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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제에서 콘스탄티누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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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로마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의 정복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 들었다. 하지만 로마라는 제국이 남긴 족적은 지금의 대부분의 서양 근대국가에 남아있을 만큼 문화,정치,종교,제도적인 측면에서 사실상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민법이 법체계만 보더라도 로마법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로 로마라는 제국이 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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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로마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플(비잔티움)의 정복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 들었다. 하지만 로마라는 제국이 남긴 족적은 지금의 대부분의 서양 근대국가에 남아있을 만큼 문화,정치,종교,제도적인 측면에서 사실상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물며 우리의 민법이 법체계만 보더라도 로마법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을 정도로 로마라는 제국이 전세계 인류에게 미친 영향은 어마어마 한 것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시작되어 아우구스투스가 그 뼈대를 만들고 오현제 시대에 이룩한 Pax Romana는 단지 역사적 기간만을 의미한 협의의 팍스 로마나가 아니라 로마인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시대에까지도 적용될 수 있는 광의의 팍스 로마나라고 하면 너무 큰 비약일까?

 

우리가 세계사를 상고해 보면 인류사에 굵직 굵직한 영향을 끼친 제국들을 보게 되지만 로마제국 만큼 화려한 조명을 받는 제국 또한 없을 것이다. 단순하게 동로마제국까지의 역사적 기간만을 놓고 봐도 대략 1500여년이라는 산술적인 기간에서 부터 여타 제국의 수명과 비교가 될 수 없지만 무엇 보다도 최고 권력자의 특수한 권력계승관계(특히 동방의 군주국에 있어 피한방울 안섞인 남에게 제위를 이어 받게 한다는 발상자체가 어리둥절하게 보이지만)나 황제와 원로원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정치제도, 특히 국적이나 민족에 대한 차별없는 수용과 그 자체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 들였던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다양성과 선진성을 보더라도 지금의 왠만한 근대 국가보다 뛰어남 성숙함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비롯하여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적인 구조나 문화, 철학, 종교는 그 흥망성쇠가 있기 마련이고 이런 자연의 법칙을 로마제국 또한 비켜 나가지 못했던 것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한마디로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다룬 계몽시대이후 최초의 역사서이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주목 받는 이유는 그양의 방대함과 본문의 양에 맞먹는 주석의 양등의 형식적인 내용보다는 근대에 와서 저술된 유일무이한 로마제국의 역사서라는 점일 것이다. 기번 이후 로마제국사를 다루는 역사학자들에게 그의 <로마제국의 쇠망사>는 일종의 바이블같은 존재였을 만큼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더라도 이번 로마제국 쇠망사의 완역본은 우리에게도 많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때 일본 작가였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면서 로마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던 점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역사에세이가 아닌 정사적인 입장에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좀더 깊이 있는 역사적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기번은 첫 출발점을 오현제의 한명인 트리이아누스 황제시대부터 시작함으로써 모든 제도나 문물의 가장 성황기가 다름 아닌 쇠망기의 시작임을 각인시키고 있다. 카이사르에 의해 은밀히 진행된 제정시대는 기번의 표현을 빌리자면 로마황제중 가장 연기력이 뛰었났던 아우구스투스의 절묘한 포장으로 자리를 확고히 했고 네르바, 트리이아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라는 오현제시대을 거치면서 팍스 로마나를 구현했다. 기번은 바로 팍스 로마나의 절정인 서기 98년을 시발점으로 로마라는 제국은 그 쇠망의 뒷안길로 접어 든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사실 팍스 로마나 시대중에도 네로등을 비롯한 실정의 황제들이 있었지만 큰틀에서 보면 로마제국은 큰 흔들림 없는 항해을 했다. 하지만 오현제를 거치면서 황위에 대한 도전과 반목, 그리고 황위를 둘러싼 내전등은 게르만,고트,프랑크,페르시아등 외적인 위협보다 더 큰 내부적인 갈등으로 외형적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서서히 내부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중에 몇몇 황제의 치세동안 반짝 호황기를 누리지만 죽음이라는 대명제는 거슬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로마라는 제국이 오래기간 동안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요인에는 정치제도적의 측면을 비롯한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무엇 보다도 관용과 포용, 그리고 다양성이라는 로마인들 특유의 장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런 로마인이라는 경계 또한 후대에 갈수록 무의미해 지겠지만 로마제국은 모든 문화와 문명 그리고 심지어 나중에 제국을 쇠망케 하는 결정적인 요소인 종교에 이르기 까지 모든것에 대한 개방 정신이 방대한 로마제국을 지켜 주었던 버팀목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연구자들은 없을 것이다. 그 만큼 로마제국은 형식상 로마라는 이름하에 모인 범지구적인(당대의 기준으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점은 후대에 팍스 브리타니아를 외친 대영제국이나 현대의 팍스 아메리카나를 자부하고 있는 미국과 비교해 봐도 그들의 시스템적 우수성을 능히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로마제국 쇠망사 1권의 특징중에 하나는 트라이아누스에서 시작하여 동서로 분활된 제국을 다시 하나로 통합한 콘스탄티누스황제시기 까지의 역사적 서술을 보통의 사서 집필과정을 따르면서도 출간 당시 상당한 저항을 받게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논의를 기재함으로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18세기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종교 특히 서구의 경우 그리스도교에 대한 입장정리가 자유로울수 없는 시대에 기번의 종교관 표현은 상당히 불순한 시도였던 것이다. 당대만 하더라도 이러한 기번의 편협한(?) 종교관과 그런 오만불순한 종교관이 역사서라는 미명하에 활자화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이 방대한 저서는 각종 이유로 저평가 되고 인정받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역사관은 후대의 연구자들에 의해 틀리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었고 오히려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를 감안하더라도 물론 기번의 개인적인 종교관을 무시할 수 없지만 대단한 사자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에 관심이 있던 없던간에 필히 한번은 읽어 봄직한 책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항상 로마제국을 떠올리게 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불편한 존재가 있다. 다름아닌 그리스도교이다. 로마와 그리스도교는 그동안 양립할 수 없는 존재만큼 그 거리감이 커지고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로마를 옹호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지위를 정당화는 입장에서 각각 로마와 그리스도교의 불편한 진실은 바로 이러한 각기 다른 로망들에 의해서 묻혀져 왔다고 해도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정리한 이가 바로 기번이다. 불편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받아들기 싫던간에 역사가 말하는 것은 당시의 사실임을 기번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대로 그의 저술에 담고 있다.

