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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 음식에 관한 쉬운 이야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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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상당히 거창합니다. 공자의 식탁....처음에는 철학책같아 보이지만...전체적으로 책 내용은 그냥 부담없이 읽은만한 수준입니다...작가가 요리관련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두 아니고 특히 중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오랫동안 있어서 관점은 우리와 같은 외국인의 시점으로 중국음식에 대해서 풀어서 써서 중국음식은 위대하다라는 식의 그런 내용은 없으니까 부담없이 보실수 있을겁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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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상당히 거창합니다. 공자의 식탁....처음에는 철학책같아 보이지만...전체적으로 책 내용은 그냥 부담없이 읽은만한 수준입니다...작가가 요리관련 부분에 종사하는 사람두 아니고 특히 중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오랫동안 있어서 관점은 우리와 같은 외국인의 시점으로 중국음식에 대해서 풀어서 써서 중국음식은 위대하다라는 식의 그런 내용은 없으니까 부담없이 보실수 있을겁니다...보면 시대별로 그 시대의 먹거리상을 순차적으로 보여줍니다...우리나라도 이런류의 책이 있었으면 좋겠네요...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아 근데 책에 보면 한문을 풀어놓은 글들이 있는데 글외곽에 따로 표시되있어서 그 주석보고 책보고 하는데 상당히 불편하더군요...왠지 아쉬운점이었습니다..그로인해 주석을 잘 안보게 되었거든요.
p***y 2002.11.02.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내가 쓴 요약과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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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식탁’은 4000여년에 이르는 중국 음식의 역사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역사 만큼이나 내용이 방대할 중국 음식을 저자가 어떻게 풀어갈지 상당히 궁금하였다. 공자의 식탁이라는 제목은 단지 제1장의 내용일 뿐이다. 제1장에서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쌀의 경작이 보편화하지 못해 공자조차 겨우 조밥을, 그것도 손으로 집어 먹었다는 재미난 사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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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식탁’은 4000여년에 이르는 중국 음식의 역사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중국의 역사 만큼이나 내용이 방대할 중국 음식을 저자가 어떻게 풀어갈지 상당히 궁금하였다. 공자의 식탁이라는 제목은 단지 제1장의 내용일 뿐이다. 제1장에서는 한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쌀의 경작이 보편화하지 못해 공자조차 겨우 조밥을, 그것도 손으로 집어 먹었다는 재미난 사실을 소개한다. 이어서 한반도에서는 밥은 수저로 먹고 반찬은 젓가락을 사용하였음을 비교 설명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면류가 일상적으로 먹게 된 이유가 서술되는데, 외식업이 발달하고 온실재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제3장에서는 후빙에 대해 서술하며 분식의 주식화가 소개된다. 제4장은 가장 흥미로운 장으로 한국에서 지금도 공공연히 먹고 있는 개고기식용문화가 개를 사랑한 북방민족의 남하로 중국에서 사라지게 되었다는 내용이 서술된다. 