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약국의 딸들>은 재미있다. 우선 재미가 있으니까, 손에서 책을 놓기가 힘들었사람이 허구를 가정한다는 것은 경험의 한계가 있는 것인지 역시 이 소설도 토지와 매우 비슷하다. 우선 한 가문의 몰락이 중심 제재라는 것부터 최치수나 김약국같은 조용하면서 고집센 노인, 그 주변에는 언제 어디서나 드글거리는 탐욕스러운 인간무리들, 또한 사랑에 의한 여러 엇갈린 인간관계와 그들의 인생, 다양한 부모 자식의 형태, 그 중 가장 두드러지는 유사점은 몰락을 회생시키거나 그나마 가문을 건재하도록 하는 열쇠를 쥔 마지막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과 출생에 대한 어두운 비밀과 그에 기인한 고통스럽게 붙박힌 개인의 삶이 길게 깔려있다는 점이다. 내가 박경리의 소설을 읽고 싶어하는 이유 중 가장 우선하는 것은 난무하는 사투리다. 토지를 읽을 때도 느꼈던 한 가지 의구심은 도대체 이 지방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이 소설을 무슨 맛으로 읽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진한 사투리로, 그 단어와 그 어투가 아니면 안되는 간결한, 뉘앙스를 가지는 말들의 잔치다.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하게 말하는 그들의 말들을 보면서 정말이지 나는 매 순간 그들에게 절대적으로 공감한다. 물론 그 말이 아니더라도, 박경리가 만들어내는 그 다양하고도 하나같이 다른 그 인물들은 활력을 가진다. 어느 하나 두리뭉실한 인물이 없이, 모두 또렷하다. 욕심이 있건, 포악하건, 착하건, 되바라졌건 간에 나름대로 할 말이 있는 성격의 일관성과 개성이 있다. 그 모두가 박경리의 손바닥 안에서 노니는, 제각각의 분신들이다. 박경리는 항상 아주 미약하지만 가녀리게 숨쉬는 희망을 보인다. 그는 진정한 강자에 대한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폭력이나 힘을 뛰어넘는, 조용한 인간의 힘에 굉장한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서희나 김약국의 둘째 용빈이 대표적인 인물들. 그들의 차분함과 냉정함, 이성과 사고의 힘, 그 뒤에 숨은 유약함과 애정들, 책임감. 보이지 않는 강한 힘을 은연 중에 내포하면서 이야기를 결론 짓는다. 무엇보다 박경리가 내게 읽히는 이유는, 나의 끊을 수 없는 관심사인 '가족'이다. 부모없이 자라난 김약국 주인 김성수의 성격뵤사, 그와 그의 사촌누나 연순의 애틋한 정이 첫머리부터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들. 못된 큰딸 용숙, 착하고 현명하고 당당한 용빈, 가장 극적이면서 불행한 인생을 사는 용란. 용란을 미워할 수 없게끔 다양한 장치들을 설치해놓은 박경리의 교묘한 솜씨.넷째 용옥의 죽음은 어둡다 못해, 그저 무덤덤하다. 마치 용옥 그 자신처럼. 용혜, 한실댁, 꼬장꼬장한 중구영감, 서기두, 한돌이. 캐릭터들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박경리판 리어왕처럼 보였던 어두운 스케치는 등장인물들이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신기한 옛날이야기처럼, 혹은 인생사란 그런 거지 하는 노인들의 잠언처럼, 꿈틀꿈틀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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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린 시절의 기억 하나가 새롭다. 어렸을 때 내게는 누이가 하나 있었다. 나보다 세 살이 더 많은 그 누이는 유난히도 얼굴이 희었고, 말이 별로 없었다. 내가 뭐라면 고작 억지인 듯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게 그가 보이는 성의의 전부였다.