대체로 카톨릭이나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제국 특히 콘스탄티누스황제(콘스탄티누스 대제라고 더 많이 불리지만) 이전의 로마 역사는 생각하기 싫은 역사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예수의 사형집행에서 부터 시작된 그리스도교의 박해로 인해 로마제국은 그야말로 악의 축으로 오인되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기번은 그동안의 오해와 추측으로 난무한 역사를 고증을 통해서 바로 잡고자 했다. 그의 결론은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어마 어마한 박해는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몇몇 황제들에 의한 조직적인 박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라도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박해와 순교로 이어지는 과장된 요인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로마제국의 가장 근간은 모든것의 통합과 조화 그리고 수용, 그리고 다양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제국의 근간을 뒤흔든 맹목적인 일신교의 숭배과 여타 종교와 문화의 극단적인 배척은 그 어떠한 권력자라도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것이다. 당시 그리스도교도의 대부분이 노예나 로마시민의 자격을 얻지 못한 속주민들 그리고 로마시민중에서도 하층민들에게 집중되었던 이유가 낮은곳에서 부터 성령이 일어난다는 논거가 아닌 어느 시대나 이런 계층의 불만은 새로운 로망으로 충분히 번질수 있는 개연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당연시 될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기번은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이교도(그 중심에 로마가 있고)의 박해보다 같은 종파의 박해가 오히려 더 많았다는 점을 고증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클 것이다.


사실상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국교로 성장한 그리스도교의 발자취를 살펴보면 로마 제국의 쇠망사에 대한 아이너리를 엿볼 수 있다.
로마제국의 멸망은 로마인들이 향락과 사치 그리고 그들의 오만, 외부의 적으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실상 그리스도교라는 일률단편적인 사상체계가 로마제국의 다양성을 잠식하기 시작하면서 로마라는 제국은 쇠망의 길로 접어 들었다고 볼 수도 있는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역사적 사초와 유물을들을 보더라도 그리스도교의 성황으로 인해 그동안 로마가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아테네, 동방의 다양한 문명의 흔적들을 볼 수 없게 되고 이러한 다양성의 상실은 야만족을 대하는 정치제도의 측면에서도 강변일변도로 바뀌면서 그야말로 앞만 보고 질주하는 기관차같은 존재로 남게 된다.

물론 그리스도교의 성황만이 로마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고는 할 수 없으나 거대한 담론적인 입장에서 견지하더라도 그 멍에를 벗어 던질 수는 없는 것이다. 다양성이 상실한 세상이 얼마나 해독스러운지는 유럽의 중세나 조선시대, 그리고 가까이 독일의 나치즘과 일본 제국주의만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가져오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다양성이 존재하지 못하는 시대는 그야말로 악이고 어둠만이 존재하는 우울한 세상임을 말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인 것이다. 어찌보면 다양성의 소멸과 유일성의 대두는 역사라는 바퀴를 뒤로 돌리는 반동적인 키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로마는 오현제 시대를 거치면서 그 정점을 지나 서서히 내리막 길을 걷게 되고 디오클레티아누스의 획기적인 제국 분활통치와 부황제라는 제도의 도입을 통해서 다시한번 예전의 영광을 찾기 위해 발버둥치게 된다. 또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콘스탄티누스는 과연 팍스 로마나를 재현할 수 있을까?

l******e 2009.09.01. 신고 공감 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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웁~쓰, 이거 사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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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로마제국쇠망사에 관한 책이 없다시피 했고 읽고 싶으면 원서를 읽거나 까치글방에서 나온 압축판을 사야 했는데 이제 완역판이 나오는군화~   이런 훌륭한 책이 이제야 완역판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나라 인문학이 너무 빈약하고 변변한 번역시스템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수요 또한 매우 부실하다는 반증이라, 씁슬하긴 하다   로마사 최고의 고전을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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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로마제국쇠망사에 관한 책이 없다시피 했고

읽고 싶으면 원서를 읽거나 까치글방에서 나온 압축판을 사야 했는데

이제 완역판이 나오는군화~

 

이런 훌륭한 책이 이제야 완역판이 나온다는 것은

우리나라 인문학이 너무 빈약하고

변변한 번역시스템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수요 또한 매우 부실하다는 반증이라, 씁슬하긴 하다

 

로마사 최고의 고전을 읽어보자

 

 

 

 

k******8 2008.08.08.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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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형편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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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임에도 불구하도 번역이 안좋아 읽기가 굉장히 힘듬.   책도 너무 무겁게 만들어 읽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셨는지.   책좀 가볍게 만들어주세요.   외국도서를보면 페이지수가 많아도 가볍게 만들어져서 휴대하기좋은데 한국책은 왜 그렇게 무겁게 만드는지, 그래야 좋은책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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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임에도 불구하도 번역이 안좋아

읽기가 굉장히 힘듬.

 

책도 너무 무겁게 만들어

읽는 사람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생각하셨는지.

 

책좀 가볍게 만들어주세요.

 

외국도서를보면 페이지수가 많아도 가볍게 만들어져서

휴대하기좋은데

한국책은 왜 그렇게 무겁게 만드는지,

그래야 좋은책인가요?

 

 

