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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정승섭 혜원출판사/2008.7. sanbaram
<멋진 신세계>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첫 번째 반역자는 배양병 속에서 태아로 있던 시기에 담당관의 실수로 지나치게 알코올을 주입받아 상류계급에 속하면서도 하층계급의 열등한 육체를 부여받은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청년이다. 마르크스는 상류계급의 인간으로서 지적인 노동에 종사하면서도, 환경에 순응하지 못하고 계속 고독과 열등감에 빠져 고민하며 몰래 반사회적인 사상을 품는다. 두 번째 반역자는 육체적으로도 지능적으로도 너무나 우수한 소질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오히려 전체주의정책에 예민한 회의를 품고 있는 헬름홀츠 왓슨이라는 청년이다. 그렇지만 이들 반역자들보다 좀 더 통렬하게 좀 더 정면에서 이 전체주의 국가에 반항한 사람은 야만인 지역에서 살다가 우연히 별세계를 방문하게 된 존이라는 청년이다. 존은 미래국 편에서 보면 아직도 문명화되지 않은 원시적인 구세계에서 자라났다. 그는 병 속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자궁에서 잉태되고 어머니의 고통 속에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구세계의 주민인 존은 고난이 없는 욕망의 성취를 믿지 않는다. 또 종교적인 정서의 존재를 긍정하며, 걱정에 의한 영혼의 동요 속에서 살아가는 보람을 느낀다. 특히 그가 우연히 입수해서 탐독한 셰익스피어의 세계, 인간의 정서가 큰 진폭을 가지며, 영혼이 살아 있는 세계를 예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1년 내내 영혼의 휴식을 즐기는 문명국의 행복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이 바보들의 낙원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독을 찾아 전원으로 도피하지만 존엄성의 신봉자인 이 ‘야만인’ 청년 존은 문명사회와 단절하기 위해 자살을 하고 만다.
<멋진 신세계>는 포드 자동차 회사가 일괄작업을 통해 T형 자동차를 생산해낸 해를 기원 1년으로 정하고 있으며, 포드 기원 632년을 기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이 씌여진 때로부터 약 6백년 후의 이야기다. 따라서 그때의 구세주는 예수님이 아니라 핸리 포드인 것이다. 포드는 자동차를 개발했을 뿐 아니라 일괄작업과정을 착안하여 대량생산을 가능케 한 사람이다. 즉, 생산의 능률화를 꾀한 현대 과학문명의 아버지인 것이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해 현재 우리 세계에서 일상화 되고 있는 과학문명보다 못한 아이러니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는 현대인과 같이 여성이 아이를 낳는 사회를 ‘야만인’으로 규정하여 인디언 보호 역처럼 일정 장소에서 생활하게 한다. 그들에게는 오직 두 가지 선택만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유토피아에서 광증의 삶을 살거나 아니면 원주민 마을에서 원시인으로서 사는 것처럼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설정한 것이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리는 미래사회 에서는 “첫째의 목적이 사회 안정이며 이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서 온갖 방법이 채택된다. 여기서 인간은 출생부터 통제를 받게 된다. 인간은 태내생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런던의 중앙 인공부화 및 조절국의 배양병에서 인공적으로 수정되고 습성을 형성받는다. 이로 인해 미래세계는 계획적, 경제적으로 인구를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배양병 속의 신생아들에게는 제각기 정해진 계급이 있어서 그 계급에 만족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심리학적 기술과 생물학적 기술에 의해 교육받는다. 따라서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은 누구나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며, 항상 명랑하게 살아간다. 