소설 <김약국의 딸들> 표지
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집을 떠나 생활해야 했던 나는 상급생이 될 때까지도 예의 저 상실감으로 혼자 지내는 일이 많았다. 손에 잡히는대로 책을 읽는 게 버릇이었고 유일한 낙이었다. 다행히도 내가 생활하던 외가쪽의 먼 친척집에는 읽기에 부족하지 않을만큼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김약국의 딸들>을 처음 읽게된 것도 아마 그 어름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냄새를 피우면 진실성이 감소되는 거야. 냄새가 나지 않을 때 자연스러운 거지. 예수쟁이도 말야. ... '독실이라는 것은 요새 보니까 고정된 어느 형이더군. 마음이 아니라 어느 형식이더란 말이야. 특히 예수쟁이들에게 있어서는....'
김약국의 둘째 딸 용빈과 그의 사촌 오빠인 태윤이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벌이는 이들의 대화는 사실상 지금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앎과 믿음 사이의 거리에 관한 이야기에 다름아니다.
'비굴에서 비롯된 에고이즘이군. 형은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다.'
현실주의자인 형을 비겁하고 의식 없는 소시민으로 몰아붙이는 동생과, 사회 개혁론자인 그런 동생을 자가당착의 모순에 빠져 있는 이상주의자라고 비난하고 있는 형 사이의 언쟁은, 그것이 비록 다소의 거친 감은 있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핫 이슈 가운데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나 약하기로 하겠다. <덧붙이는글> 이 글은 피씨 통신 시절, 박경리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읽은 느낌을 적은 것이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이 지난 5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는 소식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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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의 바쁘고 피곤한 와중에도 출퇴근 전철에서의 몇일 동안의 단잠을 빼앗은 것이 바로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이었다. 가끔씩 여러 지면을 통해 원주에서 자연을 벗삼아 생태주의 농사일과 원숙한 집필활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노작가의 근황이 소개되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에 사놓고 먼지를 뒤집어쓴채 책장에 모셔져있는 것이 기억나 출퇴근때 읽을 요량으로 손에 잡았는데 그만 한번은 내려야할 역을 그냥 지나칠 정도로 재미있게 읽게 되었다. 그뒤 바쁜일이 어느정도 정리되어 며칠 휴가를 낼수 있을 것 같기에 모처럼 대전 부모님도 찾아 뵙고 내친김에 새로 길이 난지 한참되었다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이용해 소설의 배경인 통영까지 춘탐(春貪:봄을 탐함)여행을 모의했는데 그만 대구 지하철의 어이없는 참사소식을 접하고 계획을 잠시 뒤로 미루었다. 친인척이나 지인이 대구에 사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민이 애통해하고 슬픔에 차여있는 와중에 유유작작 여행을 간다는 것이 어쩐지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몇해전에는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고 여름휴가에 보태 광주, 보성, 벌교로 해서 지리산 청학동까지 다녀온 것처럼 내 경우는 감명깊게 읽은 책의 무대나 배경이 된곳이 자연스럽게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곤 했다.
사실 박경리 선생님의 『김약국의 딸들』은 학창시절 늘 청소년 필독 도서 목록의 맨 앞을 차지하곤 했던 책중의 하나다. 너무 제목을 많이 들어 친숙한 책이나 영화가 그러하듯 아직 읽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에 읽은적이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곤 했다. 이야기는 통영지역을 무대로 비극적인 인간군상들이 비극적인 시대상황과 맞물려 쇠락하는 모습을 참담하게 보여준다. 유교의 뒤끝자락을 붙들고 조선의 국운이 다해 쇠락의 길을 걷던 근대사에서 아들들이 아닌 김약국의 다섯 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더불어 그 비극성이 아름답게조차 느껴질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경상도 바닷가 특유의 걸쭉한 사투리와 더불어 글자 하나하나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어야 할정도로 생소한 단어들로 가득차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릴적에 할머니 머리맡에서 이야기를 듣던때처럼 책장이 어떻게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한때 그 일대에서 명문가로 명성을 날리던 김약국의 집안 식구들이 하나같이 몰락해가는 과정은 인물들의 개성과 함께 그 안타까움 때문에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더구나 악인이 아니라 선한 사람, 혹은 선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비극이라서 그런지 전달되는 그 비극성의 농도가 처연하기까지 하다.
