라는 친숙한 작가의 이름을 접하면서 또한번 그런한 경험을 하게되었다. 변신외 3부로 나누어 실려있던 그의 단편작품들을 만나며 이야기속에 담겨있는 모든것들을 이해했다 말할수는 없지만 생활에밀려 잊고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라는듯 현대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 무언가에 대한 심오한 메시지를 찾아가게된다.
시끄러운 시계의 알람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면 또다른 하루가 시작되고 있음을 인지하게되는것이 현대인들의 모습이다. 새가 지저귀고 아름다운 음악이 연상되는 평화로운 아침이기보단 이렇게 고단한 아침의 풍경속에 삶에 찌들어가고 시간과의 다툼을 벌이고 있는 풍경에 우리들의 모습이 잘 투영되어있기 때문이다.
4시에 맞추어놓은 알람을 지나 7시를 향해가는 시계를 보며 걱정스럽게 아침을 맞이한 그레고르는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된다. 하지만 벌레로 변해버렸다는 사실보다 지각을 한 사유를 만들어 내는것이 더 큰 걱정거리이기만하다. 5년전에 있었던 사업실패로 무기력해진 아버지와, 천식을 앓고 있어 건강이 좋지않은 어머니, 마냥 예쁘고 철없는 소녀로 남아있는 귀여운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지는 든든한 오빠이며 아들로의 삶이 전부였던 그에게 새벽출근은 숙명과도 같은것이었다.
분명 내 인생이건만 나를 위한 삶이 아닌 그 누군가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늦잠을 잔 이유보단 그 시간까지 왜 방에 있느냐는 질책이 날아드는 가운데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동생이 마냥 고맙기만하다. 하지만 징그러운 모습으로 변해버린 몇달의 시간을 보내면서 철저하게 소외되가는 모습에서 인간이 경험하게되는 불안감과 상실감이 아주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을 본 첫날 해고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쏟살같이 달아난 하녀와 문을 열라고 그렇게 소리쳐대던 지배인이 도망치듯 뛰쳐나간것과 달리 그의 존재를 인정해주던 가족들은 그를 끝까지 지켜주지않을까 기대했건만 그건 나와 그레고르의 착각이었나 보다. 카프카는 자신을 이해해준다 희망을 가지게했던 여동생의 모습을 통해 철저하게 외면당하는 모습으로 현대인들을 그리고 있었다.
또한 바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바다의 왕 포세이돈,문지기에게 저지당한채 법으로 들어가보지도 못하고있는 사람들의 모습등에서 소외당하고 부조리한 실체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있었다. 분명 소설을 만났건만 작가들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그들의 작품속에 자신들의 인생이 담겨있다라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허구속의 이야기가 아닌 카프카라는 작가의 실체를 해부한듯하다.
읽을수록 묘한 매력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이야기속에서 인간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찾을수가 있었다.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바라고 누군가로 부터 위안을 받고싶은 소설속의 인물들은 바로 나였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였다. |
|
프란츠 카프카는 읽어서 즐거움을 얻는 소설을 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 꽁꽁 얼어버린 얼음을 도끼로 깨버리는 듯한 소설을 쓰고자 했다고한다.
정말 이 단편선을 읽으면 학술원 보고서에 나오는 원숭이처럼 서지도 앉지도 못하는 좁은 우리에 갇혀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하다가 아무 해결책 없이 깨져버릴 듯한 머리를 붙잡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뺨을 데고 쓰러져 버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카프카는 성공한 것일까? 도끼로 얼음을 깨버리는 소설을 쓴것일까?
카프카란 사람을 좀더 알고 싶어지는 것 같다.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쓰는 즐거움을 중요시 했기 때문에 스스로 작품을 많이 없애기도 했고, 죽을때도 자기 작품을 없애줄것을 부탁했다고 하니. 정말 그의 작품과 그의 성품이 똑같은 느낌이다. 이런 소설을 쓴 사람이라면 능히 자기 작품을 다 없애려고 했다는 게 믿어진다.
이런말이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한참을 아무생각 없이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저 밝은 곳으로 가는 문을 열고 따박따박 걸어가게 한다. 꽁꽁 얼어버린 얼음은 깨졌다. 인정하기 싫었던 것들을 이제 인정하고 두려웠던 것들에 대해서도 원래부터 그것들이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안다. 짙은 어둠속에서 새볔을 맞이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읽는 순간 그 어둠의 끝을 보고 돌아오는 기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에 읽으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 역시도 여러번에 나누어서 읽었는데 초반에는 책을 펼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끝에 다다랗을 때에는 지하실 문을 열고 나왔다. 그것이 체념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내 마음의 어둠을 인정하는 자세인것은 분명하다.