b********5 2013.12.09.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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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유명한 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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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극찬한 책, 바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드디어 읽었다. 듣던대로 객관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나, 역시나 흥미로움에 있어서 나름의 해설과 함께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 이른바 역사평설이라고 불리는 책에 비해 이해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유명한 책을 읽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상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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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극찬한 책, 바로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드디어 읽었다. 듣던대로 객관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풀어갔으나, 역시나 흥미로움에 있어서 나름의 해설과 함께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 이른바 역사평설이라고 불리는 책에 비해 이해도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 유명한 책을 읽는다는 것에 의미를 둔다면 상당한 만족감을 가질 수 있겠다.  
m*****0 2008.11.26.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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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이 무너진 이유1-근위대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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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터키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보았을 때, 제국의 역사를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방대한 분량에 선뜻 집어 들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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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기독교문명이 부딪힌 현장을 돌아보면서 역사를 되짚어보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터키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을 보았을 때, 제국의 역사를 더 알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가 봅니다. 그래서 시작했습니다. 방대한 분량에 선뜻 집어 들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시작하면 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전체를 아우르는 독후감을 정리하는 것은 지나치게 개괄적인 것이 될 듯해서 한권 한권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로 즉위한 시점을 시작으로 보지만, 카이사르가 제국의 바탕을 만들었고, 옥타비아누스가 제정의 틀을 만들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로마제국의 끝은 395년 동서 로마의 분할, 476년 서로마 제국 멸망, 혹은 1453년 비잔티움 제국 멸망 등 관점에 따라서 다르게 보는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로마제국은 고대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고대 로마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753년에 로물루스가 로마라는 도시를 건설했다고 전하지만, 이는 허구적인 전설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10세기 무렵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살던 여러 부족들이 전쟁과 교류를 통하여 융합하게 되었고, 그 핵심은 라티움에서 테베레 강을 건너 에트루리아에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과 기원전 8세기 중엽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로 건너온 그리스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8세기 무렵 이들을 중심으로 통합된 것이 고대 로마의 시작이었고, 초기에는 도시국가 형태의 왕국이었습니다. 기원전 500년 무렵 왕정이 무너지면서 귀족들과 평민계급에 의한 공화정이 시작되어 계급간의 투쟁과 타협이 이어지면서도 세력을 확장시켜나갔던 것입니다. 기원전 272년에는 이탈리아반도에 흩어져 있던 도시국가들을 아우르게 되었고, 이어서 갈리아 카르타고 등을 정복하여 지중해 전역으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에드워드 기번은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그리고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로 이어지는 80여년의 행복한 시기(서기 98-180년)로부터 시작합니다. 제국 쇠망의 중요한 상황들을 살펴보는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기획의도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보입니다. 기번은 로마제국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한 시기로부터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동로마제국이 망한 시점까지 대략 1,300년 동안을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있었던 일련의 변화를 크게 3개의 시기로 구분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기는 로마의 군주정이 최고조에 달했다가 쇠퇴하기 시작하여 고트족에 의하여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기까지입니다. 두 번째 시기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동로마제국이 영광을 구가하던 시기로부터 이슬람세력의 발호로 제국의 위엄이 축소되어가다가 서기 800년 샤를마뉴의 프랑크왕국이 제국을 재건하기까지입니다. 세 번째 시기는 이로부터 오스만투르크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까지를 말합니다.


<로마제국 쇠망사1>에서는 서기 98년-180년까지 안토니우스 가의 황제들 시대의 로마제국의 범위와 군사력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여 4세기 초반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퇴위 이후 혼돈에 빠진 제국을 추스르기까지와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박해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로마제국의 황제들은 대체적으로 혈족을 후계자로 세웠지만, 3대 이상 이어진 경우는 별로 없으며, 근위대의 무력에 기대어 제위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근위대의 기대치에 따라서 황제가 바뀌는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로마군의 특징은 속주 혹은 정복지에서도 차출되는 병력의 비중이 컸기 때문에 출신성분이 비천하더라도 군생활을 통하여 비범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 최고 지위에 오를 수 있었고, 군의 위세에 힘입어 황제위에 오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능력위주의 사회였던 모양입니다.


1권의 마지막 2개의 장을 그리스도교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신학적 입장이 아니라 역사학자의 시각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에 대하여 포용적이었던 로마제국의 정책에 따라 급속하게 세력을 키워나갈 수 있었던 그리스도교가 박해를 받게 된 것은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신학적 해석이 힘을 얻으면서 로마의 상징인 신들을 경배하지 않았던 것도 원인의 하나였으며, 사후세계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 신학적 해석도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적과 순교 등을 부풀려졌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습니다.

y*****2 2016.12.0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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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쇠망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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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하면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 보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자꾸만 독서가 소설 쪽에 치우쳐 가는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될 때가 많다. 여름휴가나 명절은 그나마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맥을 끊어 먹지 않고, 오랜 시간 정독하며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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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하면서 책을 읽을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긴 호흡이 필요한 책을 읽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출퇴근 시간과 잠들기 전 시간을 활용해 보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다.

그래서 자꾸만 독서가 소설 쪽에 치우쳐 가는 것은 아닌지 은근 걱정될 때가 많다.


여름휴가나 명절은 그나마 시간 여유가 좀 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맥을 끊어 먹지 않고, 오랜 시간 정독하며 독파해야 할 책에 적합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추석 명절에 읽을 책으로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첫 번째 권을 택했다.


[로마제국쇠망사] 첫 번째 권은 기번이 ‘인류가 가장 행복한 시기’라고 평가되던 로마 오현제 말기부터 시작하여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하기 직전까지 약 250년의 역사를 다룬다.

역시 기번의 문장은 시원시원하면서도 유려했고, 흥미로웠다.

특히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정립에 대한 마지막 2개 장은 보통 흥미로운 것이 아니어서 15장과 16장은 재독하며 읽게 되었다.


서양사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위치는 무엇일까?

오늘날의 서양문화의 기초로 흔히 말해지는 것이 2H, 즉,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이지만,

사실 이것은 ‘로마’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억울할 수도 있겠다.

흔히 서양문화의 원류적, 사상적 측면의 공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돌리고

로마의 업적과 영향은 정치체제나 법률, 건축 등 실재적인 영역에서 찾곤 하지만,

서양 문화 전체에 있어서 로마의 가장 큰 기여점은 단지 실용적인 기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구’라는 하나의 거대한 영역을 확정지은 것에 있다는 생각이다.

이 때의 ‘영역’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지리적 강역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로마라는 하나의 문화로 포용되는 융합을 통한 영역을 의미한다.


로마의 지리적 강역은 현재의 영국에서부터 라인강, 도나우강 서부 지역, 이베리아 반도에서부터 아프리카 북부 지역, 터키를 중심으로 하는 소아시아 지역이다.

이들 지역은 지금도 ‘서구’의 핵심적인 지역이다.

그리고 이런 거대한 영토를 하나의 문화권으로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조건,

즉, 서로 다른 하위의 소(小)문화 간의 관용과 관대함, 융합과 인정에서 ‘Pax Romana’를 형성한 로마의 저력을 발견할 수 있다.

로마는 피정복민에게 관대한 정책을 활용하여 로마 시민권을 부여하고, 평등한 권한을 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피정복민이 오랜 시간동안 누려온 문화와 종교, 인적 자원을 인정하고 융합시키고자 하는 것이 기본적인 로마의 정책이었다.

어떤 민족의 문화이든지 세계의 중심 로마의 그릇 속에서 포용해 내어 녹일 수 있으며,

결국에는 로마 속에 녹아들어 제국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그 자신감에는 오만스러움보다 높은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자신감 넘치던 문화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사후부터 서서히 변질된다.

기번은 그 쇠망의 원인과 과정을 [로마제국쇠망사] 전체에 담아 두고 있다.

