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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타임 아이스 겉표지가 주는 강렬함에 이끌려 읽게 된 소설이었다. 분량도 기존에 읽던 책들과는 상대가 안될정도로 정말 얇아서 그냥 가볍게 읽을 마음으로 꺼내들게된 책이었다. 그렇게 읽어내려가서 그런 탓인지 초반부터 갑작스레 드러나는 다소 충격적인 성애묘사와 커다란 줄거리보다는 '킴'이라는 여성의 약간은 공감할 수 없는 사고방식에 이 책을 더 읽어야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바로 옆에 초2 딸아이가 진을 치고 앉아서 내가 읽고 있는 '베드 타임 아이스'를 보려고 한다는데 문제도 있었다. 얇고 강렬한 표지가 아이에게도 눈에 들었나보다. 하지만 이 내용은 아까 잠깐 말했듯이 성애묘사가 거칠다. 19금! 정말 19금책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이렇게 과격하고 적나라한 성애묘사를 하는 책인데 괜찮나? 보는 사람이 많은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 이걸 리뷰를 적을까 말까 솔직히 고민도 했다. 꼭 보는 내내 김기덕 감독의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보는 내내 거북스럽지만 보고 나면 뒤끝에 남는 여운이 아주 깊은. 거북스러운 장면들이 남는 것보다는 주인공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한마리도 나에겐 예술영화와 같은 느낌의 소설.
베드타임 아이스에 관한 것들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보니 이런!! 야마다 에미니라는 작가는 일본 연애 소설의 여왕!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는 작가란다. 그리고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냄으로써 무라카미 하루키류에 필적하는 여성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첫부분부터 적나라한 묘사에 책을 볼까?말까? 망설였었는데...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류란다. 나는 아직까지는 무라카미 하루키류에는 내 취향이 맞질 않는가보다. 상실의 시대, 1Q84등 그의 책들을 여러권 보았지만 진짜 앞부분만 4-5번은 반복해서 볼 정도로 힘들었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나도 느끼고 찾고 싶었는데 도대체 찾을 수가 없어서 번번히 실패를 해서 지금은 그냥 포기한 상태. 남들이 다 좋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관심을 둘수 없는 내가 너무 특이해보여서 그걸 탈피해보려고 자주 찾아봤지만... 역시 난 특이한가보다.
무라카미 하루키류라는 평에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소하고 불편했던 나의 생각들을 달래본다. 역시 그랬던거야...하고.
1985년작품이라고 하니 당시로서는 굉장히 파격적인 소재의 내용이었을 듯싶다. 지금은 이 책보다 더 적나라한 책들이 많으니까 충격적! 성애묘사라고 까지 표현하긴 그렇지만 노골적인 건 사실이라고 인정한다. 클럽의 재즈 가수 일본 여성 '킴', 미군기지에서 탈영한 흑인 병사'스푼'. 탈영병흑인과 일본여자의 적나라한 성행위 묘사와 역정적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의 직업을 보면 이 책의 끝을 짐작 할 수 있을 것 같다. 결코 행복한 결말을 다루고 있지 않음을. 두 사람은 사랑과 집착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영원할 수 없는 관계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끈으로 붙잡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현실도피식으로 찾게된 서로였기에 더욱 끊을 수 없는 집착의 관계로 놓이게 된것같다. 끈을 놓으면 저 아래 절벽 밑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심정이었기에 그들은 집착도 사랑도 아닌 그러면서도 끈끈한 관계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 작품으로 저자는 나오키상 수상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들에게는 '풍장의 교실'이라는 작품이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한번 도전~해볼까한다. 야마다 에이미는 흑인문화에 대한 애정으로 어릴적부터 흑인문화를 많이 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인인 남편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 그런 것들이 많이 녹아있는 듯하다.