제 5장에서는 주요한 식용고기였던 돼지고기가 흉노족과 거란의 영향으로 양고기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내용이 담겨있다. 제 6장의 젓가락이 세로로 놓이고 한국과 달리 숟가락이 쓰이지 않는 식습관의 역사를 알게 되면서 개고기와 달리 남방의 문화가 북방으로 전파되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 장에서 상어지느러미요리나 북경오리요리가 겨우 4백년 밖에 안된 요리라는 것을 알게 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와 같이 이 책은 단순한 사실의 평면적인 나열이 아니라, 각 시대 별로 관심을 끄는 핵심적인 주제를 잡아 변화와 그 동인을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이 책은 중국음식문화의 변천을 각 시대별로 나열하고 있다. 시대별로 이민족과의 교류, 새로운 음식의 등장, 당시 유행하던 식문화에 대해 다양한 문헌과 자료로 설명한다. 특히 일화라든가 문헌자료의 인용은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또한 역사적인 기록에는 주로 왕실 음식이 기술되어 있기 마련인데도 각 시대별로 일반 서민의 식생활을 유추해 보고자 하는 노력은 책읽기를 딱딱하지 않게 만들어 마지막까지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사라져버렸음에도 구체적인 요리법을 서술하는 부분에서는 이해를 떠나 신선하게 다가왔지만 지나치게 생소한 요리이름과 요리법이 많이 등장해 산만하기도 하였다. 또한 중국사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전반적인 내용이해가 안될 수도 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4천년이나 되는 긴 역사 속에서 왕조가 바뀌는 각 시대마다 서로 다른 문화가 교류되고 정착되며, 그 속에서 요리와 식습관의 자연스러운 변화까지를 모두 포괄한 심도 깊은 책이었다. 거시적이면서 미시적인 부분을 모두 챙긴 책이라 할 수 있었다. 비교문화사학자인 저자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한국의 음식문화와 역사를 떠올리며 자연스럽게 비교하며 읽게 되었다. 또한 저자 본인이 일본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인지 일본과의 비교를 논하는 부분에서는 동아시아 삼국의 비슷하지만 다른 문화의 차이를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특히 중국인으로써 중국요리나 문화가 우월하다는 식의 논조가 전혀 없었기에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의 중국음식점에서 익숙한 일품 요리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중국음식이 한국화 했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비로소 저자가 중국요리가 아닌 중화요리라는 표현이 맞다고 주장한 까닭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음식문화가 언어와 같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상깊은구절]
들어가며 중화요리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는 중국 문화의 특성을 대변한다. 과거의 오랜 역사 속에서 이민족의 문화를 흡수하며 다양하게 변모하여 오늘날의 중화요리에 이르게 되었으며, 서역과의 교역, 새로운 조미료의 발명 등으로 중화요리는 4천년에 걸쳐 시대별로 변화해왔다. 이는 중화요리에 대한 정형화된 틀을 생각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즉, 천재지변, 왕조의 교체, 민족문화의 충돌과 융합이라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조리법 및 식사예절 등이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해온 것이 중화요리의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중화요리는 지구상의 어느 나라에서도 발견된다고 한다. 중화요리는 시대별로 변화해왔으나, 보편적 음식문화로 세계 곳곳에 퍼져있기에 중화요리는 ‘잡종의 음식문화’라고 달리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장 공자의 식탁 – 춘추전국시대 1. 