물론 아둔하고 잔인한 황제들, 고트족과 게르만족을 비롯한 이민족들의 침입 등 여러 가지로 그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첫 번째 권에서 가장 주목해 봐야 할 쇠망의 원인은 역시 앞서 언급한 자신감 넘치던 문화의 창조자를 잃어버린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본적으로 로마는 공화정 때나 제정 때나 진취적인 지배계급과 헌신적인 시민계급의 건강함을 미덕으로 하는 사회였다.

당시 서구 사회에서 최고의 위치라고 할 수 있는 황제를 보면 이 사실이 자명하다.

최소한 5현제 시기까지 로마 황제의 가장 중요한 일은 안팎으로 두 가지였다.

국내적으로는 로마를 잘 다스릴만한 사람을 찾아 그를 부황제로 삼고, 황제 교육을 시키다가 적당한 때에 ‘선양’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식에게 당연히 황제 자리를 세습하는 것이 아니란 점이다.

마치 고대 중국의 요, 순, 우 임금이 천하를 가장 잘 다스릴 사람에게 자리를 양위하는 모습을 현실에서 보는 듯 했다.

국외적으로는 여러 속주들을 돌보고, 때론 최일선에 나가서 직접 전쟁을 지휘하며 군사들과 함께 위험을 무릅써야 했던 일이었다.

영화 <글레디에디터>에도 나오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선에서 죽었다.


황제가 앞장서서 전투에 임하고,

귀족들과 시민계급이 직접 자비를 들여 무장하여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싸우는 로마군을 누가 당하겠는가?

덕망과 인품을 쌓아 원로원 등에서 인정받아 국가를 다스릴 만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황제 후보자들이 즐비하니, 어느 누가 황제 자리를 독점하거나 편협한 정책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5현제 이후 황제의 자리가 ‘선양’의 대상이 아니라 ‘찬탈’의 대상이 되면서 지배층의 도덕성과 자신감은 무너진다.

급여와 상여금을 올려준다면 서슴없이 황제의 목숨까지도 빼앗는 상비군으로서 근위대의 존재와 용병, 이민족들의 보조군으로의 편입은 ‘스스로의 수호’라는 로마의 뿌리를 갉아먹는다.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던 문화를 만들어 냈던 로마의 지배층, 솔선수범하여 국가를 지켜냈던 로마의 시민들은 이렇게 썪어가기 시작한다.

기번의 평가를 들어보자.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귀족들은 자신들을 군무에서 배제시킨 이러한 치욕적인 면제 조치를 오히려 일종의 특혜로 받아들였다. 더구나 그들은 목욕탕, 극장 및 별장에서의 향락에 탐닉할 수만 있다면, 제국에 관련된 보다 위험한 책무들은 농민과 병사들의 거친 손에 기꺼이 넘겨 주었다(p.309).


이것이 결국에는 제국의 분할과 쇠망의 출발점이 되었다.

사방에서 쳐들어오기 시작하는 이민족들과 복잡한 국내 정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제국을 형식적으로 4분하여 2명의 황제, 2명의 부황제가 각각 다스리는 정치체제를 구축한다.

물론 당시에는 헌신적이고 서로 신뢰하던 4명의 황제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하여 이민족을 물리치고 짧게나마 로마의 안정과 번영을 이루었다.

하지만, 로마 제국을 지켜내기 위해 불가피하게 고안된 제국의 분할은 결과적으로는 국력을 약화시키게 된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제국 재통일도 내전이나 마찬가지였고, 그의 사후 동서 로마제국의 분할과 대립도 국력을 쇠잔케 하는 원인이 되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이번에 [로마제국쇠망사]를 읽으면서 가장 몰입해서 보았던 부분은 로마에서의 그리스도교 발전과 박해에 대한 부분인 제15장과 제16장이었다.

혹시라도 [로마제국쇠망사]에 도전하는 분이라면 꼭 정독하여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로마 제국과 그리스도교’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제국의 박해와 신자의 순교라는 모습이 아닐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거나 거대한 콜로세움에 맹수밥으로 던져진 그리스도교인,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 그리스도교인의 모습은

셴케비치의 [쿠오바디스]를 비롯한 수많은 로마 시대 영화를 통해 확대재생산된 이미지이다.

그 때문에 최소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공인 이전의 로마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박해한 제국이라는 것이 확고부동한 사실처럼 받아들여져 왔다.


기번은 이런 고정화된 믿음에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래서였을까? [로마제국쇠망사]가 처음 나왔을 때, 영국의 교계는 엄청나게 반발하고 기번을 2류 역사가라 칭하며 맹렬히 비난한다.

기번은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급성장한 이유를 다섯 가지로 든다.

첫째, 편협한 일신교의 열정, 둘째, 내세와 영혼불멸의 교리, 셋째, 기적의 힘, 넷째, 그리스도교인들이 보여준 미덕, 다섯째, 그리스도인의 단결에 적합한 교회 행정체계.

기번도 분명히 지적했지만 그리스도교는 분명 로마 제국에서 ‘성장했다’.

네로 황제 시기를 비롯하여 몇 차례 박해와 탄압도 있었으나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 가지고 있던 기본적인 속성, 즉, 관용과 포용의 수혜를 최대한으로 입은 종교이기도 했다.

그들의 편협한 일신교 교리조차도 로마에서는 용인되었고, 그들의 예배는 특정한 짧은 시기를 제외하고는 묵인되었으며, 포교 역시 자유로웠다.

(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을 보면, 그가 로마 제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포교했고, 아무 제한 없이 무수한 교회를 세웠음을 알 수 있다.)

로마 제국내 속주들의 행정관과 총독들은 잔혹한 죄를 짓지 않는 한 그리스도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처형하거나 가두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빌라도의 태도나, 바울에 대한 로마 총독들의 태도를 생각해 보라.)


그래서 기번은 분명히 말한다.


그리스도교인의 종교 교의 자체는 처벌이나 심문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p.640)

그리스도교인들이 교회 내부의 불화 과정에서 서로에게 가한 고통이 광신적인 이교도에게 당한 박해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p.690).


한 마디로 말하면 몇몇 황제에 의한 격렬한 박해도 잠시 있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로마 제국 시대에는 교회사에서 그렇게 떠들썩하게 높이 평가하는 무시무시하면서도 장기간에 걸친 박해와 순교는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로마 제국 입장에서 본다면 그리스도교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유일신을 믿는 편협함은 주위 다른 종교를 가진 민족들과 사사건건 대립을 일으켰고,

이교도들이라 하여 다른 민족을 참혹하게 학살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으켰다.