게다가 ‘소마’라는 묘약을 먹으면 부작용 없이 술과 종교의 효과를 즐길 수 있다. 이 약으로 사람들은 도원경의 생활을 만끽하며 살고 있다. 태생이 아니기 때문에 부모와 자식 관계가 없으며 오히려 그러한 관계는 미개하고 저속한 것이라 여겨진다. 부부라는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로 부정되며 극단적인 자유연애와 완전한 난혼이 장려된다. 모든 욕망은 곧바로 채워지며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은 처음부터 느낄 수 없도록 조절되었으므로 모든 인간은 격정을 체험하는 일이 없다. 이렇듯 완전한 안정을 유지하는 인간들로 성립된 사회이므로 사회가 불안한 세력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일도 없다. 모든 것이 지배자의 계획하에 완벽하게 통제되는 이상적인 사회인 것이다.(p.325)” 여러분들은 과연 이런 사회에 살고 싶은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게 하는 소설이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의 힘으로 창조한 미래의 인류사회를 그려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일종의 ‘유토피아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인간의 불행의 원인인 모든 고통, 부도덕, 빈곤, 질병, 범죄, 불안 등을 과학의 힘으로 제거해버린, 만족과 쾌감뿐인 미래의 낙원사회를 그리고 있다. 거기서는 모든 아이가 인공수정을 통해 광장에서 생산되고 일정기간을 시험관 속에서 자라면서 평생 그에게 배정된 사회 등급에 적응하게끔 과학적으로 훈련된다. 이 기간 동안 ‘만족’은 거의 천성과 다름없이 습성으로 형성되어 지배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개인은 아예 만족을 느끼며 복종한다. 따라서 각 개인은 제멋대로 사랑을 하거나 문학, 예술, 종교 등 과거의 문화유산에 미련을 갖지만 않는다면 이 ‘멋진 신세계’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 수 있으며, 죽음마저 즐겁게 맞이하게 된다. 이 같은 세계가 과연 인간에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의문을 던져주는 작품이다.
<멋진 신세계>의 주제는 과학의 발달이 인간 개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이다. 물리학과 화학과 공학이 거둔 승리들은 당연한 것처럼 말없이 받아들여졌다. 특별히 서술된 과학적인 발달이라고 해봐야 생물학과 심리학과 생리학에서, 미래의 연구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뿐이다. 모든 권력을 장악한 지도층과 그들이 거느린 간부들이 영원한 안정이라는 문제를 해결해낼 거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안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급속히 늘고 있다. 그 성취는 단순히 피상적이고 외적인 혁명에 지나지 않는다. 노예 생활을 사랑하는 태도란 인간의 이성과 육체 속에서 이루어지는 깊고 개인적인 혁명의 결과 이외에는 무엇으로도 달성되지 못한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년>은 반유토피아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서구 산업사회가 근본적인 변화 없이 현재 추세대로 계속되었을 경우 인류가 맞이하게 될 섬뜩한 장래를 묘사하고 있다. 또한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도구로 생물학적인 도태와 약품이, <1984년>에서는 사상적인 조종과 무제한의 테러행위가 사용된다. 그리고 그 결과들은 거의 완전하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구성 분자일 뿐 개성을 잃어버리는 관료주의 사회의 참담한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런 반유토피아 소설들은 이러한 경우 인간이 대처해야 할 방법은 딱 두 가지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주 포기하거나 아주 만족하는 것이다. 어느 한쪽도 아닌 중도파의경우는 사실상 존재할 수가 없다. 오늘날은 <멋진 신세계>와 닮아 있는 면이 있기에 불안전한 소설이지만 여전히 현대인들에게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읽히고 있기 때문이다.