“내가 인간을 그릴 때 성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그 세계에서는 온갖 평등함과 권리가 항상 역전되어 더 아래쪽에서 여러 가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야마다 에이미는 말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보았던 베드 타임 아이스의 느낌과 야마다 에이미라는 작가를 조금이나마 알고 보는 것은 정말 천지차이다. 역시 많이 알아야 많이 보이나보다. 많이 부족한 나를 또 한번 느낀다. 갈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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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는 오래전에 한 여자를 만났는데, 그 여자는 소위 텐 프로를 나가는 아가씨였다. 그녀의 직업이 그렇다는 걸 물론 제이는 몰랐고 그들이 처음 만난 장소 또한 룸살롱은 아니었다. 그들은 나이트 클럽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 밤을 함께 했다. 제이에게 그런 날은 그리 드문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절의 대부분은 그런 날이 더 많은 제이였다. 나이트 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나 그 밤을 함께 하는 것이 신기할 일이란 손톱만큼도 없었던 그는, 당연히 그들을 기억하지도, 연락처를 주고 받지도 않았다. 그들은 서로에게 그 하루를 위한 존재 이상은 아니었다. 다른 의미는 어떤 것도 없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불문율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러나 달랐다. 아니, 제이의 그날은 달랐다. 하얀 침대 시트를 알몸 위에 두르고, 이제 막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로 담배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제이는 그냥 지워버릴 수 없었다. 현란한 조명 아래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그녀는,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스며드는 그 아침조차도 변함없이 아름다웠다. 연필 스케치 같은 모습으로, 신체 일부의 선이 햇살에 지워진 채 침대 모서리에 앉아 담배를 피는 그녀의 모습은 오히려 고혹적이었다. 제이는 그녀에게 연락처를 물었다. 그녀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그리고 잠시 망설이듯, 혹은 진심을 확인하듯 제이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지만, 이윽고 대답했다. 나, 술집 다녀. 제이는 그 말이 의미하는 바가 언뜻 다가오지 않아 두 눈을 끔벅거렸다. 그런 그에게 그녀는 두들겨 못을 박듯 다시 한 번 말했다. 나, 나가요, 라고. 커튼 콜과 더불어 장막이 다시 오르는 것처럼, 제이는 나가요란 단어의 실체를 찬찬히 인식했다. 그리고 막이 전부 오른 뒤에 제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관없어, 하고 말했다. 네 직업이 뭐든 상관없어. 그녀는 가소롭다는 듯이 피식, 하고 웃었지만 그래도 연락처는 건넸다.
그녀는 어느 날 제이에게 말했다.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시켜주고 싶다고. 제이는 어깨를 으쓱, 해보이고는 문제 없다는 듯 웃어보였다. 그러나 그것이 제이에게 그녀가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는 걸, 적어도 그때의 제이는 알지 못했다. 제이는, 그녀의 친구를 만났다. 그녀의 친구 또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마치 쌍둥이처럼. 그때 제이는 그녀 역시 같은 직업이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다가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얼굴이 붉어졌고 그 찰나의 순간을 그녀가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그녀의 시선이 심장에 닿아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친구와 헤어진 후 그녀가 제이에게 물었다. 날 네 친구한테 소개할 수 있어? 당연하지. 아니, 네 진짜 친구한테.
