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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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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흑의 시대’라는 단편적인 인상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의 중세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넘어 이 책은 중세에도 흥미진진한 사람살이가 있었음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것이다. 중세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풀고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켜준 것! 하지만 아쉬운 점도 간간이 있으니... 2. 일반 독자를 위한 글이라 그런지 평이한 서술로 접근성을 높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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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흑의 시대’라는 단편적인 인상으로 가득차 있는 우리의 중세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넘어 이 책은 중세에도 흥미진진한 사람살이가 있었음을 그림으로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이것이다. 중세에 대한 우리의 오해를 풀고 이해의 지평을 확장시켜준 것! 하지만 아쉬운 점도 간간이 있으니...


2. 일반 독자를 위한 글이라 그런지 평이한 서술로 접근성을 높인 것이 돋보인다. 그렇지만 저자의 주장인지 다른 누군가의 주장을 인용한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예컨대 ‘중세의 가을’이라는 제목과 관련하여 중세를 일관하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요한 호이징가에게서 오고, 여기에 살이 덧붙은 중세이야기와 연옥에 대한 이야기는 자끄 르 고프에게서, 또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필립 아리에스에게서 온 것 같은데, 누구에게서 인용했다는 조항이(각주까지 바라진 않지만) 붙질 않아서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건지 헷갈릴 때가 많았다. 중세와 회화에 대해 보다 깊은 독서를 하고자 하는 이나 전문연구자를 위한 배려가 아쉬운 것이다.


3. 저자는 “중세 가톨릭의 지옥 교리는 중세의 발명품”(64쪽)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지옥 교리는 발명된 것이 아니라 재발견된 것이다. 지옥은 이미 성서에도(게헨나) 등장하고 있다. 다면 중세까지 부활과 영원한 생명이 강조되던 신학적인 분위기 때문에 조명을 받지 못하다가 저자의 지적대로 흑사병 등의 이유로 중세에 재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회화가 사회적 매세지의 매체라는 것은 중세의 순진한 발상”(125쪽)이라는 대목은 역시나 순진한 해석으로 읽힌다. 서양에서는 동·서방교회를 막론하고 수세기 동안 성화상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회화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신학적으로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었다. 그러니까 회화는 단순히 사회적 매세지를 전달하는 매체로 기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날 자신에게서 체현하는 통로로 기능한 것이다.

“마초 한스 발둥 그레엔은 ‘그 나쁜 존재는 여자’라고 당당하게 꾸짖고 있다. 이 화가는 아무래도 여성을 두려워한 것이 아닌가 싶다.”(286쪽) 중세 역시 신학이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라서 인류에게 죽음을 가지고 온 존재가 바로 여성이라는 성경의 창세기의 해석을 따를 뿐, 그리엔을 마초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다소 억측인듯 싶다.


4. 어느 시대나 마찬가지이듯이 중세의 회화 역시 시대상을 적극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회화를 읽어내려면 시대의 정신을 꿰뚫어어야만 한다. 예컨대 르네상스기에 들어서 인간의 재발견이 이루어지고 그림들이 세속화된다고 많은 이들이 이의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옳다. 하지만 예일대학의 저명한 교회사학자인 야로슬라브 펠리칸의 경우 르네상스기의 예수상이 신비적인 것이 사라지며 보다 인간적이 되고 마리아상이 에로틱해지는 것은 세속화라기보다는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성육신 교리의 본래 의미로 회복된 것으로 보고 있다.(Jaroslav Pelikan, Jesus Throuth the Centuries : His Place in the History of Culture, Yale Univ., 1999)

그는 덧붙여 종교개혁기의 그림들, 예컨대 히에로니무스 보쉬나 루카스 크라나흐같은 이들은 마르틴 루터에게 직·간접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받았던 것을 지적한다. 가톨릭에서 프로테스탄트로의 신학적 변화가 회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쉬의 전기작가인 파노프스키의 경우 보쉬가 루터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면서 “주제와 스타일 양면에서 모두 회심”했을 정도라고 적고 있다. 루카스 크라나흐는 루터와 같이 비텐베르크에 살았던 이웃 사촌이었고. 그의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을 보면 루터와 본인마저 그림에 삽입함으로서 동시대인이었던 가톨릭 교인 다빈치와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신학적 차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의 가을을 거닐다>에서는 아쉽게도 이러한 언급이 전혀 없다.


YES마니아 : 로얄 e*****n 2008.08.2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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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위에 앉아 세상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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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이택광 <아트북스>2008. 리뷰 거인의 어깨위에 앉아 세상을 보다. 바로크 사실주의의 서막을 열었던 카라바조의 그림을 바라본다. 유독 카라바조만의 독특한 특징인 어두운 색조와 눈 안에 한번 들어와 박히면 좀처럼 씻어 내기 어려운 붉은 색은 어느 순간 내 삶을 사로잡았다. 결국 서재 겸 집필실로 쓰는 방 한 쪽 벽을 장식한 액자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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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이택광 <아트북스>2008. 리뷰


거인의 어깨위에 앉아 세상을 보다.


바로크 사실주의의 서막을 열었던 카라바조의 그림을 바라본다.