2500년 전의 주식 중국 문명의 원형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춘추전국시대에는 식량으로 기장, 벼, 조, 콩 등을 먹었는데, 그 중 콩은 흉작 때나 하층민들이 먹었으며 기장은 손님접대에 내놓았고 쌀은 사치스런 음식물이었다. 사대부들이 주로 먹었던 음식은 조와 기장이었다. 공자 또한 사대부들의 주식인 기장밥을 먹었다. 당시에는 밥을 지을 때 끊여낸 후 시루에 찌는 취사법(라오판)을 이용하였다. 2. 공자는 무슨 요리를 먹었을까. 고기는 의례(儀禮)적인 식사에 쓰인 말, 소, 양, 닭, 개, 돼지 – 6종이 쓰였는데 주로 돼지고기를 이용하였다. 잉어를 제외하고는 생선은 어로, 운반 기술의 한계로 그다지 주요하게 먹지 않았으며 당시 최고 요리는 역시 고기요리 였다. 채소는 적어도 20종을 먹었으나 지금은 먹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3. 춘추시대의 조리법 당시는 생고기를 육회로 해서 먹었으나, 현재 중국인은 거의 먹지 않는다. 중국의 가장 오래된 조리법의 하나는 삶기이고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요리는 국이다. 흔히 쓰인 조리법은 삶기와 굽기였지만 현대 중국에서는 구운 생선을 거의 먹지 않는다. 채소도 국이 아니면 데치거나 절여서 먹었다. 4. 식습관은 제사에서 나온다. 중화요리는 보통 동물의 원형을 그대로 살려 요리한다. 반면 일본요리는 동물의 원래 모습이 남지 않도록 조리한다. 동물의 내장을 먹는 것도 중화요리의 특징이다. 반면 일본인은 제사 때 내장을 전혀 쓰지 않는다. 신과 조상에 올리는 음식은 통째로 올렸는데, 제사 후 제사 지낸 사람들이 나눠먹었다. 따라서 다양한 조리법은 제사 음식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5. 공자의 식탁예절 춘추전국 시대에는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았고, 요리를 집을 때만 젓가락을 사용했다. 남과 함께 밥을 먹을 때 같은 밥그릇의 밥을 손가락으로 집어먹었다. 밥은 같은 식기에 수북이 쌓아놓고 먹는 경우가 있었지만, 반찬은 지금의 일본처럼 한 사람씩 나누어 따로 놓고 먹었다. 당시 상류계층은 하루 세끼를 먹었으며, 일반 백성은 두 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제 2장 국수의 연륜 – 한대 1. 낟알 그대로 조리해 먹던 보리 황허강 유역에 문자가 탄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중국은 곡물의 낟알을 그대로 먹는 입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보리 조차 입식으로 먹었지만 주식은 조와 기장류였다. 조는 생육시기가 3개월로 짧고 영양가가 풍부해 주식으로 먹었지만 쌀은 보편적이지 못했다. 최근 고고학의 발견으로 양쯔강 유역(남방)에서 쌀이 주식이었음이 밝혀지기도 하였지만 이 역시 낟알 그대로 조리해 먹었다. 2. 분식의 등장 지금 밀가루를 반죽해 구워만든 납작한 빵이란 의미의 빙은 한나라 시대부터 등장하였는데 이 때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물을 지칭하였다. 장건이 서역에서 밀과 분식을 들여와 짧은 기간 분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후한 후기부터 밀이 보리의 자리를 차지하여 주요작물이 되어 민간에서도 일상적으로 먹게 된다. 3. 한나라 시절의 식생활 철기의 사용으로 한나라 때 중국문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한다. 특히 중원지역에서는 우물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시작한다. 남방에서는 이미 벼농사가 성행해 쌀밥이 널리 퍼져있었다 또한 한나라 때는 식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식습관도 크게 바뀌어 부드러운 음식(고기)을 찾고, 온실재배가 시작되며, 생활수준이 높아져 계층 간 음식물 격차가 줄어들고 외식업이 시작된다. 제 3장 식탁의 빅뱅 – 위진·육조시대 1. 후빙의 변천 모양이 피자와 비슷한 빙(빵)은 본래 서역에서 전해진 음식물이라고 제2장에서 밝혔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후빙으로 불리는 얇고 둥근빵이다. 일찍이 후빙은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해 현대의 즈마사오빙의 원형이 된다. 