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 악마의 패스, 동쪽나라, 이윤정 역
원제 : 魔のパス天使のゴル
월드컵을 노리고 번역되어서인지 싯벌건 표지에 붉은악마의 심볼인 도깨비 얼굴의 치우가 담겨있는 다소 거부감가는 표지의 이 작품은 꽤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원제가 악마의 패스 천사의 골임에도 천사의 골을 생략한 이유는 간략한게 아름다운 것이라는 출판사의 고려가 있었을 수도 있고, 붉은 악마들이 한권씩 사 읽어줬으면 하는 경제적 바램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다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이 팔리지는 못한 듯 싶다.
사실 21세기에 축구라는 스포츠를 소설로 그려보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도박에 가깝다. 그것도 축구선수의 인생이나, 한 소년이 축구를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줄거리도 아닌 축구 시합 자체를 다루는 소설일 경우 더욱 그렇다. 비단 베컴의 인기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인공위성을 통해 매일매일 안방까지 찾아들면서 점차 비주얼이 강조되고 있는 축구라는 스포츠를 굳이 누가 소설로 읽고 싶겠는가?
비록 무라카미 류가 축구애호가이고, 축구전문칼럼니스트를 자처하더라도 오만에 가까운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절 라디오가 스포츠 중계의 주류를 점했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그래도 굳이 이 책을 읽어본것은 그가 비주얼한 묘사력을 타고난 몇 안되는 작가중에 한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후감은 무라카미 류는 축구시합의 박진감과 관중의 긴장감, 선수들의 거친 호흡을 문자화해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짝짝짝
스즈키 코지가 묘사해냈던 우물속의 긴박감을 떠올리는 류의 필력으로 나카다 히데토시의 분신으로 의도된 듯한 야하네 도지라는 일본 선수는 이탈리아 세리에A리그에서 멋진 경기를 펼친다. 유벤투스의 지단과 벌이는 마지막 승부역시 훌륭하다. 현실과 가공을 조화해내 축구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이천수나 박지성을 모델로 해서 어느 한국작가가 이정도의 리얼리티를 끌어낼 수 있을까. 궁금하고 기대된다.
다만 악마의 패스 이 작품이 뛰어난 축구문자중계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전 작품 공생충 못지 않은 용두사미 작품리스트에 올라가야 한다는 것은 아쉬운 노릇이다. 배신감도 든다. 하지만, 그것은 스릴러에서의 실패이지, 축구중계에서의 실패는 아닐것이다.
즉 , 이 작품은 초반의 독자를 휘어잡는 두마리 토끼중 축구에 몰두하는 나머지 거대 조직의 음모와 그에 맞서는 주인공의 서스펜스를 끝까지 몰고가는데는 실패했다. 작가가 불성실하단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어떤 느낌인가 하면 멋진 작품을 써보려고 하다가 뒤에 가서 쓰는게 재미없어져서 엉성하게 마무리 지어버린 듯한 그런 느낌마저 있다.
하지만 전체적 완성도가 아무리 초라하다고 하더라도 세부의 뛰어난 묘사력 때문에, 그래도 나는 무라카미 류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그것이 그가 유명작가로 존속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그가 예찬하는 야하네 도지의 축구처럼, 그라운드를 달구는 화끈한 골보다는 그라운드를 얼어붙게 만드는 쓰루 패스에 작가 자신이 집중한 나머지, 제대로 골을 넣지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 차원에서 출판사에서 「악마의 패스, 천사의 골」란 원제를 「악마의 패스」로 축약한 것이라면, 한국 출판인들의 감각이 대단하단 생각마저 든다.
여유롭게
[인상깊은구절] 도지는 순간 오른쪽으로 빠진 노바라에게 절묘한 스루패스를 했다. 경기장 전체가 일순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나도 숨을 죽이며 "그래 이거야?"하고 무심결에 중얼거렸다. 이것이 바로 야하네 도지의 패스였다. 자로 잰 듯 수비수의 불과 몇 센티미터 옆을 통과하는 그 패스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소름이 오싹 돋았는지 모른다. 골이 터질때는 경기장이 폭발하지만, 스루 패스가 이어질 때는 경기장 안이 얼어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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