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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4년 우리는 일본 전역을 정벌할 수 있었다.” 책 표지의 띠지에 적힌 이 문구가 얼마나 서운한지 모르겠다. “~할수 있었다.”라는 과거형은 항상 속상한 부분이고 아쉬운 부분이지만 띠지의 문구가 요즘에는 더욱더 아쉽고 절절하다. tv에 연일 보도되는 독도 문제, 중국문제, 그리고 미국과의 문제 등등 우리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뭐하나 자주적인 것이 없어 보인다. 그것이 우리의 지리적 위치때문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할까? 이 의문에는 초등학생조차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항상 위기에서 기회를 찾고 지혜로움을 가지며 나라를 사랑한 이들이 지켜온 이땅에 사는 우리들이지만 우리는 항상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 전쟁이 날지, 일본이 언제 도발을 할지 불안해하는 우리의 의식은 대부분 일제 강점기 시대에 심어졌고, 그런 의식들이 대부분은 거짓이며 조작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상대적인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 의식을 만들게 된 근본이 바로 일본이 단행한 이나라의 역사 왜곡이라는 대부분의 학자나 원로들의 의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런 역사적으로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거나, 정확하게 알릴 의무가 있고 알아야하는 책임이 있다. 이름도 생소한 “일본 정벌군”은 제목만 봐서는 어디 미국의 제트기 특공대쯤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어디를 정복하러 출정을 나간 적이 있다는 것을 역사시간에 배운 기억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침략을 많이 받은 나라며, 온건하기만 한 나라라고 배웠기 때문에 우리는 ‘정벌군’ 이라는 말에 너무나 생소하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도 비록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짜여진 각본같은 전쟁이었지만 정벌군이 있었고, 그 대상이 일본이었던 적이 있었으며, 그 전쟁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그때에도 이순신 장군같은 어쩌면 더 훌륭했을지도 모를 영웅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무신정권이 몰락, 원나라는 쌍성총관부를 설치 고려는 일개 성으로 편입될 위기에 처한다. 이때 고려를 구하는 비책을 내세운 것이 바로 고려출신 관료 ‘조이’ 그는 원의 쿠빌라이를 설득 ‘일본정벌’이라는 대규모 전쟁계획을 수립한다. 고려 총사령관 “김방경 장군”은 책사와 걸출한 군사들과 함께 일본정벌에 나선다. 순식간에 일본의 여러 곳을 함락하고 본토점령으로 향하는 숨가쁜 여정은 광개토 대왕의 북벌 이래 최대 규모이며, 고려의 총사령관과 그 수하들의 지략과 용맹이 넘쳐나는 수많은 전투는 영화의 상상 그 이상을 보여준다.
정벌군의 엄청난 규모와 전쟁은 인류역사상 손꼽히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또한 그안에 숨은 주역들은 일본의 국토를 호령했다. 그런 그들의 이야기가 왜 지금까지 잠자고 있었을까?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며 일본뿐 아니라 대만 태국에 이르는 해상왕국을 꿈꾸며 참전한 전쟁에서 왜 우리는 수동적인 참여자였을 뿐이며 오로지 실패한 전쟁이라고 낙인 찍어 스스로를 위축시켰을까? 실제로 작가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얼마나 많은 역사적 왜곡이 여기에도 숨겨져 있는지 알수 있다. 또한 그 시대의 영웅이자 우리나라의 또하나의 자랑일수 있었던 ‘김방경장군’을 우리의 기억에서 얼마나 멀리했는지 또한 알 수 있다. 숨가쁜 묘사와 스피디한 전개 그리고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의 잦은 변동, 그 모든 것이 단순간에 잡념을 사라지게 만드는 동안 이 책의 마지막에, 전쟁의 마지막에 도착하면 “~할수 있었다”라는 말이 더욱더 가슴에 아쉬움과 답답함으로 다가오는 것을, 또한 김방경장군과 제갈공명 못지않은 책사와 그 어느 군대보다 용맹하고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군대, 그 모든 영웅을 다시 찾은 것에 행복감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미 지난 역사를 만약에라는 말로 바꿀수는 없다. 그렇지만 미래는 바꿀수 있고, 우리의 의식은 바뀔수 있다. 