후한 말기 후빙을 먹는 풍습은 널리 퍼져 벼농사를 짓는 지역까지 전해져 당나라 시대에는 보편적인 백성의 음식이 된다. 2. 분식이 주식으로 현대 중국에서는 북방의 주식은 밀가루고 남방의 주식은 쌀이다. 그런데 밀가루 분식은 언제 중원 지역에 정착했을까. ‘진서’에 따르면 3세기 발효시킨 빵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미 발효기술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밀가루 식품이 진나라 때 제사에 사용되었다는 점으로 미뤄보아 발효된 밀가루 음식은 위진 시대에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빙류의 기록들(제민요술, 슈유슈 등)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3. 유목민족에게서 전해진 요리들 ‘제민요술’에 기록된 후파오러우라는 양고기 찜구이는 유목민족에게서 전해진 음식이나 현재는 조리법이 전해지지 않는다. 또한 이민족에게서 전해진 새로운 음식에는 양고기국인 후겅이 있었다. 창주는 사슴고기와 돼지고기로 끊인 오랑캐국으로 당시 사람들에게 사치의 상징이었다. 식사법으로 전해진 후판은 얇게 구운 빵에 여러 가지를 싸서 먹었는데, 이것은 지금도 춘빙, 라오빙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소, 양의 통구이였던 모즈도 맥족에게서 전래되어 당시 크게 유행하였으나 지금은 기록이 없어 만드는 방법을 알 수 없다. 이와 같이 이민족의 식문화는 긴 세월에 걸쳐 남아있거나 흡수되거나 변화, 도태한다. 제 4장 개고기, 먹어야 하나 먹지 말아야 하나 – 수·당시대 1. 개고기와 동서교류 개는 신석기 시대부터 기른 가축으로 옛날부터 개고기를 먹는 관습이 있었다. 또한 제사 음식으로 돼지고기만큼 많이 쓰였다는 사실에서 개고기가 보편적인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육조시대의 ‘술이기’에는 개를 먹어서는 안된다는 새로운 식습관이 등장한다. 이것은 진이 멸망하자 북위를 세운 선비족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유목민족인 선비족은 수렵용인 개를 관습적으로 먹지 않았다. 선비족 뿐만 아니라 돌궐족 등 다른 수렵민족들도 개를 먹는 한족의 풍습은 부도덕적인 일로 여겼다. 그들이 한족 문화권으로 이주해 들어오면서 개를 좋아하는 풍습이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왔다. 개고기 요리문화는 중심에서 점점 추방당해 전란 속에 남으로 쫓겨간 한족에 의해 광둥땅에만 정착하게 된다. 송대에 이르면 개고기를 먹는 습속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된다. 게다가 유목민족인 몽골족의 왕국, 원나라에 이르면 이러한 풍습이 더욱 확고해진다. 그 뒤 명나라의 주역은 한족이었으나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부활하지 않고, 광둥지역을 제외하고는 개고기는 비천한 음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청나라 시대에도 약용을 제외하면 여전히 거지들의 음식으로만 남게 된다. 2. 비단길을 타고 들어온 향신료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후추는 중국이 원산지가 아니다. 후추는 육조시대 때 서역에서 들어와 당나라 때까지는 양고기의 밑간 정도로만 쓰였지만 현대 중국요리에서는 보편적인 재료이다. 후추와 나란히 필발이라는 후추과의 향신료가 있었다. 페르시아산이라고 써있는 ‘사서’와 달리 후추와 필발은 인도가 원산지이고 페르시아를 경유해 중국에 경유되었다. ‘제민요술’에 의하면 후추 이상으로 많이 사용되는 향신료, 귤껍질은 비린내를 없애는데 쓰였다. 현재는 외래종과 중국 원산, 2종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던 것이 완전히 중국화 되었다. 중화요리에 빠지지 않는 마늘은 육조시대에 서역에서 들여왔다. 처음에는 외래의 조미료로 쓰이던 것이 점점 예로부터 먹어왔던 음식에 쓰이게 된다. 3. 서역에서 들어온 음식물 ‘구당서’에 나오는 호식의 의미는 당 초기의 용법으로, 주로 돌궐 등의 북방민족의 요리란 의미와 개원이후의 페르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음식류라는 의미 2가지로 해석된다. ‘제민요술’의 후빙과 사오빙의 차이는 후빙은 후빙루의 안쪽에 붙여서 직접 불에 굽지만, 사오빙은 평평한 냄비에 올려놓고 굽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비뤄는 여러 재료를 함께 넣고 찐 밥으로 페르시아에서 당나라로 전해진 좌판이라고 보면 된다. 