김약국의 어머니의 불행은 김약국을 거쳐 김약국의 딸들에게까지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대물림되었다. 과부인 큰딸 용숙은 마을 의사와 불륜을 저지르고 영아살해 혐의를 받는 등 나쁜 소문의 근거지가 된다. 아들이 없는 김약국 부부에게는 아들처럼 믿음직했던 둘째딸 용빈은 반듯하고 강인한 성품에 대학교육까지 받은 교양있는 신식 여성이었으나 집안의 여러 불행한 일로 말미암아 약혼자에게 버림받고, 셋째 용란은 타고난 미모와 색정으로 온갖 추문을 일으키다 결국 아편쟁이에게 시집가 고생하다가 옛 연인이었던 한돌과 도망가려고 하다가 그만 아편에 쩔은 남편에게 들켜 한돌과 어머니는 죽게되고 용란은 끝내 실성한다. 넷째 용옥은 착하고 고운 심성으로 크고작은 집안일을 도맡아 했지만 애초부터 용란에게 맘이있던 남편에게 끝끝내 사랑받지 못하고 미친 언니와 병든 아버지를 돌보며 고생하며 살다가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고, 남편을 만나러 부산에 갔다 오는 길에 배가 침몰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한 가족의 일생이 이토록 비참하게 바뀔수 있는가 하는 것은 김약국의 딸들중 그나마 가장 온전(?)하게 남아 집안의 몰락을 끝까지 지켜봐야 한 둘째딸 용빈이가 강극에게 자신의 일를 덤덤히 읊조리던 다음 구절에서 더욱더 실감난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장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장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에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이책에는 김약국집 사람들은 물론 어떤 단 한사람도 행복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김약국집 일가친척들도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름대로 불행한 삶에 잘망하며 인생과 사상에 끊임없이 회의하며 고민과 울분을 삼키고 때로는 토해내며 평온한 일생을 살지 못한다. 그러나 이책은 그 가운데서도 실날같은 희망을 얘기하는 것 같다. 그것은 아주 미약하고 가녀린 맥박이라도 아주 죽은 것이 아니고 아직 숨쉬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것처럼 할퀴고 상처난 무력한 인간이 운명이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맞서지는 못하지만 그 인생을 한발짝 물러나서 지켜보는 미약하나마 어떤 힘을 은연중에 애써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근거없는 믿음은 마치 『토지』의 서희나 『김약국의 딸들』 의 용빈이 그러하듯 가장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삶의 모습을 갖고있는 '가족'을 이야기함으로써 그들의 유약한 애정뒤에 숨어있는 이성과 사고의 힘을 보여준다.
이책은 인간사에 대한 그 절절한 비극성으로 인해 청소년기의 여린 감수성 보다는 인생의 쓴맛을 한번쯤은 경험한 성인이 된 연후에 읽어야 비로서 그 깊은 맛과 처연함을 느낄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장 뒤쪽에 꽂아 두었다. 나중에 딸애가 커서 그 책을 읽을때면 딸애의 손을 붙잡고 미루었던 통영 여행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그때면 '조선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작가가 은연중에 자랑하는 통영의 맑고 푸른 바닷빛을 맘껏 볼수 있을것이고 김약국의 딸들만큼 성장한 딸이이가 내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장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장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에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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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소설『김약국의 딸들』이 생각날 즈음이면 가을은 벌써 생기를 잃고, 발랄함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태평한 고독 속에서 늦가을의 소슬한 추위를 맞이하곤 했다. 쇠락해가는 녹음과 서서히 스러지는 한낮의 열기를 감안하면 인생의 여름은 마냥 더딘 것이지만 박경리 작가가 이 소설에서 그려낸 삶의 궤적은 마치 순간인 양 허망한 것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박경리 작가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거의 끝나가는 무렵이었다. 어느 하숙생이 버리고 간 한 무더기의 책더미 속에는 시시껄렁한 무협지 몇 질과 박경리 작가의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이 섞여 있었고, 나는 그때 무슨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신나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시 우리집에는 읽을 만한 책이라고는 단 한 권도 없었던지라 내게는 다른 무엇보다도 반가운 것일 수밖에 없었다. 유난히 추웠던 그 해의 겨울방학에 나는 이 책을 아껴가며 야금야금 읽었었다. 마치 처음으로 받았던 종합선물세트의 과자를 빼먹듯 말이다.