이책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하기 위해 쓰여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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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일본을 정벌 했었더라면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을까? 옛날에 왜구가 우리나라 해안을 자주 침입하여 아녀자를 희롱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을 자주 하였다. 그땐 일본은 문화가 발전하지 못한 미개한 민족이었다. 특히 백제문화를 흡수하여 그나마 문화가 발전하였는데 그 은혜도 모르고 우리나라를 약탈하는 도적같은 행위를 서슴치 않고 하고 있었다. 역사서에 고려가 일본을 정벌하러 나갔다는 사실을 소설화시켜 놓은 일본정벌은 읽는 내내 '그 때가 절호의 기회였는데...너무 아쉽다'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281년, 아시아 최강 고려해군의 2차정벌때 군사 15만, 전선 4천5백 척을 이끌고 대마도, 아키, 규슈 전지역을 장악 하고 혼슈 시모노세키까지 진출하였다. 작가는 전쟁사적지 현장 답사를 통해서 고려와 일본 몽고의 일본정벌에 관한 이야기는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하였다. 그리고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었다. 그 아쉬움이란...... 지금 독도영유권분쟁도 고려시대의 일본정벌을 확실하게 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를 먹고 먹히는 관계라고 생각을 했는지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군이 될 수도 있는 시기였을 것이다. 원나라도 일본이 언젠가는 원나라를 넘볼 수 있기 때문에 고려와 손을 잡고 일본을 정벌하려고 했었던 것이고 또 원나라의 홍다구는 일본정벌을 위장한 채 언젠가는 고려를 정벌할 음흉한 생각을 품고 있는 것만 봐도 나라와 나라가 정벌을 하여 영토를 확장하려는 생각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강대국이 약소국을 넘보고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는 국제정세였나 보다. 결국 일본군이 왜구로 가장을 하고 아녀자를 납치하여 인신매매범처럼 사람을 노예로 팔기를 서슴지 않았고 남의 아내를 탐하여 자신의 부인으로 삼아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 부인을 눈 앞에서 빼앗긴 사람의 심정을 나 또한 헤아릴 수가 있었다. 일본인의 아내로 아이를 둘이나 낳아 기르는 모습에 천륜을 저버릴 수 없었기에 나중에 그 아이를 다시 사랑하는 아내의 품으로 돌려 보낸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가 있었다. 다만 한가지 의심스러운 것은 정절을 빼앗긴 여자는 은장도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던 미덕을 아내는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아이를 둘씩이나 낳았는데 말이다. 결국 고려때 일본정벌을 실패하고 이이가 계속적인 일본정벌을 조정에 건의를 허였지만 결국 무산이 되고만 역사적인 사실이 지금의 한일간의 미묘한 분쟁들의 근원을 제공한 것은 아닌지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소설책을 덮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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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말부터 역사 체험 지도자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의 역사에 새삼 관심을 가지게 되어 역사 소설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권력의 싸움터가 되어 서로를 헐뜯고 걸림돌이 되는 사람은 과감히 유배를 보내는 힘겨루기로 인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건들을 보면 우리 역사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았다. 특히 고려 시대는 권력 지배층이 너무나 다양하게 바뀐 시대라서 권력을 누가 쥐었는지에 따라 대외적인 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중에서도 몽골의 침입을 받았던 100년의 무신정권 시대의 무신들은 무력적으로 갈취한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서로를 못 믿어 피를 부르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그 어수선한 시대에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10대손인 김방경 장수는 절대 임금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오직 고려만을 위해 충성을 다 바친다. 훗날 몽골이 원으로 나라 이름을 바꾸자 원나라의 힘을 얻은 권문세족들의 행적을 읽다보면 정말 할 말이 없을 정도었다.