내세에 대한 갈망은 스스로를 순교자로 만들기 위해 ‘오버’하는 경우가 잦았고,

교회 내의 재산 문제, 주교와 신자들과의 갈등, 중요 직책의 독점 등은 어떤 경우 속세를 뺨칠 정도였다.


그리스도교는 로마 제국이라는 관대한 둥지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이 둥지 속에서 너무나 크게 자라나 마침내는 그 둥지 자체를 먹어치울 지경에 이른다.

포용과 다원성을 정책 목표로 하던 로마 제국과 편협함 및 다른 민족에 대한 배척까지도 서슴지 않았던 그리스도교는 서로의 궁합이 맞지 않은 조합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 또한 로마 제국의 멸망을 앞당긴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냥 작은 도시 국가 상태였다면 모를까, 세계 제국이었던 로마가 택한 것이 포용과 다원성이 아니라 편협함과 지식/신앙의 독점이라니,

이는 국력을 분산시키고, 다른 민족, 다른 종교의 반발을 불러왔을 것이 틀림없다.


로마 제국 쇠망의 첫 번째 단계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지 않은가?

땅에 떨어진 지배계층의 도덕성, 편협된 가치관... 이런 쪽으로 말이다.

이제 [로마제국쇠망사] 두 번째 권은 콘스탄티노플 건설 이후 로마 제국의 상황으로 이어져서 궁극적으로는 동서 로마제국의 분할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내부의 다양한 신학적 논의들, 즉, 아리우스파나 그노시스파 등을 어떻게 배격하면서 자신들만의 순수한 ‘지상낙원’을 이룩하고자 하였는지 펼쳐질 것이다.

약 2000년전 로마인들이 택한 길이 어떻게 그들 자신 뿐만 아니라 이후의 서구 역사, 나아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뱀꼬리

[로마제국쇠망사] 읽기는 큰 즐거움이다.

하지만, 또 언제 이렇게 꼭꼭 씹어 읽는 독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지 은근 걱정이다.

s******e 2009.10.07. 신고 공감 3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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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역사서로서는 너무 길지만 1,400년을 담기엔 너무 짧은
"대중 역사서로서는 너무 길지만 1,400년을 담기엔 너무 짧은" 내용보기
로마제국의 역사를 논할 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인용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글이 치밀한지 여부를 떠나 고고학이 발달하지 않은 그 옛날(?)에 고대의 자료들을 분석하여 엄청난 분량의 역사서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크기 때문이다(사실 책을 읽다보면 기번의 역사관이나 정치관, 경제관 등이 썩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기번의 관점 일단 기본적으로 기번
"대중 역사서로서는 너무 길지만 1,400년을 담기엔 너무 짧은" 내용보기

로마제국의 역사를 논할 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인용하지 않기도 어려울 것이다. 글이 치밀한지 여부를 떠나 고고학이 발달하지 않은 그 옛날(?)에 고대의 자료들을 분석하여 엄청난 분량의 역사서를 완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의의가 크기 때문이다(사실 책을 읽다보면 기번의 역사관이나 정치관, 경제관 등이 썩 수긍이 가지는 않았다).


 

기번의 관점

일단 기본적으로 기번은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에 대해 비판적이다. 공화정 체제를 무너뜨린 카이사르와 행정 권력이 입법 권력에 개입하는 사례를 만든 아우구스투스를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18세기라는 계몽주의의 전성시대를 산 기번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로마 귀족들의 사치에 대해서도 한편으로는 비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트리클다운 효과 비슷한 논지로 편을 들어준다. 즉 로마시대 때 사치품을 향유한 귀족들이 직공과 기술자들에게 일종의 자발적 세금을 내는 셈이어서 이것이 부의 불평등을 시정해주는 수단이 된다는 식이 논조 말이다.
물론 현대의 시각에서 기번의 글을 비판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로마제국 쇠망사는 기번의 시대에, 기번의 시각으로 쓰여진 로마사이기 때문이다. 역자들이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기번의 각주가 너무나 많고 어떤 것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드러낸 것들이어서 무려 350개에 이르는 각주들이 번역서에서 생략될 정도였다고 하니 말이다. 따라서 본문에 드러나는 기번의 편견들은 적당히 걸러내서 읽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중서? 전문서?

로마제국 쇠망사는 무려 1,400년의 시대를 다룬다. 그러니까 아무리 기번의 책이 방대하다지만 그 많은 세월을 담기에는 사실 그의 책으로도 모자란다. 책을 읽다보면 너무 방대한 내용이 별다른 보충 설명 없이 넘어가버려서 로마사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기에는 벅찰 것 같다. 물론 나도 로마사를 잘 모른다. 딱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정도의 수준이다. 딱 그 정도 수준에서 이 책을 접했는데, 기본적인 느낌은 읽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이다(내용이 어렵다는 의미와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의미 모두를 포함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은 (저자의 머릿속에서) 의도적으로 편집된 역사서이기 때문에, 로마 역사 전체를 통찰할 필요가 없는 일반대중들이 읽기에 아주 적합하다. 그러나 기번의 책은 역사서로의 책임감 때문인지 시시콜콜한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그런데 그 시시콜콜한 내용이 로마인 이야기에서처럼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야사 같은 것이 아니라 정사이면서도 시시콜콜한 것이라서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의 가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렇게 때문에 역사서로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로마제국 시대를 살았던 역사가들의 1차 자료를 분석하여 만들어낸 매우 소중한 2차 자료이다. 오늘날 기번을 인용하는 역사서들은 3차 자료쯤 될 것이다.

 

