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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래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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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당신은 인간의 의견일치가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일치한다. 그것은 견해에 있어서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에 있어서의 일치이다.                                         -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 241   4년 하고도 6개월 전쯤, 무슨 건방으로 나는 학위 논문 후기에 구태의연한 감사의 글 대신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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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당신은 인간의 의견일치가 참인 것과 거짓인 것을 결정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일치한다. 그것은 견해에 있어서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에 있어서의 일치이다.                                         - 비트겐슈타인『철학적 탐구』: 241

 

4년 하고도 6개월 전쯤, 무슨 건방으로 나는 학위 논문 후기에 구태의연한 감사의 글 대신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한 철학자의 문구를 적어 넣었었다. 질적으로 감히 어디에 댈 수도 없는 졸문 뒷구멍에 슬그머니 이 문구를 적어 넣은 것은 두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있었다.

 

우연하게도 내가 쓰고 있던 논문의 요지는 학생들의 글쓰기로부터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있고, 더 나아가 과학적 사고의 신장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논문을 위해 두서없이 읽던 책 중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언급들을 만날 수 있었고, 특히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 대한 관점, 즉 언어의 의미가 그 사용과 삶의 형식에 있다는 통찰이 매우 긴요하게 받아 들여졌었다.

 

또 다른 하나는, 논문을 쓰면서 교수와 겪는 갈등과 그 상황이 비트겐슈타인의 이 잠언과 딱 들어맞는 듯 했다는 것이다. 교수는 '내가 틀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그 말을 '너와는 삶의 형식이 다르다'로 고칠 것을 권하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내 머리속에서 명료하게 정리되지 못했던 비트겐슈타인이니 바슐라르니 하는 이들의 '조언'과 '협조'는 논문에서 빠져야만 했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 비트겐슈타인과 프로이드를 '치료'의 관점에서 비교하고 있지만 사실 비트겐슈타인에 더 무게가 실린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이드가 '무의식'이라는 '결정론적' 기제를 분명히 함으로써 합리적이고 인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모든 병증이 '언어 사용'에 있다고 보고 '해방의 말'을 찾음으로서 치료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프로이드는 설명을 통해 명확히 하려 하고 비트겐슈타인은 설명을 자제함으로써 혼란을 규명하려고 한다. 프로이드는 의미를 해석하여 명료한 인과 관계를 밝히려 하고, 비트겐슈타인은 그 의미의 조건들을 보여줌으로써 잘못된 유비의 구속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프로이드는 지식을 추구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이해를 추구한다.

 

"우리는 사물들을 가리키고 알기에 앞서 단어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클라리넷 소리가 어떤지 당신은 어떻게 아는가? 커피맛이 어떤지 어떻게 아는가? 또한 당신은 놀이가 무엇인지 어떻게 아는가?"(p.52)

 

앎은 이해의 뒤에 오며, 이해는 사용이라는 실천을 통해 구축된다. 또한 이해는 반드시 앎과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독립적이다. 슬픔이나 기쁨, 몸짓, 의도 등이 뒤섞인 발화는 지식과 무관하다.

 

우리의 언어는 신도시처럼 잘 구획된 지식 체계이기 보다 오래된 도시처럼 감정과 느낌과 의도와 감각과 몸짓이 뒤섞여 있는 우리의 삶의 표현, 삶의 형식이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프로이드식의 합리적 설명은 혼란을 가중시킬 뿐이며 오래된 도시를 신도시로 착각하게 만든다. 합리적 설명으로 구성된 발화를 자제하고 '명료한' 표현을 찾는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오래된 도시가 간직하고 있는 언어 체계의 비밀을 드러내 준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해방시키는 단어를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상황의 '인상적 특징'을 정확히 알아야만 계속해서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우리는 단어들의 사용을, 즉 규칙에 얽매이지도 않고 토대를 이루지도 않으면서 대화를 발생시키는 방식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올바른 표현을 찾아낸다는 것은 미리 품은 생각을 정확히 표현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표현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사고가 만족스럽고 편안하다는 것이다."p.36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그 명료한 표현, 해방의 말이란 무엇일까?

 

"명료한 표현은 실체 없는 관객의 입장 혹은 객관적인 관점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다. 그것은 적극적인 관찰이 아니라, 순간적 포착이나 일련의 포착들에 기반을 둔다."p.37

 

철학자가 찾는다는 그 해방의 말이란 결국 '詩'가 아닐까. 하필 이 책의 역자 전대호가 90년대 후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던 가장 빛나는 시 '상처'의 주인공이란 사실이 예사롭지 않다. 물리학도에서 촉망받는 시인으로서, 이제는 철학자로서 그 행적만으로도 신난한 고민이 느껴지는 역자의 이 번역 작업은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테면 그는 비트겐슈타인으로부터 그와 삶의 형식이 일치하는 도시를 찾았을까? 어쩌면 생애 전체를 통해 우리는 역자처럼 나만의 오래된 도시를 찾아 헤매고 있는 것인 지도 모르겠다.

m*******d 2009.10.2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