유독 카라바조만의 독특한 특징인 어두운 색조와 눈 안에 한번 들어와 박히면 좀처럼 씻어 내기 어려운 붉은 색은 어느 순간 내 삶을 사로잡았다.

결국 서재 겸 집필실로 쓰는 방 한 쪽 벽을 장식한 액자들 중 어렵게 구한 카라바조의 St. Jerome.이 결려있다. <이탈리아 Borghese미술관에서 판매하는 RC Portfolio본이다.>

시대를 앞서나가는 모든 이들은 동시대인들 보다 더 멀리 내다보는 법이다. 종교와 상징으로 가득한 중세의 그림 속을 뚫고나와 거리의 군상들을 화폭에 옮겨놓고도 짐짓 종교적 권위를 내세운 카라바조의 그 태연자약함을 나는 사랑한다.

결국 샤르트르 베르나르의 유명한 명제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위에 올라 탄 난쟁이들이다”라는 말 속에서 거인이 의미하는 것은 현재 우리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문화적 유산인 중세를 지칭하기도 할 테지만 이 글을 쓰는 나에게는 카라바조가 거인인 셈이고 결국 나는 바로크 사실주의 화가인 카라바조의 어깨위에 올라 중세를 다시 돌아보는 난장이 임을 절감한다.


중세 서양에서 유명한 지식인이었던 사르트르 베르나르는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탄 난쟁이들이다”라는 말을 했다. 이 유명한 말은 르네상스와 근대로 이어지는 서양 문화 발전이 실제로 중세의 유산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p.298 <죽음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헤겔> 부분


서양 근대 철학과 죽음을 둘러싼 중세 문화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게 우리가 그림을 통해 중세를 읽는 목적이기도 하다

p.298 <더욱 짙어지는 죽음의 그림자> 부분


◦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출판업계에 유행처럼 번진 “그림읽기”라는 테제는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를 필두로 하여 지난 몇 년간 다양한 책들을 독자들에게 제공해 왔다. 이러한 영향 때문에 서구 유럽의 주요 회화나 조각 작품들이 머나먼 동양의 한국 땅에서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단순하게 미술을 전공하거나 혹은 필요에 의해 고가 양장본인 유명 화가의 화집을 소유해야만 알음알음 눈으로 즐길 수 있던 작품들을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점은 무척 긍정적으로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양적 토대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질적 전환이다. 유명한 명제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에서 작가는 서구 근대문명과 자본주의의 태동을 중세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부연하였고, 주지하다시피 계절의 순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되짚어 볼 때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다. 눈에 보이지 않던 수많은 물 밑 과정들이 우리가 인지 할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시기인 것이다. 그래서 호이징가는 「중세의 가을」이라는 저술에서 가을이라는 단어를 단순한 계절적 의미의 Autumn(fall)을 쓰지 않고 ‘추수하다’, ‘수확하다’라는 의미인 harvest를 사용했던 것이다.


시대의 흥망을 사계절에 비유한다면, 그것은 가을에 이르러 비로소 숨겨놓았던 색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우리의 탐사를 중세의 봄이 아닌 중세의 가을에서 시작해야 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중세의 가을을 가장 솔직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꼽아보라면 당연히 플랑드르 화가들일 것이다. 플랑드르라고 하면 대체로 오늘날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잇는 지역이라고 보면 되는데, 중세 르네상스 무렵에 상공업이 크게 발달한 곳이다. 상공업의 발달은 기존의 중세적 질서를 대변했던 봉건적 위계가 느슨했다는 걸 뜻하지만, 그만큼 기존의 질서와 새로운 질서 간의 충돌이 거세었다는 것 또한 암시한다. 그래서 플랑드르 회화로 분류되는 그림들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볼 수 있는 낙관주의와 탐미주의보다도 사회 비판이나 풍자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p.20 <철학과 신학에 종속된 예술> 부분


이 시기를 암흑기라고 평가했던 세력은 부르주아의 지지를 받던 인문주의자들이었다. 이런 인문주의자들이 칠해놓은 이데올로기를 걷어내고 보면, 중세는 고대와 르네상스 사이에 위치한 장애물이라기보다 고대의 유산을 가꾸고 다듬어서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근대에 전수한 시대이기도 했다.