그러나 『김약국의 딸들』은 어린 내가 읽고 이해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다. 그 이유는 딱 하나였지 싶다. 소설 속에서 몰락해가는 김약국 가문이 누군가에 의해 '짠'하고 다시 일어서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바로 그것이었다. 미약하게나마 김약국의 딸들 중에서는 가장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한 '용빈'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나는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었다.
그러나 몰락해가는 김약국 가문이 '용빈'에 의해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손끝 야물고 성실한 용옥마저 아이와 함께 죽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삶의 아득함을 넘어 공허감이 몰려왔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균질성에 대한 의문과 함께 앞으로의 내 삶도 혹시, 아무도 찾지 못하는 성긴 공간에 위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이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빈은 용옥이 행복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용옥이 결혼한 후 더욱 광신적으로 기독교에 기울어지는 것으로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메마른 얼굴, 빛을 잃은 눈동자, 용빈은 가엾은 동생을 위하여 남몰래 간혹 근심을 하기는 했으나, 여러 가지 격심한 사건의 연속 속에 용옥의 존재는 그다지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였다. 용빈은 그것을 생각하니 더욱 감슴이 아팠다. 그야말로 용빈의 마음은 억만 군졸이 짓밟고 지나간 형상이었다." (p.363)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김약국의 딸들』이 내게 던져준 삶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나는 그때 소설 속의 인물들이 하나같이 '운명'이라는 강력한 힘에 넋놓고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받았었다. 비록 삶을 관조하기에는 이른 나이였지만 알 수 없는 삶의 굴레에 진저리를 쳤었다. 휑한 바람이 가슴을 통과하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살아야 한다면 뭔가 합당한 이유가 필요했다. 어쩌면 내가 청소년기의 어린 나이에 철학에 빠져든 까닭도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갈 이유, 운명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바로 그것이라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의 허무와 공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실존주의 철학에 매달렸었다.
그때의 내 나이가 된 아들과 통화를 한 후, 나는 박경리의 소설『김약국의 딸들』을 다시 읽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와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운명' 앞에서 한없이 주눅들게 했던 그때의 작가는 이제 가고 없다. 잔인하리만치 삶을 속속들이 보여주었던 박경리 작가. '우리의 잔혹한 현대사는 한 작가를 키워내기 위해 그녀의 가슴에 모진 발자국을 차근차근 새겼고 그 멍자국 속에서 그녀는 문학이라는 푸른 생명의 나무를 키워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던 공지영 작가의 추모사가 생각난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 겠다.'고 노래했던 폴 발레리의 시를 떠올리게 하는 늦가을의 하루가 또 고요히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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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제가 학교에 다닐 땐 술자리에서 꼭 음담패설을 일삼는 남자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가끔씩은 '책'도 안주거리가 되곤 했는데요... 예를 들자면 <태백산맥>의 몇 째권이 엄청 야하더라, 뭐 이런 식의 이야기죠.