|
|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왜 사랑하는가 그들의 종족, 외모, 가치관, 성격, 타고났거나 자라면서 얻은 무언가 나의 종족, 외모, 가치관, 성격, 타고났거나 자라면서 얻은 무언가 그리고 무수히 많은 것들 때문이겠지 이 모든 것들이 내 사랑의 원인에 일정부분 한자리씩 하고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이 중 어떤것이 사라지거나 바뀌었을때 내 사랑도 변하게 될까
우리는 사회에서 여러가지 위치를 갖는다 누군가의 딸, 형제, 친구, 직장동료일 수 있고 직장의 어떤 직함일 수 있으며, 인터넷상의 가상의 인물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아마도 카프카는 사회적 위치의 상실을 인간이라는 존재의 상실일 수 있다고 가정한게 아닐까 싶다
바퀴벌레는 인간이 가장 싫어하는 벌레 중 하나이고 어디에 쓰일지 쥐어짜보아도 일반 가정에서 그 역할을 찾기 힘들다 차라리 애완동식물로 바뀌었다면, 그래서 그 존재로서 가족들에게 어떠한 역할을 해낼 수 있었다면, 그렇게 비참히 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왜 사랑하는가 나의 사랑은 어떠한 조건일 때 유지되는가 생각해보게 되는 책이다 |
|
원래 대학 막학기에는 전공을 더 듣지 말고 회계수업이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관련 수업이나 외국어 수업을 들으려고 했었는데 회계는 미국 회계사 공부를 시작했고 컴퓨터프로그래밍은 손놓은지 너무 오래되서 학점이 걱정되었고 외국어수업은 학교 외국어 수업이 그닥 도움이 안되는것 같아서 유럽여행에 도움이 될 수업을 듣자와 공책 정리하다가 예전에 필기한 공책을 보다가 교수님 수업이 듣고싶어져서 듣게 된 수업. 음 수업을 들을때 독일어는 이렇게 읽는구나와 독일의 민족성(?)에만 흥미가 있었는데 이런 작가들이 독일 작가였구나 하면서 신기하게 수업을 들었다. 안네의 일기라던가 괴테라던가 카프카라던가 다른 유럽문화수업을 들으면서 교수님이 화가들을 나라에 따라 시대에 따라 구분 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진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함께 잡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마침 이 수업을 독일작품들과 작가들만 다뤄서 좋았던것 같다. 여하튼, 카프카에 대해서 배울 때 유명한 '변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그냥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한테 안좋은 일도 많이 생겼었고 친구 졸업연주회에 갔다가 친구를 매우 자랑하시는 아버님과 아버님을 귀찮아하는(?) 우리들사이에서는 애교많은 친구의 모습이나 그 당시 우연히 티브이를 통해 본 우리 아빠세대들의 실직(?)경제위기로 인한 쓸쓸함 보험경제학 교수님이 말씀하신 교수님 친구들은 다 놀아서 아무때나 부르면 얼굴 볼 수 있다는 이야기 어느순간부터 아빠가 집에있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사소한것에 간섭하는 아빠가 귀찮다는 친구 이야기등 이런것들이 한 순가에 생각나면서 변신속의 그레고르 잠자가 현대의 아빠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냥 읽고 싶었고,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말한 항상 이곳과 저곳의 경계에서 저곳에 가려고 애쓰는것과 직접적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글에 드러내지 않는다는게 카프카 문학의 특징이라고 해서 흥미롭게 느껴졌던것 같다. 카프카 시리즈를 몇가지 빌려와서 제일 먼저 읽고싶었던거라 봤는데 유형지에서, 시골의사, 변신 이렇게 기억에 남는데 의외로 단편이었다. 음... 변신은 정말 어쩌면 웃으면서 넘기지만 아빠들이 말하는 불안함(?)을 보여줬다. 직업을 갖고 돈을 벌고있을때는 잠깐이지만 집에서 존재감을 갖는데 직업이 없어지고 돈을 못벌면서 집에서 하루종일 있게되니까 오히려 집에서 더 다정해지는게 아니라 이제까지 집에 없던 존재가 함께하면서 불편해하고 나중엔 무시하는 모습이 어쩌면 아빠들이 불안해하는 느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내 친구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이런 불안감이 확실히 어른들한테서는 가끔 느껴진다. 동생이 학교과제로 사진을 찍어 냈을때 아빠가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모습과 설거지를 하는 모습을 찍어가지고 냈더니 동생 교수님의 반응이 꾸미지 않은 사진이라 좋다고 하시며 아버님이 곧 퇴직하시니? 라며 집에서 많이 노력하시는구나라고 했다고 해서 온 가족이 웃었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유형지에서는 잔인했다. 토할것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사형집행을 행하는 기계를 간단히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상하고 읽다보니까 그냥 속이 울렁거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자신이 믿고있던게 가치가 없어지면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을 표현하려고 한것이었는지.... 그냥 속이 안좋은 부분이었다. 시골의사는 더 모르겠다. 교수님이 카프카를 연구중인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진짜 도대체 무슨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책에 실린 내용들을 다 읽고나서 느낀건 뭔가 흑백티브이에 흐릿하게 구분되지 않는 장면들이 지나갔던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그 내용이 뭐였는지는 정확하게는 모르겠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나온건 아닌데 뭐지?하는 느낌이다. 결국 책 뒤에있는 옮긴이의 말을 보면서 카프카작품의 특징을 간단하게 읽어보면서 끼워맞춰 이해하려고 했지만 결론은 카프카는 현대인같다라는 느낌뿐. 현대인중에는 불쌍하고 방황하는 자족하지 못하는 안에 무언가 존재하지만 그걸 표출하지 못하는 껍데기를 붙잡고 있는듯한 주인공들이 보이는 작품이라는 느낌 나머지들도 다 읽어봐야 알겠지만 뿌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