역사 속 사건, 인물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현재 남아있는 기록서를 기준으로 우리가 역사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상황이기에 정말 있었을지 모를 일을 기록에 남겨져 있지 않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한계가 있지 않나 싶다. 오래전에 배운 역사이기에 기억이 흐릿해져서인지 원래 김방경이라는 인물을 몰랐던건지 알수 없는 헷갈림으로 고려시대에 여몽 연합군에서 고려군을 총 지휘한 김방경 장수와 몽골과 연합하여 일본을 정벌하고자 했던 꼭 성공하여 역사가 뒤바뀌길 바랬던 그 시간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몰도에서 왜구의 무자비함에 자신을 따르던 장수 한희유의 부인이 왜구에 납치되고 김방경 아들 선 또한 왜구의 칼에 죽음을 당한다. 위도에서 목숨을 걸고 몽골군과 싸웠건만 결국 조정은 강화 조약을 맺는 허무한 결말을 짓고 일본의 파렴치한 행동을 소탕하고자 조정에 건의하러 김방경이 가지만...그 당시는 최씨 정권을 진압한 김준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라 왜에 보상품과 사과를 받은 것으로 왜구 소탕은 없던 일로 만든다. 그러나 유정이 들은 말에는 단순 왜구가 아니라 일본 조정의 지시를 받아 고려를 염탐하러 온 왜군이라는데도 김준은 정중히 사과를 받았다고 무시를 해버린다.
조정의 도움을 받아 왜군을 정벌하기엔 역부족이자 연경에 있는 조이(김방경 편으로 조상은 발해인)가 쿠빌라이에게 남송과 교류를 하는 일본에 대해 언급을 하여 고려와 힘을 합쳐 일본을 칠 계획을 준비한다. 당시 일본을 다스리는 자가 천황도, 쇼군도 아닌 싯켄인 호조 도키무네가 실질적 지배자이기에 반부는 황실과 쇼군 싯켄 사이를 벌려 힘을 분산시켜 내분을 일으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천에 옮기며 1266년 11월 초유할 몽고 사신과 반부는 일본으로 정탐을 떠난다.
연경의 황제 쿠빌라이는 김방경에게 고려군을 따로 조직하여 원의 군사와 별도로 움직이도록 중군도독사로 임명하여 지휘권을 맡긴다.. 일본 정벌에 필요한 전선 9백 척과 군사 8천 명을 모아 출전을 앞두던 1274년 6월 24대 임금인 원종이 붕어를 하여 결국 일본 정벌 계획은 연기가 된다. 연경에 있던 세자 심은 쿠빌라이 딸 홀도로게리미실과 결혼하여 원의 부마가 된 자로 훗날 충렬왕이라 불린다. 이전 시안군 왕인의 딸고 결혼하여 아들까지 두고 있음에도 본부인은 정화궁주로 격화시켜 후궁으로 밀어내는 바람에 신하들의 반발을 사자 노진의와 같은 부원파 신하들과 친하게 지내며 김방경을 항상 경계한다.
몽골은 고려를 이용하여 일본 정벌을 통해 남송 정벌까지 계획하고 고려는 막강한 몽골의 힘을 빌어 일본을 정벌하여 서로의 영토 확장을 하고자 서로를 이용하려는 계획 속에 서로를 속이며 철저하게 일본 정벌 준비를 한다. 하지만 이 사실을 우리는 드러내놓고 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만약 사실이였다면 고려시대 권문세족들이 좀 더 정신을 차렸더라면 우리의 역사 흐름을 다르게 기록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가장 무서운 적이 내부의 적이라고 하듯 위득유와 노신의, 홍다구의 모함과 음모로 결국 고려를 위해 평생 수고한 김방경의 충정도 몰라주고 씁쓸하게 잊혀진 과거사가 되어버렸다.