p.64 <중세인이 죽음을 보는 방식>


◦ 그림으로 읽는 세상


문학동네의 계열사로 미술을 중심으로 한 예술 분야의 책을 출판하는 <아트북스>에서 출간 된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라는 이 책은 ‘그림으로 읽는 세상’이라는 시리즈 중 한권으로 중세, 근대, 현대의 세 시기를 각각 살펴보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시간의 순서가 조금 혼란스럽긴 하지만 이미 근대편은 출간되어 있고, 이번은 시대를 조금 거슬러 중세의 그림들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하고 있다. 현대편은 근간이 될 것이라 하는데 흩어진 퍼즐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재미를 위해서인지 시대 순으로 출간하지 않은 것은 (출판사의 기획의도 일수도) 조금 낯설다. 시리즈의 제목이 시사하듯 이 책은 이전까지 출간되었던 “그림읽기”류 와는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세상’을 읽는다는 것인데, 문학 아니 예술의 각 하위 장르들 모두가 창작이 이루어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는 대 전제 아래 은유와 상징을 통해 독자들에게 주제를 전달하는 문학작품보다 <물론 당시의 저술들은 시대를 관통하는 산문정신이라는 개념정립 이전의 글들이므로 당시 저작을 통해 시대를 읽는 것은 좀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시대정신을 표출하는 것은 회화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유명 회화작품을 보는 법”을 우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그림들이 동일한 주제를 어떻게 변주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통해 그 시대를 우리들에게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그림을 읽는 눈, 즉 일정수준의 ‘스키마’ 혹은 배경지식이 부족한 독자들이라면 보이지 않을 여러 도상학의 이론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애트리뷰트’<attribute>(상징적 부속물)들만 잘 기억하고 이해하기만 해도 그림을 보는 눈이 몇 배는 확장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명론이 자연과 인간의 언어를 분리시켜, 인간의 언어가 독자적인 상징체계에 불과하다는 걸 주장했다면, 단테의 시학은 그 언어가 독자적일 뿐만 아니라, 자연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었다. 언어는 이제 문화라는 제2의 자연을 위한 전제조건 같은 게 되었다. 이런 논리는 자연스럽게 언어가 경험과 정신을 매개하는 지위를 갖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고, 언어의 조탁이 이런 매개 작용을 더욱 정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학 관념을 등장시켰다. 드디어 예술이 하나의 독자 영역을 획득하는 순간이었다.

 뻣뻣한 기독교의 교리만을 재현하던 그림이 바야흐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한 건 이 때문이다. 인문주의자들은 모든 실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의 역할이 언어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인간은 개별 사물들을 보편성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자다. 그 보편성이란 것이 아름다움이고 그 아름다움의 절정에 詩가 있다. 이런 논리에 따라 시인은 곧 기독교의 사제가 사회적으로 수행했던 역할을 빼앗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시인은 신의 퇴거가 기정사실화되어버린 근대사회에서 예술이라는 신흥종교를 전파하는 새로운 사제였다.

p148 <예술, 하나의 독자 영역을 찾다> 부분


◦ 중세의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 보자.


이 책은 크게 ‘성애’와 ‘죽음’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통해 중세라는 시대를 읽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무척이나 금욕적이었을 법한 교권 중심의 중세 속에 드러난 ‘성애’를 고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궁정풍 사랑 혹은 기사와 귀부인이 등장하는 로맨스가 아닌 종교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여러 그림 속에서 성애의 상징을 하나하나 발견해 가는 재미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성모를 상징하는 장미의 이미지를 성애를 넘어선 생명의 근원 <구스타프 쿠르베의 작품을 보라> 혹은 인류탄생의 근원으로까지 확장하는 논지를 펼치고 있고, 엄숙한 종교와 곳곳에 드러나는 남근 상징물을 통해 금욕의 시대 속에 은밀하게 꽃피는 에로스의 쾌락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래서 저자의 그림 읽기를 따라가는 독자들은 숨겨진 그림 읽기의 매력 속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라캉은 이걸 욕망의 본질이라고 했지만, 이래서 모든 중세적 상상력은 외설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리아의 정원이 왜 장미 정원이기도 하고, 무엇 때문에 비너스의 정원이기도 한 것인지 이제 짐작이 간다. 마리아를 비너스로 바꾸어버린 것이야말로 중세적 상상력의 종착역이었던 셈이다.

p173 <중세적 상상력의 종착지> 부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논지는 사뭇 진지해지는데 그것은 이 책 중심내용의 또 다른 한 축인 ‘죽음’을 읽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부연하듯 중세에 불어 닥친 죽음에 대한 공포는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 원천이 되었다. 기존 강고한 종교의 힘은 예수의 부활을 통해 죽는 것은 또한 호르투스 콘클루스스(천국)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죽음을 신의 영역에 가두어 두었다.

하지만 중세의 가을에 닥친 전쟁과 전 서구유럽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은 페스트는 이 ‘신성한 죽음’을 우리 삶의 문제로 가져와 사유하게 만들었다.

몽테뉴가 말했듯 “철학은 결국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행위”라는 명제가 결국 한 시대의 끝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죽음’이 신의 영역에서 인간 삶의 영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그림을 통해 우리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중세에 죽음의 문제란 종교의 몫이었다. 그러나 서양의 근대 인문주의는 죽음을 성찰의 문제로 끌어들였다. 서양철학에서 죽음이란 성찰을 제공하는 원천이었다. 자연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인 인간은 죽음을 통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간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헤겔이 말하는 완성으로서 죽음은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헤겔로 대표되는 서구의 관념론은 개인적 죽음의 문제를 공동체적 희생의식으로 전환시켰다.

과학적으로 또는 철학적으로 서양인들은 죽음에 대항해왔다. 이런 문화가 바로 중세를 근대로 이동시킨 근본 동력이었던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서양의 근대 철학이야말로 중세가 끝나는 자리에서 중세의 유산을 이어받은 적자였다고 할 수 있다.

p301 p302 <그리고 ‘중세’는 계속된다> 부분


◦ 텍스트와 결별하여

 

이제 책 내용에서 조금 걸어 나와 ‘책’ 그 자체로서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를 살펴보자.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 쾌락의 정원”(앞표지)과 한스 발둥 그리엔의 “여자의 일생과 죽음”(뒤표지)로 구성된 표지는 이 책 내용을 관통하는 주제(성애와 죽음)를 축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으로 마감한 책등과 음영 반전을 통한 활자도 미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초록색의 간지와 표제 그리고 목차까지 잘 짜인 편집 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책의 제목과 같은 낙엽색의 간지를 사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조금 묻어난다.