며칠 후 제이는 그들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더블 데이트였다. 그녀의 친구와 그 친구의 남자친구도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 제이는 조금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눈치로 보아 그러니까, 그녀의 친구와 그 남자친구가 싸운 모양이었다. 제이와 그들은 건성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얼마 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통 오징어를 주인이 들고 왔다. 주인은 말했다. 그래도 자기 신랑이 왔다고 얼굴이 함박만해지네.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제이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자리의 어색함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그때, 그녀의 친구가 소주병을 들어 자신의 남자친구를 내리쳤다. 한 번. 그리고 다시 옆에 있는 병을 들어 또 한 번. 합이 두 번. 두 번째에 이르러서야 남자의 관자놀이로 빨간 실같은 핏물이 흘러내렸다. 핏물은 흘러 전기회로처럼 갈라졌다. 남자는 벌떡 일어나 여자를 한 번에 쓰려뜨렸다. 시멘트 바닥에 때려 눕히고는 말 그대로 깔고 앉아 여자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처음 제이는 너무 놀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만 보았다. 그 다음엔 달려들어 남자를 뒤에서 끌어 안아 넘어뜨렸다. 남자는 벌떡 일어나 독기 어린 눈으로 제이를 잠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바닥에 누운 여자를 덮쳤다. 제이는 다시 남자를 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때, 제이를 먼저 잡은 건 그녀였다. 그리고는 막무가네로 끌고 포장마차를 나왔다. 제이는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그의 아드레날린을 지그시 눌러 앉혔다. 그냥 둬. 그녀는 클러치 백을 열어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다시 말했다. 그렇게 사는 애들이야. 남이 낀다고 해결될 일이 아냐. 간섭하지마. 간섭하지 말라고? 제이는 되물었고 내뱉고 보니 정말 그 말의 의미를 몰라 다시 한 번 되물었다. 간섭하지 말라고? 그래, 간섭하지마. 네 친구 아냐? 그래, 내 친구니까 참견하지 말라고. 그녀는 가늘고 기다란 담배를, 가늘고 기다란 손가락 사이에 끼고 몇 번을 더 빨아당겼다. 빨간 불꽃이 항구의 등대처럼 붉게 타올랐다가 사그라들었다. 툭, 하고 바닥에 담배를 떨어뜨린 그녀는 이내 제이의 손을 잡고 끌듯이 큰 길로 나왔다. 그리고 택시를 세웠다. 제이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은 기분으로 택시에 올라탔다.
며칠 후 제이는 다시 그들을 만났다. 그들이 그것을 원했다. 다시 만난 그들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여자는 두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남자 또한 별다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고 그런 상태로 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 옆에 그녀가 있었다. 전엔 미안했수다. 초면에.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쪽,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했다. 사랑스러운 눈빛과 함께. 제이는 그들이 정신 병자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가고 제이와 그녀만 남았을 때 그녀가 말했다. 저들은 저렇게 살아온 세월이 오 년이야. 오 년, 하고 제이는 중얼거려보았다. 그게 저들이 사랑하는 방식이야. 제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술병으로 대가리를 깨고 두 손이 부서지도록 치고 받는 게 사랑하는 방식이라고? 그래. 미친, 까지 말하고 제이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말했다. 맞아, 미친 년놈들이야. 하지만 나는 저들보다 서로 사랑하는 커플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 그래서 제이는 그런 사랑도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다시 말했다. 너무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어. 제이는 그러나 무심코 이렇게 얘기하고 말았다. 너희 세계의 사랑이란 건,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무언가를 의도해서 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제이는 말을 꺼냄과 동시에 후회를 했지만, 그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나 술집 나간다고. 그와 그녀 사이에는 다시,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기다란 정적이 가로질렀다. 서로의 생각속에서 필름을 되돌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그녀는 제이에게 연락처를 건네지 않은 것이었다. 혹은 제이가 그녀에게 연락처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은 애초부터 그랬어야 했을 그 하루의 연인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제이는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제이는 또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 했던 것인가. 제이는 한동안 그들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닐 터였다. 그렇다는 것을 제이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서야 깨달았다. 서로의 사랑을 채우는 방식에는 아주 많고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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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이 작품은 제이가 목격했던 광기 어린 사랑, 그러나 무언가 미쳤다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그런 일화를 저로 하여금 떠오르게 했습니다. 그들의 미친 사랑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말이죠. 그러니까 이 소설은 그때, 소주병으로 남자친구의 머리를 내리치던 그 여자가 쓴 소설 같았습니다. 싱크로율 100%였습니다. 무척이나 관능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입니다. 그리고 묘한 매력을 가진 작품입니다. 클럽에서 노래하는 사류 가수와 흑인 탈영병의 사랑을 말하는 소설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면 한 여인의 공허한 영혼에 관한 이야기? 메이크 러브가 주요 골격을 이루고 있고 그것을 하기 위한 남녀의 신체적인 툴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긴 하지만 섹스에 관한 묘사가 디테일한 것은 아닙니다. 사랑의 공허한 무엇을 얘기하고 있는데 채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그 느낌을 무척이나 퇴페적으로, 야마다 에이미는 그려내고 있어요.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퇴폐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떠 상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 상처의 허무함이 더 큰 폭으로 다가온달까, 하여튼 이야기의 이면에 무언가가 실루엣처럼 어른거리는 묘한 소설이었습니다. 보이는 이야기보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뒷쪽이 더 크게 느껴지는 듯한 소설. 굉장히 짧습니다. 100쪽인데 활자도 크고 페이지도 듬성듬성하여 일반적인 편집이라면 한 70쪽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중편이지요. 오감을 자극하는 감각적인 묘사가 백미인데요, 하지만 이건 말하자면 앞서 제이와 같은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들 일 것 같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음탕하니까요. 음탕이 작품의 표피를 두르고 있으니까요. 실제로 야마다 여사가 클럽 걸 생활을 하고, 그녀의 남편이 흑인이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디서 누구한테 들은 얘기인지 내가 이 얘기를 너한테 했었는지 안 했었는지가 요즘 무척 헷갈립니다. 어쨌거나 책의 내용을 하나 발췌해놓고 리뷰 내리지요. 독수리 타자라 본래 발췌 따위 하지 않는데 이번엔 어쩐지 그래주는 게 좋을 것 같단 말이죠.