이후 300년이 흘러서 1582년 (선조 15년) 9월 1일 경복궁 내 경연청에서 율곡 이이가 무릎을 꿇은 채 10만의 군병을 길러 히데요시의 침략에 대비하자고 간청을 하지만 모두 지금 태평성대만을 노래하며 오히려 비난을 퍼붓는다. 하지만 10년 뒤인 1592년 일본은 임진왜란을 일으켜 조선을 침략하고 말았다. 이이의 간곡한 제안을 받아 들였더라면 과연 1910년 일본이 강제로 조선을 병합할 수 있었을까?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권력 쟁치에만 눈이 먼 역사 속 못난 조상들이 너무나 밉다. 1,2권에 김방경과 유정이, 위득유와 박지량 부인과의 관계, 한희유 부인과 츠네스케와 그의 부인 등의 관계를 풀어가는 재미가 곳곳에 일본 정벌 이야기와 함께 숨어있어 더욱 빨리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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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학교에선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나라는 수만 번의 외침을 받았지만 단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평화로운 민족이라고. 하지만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게 무슨 자랑거리일까라는 생각이 앞설뿐이다. 그때는 그렇게 가르쳐야할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제는 분명 다르다. 고조선 시절부터 우린 만주벌판을 호령한 민족이고 고구려와 발해를 거치면서 그 웅혼한 기상을 이어 갔으며, 고려말과 조선초 두번에 걸친 대마도 정벌을 통해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역사속엔 감추어진 진실도 있다. 이 작품 <일본 정벌군>은 역사속에 묻혀버린 일본 정벌군의 실체를 쫓는 소설이기도 하다.
1274년과 1281년 고려는 2번에 걸친 일본정벌을 시도했다. 많은 군사가 동원된 전면전이었다. 결과론적이지만 분명 일본 원정은 실패한 전쟁이었다. 하지만 그 배경과 경과에 대해 우리는 너무나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혹시나 싶어 누렇게 변색되어버린 국사교과서를 찾아보았다.
이렇게 짧은 기록이 일본 원정군에 대한 교과서에 나와있는 전부이다. 그마저도 이대로라면 고려는 원의 강압에 못이겨 군사를 동원했고 일본에 닿기도 전에 태풍으로 그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그 시대는 이미 몽골과의 항쟁이 강화에서 버티던 고려조정도 원에게 굴복했고, 끝까지 저항하던 삼별초도 결국 제압당하고 말았다. 원종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고려의 왕이름 앞에는 '충'이 붙기 사작하는 것도 이무렵이다. 일본원정은 이른바 몽골의 내정간섭기에 벌어진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 소설 <일본 정벌군>은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코 일본원정이 몽골에 의해 강요된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의 황제 쿠빌라이에게 일본정벌을 계획하게 만든 이도 조이라는 고려인이었고 여몽연합군의 핵심적인 전력 역시 고려군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역사속에 묻힌 김방경 장군이 있다.
김방경은 신라 왕족의 후손으로 몽골의 칩입시에도 끝까지 맞서 싸웠지만 고려 조정이 그들과 강화를 맺으면서 결국은 저항을 포가하고 만다. 목숨을 걸고 싸운 보람도 없이 그는 한없이 무력해지는 자신을 돌아볼 뿐이다. 하지만 그에게 일본 정벌의 고려군 책임자라는 기회가 주어진다. 전세계를 자신의 발밑에 꿇리겠다는 쿠빌라이의 야심과 조이의 활약이 더해지면서 일본정벌은 현실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남송이 아직 남아있었기에 일본 원정에 몽골의 주력군을 파견할 수는 없는 실정이었다. 더군다나 몽골군은 기병을 앞세운 평지에서만 전투를 치러봤기에 바다를 건너는 해전은 생소할 뿐이었다. 결국 김방경은 연합군 전체의 수장이 되진 못했지만 고려군의 책임자로 직접 전선을 건조하고 병사를 훈련하여 일본정벌을 떠나게 된다.
김방경의 양 옆에는 충성스런 부하 한희유와 박지량이 언제나 함께 하고 있으며, 군사(軍師)로 일본정벌의 모든 작전과 계획을 하달하는 이미 기울어져 가는 송나라 출신의 반부가 있다. 고려군의 지휘부를 보면 마치 삼국지연의의 등장인물과 유사한 점이 많이 보이기도 한다. 불같은 성격의 한희유는 장비, 신중하고 꼼꼼한 박지량은 관우, 일본을 손바닥보듯 작전을 지시하는 반부는 제갈량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대마도를 거쳐 규슈에 이르기까지 까지 모든 것이 잘 풀릴것만 같던 계획을 틀어지게 하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갖고 싸워도 확실치 않은 전쟁에서 자신의 영달을 위해 그리고 출세를 위해 자행되는 옳지 않은 선택은 언제나 파국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연합군 내에서도 그것이 항상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선택에 의해 연합군은 바다에서 태풍을 만나게 된다.