책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하고 17개의 꼭지와 각 꼭지별로 4-5개의 소제목으로 나뉘어져 있어 필요한 부분을 먼저 찾아 읽기에도 어려움이 없게 편집되어 있어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17개의 큰 꼭지가 끝나는 뒷장에 Close Up 이라는 독립적인 글 꼭지를 만들어서 앞장에서 설명한 화가에 대한 자세한 정보 혹은 이론들에 대한 보충설명을 친절하게 해 주고 있어 본문을 읽는 도중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나 해설의 부족함을 느꼈던 부분을 해소할 수 있어 무척 유용하다.

자주 펼쳐보아도 책 낱장이 잘 떨어지지 않게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고 <아교와 실 묶음 제본 방식을 동시에 사용함> 가방에 편하게 넣고 다닐 수 있는 아담한 판형 역시 좋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사실 17,000원 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이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효용을 주어야 함이 당연할 것이다.

이 책에서 그 가장 큰 효용, 즉 조금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이 책을 사야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설명에 사용된 훌륭한 그림들을 감상하기에 적합한 고급지질의 사용과 훌륭한 도판의 인쇄상태를 꼽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회화가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하는 예술서들은 절대 그 그림의 퀄리티를 저하시키는 값싼 종이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인데 실제 작품을 직접 눈으로 보는 정도의 감동은 없을지라도 책 내용과 그림을 번갈아 보는 내내 크게 거슬림 없이 눈에 들어와 무척 만족스러웠다. (사실 필자는 책의 외형과 인쇄상태에 무척 민감하다.)


 이왕 칭찬하는 김에 몇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도상학과 관련된 내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그림의 일정부분만을 확대하여 싣게 되는데 이런 편집 방식도 좋고, 그 부분 확대 그림의 퀄리티까지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박수를 쳐주고 싶다.


두 번째는 ‘친절한 편집자씨’ 인데 전에 보았던 몇 권의 도상학 관련 책에서 느꼈던 불편함, 도판 바로 밑에 그 도판에 대한 정보 <화가, 제목, 크기, 소재, 제작일, 소장처>가 쓰여 있지 않고 책 말미에 ‘각주’의 형식으로 실려 있어 그림 하나 볼 때마다 책의 앞, 뒤를 종횡무진하는 그 피곤함을 이 책의 “친절한 편집자씨”께서는 그림 하나하나마다 친절하게 적시해 놓으셨고 부분 확대 그림에까지 빠지지 않고 적어 주셔서 책을 읽는 내내 그 흐름을 유지 할 수 있어 좋았다.


◦ 다시 현실 앞에서

 

책속에 실렸던 카라바조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중세를 한참 거닐다 다시 내 방 한 쪽 벽에 걸린 카라바조의 St.Jerome을 본다.

열심히 무엇인가를 <아마도 불가타 성서겠지...> 끄적이는 늙은 교부신학자 앞에 놓인 해골이 예사롭지 않다.

해골이 가지는 “죽음에 대한 사유라는 상징 코드를 이 책을 통해 읽을 수 있게 된 뒤, 이 카라바조의 작품은 더 큰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는 듯하다. 가물거리는 그림속의 불빛에 St.Jerome<성 예로니모(히에로니무스, 제롬)>과 내 얼굴이 겹쳐 어른거린다.

g****6 2008.08.2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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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웠던 책ㅠㅁ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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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꽤나 낭만적인 제목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막연히, 역사화들을 다루면서 서양의 중세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뭥미ㅠㅁ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한다는 인문학 서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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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꽤나 낭만적인 제목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책이 어떠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지요. 막연히, 역사화들을 다루면서 서양의 중세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게 아닐까, 하고 짐작했을 뿐이지요...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뭥미ㅠㅁㅠ 제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한다는 인문학 서적이었던 것이었습니다!!  혹시 제가 그랬던 것처럼, 중세사에 대해서 회화와 함께 살펴보기 위해 이 책을 집으실 예정이시라면 잠시 그 생각 접어두세요... 중세의 가을 속으로 떠나는 그림여행이라기 보다는 중세시대를 다루는 인문학에 가깝거든요..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서 자유롭게 역사여행을 떠나려 했건만, 뇌용량이 10메가가 될까말까한 제가 안되는 머리 쥐어싸매고 수능공부하는 학생의 자세로서 땀을 흘려가며 읽어내려갔답니다ㅜ_ㅜ



일단  책에서 다루는 테마는 성애와 죽음입니다. 물론, 종교도 빼놓을 수 없지요. 밝은 주제는 아니어서, 전반적으로 책 자체가 좀 어둡습니다. "중세의 가을"에서 거닌다는 말이 딱 알맞은 제목이었던 거지요. 제가 비슷한 타이틀을 가진 호이징거의 책은 읽어본적이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중세의 가을이란 말 자체가 상당히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네요.



