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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들이닥칠것을 미리 예견한 김방경 장군은 배를 해안가에 두고 적진을 공격하려 하였지만, 몽골군은 언제 왜구들이 내습을 할지 몰라서 바다로 나가자 하였다. 김방경은 그럼 고려군이라도 해안가에 남겠다하자 홍다구가 자신들 몰래 공을 세우려 한다고 하며 같이 가자고 한다. 간신히 고려군 일부만을 해안에 남기고 바다로 나아갔다. 책에서 말한것 처럼 역사가 크게 요동치며 바뀌는 순간이었다. 엄청난 비와 바람, 거센파도가 배를 덮쳤다. 배들은 난파되고 사람들은 물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절망적이었다. 일본정벌을 코앞에 두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몽골의 장수들은 쿠빌라이를 알현하여 그동안의 일들을 소상히 올렸다. 홍다구는 김방경이 말을 듣지 않아 이런사태가 되었다 말하였다. 1275년 4월 사신을 일본에 보내 원나라의 뜻을 전한다.
박지량의 외면으로 인해서 그의 부인은 자살하고 자신의 핏줄이 아닌 막내아들이 밉기만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위득유 그자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였다. 박지량은 부인이 죽은일, 막내아들이 자신의 바지가랑이를 잡고 늘어졌지만, 무섭게 내쫓은 일을 후회하였지만, 이미 늦은일이였다.
싯켄 도키무네(실질적인 일본을 다스리는 자)는 사신들을 죽인다. 그리고 고려를 공격하기 위해서 선박을 건조하고 뱃사공, 수병에 대한 징용제도를 실시한다. 김방경 장군 역시 그들이 출격을 걱정하고, 반부는 좋은 계획을 내놓는다. 일본에서는 고려의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서 합포에 첩자를 보내고. 김방경장군은 합포만을 비롯한 남해 일대에 어선을 가장한 척후선을 촘촘히 배치해놓는다. 이를 본 첩자들의 보고로 인해 고려에 대한 출격은 미루어진다. 이 일로 김방경장군이 군선을 움직여 무력시위를 일으켰다 하여 김방경 장군과 그의 수하들을 잡아들여 모진고문을 한다. 김방경 장군은 어찌나 고문이 심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였다. 그리고 그와 수하들은 유배지로 보내지게 된다. 살수가 김방경 장군을 죽이려 하고 그의 수하들은 이대로 있어서는 안된다고 한다. 여차하면 거사를 일으키자는 것이였다.
이번에도 조이의 도움으로 김방경은 겨우 풀려날 수 있었다. 홍다구의 음모라는것이 밝혀지고 홍다구는 잽싸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위기를 모면한다.
두번째 일본정벌군의 지휘권은 김방경이 주도할 수 있게 되었다. 쿠빌라이가 그를 신임하였고, 첫번째 일본정벌의 실패의 원인에 대해 홍다구에게 물어 온전히 지휘권을 받아올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찌 될것인가?
동로군과 강남군을 합하면 무료 20만의 군사에 전선만 해도 4천 척이 넘는다. 강남군은 왜구의 첩자에 휘둘리다가 약속시간도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지만, 만나기로 한 장소가 아닌 다른 장소로 가버린다. 이 당시에는 핸드폰이 없으니 연락을 하려고 해도 쉽지 않은일이였다.
이번에는 일본도 만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첫번째보다는 힘든 정벌이 될 것이다. 김방경이 이끄는 부대들은 힘든일도 있었지만, 반부의 좋은 계략으로 인해 적을 무찌를 수 있었다. 혼슈에 상륙에서 왜구의 야리부스마(긴 창을 위에서 내려쳐서 적을 무력화시키는 창법)에 고려군이 심하게 당하다가 공선지계를 사용하여, 그 창법의 약점을 공략해서 이기게 된다. 사용한 무기중에서 철포가 있었는데 고려시대때에 이런 강력한 무기를 만들정도 였다니 대단하였다.
이번에는 일본이 적의 침략에 방비해서 쌓은 하카다 만의 높이가 열척이 넘는 방루가 문제였다. 단단한 벽같은 방루도 뚫고 일이 잘 풀리는듯 하였다.
김방경이 이끄는 군대가 일본을 서서히 점령하고 있었는데 큰 문제가 생겼다. 1281년 7월 30일 파도에 의해 서로의 배들이 부딪치고 충돌을 면한 배들은 해안가로 밀려나 바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7년전의 태풍으로 인한 악몽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그 피해와 규모는 심각하였지만, 김방경 장군은 자신의 군대로 일본을 정벌하려 했지만, 원나라의 장수들이 만류하였다. 나중에 기회를 만들어서 다시 오자 하였다. 김방경 장군은 "반드시 이곳을 다시 치러 올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자들은 언젠가...... 언젠가 그 칼날을 우리에게 돌릴 것이야." 김방경 장군에게 일본을 정벌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300년후, 이이는 10만 양병설의 제기 하였으나, 그 누구도 관심갖는자 없었으니. 왜구들은 그 칼날을 우리에게 돌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1910년 일본은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며 눈독을 들이다가 일본교과서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기하였다.
김방경 장군의 일본정벌이 성공하였다면 어찌되었을지 상상해본다. 힘든 시절에 일본정벌을 나선 김방경 장군의 나라사랑하는 마음에 가슴이 아프다. 왕도 외면하고 내부의 적도 많은 김방경 장군을 보니 이순신 장군이 생각난다. 왜구 무찔러 보겠다고 열심히 싸운 그에게 돌아온것은 죽음뿐이였다. 난 이순신 장군이 적장에서 돌아가신것이 마음이 아프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으로 생각되었다. 조정이 그를 가만히 두었겠는가? 안그래도 못잡아 먹어서 안달이였는데 말이다. 분명히 죄목을 만들어서 그를 죽이려 했을것이다. 그들이 잘못한것은 애국심이 넘치고 사심은 없었다는. 어떻게 보면 정말 나라와 백성만 생각한 미련한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는 면이 있었다면 그렇게 싸울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당하고만 산것이 아니였다. 그들도 우리에게 패하고 죽임을 당하였다. 역사는 흘러갔다. 현재 우리가 왜 일본에게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망발을 봐주어야 하는가 말이다.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 분들의 죽음이 헛되이지 않도록 우리가 지킬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