2차 정벌역시 무사히 현해탄을 건너 일본의 본토인 혼슈 남부에 까지 상륙하여 그 일대를 점령하여 가마쿠라 막부를 크게 위협하기도 했지만 연합군내의 일치되지 않고 자꾸만 어긋나는 전략은 끝내 김방경의 발목을 잡고 만다. 2차에 걸친 원정군 모두 일본군에 패배했다기보다는 바람이라는 자연현상을 이기지못하고 패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를 일컬어 일본에서는 그 바람을 카미카제(神風)라 하며 일본을 신이 지켜주는 땅이라 했는데 그것을 2차대전때 젊은 장교들을 태운 비행편대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어쩌면 역사의 아이러니일런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책을 쓰기 위해 규슈를 비롯한 그 일대에 이 전쟁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한다.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이 전쟁을 다룬 서적역시도 수십종이 넘게 출간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서 여몽연합군의 자취는 그리 쉽게 그 흔적이 남아있질 않다. 위대한 고려의 장군 김방경의 이름마저도...
역사 왜곡이라는 작가의 주장처럼 분명 무언가는 잘못되었다. 역사의 인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몽골의 강압에 의해 강제로 징발된 군사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분명 그 중심에 고려인들이 있었으며, 어떤 이유에서건 감추어질 역사가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이 책을 통해 이제라도 우리는 잊혀져 있는 선조들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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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경 장군이 활약한 당시는 고려말, 최씨 무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기였다.
김방경 장군 밑에는 한희유와 박지량이 있었다. 한희유는 장비같은 인물로써 성질이 불같고 힘이 장사인 사람이다. 박지량은 관우같은 인물로써 무예가 뛰어나며 신중하고 꼼꼼하며 이성적인 사람이다. 김방경은 경순왕의 10대손이며 위도에서 몽골군과 맞서 싸워 물리쳤고 성정이 호방하고 지략이 뛰어나며 군사들을 잘 통솔하는 타고난 무장이다.
김방경 장군은 고려가 주둔하여 일본을 정벌해서 이를 통해 원나라에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나라의 쿠빌라이에게 일본의 정벌을 권유하고 뒤에서 조이가 도와주었다. 쿠빌라이는 고려를 원나라의 속국으로 만들려 하였으나 김방경 장군의 일본정벌로 인하여 그일은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수상에 약한 몽골군이였으므로 김방경 장군은 수군에 강한 고려군이 선두에서고 원나라와 함께 싸우면 승전이 있다 보았다. 원나라의 홍다구는 그의 아버지가 고려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여기고 자신의 나라인 고려를 원수의 나라로 생각하며 사사건건 김방경의 일에 간섭을 한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원종과 그의 아들 충렬왕이 김방경을 심하게 경계를 하고. 또 홍다구와 친분이 가까웠던 고려 장수 위득유 역시 김방경을 힘들게 하는 인물들 중 하나이다. 온전히 일본과 대적하기에도 쉽지 않은 싸움인데, 여기저기서 적들이 우글거리니.
1274년 6월 고려 제 24대 임금인 원종이 붕어했다. 그 뒤 충렬왕이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쿠빌라이의 딸과 혼인하여 원의 부마가 된 자였다. 그는 고려사람이 아닌 원나라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진의는 충렬왕에게 김방경이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모른다며 간언을 한다. 노진의는 자신이 전쟁에 참여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않자 위득유에게 정벌군에 참여하여 김방경을 몰아낼 구실을 찾으라고 한다.
원종이 붕어하고 새로운 왕이 등극해서 일본정벌을 늦춰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김방경장군이 태풍이 올라오므로 10월을 피해 출정하자고 했건만 몽골군들은 콧방귀도 끼지 않는다. 김방경 장군은 불길한 마음을 들었지만, 어쩔수 없이 1274년 10월 3일 10만에 가까운 군사들이 일본 정벌에 나서게 된다. 반부는 그전에 일본에 여러 첩자를 심어두고 일본의 지형및 군사에 대해서 철저하게 조사를 하였다. 여기서 반부는 제갈공명과 같은 뛰어난 책략가이다.