“헉슬리는 미래학자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도 근본적으로 1930년대의 과학화라는 미명하에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서구문명을 비판하려고 한 것이지, 미래의 예견을 주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p.328)”고 말하는 역자는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를 통해 진단한 현대문명의 질병은 크게 네 가지로, 첫째는 독재주의 및 권위주의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충동이며, 둘째는 동질성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인한 개성의 상실이다. 셋째는 과학에 대한 선호도의 증가로 야기되는 예술과 인간성의 경시이며, 넷째는 물질주의의 팽배로 인한 신, 구원, 영생에 대한 불신의 확산이다. 결국 헉슬리는 인류의 개선을 위한 모든 발명과 진보가 인류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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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읽으면 좋은 책
요즘은 공상과학미래영화의 수준이 너무 발전해서 아바타처럼 3D입체영화가 대박을 터트리는 시대다.그래서 이 책이 독자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하지만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가 이 책을 집필했던 시기가1932년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읽으면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다가온다.황우석박사와 줄기세포,복제양 돌리로 세상을 떠들썩 했던일이 얼마전의 일이다.그런데 올더스 헉슬리는 1932년에 인간복제를 소설속에서 예언했다.책은 사라지고 전자책의 등장을 예고한다.돈이 신이 되버린 현시대처럼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대.그는 과학의 발달이 마냥 행복하기만 할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포드기원 632년 '런던 중앙 인공부화 및 조절국'이라는 34층 건물에는 수태실이 있다.성장발달을 억제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보카노프스키 절차에 의해 처리된 난자는 부화기에서 분열하고 싹이 나서 증식하고 분열한다.인간은 붕어빵 틀에서 찍어내듯 그렇게 쌍둥이들이 복제된다.태아들은 자라날 사회계급에 맞춰 알파 플러스의 지식인, 베타,델타,감마,인간의 지성이 필요없는 엡실론으로 배양된다.신세계가 추구하는 공동사회,동일성,안정을 위해 인간은 모두 신파블로프 행동조절과 수면교육을 받는다.또한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맬서스 허리띠를 착용한다.모든 인간은 완전한 행복한 사회를 위해 고독이나 불행한 감정,충동 억제를 위한 소마를 복용한다.문명세계란 살균된 세계다.인위적으로 조건반사된 모든 인간은 자신의 계급과 직분에 만족하며 살아간다.하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에 의한 삶이 아닌 권력자에 의해 통제된 노예와 같은 삶이다.개인의 감정이 무시되고,열정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배양실수로 알코올과다 투여된 알파 플러스계급 버나드 마르크스는 신체적 불완전성을 고통스럽게 생각한다.그는 고독,편견,경멸,적대감에 빠져 문명세계에 대한 반역적인 생각을 키운다. 헬름홀츠 왓슨은 지나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 집단에서 소외감을 느낀다.포드 기원 150년 전에 출판된 책은 모두 금서가 되고,십자가는 머리를 자른 T형이 된다.하지만 야만인 지역에서 모체로부터 태어난 존은 어머니 린다에게서 셰익스피어를 읽어가며 글을 배운다.그는 연구대상이 되어 영국으로 온다.야만인 지역이나 문명인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은 소외감을 느끼고 그들 세명은 친구가 되어 문명세계에 저항한다.하지만 집단에 대한 반사회적 행동은 용납되지 않는다.그 사회에 동화되든지,사회로부터 격리되거나,또는 스스로 자살하는 길밖에 없다.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은 조지 오웰의 <1984>다.조지오웰이 그린 전체주의세계와 <멋진신세계>는 너무 닮은 세계로 다가온다.<멋진신세계>는 유토피아를 그리다 잘못 그려진 파괴적인 디스토피아다.<멋진 신세계>는 물질문명의 과도한 발달이 몰고온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한 회의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멋진 신세계>는 풍자소설,공상소설이지만 첨단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요즘 현대인들이 소외감을 느끼고 획일화 되며,비인간적인 것을 그는 미리 알고 내다보기라도 한 듯 소설은 요즘 세상과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놀랍다.<멋진 신세계>는 크리스티아네 취른트가 권한 서양고전 100권에 속한다.고전은 신간의 모태가 된다.<책-사람이 읽어야 할 모든 것>은 나의 책읽기 나침반이다.고전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 이 책을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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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포드 기원 632년. 사람들은 자신의 등급에 맞춰서 양육되고 조절된다. 등급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에 각각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나뉘어져 있고 모든 사람은 인공부화 조절국에서 태어난다. 알파 등급으로 '부화'된 사람은 최고의 엘리트로서 사회의 지도계층에 맞도록 교육되고, 천한 일을 하도록 태어난 엡실론들은 복잡한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해도 되는 자신들의 위치에 만족하게끔 '세뇌'된다. 고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누린다. 멋진 신세계 안에는 노화도 없고 고통, 격심한 감정, 슬픔, 노여움의 감정이란 철저히 배제된다. 이 사회는 오로지 구성원들의 행복만을 보장하며 그를 위해 '소마'를 제공한다. 때때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소마'만 복용하면 문제없다. 그들은 다시 쾌활한 기분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조절국에서 일하는 여직원의 작은 실수가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열등감 덩어리 인간을 만들었다. 버나드는 엄연히 알파 계급의 최상위이지만 그의 체격은 알파보다 열등한 계급의 것이다. 그는 '소마'를 복용하지 않는다. 자신의 열등감으로 인한 우울한 기분을 그냥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그런 버나드를 별난 사람 취급을 한다. 모든 사람이 서로에게 속해 있으므로 철저하게 개인이 무시되는 멋진 신세계에서 버나드는 유별나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우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에 당당하게 지도계급으로 군림하고 싶어하지만 자의식이 강하여 공동생활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버나드다.