호두는 한나라 때 장건이 서역에서 들여왔다고 하나, 사실은 육조시대부터 전래되었다. 호두는 과자, 신선술로 주로 쓰였다. 아몬드와 피스타치오는 각각 ‘편도’, ‘유양잡조’에 기록되어 있으나 근대 이전 중국에 널리 퍼지지 않는다. 그 외 오이와 시금치와 같은 채소들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나 대중요리나 가정요리법은 거의 기록이 없다. 제5장 양고기 대 돼지고기 1. 돼지고기의 영욕 북송의 도시생활을 기록한 ‘동경몽화록’에는 70여가지의 요리법 중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관련된 요리가 없다. 그것은 송나라의 돼지고기 값이 아주 쌌고 사람들이 질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부터 많이 먹었던 돼지고기가 북송시대부터 양고기에 밀리게 된다. 그런 식습관은 유목민족인 흉노족이 기원전 1-2세기 남하를 하면서 시작된다. 게다가 11-12세기 요나라의 수립으로 거란족은 중원에 양고기 식습관을 전파하게 된다. 요나라가 망한 뒤에도 한족으로 살게 된 거란족들은 양고기 식습관을 유지해, 금나라로 등장한 여진족들도 양고기만 먹게 된다. 한편 금에 패한 송도 양고기 식습관과 함께 남하한다. 2. 중화요리는 기름기 많고 느끼하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기름이 많이 쓰이는 중화요리는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당나라 때에는 생식이 일반적인 식습관으로 생선과 채소를 날로 먹었다. 그 후 북송시대에 가장 오래된 볶음요리의 기록이 보이며, 송이 금나라에 패해 남하하면서 점차 볶음요리를 먹게 된다. 물론 지금의 볶음요리와 달리 물에 데친 후 기름으로 볶든지 또는 기름이 스며들게 하기 위한 가공법으로 중간 과정일 뿐이었다. 송말기에서 원나라로 가면서 점차 육류를 가공하는 볶음 조리법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의 중화요리는 담백하고 기름기가 적은 음식이 주를 이뤘다. 4. 문인계층의 입맛 송나라의 대표적인 음식을 찾다보면 ‘산가청공’에 나오는 나물무침이 20종 이상 나온다. 미나리, 상추, 부추, 죽순 등 예전에는 무쳐먹었으나 지금은 기름을 쓰지 않는 나물무침이 없다. 그 다음으로 맑은 국-장국이 많이 등장한다. 기름을 거의 첨가하지 않고 야채만으로 장국을 끊여먹었으며 생강이 양념으로 반드시 들어갔다. 또한 꽃과 잎, 우엉도 먹었으나 현대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제6장 젓가락이여, 너마저 – 송·원 시대 1. 젖가락을 왜 세로로 놓는가 벽화나 문헌조사에 따르면 고대에는 중국도 젖가락을 가로로 놓았다. 그러나 송대 이후에는 세로로 놓게 된다. 양장거는 명 태조가 이 습관을 싫어해 바뀌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나 그렇지 않다. 사실은 당대에서 송대로 돗자리, 다리 짧은 의자에서 의자와 테이블로 풍습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습은 당와 송 사이 5대10국 시대 때 북방의 기마민족에게서 들어온 나이프 문화 때문에 그렇다. 나이프가 먹는 사람의 반대쪽으로 향하도록 하면서 젓가락도 그렇게 놓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젓가락이 굴러 떨어지지 않도록 다리가 높은 테이블을 사용하게 된 것이다. 당대에는 젓가락과 숟가락이 반반씩 쓰였으나 현대 중국에서는 젓가락을 주로 사용한다. 북송 때 확산된 남방요리 – 면류 음식으로 젓가락은 서서히 주식에 사용되게 된다. 또한 명 왕조의 성립으로 수도가 베이징으로 옯겨지면서 젓가락을 많이 사용하는 남방 문화가 북방으로 확산된다. 2. 원대의 요리와 조리법 원 왕조의 만찬에는 양고기 요리가 주를 이루었다. 점점 소수 민족의 유입으로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요리법이 도입되어 조리법이 한층 다양해진다. 특히 이슬람과 여진의 영향으로 회회식품과 여직식품이 등장한다. 3. 춘쥐안의 내력 춘쥐안(스프링롤)이란 이름은 중국에서 사용된지 겨우 백년이지만 실제로는 껍질 만드는 법만 다른 러우센쥐안수와 러우센젠빙은 청대부터 있었다. 원대에도 소를 견과류나 과일류로 만든 것이 존재하였다. 이러한 춘쥐안의 원형은 원나라 때의 이슬람 식품(회회식품)이다. 제7장 아아, 상어지느러미 – 명·청시대 1. 