요즘 같으면 한 마디했을텐데, 그 때는 너무 순진했던 건지 착했던 건지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만 그 선배들을 한심하게 여겼던 생각이 납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작품을 읽었으면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저 수준일까?' 뭐 그런 식으로 말이죠. 아, 서론이 길었네요. <김약국의 딸들>은 장편소설입니다만 박경리 선생님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토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어서 그런지 장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토지>를 읽기가 엄두가 나지 않으신 분들이나 <토지>를 읽기 전 워밍업이 필요한 분들이라면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맛보실 수 있는 좋은 작품이 바로 <김약국의 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사실 두 소설의 등장 인물들 사이에는 약간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과묵하고 고지식한 최치수와 김약국이 그러하고(이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점도 유사합니다), 서희와 용빈이의 캐릭터 역시 유사합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악역'도 있기 마련인 것도 그러하고 말이죠. 조정래 선생님의 작품을 읽다 보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정겹게 느껴지고,
<김약국의 딸들>은 1800년대 후반부터 일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사실 역사적인 사실이나 문제들이 소설의 전면에 부각되지는 않습니다. 고작 용빈이가 경찰서에 잡혀 들어갔고, 그래서 김약국과 한실댁이 걱정한다는 정도가 묘사될 정도이죠.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약국의 딸들>이 가지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면, 각각의 등장 인물들이 뚜렷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왜 그러한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는지 나름의 개연성을 잘 부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김약국의 다섯 딸로 나오는 용숙, 용빈, 용란, 용옥, 용혜 역시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각각 매우 성격이 다릅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징하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박경리씨의 묘사는 매우 사실적이고 적나라합니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용숙이가 그렇고, 매우 개성이 강해서 늘 부모의 애물단지 노릇만 하다가 결국엔 미치고 마는 용란이가 그러하며, 전형적인 한국의 여성상이라고 할 수 있는, 한없이 착하고 순종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우하게 최후를 마감할 수밖에 없던 용옥이 그러합니다. 더군다나 딸만 낳아 맘고생이 많았고, 풍파 많은 삶을 살았던 한실댁은 결국 사위가 휘두른 도끼에 맞아 죽고 맙니다. 이러한 묘사들만 보자면 '어설픈' 페미니스트들의 경우 박경리 선생님을 비난하고 나설 정도입니다. '아니 어떻게 여성 작가가 여성들에 대한 묘사를 이렇게 밖에 못해?'하고 말이죠. 딸만 줄줄이 낳은 어머니는 비참하게 죽고, 그 딸들 역시 결코 행복하게 살지 못하니깐 말이죠. '이런 시대에 뒤떨어진 구닥다리 같으니라구!' 분개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나,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토지>의 주인공을 서희라고 볼 수 있듯이, <김약국의 딸들>의 주인공을 용빈이라고 본다면, 오히려 <김약국의 딸들>이야 말로 여성만이 희망이다, 라는 메세지를 주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토지>에서 서희가 몰락한 집안을 되살리기 위한 강한 의지를 가진 여성상으로 등장한다면, <김약국의 딸들>의 용빈 역시 집안의 몰락이나 부모의 죽음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같은 소설이라고 해도, 언제 읽느냐에 따라 그 느낌이 사뭇 달라지게 마련인데요... 스무 살에 읽었을 때와는 달리, 30대가 되어 <김약국의 딸들>을 읽으면서는 '용빈'에 감정 이입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때는 단지 '강한 여인'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용빈이의 감정 상태가 어땠을지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분명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련과 환난이었을테고, 그 와중에 사랑하던 사람마저 떠난 최악의 상황... 아마도 혼자 남모르게 눈물 지었을 때도 많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용란이나 용숙이라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구요. 