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워낙 출중한 작품들이 많은 작가인 나머지 그 영광의 이면에 가려진 체 잘 알려지지 못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중 하나이다. 이 소설은 사랑의 이중성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주제로 ''어느 몽상가의 추억''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소박한 한 남자와 나스첸카라는 여인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나스첸카에게는 자신의 집에 세들어 살던 한 남자가 있었으니 할머니와 옷핀으로 얽혀진(그녀는 장님인 할머니의 병수발을 해야했다. 옷핀으로 할머니와 하나가 된체로...) 막막한 자신의 운명에 절망한 나머지 그 남자에게 갑작스럽운 사랑고백을 하게 된다. 그 남자는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을 남긴체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면 그 때 결혼하자는 약속을 남기고 떠난 것이다. 바로 그 약속시간이 지나고 3일째 되던날 다리위에서 우리의 ''몽상가''는 믿었던 사랑의 ''배신''에 흐느끼고 있는 나스첸카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접근을 하게 된 것이다. 그의 타고난 말솜씨에 현혹된 나스첸카는 자신의 모든 과거를 그에게 얘기하고 점점 더 가까워지는 서로가 되기에 이른다. 마침내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기까지... 하지만 그것은 한 여자의 철저한 이중성에 희생을 당해야만 하는 몽상가의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다. 나스첸카는 처음에 그를 만날 때 이미 ''나를 사랑해서는 안된다''고 전제를 하고 그를 만난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남녀사이라는것이 그런 약속하나만으로 형식화 될 수 있는 것이던가? 그리고 자신도 그 몽상가를 사랑한다고 하지 않았나? 자기를 버린 남자가 바로 그 몽상가였으면 하는 생각은 조금 이기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현실적인 행복감과 희망을 안겨 주었던 나스첸카와의 언약은 다시금 그녀앞에 나타난 그 세들었던 남자의 등장으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그 모든 고백과 다짐, 백야처럼 밝기만 했던 미래에 대한 희망에의 도취... 그 모든것을 고스란히 반납해야 했던 것이다. 너무도 철저한 사랑의 이중성과 의미없는 나스첸카의 사과편지 한통앞에서 사랑의 덧없음을 깨달은 우리의 몽상가는 조용히 또 다른 ''백야''를 꿈꾸어 보는 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잣대는 과연 어떠한 기준과 관점으로 정의되어 지는것일까? 적어도 도스토예프스키는 사랑은 이중적인 것이며 결코 행복할 수만은 없는 모순적인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듯 하다. 행복(하기만한)한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제나 슬픔과 분노를 동반하고 있으며 서로에게 언제나 의심을 품고 행하는 적나라한 본능에의 복종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우린 사랑에 자신의 모든것을 내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이중성이다. 영원히 행복해질수는 없지만 영원히 희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매력이며 우리모두의 본능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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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하여서는 개인적으로도 많은 생각과 의견을 남겨왔고,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도 수없이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니 이제는 더 할 말이 남아있지 않고 들을 말도 없을 듯한데, 마치, 여름날의 갈증처럼 사랑에 대해 목마름을 느끼는 것이 사람인가보다. 그리고 그 갈증은 아마도 영원히 지속되는 감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랑의 형태에 관해서는 아직도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고,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없는 인식과 감정의 영역에 속한 것이므로, 비슷하게 느낀 사랑의 감정이라 할지라도 그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어떤 환경가운데 이루어졌는지에 따라 다르게 인지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크게 몇 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다. 도스트예프스키는 <백야>와 <착한 영>을 통해 새로운 관점의 사랑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두 소설에서 동일하게 유지되는 관점은 ‘외로움’이다.(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그것이 사랑이라고 인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백야>에서는 1년 전 사랑을 약속하고 떠난 정인을 기다리는 여인과 그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한 공상가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공상’은 다름아닌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의 또다른 표현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공상을 하게 되고, 결국 외로움이 공상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렇게 외로움을 콧노래로 흥얼거리던 공상가는 캄캄한 운하를 꼼짝 않고 ‘매우 진지하게 바라보고’있는 한 여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자신이 느끼고 있는 외로움과 공허함을 그녀도 느끼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고, 그녀에게 다가가게 된다. 공상가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는 1년 전 떠나보낸 정인을 기다리고 있는 나스첸카라는 여인이었다. 약속한 날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정인에 대한 그리움과 현재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공상가와의 만남은 그녀를 일종의 혼란으로 몰고 간다. 그리하여 공상가에 대하여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 이유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이자 가족같은’ 관계라며 자신이 느끼는 사랑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했던(사랑하는) 정인이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과 외로움을 달래주는 공상가 사이에서 겪게되는 사랑의 갈등. 결국, 공상가의 고백에 나스첸카는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지만, 정인의 등장으로 이 둘의 관계는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조각나 버린다. 그럼에도 공상가는 자신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달래주었던 나스첸카를 향한 사랑을 쉽게 놓지 않고 순결한 사랑을 스스로에게 고백한다.