영어 직역투의 문제

기번의 책은 워낙 유명해서 이미 수많은 평론가들이 비평을 해왔으니, 나의 개인적인 평가는 이쯤해두고 번역에 대해서 몇 자 덧붙이겠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이 책의 번역은 꽤 잘 된 편이다. 원서를 자세히 살펴보지 않아서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번역본만 보았을 때 오역이 아닐까 의심되는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영문 직역투가 걸린다. 한국의 학계에서 유통되는 전문번역서들은 대개 영어 직역투가 많다. 원문의 문장이 길어도 그대로 번역하고, 물주구문이나 '형용사+명사형' 표현도 그대로 번역한다. 그래서 캠퍼스에 있는 동안 그런 책들에 익숙해진 사람들 중에는 심지어 한글 문장을 쓸 때도 영문 번역투 같은 문장을 쓰는 사람도  꽤 있다. 그게 옳은 표현이고 '배운 사람들'이 써야 하는 표현인 줄로 착각을 하는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이 표현은 이렇게 바꿨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 꽤 있었다. 나는 기본적으로 번역은 영문법뿐 아니라 국문법에도 능통한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은 단순한 어학 기술뿐 아니라 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제2의 창작이기 때문이다.
역자들의 어투가 영어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예를 하나 들어 보겠다. 1권 68쪽 소제목 중에 '황제 또는 총지휘관의 칭호'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에 이 부분을 읽고'또는'이 'or'를 번역한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이 번역서의 대본으로 쓰였다는 Bury의 원서를 조금 들추어 보았는데, 원서에는 소제목이 달려 있지 않았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역자나 출판사 측에서 그렇게 수많은 소제목을 단 모양이다(이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편집에 매우 공을 들인 거니깐). 그렇다면 '황제 또는 총지휘관의 칭호'라는 표현은 역자나 출판사에서 만들어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황제=총지휘관'인데 왜 두 단어를 '또는'으로 연결했을까? 역자가 황제가 총지휘관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기엔 본문에 이에 대한 서술이 있어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유추해보건대 영어에서 'or'는 한국말로 '또는'으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즉'으로도 번역된다. 그러나 한국말에서 '또는'은 '또는'이고 '즉'은 '즉'일 뿐 두 표현이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황제 또는 총지휘관'이라는 표현은 아마도 역자들이 영어 단어 'or'의 의미만 생각해서 한국말로 '즉'이라고 해야 할 것을 '또는'이라고 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번역에 대한 소견은 어디까지나 나의 견해일 뿐이다. 이 책에 이렇게 엄격한 기준을 갖다 댈 생각은 없다. 솔직히 말해 이렇게 방대한 분량의 책을 번역하여 대중에게 소개해준 것만으로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역자와 출판사에 고마울 따름이다.



YES마니아 : 로얄 c*****g 2009.09.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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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쇠망이 정말 기독교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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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이 남긴 위대한 고전이다.    예전에 일본어판을 중역한 대광서림에서 나온 판본을 구입했다가, 새로 번역이 되었다길래 우선 1권부터 구입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번역이 무척 매끄럽다는 것이다. 대광서림의 중역판은 '도대체가...'라는 일본어식 말투가 너무 자주 나와 읽기에 거북했는데, 이번 민음사에서 나온 번역본은 그런 부분이 없
"로마제국의 쇠망이 정말 기독교 때문이었을까?" 내용보기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이 남긴 위대한 고전이다.

 

 예전에 일본어판을 중역한 대광서림에서 나온 판본을 구입했다가, 새로 번역이 되었다길래 우선 1권부터 구입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점은 번역이 무척 매끄럽다는 것이다. 대광서림의 중역판은 '도대체가...'라는 일본어식 말투가 너무 자주 나와 읽기에 거북했는데, 이번 민음사에서 나온 번역본은 그런 부분이 없어 읽기가 편했다.

 

 편집과 구성 부분에서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대광서림 판본에서는 충실하게 달려있었던 원본의 주석이 이번 민음사 번역본에서는 상당수가 없어졌다는 점이다.

 

 대광서림 판본에는 로마제국의 지도나 수도 로마의 조경을 다음 그림이 책의 끝부분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민음사 번역본에는 엉뚱하게도 책을 감싼 겉표지에 들어가는 바람에 좀 보기가 어렵다.

 

 그리고 전체적인 내용 면에서도 옥의 티인 부분들이 꽤 눈에 보인다.

 

 에드워드 기번이 훌륭한 학자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지만, 아무래도 그는 18세기를 살던 사람이라 그런지 지금에 밝혀진 역사와 틀린 점들이 드러난다.

 

 특히, 계몽주의라는 시대의 영향상 기독교에 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데,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쇠망하게 했다는 극단적인 주관이 이 책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그러니 일본인 극우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좋아하는 것이겠지만...)

 

 하지만 기독교와 로마제국의 쇠퇴는 별반 상관이 없다는 것이 최근 학자들의 연구 결과이다. 로마제국의 쇠퇴는 지나치게 늘어난 영토를 지키는데 들어가는 군사비를 감당하지 못한, 경제적인 낙후라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한다.

 

 그리고 기독교를 국교로 삼았던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이 서로마 제국보다 약 1천년이나 더 오래 존속하면서 번영을 누렸던 사실을 본다면, 기독교의 도입이 로마제국의 쇠퇴를 촉진했다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과 맞지 않는다.

 

 또한, 1권의 게르만족 부분에서 에드워드 기번은 게르만족들의 주신인 오딘이 실제로 존재했던 입법가이자 족장이며 그 근거로 게르만 신화에 등장하는 아스가르드가 크림반도의 아조프해와 동일한 지역이라고 주장했으나, 이는 사실적 근거가 부족한 낭설로 간주되고 있다. 아스가르드는 게르만 신화에서 신들이 사는 세계이지, 무슨 특정한 지역을 가리키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부분적인 오류에도 불구하고 이 책 <로마제국 쇠망사>가 가지는 장점들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로마제국의 쇠퇴 과정을 이보다 더 상세하고 열정적으로 다룬 책도 없으니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보다 훨씬 훌륭하다.)

 

 로마제국이나 중세유럽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명작이다.

x***2 2009.08.3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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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봐야할책 : [비잔티움연대기] by 존 쥴리어스 노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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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같이 읽어봐야할책 : 비잔티움연대기(3set) by John Julius Norwich, 1453콘스탄티노플함락최후의날 by 스티브 룬시먼   에드워드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제국사에 대한 고전중의 고전이다   1700년대 후반에 원서가 영국에서 발간되었으니, 200년이 훌쩍넘었다..   에드워드기번의 역사관은 나름대로 신념이있다..   바로 로마제국에 이은 서로마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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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같이 읽어봐야할책 : 비잔티움연대기(3set) by John Julius Norwich, 1453콘스탄티노플함락최후의날 by 스티브 룬시먼

 

에드워드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는 로마제국사에 대한 고전중의 고전이다

 

1700년대 후반에 원서가 영국에서 발간되었으니, 200년이 훌쩍넘었다..

 

에드워드기번의 역사관은 나름대로 신념이있다..

 

바로 로마제국에 이은 서로마제국을 역사관의 중심으로 삼은것.....

 

우리가 그동안 수없이 배워온 세계사의 중심이 바로 이 책에 압축되어있다 하겠다..