대신 한실댁의 한많은 삶은, 이전보다 훨씬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아무튼... 너무 징글징글 맞도록 비극적인 이야기이고, 그래서 어찌 보면 이런 이야기들을 서슴 없이 할 수 있는 '박경리'라는 한 인간에 대해 존경스러움과 함께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생은 '통영 앞바다'처럼 때로는 희극의 모습으로, 때로는 비극의 모습으로 다가오겠지만, 그 두 모습이 모두 바다인 것처럼, 그 두 가지 모습 다 인생으로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거... 그것은 아마도 '나이'가 인간에게 주는 겸허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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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부터 문학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요즘 읽는 책들이 어떤 지침서들이어서, 나는 무척 매말랐고, 그리고, 난 요즘 너무 외로웠다. 사람이, 사람사는 이야기가 너무나 그리웠다. 박경리님은 토지에 빠졌었던 나는 물론 그 어느 것이나 박경리님의 소설이라면 환영할 판이었다. 집에서 쉬는 조용한 시간에 정말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여러인생을 사는 느낌을 들어서 좋았다. 내가 굶주렸던 사람사는 이야기다. 그런데, 좀 슬펐다. 첫째 용숙의 삶은 참 안타깝다. 심성이 그래서 좀 그렇고, 둘째 용빈은 기상이 좋고, 영민하고 성격좋아서 나는 내심 이 사람은 살 겠거니 했다. 셋째 용란은 예쁘고 말괄량이다. 그래도 잘 살 줄 알았다. 넷째는 심성이 고마워 나중에 잘 살줄 알았다. 다섯째는 용혜다. 마지막 날엔 김약국이 불쌍하고, 그집 마님 한실댁이 불쌍하고... 그리고 결국은 잘살거라고 생각했던 모두 불행해서 나는 슬펐다. 뒤부분에 용빈이 4째 용옥이 죽었단 소식을 듣고 울다가 집에 찾아온 이에게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저의 아버지는 고아로 자라셨어요. 할머니는 자살을 하고 할아버지는 살인을 하고, 그리고 어디서 돌아갔는지 아무도 몰라요. 아버지는 딸을 다섯 두셨어요. 큰딸은 과부, 그리고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서까지 다녀왔어요. 저는 노처녀구요. 다음 동생이 발광했어요. 집에서 키운 머슴을 사랑했죠. 그것은 허용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부터가 반대했으니까요. 그는 처녀가 아니라는 험 때문에 아편장이 부자 아들에게 시집을 갔어요. 결국 그 아편장이 남편은 어머니와 그 머슴을 도끼로 찍었습니다. 그 가엾은 동생은 미치광이가 됐죠. 다음 동생이 이번에 죽은 거에요. 오늘 아침에 그 편지를 받았습니다.' 난 이 대목을 읽을 때 용빈 또한 슬픈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글 이전엔 그래도 용빈이라도 잘 살겠거니 했다. 용빈이 자신을 노처녀라고 했을때 난 뭉클 가슴이 아팠다. 용빈이 노쳐녀가 슬픔이 것처럼 나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용옥의 죽음은 정말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심성이 좋은 사람도 비극적인 삶을 산다는게... 나는 이 책을 마치고 치과를 가는 동안 걸을 때 마음속으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화야 [김약국의 딸들]이란 박경리의 소설을 읽었는데...(용빈의 자신의 집안 내력 이야기..., 줄거리 내용) ..... 왜 착한 사람은 오래 못사냐? 왜 착한 사람은 잘 못사냐? 인생이 참 그지같다. 넌 너무 착하게 살지 말아라. 내가 본 착한 사람은 다 빨리 죽더라.' 난 그렇게 화가 났다. 그리고 슬펐다. 둘째 외삼촌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께서 '불쌍한 우리 상진이 평생 일만하다가... '하시며 울었었다. 외삼촌 배운것 많지 않고, 시골에서 외할아버지 큰 외삼촌 도와서 열심히 일하고 착한 외삼촌, 배운것 많지 않고, 못생긴 외모때문에 장가도 못가고...그렇게 일만하다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는데, 주사 쇼크사로 돌아가셨다. 갑자기. 착한 사람은 다 그러는가? 그거 생각하면 정말 개떡같다. 비극이란.. 워쩌고 저쩌고 하는 글이 소설 뒷부분에 쓰여있었다. 카타르시스 동감한다. 나도 김약국이 자신의 삶이 온전치 못하는 것을 것을 너무 늦께 깨달을 것을 후회했을 때 슬퍼서 울며, 정화되었고, 착하고 욕심없는 한실댁이 비극적인 생을 마감해서 당황하면서도 우리의 할머니나 어머니 인생같아서 울었고, 그리고 김약국의 딸들의 생이 내 그 무엇들과 겹쳐지면서 울었다. 소설을 통해서 여러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기도 하다. 인생에 대해서 이것저것 생각하게 하지만, 읽는 동안 소설 속 주인공 하나하나가 되어 살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생은 비극이 아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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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속이 쑥대밭일때, 의지 가지 붙들고 숨고 싶을때 찾는 것은 유장한 서사다. 이제 막 동이 튼 적요한 일요일 아침. 블라인드를 열어 탐스런 함박눈을 베란다 창 가득히 들여놓고 김약국의 딸들을 읽었다. 오전 10시가 넘자 복잡한 인연에 대한 풀기힘든 통화가 끼어들긴 했지만 몰입의 즐거움을 방해하진 못했다.