그런 버나드에게는 헬름홀츠 왓슨이라는 친구가 있다. 그는 버나드와는 달리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잘 나가는 엘리트다. 그러나 그런 그가 열등감 덩어리 버나드와 공통점이 있다면 헬름홀츠 역시 개인적인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기존 사회계급에 속하고 싶어하는 버나드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버나드는 자신의 개인으로서의 감정에 자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싶어하나,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때문에 갈등하는 것이다. 즉, 버나드가 공동생활에 위치를 다지고 싶어하는 개인성을 가지고 있다면 헬름홀츠는 자신만의 생각과 세계를 갖고 싶어서 개인성을 향상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야만인 세계에서 온 '존'이 멋진 신세계에 합류한다. 야만인의 세계는 현대의 우리보다 더 원시적인 세계다. 미신적인 주술이 넘쳐흐르고 책은 물론 문자를 모흔다. 그들은 흙을 발라 놓은 집에 사는 일종의 콜롬부스 시대의 인디언들이다. 존은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태어났고 엄마라는 존재에 의해 자랐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절대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세익스피어를 읽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낄 줄 알고 엄마가 죽으면 슬퍼할 줄도 안다. 진정 고귀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며 고결하게 지키고 싶어할 줄 안다.
그런 '존'이 멋진 신세계의 사람들을 이해할 리는 만무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속해있는 이 세계에서는 결혼이라는 제도는 존재하지 않은 채 난교가 성행하고 물론 그들 사이의 질투도 없다. 가슴 애태우는 사랑을 모르는 이 곳의 사람들은 마음에 들면 곧장 함께 자면 된다. 그런 세계의 여자 레니나에게 존은 창녀와 같다고 실망하고, 엄마가 죽어서 슬퍼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에게 정나미가 떨어진다. 결국 그는 로빈슨 크루소와 같은 생활을 하기 위해 홀로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미 언론에 공개되어 많은 사람들이게 흥미를 끌고 있는 야만인 존의 생활은 그만의 것이 아니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되고 영화의 소재로 쓰이며, 그가 홀로 살고 있는 곳에 문명인들이 구경하러 온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기 위한 것처럼. 야만인의 세계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문명인과 물질적인 거리만 떨어진 채 살아가는 존은 결국 문명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는 문명인과의 완절한 단절을 위해 목을 매어 자살한다.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인 포드기원 632년이라는 것에 이미 멋진 신세계를 살고 있는 자들의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 이 세계는 기독교나 불교 같은 종교는 없고 A.D 또는 불弗기 같은 것도 더더욱 없다. 오직 헨리 포드가 T형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한 해가 기원이 된다. 대량생산을 좀 더 쉽게 만든 헨리 포드를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문명인들에게 있어 대량생산은 미덕이고 개성화는 악덕이다. 모든 사람은 비슷해야 하고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하며 튀면 절대 안된다. 각자의 위치에 맞는 곳에서 만족하며 늙지도 않은채 행복(하다고 세뇌된) 삶을 살다가 60대에 이르면 갑자기 죽으면 된다. 물론 죽음에 이르는 고통은 없으며 죽으면 일제히 소각장으로 보내져서 각종 구성요소로 바뀌어진다.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사회의 구성물질로 재활용될 수 있는 극대화된 효율성에 찬사를 보낸다. 왜 멋진 신세계인지는 금방 짐작이 간다. 인간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라고 배워왔던 우리들은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계를 충분히 멋진 세계라고 여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은 여기에 당당히 맞선다. 그는 불행할 권리를 요구하고, 눈물을 흘릴 권리를 요구한다. 슬퍼하고, 분노하고, 각종 전염병에 걸려 고통스러워 하고, 이루지 못한 사랑에 마음 아파할 권리를 요구한다. 그것이 진정 인간다운 삶이기 때문이다. 불행과 고통을 모르는 자는 결코 극대화된 행복을 경험할 수도 없고 삶의 보람과 열정을 느낄 수도 없다.