 

에드워드기번의 서로마제국 중심의 역사관은 이후 역사관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바로 서로마제국 반대편에 있는 비잔티움 제국(동로마제국)을 부도덕과 타락, 경멸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반란, 음모, 암살, 폐위 등으로 얼룩졌지만 다이내믹하게 1100년동안 지속되어온 비잔티움 제국을

 

우리나라 세계사 책에 단 몇줄로 처리하게된(콘스탄티누스 1세가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삼고,

 

이후 500년대 초반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대에 최전성기를 이룩하고 1453년에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멸망한 그 제국...)

 

그 행태를 우리나라 학생들 또는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가장 큰 원인은..바로 에드워드 기번에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에드워드 기번과 W.E.H래키등 서로마 제국 중심의 역사학자들과 우리나라 세계사 책에 따르면

 

비잔티움제국은 330년 창건되서 500년대 초반 최전성기를 이룩하고

 

무려 900년동안이나 쇠퇴외 쇠락을 거듭한 끝에 1453년에 멸망한 말도 안되는 제국사를 가진 제국이란 말인가???

 

 

로마제국쇠망사가 워낙 걸작이고 유명한탓에..서로마제국 중심..나아가 서유럽 중심의 역사관만을 읽어온

 

사람들에게....로마제국쇠망사는 그러한 역사관을 자연스럽게 강조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관은 1900년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역사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비잔티움제국사에 대한 새로운 조명이 빛을 발하면서....많은 학자들에게 비판을 받았는데..

 

오스트로고르스키의 [비잔티움 제국사], 스티브 룬시먼의 다양한 저작..[1453 콘스탄티노플 함락 최후의 날 등],

 

존 쥴리어스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중 2007년에 발간된 존 쥴리어스 노리치의 대작 [비잔티움 연대기 3권...3권합쳐서 총 20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도서]

 

를 읽어봐야..

 

서로마제국과 비잔티움제국(동로마 제국)에 대한 합리적인 관점을 알수 있을거라 장담을 한다..

http://blog.naver.com/bluemir98

b******9 2009.03.0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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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쇠망사 1권 - 에드워드 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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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읽다보면 로마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그리스 문명과 아시아 문명을 두루 아우르는 문화을 꽃피웠던 로마. 로마 제국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그 쇠망 또한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 역사를 객관성으로 표현하면서도 뛰어난 문장력을
"로마제국 쇠망사 1권 - 에드워드 기번" 내용보기




세계사에 관심을 갖고 읽다보면 로마사를 자주 접하게 된다. 유럽과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 걸친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그리스 문명과 아시아 문명을 두루 아우르는 문화을 꽃피웠던 로마. 로마 제국이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은 것처럼 그 쇠망 또한 하루 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 역사를 객관성으로 표현하면서도 뛰어난 문장력을 구사했다는 점에서 현재까지도 로마사에 관한 책 가운데 손꼽히고 있다. 


과거 2-3번 로마제국 쇠망사를 통독하려는 욕심을 부리다 이런저런 핑계거리만 남긴 채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최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완독했는데,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내내 다음에 읽을 책으로 <로마제국 쇠망사>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1권을 마무리하게 됐다. 


기원전 3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까지 이어진 3차례의 포에니 전쟁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한니발의 자마회전을 끝으로 결말에 이른다. 승리를 거머쥔 로마는 카르타고가 지배력을 행사하던 모든 곳(시칠리아, 에스파냐, 아프리카 등)을 복속함으로써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기원전 1세기가 되자 두 명의 위대한 장군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등장한다. 폼페이우스는 어수선한 소아시아를 평정하고 로마의 국경을 유프라테스 강 서안까지 확장했으며 카이사르는 광대한 갈리아의 영토를 로마로 복속시켰다. 이로써 로마의 국경은 서쪽으로는 브라티나아 남단과 갈리아, 에스파냐가 됐으며 남쪽으로는 북부 아프리카의 사막지대가 되었다. 국경의 동쪽은 시리아와 유프라테스강이 됐고 북쪽으로는 라인강과 도나우 강이 됐다. 


이어진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은 파르살루스 회전에서 카이사르가 승리하며 사실상 로마의 권력은 카이사르에게 집중된다. 공화정의 한계를 타파하고 제정을 이루고자 했던 카이사르는 부루투스에게 암살되어 명을 다하고, 공화정의 제정으로의 이행은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에 의해 실행된다.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는 긴 통치기간 동안 제국의 안정에 힘썼으며 카이사르의 유지대로 로마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기 보다 안정화하는데 치중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죽고 제위는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로 이어진다. 폭정으로 유명한 칼리굴라와 네로의 치세는 로마 제정을 위태롭게 했지만 권력에 대한 탐욕에 이끌렸던, 폭정에 대한 저항의지에 의해서든 황제를 암살하는 세력에 의해 폭정은 끝을 맺는다. 네로가 암살된 후 혼란스러운 제국은 갈바, 오토, 비텔리우스 등 잠시 황제의 지위를 스쳐간 자들이 등장했다 사라졌다. 이어진 플라비우스 왕조(베스파시아누스, 티투스. 도미티아누스) 또한 짧은 통치를 행했을 뿐이다. 


로마 제국은 크고 강했으나 제위에 올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정을 베푼다 할지라도 다른 권력찬탈자가 탐욕을 부리거나, 폭군 아래에서 부당한 이익을 누리던 자들의 음모에 의해 왕좌는 늘 위협받았다.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된 후 원로원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네르바는 1년 조금 넘는 짧은 제위기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으며 가장 큰 업적은 제위를 트라야누스에게 물려준 것이라 할 수 없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5현제 시대(Pax Romana)부터 시작된다. 네르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두 명의 안토니누스 황제까지 이어진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후반에 걸친 현제의 시대는 팽창된 로마제국을 안정시키고 혼란스러운 국경을 단도리하는 과정이었다. 제국은 안정되었고 평화로웠으며 경제는 발전하고 로마 시민은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었다. 간혹 게르만족의 침략과 동쪽의 파르티아가 몽니를 부리기도 했지만 현제들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었다. 트리야누스로부터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에 이르는 약 80년의 기간동안 제위에 올랐던 4명의 황제는 실무 경험이나 후계자 교육을 충분히 받은 후 장년의 나이에 제위에 올랐고 긴 제위기간을 가지면서 국정의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제국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제국의 물리적 팽창은 멈췄지만 경제와 문화는 발전했고 시민들의 삶은 풍요로웠다. 그러나 모든 영화(榮華)의 정점은 끝을 알리는 신호가 되는 것처럼 로마제국은 2세기 후반 마르쿠스 안토니누스 황제의 죽음을 시작으로 혼란에 빠진다. 제위를 이어받은 콤모두스 황제는 영화'글래디에이터'에 폭군으로 등장해 더욱 유명해진 자이다. 콤무두스는 잔인성과 실정은 선대가 쌓은 제국의 위상을 조금씩 갉아먹었으며 결국 근위대에 의해 암살된다. 