<착한 영>에서도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겪는 상황은 다르지만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나’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전당포주인으로,(도스트예프스키는 전당포를 운영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 그의 소설 ‘죄와 벌’에서도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경멸하는 라스콜리니코프가 등장한다) 장교로써 불명예 제대를 했고, 가난에 허덕이며 불운한 시간을 보냈으며, 우연한 기회에 숙모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전당포를 운영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믿는 것은 오직 ‘돈’이다. 전당포를 운영하며 알게 된 가난한 여인을 마음에 품고 그녀와 결혼을 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사람들과 같은 고리대금업자를 향한 시선으로 남편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외도와 갈등, 그녀를 향한 ‘나’의 독선적인 태도. 결국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잃게 되고, ‘나’는 절망에 빠져 절규하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선의 결핍이 악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른 관점으로 사랑의 결핍을 외로움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일까? 외로움이 충족되면 사랑으로 충만해질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육체도, 정신도 뛰어넘어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증은 바로 눈멀어버린 내면의 질서에 대한 회복의 외침일지도 모른다. |
|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을 읽노라면 잊고 있었던 마음 밑바닥을 긁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원래 알고 있는 거지만 왠지 모를 새로움으로 낯설게 다가오는 구절들...... '백야' 에서 두 남녀의 첫 만남은 마치 지극한 사랑을 나눈 연인이 헤어지려는 순간 같았다. 일년 전의 사랑의 약속을 믿고 변함없는 사랑으로 기다리고 있는 여인, 나스첸카 . 그리고 그런 그녀의 눈물까지 사랑했던 한 남자. '사랑' 이란 대체 뭐길래 현재의 지고지순한 사랑보다 예전 기억에 사로잡힌 한낱 상념을 끝까지 붙들고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일까? 나스첸카도 물론 남자를 사랑한다. 자신이 힘들 때 끝까지 위로와 격려와 도움을 주려했던 순수한 이 청년을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한 때 따스한 눈길과 미소로 약속 아닌 약속을 하고 모스크바로 훌쩍 떠난 그 사람을 잊지 못한다. 아니 그 남자가 아닌 함께 한 약속을 잊지 못한다. 그 만큼 나스첸카의 영혼도 맑기 때문일까. 일년 후에 만나기로 한 운하 옆 벤치에서 울고 있던 나스첸카에게 최선을 다한 사랑을 건넨 사람은 바로 약속한 기억 속의 옛 남자가 아니라 현재의 젊은 청년이었다. 두 사람이 터질듯한 사랑의 표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로 얘기한 바로 그날 약속의 그 남자가 나타난다. 나스첸카는 미련없이 그에게로 달려간다. 멍하게 쳐다보는 한 남자를 뒤에 남겨두고...... 공상을 즐기던 그에게 나스첸카는 백일몽처럼 사라져버렸다. 마치 그가 늘 꿈꾸던 사랑이 현실로 인해 산산히 부서지던 그의 공상처럼.. 두 남녀의 열정어린 사랑과 순수한 영혼 그리고 약속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정신... 오랜만에 맑은 물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독자의 마음을 투명하게 만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였다. |
| WITHE NIGHTS -Written by Dostoevskii- 부제처럼..어느 몽사가의 추억처럼. 소설속의 화자는 몽사가다. 끝까지 자신를 표현가길..나.., 그에게는 이름이없다. 강변가에서 슬픔에 떨고있는 한소녀 나스첸카를 만나.. 몇일동안 하얀밤을 지세운 우리의 몽상가 그는 우리가 가지고있는 나약함과 어린아이와같은 순수함의 단면이다 백야는 .. 순수한 호기심과 동정에서 시작한 사랑이 변절된 연인에대한 미움에 의한 남녀간의 이기주의적사랑에서 다시, 배신의 아픔으로 끝맺는다. 사랑하는 동안.., 그햐얀밤을.., 도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한 신비스런 감정을 감당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사랑이란, 이렇게 불현듯내게 다가온 사랑이란, 세상의 모든 것들을 태초의 순진함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 같았다" "그것은 당신이 다른 한 사람의 고독과 감사에 넘치는 마음에 건네주는 행복이기도 한 것이다. 아아! 더 없는 기쁨의 완전한 순간이여. 인간의 기나긴 삶에 있어서. 그것은 결코 부족함이 없는 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가장 쉽게 타오르다가, 가장 쉽게 변절될수도 있는것이 사랑이란 말인가~ 한순간의 그 결코 부족한 없는 그 찰라를 위해.. 인간의 불나방같은 질주를 시작한다. 저마다 끝을 생각하기보단, 한 순간의 완전한 기쁨에 사로잡히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런 내마음의 붉은 상처는 나약한 현실속의 오아시스처럼 갈급한 나의 의로움의 생명수가 되는것이다. 백야는..하얀밤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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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창피한일이지만,아주 어릴적, 그러니까 도무지 그책의 내용이 무엇인가? 라는 아주 근본적인 질문에까지 대답할수 없을정도로ㅡ나는 내가 예전에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이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도스토예프스키를 시작하고, 톨스토이를 시작하고, 카프카를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원점으로 나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첫번째 시작-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와 [착한영]이 실린 단편집 [백야]를 읽었다. 아..이소설은 정말 아름답다.어떤 미사여구를 써도 나는 이 아름다움을 문장으로 표현해낼 재간이 도저히 없다. 몇번이고 소리내어 같은 문장을 큰소리로, 마치 연극배우처럼 소리내어 낭독해보았지만 여전히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의 "미(美)"를 글로 써내려 갈수가 없다.