처음의 시작은 대마도 정벌이였다. 고려군들은 일사분란하게 대마도를 정벌하였다. 김방경은 명해 패장들을 정중하게 대하라 일렀고 주민의 안정을 보장했다. 그러나 몽골군이 말을 들을 턱이 있나. 주민들에게 약탈과 방화를 서슴치 않았다. 김방경이 총 지휘권을 잡질 못한터라 몽골군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한유희는 왜놈에게 끌려간 자신의 부인을 찾기 위해서 하카타를 공격하기를 원한다. 고려군들은 왜구와의 싸움에서 승승장구 하지만, 일본정벌에는 많은 변수들이 있었다. 고려군들이 왜군을 통쾌하게 무찔러줄때 기분이 무지 상쾌했다. 그 중 큰 변수인 몽고군. 몽골군들이 김방겸장군의 말만 잘 들었어도 일본을 밑에다 두었을터인데~~ 몽골군들을 드넓은 초원만 알았지 바다를 너무 몰랐다. 태풍이 몰려온다 하였으나 그게 뭔지 몰랐고, 많은 배들이 난파당하고 일본정벌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고려가 만든배는 김선이라는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만들어서 태풍에 강하게 버틸수 있었지만, 원나라의 배들은 허술하기 그지없어 힘없이 난파되고 말았다. 내 속이 터져들어가는데 김방경 장군과 고려 군대들은 속이 어찌했을꼬.
히츠메 전투에서 홍다구는 일본의 주민들을 방패막이로 세워 비열한 방법으로 히츠메 성을 진압한다. 이 홍다구란 놈은 언제 죽는걸까? 책속으로 들어가서 위득유랑 홍다구랑 칵 죽여뿔고 싶은마음이 거세게 일었다. 그전에 해치워야 할놈들도 무지하게 많았지만, 가슴에 울분이 쌓인다. 죽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였다. 제 2의 제 3의 홍다구 같은 놈이 생겨날 것이니 말이다. 김방경 장군의 멋진 승전보에도 마음이 답답할 뿐이였다. 몽골군들은 힘 들이지 않고 고려군의 업적을 자신들이 삼켜버리려 하였다.
한유희는 부인을 긴밀히 만나려 하였으나 왜군이 간신이 목숨을 부지하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렇게 일본 정벌군 1이 막을 내렸다. 몽고군이 말을 듣지 않아 태풍에 의해 배가 난파되고 일본정벌을 여기에서 접을수 밖에 없었다. 2권에서 일본을 정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김방경 장군의 뜻을 펼칠수 있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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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는 '가미카제'라는 것이 있다. 한자로는 신풍(神風), 신이 일으키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적군의 함대에 목숨을 걸고 부딪친 전투기 조종사들을 일컫는 말로 통용된다. 그러나 역사를 더욱 거슬러 올라가면 또 다른 가미카제를 접할 수 있다. 13세기에 일본정벌을 추진했던 고려-몽고 연합군은 2차례에 걸친 출정 모두에서 태풍과 전염병으로 실패를 맛보았는데, 일촉즉발의 위기에서 섬나라 일본을 구한 이 태풍 또한 가미카제로 불린다. 이는 신이 일본을 지켜준다는 일종의 선민의식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하늘의 도움으로 영토를 무사히 지켜낸(?) 일본은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훗날 고려에서 조선 왕조로 이어진 한반도 역사에 뼈아픈 상처를 남긴다. 침략전쟁으로 불리는 임진왜란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들어서는 조선을 무력으로 점령하여 민족 말살 정책을 펴기도 했다. 최근에는 엄연한 대한민국 영토 독도를 다케시마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책 '일본정벌군 1, 2(중앙북스, 2008)'의 저자 제성욱은 '만약에'라는 가정을 제시한다. 만약 700여 년 전 여몽연합군이 왜(倭)를 치는 데 성공했다면? 임진왜란은 없던 일이 될 것이고, 일본에 조선의 주권을 빼앗기는 비극 또한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단순한 희망사항이 아니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이 터무니없는 바람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13세기 당시 추진된 일본정벌은 여몽연합군의 우세 속에 거의 성공할 뻔 했다고 한다. 가미카제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저자는 '일본정벌군'을 통해 여몽연합군, 특히 고려군의 활약을 알리고자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당시 고려군은 몽고의 복속 정책으로 인해 일본 정벌에 수동적으로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을 집필하기 위해 수년간 자료를 모으고 한국과 일본의 격전지들을 십여 차례 방문했다는 저자는 반대 의견에 힘을 실은 듯하다.