분명 이런 세계는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도 사양한다. 이런 삶을 우리는 인간적인 삶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그저 행복하기만 한 삶, 공동체만을 위한 삶을 살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각자 안에 자신을 소유하고 있으며 개성의 극대화를 이룩하며 보다 나은, 내적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 인간다운 삶이며 나다운 삶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의 사회가 멋진 신세계와 기본적으로 그리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삶이 미덕이라고 배워 왔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않은 채 위로 나아가려는 욕심을 가진 자를 사회 불순분자라며 매몰시켜 버리려는 대중적 특성이 있다. 죽도록 슬픈 마음이 들면 자살로 그 고통을 끝내버리거나, 약물 또는 기타 중독성 매체들을 의지한다. 일부일처제라는 사회적 장치는 존재하지만 난교를 하지 않는 사회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그런 우리들이 포드 기원을 살고 있는 그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다른지를 경각심을 가지고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분명 올더스 헉슬리의 이 작품을 읽고나면, 인간적인 우리 자신에게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인간이라서 다행이다, 부모에게 고마운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며,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어서 다행이고, 얻기 힘든 것을 이룩했을 때의 극적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런 삶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각종 슬픔, 고통, 괴로움을 느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부모와 싸우고 나서 괴로워할줄 아는 마음을 가져서 다행이고, 연인과 헤어져서 죽도록 아픈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며, 이루지 못한 것을 갈망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렇게 '너무나 인간적인'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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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책을 선물받았다. 결혼한 이후에는, 책 선물을 주는 지인이 주위에 있지 않았고 아내와의 선물은 조금 민망한 감이 있어서인지 우리 둘은 서로 좋아하는 책을 읽기 바빴다. 공교롭게도 아들 녀석이 "이게 뭔 내용이야?" 하면서 포기하였던 모습을 보고 몇 일 지나지 않아, 아들 녀석이 포기하였던 바로 그 책,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선물 받은 것이다. 많이도 들어 보았고, 웬지 모르게 영화 "가타카"와 비슷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인지도가 꽤 있는 책이었지만, 자크 모노의 『우연과 필연』이 남긴 참담한 패배감을 만회해 보겠다는 생각과 함께 선물 받은 책을 손에 들었다. 초반부에 신세계에 대한 담담한 묘사 부분이 이어지는데, 역시 소설은 일정 부분 대비라든지 갈등 구조가 형성이 되지 않는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미건조함이 있기 마련인다. 초반의 묘사 부분은 뭐 이런 곳이 있지 라는 의아함과 새로운 신세계에 대한 적응기간으로서 소개가 주는 따분함때문에라도 조금은 지루하게 지나간다. 버나드와 레니나가 아마존 지역의 야만인과 만나는 순간부터, 대비와 갈등이 조장되기 시작하면서 소설의 몰입도는 증대된다. 몰입도의 증대는 당연히 비판적 의식과 연결되고, 헉슬리가 이 소설에서 주장하는 바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과학만능주의와 연결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제거와 순응이 만들어낸 사회.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가족이라는 기본 단위, 출산이라는 근원적 고통마저도 과학의 힘으로 조절하고, 그 체제를 철저히 교육시키는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고통이 사라지고, 일상적인 갈등은 마약과도 같은 소마라는 약제로 조절된다. 1932년, 헉슬리가 이 책을 쓴 시기는 유럽에 전운이 감도는 시기였다. 아직 원자폭탄이라는 과학이 만들어 낸 최고의 괴물이 실체를 드러내기 전이지만, 헉슬리는 전운이 감돌고 있는 유럽에서 이런 사회를 상상하며 오히려 비판의 잣대를 철저히 적용했다. 책의 후반부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야만인 (지금의 일반인)이 신과 고통과 자연과 자유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궁극에는 비극적으로 사회에서 도태되지만, 그런 과정은 작위적인 면이 강하게 느껴진다. 펜에 힘이 들어갔다고 할까? 소설 자체가 대상으로 삼은 독자층이 청소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주인공은 직설적으로, 신세계의 수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헉슬리의 주장을 대변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이야기 할아버지가 나와서 모든 이야기를 연결시켜 주고, 이 이야기의 교훈은 이것이다 라고 말하는 셈이다. 