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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복 많은 융과 그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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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두툼한 평전에서 내가 관심을 둔 것은 융의 환자들과 그의 여사도들에 대한 에피소드다. 융과 융의 정부인 토니 볼프(Toni Wolff)와의 관계는 유명하다. 엠마가 몇 번이나 융과 이혼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가 이해가 된다. '융의 여인들'은 대개 그에게 돈을 지불하는 환자거나 무료봉사로 일을 도와준 비서들이었다. 비서들이 하는 일이란 융의 속기사 노릇이나 운전사 노릇,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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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두툼한 평전에서 내가 관심을 둔 것은 융의 환자들과 그의 여사도들에 대한 에피소드다. 융과 융의 정부인 토니 볼프(Toni Wolff)와의 관계는 유명하다. 엠마가 몇 번이나 융과 이혼하려고 했었다는 얘기가 이해가 된다. '융의 여인들'은 대개 그에게 돈을 지불하는 환자거나 무료봉사로 일을 도와준 비서들이었다. 비서들이 하는 일이란 융의 속기사 노릇이나 운전사 노릇, 문헌조사 등의 연구보조원 노릇이었다.

 

유명한 초상화가 출신의 메리 푸트도 환자 출신이었다. 당시 융 주위에 모인 여자 가운데 메리 푸트는 가장 조신하고 겸손한 편에 속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조차 사생활은 무척 복잡했다. 푸트의 가족은 메리 푸트를 비롯한 '융의 부인들'을 "신비주의에 빠진 다른 감상적인 쭈그렁 할멈들과 마찬가지로 여성적인 문제가 있어 머리가 이상해진 바람에 그 의사에게 애착을 가져 긴장을 푸는" 여자들로 묘사했다. 대부분 전이문제가 심각했던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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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1세대 제자들 가운데 내가 책을 통해 알고 있던 인물은 두 명이다. 두 명이 공교롭게도 한 집에서 사이좋게 동거하는 관계였는데, 영국 출신의 독신녀 바버라 해나(Barbara Hannah)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Marie-Louise von Franz, 1915-1999)다. 나는 바버라 해나에 관한 평전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이 책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해나에 대한 낮은 평가를 소개하고 있어 놀랬다. 영국 불도그처럼 고집스런 호전성으로 인해 자주 조롱을 당했던 바버라 해나에 대한 묘사는 무척 노골적이다. 

 

"그녀는 치체스터 성당 주임 사제의 딸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훗날 영국 성공회의 주교가 되었다. 그녀의 외모는 혐오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치아가 고르지 못하고, 턱은 움푹 꺼지고, 목소리는 귀를 찌르는 듯한 콧소리이고, 웃음은 신경질적인 염소 울음 소리인 이 못난 여자 안에 숨어 있는 재치와 재능을 알아보는 사람은 드물었다."(6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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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나는 "전투를 위해 날개를 펼치고 악을 쓰는 백조"라는 평을 주위로부터 얻었다. 해나의 첫 분석가는 피터 베인스였고 이어서 토니 볼프, 엠마 융의 분석을 받았다. 해나는 레즈비언으로 나중에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와 함께 살았고, 한때 볼프를 미친 듯이 사랑하기도 했다. 물론 융의 정부 볼프는 이성애자였다. 융을 따랐던 여자들 대부분이 내향성이었다. 주목할 만한 예외는 '기관차'나 '쇄빙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욜란데 야코비(1890-1973)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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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여사도들 가운데 가장 권위가 있는 핵심 인물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다. 융과 대면했던 당시 19살의 풋풋한 대학생이었던 프란츠는 한때 "공산주의자이자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였다. 그러나 융을 만나 고전어와 문학을 전공하고, 융을 위해 연금술과 신비주의를 탐구하게 된다. 프란츠는 "자신이 융의 삶에서 지적으로 토니 볼프를 대체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융이 지적인 통찰을 존중해 주었던 여자는 프란츠 딱 한 사람뿐이었다고 한다. 프란츠는 서서히 융 심리학의 공식적 해설자로 자리를 잡았고, 융이 죽은 뒤에는 그 위치가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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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의 환자였던 화가 출신의 크리스티애너 모건(Christiana Morgan, 1897-1967)도 많은 유명인을 애인으로 거느린 무척 흥미로운 여성이다. 남편 윌 모건의 하버드 동창생인 의사 해리 머리(Henry A. Murray)의 오랜 정부였고 그의 동생 마이크 머리와 잠시 사귀기도 했으며, 시온주의자 하임 바이츠만, 철학자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문화비평가 루이스 멈퍼드 등을 애인으로 삼기도 했다. 융은 크리스티애너가 토니 볼프와 닮았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모건이나 볼프나 현모양처 유형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의 직업적인 접대부 '헤타이라' (여성 동반자)유형이나 '신비의 자매' 유형에 해당한다. 조직의 보스 주변에 이런 헤타이라 여성들은 얼마든지 있는 법이다. 꽤 많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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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출신의 캐리 베인스(Cary F. Banes)는 초창기에 융의 속기사 노릇도 하고 비서 일도 했다. 그녀는 꼼꼼한 번역가이자 부지런한 편집자이기도 했다. 초기에 피터 베인스와 함께『분석심리학론』과『두 편의 분석심리학 에세이』를 영역했다. 캐리 베인스는 토니 볼프가 주도하는 심리학클럽 정치에 거리를 두었고 특히 프란츠를 불신하여 비굴하게 아첨이나 한다고 말했다. 캐리는 엠마 융 편이었던 것 같다. 중국 고전 『주역』을 번역했을 뿐만 아니라, 엠마 융의 주저인『아니무스와 아니마』까지도 캐리가 번역했다.


그럼, 융은 자신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던 '취리히 독신녀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을까? 융은 자주 배은망덕한 발언을 하곤 했다.

 

"나에게는 흥미 있는 환자가 없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과학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이나 적어도 뭔가를 이루어 놓은 우수한 사람 말이다. 그냥 끝도 없이 독신녀들만 줄지어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결코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자문하곤 했다. 「내가 어쩌다 이런 저주를 받았을까?」 그러나 나는 끈기 있게 나아갔다.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돌봐 주며 한편으로는 내 연구를 했다."(662쪽)

 


z***a 2014.03.0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