초원과 육지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던 몽고군대는 그러나 배 위에서 만큼은 약체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해상 전투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바다 위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결전에서는 밀리는 것이 당연했다. 저자는 오히려 뛰어난 선박 주조 기술과 노련한 전법, 일본 본토에 대한 정보를 보유한 고려군이 연합군의 정벌을 주도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치열한 전투 장면들을 소설에 고스란히 담았다. 허를 찌르는 작전과 병법을 통해 왜의 영토를 정복해가는 과정이 보는 이를 상당히 통쾌하게 한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과장된 면도 없지 않다. 특히 악역들은 너무 역할에 충실하다 싶을 정도로 얄미운 말과 행동을 일삼고 중요한 순간에 반드시 방해를 한다. 김방경이나 박지량 등 고려군 수장들의 전투장면에서는 '수백발의 총탄 속에서 단 한발도 맞지 않고 사지 멀쩡한' 외화 주인공이 떠오른다. 이런 면이 독자들의 흥미를 자극할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건 책을 통해 일본정벌의 진실을 알리고 싶었다는 저자의 목적은 어느 정도 달성된 듯싶다. 700년 전의 이야기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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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의 경우는 역사적인 사건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보다 현실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역사적인 모든 시간들을 증명할 수는 없기에 남겨져있는 사료들과 유적들을 통해 기본적인 틀을 만들고,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연결되어서 한권의 역사소설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잊혀져있었던 시간들을 복원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문학을 통해 조금은 잊혀졌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며, 꾸준하게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역사소설과의 만남은 반가운 듯 하다. 솔직히 역사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이 경우는 주로 근현대사에 편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와 근접해있으면서, 현재 꾸준히 여러 책들이 출간되고 있음으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되는 듯 하다. 고려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그리 많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학교에서 수업을 통해 배운 것이 전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에 등장하는 시기와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특별하게 기억되는 것 또한 없다고 할 수 있다. <일본정벌군> 이 책의 경우는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고 있으며, 집중하기에도 큰 어려움이 없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일본이 고려와 몽골사이의 관계를 의식해 고려의 군사력을 파악하기 위한 왜구를 자칭한 이들의 침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고려의 경우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행동을 자제하려고 하지만, 이런 일본의 계략을 알게 된 이들이 몽골을 움직이기 위해 노력하게 되며, 이런 행동으로 인해 여몽연합군은 일본을 정벌하기 시작한다. 두 차례의 정벌이 있었으나, 처음의 경우는 악조건의 날씨로 인해서 함께 했던 군인들의 참극으로 시작과 함께 끝이 나고야 만다. 하지만, 이는 두 번째 정벌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당시의 여러 상황들이 그리 좋지는 않았음에도 그들은 떠나게 된다. 부족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준비를 했기에 어느 정도의 진군이 가능하기는 했으나 이번에도 날씨로 인한 불운은 계속되었다. 솔직히 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의아한 부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역사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빠르고 적극적인 전개로 인해 이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고려라는 시대에 대해 그리고 몽골과 일본과 고려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 역사소설을 읽으면 항상 그 시기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보게 된다. 아직까지는 그리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역사적인 사실이 반영되어져 있는지가 궁금하기도 하고, 그 시대와 그 사건자체가 궁금해서 여러 자료를 찾아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에는 항상 눈에 띄는 사건들 위주로 나열되어졌으며,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에 민중의 삶에는 무관심 했던 것이 사실이다. 다만, 역사소설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다양한 시선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은 소설이라는 점이다. 다만, 역사에 관심을 갖게 만들며,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그 시간들에 대한 관심을 되돌려 놓을 수도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좋은 계기가 된 듯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