모든 것이 통제되는 사회에서 반론의 여지가 없다는 점은 분명 필자도 신세계를 반대하게 만드는 주된 이유가 되지만, 주인공이 세익스피어의 문구를 일반적인 법칙인양 거의 모든 현실에 접목시키며, 헉슬리의 주장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은 필자의 동의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원자 폭탄으로 대변되는 과학의 부작용은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서도 단골 소재가 되었고 그만큼 과장되었다. 언제나 큰 뿔테 안경을 쓰고 면도는 하지 않은 초췌한 얼굴에 키는 작고, 사람들과 사귀지 못하는 과학자의 모습이 만화에 등장하고 괴물같은 발명품을 가지고 사회에 그리고 주위의 인간들에게 큰 해를 끼치는 모습은 어찌 보면 신세계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현재의 세상에 가져다 주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치 체계중에 과학만큼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스스로 진보하는 체계가 없지만, 과학 만능주의라는, 실제로는 실현된 적이 없는 극단의 상상된 모습으로 과학을 비판하는 모양새는 우울하기 억울하기 짝이 없다. 과학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사회속에서의 인본주의적인 통제가 조화로운 사회가 신세계가 되어야겠지만, 헉슬리의 신세계를 그런 면에서 조금은 유치하다고 볼 수 있다. 극단의 세상을 상상하고 가하는 비판은 그만큼 현실적이지 못하다. 미래가 어떨지, 그리고 과학의 발전이 인간의 감정마저도 조절할지 (우울증 치료제 프로작이 작은 예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상은 쉽지 않지만, 인본주의적인 고민이 과학과 함께 하는 한, 미래는 헉슬리의 신세계와는 다를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해보게 해 준 책이 고마울 따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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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보수적 역사관과 세계관으로 인하여 상상력의 풍부함이라는 극적 장점이 다소 반감되었다.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아직 나의 결론을 명확하게 세우지 못했다. 누구나 쉽게 전체주의적 가상 세계를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소위 '혁명적인 혁명'의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3S (Sports, Screen, Sex) 또는 '소마'의 도움없이 현실의 고통을 매순간 체감한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다. 비롯 거짓이긴 하지만 소마를 통해 고통에서 해방 - 특히 종교도 쉽게 성공하지 못하는 죽음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을 포함해서 - 된 사람들을 과연 참혹한 현실로 돌아오게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이유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아직까지 자신있는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다. 야만인의 사회 및 존의 생각과 행동에 대하서는 저자에 대한 불만이 많다. 인디언의 사회를 진짜 '야만적'으로 정의하고 묘사한 것이 첫째 이유고, 과도한 기독교적 질서의 부여가 그 다음의 이유다. 저자는 존 웨인이 인디언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들의 자연주의 사상을 기독교의 금욕적 유일신론으로 왜곡시켜 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책의 결론이라 할 수 있는 존과 무스타파 몬드의 설전에서 존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과학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전체주의나 복지 독재주의(?)로 빠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주의나 복지 독재주의(?)가 과학을 그 자신의 체제를 공고화하는데 이용하는 것이다. 문제는 도구(과학)가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신체적인 결함은 정신적인 과잉을 가져올 수도 있고 그 역관계도 성립한다. 정신적인 과잉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일부러 고독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금욕주의적인 성교불능을 가져울 수도 있다. -- 96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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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완전한 것을 원하는 면이 있다고 보고 그런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졌는지... 존이 인디언 계곡에서 신의 존재를 깨닫는 장면을 비롯해서 좋은 구절이있다. 문명인인 어머니 린다가 여행을 떠났다가 사고로 일행에서 낙오되는 바람에 야만인 거주지인 보존지역에서 태어나 성장한 존. 그는 20세 때 문명 세계의 여행자인 버나드와 레니나를 따라 런던에 와 생전 처음 문명사회를 목격한 뒤 이렇게 감탄한다. brave new world!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에서 따온 표현. ) 존이 언제나 세익스피어를 인용한다든지 하는 것은 어차피 작가가 그리 만들었는데 말이 맞냐고 할것은 아닌것 같다. 존의 마지막 선택은 비극적이지만 굴복일까? 그림이 들어가서 좋지만 그림이 너무 못생겼다. 소설 형식을 빌려서 말하고 있지만 작가는 일반적인 독자를 상대로 썼으나 어느 문장들은 작가의 사상을 나타내고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소설로도 재미있다.