<침대 옆 거울을 바라본다. 나는 하얀 시트를 거머쥐고 있고, 몇 겹으로 주름 진 그 위에 내 몸이 누워있다. 초점이 흐린 사진 같다. 그 위에 나의 사랑스러운 검은 시트 하나가 또 올라탄 타이트한 사진이 현상되고 있다. 나는 이윽고 그 시트의 흑과 백을 구별할 수 없게 되고, 몽롱한 의식 속에서 손끝의 빨간 에나멜만을 바라보고 있다. 나는 암고양이처럼 울었다. "조용히, 베이비. 빗소리를 들어봐" 어느새 멍크의 피아노 연주가 끝나고 빗소리만이 어두컴컴한 방 안을 울리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여자 번역가가 번역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그랬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랬으면 좀 더 그루브한 여성적 리듬감이 더해지지 않았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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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풍장의 교실’로 처음 만난 이후 늘 관심만 갖고 있었을 뿐 정작 한 편도 읽지 못한 야마다 에이미의 ‘문제적’ 데뷔작입니다. ‘문제적’인 이유는 조금 긴 단편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문예상 수상(1985년)과 함께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까지 오른데다 당시로서는 사회적 분위기에 반하는 설정 ? 일본여성과 흑인남성의 욕망에 충실한 연애 ? 때문에 꽤 화제가 됐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합니다. 소심한데다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지만 클럽에서 재즈 가수로 살아가는 일본여성 ‘킴’과 기지에서 탈영한 미군 흑인병사 ‘스푼’이 짧은 시간동안 나눈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사랑은 지고지순함과는 거리가 먼 민낯 그대로의 욕망 덩어리입니다. 첫눈에 불이 붙은 그들은 동거에 들어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육체에 탐닉합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정도의 남자를 만났다고 확신하는 ‘킴’은 소유욕에 가까운 집착을 ‘스푼’에게 쏟아냅니다. 반면 ‘스푼’은 오로지 ‘킴’의 육체를 탐닉하는데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둘의 관계는 술과 마약과 폭력이 개입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킴’은 그 모든 것을 감내하며 탈영병인 ‘스푼’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는 공포에 더 연연합니다.