[백야]는 러브레터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여자는 다른남자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 여자가 기다리는 남자의 연락이 오지 않기를 이남자는 바라고 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 연락이 오지 않는 그남자의 행적을 찾아보겠노라고 여자에게 약조를 하기도 하고, 우편물을 건네주는 일도 담당해본다. 그러나, 결국 이 러브스토리는 비극으로 끝난다.
연락이 오지 않는 남자에게 낙담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걷던 여자앞에 그 남자는 나타난다. 결국 여자는 급작스레 이남자에게 키스를 퍼붓고 자신이 기다리던 남자와 함께 떠난다.
이건 비극이다. 어떤 설명으로도 부족한 분명한 비극이다. 이 비극의 처절함을 녹아내는 아름다운문장! 나는 그것앞에서 굴복당한다. 도대체 어떤 식의 심정으로 이런문장들을 써내려나갔을까. 나는 생각한다. 이것은 표면적인 상상이나, 틀안에 맞춰나가려는 노력만으로 도저히 만들어질수 없는 간절함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문장들이다. 작가는 완벽하게 나스첸카가 되어야 하고, 주인공 남자가 되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이 기다리는 혹은 사랑에 빠진 상대방에게 쏟아내는 온갖, 분노와, 열정과, 회한의 단어와 문장들은 도무지 노력만으로는 만들어질것 같지 않은 경이로운 지점에 올라선다.
예를들어,
"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오. 특별히 지성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성품이 유별나게 좋은사람도 아니오 나는 그저 흔히볼수있는 약간 이기적인 사람일뿐이오"
등의 문장은 그러한 경이로운 지점에 완성된 완벽한 문장이다.
[백야]의 뒤에 실린 [착한영]은 [백야]보다 더욱 철학적인 소설이다. 짧은 분량안에 작가가 토해내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정은 단한순간도 이견을 낼수없을만큼 완벽하게 "옳다.!"
예를들어,
"젊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속에 영웅심을 품고있다. 그들은 선을 행하는것이 영웅적인 행동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선은 곧잘 금전적인 것과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금전을 가치있게 생각하지 않는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또 젊은이들은 지극히 충동적이고 참을성이 없다. 조금이라도 비위에 맞지 않으면 마음속은 경멸감으로 가득차고 만다."
등의 문장이 그 일례인데,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던 돈푼꽤나 있는 마흔살된 남자가 열여섯의 여자를 만나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다가 결국 파경을 맞게 되는 과정을 담은 이 소설은, 짧막하지만 진중한 주제의식이 그 어느소설보다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어 소설자체에 대한 존경심을 읽는이에게 고취시켜준다. 오만과 과욕, 용서와 화해, 화합과 이별, 이질적인 공간에 있던 "다른것"들이 "함께"이고 싶을때 반드시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를 "나는 결코 겪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이 늙고 돈많고 욕심많은 중년의 남자가 파괴되는 과정을 우리는 분명히, 또렷하게 목격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이소설을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할수 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단편소설집 [백야]는 선물용으로도, 소장용으로도 그 가치가 뛰어난 책이다. 출판사 [인디북]에서 펴낸 작고 예쁜 책의 외형과는 달리 그 내용은 너무나 진지하고 처절하다. 대문호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와, 인간본성연구에 대한 재미있는 시선을 훔쳐볼수 있는 기막힌 기회가 아닐수 없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오. 특별히 지성적이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성품이 유별나게 좋은사람도 아니오 나는 그저 흔히볼수있는 약간 이기적인 사람일뿐이오" |
| 도스토예프.. 그를 낳았다는 것만으로도 러시아의 존재가 정당화 될 수 있을 만큼 그는 위대한 작가이다. 위대한 천재이다. 죄와벌에 비해서 무척이나 짧은 책인 이 책은 사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집은 책이었다. 예전에 죄와 벌을 읽으며 느꼇던 그 스릴과 감동을 이 책에서도 나는 찾길 원했다. 그렇지만 죄와벌과 백야는 내게 다른 감동을 전해주었다. 무엇보다도 이 글을 사랑이야기이다. 하지만 보통의 사랑과는 많이 다른, 사랑하는 사람을 떠내보내는 남자의 모습을 별로 길지 않은 시간에 모두 담고 있다. 그의 생각, 행동 모두를 사실적으로 눈에 선히 보이는 듯 하게 담아내고 있다. 그의 글은 인간의 정열적인 모습을 다른 시각에서 표현함으로써 더욱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