진미가 발견되기까지 상어지느러미 수프는 본래 아무런 맛도 없는 상어지느러미를 이용한 수프인데 왜 그렇게 진미로 환대를 받을까. 그것은 지느러미의 독특한 감촉와 육수의 진한 맛 때문이다. 이러한 상어지느러미요리는 명나라 황제도 몰랐던 요리로 고작 해야 4백년 밖에 안된 요리다. 17세기 ‘식헌홍비’에 최초로 등장하여 18세기 중엽부터 반세기 사이 급속히 보급된다. 그러나 해산물을 싫어한 만주족의 식습관으로 청초기에는 궁정에서 등장하지 않던 상어지느러미요리는 중기 이후 연회의 주요리가 된다. 2. 고추가 맛의 혁명을 일으키다. 고추는 중국원산이 아니라 명나라 말기에 전래된 식물이다. 중화요리에 사용된지 고작 300년 정도 된 고추 이전에는 겨자로 매운 음식을 만들었다. 19세기 ‘수식거음식보’에 처음 등장한 고추는 지역마다 이름이 달랐다고 한다. 19세기부터 서남지역 일반백성들 사이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19세기 말 북방의 황허강 유역까지 퍼져나갔으나, 아직 정식 연회석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20세기에 들어서도 담백한 요리라야 모두가 즐길 수 있었다. 마포더우푸와 같이 고추는 1백년 전에야 대중요리로 자리잡게 된다. 중국 요리에서 유명한 베이징카오야의 원형은 남송부터 시작하여 베이징오리의 사육은 명대부터 시작하였으며, 지금과 같은 전문점은 1869년 시작하였다. 그 밖에 전복, 피단(첸차이의 대표격인 피단), 해파리의 식용도 청대 이후에야 자리잡게 된다.
h******t 2006.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중국의 음식문화 엿보기
"중국의 음식문화 엿보기" 내용보기
음식이란 건 다른 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하다고 한다. 다른 문화는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반면, 음식이란 자신의 혀에 맞으면 되니깐.. 그리고 음식은 다른 문화에 비해 자기화하는 정도도 크다. 같은 재료를 써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만 하면 되는 거니깐..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 내 다리 있는 건 책상 빼고 다 요리한다"라는 현대 중국 음식의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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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란 건 다른 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하다고 한다. 다른 문화는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반면, 음식이란 자신의 혀에 맞으면 되니깐.. 그리고 음식은 다른 문화에 비해 자기화하는 정도도 크다. 같은 재료를 써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만 하면 되는 거니깐.. "날아다니는 건 비행기, 내 다리 있는 건 책상 빼고 다 요리한다"라는 현대 중국 음식의 다양함은 바로 음식이 갖고 있는 그 개방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 더구나 중국이라는 나라는 한족의 문화 뿐 아니라 여러 이민족들의 문화가 섞여서 구성된 것이니만큼 음식에 반영된 그러한 다양성도 이해할 만 하다. 이 책은 그런 중국음식문화의 변천을 각 시대별로 주욱 나열하고 있다. 시대별로 어떤 민족과의 교류로 인해 어떤 음식이 탄생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음식을 이해하고 즐겼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기록에는 주로 왕실의 음식을 위주로 기술되어 있어 일반 서민들의 식생활을 유추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실제 음식에 관한 설명을 사료로만 보여주지 말고 당시 음식을 재현한 사진 등을 덧붙였으면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웠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중국의 음식 문화사를 엿보기엔 손색이 없는 책이다.
g*****k 2002.11.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