좀 아쉬운건..  저 같은 일자무식의 독자들에 대한 친절함이 약간 부족하지 않나 하는 거에요. 물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정도를 읽어낼 정도면 어느정도 식견있고 배경지식이 탄탄한 독자들이 책을 집겠지만, 그림으로 읽는 세상이라기 보다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 그림들이 보조출현하는 식이라서 시각적인 것에 강하고 활자에 약한 저같은 사람은 머리가 뱅뱅뱅 돌 수 밖에 없네요. 그리고 도판이 책의 사이즈 때문에 축소가 많이 되서 약간 작은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림한번 제대로 보려고 한참을 들여다 보았어요.



이럴때는 저의 과히 뛰어나지 못한 지적인 면모가 아쉽습니다...분명히 굉장한 책이란것도 알겠고, 중세시대의 많은 면들을 술술술 풀어나가신것도 알겠는데 여전히 어렵게 다가오니 아무래도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야 할듯 합니다. 어쩌다 보니 저자인 이택광씨의 이글루스 블로그에도 가게 되었는데, 관심있으신 분들은 검색해서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듯 싶어요 :-)

YES마니아 : 골드 r***m 2008.08.2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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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중세 후기를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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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지도, 볼 줄도 모르기에 애써 그림을 보려하지 않는 편이다. 미술 전시회 등에도 잘 가지 않는다. 학창 시절 단체 관람을 간 것과 다른 이유 때문에 몇 번 전시회를 간 것이 전부다. 그러다 명화들이라도 한번 보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는데, 2004년도에 유럽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면서 유럽에 다녀오고 싶었다. 유럽을 가려면 유럽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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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잘 그리지도, 볼 줄도 모르기에 애써 그림을 보려하지 않는 편이다. 미술 전시회 등에도 잘 가지 않는다. 학창 시절 단체 관람을 간 것과 다른 이유 때문에 몇 번 전시회를 간 것이 전부다. 그러다 명화들이라도 한번 보자고 마음먹은 적이 있는데, 2004년도에 유럽을 가겠다고 생각했을 때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면서 유럽에 다녀오고 싶었다. 유럽을 가려면 유럽 문화를 알아야겠기에 서양화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사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는 분의 소개로 회사에 덜컥 입사하게 되었다. 유럽행은 당연히 취소. 사두었던 책들도 읽지 못하고 바빴던 회사 일정을 따라가야만 했다. 명화 정도라도 봐두고자 마음먹었던 유일한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 다양한 책들을 계속해서 읽고 있지만 그때 샀던 책들은 점점 마음에서 멀어져갔고, 책꽂이 한켠에서 먼지만 쌓여갔다.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아트북스, 2008)는 다시금 그림에 대한, 명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고자 읽게 된 책이다. 명화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중세를 중심으로 소개한다는 점도 이 책을 읽게 된 동기 중 하나다. 중세의 그림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책은 중세 중에서도 중세의 가을에 해당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을 좇아 작가 중심으로 그림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흐름을 좇기는 하되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당시의 경향들을 여러 작가들의 그림들과 비교해가며 설명한다. 그래서 한 가지 주제가 작가 혹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다른 관점을 보이는지를 비교하며 이해할 수 있다. 저자가 말하는 중세의 가을은 탈 기독교화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권위가 붕괴되는 모습들이 그림에 담겨 있다. 예수는 신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그려지기 시작한다. 다른 작가들이 그린 같은 주제의 그림들은 중세의 것과 중세의 가을, 그리고 르네상스기의 그림들이 제각각 다르다. 그 다름에서 당시의 시대상과 사고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주제의 분류와 그림을 소개하는 방법 또한 기존의 책들과는 달랐다. 사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간의 책들처럼 작가와 창작동기, 그림에 대한 설명 정도가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여기에도 그러한 내용들은 담겨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바로 ‘중세라는 시대’, 특히 중세의 가을에 해당하는 중세 말기부터 르네상스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시대다. 저자 이택광은 그림 하나하나보다는 왜 이러한 그림들이 그려지게 됐는지를 역사와 철학적인 관점에서 서술한다. 그러한 이해가 된 뒤에는 개개의 그림들에 대해 많은 설명이 덧붙여지지 않아도 그림을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해진다.


 


이 책 덕분에 중세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졌다. 그림을 통해 중세를 이해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 책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


 


by 꽃다지, 2008년 8월 25일


 

l*******g 2008.08.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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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약육강식의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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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시작하며 상당 부분을 할애 하여 저자께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처럼 중세는 어렸을적의 상성 처럼 결코 낭만적인 시절이 아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중세의 낭만에 대한 로망을 심어 주었는지는 뻔하다.. 바로 동화에 나오는 공주님 왕자님 기사님들..   암흑기라고 불릴만큼 중세에 대해 일반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세계사 교과서에 몇 줄 나오는 십자가 원정 (사실
"결코 낭만적이지 않은, 약육강식의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내용보기

책을 시작하며 상당 부분을 할애 하여 저자께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 처럼 중세는 어렸을적의 상성 처럼 결코 낭만적인 시절이 아니다.. 무엇이 사람들에게 중세의 낭만에 대한 로망을 심어 주었는지는 뻔하다.. 바로 동화에 나오는 공주님 왕자님 기사님들..