헉슬리가 1908년을 미래사회의 기원으로 한 것은 대량생산(Mass-Production)의 시대가 이 해에 시작됐기 때문이다. 하느님 대신 포드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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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양장본으로 나와서 더욱 소장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 '멋진 신세계'를 알게 된 것은 한 유명 영어 강사가 강연 중에서 어린 시절에
이 책을 읽고 '디토피아'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데서
반드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드디어 이번에 실행에 옮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맞물려, 보는 내내 우리 사회를 엿보는 심정이었다.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이 낳은 최고의 작가 중에 한분이다.
그는 이 책을 1932년도에 써서 과학의 발달로 인해서 인간이 모두 인공적으로
제조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따라서 '멋진 신세계'라는 것은 참으로
반어적인 표현이다.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미래 세계에는 제 1의 목적이 사회안정이다. 그래서 인공유리병에서 태어난
인간은 가자 정해진 계급이 할당된다. 여기서의 계급은 매우 세밀하게 구별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알파, 베타, 델타, 감마, 입실론 자기 계급에 기계적으로 적응
될 수가 있도록 소질을 구비시키고, 또한 그 계급이 맞도록 심리적인 기술을 이용
한 교육도 받는다. 따라서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절대로 반항하지 않고, 24시간
내내 명랑하게 살 수가 있다. 게다가 소마라는 묘약 - 마약의 일종-이 배급된다.
이런 전체주의적 국가에 반항하는 야만국에 존이 방문하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어떻게 이런 소설이 1932년에 발간되었는지 참으로 놀랍다.
이렇게까지 현재 우리 사회에 잘 적용될 수가 있을까?
언론매체와 여러 집단의 권력으로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소설을
과감하게 강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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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사람들이 꿈꾸는 이데아는 어떤 모습일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상을 갖고 자신만의 이데아를 지향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어떠하든지간에 각자의 오아시스가 있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꿈을 갖고 삶을 살아간다. 하루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캡슐에 관해 토론<?>하게 되었다. 주머니 속에 편하게 쏘~옥하고 넣고 다니면 주차장 걱정을 할필요도 민박이나 하숙을 걱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라며 우스개 소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만화나 공상과학소설에 있던 일들이 현실 속에서 하나둘 실행되어지고 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음료수 가게 중에 '스무디 킹'이라는 브랜드가 있다. 이 가게는 단순히 음료는 파는 것이 아니라 건강 음료를 지양하고 있다. 과일 음료 안에 칼슘보충제, 단백질제등을 넣고 음료를 파는 것이다. 맛을 위한 음료를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위한 음료가 된 것이다. 이런 모습이 발전을 한다면 즐기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자원을 아끼기 위해 한알의 알약을 주식으로 삼는 날이 곧 오리라는 생각이 든다.
'멋진 신세계'는 제목 처럼 그리 멋지지만은 않다. 일정한 틀안에서 갇혀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물론 규칙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규칙이상의 것이 항상 존재한다. 그것을 우리는 진리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리에 있어서 이 책은 부정아닌 부정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성애 이다.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아이를 낳아 기른다. 그리고 생산되는 아이들을 사회의 요구에 맞게 조정및 조절한다. 상층 계급과 하층 계급이 태어났을 때 부터 정해지는 것이다. 또한 하층 계급이 반발하지 못하도록 어렸을 적부터 세뇌를 시켜 맡은 일에만 충실하게 하게 만든다. 이 부분에서 모던타임즈의 찰리 채플린이 생각이 났다.