중학교때 이 책을 쥐었을땐 이렇게 힘있고 애잔하고 펄떡이는 소설인줄 몰랐다. 부친 살았을적 김약국의 딸이 박경리 소설 중 최고라며 몇번 완곡하게 보라고 보라고 그러셨다.
소설은 그 정도 써야 소설이라고.
긴 서사와 묘사가 없어도, 하나도 중첩되고 과장됨없이 그럴연한, 시퍼렇게 숨죽지않는 캐릭터들. 다섯 딸은 한 인간의 내면에 또아리튼 다섯가지 얼굴일뿐. 별개가 아니다. 애증. 이기심. 시기. 정염. 외로움. 모성. 강결한 힘. 연민. 순연함. 잡생각 끼어들 여지없는 완결한 서사 속으로 곤두박질 치게 해준 박경리할머니에게 감사를 올린다.
공격하는 바람을 두 팔 벌려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쓰다듬어 다시 보내는 나무처럼. 살아남아 또 다른 운명 속에 던져질 딸 둘을 태운 윤선이 통영항구를 떠나는 마지막 장면처럼. 비극도 인과도 부조리도 순연하게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받아들임이 힘이고 내면화가 강성화임을 이제 머리가 아닌 몸으로 알아갔으면 좋겠다. [인상깊은구절] "진주 병원에 가보라구?" 무슨 희망을 가지고 그 말을 되씹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김약국은 굴욕을 느끼는 것이다.자신의 허한 곳을 찔린 아픔이었다. 김약국은 초조하고 삶에 대한 애착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김약국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 비참한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는 않다. 아픈 상처는 혼자서 남몰래 간직하고 싶은 것이다. 남의 설움을 따뜻하게 만져주지 못함과 마찬가지로 자기의 고통도 혼자만 지녀야한다는 일종의 고집이다. 마누라. 딸들.사위.그리고 살을 섞고 사는 소청이까지도 먼 타인으로 느껴온 김약국이었다. 흔히 주색에 빠지고 방탕함으로써 인생을 죄되게 보낸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런 탕아의 좌절 이상으로 죄악적인, 타인에 대한 무관심, 자기를 위한 성문을 굳게 지켜온 이기적인 김약국이 지금 자기의 육체가 허물어져가는 마당에서 어떤 마음의 반려자를 구할 수 있겠는가? 그가 애써 지켜온 고독, 그 고독을 즐기기조차 했던 지난날에 비해 너무나 비참하게 그 고독을 무서워하고있는 것이다. 표연히 갈길을 가야하는 마음의 준비는 없었다. (....) "불쌍한 것들..." 요즘에 와서 곧잘 입 밖에 나오는 말이다. 이미 무의미하게된 애정이다. (....)사랑에 도사리고 앉았던 차가운 자신의 모습만이 가족들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란 생각은 그를 더없이 슬프게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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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끼는 책이 몇권 있는데,누가 고르라고 한다면 이 책은 빠지지 않고 그 목록에 드는 책일 것이다. 굉장히 두꺼운 장편임에도 불구하고 한몫에 읽을 수 밖에 없는 흡입력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등장인물의 선명한 캐릭터... 무릇 소설가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표지 한귀퉁이에 실린 작가의 사진속에는 흰머리와 안경이 눈에 띄는데 여늬 할머니들과는 그 분위기부터 다른 듯하다.존경하는 작가라서 그런가?
