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개인으로서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에 대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나온 이 책이 유용한 자료가 됨에는 틀림이 없다. 책의 앞부분에 나오는 컬러 화보 - 가우디의 건축물들 - 은 보는이의 감탄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그런 점에서 책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책의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가 앞머리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개인으로서 안토니 가우디에 대한 자료는 아주 적을 뿐더러 특별히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아서 자손도 없고 증언해줄 사람도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그에 대한 개인적인 전기가 마땅히 나오기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저자가 특별한 자료를 발견하여 이 책을 쓰지 않은 이상, 이 책 역시 기존의 자료를 종합하고 정리한 이상의 내용을 담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족한 가우디 개인에 대한 정보를 당시의 시대적 정황에 근거한 상상으로 메우는 듯한 인상을 갖게 된다. 한 사람에 대한 전기가 상상에 기반한 내용으로 진행된다는 것은 전기라는 목적에 비교적 충실하지 못하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일반적인 스페인어 번역서적이 다른 언어의 번역서에 비해 의미전달이 어려운 특징(이유는 특별히 알 수없지만...그렇다...국내에 소개가 덜되었다든가, 문화적 배경에 익숙하지 못하다든가, 낭만적이고 비유를 많이 사용한다 등등이 아닐까 싶은데)이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고, 번역된 우리말의 문체 역시 지나치게 학술적인 느낌이어서 책을 읽기 어렵게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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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이 책이 나올 때쯤,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이 책을 나에게 선물한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이 책을 내게 선물로 주고 휴직계를 낸 후 남편이 있는 미국으로 갔다.(지금 그녀는 우리나라로 돌아와 내가 사는 곳에서는 좀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그녀가 내게 왜 이 책을 선물했는지, 그 이유는 여전히 모르겠지만(그 당시 내가 뭐라고 했는지도 모르겠으나 전혀 기억에 없으니), 이후 줄곧 읽어야지 하는 책들의 대기칸에서 내 손길을 기다리로 있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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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스 반 헨스베르헌 지음 / 양성해 옮김 / 현암사
‘안토니 가우디’ 아마 안토니라는 이름은 몰라도 가우디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가우디양식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20C의 대표적인 건축가였다. 책을 읽기 전에 가우디 하면 왠지 화려하고 독창적인 건물을 잘 짓는 건축가의 이미지였다. 가우디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한 때 특이한 건물들을 찾아보고 모형을 만들곤 했는데 우연히 ‘카사 밀라’라는 건축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의 기초도 모르는 나아지만, 정말 상식을 뛰어넘는 건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직선도 용납지 않는 마치 파도가 물결치는 듯 한 모습의 전면 파사드는 금세 가우디라는 사람에 대한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가우디가 지은 건축물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후로 구엘 성지, 농장, 공원, 성가족 대성당, 엘 카프리쵸, 카사 비센스, 벨예스구아르드, 카사 칼베트, 카사 바트요 같은 화려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건물들로 인해 가우디에 대한 관심은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었는지 매우 궁금했는데, 이 책을 보니 가우디의 일대기를 잘 정리해 놓아서 주석 달린 것까지 꼬박꼬박 찾아가며 읽어보게 되었다. 가우디는 이 책에 따르면 매우 카탈루냐 지역 중심적이고(당시 스페인의 중심부였던 카스티야와 적대적 관계), 카톨릭적 삶을 살았으며 채식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건축’과 ‘신앙’ 이외에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은 건축에 미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정치며, 돈의 구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카탈루냐라는 지역의 문화정체성을 위해 동분서주 하긴 했지만, 정치의 일선에 끼어들어 직접 힘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담아낼 건축물을 지어내는 데에는 재료를 아끼지 않았으므로, 심지어 그 건물을 부탁한 의뢰인이 파산할 지경에 이른 적도 있었다. 이런 그의 ‘건축에로의 집념’ 때문일까? 가우디는 정적이 많았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천문학적 돈이 들어가는 건축만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구엘 가문이나, 주교의 신분이 아니고서는 감히 가우디에게 건축을 의뢰할 사람이 없었다. 물론 공기관이나 다른 부호들에 의해 다리, 가로등, 가구 등을 의뢰 받기도 했다. 가우디의 마지막은 정말 안타깝게 전차에 치여 병원에 방치된 채 며칠을 보내고 지인들에게 발견되었다. 카탈루냐뿐만 아니라, 스페인, 아니 유럽 전역에 유명해진 이 건축가의 마지막이 이렇게 어이없는 사고로 인해 발생했다. 