과연 우리가 상상하는 이데아는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정말 영화속 상상처럼 고정화된 틀 속에 갇혀 톱니 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이데아일까? 재미있게 읽었지만 사회에 대해, 현실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1g의 소마가 필요하다... |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혜원 1932년작 #리뷰 128]
<과학의 발달이 인간을 완전히 통제하는 세계에서 산다면.. 멋진 신세계!!> . ??이 책의 배경은 과학과 기계문명의 발달로 <규격화된 인간을 공장 시험관에서 대량생산 해 내는 미래사회>로 계급에 맞는 획일적인 인간들을 만들어 내 전쟁이나 다툼이 없는 “안정적인 세계”이다. . 그리고 이곳에서는 "가족이나 임신을 통한 출산, 예술, 사색" 등 현재 우리가 소중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들은 사회의 안정성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금지하고, <세익스피어, 성경, 시>와 같이 인류 정신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들은 극소수의 리더들이 비밀리에 관리하고 있다. . 이 문명사회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유전자조작(계급형성), 세뇌교육(충실한 역할이행), 이성(異性)의 완전한 공유(성욕해결), “소마”라는 정신조절제(종교와 마약의 역할, 먹으면 성인군자 됨)> 등을 통해서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이 소위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 . ??이러한 시대에 현재 우리와 같은 종교, 문화, 가족생활을 하고 있는 (문명인에게는 저속하고 더러운) <야만인>들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처럼 별도로 관리되고 있고 그 중 인간의 “영혼”과 “자유”을 중시하는 <존>이라는 “야만인”이 고도로 문명이 발달한 <멋진 신세계>에 발을 들이면서 <과학문명의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악영향>,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 . ??“저는 신을 원합니다. 편안한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저는 시와 현실적인 위험과 자유를 원하고 선과 죄악을 원합니다”- 존(야만인) “알 수 없군요. 왜 불행해지는 권리만 원하는지”- 몬드(문명인) “네, 그래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늙어서 추해지고 무능해질 권리는 말 할 것도 없고,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기아의 권리, 더러워질 권리, 내일 일어날 일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말할 수 없는 온갖 고통에 시달릴 권리……”- 존(야만인) . . 위의 문명인 “몬드”와 야만인 “존”의 대화는 <고통과 근심은 없으나 국가가 통제하는 기계적 삶> 과 <힘들고 괴롭지만 개인의 자유롭고 인간적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으로,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생각된다. . . 이 장면을 보고 나는 <매트릭스>의 한 장면을 떠올려 보았다. 아마 모피어스가 레오에게 <파란알약>과 <빨간알약>을 주면서 “파란알약”을 선택하면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안정과 쾌락이 보장되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고 “빨간약”을 선택하면 현실세계로 가 <괴롭지만 영혼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고난의 길>을 가게 된다는 설명을 해주는 장면... <조작 된 행복을 택할 것인가, 고통스럽지만 진실을 추구하며 인간적인 삶을 택할 것인가. .> . ??강력한 펀치를 날려주는 이 책을 보면서, 내가 지금 느끼는 행복이 어쩌면 <문명인이 느끼는 행복과 유사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고, 과연 <육체적 정신적 안정이 보장되는 스트레스 없는 삶>을 버리고 <괴롭지만 영혼과 정신이 자유롭고 인간적인 주체적인 삶>을 택할 수 있는 “용기있는 자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 . 간만에 정말 <멋진 고전작품>을 만난 것 같아 너무 좋았다. <고난은 따르지만 내가 결정하는 자유로운 삶> 이건 인생을 살아가면서 꼭 염두해 둬야할 문제인 것 같다. . 과학발달과 전체주의적 사상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무거운 상상 <멋진 신세계> <동물농장>,<1984>와 형제작품이라고도 하던데, 어두운 “디스토피아 작품”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