“그(스푼)는 생각하지 않는다. 몸으로 반응한 것만이 그의 말이 된다. 그는 자신의 몸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나를 구속하는 이 모든 것을. 나는 그를 위해서라면 알코올 중독에 빠진 매춘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p36~39 발췌)
“일본인은 먹지 못하는 그런 요리를 나는 그와 같이 먹었다. 그런 음식이 스푼의 몸 일부를 이룬다는 생각을 하면 그의 몸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기뻤다.” (p92~93)
사실 두 주인공은 어딘가 판타지 속의 인물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동양여자와 흑인남자의 사랑이라는 흔치 않은 설정이라든가 왠지 세상의 비난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부여받은 듯한 익명성이 강조된 이름들 - 일본인이지만 명백히 이국적 분위기를 띄는 ‘킴’과 부적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은 숟가락 때문에 얻은 별명인 ‘스푼’ - 은 작은 원룸이란 폐쇄적인 공간에서 두 사람이 구현한 사랑의 판타지를 좀더 강렬하게 고조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은연중에 독자로 하여금 ‘내가 겪고 싶진 않지만 관음증 환자처럼 몰래 지켜보고 싶은 그들만의 기이한 사랑법’을 강조하려고 이런 설정들을 동원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개인적으론 구보 미스미의 ‘한심한 나는 하늘을 보았다’, 아야세 마루의 ‘치자나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미친 사랑’ 등 다소 상식과 도덕에서 벗어난 사랑을 그린 일본소설을 좋아하는데, ‘베드 타임 아이스’ 역시 그 범주에 들 만한 독특한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평이 극단적으로 갈리곤 하는데, 한쪽에선 (이 작품의 ‘옮긴이의 말’에서 주장하듯) ‘순수’나 ‘맑음’이 느껴지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반면, 다른 한쪽에선 ‘파괴’, ‘부도덕’, ‘더러움’으로 가득 찬 불유쾌한 변태 이야기로만 읽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베드 타임 아이스’는 노골적이고 끈적끈적한 ‘몸의 합체’를 통해 극단적인 사랑을 그리고 있어서 더욱 더 호불호를 일으킬 수 있는 작품입니다. 또 술과 마약과 폭력을 감내하는 ‘킴’의 태도는 사랑이라기보다 자발적인 종속이나 예속으로 보일 수도 있어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에 소개된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은 모두 18편 정도입니다. 하지만 개정판까지 포함하여 마지막으로 출간된 게 ‘사랑의 습관 A2Z’(2013년)이니 8년 동안 신간 소식이 없었던 셈인데, 검색해보면 일본에서는 꾸준하게 작품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언젠가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을 순서대로 읽고 싶다는 욕심을 갖고 있었는데, 오랜만에 읽은 ‘베드 타임 아이스’를 계기로 틈날 때마다 그녀의 작품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그만큼 제 취향에 아주 잘 맞는 특별한 작가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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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볼 때마다 내 마음은 젤리처럼 흔들려. 그것을 자기에게 들키는 게 너무 두려워. “난 슬롯머신을 하다가 ‘스리 스타’를 터뜨린 기분이야. 늘 몸속에서 그 벨 소리가 울려.” –p77
원초적 언어로, 원초적 사랑을 스케치하다.
<베드타임 아이스 bed time eyes>는 <방과 후의 음표>에서 십대들의 풋풋한(혹은 당돌한) 첫사랑 이야기를 다룬(다고 생각했던)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데뷔작이다. 그런데 허거덕. 처음 몇 장을 넘기자마자 깜짝 놀라고 만다. 성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도발적이라고나 할까. ^^;;
스토리는 일본 재즈 가수와 흑인 탈영병간의 원초적이고도 폭풍같은 사랑이야기다.
야간업소에서 재즈 가수로 일하던 여자가 주머니에 은스푼을 항상 넣고 다닌다고 해서 별명이 ‘스푼’인 흑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그는 탈영병이다. 군의 기밀을 빼돌리는 범죄자이기도 하다. 남자와 여자는 첫눈에 휘리릭…사랑에 빨려든다. 그런데, 독자가 보기에 그 사랑이 아름답지가 않다. 고통스럽고 거북하다. 그들은 달콤한 밀어는 커녕, 모든 대화에 욕설이 섞인다. 이따금씩 폭력도 오간다. 죽고 못살듯이 서로에게 매달리지만, 그 짧은 시간에 각자 알아서 바람을 피우기도 한다. 곧잘 술에 떡실신이 되고 마리화나에 쩔어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한 마디로, 머리가 깨질듯한 사랑 이야기다. 그걸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원초적인 사랑 이야기가 순수하게 읽힌다. 후회없을 말과 거침없는 그들의 행동이 살짝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샌님들의 사랑 이야기에 염증을 느낀다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나는 현실에서라면 이런 삶, 이런 사랑은 정중히 거부하겠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에게 윙크했다. 눈썹이 서로 엇갈리게 찡그리고 한쪽 눈두덩을 위로 살짝 치켜드는 흑인 특유의 윙크를. 나의 입속으로 날아든 그 윙크는 몸속으로 퍼져 나가 이윽고 깊이 가라앉더니 천천히 녹아들어 달콤하게 세포 속에 배어든다. –p15