김약국의 다섯딸들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심상치가 않다가 마지막까지 너무 재미나다. 용숙은 사리사욕과 재물로 표현되는 이기적인 인간, 용빈은 이성적이고 지성으로 뭉친 객관적인 존재, 용란은 가장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미인(머리가 좀 모자라는 용란의 캐릭터는 백년동안의 고독에 비슷한 유형이 있던 걸로 기억된다), 용옥은 전형적인 현모양처형,용혜는 철부지....이기적 인간은 수모를 좀 겪다가 끝까지 자기가 어떤 인간이지를 깨닫지 못할 정도로 무지한다. 용빈은 외로워야 하고, 용란은 정신착란으로 불행한지도 모르고,용옥은 죽고(읽고 있는 내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한껏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처럼 바닷바람이 얼굴에 와 닿는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친정처럼 찾아와서 진심으로 일을 거들어주는 여문이를 상대로 용숙이 지껄이고 있었다. 벌써 용숙이네 계집아이가 와서 몇 번이나 살림을 여다 날랐건만 용숙은 집 안팎을 뒤지며 눈이 가는 것을 골라낸다. 용빈은 용숙이 살림을 들어내거나 말거나 전혀 무관심이다. 싫다고 펄펄뛰는 것을 이 년이라는 기한부로 용란을 떠맡겼으니, 용숙이 남은 살림을 좌우하는 것은 당연하였던 것이다. |
| 비극은 언제나 희극보다 더 강한 흡인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삶의 잔인한 속성에 언제나 한숨 짓고, 우울해지면서도 김약국의 딸들을 몇 번이고 되 읽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이리라. 아니, 몇몇의 다른 이유들도 있다. 조선의 나폴리라고 한다던가. 통영이 가진 아름다움을 맛깔나게 술술 펼치는 초반부의 입담과 끝까지 매력을 잃지 않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그 특유의 사투리. 한 때 아리랑에서의 전라도 사투리에 홀딱 반하여 경상도 사투리란 투박하고 거칠다고만 생각해왔던 나에게, 말 끝마다 감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한 통영의 사투리는 더할나위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유교의 뒤끝자락, 근대사에서 아들들이 아닌 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 딸들이 모두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수난사는 이례적이라고 할 수 는 없다. 그렇지만 이례성이 반감되었다고 비범함마져 반감되는 것은 아니다. 끝간데 없이 이어지고 겹쳐지는 비극이 작위적이라는 느낌 하나 없이 독자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다. 그 비극의 절정은 내가 볼 때는 용란보다는 용옥이다.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 지은 죄 없이 벌을 짊어지던 용옥의 죽음은 슬픔보다도 분노를 자아낸다. 3대에 걸친 긴 가정사가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는 분량에 집약되어 있음에도 이 소설에서는 빈틈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작가의 경륜이라는 것이 우습게 볼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2~3년이 지나면 나는 다시 한 번 김약국의 딸들을 뽑아들고 읽게 될 것이다. 그러는 이유는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비극이 희극보다 흡인력이 강하다는 말을 다시 되풀이할 수 밖에. |
| 김약국의 여러 딸들의 인생의 파란만장한 이야기의 소설이다....끊임없이 써내려져 가는 이야기들은 지루함을 느끼는 것조차 틈을 주지 않는다. 각자 너무나 판이하게 다른 인생여정을 살아가는 딸들 을 보면서 독자는 그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수 도 있을 것이다. 이야기의 내용이 다양하고 새로운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지기 때문에 이 책은 정말 하루에 읽을려면 다 읽을 수 있다. 한번쯤 읽어볼만 하다.딸들의 사랑에도 큰 흥미를 느낄수 있을 것이다. 딸들의 각기다른 사랑.과부의 사랑..바람나서 도망가는 딸...등등..... 다양한 설정속에 자신의 대치시켜 볼수 있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