 

암흑기라고 불릴만큼 중세에 대해 일반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은 세계사 교과서에 몇 줄 나오는 십자가 원정 (사실 천재가 아니고서는 무슨 전쟁인지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으로는 절대 이해 불가) 과 페스트로 인한 인구 급감 이외에 동화책이나 그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거의 전부 아닌가..

 

조금만 통찰력이 있었다면 결코 그런 낭만을 꿈꾸지 않았을텐데 난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해서 대학교 저학년때 요한 호이징가의 "중세의 가을" 을 읽고 적잔이 충격을 받았더랬다.. 낭만적인 에피소드 들로 이루어져 있을거란 기대로 읽었던 그 책은 반대로 중세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알게 해 준 시초가 되었다..

 

그 후로 다른 많은 책들과, 동화 말고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영상물들로 인해 20여년간 머릿속에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던 낭만들은 모조리 사라져 버리고 대신 그와 정 반대로, 중세의 처참한 생활상을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잔인하다고만 묘사한 자료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때로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시 한채 현재인의 시각으로만 보았으니 '광기' 라고 밖에는 해석이 불가능한 행위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낭만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해 이렇게 들고 온 이 책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정보를 습득을 할 수는 있었지만, 기대 했던 내용은 아니였다..

 

그림들을 통해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싶어 데리고 온 책인데 오히려 저자는 종교와 철학에 지나치게 치중을 하신듯 하다.. 물론 중세가 마감될 무렵까지 그림의 대부분 소재는 종교였지만, 종교화를 금지 하는 풍조가 자리를 잡고 이미 대부분의 작가들이 세속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후의 극히 세속적인 작품들 조차 집착적으로 기독교적인 해석을 하고 있어 짜증도 조금 났다..

 

미술서적이라고 하기에 너무 철학적이고, 철학이나 역사 사조를 알리려고 했다기엔 정보가 조금 빈약한 그저 이도 저도 아닌 책으로 기억 될듯하다..

 

 

YES마니아 : 로얄 e*****7 2011.06.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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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들여다 본 중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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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중세는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가 주는 겉으로는 성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락과 부패, 탐욕으로 얼룩진 이미지로, 때로는 기사도 정신, 낭만과 사랑, 정열이 넘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바라보는 중세는 어떤 면에서는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구미에 맞게 윤색해 놓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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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게 있어 중세는 다양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영화 ‘장미의 이름으로’가 주는 겉으로는 성스러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락과 부패, 탐욕으로 얼룩진 이미지로, 때로는 기사도 정신, 낭만과 사랑, 정열이 넘치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바라보는 중세는 어떤 면에서는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우리의 구미에 맞게 윤색해 놓은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진정한 중세의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중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지은이는 특이하게도 중세의 모습을 그림을 통해 읽어 나가고 있다.


중세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굳이 그림을 택한 것은 무슨 이유일까. 그림에는 글로 표현하지 않은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그래서 때로는 글로 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근대의 그림들이 형식적인 면으로 흐른 반면, 중세의 그림은 그림 자체 내에서 많은 것을 담고 있어, 우리가 문헌에서 볼 수 없었던 중세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지은이가 중세의 매력에 빠져 든 이유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좀 더 실제적인 이유는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본다는 것이다.  


지은이가 주로 관심을 가진 그림들은 죽음과 성(性)을 소재로 한 것들이었다. 이는 당시 금욕과 절제를 중시하던 기독교가 사회를 지배하였던 만큼 죽음과 성에 대한 중세인들의 태도를 통해 중세의 사회적 분위기와 근대와의 차이점을 읽으려 했던 것이다.


소개되는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보아오던 그림들과는 많이 달랐다. 특히 피터르 브뤼헐의 ‘죽음의 승리’, 히에로나무스 보스의 ‘최후의 심판’, ‘세속적 쾌락의 정원’ 등은 기괴할 정도로 초현실적이었다. 당시 그와 같은 화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개인적으로는 한스 홀바인의 ‘무덤에 누워 있는 죽은 예수’가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도저히 예수라고 보여지지 않은 예수의 모습. 측은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그림들을 통해, 예수를 인간으로서 인식하게 되고 즉, 신 중심의 사회에서 인간 중심의 사회로 넘어오는 근대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중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암흑의 시대는 아니라고 한다. 지은이는 마녀사냥을 통해 중세를 몰락시킨 건 신비주의가 아니라고 한다. 신비를 악마의 흉계로 간주했던 합리주의가 중세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고 학대했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현재 우리사회에서도 저질러지고 있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막연히 중세를 암흑의 시기라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중세도 중세나름대로의 또 다른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림을 통해 중세를 본다는 것은 흥미있는 주제였지만, 내용이 조금 산만해진 느낌이다. 지은이가 의도한 주제의식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중세 그림들이 가진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된 좋은 기회였다.