콤모두스가 죽자 근위대는 제위를 경매에 붙이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이는 로마 제국의 건전한 통치제제가 무너져 가고 있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이를 제지할 어떤 기제도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제국에 암운을 드리우는 일이었다. 경매로 얻은 제위가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없음은 자명하고 당연히 곳곳에서 황제에 항명하는 반란 세력이 등장한다. 


로마제국은 광대한 영토를 가졌고 외부의 침략이 우려되는 곳 또한 많았으므로 제국이 운영하는 군대는 엄청난 규모였다. 특히 라인 강과 도나우 강 전선을 지키는 군단, 동쪽의 파르티아(후일 사산왕조 페르시아)아 맞닿은 국경을 지키는 군단은 지휘관의 역량에 따른 부침은 있었지만 최강의 군대로 일컬어졌다. 로마제국의 제위가 정당하지 못한 자로 인해 찬탈되거나 제위의 정당성을 가질지라도 폭정과 실정을 일삼는 군주는 이들 군단으로부터 지지를 받기 힘들었다. 


언제나 군대의 무력은 황제의 두려움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황제는 자신의 자리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군대(무력)에 의존하게 된다. 제국의 수도 로마에 상주하는 근위대는 종종 제위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자에게 위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평화롭고 번영일로를 걸을 것으로 보이던 제국은 권력욕에 눈이 먼 찬탈자들과 권력이 주는 달콤한 향략에 휘둘리는 황제들에 의해 위태한 모습으로 유지되었으며 점차 피폐해졌다. 


제국의 쇠퇴가 진행되는 중에도 간혹 적절한 군주, 즉 군대의 무력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역략을 지녔으며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위치를 이해한 황제가 등장해 쇠락해가는 로마제국에 숨길을 터주기도 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등이 그런 인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명한 군주들조차 대를 이어 번영을 이끌만한 후계자를 정하는데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에 제국의 영광은 위태로웠다. 


황제라는 위치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 권력자를 세워 이득을 보려는 무리, 점점 더 욕심이 커지는 군대, 폭군으로부터 위협을 느껴 선공을 택하는 무리 등에 의해 위협받았고 설사 한번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할지라도 언제 어디에서 다른 공격이 들어올 지 노심초사해야 하는 걱정스러운 자리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들은 자신의 가족들조차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명한 황제라 불리는 이들조차 자신을 위협할 소지가 있는 자들을 말소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로마제국 쇠망사 1권>은 2세기 시작부터 4세기 중반까지의 로마제국의 역사를 논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차츰 제국에 균열이 생기는 과정이 담겨 있다. 제국을 놓고 벌이는 권력의 암투를 볼 수 있으며 성공한다면 부위영화를 누릴 가능성을 갖는 것이고 실패한다면 목숨을 내놓아야하는 살벌한 역사를 접하게 된다. 황제의 머리 위에는 칼이 있어 언제든 황제의 머리를 찌를 수 있다는 말의 의미를 간접체험 할 수 있다. 아우구스투스부터 콘스탄티누스까지 로마제국의 황제라는 감투를 썼던 이의 숫자는 어림잡아 약 40명은 되는 것 같은데 이 중 10년 이상 제위에 머물렀던 사람은 10명 안팎이고 온전히 수명을 다하고 죽은 이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쫓겨나기를 반복했다는 점은 그만큼 내전이 많았음을 의미한다. 젊은이들은 소모적 전투에 동원되어 목숨을 빼앗겼고 군비는 점점 늘어갔으며 이를 감당하기 위한 세금도 덩달아 상승했다. 스스로 권좌를 노리거나 강요에 떠밀려 권좌에 앉혀진 이들이 정당성과 명예, 정의를 주장하며 칼을 뽑아들었지만 결국 내전이란 것의 결말은 후퇴한 제국의 위상을 남겼다. 승리로 황제의 자리를 쟁취해도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고 군대를 자신의 편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에 군인에 대한 처우를 비정상적으로 높였다. 이런 위정자들의 형편을 알기 때문에 군인들 또한 스스로의 권리를 종종 과하게 주장했다. 결국 세금이라는 명목의 착취와 자산가에 누명을 씌워 재산을 몰수함으로써 군인들의 급여와 복지를 향상시켰고, 황제와 군대를 엮어주는 느스한 고리가 유지되었다. 

세기를 넘어 진행된 잦은 내전은 결국 건전한 로마제국의 재정과 사회를 해쳤고 제국을 위태롭게 했다.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역사에 대한 기록인 만큼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범인의 머리로 이들을 모두 기억할 수 없으며 큰 흐름을 따라 기억하는 것이 현명할 것으로 생각한다. 로마사에 대해 접근할 때 아우구스투스, 5현제, 세베루스, 아우렐리아누스, 디오클레티아누스, 콘스탄티누스와 같이 비교적 제위기간이 길고 위업을 남긴 인물을 중심으로 토대로 지식을 넓혀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트라쉬마코스의 "옮음은 승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말처럼 역사란 것은 승자의 기록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로마제국의 역사 또한 이런 경향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학자에 따른 견해차가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를 가리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학자가 아닌 내가 역사를 더 알고자 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이 이룩했던 업적을 알고 그것들이 어떤 의미가 되어 현대로 이어졌는 가를 짐작하기 위함이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한다. 그 대화를 유심히 듣다 보면 우리가 사는 현재를 더욱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적 교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삽화가 없다. 등장인물은 굉장히 많고 그들의 이름 또한 헷갈리거나 생소한 것이 많다. 만약 로마사를 이해하고자 하여 처음 접하는 책이 <로마제국 쇠망사>가 된다면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 될 소지가 많다. 나도 여러번 책을 폈다 덮기를 반복했고 1권에서 6권을 동시에 구매했지만 몇 년이 지나고 보니 1권만 손때가 묻어있고 2권부터는 새 책 그대로인 상태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와 같은 상대적으로 쉬운 역사서를 먼저 접하고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서야(몇 년이 걸렸는지...) <로마제국 쇠망사 1권>을 완독했다. 다행히 1권은 <로마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부분이 많아 비교적 쉽게 읽었는데 2권부터는 다시 힘든 여정이 될 것 같아 걱정과 기대가 같이 든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20.11.0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