울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나는 깨닫는다. 아픔과 쾌감은 닮았다는 것을. 스푼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그 상처가 쾌감으로 변할 때를 기다리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 상처 자체를 달콤한 슬픔으로 순순히 받아들일 날이 올까.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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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을 두 번째로 접한다. 이 책을 접하기 전에 나는 풍장의 교실이라는 책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 야마다 에이미가 여성작가라는 것도 그리고 여성의 심리를 섬세하고 절제된 감정으로 잘 표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한 기회에 야마다 에이미의 등단작품이라 할 수 있는 [베드 타임 아이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소개의 글이 너무 흥미롭다. 내가 알던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은 섬세한 표현을 하는 작가였는데, 충격적인 표현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어서 조금은 당황스럽기도 하고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었다. [베드 타임 아이스]역시 여성의 심리상태와 갈등 그리고 집착을 여인의 시각으로 그리고 관점도 여인의 관점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한 여인과 탈영병이면서 흑인인 한 남자와의 만남이 주된 이야기로 전개되어 진다. 정상적이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의 관계는 언젠가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바탕에 깔고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의 감정선과 남자의 불안한 행동 속에서 느끼는 여인의 느낌이 사실적으로 혹은 여인의 감성으로 잘 표현이 되어있다. 미래를 생각하면서 자라오지 못한 여인에게 누군가를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일만으로 도 여인의 감성은 충분히 행복하고 사랑이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비록 부당하고 적절하지 않은 관계를 요구하는 상대이지만 여성의 눈은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처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주고 보듬어 주며 그런 행동 자체도 사랑의 표현이라 느끼는 것 같다. 나의 말에 조금은 이상한 표현이 있을지 모르지만 책을 읽고 느낀 주인공의 감정선은 이 길을 따르고 있다. 매일 밤 시끄럽게 싸우고, 서로를 원수 보듯이 하지만 서로에게 감정의 바닦에는 사랑이 깔려있는 일상의 부부처럼, 이들에게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게 하는 힘은 여자 주인공의 희생과 사랑이다. 첫 장부터 표현이 좀 거칠게 되어 있어 정말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이 맞는지 생각도 해보았다. 책 소개처럼 충격적인 표현이 등장하고 번역에 있어서도 리얼리티를 살리려는 의도인지 단어의 선택도 사실적으로 표현이 되어있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글을 읽는데 크게 방해 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한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집착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차이에 대하여 생각을 하여본다. 킴 이라 불리운 여주인공은 사랑을 한 것일까? 집착이라는 감정에 치우친 것일까? 책장을 덮은 지금도 조금 더 생각을 해보아야 할 부분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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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베드타임 아이스"인데 영문으로 "bed time eyes"라고 표지에 되어 있다. 한편 이 책의 소개되는 페이지에는 "Bad Time Eyes" 되어있다. 중의적인 표현인가 보다.
작가의 소개를 보면 "무라카미 류"와 비교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책을 읽으면서 "류"의 "almost transparent blue"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의 소재가 흡사하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10년후 정도의 작품인데, "류"를 추종하는 작가인가? 란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소설은 감각적이고 자기를 파괴하는 도피처같은 연애를 담고 있는 소설이야기이다. 중간에 언니 부분등이 나오는데,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어렵다. "류"의 소설은 아직 끝까지 읽지 못하였고,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의 도발적인 요소가 있으나, 소설로서는 친숙함과 완성도에서는 김영하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작품외에 이 책에는 불만이 있다. 전체 페이지가 110페이지가 안 되는데 옮긴이의 말까지 집어 넣고했다. 실제 페이지가 100페이지가 안되고 일본책 작은판이 아닌 우리 소설책 크기의 자형으로 하면 50페이지가 될까 궁금하다. 물론 덕분에 금방 읽었다. 뭔가 다른 작품과 함께 작품집으로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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