c*****1 2008.09.0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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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중세와 근대 넘어감을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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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전후한 그림들을 왜 사람들이 열광할까..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그림들을 보면서 오직 모든 문화적 코드가 예수에 의해서 사랑과 믿음이 이루어 지며 죽음을 부활을 위한 편안한 안식 정도로 생각햇던 중세의 가을에 이런것이 깨지면서 예술이 그 문화적 코드를 대체하는 과정을 그림에서 읽을수 있다는것을 보여준다.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보스의 그림들에서 중세의 모습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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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전후한 그림들을 왜 사람들이 열광할까..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그림들을 보면서
오직 모든 문화적 코드가 예수에 의해서 사랑과 믿음이 이루어 지며 죽음을 부활을 위한 편안한 안식 정도로 생각햇던 중세의 가을에 이런것이 깨지면서 예술이 그 문화적 코드를 대체하는 과정을
그림에서 읽을수 있다는것을 보여준다.
초현실주의 그림 같은 보스의 그림들에서 중세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현대미술과 다르게 그림 자체가
서사와 상징을 가진 알레고리가 있어서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면서 만담꾼이 그림에서 나와서 얘기를
해주고 있는거 같다.
중세가 저무는 가장 큰 원인으로 흑사병이 돌면서 죽음이 평안한 잠 이 아닌 허무하고 잔인한 현실이 되면서 그런 세속과 성스러움이 서로 갈라지면서 나오는 갈등들이 표현되면서 근대가 나온다고 한다
인간은 성스러우면서도 세속적이다. 램브란트의 그림이 보여주는건 인간의 삶에 부여된 이런 이중성이다. 중세는 이런 이중성을 인지하지 못햇던 시대였으며 중세의 종언은 이런 이중성을 이해하기 시작한 휴머니즘의 출현을 통해 서서히 다가 왔다. 바로크는 이런 휴머니즘의 각성으로 인한 고통의 표현이었다.
인간과 신 사이에 가로놓인 거대한 간극 이를 깨닫는 것이 바로 근대이다.

왜 중세가 요즘 주목을 받을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지금 근대와 후기자본주의 모습의 토대가 되기 때문일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막연한 암흑 시대가 아닌 근대와 연결되어 있는 모습들
그 연결이 변주되는 지점을 찾아보는데 그 시대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그림들이 많은 점을 알려준다.

YES마니아 : 골드 p******n 2011.08.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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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통해 재해석되는 중세의 시대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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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볼때 가장 많은 사건이 있었던 시대가 아마도 중세시대일 것이다.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속에서 과학의 발달은 근현대에 빠르게 발전되었지만 미술,음악등을 포함한 문학부분은 중세시대를 시점으로 빠르게 발전되어 왔다. 가끔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떠한 세상을 마주칠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기는 하나 실제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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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볼때 가장 많은 사건이 있었던 시대가 아마도 중세시대일 것이다.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역사속에서 과학의 발달은 근현대에 빠르게 발전되었지만 미술,음악등을 포함한 문학부분은 중세시대를 시점으로 빠르게 발전되어 왔다. 가끔씩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떠한 세상을 마주칠까에 대한 생각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느끼기는 하나 실제로 주인공의 모습과 언어등에서 오늘날의 느낌이 묻어나기에 피부로 와닿는 느낌이 약하다. 본 책 '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는 중세시대의 그림으로 시대를 살펴보는 기쁨을 독자들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림은 그 당시 사회적 상황을 제일 잘 반영해주는 역사적 유물이라 생각된다. 저자도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책을 집필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특히 고대시대의 경우 언어와 표현법의 발달의 부재로 인하여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그림으로밖에 해석하지 못한다. 물론 중세이후의 경우 언어의 발달과 표현법의 발달로 인하여 많은 역사적 자료를 '글'에 의해 쓰여진 것들을 많이 참고하지만 직접 전달매체인 '글'보다는 그린사람과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의 교감을 이루어주는 그림이 오히려 더욱 정확한 시대적인 현상을 전달해준다고 생각된다.

 

 

책 속에는 이러한 생각이 옳다라는 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실제로 책을 보다보면 방대한 양의 그림에 놀라게 된다. 특히 책 속에 실제의 그림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려 하는 출판사와 저자의 정성이 돋보인다.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에 이르기까지 각 part별로 세분화하여 중세에 전반적으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볼 수 있다. 특히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았던 분야는 종교이다. 카톨릭과 기독교라는 부분에 대해서 가장 많은 이슈가 있었던 중세시대... 그 중세시대 그림을 통해서 종교적인 부분이 시대적으로 어떠한 딜레마를 안고 있었는지를 책 속의 그림을 통해서 잘 알수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짦막한 후기를 통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이다. 동의하는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과거의 것들에 대한 평가는 사실 오늘의 모습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옳다 안옳다를 떠나 현재의 삶에서 바라보는 눈에 의해서 해석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현재 우리의 삶은 결국 과거의 많은 것들의 영향속의 결과라는 것이다. 특히 중세시대의 모습들은 근현대보다 더욱 우리의 생활모습에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현대는 근대사의 단점을 개선한 결과이며 중세의 장점을 살린 역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a******m 2009.06.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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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가을에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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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세 권으로 기획된 ‘그림으로 읽는 세상’의 두 번째 발간 책이으로 이 시리즈 책들의 강력한 특징은 중세 회화를 사회역사적 시작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다. 이는 인문학자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림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 이택광은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독자적 사상을 그림에 담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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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모두 세 권으로 기획된 ‘그림으로 읽는 세상’의 두 번째 발간 책이으로 이 시리즈 책들의 강력한 특징은 중세 회화를 사회역사적 시작으로 해석하는 것에 있다. 이는 인문학자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그림 읽기를 시도한 책이다. 저자 이택광은 미술, 영화, 대중문화 관련 글을 쓰고 있는 작가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독자적 사상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한 건 르네상스 무렵이었다. 르레상스에 이르러서야 예술가는 비로서 철학과 신학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게 그 당시 교부철학과 신학적 상상력을 예술가들이 완전히 거부했다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p.19)