가우디는 죽었지만, 그가 남긴 족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깨진 타일 조각을 이용한 건물들과, 마치 동화에 나오는 듯 한 건축물들... 가우디는 단순히 예쁘게 꾸민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에 의미를 담아내었으며, 건축물을 주거용만이 아닌 예술로 재건축 해 내었다. 또한 그는 죽었지만, 아직 성가족 대성당은 건설 중이다. 만드는 기간이 150여년.. 인간의 수명을 넘어선 시간이다. 2030여년쯤에 완공된다고 하니, 가우디는 그의 사후 작업까지 계획해 놓은 것이다. 아마도 그의 건축으로 향한 집념과 만들고자 하는 것에 대한 아낌없는 과단성과 지원이 그를 20C 가장 위대한 건축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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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어머니 품을 설계한 건축가 / 하이스 반 헨스베르헌 / 양성혜/현암사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투우, 축구 그리고 피카소 정도? 나는 거기에다 가우디라는 사람을 추가하고 싶다. 자 두 개와 줄 한 개만 있으면 모든 건축이 가능하다고 말한 세계 건축사의 이단아 안토니 가우디. 그에 대한 평가는 그의 건축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극에서 극을 치달을 정도로 천차만별이며 지금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성가족 성당만큼이나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체적인 가우디에 대한 인상은 실체이든, 아니면 왜곡된 이미지든지 거의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괴팍한 성격, 고집불통에 괴짜, 고독한 수행자 등등 대부분은 가우디가 ‘고독한 천재’였다는 점에 주목하고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한, 반쯤 정신나간, 당대 최후의 낭만주의자로 평가한다. 가우디는 건축분야의 고행하는 은둔 수도자였다고 널리 알려져 있었을 정도로 그에 대한 여러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그가 남긴 건축에 대한 평가 역시 당대에는 호의적이지 못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건축, 카사 밀라에 대해서 당시 여러 언론은 참호나 고물상, 납골당에 비유하는 등의 조롱에 가까운 혹평을 한 바 있으며 성가족 대성당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우디가 이러한 여러 혹평에도 불구하고 건축에서 실현코자 했던 일관된 철학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이해해 준 평생의 후원자 구엘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주류 양식과는 달리 파격인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구축하였던 가우디로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한 평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런 말로 대변하고 있다. 건축은 아무 말 없이 군림한다고 가우디는 또한 철저한 카탈루냐 민족주의자였다. 카탈루냐 민족과 카스티야 민족간의 오랜 갈등과 카탈루냐 민족의 독립 투쟁사는 그 역사적 뿌리가 너무나 깊고 오래된 것이다. 몇 년 전 상영된 “아내가 결혼했다”라는 영화에서 그리고 있던, 카스티야로 대표되는 레알 마드리드와 카탈루냐로 대표되는 FC 바로셀로나 축구구단의 앙숙관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양 민족의 오랜 분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가우디에 대한 평가마저도 그런 민족적인 정서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곤 하였다. 스페인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에 대한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가우디에 대한 평가가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가우디를 카스티야와 대치된 관계로까지 확장시켜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스페인에서 가우디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지만 정치. 사회적 바로미터인 것은 분명하다. 가우디는 또한 평생을 깊은 신앙심에 침잠해 있었고 자신의 건축물 속에도 그 신념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가우디는 유물론에 대항하는 십자군의 이름 아래 홀로 싸우는 전사였다. 부르주아의 허영심을 벌하려는 욕구가 건물에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신앙 이외에 무엇이 있었겠는가. 가우디는 1926년 6월 10일 전철 사고로 사망하였다. 저자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1926년) 6월10일 오후 5시 정각, 안토니 가우디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진정한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 온 한 위대한 영웅의 대서사시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했다. 역사와 카톨릭 신앙을 삼차원 건축물에 담고, 카탈루냐가 그리스도교의 중심이 되길 바랐던 가우디의 원대한 야망은 그의 사망과 동시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그가 평생을 걸쳐 헌신했던 성가족 대성당은 아직도 건축이 진행 중이다. 만일 정기적인 헌금이 끊이지만 않으면 2030년엔 끝날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을 하고 있는 세기를 넘어서는 대 역사인 것이다. 만일 스페인을 여행하는 길이 있다면 꼭 한번 성가족 성당에 들러서 그 위대한 미완의 건축물이 완성될 수 있도록 마음속으로나마 기원해 보는 것은 어떨지. 그 역사적인 대업이 이루어지는 날에야 비로소 가우디의 묘비명을 가우디가 원했을, 동방박사가 예수의 탄생을 예시하는 별을 보며 내뱉은 이 감탄사 한마디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기쁘고 기쁘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