 

르네상스 시대에 '미술'이 태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르네상스 이전에는 예술가들이 단순한 석공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그러나 르네상스의 정치, 경제 지도자들은 고통으로 얼룩진 중세기식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인간의 위대한 기운을 살려주는 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늘을 찌르는 웅장한 건물과, 아름다운 조각품들을 도시 곳곳에 세워 인간의 무한한 능력의 증거로 보여주자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 지도자들은 석공에 불과하던 예술가들을 우대하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때부터 예술가들의 역할이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해졌고 ‘미술가’라는 새로운 직업도 탄생한다.

 

우리가 유럽의 중세를 알아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유산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근대가 중세의 속박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사건이라는 주장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 이런 주장은 그렇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중세는 속박이었다기보다, 근대와 '다른'세계였고, 이런 까닭에 근대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라는 견해가 차츰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중세에 대한 나의 관심은 이렇게 현실적인 이유를 갖고 있다. 향수나 복고 취향 때문에 중세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ㅅ계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해 중세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p.6)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점은 주제의 분류와 그림을 소개하는 방법 자체가 기존의 미술사책들과는 다른것을 느꼈다. 기존의 만연한  미술비평을 ‘인상비평’이라 칭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며 사람들이 미술을 그 자체만 보는 것에 익숙해 있는데 그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사실 시중에 나온 대부분의 미술사 책들이 인상비평 아니면 미술교과서식 해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 미술의 개념이 탄생한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미 넘치는 작품들을 통해 인간 본연의 참모습들을 살펴보고 있다.  책의 그림을 눈으로 보면서 그림 속에 숨어있는 여러 인문학적 요소를 하나 하나 짚어내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그 그림 속에 숨겨진 또하나의 소용돌이치는 세상을 보게 된다. 즉, 그림은 세상으로 열린 창이자 세상을 비추는 거울인 것이다. 사회과학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본 그림들은 대단히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에 대한 해석 역시 매우 풍요로왔다.

 

 



 

k****7 2009.05.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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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느껴보는 중세의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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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와도 같은 보스의 그림을 표지로 삼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책은,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주로 접했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는 후안 미로나 앤디워홀로 대표되는 것으로 배운 서양미술의 세계와는 조금 다른 맛을 보이는 서양 중세 작품들을 주로 담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중세의 가을을 거닐다".     평소에는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중세의 흥미로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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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와도 같은 보스의 그림을 표지로 삼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책은,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주로 접했던,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또는 후안 미로나 앤디워홀로 대표되는 것으로 배운 서양미술의 세계와는 조금 다른 맛을 보이는 서양 중세 작품들을 주로 담고 있다. 그래서 제목도 "중세의 가을을 거닐다".  

 

평소에는 접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 중세의 흥미로운 그림들을 보는 재미에 더하여, 그간 무심코 지나쳤던 서양 중세 문화 흐름과 사회 변화에 대해 상기할 수 있었다. 본질적으로는 서로 통한다는 Eros 와 Thanatos 를 중심으로 펼쳐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엄격한 종교생활만을 했을 것 같은 중세인들도 사실 우리와 같은 욕망과 두려움을 갖고 살아갔던 존재였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인지상정이라더니, 역시^^

 

특히, 다양한 상징과 애트리뷰트를 담고 있어서 관심을 끄는, 보스의 "세속적 쾌락의 정원" 과 브론치노의 "알레고리" 의 해설이 재미있고, 상상의 여지가 있어서 그 재미가 더하다. 또, 얀 반 에이크의 "롤랭 재상의 성모" 를 해설한 부분과 같이 그림을 읽는 명쾌한 해설이 있는 부분들을 읽고 나면, 그런 해설에 힘입어 다른 그림들도 그렇게 "읽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유럽 미술관에서, 아는 그림보다는 더 많을 모르는 그림들을 멀뚱멀뚱 보면서 다리만 아파하지 말고, 그림을 "읽는" 방법을 익혀서 그대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감상을 제 1 의 목적으로 해야겠지만...최근들어 그림이 새로운 재테크 수단이라는데, 도움이 좀 되려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두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했지만, 주로 서양 중세가 저물어 가는 시기의 작품들을 소개하다 보니, 조금씩은 주제에서 벗어나는 부분도 있는 듯 하지만, 원래 모든 시대의 종말은 혼란이 가득한 것이 정상이니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시대의 종말이 오지 않은 때에도 혼란은 항상 함께 하지만^^   

 

저자의 어린시절의 독특한 추억으로 중세에 대한 향수를 갖게 되었다는 고백에서, 중세 문화에 대한 저자의 특별한 애정을 읽을 수 있었다. "close-up" 으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 살뜰함도 그런 애정에서 온 것 같다.
YES마니아 : 로얄 d*****1 2008.08.24. 신고 공감 0 댓글 0